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해요. 경품 염장 페이퍼는 당분간 쓰는 일이 없지 싶었어요.
알라딘 투명우산은 처음에 받아봤을 때,
페이퍼를 쓰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이전 페이퍼에 슬쩍 언급하고 지나갔죠)


그런데, 어제, 비내리던 날,
엄마집에 가려고 반바지를 입고, 조리를 신고, 무심결에 집을 나서
우산을 탁, 펴는 순간, 그만 헤벌쭉. 기분이 좋아져버렸어요.



꺄아. 이렇게 깜찍할 수가. 발랄한 무늬도 무늬지만,
그 위로 맺힌 물방울 동그라미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만 탄성을 지르고 맙니다.



타닥, 타닥, 탄탄한 우산 비닐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참 예쁩니다.  
우산이 빗물과 만나 만드는 동그라미들을 숑, 아래로 떨어뜨려보면,
매끈한 우산 표면 위를 참 기분 좋게 타고 내려가는 빗물 동그라미.


비오는 날, 월드컵 전이라 도로가 꽉 막혀,
차를 정말 오래 기다렸는데, 덕분에 기분 좋게 기다렸어요.


예쁜 우산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비닐 우산에 특별히 애정을 갖게 되는 이유는,
정말 비와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비맺힌 유리창 밖을 보는 기분으로
하늘을 만날 수 있어서이기도 하지요.

원래, 아무것도 없는 투명 비닐 우산을 좋아했는데,
이렇게 깜찍한 무늬가 있는 비닐 우산도 참 좋네요.

아무래도, 서른 넘은 아가씨 취향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죠.



그나저나, 어린이 경품으로 주는 락앤락 물통도 갖고싶던데 ㅜㅜ
간염에 걸리기 전 장바구니에 담아뒀다가, 결국 주문을 못하고 무한정 미뤄두었던
크베타파코브스카의 책을 주문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색깔놀이를 지인의 집에서 보고 마음을 뺏겼었는데, 이 책은 품절
그리고 머뭇거리던 새 숫자놀이도 품절이 되었더라고요. ㅜㅜ

늦기전에 책도 사고, 물통도 받아야겠어요. 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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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10-06-14 0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물통.. 저도 탐나요. 간만에 주문한 책 어제 도착했는데;; 또 4만원을 채워야 하는지;;

우산 귀엽죠? 흐흐- 저도 받았어요 =)

웽스북스 2010-06-15 22:57   좋아요 0 | URL
네네. 김지님댁 이쁜이들이 쓰면 매우 잘어울리겠어요.
물통 오늘 왔어요. ^-^/

무해한모리군 2010-06-14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냥팔이 소녀 표지 너무 예뻐요!
우산 저도 받아야겠어요... ㅎ

웽스북스 2010-06-15 22:58   좋아요 0 | URL
그죠. ㅎㅎㅎ 책도 그로테스크한게 괜찮아요.
나중에 자식 낳으면 보여줘야지 (강하게 키워야해)

다락방 2010-06-14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산 너무 예뻐요! 아, 안그래도 오늘 집어 들고 나온 3단 우산...망가져서..창살 하나가 튀어나와 신경에 거슬렸는데, 아 비닐 우산 예쁘네요. 흑흑

웽스북스 2010-06-15 22:58   좋아요 0 | URL
아. 어쩌다가 우산이. ㅜㅜ

다락방 2010-06-1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놔.
우산 받을라고 책 장바구니에 넣었더니 93,000원어치네요..orz
시디는 넣지도 못했는데!!

웽스북스 2010-06-15 22:5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최고. ㅋㅋㅋㅋㅋㅋㅋ
우산번개라도 한번 해야되는거 아닐까요

yamoo 2010-06-14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산 디자인이 참 깜직하군요^^ 비닐우산도 요즘 비닐우산은 가볍고 좋은 거 같아요..엔날의 그 퍼런 1회용 비닐우산하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아..숫자놀이 책이 절판됐나보군요..하하..근데, 비스무리한 책은 많습니다. 위의 숫자놀이 책과 똑같다 보시면 되는데..이런 책은 인터넷 서점에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형서점 특히 반디문서 코엑스점 가면 부지기수로 만날 수 있다는^^

웽스북스 2010-06-15 23:0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예쁘고 좋아요.
근데 반디에 가면 크베타파코브스카의 숫자놀이가 있다는 건 아니죠?

