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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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세상을 태어나 그 삶을 다하기까지의 이야기가 한 편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제목처럼 이 책은 가만가만한데, 책날개에 실린 저자소개조차도 가만하다. 이 책의 저자인 '최윤필'은 저자소개에서 자신을 '요컨대 나는 국적·지역·성·젠더·학력 차별의 양지에 살았다' 라고 표현한다. 양지에 살았다는 그가 뭔가 특별한 이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이성애자 사내아이, 서울대 사회학과,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게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만으로도 이 사회에서는 양지에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세상을 보게 될 시야에도 관여한다. 너네가 기득권이다, 라고 사회적 약자가 아무리 부르짖어도, '내가 왜?' 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부인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렇듯,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더 특별한' 무얼 가진 게 아니면서도, 그는 자신의 양지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가 이토록 누군가의 부고를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이들 중에는 내가 기존에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게다가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노라면, 사실 그간 내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아예 인식조차 해보지 못했던 면들에 대해서 부르짖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재소자의 인권도, 국가의 국민에 대한 감시도, 자살 조력자에 대한 것도, 평소에 내가 인식하고 사는 부분들이 아니니까. 이슈가 되면 그 때 잠깐 반짝할 뿐, 나는 그것들로부터 아예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사람들, 한 평생을, 식상한 표현 그대로 '뜨겁게' 살다간 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의 축을, 사회적 약자에 맞춰놓고 움직였다. 성폭행 피해자들을 돕고, 여성의 낙태권에 대해 주장하고, 학살 당하는 인류의 편에 서고, 전쟁을 반대한다. 경찰의 비리를 고발하고, 모성에 대해 연구해 발표하고, 여성 할례 금지 운동을 한다. 어떻게 하면 힘들고 아픈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계에서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살아가던 이들에 대한 가만한 부고가 여기, 이 책에 실려있다. 알지도 못했던 존재에 대한 웅장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고작 4-5장 정도에 압축되어 표현되어 있는데, 짧다면 짧다고 볼 수도 있을 그들의 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저자의 가만한 마음 위에 얹혀져, 아름답고 또한 거룩하다. 인상적인 건,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이 책에 실린 모든 이들, 그들중에 여성이란 성별을 가진 이들은, 모두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다. 나 역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시작하면서, 저절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심까지 갖게 되었는데, 페미니스트라는 건, 소수자의 삶이 소멸되지 않게 그들의 삶 역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결한 것임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름다운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더더욱 페미니스트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그저 부고만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탄생부터 삶의 전반적인 과정까지, 그들이 살아생전 했던 말들과 행동들까지 고스란히 알려주는데, 이 모든 걸 어떻게 다 알 수 있었을까, 궁금했던 바, 미주에 그 답이 나와있었다. 그는 각 인물에 대한 책과 기사들을 많이 참고했다. 한 사람의 생을 어떻게 다른 한 사람이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관련 기사와 책을 살피며 그 사람의 삶을 곰곰 생각했을 저자를 떠올려보며 그 노력에 감사하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이 이렇게나 노력을 했다.



좋은 글을 만나면 언제나 나 역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더 좋은 글에 대해 고민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이라니, 나도 더 아름다운, 더 좋은, 더 따뜻한 글을 쓰고 싶어지는 거다. 그러나 이 책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그가 글을 아름답게 쓰기 이전에, 그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선 자체가 깊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닫고는, 글을 잘 쓰기 이전에 세상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먼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곧 더 좋은 사람이 되야 한다는 의미일테다.



아름다운 글이다.

책장을 덮으면서, 이들중 누군가의 삶에 대해 한 편쯤은, 가만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읽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 여기, 이런 삶이 있었어, 들어봐, 하고.






바버라 아몬드Barbara Almond는 정신분석·상담 의사로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라는 책을 썼다. 책에서 그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희생을 뭉뚱그려 ‘모성motherhood‘은 무조건 완벽하고 최고여야 한다는 아득한 기준을 부정했다. 끊임없이 ‘모범 어머니‘를 찾아 전시하는 사회, 모든 어머니가 그런 모범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고 채찍질하는 사회를 비판했다. 책의 제목처럼, 그녀는 모성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나란히 있고 모든 어머니는 자식을 진심으로 미워할 때도 있다고 썼다. 당신만 아이를 미워하는 게 아니고, 그게 잘못된 일도 아니며 한결같이 감싸주는 게 아이에게 좋은 일도 아니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라고 썼다. (바버라 아몬드, p.51)

책을 낼 무렵 아몬드에게는 손주들이 있었다. 2011년 <보스톤글로브> 인터뷰에서 할머니가 되니까 ‘양가감정‘이 덜하냐는 질문에 그는 "조부모 노릇Grandparenthood은 부모 노릇과 달리 순수한 기쁨이다. (…) 하루이틀 뒤 조금도 미안한 마음 없이 짐 싸서 집에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바버라 아몬드, p.59)

