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성을 그린다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소설 <메리>를 읽었다. 번역도 줄거리도 인물도 매우 딱딱하다. 지금 21세기에 읽기에 주인공 메리는 그리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작가의 노력이 보이기는 한다. 많이. 


사랑받지 못한 가정에서 외롭던 메리는 상대적으로 빈한한 가정의 '신경증'이 있는 친구 앤에서 정성을 바친다. 그리고 원치 않은 결혼, '혐오감'을 일으키는 2살 연하의 남자와 정략결혼을 하게된다. 순전히 친정집의 재산을 지키기위해서. 다행히 결혼 직후 남편은 유학길에 오른다. 여기 까지 읽으니 우리나라 개화기 배경의 신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애인과 돌아오지 않고 소설 끝까지 거의 투명인간 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냥 대척점으로 저짝에 있다. 메리의 혐오하는 상대로.


메리는 부모를 잃고 친구 앤에 더욱 정성을 쏟는다. 앤과의 관계에 대해선 모성애를 베푼다고 되어있지만 모성애를 받으며 자라지 않은 메리는 그저 배풀고 행복하다. 하지만 어쩐지 일방적인 애정 같다. 휴양지에서 헨리라는 역시 병약하고 사연 품은 남자를 만나는데, 메리는 앤을 떠나지 않고, 앤의 병이 악화되어 버린다. 휴양지 호텔에 모인 부유한 여인들과 남자들 모습은 프루스트의 발벡 여행이 겹쳐진다. 휴양지에선 만남과 이별이 더욱 강렬하다. 친구의 장례식 후, 슬픔에 괴로워하다 영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메리.영국행 뱃길은 험하고 선실에서 죽음 같은 잠 속에 도망치는데 괴로움은 작은 노트에 글을 쓰면서 천천히 달랜다.  어쩐지 철학적인듯 아닌듯 영혼과 감정에 대해서 토로하는 메리. 이때부터 메리는 '글을 쓰는 여자'가 된다. 여행길에 만난 불우한 여인, 영국에서 만난 불우한 가족들 더하기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으로 존재 의의를 찾는 메리, 하지만 사람들의 배은망덕, 악행, 더러움에 분노마저 느끼며 지쳐간다. 부유한 남편으로부터는 편지도 경제적 도움도 받지 않는다. 홀로 서기 시작하는 메리. 영국에서 다시 만난 헨리는 병세가 깊고, 메리는 다시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헨리의 어머니가 아들의 병에 대해 자책하는데 (내가 얠 어릴 때 덜 이뻐했어요. 엉엉엉) 그녀를 위로하며 함께 하기로 하고, 남편과 갑작스레, 드디어 만나는 메리. 그에 대한 혐오는 몇 년이 지나 더 커져있다. 이 혐오는 어디서 오는 걸까. 관계의 시작이 돌이킬 수 없는 굴욕이었기 때문인가. 메리는 도저히 그를, 그 가볍고 교양없는 그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결혼 따위 없는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일, 남을 돕고 선행을 베푸는 삶을, 글을 쓰면서, 사는 상상을 한다. 그런데 몸이 약해서 그 삶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다. 


소설로도, 등장인물로도, 마음이 가질 않는다. 차라리 남편과 만났을 때 시원하게 싸우기나 했으면 좋았을걸. 이름에서 (작가 이름에도 쓰이고 흔한 이름이지만) 종교적 연상이 되는데 소설 중간에서 신앙과 신에 대한 부분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작가 이름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다. 여기에 밑줄. 불우한 여성을 구하는 장면에선 <오로라 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오로라 리는 더 사연 많고 남녀관계 복잡하고 신파로 가득하지만. 



남은 두 이야기, 마리아와 마틸다가 이보다는 재미있기를 ... 


덧: 밑줄긋기를 정리하면서 다시 훑어보니 저자가 메리를 지성적인 존재로 그리려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설 전체에선 그 특성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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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5-15 0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리아도 그닥..... ㅠㅠ

유부만두 2021-05-15 10:09   좋아요 0 | URL
아... 그럼 남은 희망은 ‘소설가‘의 ‘소설‘ 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