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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침을 안 먹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기 때문인데,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어제 여동생이 아버지 입원하신 병원에 오면서 사온 빵을 내가 가져왔으니까. 이걸 회사에 가져가서 먹으면 되겠지, 하고는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에 겁먹지 않았다. 나는 한 끼라도 '못먹었다'는 생각을 하면 초조해지는 여자사람. 어쨌든 그래서 쫄지 않고 빵을 싸가지고 출근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두유를 마시고-이건 입원하신 아버지 과일 사드리라며 m 이 과일값을 보내줘서 과일 대신 사서 아버지 병원에 가져다둔 거였다-, 커피를 내리고, 빵을 먹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쌀로 만든 빵을 사왔더랬다. 우선 단팥빵 하나를 사이좋게 반으로 갈라 동료1과 나누어 먹었다. 단팥이 가득했고 밤도 들어있어서 참 맛있었다. 그리고 색색깔의 작은 빵이 있었는데, 이건 총 네 개를 가져와서 동료 두 개 나 두 개, 이렇게 나눠가졌다. 이제 이 작은 빵을 먹을 차례. 나는 한 입 물고는 깜짝 놀랐다. 빵이 너무 의미가 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생긴 빵이었다.



이렇게 생긴 빵인데 노랑색, 쑥색, 검정색, 갈색... 이런 것들이 봉지 안에 열 개 담겨 있는 빵이었는데, 눈누난나~ 하면서 베어 물었더니 세상에, 속은 이렇게 생긴 거다.




안에 아무것도 없어...그냥 반죽으로만 만든 빵이야... 아....나는 아침을 안먹고 온, 허기진(응?) 상태인데도, 이 빵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의미없어. 아니, 이게 뭐야???????????? 나는 진심 육성으로 쌍욕이 터졌다. 이건 뭐랄까, '배고프지? 일단 허기라도 달래'라는 의미로 만든 빵인건가.... '일단 허기만 달래, 맛은 나중 문제잖아' 하는, 그런 느낌. 나는 이런 느낌을 주는 음식을 진짜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중국집에서 주는 꽃빵을 엄청 싫어하고-아예 안먹음, 내 위가 아까움-, 햄버거 빵을 겁나 싫어하고-햄버거 먹다가 빵 던짐-, 수제비를 싫어한다. 이렇게 너무나 '끼니 때워'하는 느낌의 음식들. 나는 '맛있게' 먹고싶어!!!!! 나는 맛없으면 스테이크도 남기는 사람인데, 아니, 빵을 왜이렇게 만들어놔?????? 아, 너무나 내 취향 아닌 것.


그래서 다른 동료1에게 이 사정을 설명하고 '남은 하나 너 줄게' 했더니 좋다고 했다. 이 다른동료1은 꽃빵을 좋아한다. 이런 그냥 막 빵빵거리기만 하는 느낌의 빵을 좋아함. 맛있어한다. 나랑 음식 취향 너무나 다름. 아...너무나도 의미없는 빵이었어...깜짝 놀랐다 진짜...



나한테 이러지마..... 



나는 빵이 되어 말했다. '히히, 약오르지? 뭔가 있을 줄 알았지? 그런데 아무것도 없지롱 메롱~' 이러고 있으니까 옆에서 동료가 빵터져서 웃었다. 차장님은 빵도 되었다가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내뱉기도 했다가.... 아하하하하하. 






어제 이번호 시사인을 읽는데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다룬 책이 흥미로웠다.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이었다. 일부를 인용하자면 아래와 같다.










1967년 시카고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파이어스톤은 그 시대의 미국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에 투신했다. 하지만 좌파 운동가들이 밀집한 운동 현장에 여성은 없었다. 여성들은 사회변혁이라는 희망을 품고 진보운동에 참여했지만, 여자들을 차별하고 보조물 취급하기는 진보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실에 분노한 파이어스톤은 여성 투표권 쟁취에 안주한 제1세대 페미니스트와 다른 급진 페미니스트 조직을 결성하고, 이때 남성 진보 운동가들과 벌였던 이론 투쟁의 결과물이 1970년에 나온 <성의 변증법>이다. -시사인 제458호, <장정일의 독서일기> 중




이 책이구나! 뭔가 표지도 마음에 들어! 사야겠다!!!!!













6월달엔 책 그만사자 싶어서 지금 이를 악물고 참고있는데, 저 책을 너무나 사고 싶다. 게다가 이 책들도!
















그리고 노정태의 리뷰를 보고 알게 된, 이 책도! 2006년에 나온 책이던데 어떤 내용일지 몹시도 궁금하다.














[책소개]


젠더 문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남성 독자들, 특히 젊은 독자들이 더 관심을 갖고 읽을 만한 책이다. '남성 페미니스트'임을 자임하는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남자들, 즉 여성학도 배우고 성평등이 뭔지 알면서도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적인 남자들에게 남자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한국의 페미니스트가 너무 평화적이고 온건해서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남자, 여성주의 정당이 생기면 기꺼이 당비를 내겠다는 남자, 한마디로 젠더 감수성이 풍부한 남자 권혁범은 대중문화를 보며 웃고 울며 즐기는 가운데 우리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가부장적 감수성을 조목조목 들춰낸다.

또한 그렇게도 싫어하는 자본 권력에 맞서 싸울 생각은 않고 아직도 권력과는 거리가 먼 '그 페미니즘'에 시비 거는 '그 진보주의 남성들'에게 미망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하며, 페미니즘의 '페'자만 들어도 괜히 기분 나빠하고 그걸 후려치고 싶은 감정적 충동을 느끼는 남성들에게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깊은 내면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라고 조언한다.





어제 남동생과 막걸리를 마셨다. 남동생 회사는 연간 개인 복지비가 이백만원이 조금 넘는데, 아무때나 자신이 원하는 걸 살 수가 있다. 벌써 선풍기며 부모님 옷이며 또 뭐더라..이것저것 잔뜩 사서 절반 정도를 쓴것 같은데, 나는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어제 남동생에게 '야, 니 복지비로 나 책 오만원어치만 사주면 안돼?' 물었더랬다. 그러자 남동생은 '기다려봐, 쓰다가 남으면 사줄게' 이러는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야속한 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내가 '일단 내 꺼 사주고나서 다른 거 사면 안돼?' 했더니 '응, 안돼' 한다. 이런 단호박같은 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우리 회사는 왜 복지비가 없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그냥 책 팔아서 책 사야겠다 (http://www.aladin.co.kr/shop/usedshop/wshopitem.aspx?SC=12609). ㅠㅠ 돈 좀 벌어보자고 엊그제는 북펀딩에도  (http://www.aladin.co.kr/bookfund/bookfundview.aspx?pkid=771) 참여했다. 부질없나... 티끌 모아 티끌인것을...


티끌 모아 티이이끌.....






아 맞다. 이 책 샀는데, 언제 읽을진 모르겠지만, 띠지에 이렇게 써있더라.


<20세기 성애性愛 문학의 고전 국내 초역!>



성애........문학이라고? 아 두근두근. 얼른 지금 읽는 책 끝내고 이거 읽고 싶다. 두근두근..










미국에 있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 나는 편지지에 쓰거나 엽서에 써서 보내는데, 친구는 카드에 써서 보내준다. 봉투를 열고 카드를 꺼내면, 카드가 펼쳐지고 그 안에 가지런히 글자들이 놓여있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보내는 카드마다 너무 예쁜데, 어제 받아든 이 카드도 너무 예쁜 거다. 어쩌면 이렇게 한결같이 예쁠까. 이렇게 예쁜 카드를 받으면 기분이 참 좋다.


나도 편지지나 엽서 대신 카드에 보내고 싶어서 길을 걷다가 문구점이나 팬시점을 만나면 다 들어가보고-심지어 강원도 문구점까지 갔었다고!!- 인터넷도 뒤적여봤지만, 엽서 사이즈의 카드(그러나 펼치면 편지지 사이즈가 되는)를 찾을 수가 없더라. 나도 이렇게 예쁜 카드에 곱게 마음을 적어 보내고 싶은데... 미국에 있는 친구는 자신이 사는 곳에는 카드 샵이 있다고 했다. 오... 그렇다면 나도 외국 사이트를 뒤져봐야지! 아마존 같은데 뒤지면 있지 않을까? 유후-



자, 이제 일이나 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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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희망 2016-06-24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의미 없는 빵 좋아해요 뭐랄까 굉장히 검소하고 정갈해지는 기분?
질리지 않아 많이 들어가기도 하구요^^;; 보고싶은 책이 많이 겹치네요 찌찌뽕!!!

다락방 2016-06-24 09: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가 위에 언급한 동료1도 의미 없는 빵-모닝빵 같은!!-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아마도 더한 자극을 찾는 것 같아요. 원초적이랄까... 아하하하핫.