콰스니 부부의 탄생으로 인디애나 주의 동성혼 합법화 투쟁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14년 6월에 영 판사는 동성혼 불허는 연방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며 100여 건의 동성혼 신청 소송 사례를 이거에 주정부로 보내 즉각 혼인확인서를 발급하도록 판결한다. 판결에서 영 판사는 "조만간 미국 시민은 원고들과 같은 커플의 결혼을 흔히 보게 될 것이며, 그걸 ‘동성혼‘이 아니라 그냥 ‘결혼‘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젠더와 성적 지향을 빼면 그들은 거르의 여느 부부와 조금도 다를 바 없으며, 다르지 않은 그들을 다르지 않게 대하라는 게 미합중국 헌법의 요구다"라고 밝혔다. (니키 콰스니,p.74-75)

법과 제도의 진전이 시민 의식과 관습 속에 스미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일상의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법 제도와 별개로 천부의 권리를 시민들의 감각 속에 끊임없이 노출하는 게 중요하다. 인종 분리의 담장을 넘어 흑인이 진입하고, 동성애자 커플이 손을 맞잡고 거리와 광장을 활보하고, 남성이 전유한 노동과 유희의 경계를 허무는 일. 끊임없이 자극하고 부딪쳐 더디더라도 점차 자연스러운 풍경의 일부가 되는 일은 집단이 거대한 대오를 이뤄서 힘과 함성으로 법 제도에 맞서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투쟁의 일부다. (델 윌리엄스, p.123-124)

한국은 군비 지출 세계 10위에 무기 수입 세계 9위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복지비는 OECD 조사 대상 28개국 중 최하위다. 2015년 한국 국방 예산은 전년에 비해 4.9퍼센트 증가한 37조4560억 원으로 북한 실질 GDP의 두 배가 넘는다. (루스 레거 시버드, p.320)

시버드가 첫 보고서를 낸 이래로 세게는, 적어도 거대 전쟁의 위협으로부터는 비교적 멀찍이 서 있게 됏다. 그 평화는 시버드의 뜻처럼 군비 감축을 통해서가 아니라 파국적인 군사력 축적으로 이룩된 평화다. 하지만 시버드는 "군사력으로 안전을 도모하려는 관료 사회가 지속되는 한 이 지구는 결코 안전해질 수 없다. (…) 우리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 우리를 죽일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적은 원론적으로 옳지만 냉정히 말해서 그의 ‘우리‘가 인류라는 이름의 우리는 아니다. 군사 강국의 정치와 군수산업은 지금도 이 지구의 어딘가에서 전쟁무기 수요를 창출하고 있고, 한반도도 그중 한 곳이다. ‘세계 군축 행동의 날‘ 슬로건("전쟁 대신 복지를")을 한국에서는 "우리 세금을 무기 대신 복지에!"라고 외친다. (루스 레거 시버드, p.321)

영국이 낙태를 합법화한 건 1967년이었다. 어디나 마찬가지였겠지만, 그때까지 영국 산부인과 환자의 태반이 불법 낙태 수술 후유증 환자였고, 그들 대부분은 미혼 여성이었다. 리비가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은 것도, 아이를 키우느라 병원을 그만두고 셰필드 지역 보건의GP가 된 것도, 낙태를 불법화환 법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1960년대 초 기혼 여성 가족계획과 미혼·독신 여성 피임을 돕는 ‘408클리닉‘이라는 여성보건센터를 개설했다. 여성(자신)의 삶에 대한 법의 부당한 간섭을 어떻게든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
그의 클리닉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여성들이 아니라 윤리 경찰을 자임한 성직자와 지역 유지들이었다. 그들은 설교와 신문 칼럼등을 통해 클리닉의 부도덕성을 성토했다. 리비는 "그건 우리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최고의 홍보였다. (…) 여성들이 몰려들어 클리닉이 있던 블록을 에워쌀 정도였다." (엘리자베스 리비 윌슨, p.335)

리비는 1990년 은퇴 후 가족계획 국제 NGO인 ‘마리스토프스인터내셔널 MSI‘을 도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1년간 봉사 활동을 했다. 2009년 인터뷰에서 그는 "전 세계 어디나 여성은 다 똑같다. 내가 만난 시에라리온 여성들은 글래스고에서 만난 수많은 가난한 여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은 남편을 두려워하고, 섹스를 거부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또 아이를 낳곤 했다"라고 말했다. 법은 법이고, 가부장 권력은 또 가부장 권력이라는 얘기였다. (엘리자베스 리비 윌슨,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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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강의에 좀 늦었다. 내 퇴근시간이 늦었던 까닭인데, 늦게 들어간만큼 좋은 자리에 앉는게 쉽지 않아 맨 뒷자리 의자에 앉았더니 강의를 듣는 내내 종아리가 추웠다. 어제는 강의실이 전반적으로 추웠어..

어제의 주제는 정신분석학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태 들은 세 번의 강의중 가장 어려웠다. 내가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용어들이 낯설었고, 그래서 어렵게 느껴진 게 아닌가 싶었다. 프로이트, 꿈, 오이디푸스... 같은 것들만 알고 있었는데, 어제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설명하게 되는 기본 바탕에 아빠, 엄마, '아들'이 삼각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뭔가 엄청 궁금해졌다. 아, 프로이트가 괜히 욕을 먹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막 더 알고 싶어지는거다. 정신분석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이 부르주아 여자들이었다는 것, 상담을 받은 후에 그녀들 모두가 하나같이 다들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것들을 어제 강의에서 들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 라고 하나로 규정되어진 것은 아닌만큼, 그 당시에도 다양한 관점으로 존재했는데,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정신분석학은 여성을 배제하니 페미니즘에 도움될 것이 없다고 했고,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정신분석학으로부터 어떤 것들은 우리가 취해야 한다 라고 했다고 한다. 이걸 파고 들어가면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신기한 것이, 알면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건가... (응?)

