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도 저자의 전공인 세계문학 처럼 볼 수 있을까, 그런 시도 하에서 1950년 이후 열 명의 여성 작가의 소설 세계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를 기존 국문학 평론가들의 전문'론'은 일단 놓아두고 풀어간다. 재미있다. 처음 작가는 '비누 냄새' 강신재, 이어지는 의외의 전혜린.
저자 로쟈가 박경리, 은희경, 신경숙 작가에게 내리는 판결이 매섭게 느껴졌지만 수긍이 갔다. 신경숙 작가 장에선 꽤 단호하게 작품세계의 빈약성, 표절 문제를 언급한다. 사회적 상황을 묻어두고, 혹은 괄호 안에 넣은 채로, 자기가 아는 고만고만한 촌 이야기로는 타자로, 도시로, 자본문제나 등등 거대한 장편소설을 만들 수가 없다고. 90년대의 포기와 회피의 정서와 함께 작가와 출판사들의 책임도 언급한다. 또 안일한 작품 세계가 얼마나 촌스러울 수 있는지도 확인한다. <엄마를 부탁해>가 답없는 지경의 소설이었는데 얼마전 아버지 이야기까지 나왔으니 입맛이 쓰다. 그 와중에 박완서 작가에 대한 상대적 상찬은 의외이면서도 수긍이 갔다. 내적 갈등으로 성장하고 쉬운 도피로 맺지 않는 적극성을 요구하는 점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계속 '근대 소설이란 ...' 라는 말은 갑갑하다. 그래서? 세계문학의 틀로 읽고 평해서는 점수를 못 받으니 이 소설들은 영 아닌건가. 더해서 통속소설로 시작해서 문단 거물 대접을 받는다는 식으로 박완서 작가와 박범신을 함께 놓았는데, 잠깐만요, 를 외치고 싶었다. 박범신은 그나마 순문학이라고 나온 장편들 수준이 어딜 봐서 박완서 작가에게?! 더해서 황정은 소설 속 '요강' 에피소드가 덜 현실적이며 '고작'이라고, 그런 단편적인 일로 남자(와 일족)을 내칠 수는 없다고 하는데, 아이고, 난 딱, 알아보겠던 장면이었다. 그 요강, 혹은 방석, 혹은 밥 먹는 장면(과 소음) 등등, 기회를 주었더라면 계속 할 수가 없었겠지.
이미 남자 작가편도 나왔는데 김훈 장을 추가로 개정판을 냈다고 하니 찾아봐야겠다. 김훈의 '벼리는' 문장은 다들 감탄하지만 그의 소설 속 세계가 아귀가 맞지 않거나 장편 마무리가 흐지부지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소설 속 사회와 한국 사회를 해설하는 로쟈의 글은 한국 단편문학 전집 (황석영 편저, 문학동네)에 실린 황석영 작가의 해설을 더 잘 정리해 놓은 느낌도 든다. 단순 소설 뿐 아니라 시대상을 짚고, 분석하며 작가의 개인사도 연결 시킨다. 오정희 작가의 또다른 모습을 만난 건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다.
근대 소설, 세계문학 이라는 틀로 고민하는 (그래도 임신 출산 가계도 등 쉬운 도구는 활용하는 영민함!) 저자 로쟈는 계속 한국 근대 소설의 (비근대적이며 퇴행적인) 모습에 안타까워한다. (그래도 황정은 작가를 썰어놓은 칼질이 무섭다) 계속. 그렇지만 '계속 해 보겠습니다'라는 말이 마지막 장의 황정은 소설 제목인 동시에 로쟈의 말이고, 실은 2차 독자인 내 맘이기도 했다. 계속 이어질 한국 소설 세계와 로쟈의 깐깐한 독법을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