2016-06-24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4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6-06-24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아버님이 어디 아프신거에요 ㅠ.ㅠ 빨리 건강하게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올해 초에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정말 그곳은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에요. 정말 정말로 아버님이 빨리 퇴원하시기를 기원드려요 ㅠ

왠지 요즘 독서를 하시는 걸 보면 급진적인 페미니스트가 출현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두근두근 ㅋ 다락방님은 사진이 졸리라서 그런지 전 예전부터 이분 페미니스트가 아닐까란 생각을 했는데...글들을 보다 보다 보니 원초적이며, 직설적이고, 자유분방하시더군요 하하하하

저도 의미 없는 빵은 싫어해요..뭔가 없는 느낌, 만들다가 만 느낌, 미완성품인 것 같은 느낌. 이걸 왜 돈 받고 팔지라는 분노 등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줘요. 전 햄이나 치즈가 들어간 빵만을 먹어요. 그것이 빵의 완성이라 여기거든요. 아~~밥 먹고 온지 30여분 빵 땡겨

남동생분 회사 막강하네요. 복지비 오 부럽 ㅋ 동생분 단호박 ㅋ 사실 가족에게는 엄해지는 것이 우리 한국 가족의 특징이죠. 내가 다 써도 형제자매에겐 주지 않으리..저도 누나에게 그래요. ㅎ

저는 읽을 책이 아직도 쌓여 있는데 왜 살 책들이 눈에 들어오죠? 귀신이 쓰인 것에요. 뭣이 중한지를 모르는거에요....

비 오는 금욜이고, 소주가 땡기는 날이지만 전 요즘 금연을 해요. 병원가서 약처방 받고 챔픽스 먹어요. 담배를 안 피고 술도 안 땡기고 금욕적인 삶을 보내고 있어요. 오늘은 고시원에서 고요하게 공부할 거에요. 제 인생에 불금은 지워졌어요. 후후후후후후후

아 그리고 제가 실수한 걸 반복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 주셨잖아요. ㅋ 감사해요 ㅠ.ㅠ 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맨날 실수하고 반복하기는 하거든요. 칭찬해 주시니 정말 그렇게 살아야 겠어요. 히힛

다락방 2016-06-27 10:34   좋아요 0 | URL
아버지가 탈장으로 수술하셨어요. 수술도 잘 됐고 이제는 퇴원하셔서 집에서 회복중이세요. 고맙습니다. ㅎㅎ

저는 제가 페미니스인줄 몰랐던 시절에도 페미니스트였더라고요.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으르렁 거렸고 맞서곤 했거든요. 뭔지 잘 모르면서 `이건 아니다` 했던 것들에 대해서 늘 으르렁거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금욕적인 사람이라 하시니 하아- 저는 얼마나 욕망에 시달리는 사람인가 싶네요. 아니 언제나 욕망에 굴복하는, 금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죠. ㅎㅎㅎ 매일 술이며 안주에...아하하하하하하하하.

월요일이에요, 루쉰님. 우리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이드 2016-06-24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화점 지하 포장코너 가면 예쁜 카드 많아요. 비싸지만.. 아님 텐바이텐에서 일반카드 검색해서 뒤져보면 수입폴딩카드 예쁜거 찾을 수 있구요. 파이낸스 지하 문구 파는 곳에도 좀 있습니다.

다락방 2016-06-27 10:35   좋아요 0 | URL
텐바이텐에서 열심히 검색해서 주문했었는데 사이즈가 병맛이더라고요. 그때의 허탈함이라니.. ㅠㅠ 금요일에는 아마존에서 사려다가 열받아서 때려쳤고요 ㅠㅠ 백화점 포장코너를 다음에 한 번 가봐야겠네요. 그런데 미국가서 사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아요. 어휴.. ㅠㅠ

하이드 2016-06-2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저에게 빵은 위와같은 식사빵이 내가 생각하는 빵! ㅎㅎ

다락방 2016-06-27 10:36   좋아요 0 | URL
하이드님 불족발에 치즈에 뭔가 저랑 식성 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빵에서 확 갈리네요? ㅋㅋㅋㅋㅋ

감은빛 2016-06-2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잼이나 단팥이 들어간 빵을 싫어하고 달달한 카스테라 류도 싫어해서 그나마 먹는 빵은 속에 아무것도 안 든 모닝빵 같은 것들이예요.

권혁범 책을 담아갑니다. 꼭 읽어보고 싶네요.

다락방 2016-06-27 10:39   좋아요 0 | URL
제가 의미를 찾을 수 없어하는 모닝빵을 좋아하시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아무것도 들지 않은 빵이어도 맛있는 빵이 좋아요. 버터가 미친듯이 녹아들어간 스콘이라든가, 시나몬 롤이라든가 하는 것들이요. 빵 자체에 어떤 맛이 있어야 하는데 모닝 빵은 그냥 .. 빵일 뿐이죠... ㅎㅎㅎㅎㅎㅎㅎㅎ

감은빛님 안주 스타일은 저랑 잘 맞는 것 같은데 빵 스타일은 다르네요. ㅋㅋㅋㅋㅋ 제가 나중에 시나몬롤 사드릴게요. 드셔보세요. ㅎㅎ

세실 2016-06-24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 빠른 쾌유를 빕니다. 걱정할만큼은 아니신거죠?
음 맛 없는건 스테이크도 남기는....나도 하고 말테야요^^

다락방 2016-06-27 10:4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세실님. 아버지는 퇴원하셨고 회복중이세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지시겠죠. 힛.
고맙습니다!!

마노아 2016-06-2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미없는 빵에 빵 터졌어요. 과자로 치면 참크래커? ㅋㅋ

다락방 2016-06-27 10:40   좋아요 0 | URL
그쵸 ㅋㅋㅋㅋㅋㅋㅋ 집에 남아 돌아도 잘 안먹게 되는 참크래커 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딸기쨈을 발라 먹거나 치즈를 얹어먹으면 맛있어지는, 자체로는 의미없는 과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 2016-06-27 16:09   좋아요 0 | URL
과자로 치면 참크래커 ㅋㅋㅋㅋㅋ 저는 참크래커 아이비 이런 거 좋아하지만 공감은 되네요 ㅋㅋㅋ

다락방 2016-06-27 16:40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참크래커 아이비 잘 먹기는 해요 ㅋㅋㅋㅋㅋ

moonnight 2016-06-2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 고생하셨네요. 쾌유를 빕니다. 그리고 동생분 회사 복지비 부러워요ㅠㅠ; 저도 책사려고 부지런히 읽은책 팔고 있어요. 호호^^;

다락방 2016-06-27 12:1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많이 좋아지고 계세요.

동생 복지비는 넘나 부럽죠 ㅠㅠ 우리 회사는 뭐하는 회사인가..싶네요 ㅠㅠ
책이 부지런히 팔리기는 하는데 한 권씩 팔려서 돈이 되질 않네요 ㅋㅋㅋ 왕창 팔려야 목돈이 좀 생길텐데 ㅋㅋㅋ 책 한 권 살 돈 마련하기도 이렇게나 어렵네요. ㅎㅎㅎㅎㅎ
 
나쁜 페미니스트 -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 사이행성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한때 내 머릿속에는 페미니스트는 특정한 부류의 여성들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확한 신화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전투적이고 정치적이며 인간으로서 완벽하고 남자를 증오하고 유머가 없는 사람들. 이러한 신화에 속았다. 나는 이런 신화에 속지 않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기에 이런 과거가 자랑스럽지 않고 더 이상은 속지 않으려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다. (p.375)