모르는 내가 답답하고, 그래서 더 알고 싶고..그러다보니 막 이 책 저 책 검색해서 죄다 알고 싶은데, 내가 그 책들을 죄다 읽고 공부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여건도 허락하지 않잖아. 하루 24시간을 꼬박 공부에 열중해야 할텐데, 나는 낮에는 일을 해야 하고 밤에는 술을 마셔야 한다.. (응?)

알면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되는게 좋으면서 싫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건, 내가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좋은데, 그래서 '알고싶다'는 욕망이 강해질수록 자꾸 책을 사게 되고 .. 그래서 자꾸만 집에 책이 쌓여가는 거다. 하아- 이것도 알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고...

주말에 책장 정리를 하면서 페미니즘 관련도서로 마련해둔 책장 한 칸이 모자라 아예 넓은 쪽으로 옮겨두었는데, 그러다보니 심리학이며 경제학, 정치, 역사에 관한 책들도 막 있어... 아니, 저것들 다 궁금해서 읽고 싶어서 산건데...언제 다 읽나. 아니, 읽는다고 또 그 지식이 다 내가 습득 가능한 것인가... 나는 기억력도 암기력도 좋지 않은데...



24시간을 투자해도 알고 싶은 걸 다 알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 이럴 때 억만장자 친구가 있어서 나에게 투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너의 공부를 지원할테니, 회사 그만 두고 너는 계속 책읽고 공부해!'라고 한다면...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평생친구 해줄텐데... 애인 해달라면 애인 해줄 수도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가만 떠올려본다. 이 얼굴 저 얼굴... 다 돈이 없다....억만장자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아아, 나는 역시 낮에 돈 벌고 일주일에 하루 짬을 내어 공부해야 하는구나.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여...



그래도 또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어제 강사쌤이 쓰신 책이란다.

















알고 싶은 건 많은데, 내가 이렇게나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되니 초조하다...초조해......



어제 강의가 끝나고 함께 들은 친구랑 매운소갈비찜을 먹으면서(응?), 2월달에도 계속 듣고 싶은데 역시 힘들어..어쩌지...우리 계속 생각해보자..하는 이야기들을 했다. 지난 주에 했던 것과 같은 고민. 와서 들으니까 좋다, 오늘 들은 건 용어들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걸 듣는 게 듣지 않는 것보다 나았다, 그러니까 계속 공부하러 다니자, 그렇지만 낑겨서 오는 거 너무 힘들다, 끝나고 집에 가면 너무 피곤하다, 그러니까 그만 들을까, 막 이러면서 했던 고민 또하고 또하고..


그러니까 어제도 ㅠㅠ 퇴근시간이니까 ㅠㅠ 혜화에서 내리는데 ㅠㅠ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출입문 열리고 내리기직전에 진짜 패대기쳐진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고 공부하러 갔는데 추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집에 돌아가니 열한시가 넘어 있었는데, 아아, 나는 도대체 뭘 얻자고 이러고 있는걸까.....왜 사서 고생인걸까......왜지. 왤까...........






새해가 되어 조카1은 여덟살이 되었고 조카2는 다섯살이 되었다. 여덟살 조카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고 다섯살 조카는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긴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섯살 조카의 알림장을 매일 어린이집 선생님과 여동생이 메신저삼아 쓰고 있다는데, 어제는 여덟살 조카가 자기가 쓰겠다 했단다. 동생 알림장 자기가 쓰고 싶다고. 그래서 이렇게 썼다.





해석은 읽는 자의 몫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귀여워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1학년인 남동생 교실에 찾아가 엄마 대신 청소해줬던 기억도 새록새록. 그때 당시에 학부모가 찾아와서 청소해줘야 했는데, 울엄마가 돈벌러 가야 한다며 나에게 가라 한거다. 하아- 그래서 다 엄마인데 나 혼자 누나로 남동생 학급에 찾아갔고, 나는 남동생의 담임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로부터 겁나 착한 누나라는 칭찬을 한 바가지 들으며 청소를.. 했다... 그 칭찬은 하나도 기분 좋지 않았어. 나는 거기 있고 싶지 않았다.... 뭔가 부끄럽고 그랬어...어쩐지 숨고 싶었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어.....아아..... 


그때 나한테 왜그랬냐고, 난 그거 못잊는다고, 어느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같이 있을 때 얘기했더니, 엄마도 남동생도 기억을 전혀 못한다......


이 폭풍슬픔.....................



아 갑자기 너무 딴길로 샜네.