레와 2010-06-1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나도 받았어요! 이힛~

근데 여긴 비가 안와요. ^^;

다락방 2010-06-14 17:28   좋아요 0 | URL
아니, 이여자. 우산 언제 받은거에요? 뭐사고?
왜 나 모르게 책 사는거죠? 왜? 왜?

웽스북스 2010-06-15 23:0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레와님 앞으론 다락방님한테 꼭 보고하세요.

2010-06-14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06-1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웬디양에게 어울릴듯한 우산이네요.
내가 쓰면~~~~~~~~ 안 이쁘겠죠?ㅜㅜ
그냥 땡땡이로 만족해야지~~~~

웽스북스 2010-06-15 23:01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좀더 우아한 꽃무늬로~ ㅎㅎ

순오기 2010-06-16 03:29   좋아요 0 | URL
여기 올린 우산 사진 포토리뷰에 가져다 써도 될까요?
야 비온다,라는 책에 딱 어울릴듯해서요.^^
 
트위터...



블로그든, 뭐든, 하다 보면 자기 원칙 같은 게 생기는데,
나도 트위터에서 나름 지키고 있는 원칙이 있다. 


그건,
흥미로운 대상이 아니라면 팔로우하지 않는다!!!

트위터에는 타임라인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곳에는 내가 팔로잉한 사람들이 전체 공개로 쓰는 모든 글이 다 뜨는 곳. 알라딘으로 치자면 서재브리핑같은 곳인데, 트위터는 워낙 단문 소통이다보니, 그 속도가 서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팔로잉한 사람이 수백명 수천명인 사람들은 타임라인에서 팔로워들의 글을 거의 볼 수가 없는 거다.

나도, 주의깊게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팔로잉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 타임라인에 뭔가 뜨는 게 스스로 반가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겠다, 라는 소소한 원칙을 갖고 트위터를 쓰고 있다. 그래서 미안하게도, 어디선가 나를 알고 팔로잉한 사람을 봐도 굳이 맞팔로우,를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트위터에서는 암묵적으로 맞팔의 예의같은 게 있는 모양인데, 그래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 내가 맞팔로우 하지 않으면, 다시 나를 팔로잉에서 없애버리는 사람도 있나보다. 개의치 않는다.

기업이나 출판사도 관심있는 경우에만 팔로잉. 일반 기업은 알라딘과 현대카드가 전부다. 둘다 생활 속에서 나와 매우 밀접한 곳들이기 때문에. 출판사는 문지, 창비, 민음사. 그리고 한겨레와 시사인,텐아시아, 진보신당 등등. 나름 신중하게 선별해 Follow.


어제는 비님 때문에 잠을 못 이루던 고운 알라디너 몇분과 트위터에서 손을 꼭 붙잡고 함께 음악을 들었다. 가까이 살지 않음을 아쉬워했지만, 실은 매우 가깝게 느껴지던, 촉촉하고, 따뜻한 밤이었다. 빠르고, 즉각적이라는 트위터의 기계적 속성도, 이렇게 사람냄새 폴폴 나는 것으로 이용할 수 있는 거다. 뭐든, 사용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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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6-1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imansh 트윗에 곰 출현했습니다.

2010-06-14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10-06-12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웬디님 주소 불러주삼.

2010-06-14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0-06-1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성이 커요^^;

웽스북스 2010-06-14 00:14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ㅎㅎㅎ

kimji 2010-06-13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웠다우! ^.~

웽스북스 2010-06-14 00:14   좋아요 0 | URL
저도요!!!

코코죠 2010-06-13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예쁜 아가씨랑 노는 게 너무 좋아요!

웽스북스 2010-06-14 00:14   좋아요 0 | URL
으흣. 품절녀지만... 저도 좋아요!!!