나는 페미니즘을 부인했다. 이 운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소리를 들으면 이런 말로 들렸다. "너는 성깔 있고 섹스 싫어하고 남성 혐오에 찌든, 여자 같지 않은 여자 사람이야."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는 페미니즘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페미니즘이 성공하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과거에 사람들 앞에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절대 아니라고 했을 때를 떠올리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떠올라 부끄러울 뿐이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생각하면 또다시 부끄럽다. 결국 내가 외면받을 것이란 두려움이었고, 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문제나 일으키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란 두려움이었으며, 이런 나를 이 사회나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었다. (p.15)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으며 가장 고마웠던 점은, 나(독자)에게 '잘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몇해전만 해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당시만해도 내게 페미니스트란 '과격하고 공격적인'여자였으니까.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알수록 '내가 잘못 알고 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고, 그러자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일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부끄럽다면, 내가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과거였다. 아무것도 모를때는 선입견이나 편견만으로 '난 싫어!'하고 말할 수 있지만, 신기하게도 알면 알수록 내가 얼마나 몰랐던 게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모르는 게 많은지를 알게 된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책을 쓴 록산 게이마저도 페미니스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고, 이런 과거를 자랑스럽지 않게 여겼다 고백했으니, 나도 고백한다. 나 역시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지만' 이라고 생각하고 말했던 나의 과거가 자랑스럽지 않다. 나 역시 정중하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거절하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해 알면알수록 내 자신안의 모순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특히 연애중에는 더했는데,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칭하고, 애인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애인 역시 나로 인해 페미니스트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순간순간 애인에게 수동적인 여자가 되고, '예쁨 받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지고, '말 잘듣고 싶다'는 어찌보면 강아지같은 욕망이 생기기도 하는 거다. 이래도 되는걸까, 내가 지금 이렇게 이 남자를 떠받들어도 되는걸까, 페미니스트가 그래도 되는걸까, 하는 내적갈등 때문에, 아, 그냥 페미니즘에 아예 관심 갖지 말고 살까, 하는 생각도 수차례 했었다. 무엇보다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말하고 다니니, 그에 맞게 '제대로된', '귀감이 되는', '언행이 일치하는', 그런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거다. 또한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는, 아, 동성을 사귀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 페미니즘을 실행하는 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가 좋아 ㅠㅠ 남자의 큰 손이 좋고, 단단한 팔과 가슴이 좋고, 포옥 안기는 게 좋아 ㅠㅠㅠ 가끔 마초가 되어 나를 뒤흔들때는 가슴이 떨리기도 해. 어떡하지 ㅠㅠㅠㅠㅠㅠㅠ 아 힘들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지만 역시 페미니즘을 더 공부하고 알게 되면서 나야말로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느 하나만의 정답을 정해두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누구의 책이었지? 그런 구절이 나오더라. 정확한 워딩은 아니겠지만, '철학에 대해서도 수많은 철학자들이 다른 얘기를 하는데, 왜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뉘앙스의 구절이었다. 그러게. 게다가 왜 내가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규정한거지? 왜 내가 나를 가둔거지? 얼마전에는 친구가 새로운 페미니즘 언어를 배웠다며 내게 이렇게 얘기해주었다.


'당신에게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오해나 무개념인 말과 글을 접할때마다 '그게 아니다'라고 대응하는 건 몹시도 피곤한 일인데, 페미니스트라면 일일이 대꾸해야 하는 게 아닌가, 했던 내게 정말이지 신세계로 이끌어주는 언어였다. 그러게. 내가 왜 다 대답하려 했을까. 나는 이렇게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해방을 맞이하는데, 록산 게이의 이 책은 그 해방감에 쐐기를 박아주었다. 내 자신을 더 놓으라고, 더 자유로워지라고,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라고. 아아, 고마워요, 록산 게이! 나는 이제 해방감을 느낍니다. ㅠㅠ



페미니즘이 결함이 있는 이유는 이것이 인간이 만든 운동이고 인간이란 태생적으로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페미니즘에 비이성적으로 높은 기준을 세워 놓고 페미니즘에게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어 달라고, 혹은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내려 달라고 조르고 있는 것만 같다. 페미니즘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치면 페미니즘 이라는 이름 아래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결점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페미니즘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정죄한다. (p.12-13)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는다.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내 글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접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이런 여자로 남고 싶을 뿐이다. (p.14)



굳이 모델을 찾지 말고 각자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보고 싶은 페미니스트가 되어 보면 어떨까? (p.18)



일전에도 말했지만,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좋은건, 그동안 내가 되어보지 못했던 소수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는 거였다. 또한 내가 무지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작가가 있어서 고맙다, 라고 생각했던 '캐서린 스토킷'의 『헬프』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는 진짜 얼굴이 화끈거렸다. 록산 게이는 그 책과 영화속에서 흑인 여성들은 백인들을 돕는 조력자로만 나왔음을 지적한다. 흑인 인권운동의 중심은 흑인이었는데, 이 책속에서는 백인이 그 역할을 하고 흑인이 도와주는 걸로만 나온다고. 나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동안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그건 그냥 재미 없어서 재미 없었던 거였지, 그 이유가 '흑인이 조력자로 나와서'가 아니었던 거다, 내게는. 내가 그 영화를 보는 시선이, 록산 게이가 보는 시선과는 달랐다. 록산 게이는 영화  『헬프』를, '우주를 그리고 있는 공상 과학 영화'(p.294)라 칭한다. 그리고 '마르타 사우스게이트'라는 사람의 리뷰를 인용한다.


"사실 역사의 중심은 흑인이고 백인이 '도우미'였다. 흑인 인권 운동의 기획자, 지도자, 운동가, 가장 밑바닥에서 활동한 노동자는 백인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메리칸이었다." (p.294)


간혹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란 무엇인지 훈계하고 조언하는 남자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한 번도 여자로 살아본 적이 없으면서, 거리를 걷거나 택시를 탈 때, 밤늦게 집에 돌아갈 때나 만원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없으면서, 내 돈 주고 내가 사는 것들에 대해 김치녀나 된장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면서, 페미니즘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똑바로 하라고 말한다.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하는 남자들조차도 그렇다. 열린 사고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들도 그렇다. 그럴 때 나는 그 똑똑한 남자들의 한계를 느꼈다. 록산 게이가 책과 영화로 『헬프』를 만났을 때, 그때 느꼈던 감정이 아마도 조언하는 남자-엠마 왓슨에게 편지쓰는 고종석이라든지-를 만나는 여자의 느낌과 비슷했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진보적이고 마음이 열린 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도 치우친 부분이 있을 것이고 《헬프》를 읽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편향되어 있었는지 아프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는 《헬프》가 백인 여성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이었다. 시나리오는 백인 남성들이 썼고 백인 남성이 연출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p.302)


록산 게이의 내적 갈등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작가도 감독도 연출도, 흑인과 그들의 인권에 '호.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호의적인' 시선은 한계가 있다. 그런 시선으로 책과 영화를 썼어도, 흑인 인권운동에 중심에 백인을 두었으니까. 


나는 어떤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들을 지지한다는 것을 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도. 진심으로 그 입장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백인들 중에서도 흑인의 인권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많이 깨지고 부딪치면서, 넘어지면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듯이, 그들도 그럴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제대로된 길이란 게 있다면, 그 길로 가기만 한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싸우기도 하고 혼나기도 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록산 게이의 이 책은 나를 다독이기도 했지만, 가끔은 혼나는 기분이 들게도 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 이렇게 또 하나 배우네, 하는 기분이었다.



별을 하나 뺀건, 비만한 사람에 대해 차별적인 시선을 갖는 게 나쁘다는 얘기를 하면서, 뭐랄까, 비만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처럼 말한 게 좀 걸려서다. 물론 어떤 내면적인 상처로 식욕을 멈출 수 없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냥 먹는 게 좋아서 먹는다. 맛있어서 먹는다. 매 끼니가 매우 소중하다. 먹으면 행복해서 먹는다. 뭐, 그렇다는 거다.




좋은 독서였다. 이 책을 끝내고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시작했는데, 이건 얼마 읽지도 않고 또 울컥울컥 했다. 좋은 독서가 될 것 같다. 아 진짜 책 읽는 거 너무나 좋다! 내가 몰랐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너무 좋다!!



얼마전에 트윗에서 누군가 '아니, 박유천인데 그게 무슨 강간이냐' 라는 뉘앙스의 글을 봤더랬다. 잘생긴 유명 연예인인데 땡큐지, 뭐 이런 뜻이 읽혔는데, 휴,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이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우리 문화가 너무나 오랫동안 여성을 함부로 다루어 온 나머지 유명 연예인의 관심을 얻기만 한다면 학대를 당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된 이 현실에 눈물이 난다. 우리 사회가 당신을 망쳐놓은 것이다. 전적으로 그렇다.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크리스 브라운이 여자 친구를 죽기전까지 때리고도 고작 집행유예를 받고 2012년 그래미 무대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올라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가 그 시상식에서 올해의 베스트 R&B 앨범 상을 받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에게 재기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나쁜 남자 페르소나를 자랑스럽게 게시했고 대중들을 비웃었다. 그는 언제든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팝 음악계 악동이다. 그에게는 그것이 변명이 아니라 설명이다.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찰리 쉰이 켈리 프레스톤에게 '실수로' 총을 쏘고, 섹스를 거부한 UCLA 학생의 머리를 때리고, 전 아내 데니스 리처드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전 아내 브룩 뮐러에게 칼을 휘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계속 영화에 출연시키고 텔레비전 쇼에 출연시켜 돈을 찍어 내게 만들어서 그렇게 되었다.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범죄를 저질러 30년 이상 미국 입국이 금지된 로만 폴란스키에게 아카데미 상을 두 번이나 주었기 때문이다(13세 소녀에게 술과 약물을 먹여 성관계를 함). 우리가 당신을 망쳐 놓았다. 마돈나를 폭행하고도 계속해서 비평가들의 극찬 속에 영화를 찍고 두 번이나 아카데미 상을 받은 숀 펜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유명한) 남자가 여자를 함부로 대하고도 법적, 직업적, 개인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살도록 내버려 두면서 당신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버렸다. 