다섯살 조카는 누나가 써준 알림장을 받아들고 신나했단다. 누나가 써줘서 좋다고. 다섯살 조카는 자기 누나 따라쟁이라서, 누나가 하는대로 하고 누나만 졸졸 쫓아다닌다. 누나바라기, 누나 따라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나는 여덟살 조카가 쓴 저 알림장, 해석 다 했다. 마지막에 약간 틀려서 여동생이 고쳐줬지만. 그러니까 나는 '똥 두덩이' 라고 해석했는데, 여동생이 알려주길, '똥 두 번' 이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하고 옆에 하트 그려놓은 거 진짜 너무 예쁘다. 이모 닮았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마전에 나도 망고같은 남자한테 문자메세지 보낼 때, 아이폰에 있는 풍선 띄우면서 이벤트 해줬는데. 풍선 이벤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예쁜 조카, 이모 닮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문득 생각한건데, 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두가지는,


1. 다이어트

2. 책 안사기


인것 같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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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7-01-19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사가 임옥희씨에요? 이책 서문만 읽고 벌써 좌절중이에요.
나도 서울살고 싶다. 강의듣고 싶다아아아아~

조카1 귀여워서 어째요♥♥♥

다락방 2017-01-19 13:38   좋아요 0 | URL
서문도 너무나 어려운가요? 정신분석학 1도 몰라서 어제 기초인데도 어렵더라고요. ㅠㅠ
다음달부터는 강의때 만나겠네요? ㅎㅎ

비연 2017-01-19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 책 안사기... 저도 백퍼 동감.
저 지금 또 책 사려고 기웃 중이었는데... Orz.

다락방 2017-01-19 13:39   좋아요 0 | URL
전 어제 이미 질렀습니다. 지금 제게로 오고 있습니다. 어서와라!! 하는 심정이에요. 책 얼른 만져보고 싶어요. ㅎㅎ

블랙겟타 2017-01-1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을 다락방님 글로 맞이 했어요. ㅎㅎ
조카 일기를 읽으면서 ‘뜽가을 두던이나 샀어요‘ 부분이 뭐지? 했는데 저도 틀렸네요. 이젠 동심을 잃어버린듯요. ㅜㅜ

위에 비연님 말씀처럼 저도 최근에 안되는 두가지가 다이어트, 책 안사기이네요. ㅜㅜ
근데 어제 5만원을 질러서 내일 또 책이 올예정이라... 하하하.;;
이번 생은 틀렸어요. ㅜㅜ

다락방 2017-01-19 13:39   좋아요 1 | URL
ㅎㅎ 오늘 아침을 제 글로 맞이했는데 제 조카의 알림장에 똥.. 얘기 나오네요? ㅋㅋㅋㅋ 어떻게, 좋은 아침이셨습니까? ㅎㅎ

다이어트 책 안사기, 이번 생은 정말 망했나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17-01-1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너무 사랑스럽네요...알림장.

다락방 2017-01-19 13:40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요. 주말에 만날건데 얼른 보고싶어요! >.<

건조기후 2017-01-19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책, 소개만 읽어 봐도 쉽지 않네요. 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일단 킵 ;

다락방님이 힘들건 말건 하하 ;; 저는 다락방님의 공부를 열렬히 응원합니다. 공부하는 모습만으로도 그냥 보기 좋고요, 저같은 게으름쟁이한테 자극도 되고요. 화이팅이에요 다락방님! :)

다락방 2017-01-19 13:41   좋아요 0 | URL
의욕이 있어도 뭐랄까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인지라 저 책은 따라가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읽고싶다고 생각만 해두고 사는 건 좀 기다려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진짜 한가득인데 ㅠㅠ 응원 고맙습니다, 건조기후님! 열심히 해볼게요!

단발머리 2017-01-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고 저녁에 공부하는 것 정말 쉬운일이 아니지요~
대단하세요, 다락방님^^

할까말까 고민 속에 주경야독 30을 맞게 되고 드디어 이런 글을 보게 됩니다.

결정했다! 여성학을 정식으로 배워보기로...
나는 대학원에 등록했다.

ㅎㅎㅎㅎ 다락방님, 화이팅!!!

다락방 2017-01-19 13:43   좋아요 0 | URL
일주일에 한 번인데도 어렵네요, 단발머리님. 쉽지 않아요 ㅠㅠ 갈 때마다 다음엔 어쩌지..고민입니다. 크-

단발머리님의 응원속에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는 대학원도 가고 페미니즘 책도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ㅎㅎ
화이팅, 잘 받겠습니다. 고마워요! ♡

mira 2017-01-19 1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이어트 책안사기 (사놓은 책 다읽고) 참어려운 두가지이네요

다락방 2017-01-19 13:43   좋아요 1 | URL
여기에 오시는 분들이 다 공감해주셔서 저의 마음은 편안합니다. 저걸 저 혼자 어려워하는 게 아닌거죠? ㅜㅜ

푸른희망 2017-01-19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알림장 다 읽었어요~~ㅋ
애둘 키운 보람이 이런곳에서 나타나네요
전 다이어트는 평생 해본적없는 녀자고 (내살들을 너무 사랑해서)책안사기는 매년 신년결심이지만 15일쯤이면 무너집니다
주경야독 응원합니다~~~

다락방 2017-01-19 13:44   좋아요 1 | URL
앗. 다 읽으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똥 두 번을 두 덩이라고 해서 틀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항상 ‘내일부터‘ 다이어트의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ㅋㅋㅋ 15일이 한계인가요, 저는 잘 참다가 18일인 어제 질렀어요. 지금 어제 지른 책들이 제게로 오고 있습니다. 아하하하하.

