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 - 화려한 빅토리아 시대, 더욱 숨어드는 여자 이야기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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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는 단순히 그림 한 장이 아니다.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시끄러울수록 매혹을 더 하는 마르지 않는 예술의 샘이다. 이주은의 아름다운 명화에는 비밀이 있다는 명화를 살아있는 인간의 이야기로 소개한다. 풍요와 결핍이 공존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과 함께 지나치기 쉬운 여성들의 생활상을 전달한다.

 

한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알려진 적이 있다. 지구가 돌아 영국 본토에는 밤이 오더라도 세상 어딘가 영국의 식민지 중 하나는 낮이라는 말이다. 19세기 영국은 대표적인 산업 자본주의 국가이자 동시에 제국주의 국가였다. 또 성 불평등이 극심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빛과 어둠의 시대, 영광의 이면에 잔혹한 착취를 숨기고 있던 시대, 그 시대를 보통 사람들은 빅토리아 시대라고 부른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치세(1837~1901)는 대영제국의 황금기였다. 당시 영국인들은 여왕 폐하 만세!’를 외치는 데 추후도 망설임이 없었다. 또 여인들에게 깍듯하고 극진한 것이 신사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신사의 나라에도 실제는 여성 비화와 차별이 뿌리 깊었다.

 

 

 

 

금반지 안에서 희망이 보인다고? 거짓말, 거짓말이다.” 결혼생활의 실패로 자살한 미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이렇게 자문자답한 뒤 슬픔만이 거기에 있다고 자신의 한 시에서 단정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 당연한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결혼관이 생긴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서의 결혼상은 빅토리아 시대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결혼은 그리 낭만적이지도, 애절하거나 가슴 뭉클하지도 않은 정치행사이자 사회행사의 일환이었다. 과거에 결혼은 여성에게 안정된 삶을 보장했다. 그러나 남성 지배, 여성 복종이라는 가부장적 질서가 여성을 몸과 마음을 가정에 헌신하는 존재로 규정했다. ‘강인한 신사의 반대편에는 집안의 천사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형적 여성상이 등장했다.

 

 

 

빅토리아 시대에서는 섹스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 섹스는 단지 은밀하고 어두운 곳에서만 화제에 올릴 수 있었다. 금욕주의와 성애주의는 늘 빅토리아 시대 문화와 사람들 영혼 속에 공존해왔다. 억압에 더욱 강해지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듯이, 이 시대 영국에서는 매춘과 성병이 유독 기승을 부렸다. 금욕을 강조했던 시대에 매춘부들은 타락한 여자로 취급받아 멸시의 대상이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많았다. 물에 떠오른 익사체의 여성이 많이 그려진 것도 그 때문이다. 또 이 시대의 여성은 사회적 권리가 없어 늘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 감금되어 남편을 기다리고, 만일 버림받으면 갈 곳 없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충동과 규범의 사이에서 여성의 생활은 지속해서 심리적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뿐인 자식을 홀로 키우면서 세상의 따가운 시선들을 견디는 과부를 그린 에밀리 오즈본의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고를 보면 그 당시의 시대상이 잘 나타난다.

 

빅토리아 시대는 여왕의 시대였지, ‘여성의 시대는 아니었다. 화려한 옷과 고급스러운 화장으로 치장한 여인들의 그림 속에는 빅토리아 시대의 은밀한 속사정이 숨어있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남성들에게 부여받은 것이다. 그림 속 여인들의 모습이 아름답고 관능적이라기보다는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녀들은 그림 밖 관람객들에게 우리가 행복해 보인다고? 거짓말, 거짓말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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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11-0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인 저의 시각에도 관능적이고 아름다움의 프레임이 걸려있다는 거죠~

cyrus 2016-11-01 18:32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좋아했던 회화 양식이 빅토리아 시대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살아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알고 나니까 그림에 대한 정이 떨어졌습니다. 저도 남성들이 만든 아름다움의 프레임에 착각했습니다.

나비종 2016-11-01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한 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가 과거의 한 면만을 보여주듯이, 명화도 마찬가지군요.
하긴 똑같은 장면을 촬영한 사진도 찍는 이의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사건으로 비춰지는 걸 보면, 예술이든 어떤 형태로든 모든 기록은 승자의 관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나 봅니다.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고」라는 제목이 가슴 아프네요.

cyrus 2016-11-01 19:12   좋아요 0 | URL
책 속에 생소한 화가들의 그림이 많았습니다. 에밀리 오즈본이라는 화가도 여자인데, 남자 화가들이 외면했고, 그리지 않았던 것을 그려냈습니다. 서양미술 책에 많이 소개되는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들은 주로 여성 모델을 전면적으로 내세운 구도가 많습니다.