남자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한 번도 아니라 여러 번 우리는 당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유명한 남자건, 악명 높은 남자건, 전혀 유명하지 않은 남자건 남성이 여성을 학대할 수 있다고 믿게 내버려 두었다.(p.45-46)








이 책의 제목 `나쁜 페미니스트Bad Feminist`의 `bad`는 나쁘지 않다.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 의미가 아니라 `부족한`, `못 미치는`, `완벽하게 훌륭하지는 못한`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나는 부족한 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자신을 상대화하는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쁜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이자, `우리`가 서로에게 요구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페미니즘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규범화된 페미니즘은 불현하지만 자기만의 신념은 숨기지 않겠다는 `나의 페미니즘 My feminism`이다. (추천사, 정희진, p.6)

나는 언제나 모범생이었다. 성적표에는 항상 A가 직혀 있었고 반에서 늘 1등이었다. 숭종적인 아이였다. 어른들에게 공손했고 동생들에게도 착한 누나였고 주일 학교에도 다녔다. 이런 내가 뒤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우리 가족을 속이고 모든 사람을 속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착한 사람이 되는 건 나쁜 짓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p.62)

어떤 일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p.64)

2011년 아이오와 의회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아들 자크 왈스는 두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야기했다. 이 19세의 똑똑한 남학생은 아이오와 동성 결혼 합법화를 지지하기 위해 연설했다. 그의 태도는 열정적이었고 연설에는 호소력이 있었으며 이 두 어머니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을지 눈에 선했다. 이 동영상이 전국적으로 퍼졌고 화제가 되었다. 그 영상을 볼 때마다 감동하지만 화도 난다. 왜 퀴어들은 남들은 당연하게 갖는 권리를 위해 항상 이렇게 온몸을 내던져 싸워야 하나? 이성애자 부모의 자녀 중 어느 누구도 법원에 가서 자기의 부모들이 훌륭한 시민이었다고 설득할 필요는 없다. (p.161)

Qui tacet consentire videtur. 라틴어로 "침묵은 동의를 의미한다." 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나를 향한 이런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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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6-2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한혜정교수님의 ˝자기발화는 자기해방이다˝말이 생각납니다.그래서 락방님 글 늘 기다려요^^고맙습니다.

다락방 2016-06-23 11:28   좋아요 1 | URL
우앙. 제 글을 늘 기다리신다니, 고맙습니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쓸게요.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할게요. 우리 계속계속 오래오래 만나요! :)

루쉰P 2016-06-2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자를 정말 사랑해요 보면 아름답고 지켜주고 싶어요 아껴주고 싶고요 전 사랑하는 여자의 하인으로 평생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사건이 나오면 정말 울컥해요 여자는 정말 사랑스러워요

다락방 2016-06-23 11:31   좋아요 0 | URL
루쉰님, 궁극적으로는 루쉰님이 지켜주려고 하지 않아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에 루쉰님 글 읽으면서 루쉰님은 자신의 어떤 과거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또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하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도록 해요.

2016-06-2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6-06-23 15:22   좋아요 0 | URL
뭐가 그리 좋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다니깐 좋네요. 좋다고 해서 다시 읽어봤는데 그냥 뭐 평소와 다름없는 글이구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ellas 2016-06-23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을 꺼내자면 끝도 없고 골치아픈데다 괜히 나만 전투적인 여자가 되는 것 같아 참고 참고 또 참고 무시하고 무시하던 지난 일들이 떠오르네요. 예쁨받고 모나게 보이지 않을려던 어린 나를 돌이켜 생각할때마다 더 화가 나기도 합니다. 언젠가부터 골치가 아프더라도 남들이 날 쌈닭으로 몰아부치더라도 할말하고 들이받고 그렇게 살았더니 피곤은 해도 비참하거나 불행하진 않습니다. 더 이야기하고 더 행동해야지 후진적 남성중심문화가 개선되겠죠. 이 책도 읽어봐야겠네요. 요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책이 많아져서 너무 좋아요:)

다락방 2016-06-23 17:56   좋아요 1 | URL
아, 헬라스님. 제가 리뷰 내내 `과격한`으로 사용했지만 `이게 아닌데, 이거 말고 다른 표현 있을텐데` 싶었는데, `전투적`이란 단어가 그거네요. 네, 저는 전투이기만 한걸로 페미니즘을 오해해서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제가 무지했던 시절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ㅠㅠ

저는 원래 좀 잘 으르렁 대는 스타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일이 지적하고 따지고 하는 건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그렇지만 헬라스님 말처럼, 더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더 이야기하고 행동하기 위해서 더 공부도 해야겠고요. 페미니즘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정말 즐거워요. 아,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싶어서 너무 좋아요. 자꾸자꾸 페미니즘 책 나오는 것도 너무나 좋고요. 계속 계속 읽고 쓸거에요. 우리 함께합시다!

hanalei 2016-06-24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안 보셨다면 제인 프리드먼의 ˝페미니즘˝을 추천하고 싶군요.
비투비21 에서 번역판 나와 있습니다.
이 계통에서는 basic으로 통하는가 봅니다.

다락방 2016-06-24 09:37   좋아요 0 | URL
오, 추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 절판.. 이네요. 음... 이렇다고 가만있을 제가 또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이 책을 니가 좀 어떻게 해봐라, 재출간 진행해다오, 요구해놨습니다. 으하하하핫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ㅜㅜ

2016-06-24 1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7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요일에는 남동생과 함께 여동생 집에 다녀왔다. 여동생 부부가 다 외출해야 해서 남동생과 내가 조카들을 봐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남동생의 차를 타고 가는데, 차 안에서 남동생은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틀어두었다. 언젠가 남동생이 퀴어퍼레이드에 왜 그렇게 과격한 표현들이 등장하는지 물은 적이 있었는데 나는 제대로 답을 해주지 못했었다. 마침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김조광수'가 게스트로 나와서는 퀴어 퍼레이드와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호라, 그렇다면 내가 설명해주지 못한 것을 설명해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에 신이 나서 들었다. 한편으로는 남동생이 운전하면서 이런 걸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혼자 알아서 잘 하는 애를 내가 괜히 따라다니면서 잔소리 했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듣다보니, 김어준의 발언들 몇 개가 턱턱 걸리더라. 왜 이렇게 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어준은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어떻게 존재 자체를 반대하냐는 거다. 그건 존재인데, 그걸 누가 반대할 수 있냐고, 그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오, 그렇지, 그렇게 말해줘, 라고 생각하며 듣는데, '싫어할 수는 있죠' 라고 하더라. 싫어할 수는 있고, 난 동성애 싫어! 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걸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말도 안되는 거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자꾸 '싫다는 감정은 가질 수 있다', '싫다는 말은 할 수 있다' 라고 하는 거다. 아, 그 말이 너무 불편한거다. 이에 김조광수는 '그래, 싫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싫다고 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라고 하더라. 나는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생각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감정에도 마찬가지로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현상을, 어떤 사람을 싫어하거나 미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입밖에 꺼내어 '싫다'고 말하는 것은, 김조광수의 표현대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상대가 소수자일 때는 더하다. '난 이성애자 싫어'라고 말할 때 듣는 이성애자들이 받아들일 상처와 '난 동성애자 싫어'라고 말할 때의 상처가 같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소수자임을 스스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나는 네가 싫어'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감정에 자유가 있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되는 말일까? 그 말이, 상대방에게는 '그저 싫다'라는 말로만 들릴까?


이를테면, 걸그룹 멤버에게 '애교를 부려보라'고 방송에서 말하는 것이, 남성 아이돌에게 '애교를 부려보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까? 레드카펫의 여배우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는 행위가, 남배우들에게 하는 그것과 같은 크기, 같은 의도로 보일 수 있을까? 이미 애교는 여성들이 타고나야 할 미덕 같은 게 되어버렸고, 여성들의 외모를 품평하는 것이 사회적인 문화가 되어 있는데, 그것이 같은 크기나 같은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일전에 한 티븨 프로그램에서 걸그룹 멤버에게 '애교를 부려보라'고 하는 걸 보고 진짜 토가 나와서 쌍욕을 내뱉었던 적이 있다. 어쩌면 그런 걸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시킬까. 동성애(자) 싫어! 라고 말하는 것이, 그들 앞에서 자유로워도 되는 걸까? 뭣보다, 동성애자를 싫어한다는 게, 감정이므로 괜찮은걸까? 그건 '내가 동성애를 하진 않아, 나는 동성애에 취향이 없어' 라고 고쳐 말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가 이미 '이런' 사람인데, 거기다 대고 '내 감정은 자유니까 그런 사람 싫어'라고 말하는 게, 조심성 없이 나와도 되는걸까? 아니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것 자체가 동성애자를 약자로 보는 차별인걸까? 



