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강의에 좀 늦었다. 내 퇴근시간이 늦었던 까닭인데, 늦게 들어간만큼 좋은 자리에 앉는게 쉽지 않아 맨 뒷자리 의자에 앉았더니 강의를 듣는 내내 종아리가 추웠다. 어제는 강의실이 전반적으로 추웠어..
어제의 주제는 정신분석학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태 들은 세 번의 강의중 가장 어려웠다. 내가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용어들이 낯설었고, 그래서 어렵게 느껴진 게 아닌가 싶었다. 프로이트, 꿈, 오이디푸스... 같은 것들만 알고 있었는데, 어제 프로이트가 자신의 정신분석학을 설명하게 되는 기본 바탕에 아빠, 엄마, '아들'이 삼각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해서 뭔가 엄청 궁금해졌다. 아, 프로이트가 괜히 욕을 먹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막 더 알고 싶어지는거다. 정신분석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이 부르주아 여자들이었다는 것, 상담을 받은 후에 그녀들 모두가 하나같이 다들 페미니스트가 되었다는 것들을 어제 강의에서 들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 라고 하나로 규정되어진 것은 아닌만큼, 그 당시에도 다양한 관점으로 존재했는데,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정신분석학은 여성을 배제하니 페미니즘에 도움될 것이 없다고 했고,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정신분석학으로부터 어떤 것들은 우리가 취해야 한다 라고 했다고 한다. 이걸 파고 들어가면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질까?
신기한 것이, 알면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건가... (응?)
모르는 내가 답답하고, 그래서 더 알고 싶고..그러다보니 막 이 책 저 책 검색해서 죄다 알고 싶은데, 내가 그 책들을 죄다 읽고 공부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여건도 허락하지 않잖아. 하루 24시간을 꼬박 공부에 열중해야 할텐데, 나는 낮에는 일을 해야 하고 밤에는 술을 마셔야 한다.. (응?)
알면알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알게 되는게 좋으면서 싫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건, 내가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좋은데, 그래서 '알고싶다'는 욕망이 강해질수록 자꾸 책을 사게 되고 .. 그래서 자꾸만 집에 책이 쌓여가는 거다. 하아- 이것도 알고 싶고 저것도 알고 싶고...
주말에 책장 정리를 하면서 페미니즘 관련도서로 마련해둔 책장 한 칸이 모자라 아예 넓은 쪽으로 옮겨두었는데, 그러다보니 심리학이며 경제학, 정치, 역사에 관한 책들도 막 있어... 아니, 저것들 다 궁금해서 읽고 싶어서 산건데...언제 다 읽나. 아니, 읽는다고 또 그 지식이 다 내가 습득 가능한 것인가... 나는 기억력도 암기력도 좋지 않은데...
24시간을 투자해도 알고 싶은 걸 다 알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여전히 시간이 부족하다. 이럴 때 억만장자 친구가 있어서 나에게 투자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너의 공부를 지원할테니, 회사 그만 두고 너는 계속 책읽고 공부해!'라고 한다면...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평생친구 해줄텐데... 애인 해달라면 애인 해줄 수도 있는데...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가만 떠올려본다. 이 얼굴 저 얼굴... 다 돈이 없다....억만장자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어. 아아, 나는 역시 낮에 돈 벌고 일주일에 하루 짬을 내어 공부해야 하는구나.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여...
그래도 또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어제 강사쌤이 쓰신 책이란다.
알고 싶은 건 많은데, 내가 이렇게나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되니 초조하다...초조해......
어제 강의가 끝나고 함께 들은 친구랑 매운소갈비찜을 먹으면서(응?), 2월달에도 계속 듣고 싶은데 역시 힘들어..어쩌지...우리 계속 생각해보자..하는 이야기들을 했다. 지난 주에 했던 것과 같은 고민. 와서 들으니까 좋다, 오늘 들은 건 용어들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걸 듣는 게 듣지 않는 것보다 나았다, 그러니까 계속 공부하러 다니자, 그렇지만 낑겨서 오는 거 너무 힘들다, 끝나고 집에 가면 너무 피곤하다, 그러니까 그만 들을까, 막 이러면서 했던 고민 또하고 또하고..
그러니까 어제도 ㅠㅠ 퇴근시간이니까 ㅠㅠ 혜화에서 내리는데 ㅠㅠ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출입문 열리고 내리기직전에 진짜 패대기쳐진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힝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고 공부하러 갔는데 추웠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집에 돌아가니 열한시가 넘어 있었는데, 아아, 나는 도대체 뭘 얻자고 이러고 있는걸까.....왜 사서 고생인걸까......왜지. 왤까...........
새해가 되어 조카1은 여덟살이 되었고 조카2는 다섯살이 되었다. 여덟살 조카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고 다섯살 조카는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긴다고 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섯살 조카의 알림장을 매일 어린이집 선생님과 여동생이 메신저삼아 쓰고 있다는데, 어제는 여덟살 조카가 자기가 쓰겠다 했단다. 동생 알림장 자기가 쓰고 싶다고. 그래서 이렇게 썼다.
해석은 읽는 자의 몫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귀여워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국민학교 6학년때 1학년인 남동생 교실에 찾아가 엄마 대신 청소해줬던 기억도 새록새록. 그때 당시에 학부모가 찾아와서 청소해줘야 했는데, 울엄마가 돈벌러 가야 한다며 나에게 가라 한거다. 하아- 그래서 다 엄마인데 나 혼자 누나로 남동생 학급에 찾아갔고, 나는 남동생의 담임 선생님과 다른 엄마들로부터 겁나 착한 누나라는 칭찬을 한 바가지 들으며 청소를.. 했다... 그 칭찬은 하나도 기분 좋지 않았어. 나는 거기 있고 싶지 않았다.... 뭔가 부끄럽고 그랬어...어쩐지 숨고 싶었고 얼른 집에 가고 싶었어.....아아.....
그때 나한테 왜그랬냐고, 난 그거 못잊는다고, 어느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같이 있을 때 얘기했더니, 엄마도 남동생도 기억을 전혀 못한다......
이 폭풍슬픔.....................
아 갑자기 너무 딴길로 샜네.
다섯살 조카는 누나가 써준 알림장을 받아들고 신나했단다. 누나가 써줘서 좋다고. 다섯살 조카는 자기 누나 따라쟁이라서, 누나가 하는대로 하고 누나만 졸졸 쫓아다닌다. 누나바라기, 누나 따라쟁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나는 여덟살 조카가 쓴 저 알림장, 해석 다 했다. 마지막에 약간 틀려서 여동생이 고쳐줬지만. 그러니까 나는 '똥 두덩이' 라고 해석했는데, 여동생이 알려주길, '똥 두 번' 이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하고 옆에 하트 그려놓은 거 진짜 너무 예쁘다. 이모 닮았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마전에 나도 망고같은 남자한테 문자메세지 보낼 때, 아이폰에 있는 풍선 띄우면서 이벤트 해줬는데. 풍선 이벤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예쁜 조카, 이모 닮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문득 생각한건데, 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두가지는,
1. 다이어트
2. 책 안사기
인것 같다. Or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