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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평점 :
프랭크 허버트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가진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책 뒤에는 부록으로 용어 설명이 실려있을만큼 그가 창조한 이 듄이라는 세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독자에게 매우 낯선 언어이고 그는 언어뿐만 아니라 모래벌레라는 새로운 생명체도 탄생시켰으며 이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조차도 기존의 인간 세계 인간들과는 다르다. 스파이스라는 새로운 식량은 사람의 눈동자를 변화시키고 베네 게세리트라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훈련을 읽힌 존재도 나오고, 하여간 읽으면서 와, 이 작가의 상상력은 어마어마하구나, 도대체 이런 걸 다 어떻게 만들어냈냐 싶어지는 거다. 새로운 이야기 자체를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아예 새로운 세계와 그에 따른 세계관을 만들어버렸으니. 이야, 사람의 상상력은 끝이 없구나, 라고 사실 새로운 세계에 별 관심 없는 나조차도 감탄하다가 이내 짜게 식어버린다. 왜냐하면, 프랭크 허버트는, 아주 수많은 것들을 새로 만들었으면서, 지구상에 없던 것들을 먹거리부터 옷, 도구, 언어, 문화, 세계까지 새롭게 만들어냈으면서, 그러나 그 모든걸 다 새로이 만들면서도 단 하나 단단하게 유지한게 있었니, 그 이름하여,
가
부
장
제
아이 세이 가부
유 세이 장제
가
부
장
제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는 진짜 어이가 없어가지고. 가부장제란 무엇인가. 세상에. 그러니까 이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지금을 살고 있는 인간이 겪어본 적 없는 세계에서,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가부장제는 펼쳐진다. 어머니가 아무리 오랜 시간 훈련 받아도 결코 아들을 이길 수 없으며, 심지어 아들이 두려워. 여자는 남편의 소유였다가 남편이 죽으면 아들의 소유가 된다. 그뿐인가, 남자1과 남자2가 싸웠는데 남자2가 패배해 죽었다면, 네, 남자2의 아내와 자식들은 남자1의 소유가 됩니다. 여기에 아내와 자식의 의지나 뜻 같은 건 전혀 반영되지 않아요. 그런데 남자 1은 그 여자를 자기 소유로 하면서 아내로 삼을 수도 있고요 하녀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그렇게 차지한 여자를 아내가 아닌 하녀로 썼으니, 아하, 순진하고 착하구나, 감탄하라고 만든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하튼 우리의 남자주인공 다른 종족의 여자인간과 사랑하게 되어 아들을 하나 낳았으나, 그녀를 아내 삼은 건 아니라서요, 이 파벌 싸움에서 이기고 통합하여 권력을 갖기 위해서는 공주랑 결혼하여야 하였으니, 이에 남주의 아들을 낳은 '챠니'가 슬퍼하는 건 불보듯 뻔한 일. 그러나 우리의 너무나 착한 남자, 자기 사랑은 아내에게 안주고 첩에게 줄거래. 쑈를 한다 아주 그냥 ㅋㅋㅋㅋㅋㅋㅋㅋ 자, 내가 어제 읽다가 육성으로 '지랄한다' 내뱉앴던 부분, 잠깐 같이 읽어보자.
"그럼 황제의 첩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난 어떤 칭호도 싫어. 아무것도. 부탁이야" 챠니가 속삭였다.
폴은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언젠가 어린 레토를 품에 안고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을 갑자기 떠올렸다. 이번의 폭력 사태로 목숨을 잃은 그 아이, 레토를. "당신에게는 어떤 칭호도 필요하지 않게 될 거라고 내가 지금 맹세할게. 저기 있는 저 여자가 내 아내가 되고 당신은 첩에 지나지 않겠지. 이건 정치적인 일이고 우린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 평화를 만들어내서 랜드스라드의 대가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우린 형식을 지켜야 해. 하지만 저 공주는 내 이름 외에 아무것도 갖지 못할거야.내 아이도, 내 손길도, 부드러운 누길도, 내 욕망의 순간도.
"내 아들에 대해 그렇게 모르는 거냐?" 제시카가 속삭였다. "저기 서 있는 공주를 봐라. 아주 오만하고 자신만만하지. 사람들 말이 공주 스스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더구나. 공주가 거기서나마 위안을 찾기를 바라자. 그 밖에는 공주가 가질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테니까." 제시카는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봐라, 챠니. 저 공주는 아내라는 이름을 갖겠지만 첩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거야. 결혼으로 자신과 묶여 있는 남자에게서 단 한 순간도 부드러움을 맛보지 못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말이다, 챠니. 첩의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는 역사가들에 의해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거다." -p.891~p.892
이 부분만 읽으면 이곳이 다른 새로운 세계라는 걸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냥 눈 돌리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세계랄까.
