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읽었을 때 서재 친구들이 '1984'는 더하다며 말렸는데 그 말을 들을껄 그랬다. 꾸역 꾸역 읽다가 이걸 필독서 목록에 올려둔 학교 선생님들이 원망스럽고, 차라리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읽을걸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고, 아 이럴걸 알았지, 그런데 이 찜찜함은 뭐냐 이 드러븐 기분은. 


설정이 넘치게 많고 (작가 생각에 독자가 잘못 알아먹을까바) 그 설명이 이어진다. 주인공 윈스턴이 일기를 쓰고, '금서'를 읽고, 그가 오브라이언과 대화할 때 특히나. 반복되는 설명이 많아서 지루한데 그건 윈스턴이란 인물의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사십대 후반의 그가 이십대 줄리아와 밀회를 가질 때, 그가 어머니에 대해 회한어린 기억을 떠올릴 때는 뻔하게 익숙한 기분도 든다. 줄리아가 열여섯에 처음 만난 상대는 육십대 할아버지, 그는 이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자살했다고했다는 것도. 윈스턴은 구질구질 감상적이며 자신의 기억과 역사에 대해 고민하는 것 같지만 멍청할 만큼 쉽게 남을 믿는다. 그 문방구 아저씨, 오브라이언, 줄리아 등을 금세 믿을뿐아니라 반역도 방황도 바로 저질러버린다. 그가 오브라이언 앞에서 맹세한 걸 보면 그가 대의를 위해서 형제단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그가 하겠다는 폭력, 패륜의 목록은 매우 긴데, 그걸 감당하고 이루려는 목적이 ...?그러는 동안 윈스턴은 옆집 여자, 빨래 너는 여자, 줄리아 등 여자들을 향해서는 품평질도 멈추지 않는다. 


인상적인 장면은 감옥에서 윈스턴이 옆집 남자 파슨스를 만날 때다. 파슨스는 응가를 참지 못하고 바지를 내리고 일을 본다. 윈스턴은 얼굴을 감싸는데 곧바로 텔레스크린에서 "감옥에서는 얼굴을 가리면 안된다!"며 불호령이 떨어진다. 파슨스는 응가 한무더기를 싸지르고 (냄새 포함) 다른 감방으로 옮겨진다. 엉덩이는 까도 되지만 얼굴을 가릴 순 없다.


소설 속 세뇌 과정 이후가 조금 더 다듬어졌더라면, n회차 시술에 대한 디테일 묘사가 있었더라면, 관심법 시전하는 오브라이언이 조금 더 그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그래봤자.... 현실이 더 다이내믹 디스토피아인 건 불변. 


책이 지루해서 실망스러웠지만, 야, 나도 1984 완독했다! 외쳐본다. (그런데 피할 수 있으면 피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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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04 14: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읽은 눈 여기 있습니다. ㅎㅎ

유부만두 2022-09-04 20:40   좋아요 3 | URL
이 책에는 여러 상찬의 말이 많지만 ... 어쩔 수 없이 시대와 작가의 역량에 한계를 지닌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읽으셨을줄 알았어요. 학생들에겐 숙제 내셨습니까, 혹시? .... (그러지 마세요)

바람돌이 2022-09-04 21:18   좋아요 3 | URL
저도 나름 인기관리라는걸 합니다. 그 관리 중의 하나가 숙제가 뭐야? 그런거 안내줍니다. ㅎㅎ

유부만두 2022-09-04 21:36   좋아요 1 | URL
선생님!!!! 짱이세요!!!!

새파랑 2022-09-04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루하셨군요 ㅋ 전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ㅎㅎ 그 상상력이 놀라웠습니다~!

유부만두 2022-09-04 20:42   좋아요 2 | URL
새파랑님 재미있으셨다니 다행이에요. (괴로운 건 저 하나로 족합니다. ㅜ ㅜ ) 전 주인공도 줄리아도 등장 인물 모두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어요. 새파랑님께 인상적인 이 소설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요.