달걀부인 2016-11-01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미술사 책들을 읽고 있는데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책이네요. 추천 감사해요. ^^

cyrus 2016-11-02 16:34   좋아요 0 | URL
빅토리아 시대 회화를 주제로 한 책이 많지 않습니다. 이주은 씨의 책은 어렵지 않고, 도판이 많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6-11-01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양미술사로 미술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어 기뻐요~
그림과 화가를
공부하듯이 외우지 않아도
그림에 담긴 스토리와 시대상에 따른
작가의 스타일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느낌이 좋습니다.

앞으로 싸이러스님의 그림에 대한
리뷰~꼼꼼히 읽어볼께요^^;


cyrus 2016-11-02 16:38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이 서양미술사가 재미있는 이유를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림 속에 숨겨진 상징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고 예술가들의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어요.

제 글은 스마트폰으로 보기가 불편합니다. 글을 짧게 안 쓰거든요. 꼼꼼하게 읽으면 시력이 떨어져요. ^^
 

 

 

 

 

 

 

 

 

 

 

 

 

 

 

 

 

 

 

 

다다이즘(Dadaism)과 초현실주의1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됐던 반전 정서와 기존 미학을 부정하는 반 예술을 토대로 출발했다. 따라서 명칭만 다를 뿐 내포된 이념과 사고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특히 마르셀 뒤샹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양쪽 사조에 두 다리 걸친 인물이다.

 

 

 

 

 

그는 전후 암울한 세상을 조롱하며 변기에 사인해 출품을 했다. 심지어 (Fountain)’이란 제목도 붙였다. 황당한 심사위원들은 뒤샹의 변기가 예술을 모독하는 거라며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현재 의 원작은 분실됐지만, 파리 퐁피두 미술관에 전시된 복제품은 어마어마한 금액을 호가할 정도로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품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앙드레 브르통은 뒤샹의 활약에 찬사를 보냈고, 그를 초현실주의 그룹에 초대한다. 다다이즘이 막을 내리고, 1924년에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초현실주의 그룹이 공식적으로 출범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다다이즘의 냉소주의에 한 단계 진화해 이성적 사고력이나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비이성적 의식을 미술에 도입했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제2선언에 뒤샹을 언급한 문장이 있다. 별 내용은 아닌데 번역문에 문제가 있다.

 

 

* 뒤샹이 대전 무렵에 벌이고 있던 승부를 버리고 끝나지 않을 장기 승부에 빠질 자유는 없었다. (초현실주의 선언182, 황현산 번역)

 

* 오트 노르망디의 장기 챔피언이기도 했던 뒤샹은 당시 장기 시합에 얻은 수입으로 살고 있었다. (황현산의 주석, 초현실주의 선언182)

 

 

뒤샹이 장기(將棋)를 둘 줄 안다고? 이건 치명적인 오역이다. 뒤샹이 좋아했던 게임은 장기가 아니라 체스다. 체스가 장기와 유사한 놀이라고 해도 뒤샹과 체스의 밀접한 연관성을 생각한다면 황 교수의 단어 선택은 정말 터무니없는 번역이다.

 

 

 

 

 

 

 

 

 

 

 

 

 

 

 

 

뒤샹은 1923년 이후부터 미술가로서의 전면적인 활동은 사실상 중단하고 평생 체스에 몰두했다. 뒤샹의 체스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1925년에 체스 마스터가 되었다. 1935년과 1939년에 체스 올림피아드의 프랑스 팀 주장으로 참가하여 챔피언에 올랐다. 이름이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고 했나. 변기 하나로 명성을 얻은 뒤샹(Duchamp)은 무패의 체스 챔프(champ)가 되었다.

 

 

 

 

 

 

 

 

뒤샹은 특별한 의도로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가볍게 체스를 두듯이, 또 놀이하듯이 작품을 만들었다. 비록 체스에 푹 빠져서 예술 활동을 중단했지만, 체스 선수야말로 이미 준비된 흑백의 형태로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라고 말했다. 그는 체스 진행 방식에 매료되어 체스 자체를 하나의 미적 취향으로 인식했다. 체스 게임을 즐기는 삶 자체가 예술작품을 만드는 하나의 노력이었다.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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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2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변기는 그 당시에는 기존 예술을 모독하고 저항으로 나타내려 한 것은 아닐까 싶더군요.ㅎㅎㅎ
하여간 예술계의 콜롬부스같은 달걀세우기랄까요..ㄷㄷㄷㄷ

cyrus 2016-09-22 18:52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뒤샹의 변기는 발상을 전환한 오브제입니다. 기성품을 예술품이라고 우겼으니 말입니다. ㅎㅎㅎ