응원 감사드려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불끈!!

시이소오 2017-01-19 19: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림장 다 해석
똥 두번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저도 ‘너는 계속 책 읽고 공부해!‘ 라고 말할 후견인을 고대합니다 ㅋ

다락방 2017-01-24 14:25   좋아요 1 | URL
똥 두 번은 왜 알림장에 썼을까요? 똥 두덩이 보다는 그 편이 낫겠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ㅋㅋ

그렇게혜윰 2017-01-19 2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졸지에 동생은 똥고백을 ㅋㅋㅋ

다락방 2017-01-24 14:2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똥고백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트윗에서 정미경 소설가의 부고를 확인했다. 그의 암투병 생활을 알지 못했던 나는 갑작스런 소식에 놀랐고, 집에 돌아가는 내내 마음이 안좋았다. 언젠가 그의 소설 《장밋빛 인생》을 읽고는 너무 좋아서, 그 책 한 권을 달달 외우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출간된 그의 소설을 다 읽어야지 생각하고 신간 나올 때마다 부지런히 읽었는데, 다른 작가들과 함께 실린 작품집이 아닌 단행본은 내가 다 읽었더라. 그러고보니 《프랑스식 세탁소》였구나. 그 뒤로 단행본이 나오지 않았어. 몇 년간 가장 좋아하는 국내 작가를 물으면, 나는 거침없이 정미경의 이름을 댔더랬다.


페이퍼를 찾아보니 나는 2006년에 장밋빛 인생은 읽은 걸로 되어 있다.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아프리카의 별》을 읽고, 김을 먹는 장면에서 내가 한 남자를 그리워했던 기억까지도 주르르, 쏟아진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언젠가의 여름길,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를 걸으면서 읽기도 했었다. 너무 좋아서.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참 선물도 많이 했었는데..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래, 소용없는 게 있다. 젖어버린 신발처럼, 범람하는 제방처럼, 누군가에게로 흘러가는 마음의 강물은 도저한 양츠강의 범람처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장밋빛 인생, p.48)



몇 시에요?」
「여덟시」
「이제 돌아가요」
「지금은 상인의 시간, 장사치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죠」
민의 얼굴은 이제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상인의 시간을 견디며 말없이 물풀이 스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윈드 브레이크 하나로 견디기에는 분명히 싸늘한 날씨였는데 민은 춥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재킷을 벗어주자 민은 고개를 저었다.
「옷을 줄 때가 아니라 돌아갈 시간이에요. 벌써 여덟시 삼십분이네요」
어둠에 눈이 익은 민이 몸을 기울여 내 손목시계를 읽는다.
「여덟시 삼십분이라. 그건 수학자의 시간이죠」 민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
「언제 가려구요?」
「시인의 시간에요」
「그건 언젠가요?」
「알 수 없는 일이죠. 난 지금 이 순간 시인이 됐으니까」
 (장밋빛 인생, p.50-51)




"당신이 날 사랑하게 되는데 풀배팅하겠어요."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p.247)




"5월이 아름다운 거 같아요? 눈으로밖엔 풍경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5월을 아름답다 하죠. 전 6월을 좋아해요. 6월은, 거의 폭력적인 생기를 뿜어내잖아요. 무심히 흘러가던 강물에도 관능이 금가루처럼 녹아 흐르고, 그 물을 탐욕스럽게 빨아마신 식물까지 숨결이 가빠지는 게 6월이에요. 사랑 없는 섹스를 한다면 6월이 적당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를 꼭 죽여야 한다면 6월의 저녁에 그 일을 해치워버리세요. 6월은, 어떤 죄악도 용서받을 수 있는 계절이에요." (내 아들의 연인, p.180-181)



나는 버림받았다. 그 생각이 몸 안에 꽉 차올라 터져버릴 것 같은  순간이 오면, 김을 먹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김을 한 조각 입에 넣으면 찝찔한 맛이 혀에 감기면서 사정없이 나부끼던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바닥이 날 때까지 자꾸만 집어먹게 된다. 나는 버림받았다. 나는 집이 없다. 이 공간은 집이 아니다. 집이란, 지켜야 할 어떤 것들이 모여 있는 곳. 여긴 지켜야 할 게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 그저 김 하나, 나 하나. 김 둘, 나 둘. (아프리카의 별, p.50-51) 



"그럼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어?"
"보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알 수 있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막 뜨기 전, 맨 처음 떠오르는 얼굴이라면 그를 사랑하는 거란다. 사랑이 내 전부를 가득 채워버린 거지." 
(아프리카의 별, p.201) 





"밤에 텐트 바깥으로 나가실 땐, 한 가지만 잊지 않으시면 됩니다. 꼭 광주리를 들고 나가세요. 크고 작은, 푸르고 흰 별들이 밤새 무더기무더기 쏟아져내릴 겁니다. 담고 싶은 만큼 마음껏 담아가세요. 많고도 아름다운 별을 오늘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메르주가의 밤은 소란스러워요. 이곳의 별은 어깨까지 내려와 떠들어댑니다." (아프리카의 별,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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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1-1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미경 작가가 돌아가셨군요... 안 그래도 우울한 심경에 스산함까지 더해지는 아침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아무 2017-01-1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배수아 작가가 페북에 한 작가의 부고에 대한 글을 올려서 누구일까 생각했는데 그게 정미경 작가였군요.. 전 <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만 읽었었는데, 이번 달에 유독 부고 소식을 많이 접하네요ㅠ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장소] 2017-01-1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작품으로 그녀를 기억하겠네요 . 이번 스파링 책 뒤에 심사위원 심사평을 한참 들여다 봤어요 . 어쩌면 공식적인 마지막 말이었을 ...그 말들 ..