챠니는 자신이 폴을 사랑하는데 폴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여자를 아내 삼는다니까 슬프고, 폴은 그런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그녀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을 거래, ㅋ ㅑ 세상 다정한 남자 되시겠네요? 그리고 폴의 어머니는 우리는 첩이지만 세상은 우리를 기억할거래, 네 남편은 너를 사랑할거래, 네 땡큐 베리 머치요, 저는 팔자 폈네요 사랑받는 첩이라니 껄껄. 진짜 미친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저 아내는 뭐가 됨? 저 아내는 개똥임? 지가 뭔데 다른 한 명의 인간을 아내라는 자리에 세워두고 무시한대? 챠니를 위로한답시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응, 챠니 남자 굿 맨 이래야 되냐? 그러면 챠니는 나중에 친구 만나서 '응 나는 첩인데 남편이 아내보다 나를 더 사랑해' 이러는 부분? 그리고 아내는 나중에 친구들 만나서 '나는 아내지만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 이러면서 울어야 되냐. 야, 결혼했는데 혼자 남겨져서 남편의 사랑을 못받는 여자라니. 이 여자는 이 여자대로 저 여자는 저 여자대로 괴로워야 하는데 그 중심에는 주인공 남자가 있었으니 두둥- 하여간 마리아 미즈 말대로 낭만적 이성애를 파괴해야 한다.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낭만적 이성애에 세뇌되어가지고 아주 그냥 못쓰게 되버렸어.
그리고 저 892페이지의 인용문을 보면 말이지, 아주 중요한 문장이 나오는데, 이 세 명의 중심인물-폴, 챠니, 제시카-가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겠다는, 그러니까 결국 '사랑 받을 수 없는' 공주라는 인물의 큰 특징이 뭐냐, 바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갖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 갖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서 그녀를 멸시하고, '거기서나마 위안을 찾기를 바라자' 면서 그녀가 가진 건 그게 전부라고 말한다. 와- 나 여기서 피해의식 돋았는데, 이거 너무 페미니스트 까는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너무 오버센스한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가 막혀서. 아니 그러니까 내가 몇해전 뉴욕에 갔는데 거기서 알게 된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온 한국남자가 나랑 얘기하다 그랬다니까.
"너 처럼 책 많이 읽는 여자 남자들이 싫어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진짜 내 눈앞에서 들었다니까. 나한테 한 말이었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대화 하다가 그랬다고.
"와 이것봐 또 생각하네. 너처럼 생각 많으면 결혼 못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내가 진짜 들었다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에.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저 여자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할테니 거기서나마 위안을 얻도록 하자, 고. 명색이 주인공인 사람들이 대화를 나눕니다.
이렇게 내가 1권을 끝냈는데, 설마 2권에서 반전이 있나?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름만 아내인 공주가 세상을 다 뒤집어 버리는건가? 프랭크 허버트 페미니스트인 부분? 그녀의 활약을 보여주기 위해 졸라 가부장제에 찌든 사막 세계 보여준건가? 아니면, 챠니랑 공주가 사랑에 빠져버리는 부분????????????????
마리아 미즈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면 나을 줄 알았더니 그곳에서도 가부장제는 견고하며 여성들은 이중노동에 시달린다는 얘기를 했더랬다. 민주주의? 여성은 가부장제 아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회주의? 가부장제 확고합니다. 모래벌레가 기계도 잡아먹는 모래왕국? 가부장제 쩔어요. 프랭크 허버트는 세상 모든 걸 다 새로이 상상하고 만들어낼 순 있어도 가부장제는 건드릴 수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 존재이며-무릇 창세기의 이브가 아담을 '돕는' 존재였던 것처럼- 여성은 남성의 소유이다. 거기에 대해서 프랭크 허버트는 아무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상상할 필요가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걸 굳이 바꿀 이유가 뭐람. 너무나 견고하며 남성들에게 너무나 편리한 가부장제를. 나한테 편한데 왜 다른 식으로 상상해 보겠습니까, 못하죠. 그런겁니다.
듄, 니가 나를 하필 이 때에 만나 고생이 많다. 나, 마리아 미즈 읽었거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첩과 아내를 만나게 되는 듄 1권을 다 읽었다. 2권에서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의 활약을 바란다.
과연..
누가 이 공주의 입장에서 소설을 하나 써줬으면 좋겠다. 제인 에어 읽고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썼던 진 리스처럼. 앗. 이미 최명희가 쓴 거 아닌가. 혼불로.. 결혼 첫날밤부터 남편이 건드리지 않았던 혼자 남겨진 여자. 그리고 그 남편은 어떤 남자가 되었지요? 그건 혼불을 읽어보면 압니다.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