아무 2016-09-22 1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롤리타에도 비슷한게 나옵니다. 가스통이랑 험버트랑 체스를 두는데 가스통이 ˝장군 받으시게!˝하는 장면이 나와요. 비교적 최근 번역인데도 그러니.. 읽을 때는 가스통의 어수룩한 측면을 강조하려고 그랬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cyrus 2016-09-22 18:54   좋아요 0 | URL
아직 《롤리타》를 읽어보지 않았어요. 집에 절판된 민음사판이 있는데 문학동네판도 읽어봐야겠어요. 아무님이 알려주신 장면, 기억하겠습니다. ^^

붉은돼지 2016-09-2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샹이 체스 챔피언이었다니 처음 알았습니다 ^^

cyrus 2016-09-23 08:48   좋아요 0 | URL
진정한 덕업일치입니다. ^^
 
반 고호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3
정문규 지음 / 서문당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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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편>은 나온 지 오래 되어도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리즈다. 서문당 출판사는 1968년 12월에 설립되었다. 서문당보다 2년 먼저 나온 출판사가 ‘문예출판사’다. 그만큼 서문당도 역사가 깊다. <서문당 컬러백과 서양의 미술 편>은 1989년에 ‘피카소 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46권의 책을 펴냈다. 최근에 나온 시리즈가 2010년에 나온 ‘반 고흐’ 2편이다. 47번째 책이 나올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서양의 미술 편> 시리즈는 화보집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사진으로 찍은 그림이지만, 강렬한 붓 터치와 묵직한 마티에르(matiere, 질감)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분량이 얇고, 책에 실린 작품 수가 많지 않다. 글자 크기가 작다. 글자를 포기하고 그림만 봐야 한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책이라서 현재 외래어 표기법과 차이가 있는 단어가 많다. 재판이 발행되었지만, 옛날 외래어 표기는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심지어 초판이 1989년 4월에 나왔는데도 ‘있읍니다’로 쓰고 있었다. 1989년 3월 1일에 현행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전면 시행되었다. 2003년에 발간된 8판에서도 ‘있읍니다’를 ‘있습니다’로 고치지 않았다. ‘반 고흐’ 1편을 보려면 ‘고호’로 검색해야 한다. 지금도 책 제목이 ‘반 고호’로 나온다. ‘고호’를 ‘고흐’로 바꾸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렘브란트나 하르스에 이어 네덜란드 지방의 고전을 바탕으로 강렬한 빛을 갈망한 고호에게 찬란한 색채의 길을 열게 해준다. (7쪽)

 

 

 

이 책의 또 다른 단점은 역자의 불친절한 그림 설명이다. ‘하르스’는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1?~1666)를 가리킨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렘브란트와 함께 동시대를 풍미했던 네덜란드 회화의 거장이다. 할스를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반 고흐는 렘브란트, 할스 등 자신이 좋아했던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모델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로트렉의 작품에도 등장하는 이 여인은 템버린 가게의 여인인지 직업 모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바로 우리나라의 장고 모양으로 된 의자와 탁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16쪽)

 

문장이 어색하다. 그리고 이 초상화 속 여인의 정체가 밝혀졌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고스티나 세가토리(Agostina Segatori)다. 그녀는 카페 겸 선술집 르 탕부랭(le Tambourin)를 운영했고, 한때 고흐와 사귀던 연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카페에 반 고흐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해줬다. 모델 뒤에 그려진 우키요에는 반 고흐의 취향을 알 수 있다. 반 고흐는 당시 여성에게 금기시되던 음주와 흡연을 화폭에 담아 자유로운 영혼과 당찬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는 이곳에서 두번째의 실의를 맛보았다. 그의 조카 케이에게 실연을 당하고... (36쪽)

 

그의 또 하나의 조카였던, 화가인 모브(Mauve)는 그를 친절히 대해 주었고, 유익한 충고를 해주었다. (37쪽)

 

※ '그'는 반 고흐를 가리킴.

 

 

책 뒤편에 ‘반 고흐의 생애와 작품 세계’라는 글이 있다. 그런데 이 내용에 오류가 있다. 반 고흐가 짝사랑했던 케이를 ‘조카’라고 썼다. 케이는 반 고흐 외삼촌의 딸이다. 그녀는 고흐의 사촌이다. 그리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 모브(Mauve, 안톤 모베)를 처음에 ‘조카’라고 했다가 그 다음 장에는 ‘종형(사촌 형)’으로 썼다. 안톤 모베는 반 고흐의 사촌 형이다. 반 고흐는 헤이그에서 사촌 안톤 모베에게 그림을 배우며 유화에 입문했다.