푸른희망 2017-01-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멍복을 빕니다.
나의 프랑스식 세탁소를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습니다
 

이 책, 포르투갈에 대한 찬양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특별할 것도 없었던 나의 포르투갈 여행을 떠올리게 하며 하염없이 포르투갈 앓이를 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부터 포르투갈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이번에 간다면 지난번처럼 짧은 일정으로 가는 게 아니라,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육개월쯤 장기체류를 해보고 싶어진다. 오 년이어도 좋고. 그러려면 언어를 배워야 할텐데, 그러면 배우면 되지, 그렇지만 공부... 힘들잖아, 하고 혼자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민을 하면서, 가자, 포르투갈로 가자, 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 읽고 있는데, 이 책처럼 가만한 책들을 여러권 싸들고서는 슝- 포르투갈로 날아가고 싶다. 그 누구도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낯선 곳 그 어디에 가서도 누구든 사귈 수 있으니, 혼자서 슝- 날아가서 느지막히 눈을 떠 책을 읽다가 배가 고프면 어슬렁어슬렁 나가서,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마다 와인을 옆에 두고 식사를 하고 싶다. 골목골목을 산책하고, 어제보다 조금 늘은 포르투갈어로 낯익어진 이들에게 인사하면서, 그렇게 머물고 싶다. 그러면서 친구에게 엽서를 띄우고 싶다.



"나 여기에 좀 더 머무르려 해."




기초를 다지는 일은 중요하다. 이미 여러권의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읽어온 사람으로서 이 책을 건너 뛰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긴 하지만, 기초가 튼튼해야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 이 책을 주문했다. 새해 첫 주문이다. 


요즘 페미니즘 도서를 살 때는 나의 일곱살 조카를 생각하게 된다. 이미 페미니즘이 장착되어 있는 이 아이가 언젠가 본격적으로 공부할 날을 위해서, 아니면 일상속에서 느끼거나 의문을 가졌을 때 언제나 딱- 들이밀기 위해서, 쉬운 페미니즘 도서를 책장에 꽂아두고 싶어진다. 칠 살 조카는 책 읽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지난 주말에는 '난 책 싫어'라고 얘기하더라. 난 좀 슬펐어... ㅠㅠ


그렇지만 이번에도 내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들고는, 이모 이건 무슨 책이야? 심드렁하게 묻는다. 읽어달라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물으면 간단하게라도 답해줘야 하는데, 이번에 우연히 뽑아들은 책은 《양성 평등 이야기》였고, 나는 아직 사두고 읽지 않긴 했지만, 조카에게 '남자와 여자 모두 평등하다는 이야기야' 라고 말하면서, 아아, 읽지 않아도 이렇게 꼽아두자, 이것만으로 충분히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라고 생각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는 나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이 책이 필요할지도 모를 칠 살 조카를 위해서 구매했다.




내가 살면서 억만장자랑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고 알고 지낼 기회도 없었다. 가까운 사람의 아는 사람으로라도 억만장자가 없다. 억만장자가 노는 세계는 아마도 내가 노는 세계와 달라서일 것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는데, 그래서 내게는 억만장자 친구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억만장자랑 결혼이라고? 어림도 없다. 나는 여태 늘 가난한 남자만 만나왔다. 내가 앞으로 다른 연애를 한다고 해도 나보다 월등하게 돈을 많이 벌 남자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남자가 와도 이제는 싫다. 나는,


연애를 끊었다. 


굿바이, 연애...


랑은 아무 상관없는 책이고, 일전에 페이퍼 한 번 쓴 적 있지만, 이 책 너무 읽고 싶어서, 내가 오늘 새해 첫 주문한 책들 중에, 배송되어 오면 가장 먼저 읽을 책이다,


라고는 하지만 지금 읽고 있는 책을 언제 끝낼지 모르겠다. -0-

그리고 사실 나는 책 주문할 때마다 '오기만 해봐라 바로 읽어주겠다!'의 마음이긴 했다. 그렇게 차곡차곡 읽지 않은 채 쌓이고 있지..... =3=3=3=3







나 이거 내용 진짜 1도 모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읽어야 재미있는 것 같아. 그래서 이번에 영화로도 나왔다길래, 영화보기 전에 읽어보자라고 생각해서 주문했다. 영화는 볼지 안볼지 모르지만, 어쨌든 읽어주겠어! 어떤 내용일지 기대기대. 새해 첫 주문에 들어간 소설 되시겠다.









위에 언급한 책들 말고도 두 권 더 샀는데, 5만원이상 구매해서 2천점 마일리지는 받았지만, 굿즈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아, 페미니스트 다이어리 선택가능하던데, 나 다이어리 돈 주고 산 걸 쓰고 있고, 또 있어봤자 쓸 일도 없을 것 같아 선택 안했다........선택할 걸 그랬나? 흐음... 