치니 2010-06-1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모르는 사람이 팔롱하면 그가 누구를 팔롱하는 지 봐요. 그래서 팔롱하는 사람들이 영 별로면 맞팔 안하구요. 근데 생각해보니 모르는 사람이 온 경우 맞팔한 케이스는 없네요! ㅋ
타임라인 올라온 글들을 하나하나 안 읽으면 찝찝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요즘은 트위터 눈이 새로 생겼는지, 너무 많이 올라올 땐 내가 편애하는 트위터들의 글만 쏙쏙 들어와서 별 문제가 안 되더라는. ^-^
한 밤 중에 나만이 아니라 누군가 깨어서, 내가 듣고 싶던 바로 그런 음악을 올려줄 때의 기분이, 그리고 짧은 채팅성 트윗을 할 때의 기분이, 되게 삼삼하고 애틋해요. 웬디님 말대로, 뭐든 이용하기 나름!

웽스북스 2010-06-14 00:16   좋아요 0 | URL
저도요. 어찌됐건 모르는 사람이 타임라인에 뜨는 건...ㅎㅎ
근데 모르는 사람이 팔로우하는 경우에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팔로잉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서 보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용하기 나름이라 매력적인 것 같아요. 트윗은. ㅎㅎㅎ
 


모두 알고 계시지요? 대한민국의 미래는 평등하지 않다는 거 ㅜㅜ



용산 참사 현장 근처에 들어온다는 아파트의 팜플렛이랍니다.
트위터에서 펌. http://twitpic.com/1v1nq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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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1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이런 멘탈 빠진~~~~

웽스북스 2010-06-12 02:29   좋아요 0 | URL
어쩌면 오히려 멘탈이 가득한 걸지도 몰라요.
그게 우리랑 달라서 그렇지.

라주미힌 2010-06-1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하네요.. ㅋㅋ

웽스북스 2010-06-12 02:29   좋아요 0 | URL
응. 그러니까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참 --;;

웽스북스 2010-06-12 02:29   좋아요 0 | URL
말이 안나오죠.

다락방 2010-06-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친건가요 -_-

웽스북스 2010-06-12 02:29   좋아요 0 | URL
이걸 보고 화내는 사람은 타겟이 아니라는 걸
너무 명확하게 알고 있는 거죠.

머큐리 2010-06-1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왠디님은 성격이 좋은신 것 같아요... 이 정권 들어선 후로 계속 화만 쌓이고 있어요 --;

웽스북스 2010-06-12 02:30   좋아요 0 | URL
왠디님은 성격이 좋고, 웬디님은 성격이 더러워요.
저 예전에 분노에 떨다, 라는 폴더가 있었어요.
94%는 이명박 욕 ;;;;;;

레와 2010-06-1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뭥.. ㅡ.ㅡㅋ

웽스북스 2010-06-12 02:31   좋아요 0 | URL
뭥....멍....해지죠 ㅜㅜ

風流男兒 2010-06-11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 참나.

웽스북스 2010-06-12 02:31   좋아요 0 | URL
참지마요. ㅎㅎ

루체오페르 2010-06-11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나라하군요 ㅋ

웽스북스 2010-06-12 02:31   좋아요 0 | URL
아주 대담하죠.

마늘빵 2010-06-11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 이런.

웽스북스 2010-06-12 02:31   좋아요 0 | URL
아프님이 가서 혼내주세요.

카스피 2010-06-11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새삼 안듯이.... ㅜ.ㅜ

웽스북스 2010-06-12 02:32   좋아요 0 | URL
봐도봐도 또봐도 어이가 없으니,
언제쯤 익숙해지려나요. 아니, 그런 날이 올까봐 두렵네요, 참.

개인주의 2010-06-11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신 나와라..

웽스북스 2010-06-12 02:32   좋아요 0 | URL
저놈 좀 잡아가라?

도넛공주 2010-06-1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sm자동차 시리즈 광고 생각나네요.정말 자다가도 그 광고 생각만 하면 벌떡벌떡...