 

내가 읽은 책은 2003년에 나온 8판이다. 지금 판매되는 책에 오류와 외래어 표기법이 고쳐졌는지 모르겠다. 착한 가격에 혹해서 이 책을 고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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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21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한 차이고 거의 같은 말의 다른 표현이겠지만 ˝혜자스럽다˝는 말은 사실 ˝아니, 이 양과 질에 이 가격을?˝ 보다는 ˝아니, 이 가격에 이 양과 질을?˝에 가깝잖아요? 다른 도시락과 비슷한 가격에 양질이 작살이었으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 책은 정확하게 혜자스럽지는 않네요.
역시 좀 더 비싸게 주더라도 양질에 만족할만한 화집이 낫겠어요.

cyrus 2016-09-21 18:57   좋아요 0 | URL
syo님 말씀을 듣고 보니 표현을 고쳐야겠어요. ‘착한 가격’으로요. 의견 주셔서 고맙습니다. ^^

yureka01 2016-09-2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다 보면 국어 맞춤법은 참 고치기가 어렵더군요. 그 출판사 아무래도 편집자가 비정규직 알바생인가 봅니다.

cyrus 2016-09-22 15:26   좋아요 1 | URL
지금보다 열악한 80년대 출판 작업 환경을 생각하면, 그때 나온 책들은 편집 오류가 많아요. 그런데 이걸 고치지 않고 지금까지 버젓이 내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초현실주의 회화의 의미를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생뚱맞음이다.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오브제들을 모아놓고 수수께끼의 이름이 붙인 그림은 관람자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이런 생뚱맞은초현실주의 미술을 구축한 화가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데 키리코가 초현실주의 집단과 교류하면서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린 시기는 고작 4년에 불과하다. 1915년부터 1919년까지 데 키리코는 형이상학적 회화로 명명된 그림들을 제작했다. 1920년부터 데 키리코는 돌연 고전주의 화풍을 시도했다. 앙드레 브르통이 주도하는 초현실주의 집단은 과거에 회귀한 데 키리코의 작업을 비난했고, 그를 집단에 제명하기에 이른다.

 

 

 

 

 

 

 

 

 

 

 

 

 

 

 

브르통은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사실주의를 조야한 자기도취라고 비판했다. [참고 1] 데 키리코는 라파엘로, 루벤스 등의 과거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사실주의를 환기했고, 이를 형이상학적 세계와 조화를 이루려고 했다. 그의 후반기 작업은 전통적인 회화의 현대적 변용이라 할 수 있다.

 

 

 

 

형이상학적 회화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고, 데 키리코의 대표작으로 많이 소개되는 작품이 거리의 신비와 우울이다. 이 그림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렇지만 데 키리코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도 오래도록 눈길을 붙잡게 하여버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광장에 노랗게 번지는 오후의 색깔이 몹시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고대의 성벽이 서 있는 골목길은 햇볕을 받아 환하게 밝고, 오른쪽 반을 차지한 성벽은 완전히 칠흑처럼 컴컴한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 광장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상반신 그림자가 마치 굴렁쇠를 굴리며 달리는 소녀를 관찰하듯이 골목길에 삐져나와 있다. 굴렁쇠 소녀는 그림자를 향해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온다. 보이지 않는 광장도 보이는 골목길도 적막하기만 하다.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의 피렌체, 밀라노 등을 여행하면서 지중해의 햇살이 고대유적과 광장에 가로질러 들어오는 풍경에 매료되었다. 형이상학적 회화 작업에 영감을 불어넣은 첫 번째 현현(顯現, epiphany)이다. 이때부터 데 키리코는 광장을 소재로 형이상학적 그림을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그가 묘사한 광장은 황량하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짙게 감돈다.

 

 

 

 

사랑의 노래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아폴로 석조 두상과 수술용 장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아래에는 커다란 녹색 공이 놓여 있다. 이 오브제들이 사랑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제목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잔뜩 생긴다. 딱 거기까지만. 우린 절대로 수수께끼의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해답을 찾게 되면 이 그림 본연의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사라진다.

 

 

 

 

데 키리코는 처음에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Arnold Bocklin)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뵈클린 역시 음습한 분위기, 초자연적인 세계의 기이한 경험을 표현했다.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그림 속에 텅 빈 광장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듯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관람자에게 꼿꼿하게 서 있는 자신의 뒷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데 키리코의 수수께끼 인물에 대한 정확한 명칭은 없다. 여기서는 광장의 유령이라고 표현하겠다) 광장의 유령은 뵈클린의 그림에 등장한 인물과 닮았다.