오늘 산 책들 가지고, 그리고 내 방 책장 앞에 서서 몇 권을 꺼내들고 캐리어에 넣어서는 슝- 포르투갈로 날아가고 싶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을 수 없다면, 나는 포르투갈에 머물기로 했다, 같은 걸 쓸 순 있지 않을까.

나는 언젠가 외국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을 열다섯살 때부터 갖고 있었고, 사주 봤을 때도 내가 그리 될거라 말했지만, 막연히 그게 미국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미국에서 살고 싶었고. 그런데 요 며칠간 미국에 딱 박아 두었던 축이 포르투갈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에는 포르투갈에 장기간 체류한다면, 영주권까지 얻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 후엔 어떤 삶이 펼쳐질까...를 잠깐 생각해봤다.



나는 혼자서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틀 것이고, 나름의 패턴을 만들어 갈 것이다. 아주 자주 와인을 마실 것이고,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도 많아질 것이다. 텃밭..은 잘 모르겠다. 내가 가꿀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쯤은 자신있다! 어쩌면 모임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리스본에서 한국어로 페미니즘 도서 읽는 모임 같은 거 하면, 어쩌면 세명에서 네명쯤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모임이나 친근한 사람들의 집단을 만들어서 크리스마스 같은 때에는 소중한 이들 불러서 파티를 하고 싶다.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두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나누는 그런 파티. 와인이 모자라는 일은 없게 하겠다. 고기가 모자라는 일도 없게 하겠다.


가끔은 고국의 친구들을 내가 있는 곳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이유로 여기로 여행올 때 나를 떠올리며 만나자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겠지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근한 이들이 아니라면, 나는 '니가 알아서 여행하라'고 단호하게 거절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만나야지, 만나서 그들 여행의 하루 이틀쯤은 내 집에서 머물다 가라고 해야지. 와인을 대접해야지. 그들중에 더, 더, 더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호텔을 잡지 말고 나랑 같이 있다 가라고 해야지. 여기가 화장실이고 여기가 부엌에야, 여긴 네가 잘 곳이지. 와인은 항상 여기에 준비되어 있고, 너를 위해서 맥주도 한가득 쌓아뒀어, 언제든지 먹어, 라고 말해줘야지. 



그렇지만 2017년 1월 18일 현재의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페이퍼 쓰고 있다.......................Orz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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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7-01-1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오늘 일빠요. 저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읽고 포루투칼 넘 가고 싶어졌는데 일단은 처자식 먹여살린 다음 생각해봐야 겠어요. ^^

인생 참.....

다락방 2017-01-18 15:39   좋아요 0 | URL
오늘 일빠 감사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저는 리스본행 야간열차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막 가고 싶지 않았더랬는데, 어휴, 지금은 그냥 아주 당장 날아가고 싶어 미치겠네요. 오래 머무르거나 정착하고 싶어요. 제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요?

인생 참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지만, 시이소이님, 아주 오랜 후에는 우리가 포르투갈에서 커피 한 잔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걀부인 2017-01-1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알라디너 모임 할까요? ^^

다락방 2017-01-18 15:39   좋아요 0 | URL
어머! 너무 근사합니다! 달걀부인님, 이번 여름(엔 계획이 있어서) 말고 내년 여름 어때요? ㅎㅎㅎㅎㅎ 아 뭔가 좋으네요 ♡

달걀부인 2017-01-18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내년 여름엔 또 어떤 다른 책에 꽂힐지 모르니.. 그 때...가고싶은...슝~ 나라로 정하심이... ^^ 전 내년 여름에 중국에 있어요.... 중국 어디로 오시다면, 제가 게스트가 될 용의가 ..있습니당..ㅋㅋ 시이소오님도요. ㅎㅎ

다락방 2017-01-18 15:51   좋아요 0 | URL
크- 네. 내년에 어디를 가고싶어질지, 결국 어디로 갈지 아직은 모르지만, 혹여 중국에 가게 된다면 뵙고 싶습니다!! >.<

시이소오 2017-01-18 15:58   좋아요 0 | URL
달걀부인님, 일부러라도 가고 싶어요 ㅋ

락방님, 꼭 오랜시간이 지나야 가능한건가요?
커피 ㅋ

다락방 2017-01-18 16:03   좋아요 0 | URL
가능하면 앞당겨 봅시다 ㅋㅋㅋㅋㅋ

달걀부인 2017-01-1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 해외 벙개라니!!! ㅋㅋㅋ

다락방 2017-01-18 16:17   좋아요 0 | URL
두근두근합니다! >.<

비연 2017-01-18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사무실에서...사무실에서...ㅜㅜㅜㅜㅜㅜ

다락방 2017-01-18 19:05   좋아요 0 | URL
인생이란 게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흙 ㅜㅜ
 

아침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사무실 창문들을 활짝 연다. 환기를 시키고 시작하려는 것인데, 요즘엔 밤이 길어 퇴근 시간만 되도 어두워지는 것처럼 출근을 하고 나서도 좀처럼 환해지질 않는다.


밤이,


길다.