그리고 김조광수에게 물었다. 퀴어 퍼레이드에서 그렇게 과격한 노출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나 역시 그것에 대해 명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던 터라 왜일까 궁금했었고, 그래서 관심있게 들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퀴어 퍼레이드는 성에 대한 금기를 깨자는 것이므로 그렇게 표현된다고 하더라. 일 년에 한 번,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금기를 깨자고 말하는 것이므로 그런 표현 방식을 선택한다고. 그래서 아 그런 것이었구나, 그래 어떤 이유가 있었을거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김어준이 이렇게 말했다.


"난 살이 많이 보일 수록 좋아요."



....아.....저 드립이..... 이 상황에서 칠 드립인가? 너무나 개저씨스러워서 깜짝 놀랐다. 나는 [닥치고 정치]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나는 꼼수다]를 듣지는 않았다. 내가 아는 김어준은 정치에 대해 그리고 사회문화에 대해 넓고 날카로운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는데, 농담이 너무 후지다. 그가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해준다는 것에 대해 일종의 고마움을 갖고 있었는데, 저렇게 툭툭 뭔가 불편한 말들이 들리니까 혼란스러웠다. 내가 한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건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할수록 한숨이 나고 남자들이 미워지는 게 사실이다. 그런 한편 소수자에 대한 내 생각과 시야 자체가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페미니즘 공부가 필요하다. 약자인 나를 더 잘알고 이 차별을 없애자고 시작한 공부가, 다른 소수자에 대해서도 보는 눈을 다르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다른 소수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됐달까. 나 역시 어떤 소수자에게는 이미 기득권인 사람일 수 있는 거다. 나는 세상에 더 많이 존재하는 '이성애자' '어른' 여성이니까. 세상에는 똑똑한 남자들이 정말 많다. 그만큼 똑똑한 여자들도 많다. 그러나 똑똑한 남자들이 세상을 보고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기득권임을 인정하지 않는한, 똑똑한 여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달라질 수가 없다. 그토록 우러러 보였던 남성 지식인들이 페미니즘 앞에서 자꾸 실망하게 만든다. '학문적으로만' 페미니즘을 공부하고서는 전문가처럼 '여성'에게 가르치려 든다. 여성들은 실제로 차별받는 삶을 살았는데, 그 삶을 산 존재들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치려 든다. 요즘에는 '공감능력'없는, '배려와 이해가 없는' 지식이란 얼마나 무용한가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정말이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일전에 나는 남성들이야말로 로맨틱한 영화를 더 많이 봐야한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로맨틱한 영화를 보면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감정의 교류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 사이의 대화와 눈빛 그리고 태도등을 보면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공부해야 하는건 남자들에게 더 시급한 것 같다. 로맨틱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더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맨틱한 여성에서는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고, 그 여성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것들이 드러난다. 그런 것들을 보지도 않은 채로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나는 진심이야'라는 식으로 들이대기만 해대면, 그런 남자를 '진심이니까' 받아줄 여자는 없다.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이 '성평등'에 대한 것이니만큼, 남성들이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나를 잠재적 가해자라고 생각하느냐'고 빼애액 거리기보다는, 대체 여자들이 왜그러는걸까, 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중립이야' 같은 개소리 하지말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중립이 어딨어??



페미니즘 공부를 아직 시작하기 전의 사람들에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치마만드 응고지 아디치에'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책인 것 같다. 특히나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입문서라 생각되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도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낯선 용어들 때문에 책장이 넘어가기 쉽지 않을 터. 그러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만으로는 당연히 부족하다. 그런데, '토마 마티외'가, 만화로 그려줬다. 고맙습니다.
















이 책에서는 모든 남성이 '악어'로 그려진다. 나쁜 남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들 모두가 '악어'로만 그려진다. 악어 대신 여자 인간처럼 남자인간을 그려둔다면, 많은 남성들이 '가해자'인 남자 입장이 되어 변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의도가 있다.



결국, 남성만 악어로 표현한 것은 작가의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악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점은 여성의 관점이 충분히 보이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성 또한 특정 이미지로 표현했다면 이 만화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그려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중립적인 상태에 있지 않다.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 여성도,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 작가도, 그것을 읽는 남성 독자 혹은 여성 독자도(아니면 하나의 성으로 명백히 구분할 수 없는 사람도.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따라서 내가 봤을 때, 아무도 중립적이지 않으므로 중립적인 입장을 갖는 체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중립적이지 않은' 우리가 자신에게 조건으로 주어진 제약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자기는 '자기 자신'이며, 외부의 조건에 영향을 받거나 이상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 이는 타인이라고 생각한다. (로랑 플륌, p.156)



이 만화를 보는 일은 불편하다. 세상 천지에 널린 숱한 성희롱과 성폭력을 대면하는 일이 어떻게 편하겠는가. 나는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성희롱과 성추행, 성폭행의 피해자였다. 아마 앞으로도 몇 번 더 그런 일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버스안에서, 지하철안에서, 길거리에서, 택시 안에서, 학교에서.. 얼마나 많이 더러운 농담과 손짓 앞에 노출되어 있었던가. 물론 어떤 여성들은 한 번도 그런 피해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이 더러운 경험 몇 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좋지도 않은 경험을, 대체 왜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져야만 하는가. 그 경험이 얼마나 무섭고 수치스러웠는지를 알기에 이 만화를 보는 일이 불편하다. 그리고 아프기까지 하다. 몇 번이나 책장을 덮고 한숨을 쉬어야 한다.










오늘 아침 아빠는 뉴스를 보시다가 밤에 귀가하다 남자가 쫓아아서 위험하면 공중전화 박스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안에 들어가면 비상경보가 울리게 만들어놨다고 참고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는데, 아빠는 결국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셨다.


'하긴 뭐 너를 누가 따라오겠냐'



......아 너무 지저분한 발언이라 빡이 쳤지만, 번번이 싸우는 것이 너무 힘겨워 오늘 아침엔 기운 빼지 않기로 했다. 얼마전에도 아빠의 개념없는 발언으로 엄청 싸운 적이 있는데, 내가 싸워야할 것은 이 거대한 세상과 집단이기에 앞서 내 집안의 내 아버지부터인 것 같다. 여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한남충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닐까... 가장 먼저 여성혐오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도 자신의 아버지로부터가 아닐까. 그렇지 않은 아버지들도 있다는 걸 알지만, 나의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가 미개한 발언을 하는 것까지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계속해서 아빠가 하는 말이나 생각을 고치려고 해보지만, 갈 길이 너무나 멀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아빠도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피해자일 수도 있다. 교육과 환경의 피해자.



『악어 프로젝트』는 남성을 악어로 그림으로써 일반적인 이야기와 차별성을 갖는다. 여성은 사람으로 그려지고 남성만 동물로 표현되었으므로(게다가 내레이션은 경험담을 들려주는 여성의 '주관적인' 시점이다), 독자는 여성에게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사실 남성은 자신을 여성과 동일시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럴 기회가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 공감 능력은 남자답지 않은 영역으로 간주하고, 소년들에게 그것을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며 근본적인 일이다. 만약 '악어'들이 잠깐만 멈춰서 2분 정도만 자신의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가하려는 여성의 입장이 되어본다면 절대 악어들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이 남성의 공감 능력 향상을 방해하는 것 같다.(로랑 플륌, p.159)




머릿속으로 수많은 것들에 대해 '싫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릿속에서 그보다 더한 어떤 감정에 대해 생각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입밖으로 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만약 내가 상대에게 '싫어요' 라고 말을 해야할거라면, 그것은 '잘못된' 것에 대해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당한 것, 잘못된 것, 내가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버스안에서 내 엉덩이를 움켜 잡는 사람에게 '싫어요'라고 말하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싫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옳다. 이것은 내가 반드시 싫어요라고 말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물론 싫다고 말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그렇게 말함으로써 분위기가 망가질까봐, 그리고 혹여 더 큰 위험이 올까봐 참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고, 실제로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상대의 존재에 대해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것과 다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상대가 그렇게 존재하는데, 거기에 대고, '싫어요'라고 말하는 일이, 그냥 내 감정이라고 퉁칠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가 동성애를 하는 것이 내게 어떤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거기다대고 어떻게 '싫어'라고 말하는 것이 '그래도 되는 것'이 된다는 건가. 그것은 내가 인정하고 말것도 아니고, 좋아하고 싫어할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그 사람이 사는 삶이다. 