 

 

 

 

망자의 섬중앙에 온통 암흑으로 드리워진 사이프러스 숲은 고요하고 아무런 형태가 없는 심연(深淵)을 형성하며 무한으로 향하는 미지의 세계, 즉 알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을 나타낸다. 검은 옷의 뱃사공이 노를 젓고, 하얀 옷을 입은 망자는 죽음이란 최후의 여행을 암시한다. 데 키리코는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를 도시의 거대한 탑으로 변용했다. 거대한 크기와 단순한 형태의 탑은 무한한 환상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1919년에 데 키리코는 로마 미술관에 전시된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고 두 번째 현현을 체험한다. 그는 형이상학적 회화에서 고전적 사실주의로 돌아선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집단은 데 키리코를 변절자로 몰아세워 비난했으나 그들은 처음부터 데 키리코의 진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데 키리코가 한창 형이상학적 회화 작업에 열중했던 시기에 이미 고전주의적 소재(고대 유적, 조각상, 도리아식 열주)를 사용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 집단은 과거와의 단절을 추구했지만 데 키리코는 과거와의 연결을 시도하여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리려고 했다. 브르통은 데 키리코의 사소한 일탈을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했다.

 

 

 

데 키리코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파르미자니노(Parmigianino)의 그림도 봤을 것이다. 파르미자니노는 16세기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양식을 대표하는 화가다. 마니에리스모는 고전주의 르네상스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건너가는 과도기에 형성된 미술양식을 가리킨다. 더러 매너리즘으로 쓰기도 한다.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마니에리스모는 고전주의의 단순한 조화를 해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변형한 것이다. [참고 2]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는 미완성 작품이지만, 마니에리스모 양식에서 볼 수 있는 불균형한 구도와 비현실적인 신체 왜곡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목이 긴 성모에 특이한 기둥이 그려져 있다. 그 기둥 아래에 성 히에로니무스로 추정되는 사제가 서 있다. 진중권은 이 오묘한 구도를 데 키리코의 형이상학적 그림과 닮았다고 했다. 곰브리치는 정통적인 양식을 거부한 파르미자니노를 최초의 현대적인 미술가라고 평가했다. [참고 3]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파르미자니노의 그림을 데 키리코가 절대로 모를 리가 없다. 목이 긴 성모스가랴와 함께 있는 성모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그림이다. 데 키리코가 피렌체를 여행하는 중에 우피치 미술관에 들렀을 것이다. 그는 파르미자니노의 특이한 신체 묘사, 배경에 배치한 고대 건물과 기둥을 인상 깊게 봤을 수도 있다. 데 키리코가 고전주의 회화에 탐닉했던 시기에 마니에리스모 양식과 유사한 그림을 제작하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집단은 합리적인 세계를 뒤집으려는 계획을 갖고 현실을 재창조하는 예술 행위를 추구했다. 초현실주의 집단 일원들과 교류했던 피카소는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데 키리코는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점차 독자적인 화풍으로 현실을 재창조했다. 그는 보이는 것을 그리되,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 이상의 뭔가를 전달하고 싶어 했다. 데 키리코의 영향으로 달리,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자유로운 인간의 내면적 세계를 형상화해낼 수 있었다. 그가 달리와의 관계를 끊고(브르통은 달리가 상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고, 히틀러를 찬양한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 당연히 달리와 브르통은 예전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갈라섰다), 자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마그리트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참고 4] 달리는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자신의 기억, , 무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그렸고, 마그리트 역시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환상의 세계를 중시했다. 데 키리코는 자신의 그림이 꿈과 무관하며 초현실주의를 의식하고 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현실의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전주의로 관심을 돌렸다. 데 키리코는 누구도 시도하지 못한 것을 시도했다.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결합. 물과 기름 같은 서로 상반된 양식이 만나 색다른 회화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도전이었고, 동료 화가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데 키리코가 죽을 때까지 형이상학적 그림을 그렸다면, 초현실주의 회화를 논할 때 달리, 마그리트보다 가장 먼저 언급되었을 것이다.

 

 

 

[참고 1] 초현실주의 선언(미메시스, 2012) 65

 

[참고 2]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창비, 2016) 2장 매너리즘 편

 

[참고 3] 교수대 위의 까치(마로니에북스, 2009) 11장 목이 긴 성모 편

서양미술사(예경, 2013) 18장 미술의 위기 편

 

[참고 4]다시 구할 수 없는 미술책 시리즈’ (2012317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550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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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12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지금 지진이었죠?

cyrus 2016-09-12 20:40   좋아요 1 | URL
네. 하루에 진동을 두 번 느낀 건 처음입니다. 지진의 여파 때문인지 지금 카톡도 안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9-1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리의 신비와 우울` 그림은 저도 근간 <경제와 미술을 지배하는~> 책 보고 첨 알았습니다. 제 느낌 소감도 매우 비슷합니다. ^^

cyrus 2016-09-12 20:56   좋아요 1 | URL
초현실주의 그림이 좋은 이유가 해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6-09-12 21:22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 님도 괜찮으세요?
진도 5.0 이상은 정말 큰 지진인데, 그것도 내륙에서요...