새파랑 2022-09-04 20:50   좋아요 2 | URL
전 빅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는 그 음울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ㅋ 마지막 부분에 서로 배신하는 부분도 좋았고. 좀 작위적이긴 하죠? 동물농장도 좀 그랬던거 같긴 합니다 ^^

유부만두 2022-09-04 20:56   좋아요 2 | URL
그쵸... 계속 춥고 음울해요. 서로 배신한 거 .. 은근 쓸쓸했죠. 그런데 주인공이 줄리아 뻣뻣해지고 못생겨졌다고 해서 미웠어요. (아니, 이 늘그니가!!!!) ㅎㅎㅎㅎ

Falstaff 2022-09-04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여튼 <1984>, <동물농장>은 이렇게 정리가 된다니까요!
˝유통기한을 넘긴 알레고리˝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09-04 20:43   좋아요 3 | URL
그러니까요! 선생님. 근데 알레고리....도 아닌거 같았어요.
그래도 숙제 끝내서 홀가분 합니다. (검사 도장 찍어주세요)

잠자냥 2022-09-04 22:09   좋아요 2 | URL
알레고리가 없어서 더 촌스러움;;;; ㅜㅜ

기억의집 2022-09-04 2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6월쯤에 1984 오디오북으로 들었는데.. 전 조지 오웰의 여성 인식이 이 정도였나 실망스러웠어요. 첫 장면부터 강간을 이야기 하지 않나.. 어렸을 때 읽었을 때는 잘 몰랐던 것을 오디오북으로 들으면서 조지 오웰이 여성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알게 되었고 코끼를 쏘다 에세이에서 백인 지배하의 제국주의의 폭력이 무색해지는 대목이 제법 있어서 좀 놀랬어요….

유부만두 2022-09-04 20:37   좋아요 1 | URL
그쵸. 전 줄리아의 이야기나 어머니 또 이웃 여자를 대하는 주인공의 시선, 묘사가 너무 혐오스러워서 아, 이 정도였나, 놀라면서 읽었어요. 더해서 중국/동양의 묘사가 너무나 유럽중심이라, 아무리 깨인(깨어있다고 자신하는) 작가라도 유럽 백인 남자는 어쩔 수가 없나 싶었어요.

잠자냥 2022-09-04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 시대에 읽기엔 참 낡은 부분이 있죠. 오웰의 대표작들이 좀 그런 거 같아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2-09-05 08:04   좋아요 2 | URL
정말 그래요. 동물농장은 얇기라도 했지....하아....
그래도 묵은 숙제를 해치웠다는 뿌듯...하지도 않아...하아...

책읽는나무 2022-09-05 1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물농장만 읽고 1984는 아직 안 읽었어요.
그런 내용?(안 읽은 책이라 띄엄띄엄 읽었습니다만) 인가요??
음....집에 책은 있긴한데 나중에 읽긴 해봐야 그 느낌 알게 되겠죠?ㅋㅋㅋ
그나저나 이제 아드님께 놀림 받지 않으시겠어요. 조지 오웰 책 두 권이나 읽었으니까요^^

유부만두 2022-09-07 06:04   좋아요 2 | URL
네, 이제 아이한테 다른 책 읽으라고 할 수 있어요. 무슨 책 이야기만 하면 ‘엄만 1984 읽었어요?‘ 라고 해왔는데 ... ㅎㅎ

mini74 2022-09-05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고딩때 이 책 읽었어요. 멋진 신세계랑 같이 읽었는데 멋진 신세계가 전 더 좋았어요. 동물농장이랑 어린이만화책이 나왔는데 돼지들 막 귀엽게 생기고 ㅎㅎㅎ ㅠㅠ 그게 왜 꼭 만화책으로까지 초딩들이 봐야하는지 모르겠어요 ㅠㅠ

유부만두 2022-09-07 06:06   좋아요 1 | URL
멋진 신세계도 만만치 않게 다크한 디스토피아 소설이죠. 그건 어느정도 소설 같아서 읽었는데 1984는 꽤 힘들었어요.
미니님 말씀에 동감이요. 이 소설들은 아무리 다듬고 만화로 만들어도 어린이용은 아니죠. 그럼요.

psyche 2022-09-23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옛날에 읽어서 저런 내용이 있었나? 했네. 기억이 하나도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