싫어요, 를 말할 때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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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6-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마리 악어로서 공감
합니다. 저도 김어준 좋아합니다만
ᆢ 저런 무뇌아적 발언은 실망스럽네요. 그렇지만 김어준에게 실수를 지적하면 금세 인정할것같습니다. 문제는 아예 대화가 불가능한 경우겠죠.

넵, 공부하겠습니다^^
악어에서 인간으로 진화하기위해 ~

다락방 2016-06-20 17:28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실수를 지적하면 인정하고 고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예 대화가 불가능한 경우가 문제가 되겠죠. 그럴 경우엔 누가 뭐라 해도 귀에 닿질 않을테니까요.. ㅠㅠ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계속 하고 하고 또 해도 모르는 게 참 많은 것 같아요. 우리 같이 공부합시다!

낭만인생 2016-06-2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은 인간이 갖추어야할 최대 덕목. 또는 기본인 듯합니다.

다락방 2016-06-20 17:28   좋아요 0 | URL
네, 낭만인생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감을 갖추지 못한 채로 지식만 쌓는 건 정말 무용한 것 같아요.

rosa 2016-06-2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스북에서 이 책 소개글을 보고 나서 무조건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동성애에 있어서는 제 주변의 남성들 대부분이 적대적이었어요. 이상하게도 많은 여성들은 동성애자를 소수자의 문제로 인식하는데 말이죠. (물론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있지만요.)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지 모르겠어요.

다락방 2016-06-22 10:02   좋아요 0 | URL
로사님, 저도 그 생각 했어요. 대체적으로 남자사람들이 동성애를 더 싫어하고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더 극단으로 치닫는 표현도 하는 것 같고요. 김어준도 남자들이 동성애를 `더`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남성들은 다른 남성이 나를 성적으로 건드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무서워하는 거다` 라고 하던데(정확히 이런 워딩은 아니었고요 이런 뉘앙스였어요) 그런건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다가 사실 저는 일반적인 남자사람들이소수자에 대해 그동안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기득권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들이야말로 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졌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자연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시야도 넓어질테니 말이죠. 아무것도 공부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까 누군가의 존재에 대해 `반대한다` 라든가 `싫다`라는 말을 고민없이 함부로 내뱉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블랙겟타 2016-06-22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어프로젝트` 이 책 저도 읽어볼께요 !! 다락방님.

다락방 2016-06-22 08:24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이 이 책을 읽어본다 하시니 기분이 조크든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꼬 2016-06-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달라지는 것. 과거의 무지했던 내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게 공부의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열공합시다. 평생! (같이 합시다!)

다락방 2016-06-22 11: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래서 요즘엔 공부가 되게 재미있게 생각돼요. 더 많이 공부해서 좀 더 접근이 쉬운 책을 내가 한 번 써보는 건 어떨까, 하는 무모한 욕심 같은 것도 생기고요. 그래요. 우리, 계속 같이 공부해요!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수 있다는 거, 그게 바로 성장인 것 같아요! >.<

감은빛 2016-06-22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다락방님과 같은 이유로 김어준의 팟캐스트는 듣지 않습니다.
김조광수 감독님을 손님으로 불러놓고 자꾸 `싫다는 감정`에 대해 언급하는 건 예의가 아니네요.

김조광수 감독님은 참 멋진 분이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권 조례 토론회 기획 회의와 녹색당 선본 뒤풀이 자리 등
서너번 술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고,
바로 앞에 앉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오랫동안 차별에 맞서온 세월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화책 보관함에 담고 갑니다.
비록 한 마리의 악어지만, 차별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락방 2016-06-22 17:07   좋아요 0 | URL
저 방송만 듣고 판단한거지만, 김어준은 본인이 되게 똑똑하고 배려있고 이해한다는 자신감이 과잉되어 있는것처럼 보였어요. 그런 자신감이 다른 이들에게 쫄지마! 라고 말하게 만든거긴 하겠지만, 전 좀 듣기가 불편하더라고요. 저는 앞으로도 또 듣게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렇게 걸리는 부분은 계속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한편, 참, 완벽한 사람도 없고 내 입맛에 딱 맞는 사람도 없는 것인데 내가 너무 김어준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갖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요... 감은빛님 말씀대로 예의도 없게 느껴졌고 고민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늘 잘 읽어주시고, 잘 대꾸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요즘에는 리액션이 좋은 사람이 너무 좋더라고요. 리액션 없으면 너무 사람을 김빠지게 만들어요 ㅜㅜ
 
내가 원하는 시간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왜 이 책을 샀는지 역시 모르겠지만, '파비오 볼로'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것 같은데, 하고 저자의 약력을 보니 [아침의 첫햇살]이 이 작가의 책이더라. 그렇다면 이 책은 아주 좋지는 않겠지만 뭐 딱히 나쁘지도 않은 책이겠구먼,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재미가 없었고......그래도 오랜시간 등돌려 지냈던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을 보고 싶었고, 헤어진지 1년쯤된 사랑했던 여자의 마음을 다시 자신에게로 돌리는 게 정말 가능한지 보고 싶었기 때문에 끝까지 읽고자 했는데...이야...세상에...병맛도 이런 병맛이 없다.


아버지가 변하고 움직이길 바랐으면서 막상 아버지가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어쩔줄을 모르는 것도 찌질해보였는데, 이새끼가, 헤어진 애인이 한달 반뒤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1년만에 다시 전화를 걸고, 그녀를 사랑했었는데, 진짜 사랑했었는데 놓쳤다고 아쉬워하면서, 도대체 어떤 남자랑 결혼하나, 그 남자의 회사 앞에서 기다리다 그 남자를 보기도 한다. 아 진짜 짜증난다. 사랑한다고 여자가 말했을 때는 제대로 사랑도 못했으면서, 이제 자신 안에 그녀에 대한 사랑을 스스로 깨닫고서 하는 짓거리는 스토커 짓이다. 사흘 내내 여자 집앞에서 기다렸는데 여자를 만날 수 없자 '그녀는 그랑 동거를 하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와, 내가 여자였으면 무서워서 울었을 뻔. 이 작가의 전작 [아침의 첫햇살]을 읽을 때는, 어쩌면 남자 작가가 이렇게 여성의 섬세한 심리를 잘 그렸을까, 감탄했던 기억이 나는데, 남자는 병신으로 그려놨네. 게다가 마지막에 우연히 옛 연인을 마트에서 마주치고 자신의 집으로 가서 아이스크림 먹자고 조를 때부터 뭔가 짜증났는데, 그 집에 가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가겠다는 여자에게 나는 언제나 너만을 사랑했다가 졸 고백한다. 너무 무서웠다. 여자는 자신이 곧 결혼을 할거고, 너의 이 고백은 너무 늦었다고 하는데, 남자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오천번 얘기하고, 그녀에게 키스를 시도한다. 여자도 키스를 거부하지 않아 그들은 섹스에 이르게 되는데, 여자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계속 애원하고, 여자가 말해주지 않자 뺨을 때린다.


막판에 토나오는 이야기였어..



"날 보내줘……."

"날 사랑한다고 얘기해."

"그만해. 날 내버려둬. 난 네가 미워. 밉다고 그랬잖아."

나는 그녀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사랑한다고 말해."

"그만해……. 난 널 사랑하지 않아. 난 네가 미워."

나는 다시 그녀 안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그녀의 다리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따귀를 날렸다.

"다리 벌려."

"제발 그러지 마!"

또 한 번 따귀가 날아가고 다시, 그리고 또다시……. 어느 순간엔가 그녀가 저항을 포기했다. (p.380)



결국 여자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참..좋기도 하겠다. 뺨을 날리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서.

여자는 남자를 사랑했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와 사랑하는 동안 충분히 노력했었고,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었다. 그러나 남자는 그녀를 붙잡지도 않았었다. 이제 다른 사람과 살겠다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한 그녀를, 한달반뒤에 결혼하겠다는 그녀를, 집에 보내는 대신 나는 너를 사랑해,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윽박지르는 새끼를 보노라니.. 진짜 구역질이 난다. 참, 이걸 뭘 보자고 끝까지 읽었나 싶다. 다른 남자랑 결혼하겠다는 여자한테 계속 자기랑 살자고 말하는 남자라니...있을 때 잘할것이지....... 어휴.. 왜 남자랑 연애를 하는 것도 힘들고 헤어진 뒤에도 힘들어야 되는걸까. 헤어진 뒤에도 이렇게 다른 남자 있는 거 뻔히 알면서, 아니 아니까 더 미쳐가지고, 연락하고 찾아가고 기다리고 .. 게다가 사랑한다고 울부짖고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같이 살자, 이런 얘기를 하는 남자라니.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야?