cyrus 2016-09-12 21:28   좋아요 2 | URL
무사합니다. 또 여진이 일어날까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군요. ㅎㅎㅎ

yureka01 2016-09-12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지진의 파장이 사회를 초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린듯이 웅성거림과 두려움으로 나타났습니다. 아 떨림의 두려움이 그런가봐요....역대급이었다고 하네요...

cyrus 2016-09-13 08:46   좋아요 1 | URL
빌라에 살고 있어서 또 지진이 일어날까봐 두렵습니다. ^^;;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13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교 다닐때 잠시 서양사에 관심이 있어 한 일년쯤 수강했는데 키리코의 그림은 매너리즘으로 아주 잠깐 훑고가더라구요. 기묘한 느낌때문에 인상에 완전 남았는데! 스페인의 엘 그레코도 그렇고 매너리즘으로 약간 낮게 보는 게 좀 짜증났어요. 왜냐면 제 취향엔 이상하게 맞았거든요..ㅎㅎ
근데 전 초현실주의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인데 그 이유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니 역시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재밌네요. 그게 제가 남의 서재를 염탐하는 이유기도 하구요^^

cyrus 2016-09-13 23:27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한 입장입니다. 저는 달리의 그림을 안 좋아해요. 난해해요. 달리의 그림이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달리가 프로이트 사상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점을 지나칠 수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요. 사실 마그리트의 그림도 어려워요. ^^;;

낭만인생 2016-09-13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세계도 있군요. 처음 접하는 거라 낯설고 신기합니다. 뭔지 잘 이해도 되지 않구요... 저의 미술 실력이....

cyrus 2016-09-13 23:28   좋아요 1 | URL
그냥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 아시면 됩니다. 꼭 알아야 할 내용도 아닌데요. ^^

초딩 2016-09-17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iOS10 업데이트하고 난 후부터 북플에 긴글이 마지막에 ... 으로 나오는 것 같네요 ㅜㅜ
문자 길이에 따라 영역계산하는 것을 예전 함수를 써서 그런것 같아요.
최신 함수를 써야하는데...
10이전까지는 그럭저럭 동작했는데, 10 이후부터는 옛날꺼는 문장 영역 계산에 오차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cyrus 님께서 신문고를 울려주세요~~~
ㅎㅎ 초딩하는 일이 이런 앱 만드는 일이라 조금 압니다 ㅎㅎ

cyrus 2016-09-18 16:29   좋아요 0 | URL
어떡하죠. 저는 갤럭시 안드로이드 폰을 쓰고 있어서 애플 iOS 시스템은 잘 모릅니다. ^^;;

사소한 문제도 서재지기 게시판에 글 남기시면 됩니다. 아니면 초딩님 서재에 이 문제에 관한 글은 전체 공개로 작성해서 공론화해도 좋습니다. 일단 초딩님의 댓글만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비종 2016-09-18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리신 화가들의 작품을 좀 더 찾아보았어요. cyrus님 덕분에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게 되었구요, 미술에 대한 상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분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마그리트의 그림이 마음에 드네요. 기발한 발상과 색채의 톤이 밝고 건전해보이는 그림이 많더군요. 허연 머리에 피 나는 그림은 맘에 안들지만^^;
달리의 그림은 뾰족한 뼈다귀들이 잔뜩 나오고 왠지 피 질질 흘러내릴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라 별로입니다. 형이상학적 세계라 해서 그렇게까지 날카로울 필요가 있을까 싶구요. 부드러운 무의식도 분명 있을 텐데...
데 키리코는 처음 들어본 화가였어요.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의 그림을 통해 본 대체적인 성향은요, 소개해주신 7점의 작품에는 <사랑의 노래>를 제외하고 모두 2명의 사람이 등장한다는 점이예요. 근육질이든 이쑤시개처럼 표현이 되었든 항상 두 사람이더군요. 그림자가 많이 나타나고, <거리~>와 <떠나야~>에 등장하는 콘테이너는 집과 같은 의미였을까 생각도 했어요. 바나나를 좋아했나봐요. <몽파르~>에 널려있는 무더기가 뭔가 신경이 쓰였는데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니 바나나였라구요. 지중해의 햇살을 좋아해서였는지 노란색을 많이 썼고, 빨강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사랑의~>에 등장하는 고무장갑도 빨강이고 그외 중요 포인트에도 빨강을 쓴 것 같거든요. 빨강/노랑/초록/파랑을 주로 쓴 사람이네요. <검투사>를 한참 바라보았어요. 등장하는 2명의 피부톤이 반반씩 교차되어있는 것 같아서요. 뒷모습을 보이는 근육질 남자의 하체톤이 마주 바라보는 허연 남자와 비슷합니다.ㅋ
이 포스트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1915년부터 1919년까지 4년간 초현실주의 집단과 교류하면서 그린 그림도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더라구요. 소개해주신 그림 중 5점은 1910년부터 1914년까지의 그림이고(물론, <떠나야~>는 1914년부터 1915년까지이지만), 2점은 1920년 이후의 그림이니, 고전주의 화풍이 가미된 작품과의 차이점은 어느 정도 느낌으로 오는데요, 가운데 도막이 빠져 before에서 after로 넘어가는 과정이 생략된 듯한 기분이 들었거든요.(개뿔도 모르면서 감히 이런 멘트를~^^; ;==33)