웽스북스 2010-06-12 02:32   좋아요 0 | URL
sm 자동차 광고는 뭐였죠?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도 있었죠.

아. 개념상실러들. ㅜㅜ

pjy 2010-06-1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현실적이어서 외면하고 싶은 ㅡㅡ;
최근에 이런말을 주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부패를 완전히 근절시키거나 아니면 부패에 기회를 잡고싶어한다..기왕에 못없애면 이익보는 편으로 푹 담궈지고 싶은게 사람인가봅니다ㅠ.ㅠ

글샘 2010-06-12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오랜만에 라고 할 것까지도 없습니다.
날마다 화나게 하고, 날마다 저주를 퍼붓게 만드는 세상이죠.

Mephistopheles 2010-06-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그러세요...평등하지 않고 고고한 백조처럼 삐까뻔쩍하게 사시도록 하세요..에헤헤헤헤(추노 천지호 성대묘사)
 


문학과지성사에서 진행한 낭독의 밤 행사에 다녀왔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 일컬어지는 시대임에도, 낭독회 장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묘해진다. 낭독회가 진행된 살롱드 팩토리 안에는 루시드폴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루시드폴은 마종기 시인을 워낙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국, 타향, 이방인, 묘하게 겹치는 둘의 이미지... 그 둘이 함께 주고 받은 편지가 책으로 나왔을  때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함께 편지를 주고 받는 사이였다는 사실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고요하게, 음악이 흐르는 카페로 들어가,
한쪽 구석에 앉아 시집을 펴들고 가만가만 시를 듣는 밤.

쉬운 시를 쓰겠다,라고 마종기 시인은 다짐처럼 이야기한다. 그렇다. 그의 시는 쉽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시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그의 시 <우화의 강>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고, 그렇지 못했다 할지라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이 시 때문에 마종기 시인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런데, 정작 이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이 뭔지는 잘 모르겠네. 내가 가지고 있는 시집 중에는 없는 것 같다...)


우화의 강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를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그리고, 이 시...


상처4  

                 - 마종기


소나무 숲길을 지나다
솔잎내 유독 강한 나무를 찾으니
둥치에 깊은 상처를 가진 나무였네
속내를 내보이는 소나무에서만
싱싱한 육신의 진정을 볼 수 있었네

부서진 곳 가려주고 덮어주는 체액으로
뼈를 붙이고 살을 이어 치유하는지
지난날 피맺힌 사연의 나무들만
이름과 신분을 하나 감추지 않네
나무가 나무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나도 상처를 받기 전까지는
그림자에 몸 가리고 태연한 척 살았었네
소나무가 그 냄새만으로 우리에게 오듯
나도 낯선 피를 흘리고 나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네
우리들의 두려움이 숲으로 돌아가네


이 시를 좋아하는 이유의 76% 가량은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우리들의 두려움이 숲으로 돌아가네.

이 시는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제목만으로도 정말 마음에 드는 시집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출간된 시집의 제목은... <하늘의 맨살> 이다. 아. 하늘의 맨살이라니...



















오늘 낭독된 시 중에는 없었지만, 이번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수원에 내리는 눈

마종기

1

내가 고국에서 본 마지막 눈은 수원에서였다. 밤새 내리던 함박눈을 긴 포옹으로 느끼며 잠들었던 하숙방, 그 한 달 뒤에는 기지병원 공중 중위로 전역 신고를 했고, 또 그 한 달 뒤에는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춥기만 했던 기억 때문인지 겨울에는 한 번도 고국을 방문하지 않고 지낸 세월이 사십 년 이상, 그간에는 수원의 눈도, 고국의 눈도 만나보지 못했다. 고국의 눈은 얼마나 늙어버렸을까, 그 아름답던 눈꽃들은 또 얼마나 시들었을까, 요즈음의 눈꽃들은 서로 무슨 말을 나누면서 지상에 내리고 있을까.  