뺨까지 때린 남자가 또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떻게 아나, 여자가 집으로 돌아가 접근금지 명령 같은 거 신청하고 스토커라고 경찰에 신고했으면 좋겠다. 개새끼. 헤어지고 나서까지를 걱정해야 하다니. 아, 사는 거 너무 힘든 것 같다. 저런 놈을 사랑했었다니. 한숨만 난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오늘 먹을 스테이크랑 와인만 계속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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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6-06-17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 ㅅㄲ 네요!
제가 읽고 욕했던 필용이 보다 몇배 더 썩은 놈

루쉰P 2016-06-1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짜증나 날도 더운데 짜증나 토욜인데도 알바하고 있느데 짜증나 ㅋ 정말 지저분한 새끼에요 제기랄 기분 더러워졌어 주성치를 생각해야지

singri 2016-06-18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ㄱㅅㄲ 네요 . 수박 18통 ㅡ
 















주변의 굉장히 많은 사람들도 좋아했던 책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1도 안나와서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그만 읽을까, 를 생각하다가, 에이 그래도 절반 넘게 읽었는데 끝까지 읽고 팔자, 하고는 계속 읽어나갔다. 중간에 참을 수 없어 북플에 '읽고있어요' 표시를 하고는 '재미없다'고 댓글을 달았었고. 그런데 그 댓글을 달고나서 이 책이 급격히(!!)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글쎄, 이게,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이 있네요???? 식상한 표현이지만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역자후기에 역자도 그렇게 써놨더라. 그 반전부터 갑자기 재미있어지고, 반전을 읽다보니 전의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차례대로 지나가면서 아,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 아, 그게 그 말이었구나, 하게 되더라. 오..소름... 역시 책은 중간에 덮으면 아무 의미도 아니지만 끝까지 읽고나면 생각할 게 많아지는구나. 물론 여전히,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 1도 나오지 않고, 이해되는 인물도 없어서 이 책이 내게 좋은 책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책임에는 틀림없었다. 영화에서 어떻게 표현될지도 궁금하고.


이게 젊은이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는지, 유사 파이트클럽이 세계 곳곳에 생겼다고 한다. 나는 내 안에도 폭력성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 폭력성을 바깥으로 내보이는 걸 두려워한다. 맞으면 아픈데 어떻게 다른 사람 아프라고 때릴 수 있단 말인가. 비단 육체적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인 폭력도 내 스스로 절제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파이트클럽의 회원들은 어느 하나가 질 때까지 미친듯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댄다. 이런 내용을 읽어나가는 건 쉽지가 않다. 아니, 나는 이걸 본다고 해서 이렇게 하고 싶질 않은데, 어떻게 세계 곳곳에서 유사 파이트클럽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대체 그 젊은이들은 뭔가,, 왜때문에 책을 따라하나,, 하다가....



내가 얼마전에 베트남 국수여행 책 읽고 베트남에 국수 먹으러 다녀왔던 일이 떠올랐다. 음...나도 책 따라 했구먼...내가 남을 이해 못한다고 하면 안되는거구먼... 아마 파이트클럽 따라한 사람들은 베트남 여행가서 국수 먹는 걸 따라하진 않겠지..우리 사이엔 그렇게 머나먼 간극이 있는거겠지.


간극에 대해 얘기하다보니 지난 여름에 스페인 여행 다녀온 친구가 생각난다. 스페인에서 매일매일 클럽에 가 놀았다고 한다. 애초에 거기에 간 목적이 클럽이었다고. 나는 진짜 이말을 듣고 어마어마하게 놀랐는데, 나는 외국에 가서 클럽에 갈 생각을 진짜 1도 못해봤고, 외국에 가서 누군가 클럽에서 놀거란 생각도 1도 안해봤기 때문이었다. 내 주변의 다른 친구들 모두 외국에 가면 서점에 가고 싶어하는데, 나 역시 서점은 어디있을까, 하면서 서점 찾아가기에 바쁜데, 누군가는 내가 서점을 찾고 관심있는 것처럼 클럽에 관심있고 또 외국에서도 클럽에 가려는거구나. 그러고보면 그 친구는 한국에서도 클럽에 자주 가는 친구긴 하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로 움직이게 되는거구나. 나는 우물안의 개구리였어. 내 관심으로만 주변을 생각했어. 우리 사이의 간극. 그러니 파이트클럽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베트남에 국수 여행을 안가겠지...



어쨌든 충격먹은 책인데 마지막에 이 책이 나오고나서의 후기가 있다. 작가 후기. 작가 후기에 유사 파이트클럽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는데, 내가 또 놀랐던 건 바로 이 얘기.



몇 년 후 런던 출간 기념회에서 젊은 남자가 나를 한쪽으로 불러 냈다. 그는 별 다섯 개짜리 레스토랑의 웨이터였다. 런던에서 별 다섯 개를 받은 레스토랑은 달랑 두 곳뿐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음식에 몹쓸 짓을 해대는 웨이터들을 묘사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내 책을 읽기 훨신 전에 그는 동료들과 유명 인사들에게 서빙할 음식에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 음식을 먹은 유명인사가 누구였는지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절대 얘기할 수 없단다. 

그럼 책에 사인을 해주지 않겠다고 하자 그가 가까이 와보라고 손짓한 후 속삭였다.

"마가렛 대처가 내 정액을 먹었습니다."

그가 한 손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쫙 펴며 말했다.

"최소한 다섯 번 이상……." (작가 후기, p.279)




책의 본문에 주인공이 웨이터로 일하면서 음식에 성기를 삽입하는 부분이 있다. 삽입한 뒤에 빼고 그 음식을 내가는 장면. 그 장면을 읽으면서도 '으윽, 어쩌면 이런 일이 진짜로 있을 수도 있을텐데..' 싶어서 이래가지고 레스토랑(외의 숱한 식당들) 음식을 어떻게 먹나 살짝 걱정했었는데, 저 일화까지 읽고나니, 아이쿠야,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는 이상 어딘가에서도 어떻게든 살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먹는 음식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는채로 먹는다는 것은, 신뢰가 없이는 안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장사하는 음식점이라고 해도 음식에 무슨 짓을 할지 어떻게 알어. 아이쿠야.. ㅠㅠ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갈 곳은 없다. 저 일화, 쓰지 말지 그러셨어요 ㅠㅠ 

그러고보니 여러차례, 나는 처음 만나는 남자와 술을 마시다가 '설마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술에 약을 타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휴...



어쨌든 중간을 넘어서 재미있어지는 책이었다. 어휴.. 끔찍하지만 ㅠㅠ






어제는 자다가 새벽 세시에 깼다. 세시 무렵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겠다. 어쨌든 그래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웠는데, 잠깐 스마트폰을 들고 만지작 거리다가, 하릴없이 트윗에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같은 거 써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런데...잠이 오질 않더라. 일전에 어딘가에서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면 잠을 못자게 되니, 가급적 자기 전에는 보지 말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아아, 내가 괜히 쓸데없는 트윗은 작성해가지고... 잠을 못자 ㅠㅠ 어제는 정말 지친 하루였는데 ㅠㅠ


어제는 이래저래 진짜 너무 지쳐서 곧장 쓰러져 자고 싶었지만, 일단 집에 가자마자 밥을 먹었다. 엄마가 해준 닭볶음탕이 너무 핵좋은맛이라 두 그릇이나 먹고, 지난주에 대전에서 만난 친구가 준 약과도 먹고, 치즈도 먹고, 오렌지도 먹고, 아아, 이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중고주문 두 권 들어온 게 있어서 포장해 편의점에 가 택배를 보내고, 들어와 샤워를 하고, 그냥 자고 싶었지만, 빨래를 해놓고 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아서 세탁기를 돌렸다. 아아, 빨래만 아니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탁기 버튼을 눌러놓고 샤워를 하고, 내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 하고, 마른 빨래를 걷어서 개고, 다 된 빨래를 빨아 널었다. 빨래만 아니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데 뭐가 힘드냐' 하는 사람들한테 저주를 내리고 싶다. 콧털 삐져나와라. 삼년동안 내내 콧털 삐져나와라.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세탁기의 버튼을 작동시키고, 다 된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어 빨랫대에 너는 것은, 사실 그 과정 자체가 힘이 드는 노가다는 아니지만, 분명 가사노동이고, 이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일 경우에는 분명 스트레스를 받는다. 휴..