cyrus 2016-09-18 16:29   좋아요 0 | URL

제가 항상 그림 이미지를 위키아트에서 가져 옵니다. 위키아트로 검색하면 웹사이트가 나와요. 거기에 화가 영어 이름으로 검색하면 전부는 아니지만 화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유명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그림까지 나옵니다. 여기에 데 키리코의 작품들이 많이 있어요.

허연 머리에 피 나는 그림이 뭔지 알겠습니다. 데 키리코의 그림에 등장한 바나나는 ‘야생’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해석한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데 키리코의 그림 이미지를 고르느라 나름 고민했습니다. 그림 이미지를 많이 소개하고 싶은데, 이미지를 많이 올리면 글의 길이가 길어져요. 초현실주의 회화에 관한 글이 생소한데다가 분량까지 많게 느껴지면 정독하기가 힘들죠. 제 글을 정독하는 분들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제 글을 보는 분들을 위해서 길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 때문에 데 키리코 후반기 그림 이미지를 넣지 못했어요. 제 글의 부족한 점을 아주 잘 짚어주셨습니다. ^^

나비종 2016-09-18 20:26   좋아요 0 | URL
위키아트. 저도 나중에 검색해봐야겠습니다.^^
아. .바나나의 의미가 그런 것이었군요.
^^; 부족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cyrus님의 글은 공들여서 쓴 한 편의 논문같아서요. 여러 번 곱씹어서 읽게 됩니다. 댓글도 리뷰처럼 쓰게 되구요. 마음이 가라앉을 때 읽으면 뭔가 정갈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게 제게는 묘하게 위안이 된다는^^;

cyrus 2016-09-20 17:07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으로 긴 글을 정독하면 안 됩니다. 시력 나빠져요. ㅎㅎㅎ
 

 

 

 

 

 

 

 

 

 

 

 

 

 

 

 

 

 

 

 

초현실주의는 일상세계로부터 단절을 추구하는 사조다. 회화에서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로 화면을 꾸미는 장르를 말한다. 또한, 대상을 과도할 정도로 자세하게 그리되 그것을 약간씩 비틀어 생소한 느낌을 주어 혼돈을 체계화하기도 한다. 따라서 화가들에게 강조되는 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보다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뛰어난 상상력이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꿈과 욕망,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 등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는 세계를 상상력을 통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변용했다.

 

‘초현실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이 기욤 아폴리네르였다. 그는 생전에 시인으로만이 아니라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절친한 친구에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의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초현실주의 운동이 시작되었고,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막스 에른스트 등이 초현실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끈 브르통은 일상의 상식에 매몰돼가는 인간을 해방하고 꿈과 잠재의식이 엮어내는 초현실의 새로운 세계를 제공하려 했다. 그러나 그런 세계로 인간을 안내하는 길잡이인 초현실주의 회화의 기법을 마련한 것은 막스 에른스트였다.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콜라주(collage)를 보고 브르통은 이것이야말로 ‘초현실주의의 시금석’이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에른스트는 다양한 초현실주의 기법을 선보였는데, 프로타주(Frottage)는 20세기를 거쳐 오늘날 작가들에게 유용한 실험적인 기법이다. 누구나 어릴 적에 백 원짜리 동전 위에 종이를 놓고 연필로 검게 문질러 그려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게 프로타주다. 잎, 천 따위의 면이 올록볼록한 것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지르면 피사물의 무늬가 베껴지는데, 그때의 효과를 조형상에 응용한 것이다. 프로타주의 어원은 '문지르다'는 뜻의 프랑스 단어 '프로테'(frotter)에서 파생됐으며, 화가의 의식이 작용하지 않은 차원에서 우연히 나타나는 예기치 않은 효과를 노린다. 에른스트가 프로타주 기법을 발견한 것도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비가 내리던 그날 저녁, 나는 프랑스의 해변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떤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마룻바닥에 깊게 파인 홈들을 흥분한 가운데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명상과 환각 능력을 지속시키기 위해 나는 마루 위에 종이 몇 장을 아무렇게나 놓고 연필을 문지르기 시작해 몇 장의 스케치를 떴다.