그래서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 좀 늦게 들어가도 아직 환한 여름이 좋고, 출근할 때도 환한 아침이 있어서 여름이 좋다. 여름이 좋은 이유는 무지무지하게 많지만, 그렇게 낮이 긴 것도 이유이다. 그렇다고해서 밤이 긴 게 싫은 것만도 아니다. 오늘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 문득 이런 빛깔이 눈에 들어왔거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어둠과 빛의 저 경계가 사라지면 출근을 하겠지만 나는 저 경계를 보는 시간에 출근한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창문을 열려고 밖을 내다보면, 저렇듯 붉은 빛을 보게 된다. 오늘은 새삼 너무 풍경이 예뻐서 아, 좋아.. 했다. 어느쪽의 창문을 열어도 저 아름다운 빛깔이 보인다. 아이폰의 카메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붉은, 아름다운 빛. 


아,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한 이주간 스트레스가 심했고 기분이 매일 나빴는데, 정말 별 거 아닌, 내 노력으로 된 것도 아닌, 저 자연스런 붉은 빛이 기분을 좋게 한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나는 이런 걸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만족하면서, 잠깐,


혹시 아침에 나눈 19금 대화때문에 기분이 좋은건가.....


했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시간이 가는 것은 아쉽지만 시간이 가는 것은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 어둠과 빛의 경계를 보면서 감탄하는 그런 사람이라서, 정말 좋다.





엘레나는 흠 잡을 곳이 없는 미인이었지만 마이클이 그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모 때문이 아니었다. 엘레나는 작은 것들, 뽀송뽀송하고 서늘한 시트 사이로 들어가 눕거나, 새로운 음식을 맛보거나, 매번 기대에 찬 마음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 같은 일에서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믿으며, 그래서 색깔을 잃어버린 우중충한 무색의 세상에서 화려한 색깔로 빛나는 사람이었다.(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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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7-01-17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아침이 좋긴한데 겨울아침은 내가 엄청 일찍 일어난 듯한 느낌이 또 그런대로 좋더라구요!
창문을 열었는데 저런 아침풍경이라면 너무 황홀하겠는데요?아메리카노까지 곁들이고 있다면???
풍경이 곧 cf의 한 장면이겠다고 생각되는 아침입니다^^
굿모닝이어요ㅋㅋ

다락방 2017-01-17 12:25   좋아요 2 | URL
이제 굿점심이네요. 저는 곧 점심 먹으러 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친구가 보내준 튀김호두과자 먹고 지금 사실 배가 고프진 않아요 ㅋㅋ 어쩜 좋지 ㅋㅋㅋㅋㅋ 그래도 맛있게 먹으려고요. 아하하하하.
아메리카노는 진즉에 다 마셨고요 ㅋㅋ 내일 또 아메리카노 마셔야죠. 힛.

아침에 저런 풍경을 보니 좋더라고요. 사실 진짜 사소한 거잖아요. 늘 볼 수 있는 풍경이기도 하고요. 물론 계절 한정이지만. 그런데 보니까 참 좋았어요. 이렇게 일상속에서 좋은 거 보고 찾으면서 지내야 삶을 하루하루 버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오후도 잘 보내세요, 책나무님!!

무해한모리군 2017-01-17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새벽형 인간이라 어두울때 출근을 하는데 그 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나라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서요. 여름도 좋아하지만 여름은 저녁이 좋아요. 여름저녁에 풀냄새 맡으면서 어슬렁 거리며 다니는게 좋아요.

다락방 2017-01-17 12:26   좋아요 1 | URL
저는 집에서 나오면 시꺼먼데, 그건 싫더라고요. 이렇게 까말때 나가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해요. 그렇지만 회사에 도착하면 저렇게 붉은빛으로 변하는데, 그걸 보는 건 참 좋아요.
여름 저녁 풀냄새, 정말 좋죠!
올림픽공원을 좋아하는 남자랑 밤에 걸은 적이 있는데, 비가 내리고난 후여서, 풀냄새가 아주 강하게 났어요. 그 밤이, 진짜 좋았어요. 그 밤은 잊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남자는 잊어도요.

transient-guest 2017-01-17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소소한 이런 아침의 행복 때문에 저도 새벽운동을 좋아합니다 오전 7시 정도에 운동을 마치고 나오든 아침의 쌉쌀한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어요 ㅎ

다락방 2017-01-17 15:33   좋아요 2 | URL
제가 오늘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행복해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너무 싫어요 ㅠㅠ 자고 싶어요 ㅠㅠㅠㅠㅠㅠㅠ 그러나 비루한 밥벌이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출근해야 하지요. 하아-
그래도 죄다 나쁜 것만 있으면 사는 게 재미 없을텐데, 이렇게 사소한 거에 기뻐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우리 앞으로도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으면서 삽시다!

푸른희망 2017-01-17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철 이불밖은 너무너무 위험하지만 가끔 저런 풍경을보머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위험을 감 수할 만하군요 ~~^^ 사진이 좋아요

다락방 2017-01-18 08:14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어제 저 풍경을 보고난 후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오늘은 어쩐지 기운이 빠져서, 아, 회사생활이란 무엇인가, 직딩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변함없이 아메리카노는 제 앞에 놓여있고요. 오늘 하루도 잘 보냅시다, 푸른희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