설거지가 제일 싫었는데 빨래도 싫어..가사노동 싫어, 싫어!! 해봤자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야 ㅠㅠ




나는 내 몸을 좋아해서 그다지 다이어트에 대한 의욕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별 후에 살이 쪄버려서... 어휴, 이제 정신차리고 좀 빼야지, 생각은 했는데, 아아, 의욕이 1도 안생긴다 진짜. 그냥 내 몸을 사랑하며 사는 게 답인듯.. 언제나 내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남동생한테 '야, 다이어트 해야되는데 진짜 못하겠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졸 스트레스야' 라고 하니, '누나 이제 뺄 생각은 하지말고 그냥 유지라도 할 생각해, 근육 운동 조금씩 해주고, 그렇게 살자' 한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누나 이제 동기부여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 못하는 게 당연하지..' 라고...  


다이어트는 ... 뭐에영?


안해, 그딴 거. 나는 자유롭게 살거야. 어제 그랬고 지난 달에 그랬던 것처럼.




엊그제 생활의 달인을 보다가 식빵 달인을 봤는데, 밤식빵을 반으로 딱 가르니까 밤이 진짜 엄청 많더라. 그걸 보는 순간부터 밤식빵이 너무 먹고 싶어져서, 오늘 출근길에는 양재역에 일찍 도착했겠다, 사무실까지 걸어가면서, 도중에 있는 파리바게트에-파리바게트 싫은데 이 제과점 밖에 없다 ㅠㅠ 파리바게트 넘 싫어 ㅠㅠ- 들렀다. 그러나 밤식빵이 없었다. '밤식빵은 이 시간에 안나와요' 하더라...아 일찍 출근하는 자에게는 밤식빵이 주어지질 않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면서?? 말짱 헛소리다. 일찍 일어나면 졸리기만 해. 먹고 싶은 걸 먹을 수도 없어. 엿같다...역시 아침형 인간 좋을 거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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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6-1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형 인간 좋아요~
그 빵집이 잘못된 거예요.
아침이라면 밤식빵을 가져다 놔야죠!!! ㅎ

저는 이 책의 별미 올려주신 작가 후기(우웩!) 읽었으니 이 책은 패쓰할래요~
파이트 클럽이라... 흐흠..

주사 맞은 양쪽 엉덩이 어쩌신지...
궁금해요~~ 이제 괜찮으신건지....

다락방 2016-06-15 11:27   좋아요 0 | URL
점심에 밤식빵을 사먹어야겠어요. 물론 점심 먹고 실실 걸어서 사가지고 와서 간식으로 먹어야지요. 히힛. 아 너무 먹고싶어요.

이 책은 패쓰해도 될것 같아요. 사실 흥미롭기도 하고 반전 때문에 재미있기도 하지만, 읽기에 힘들거든요. 저도 몇 번이나 접을까 생각했던 책이라...무엇보다 저는 몰입하고 공감해야 소설에서 재미를 찾는 사람인데 이 책은 그게 불가해서.. 하아-

주사 맞은 양쪽 엉덩이는 무사한데, 목은 낫질 않네요. 어제 다른 병원도 퇴근 후에 들러서 바르는 약도 받아왔어요. 돋보기로 보고서는 알러지라고 하는데, 대체 어디에서 온 알러지인데 이렇게 낫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오늘 아침에 싹 없어졌다가 열시이후에 다시 생겼는데, 커피..도 영향이 있나 싶고요. ㅠㅠ

singri 2016-06-1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후기 읽으니 웩 ㅡ 영화로만 만족하고 패스 ㅋㅋㅋ저같은 경우는 빨래를 개는거까진 문제가 없는데 아이옷 남편옷 종류별로 옷장에 넣는게 정말 귀찮아요ㅡ ㅜ

다락방 2016-06-15 11:27   좋아요 0 | URL
저도 빨래 개서 엄마옷 남동생옷 아빠옷 내옷 따로 장에 넣는 게 너무 싫어요. 짱싫어! 그래서 저는 개서 소파에 올려둬요. 알아서들 가져가라고. 아니 빨아서 개주기까지 했는데 가져가는 거 못하냐? 싶은 마음에 그냥 둬요. 제것만 쏠랑 가져가고요 ㅋㅋㅋ 남동생이 결국 아빠옷 엄마옷 제옷, 다 제자리를 찾아주곤 하죠. ㅎㅎㅎ

건조기후 2016-06-15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식빵은 부산에 겐츠라고 맛있는 빵집이 있는데 여기 밤페스츄리가 짱입니다 ㅜㅜ 소시지빵도 정말 맛있고요. 갑자기 무지하게 땡기지만 사러 가기는 또 귀찮.. 일단 가서 막 쓸어담으면 정말 행복할텐데 가는 거까지가 행복하지가 않네요 ㅋㅋㅋ

파이트클럽은 내용이 생각보다 훨씬 어둡고 더럽군요. 옛날에 이 영화 브래드 피트랑 에드워드 노튼이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때리는 거 싫어서 안 봤던 기억이 나요. 폭력적인 걸 못 보는 건 아닌데 그냥 때리기 위해서 때리는 걸 봐서 뭐하나 싶고. 때리는 거 정말 싫어요 다락방님. 내가 아픈 것도 남이 아픈 걸 보는 것도.

다락방 2016-06-15 14:38   좋아요 0 | URL
전 점심을 맛없게 먹고(기분나빠ㅜㅜ) 들어오면서 밤식빵 사왔거든요. 배가 부르지만 조금 뜯어 먹었더니 너무 맛있어서, 오오, 밤식빵 좋다! 했어요. 그렇지만 밤 잔뜩 넣은 맛있는 밤식빵을 먹어보고 싶어요. 파리바게트 밤식빵은 밤이 걍 몇 개 박혀있는 수준이네요. 싫어.. 밤 좀 더 넣어!!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데도 굳이 밤식빵 사다 먹었어요. 오늘 먹지 않으면 먹을 때까지 계속 생각날테니깐요..

저는 파이트클럽 관심 안가졌었는데, 책 읽고나니까 관심 안가졌어도 되겠다 싶고요. 정말 죽이 되도록 때려요 ㅠㅠ 말씀하신 것처럼 내가 아픈 것도 남이 아픈 걸 보는 것도 너무 싫어요. 책의 반전이 참 재미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폭력이 폭력이 아니었다, 이런 게 아니고 폭력은 여전히 그 자리에 폭력으로 있으므로 좋아할 순 없는 작품이에요. 꽤 세서 ㅠㅠ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에요. ㅠㅠ

2016-06-16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17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6-17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건 영화가 더 좋은 것 같아요. 전 영화를 먼저 보고, 나중에야 원작소설이 있다는 걸 알았고 최근에 읽었어요. 맞고 때리는 건 일종의 오브제 같고,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좀 다른 듯. 영화가 나오던 당시의 개똥철학도 적절하구요..9-11이후라면 나오지 못했을 영화가 아닌가 싶네요.ㅎ

다락방 2016-06-17 08:36   좋아요 0 | URL
네, 분명 맞고 때리는 건 이 책에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이 주제는 아니지요. 파이트클럽 멤버들이 세상에 대한 테러를 저지르면서 그러잖아요. 우리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게 하는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우리를 드러내는 게 낫다고요. 소외된 사람들, 하층민의 사람들의 어떤 울부짖음 같은 게 보였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말씀하신 것처럼 더 늦었다면 영화화되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억울한 사람들,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파이트클럽을 자신들도 만들고 싶어한 것은 그만큼 그 사람들의 울분을 잘 반영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해도 저는 정말이지 너무 잔인하고 ㅠㅠ 보고 있기가 괴로웠어요. 이걸 영상으로 보면 더 힘들지 않을까 싶어서 영화를 볼 생각을 못하겠어요 ㅠㅠㅠ

감은빛 2016-06-2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만 봤어요. 영화는 제법 명작이라고 소문이 났던데요.
한때 맞고 때리는 일이 일상이었던 저는 제법 재밌게 봤어요.
이 영화에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특정 이미지를 삽입해서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마지막에 브래드 피트의 성기가 잠깐동안 화면을 가득 채웠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황당했던 기억이 나네요.
원작이 있는 지는 몰랐습니다.
영화의 반전과 책의 반전이 같다면 굳이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저로서는 책이 궁금하기는 하네요.

다락방 2016-06-22 16:29   좋아요 0 | URL
책의 반전이 저는 정말 놀라웠고 그때문에 재미있었는데, 영화의 반전이라면, 음, 아마도 같지 않을까요? 혹시 다를까봐 반전을 언급할 수가 없네요. ㅎㅎㅎㅎㅎ
책도 영화도 명작이란 말을 엄청 많이 들었거든요. 왜 그렇게들 부르는지 알것 같긴 하지만, 저로서는 명작이라고 부를 수가 없네요. 절반을 지나서까지 진짜 불쾌하기만 했는데 ㅠㅠ 반전을 맞닥뜨리고 나서부터 재미있어진 건 사실이에요. 그나저나, 영화로 보셨군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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