 

(막스 에른스트, 베르너 슈피스의 책 《막스 에른스트 : 프로타주 기법과 예술세계》 14쪽)

 

 

 

 

그라타주(Grattage) 또한 에른스트가 자주 사용한 기법이다. 이것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그림 제작 방식이다. 종이에 크레파스로 여러 가지 색을 칠한 뒤에, 까만색을 덧칠해 날카로운 물건으로 원하는 형상이 나오도록 긁어낸다. 에른스트는 캔버스에 물감을 여러 겹 바른 후 표면을 긁어서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얻으려고 했다.

 

 

 

 

 

이성과 상식을 거부하는 초현실주의 미술은 192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서구 미술 흐름의 중추적인 사조였다. 그러나 국내 화단에서 초현실주의는 상대적으로 별로 활발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초현실주의 계열의 작품 활동을 하는 화가들은 있었지만, 이들이 하나의 유파를 형성할 정도는 되지 못했다. 초현실주의 그림의 난해성은 관객의 접근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에른스트를 비롯한 초현실주의 그림들은 어둡고 불길한 징후를 간직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음산하고 불길한 분위기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에른스트의 『세 명의 목격자 앞에서 아기 예수를 때리는 성모』는 기존의 성모자 상을 뒤집는 도발적인 그림이다. 성모는 벌거벗은 아기 예수의 엉덩이가 벌겋게 되도록 손바닥으로 때린다. 힘이 세게 들어간 성모의 엉덩이 스매싱 때문에 아기 예수의 광륜(halo)이 바닥에 떨어졌다. 성모 뒤에 에른스트, 브르통, 엘뤼아르 세 사람은 무심한 눈빛으로 폭력의 광경을 바라본다. 에른스트는 도발적으로 종교의 금기를 우롱한다. 그러면서 종교적 금기 속에 감추어진 폭력성을 보여준다. 성모가 아기 예수를 체벌하는 행위는 언뜻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비현실적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은 엄연하게 존재하는 실존의 인간이기도 하고 또 일상에서 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상 폭력성을 두려워한다. 살풍경한 현실, 이해 불가능한 인물들의 태도를 보면서 관객은 어쩔 수 없이 내면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비 온 뒤의 유럽 II』는 1차 대전이 휩쓸어 황폐해진 유럽을 초현실주의적인 연출로 극대화한 작품이다. 에른스트는 군 복무 중 두 번이나 부상을 당해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유럽을 목격하면서 ‘반 문명, 반이성’을 표방하는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하게 된 사정은 이해되고 남음 직하다. 에른스트에게 전쟁은 인간 내면의 증오와 파괴성에서 시작된 극단적인 상황이었다. 그런 광란의 현실을 그리면서 인간 무의식의 지층 속에 새겨진 폭력성을 더듬었다.

 

에른스트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주게 될 때 화가의 생명은 끝”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객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에른스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굳이 초현실주의 그림 속에 정답에 가까운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상한 불길함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만 즐기면 된다. 이 불길한 환영을 보라, 그리고 긴장하라. 초현실주의 그림이 관객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순간, 그림의 생명은 끝이다.

 

 

 

 

※ 그림 이미지는 위키아트(http://www.wikiart.org/)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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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6-09-09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문예사조에 밝으시네요 ^^!: 덕분에 해설이 곁든 명화 감상 합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6-09-09 17:00   좋아요 2 | URL
그림 해설은 책에 있는 내용을 기본적으로 참고하고요, 그림에 대한 제 생각을 덧붙입니다. 책 내용을 요약하는 수준입니다. ^^;;

yureka01 2016-09-09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에서도 현실의 은유..이런게 초현실그림이 아닐까 싶어요. 너무 직설적인 경우 정치적인 박해가 염려될때 써먹는 고단수의 기법같은거..^^.

cyrus 2016-09-09 17:44   좋아요 1 | URL
초현실주의자 대부분은 좌파였어요. 제가 좋아하는 마그리트는 벨기에 공산당원이었습니다. 달리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소재로 초현실적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

yureka01 2016-09-09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주장을 직설적인 회화로 표현하기보다는 역시 예술은 한번 비틀어야 제맛인가 봐요..

cyrus 2016-09-09 17:5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화가의 메시지를 숨긴 그림을 좋아해요. 이런 그림은 관객의 호기심을 유도해요. 그리고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