2

내 주위에 내리는 것들
내려서 서성이는 것들,
서성거리며 평생을 사는 것들,
보이다 말다 하는 미세한 것들이
모두 내 몸을 시리게 했네

눈 붉히며 울다가 떠나는 것들, 
눈치 보며 뒷걸음만 치는 것들,
더 볼 것이 없다며 녹아버리는 것들,
주눅 들어 움츠리는 가여운 풍경이
왜 씁쓸한 한기로만 남았던 것인지

멀리서 소식을 알리며 내리는 눈처럼
소리 없이 가볍게 살아야 했는데
본 척도 아는 척도 말았어야 했는데
주위를 살피며 구식으로 얼어가는 사랑,
집 떠난 내 몸, 문득
가벼운 것들이 다가와, 빛나는
눈꽃으로 나를 다듬어 주네.


또 한 권의 좋은 시집을 만났으니, 그저 고마운 마음이다. 문학과지성사 편집자 분은 이 시집 머리말로 마종기 선생님이 줬던 말 중에, "다시는 시집을 내지 않겠다" 라는 말을 편집자의 재량으로 삭제하는 깜찍한 만행을 저질렀다는데, 오래오래 그의 시를 만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참 고마운 만행이 아닐 수 없다. 모처럼 마음이 촉촉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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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어두었는데...질러야 하는건가봐요~~~ㅠㅠ

웽스북스 2010-06-12 02:00   좋아요 0 | URL
꺄옹. 지르세요. 지르세요!!!

치니 2010-06-10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님이 가장 맘에 들었다는 시, 좋다!

웽스북스 2010-06-12 02:01   좋아요 0 | URL
네네. 그냥 막 소리내서 읽고 싶지요.
눈에 대한 시인데도, 눈오는 날보다는 봄밤에 어울릴 것 같아요.

레와 2010-06-1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고마워요!

덕분에 울림있는 시집을 만났어요. ^^
(땡투)

웽스북스 2010-06-12 02:01   좋아요 0 | URL
레와님. 어떠셨어요? ㅎㅎ

비로그인 2010-06-1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종기 시인, 낭독의 밤.
멋진 밤이셨을 듯.


웽스북스 2010-06-12 02:02   좋아요 0 | URL
예. 그러고보니 마종기 시인은 HANSA님과도 참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6-10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시간이셨겠어요. 오늘밤에 혼자서라도 낭독해봐야겠어요.

차좋아 2010-06-10 18:37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의 낭독 듣고 싶어요!!

무해한모리군 2010-06-11 08:32   좋아요 0 | URL
블라에서 뵈면 다음에 낭독해드릴게요 ^^

저 책읽어주는거 좋아해요.. 이힛~

웽스북스 2010-06-12 02:02   좋아요 0 | URL
책읽어주는 여자 휘모리님.
우연인듯, 인연인듯, 불라에서 만나야겠네요.

knownow 2010-06-10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기에 나온 시집도 좋습니다.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 뿐이라"라는..반갑네요...마종기라는 시인을 좋아하는 분이 계시네요...

웽스북스 2010-06-12 02:23   좋아요 0 | URL
네 그리고, 마종기 시인을 좋아하는 분들은 참 많은 것도 같아요. ㅎㅎ

멜라니아 2010-06-1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낭독의 밤에도 갈 수 있고, 서울 사는 처녀는 좋겠다!

저는 마종기시선집( 문학과 지성사)가 있는데 거기에 우화의 강이 있구요
이번 신간은 수필집, 어떻게 그 시를 쓰게 되었는지를 짧게 쓴 거였는데요
제 블에 올려 두었어요

웽스북스 2010-06-12 02:24   좋아요 0 | URL
아. 읽으러 가야겠어요. ㅎㅎ

반딧불이 2010-06-1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화의 강'은 문지에서 나온 <그 나라 하늘빛>이라는 시집에 실려 있습니다

웽스북스 2010-06-12 02:24   좋아요 0 | URL
여기 올려놓으면 알게 될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반딧불이님!!~
 
하늘의 맨살 문학과지성 시인선 376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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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결이 곱고 쓸쓸한 언어들이 서로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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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6-1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야지 하면서 못사고 있어요.

웽스북스 2010-06-12 01:54   좋아요 0 | URL
헤헷. 어여 사셔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