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집에 오니 방이 거의 노다메가 와서 친구하자고 할 수준이다. 같이 치워줄 치아키센빠이가 없으니, 나는 홀로 방을 치우는데, 이 방에서 지난 2주간 살았던 게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옷과책과잡지가적절히조화롭게섞여있는 침대와 바닥 ㅠㅠ 하하하! 지난 2주간 너무 바빠서 청소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청소엔 한국영화. 오늘도 여전히 청소를 하며, 나는 곰티비 무료영화 중 볼만한 한국 영화를 찾았으나, 그다지 볼만한 영화가 없어, 작년에 봤던 청연을 한번 더 보기로 했다. 아뿔싸, 이 영화는 청소용 영화로는 70%만 합격점인데, 왜냐하면 대사의 나머지 30%가 일본어이기 때문에, 화면을 응시하지 않고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청소용 영화의 제 1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셈.

작년 초 청연을 보며, 난 이 영화가 참 좋았었다. 나 역시 이 영화는 괜한 '친일 논쟁'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일단 내가 장진영을 좀 좋아한다. 나는 여배우가 예뻐보이기를 포기한 순간에, 가장 예뻐 보인다. 윤종찬의 소름,에서도 그렇더니- 이 영화에서도 장진영은 참 빛나고 예쁘다. (조금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노희경의 '굿바이 솔로'를 보며, 김민희에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신경쓰지 않고 엉엉 울 때, 가장 예쁘더라-) 김주혁은 분위기 잡고 나올 땐 그냥 그랬는데, 껄렁껄렁하게, 같이 크득크득거릴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로 나올 땐 어쩐지 정감이 간다.

얼마 전 토끼언니가 친일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며, 이런 단체에서 조용히 거액을 투자해 만들었던 영화가 청연이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러고보니 청연의 제작비가 꽤 거액이긴 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로서는 뭐 별로 납득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어쨌든, 난 청연이 괜찮은 영화로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다시 청연을 보는 마음이 그렇게 자유롭지만은 않다.

그치만 나 또 청소하다말고 강세기 추락할 때 같이 소리 한 번 질러주시고, 입 헤 벌리고, 고공 경주 장면 쳐다보고! 한다. (한 번 봤으면서도 다시 또 긴장하게 되는 건 망각이 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그래, 친일 미화는 아니야, 오히려 저 상황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한 개인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이루어나가고 싶었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잖아, 라고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드는 생각이 아, 하고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다.

그래, 꿈을 위해서- 어쩔 수 없었잖아. 저 사람 저렇게 치열했고, 저렇게 열정적이고, 또 저렇게 좋은, 아름다운 사람이었잖아.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거였잖아. 그래도 저렇게 추구하고자 하는 꿈은 아름다운 거잖아, 저건 친일이 아니지, 친일 영화 아니네, 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함으로, 사람들의 친일에 대한 증오의 범주를 좁히고, 이해와 용서의 폭이 넓어지도록 하는 게, 이 영화가 진정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박경원'이라는 인물의 행적에 대한 '명백한 사실'로 존재하고 있는 부분은 있으니까. 그 시절 박경원이 어쩔 수 없었듯, 많은 사람들 역시, 나도 나의 꿈을 위해, 어쩔 수 없었어, 라고 박경원의 몸을 빌어 외치고 싶었던 건지도. 그러므로 권기옥이 아닌 박경원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건지도.

내가 윤종찬이 아니므로, 그가 정말 순수하게 꿈을 이뤄가는 누군가를 그리고 싶었는지, 혹은 정말 그런 정치적 배경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토끼언니가 허황된 정보를 가져와서 내게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은 아니지만, 일단 인터넷 등으로 좀 사실 여부를 더 알아보기 위해 검색해봐도, 그런 사실에 대한 확인은 어렵기에, 함부로 단정짓거나 규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실은 그런 식의 문화적 수단을 통해 녹아들게 하는 그 무엇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연은 한 번쯤 볼 만한 영화이긴 하다. 청연을 두고 하는 논란이 디워를 두고 하는 논란보다 훨씬 가치있을 것이다.




ps

청연 친일후원조직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재밌는 리스트를 찾았다.
역대 흥행작 리스트와 저주받은 걸작 리스트




어이없게도 저주받은 걸작과 더 친한 사건, 왼쪽 리스트에 본 영화들이 더 많다
저주받은 걸작들 중 아직 못본 사랑니와 귀여워도 내 하드에 곱게 저장돼있는걸 보니
난 저주받은 걸작들의 친구? ㅎㅎ

근데 웬지 많은 알라디너분들도 그럴 것만 같은 느낌이 ^^

역대 흥행작 중에서는 친구, 투사부일체, 가문의 위기를 못봤다
향후에도 그닥 볼 의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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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11-2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영화를 뜸하게 보는 편인데, 그래도 왼쪽에서 10편(<청연>을 못 봤고), 오른쪽에서 8편을 봤네요(<투사부일체>와 <가문의 위기>를 안 봤습니다. TV에서 스쳐가긴 했지만). 아, <친구>도 <실미도>도 끝까지 본 적은 없네요!..

웽스북스 2007-11-26 01:38   좋아요 0 | URL
흐흐흐 역시 알라딘 분들은 마이너 기질이 강해요 ㅋㅋ

Mephistopheles 2007-11-26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구를 지켜라..와 고양이를 부탁해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에요..^^ 보는 관점에 따라. 허나 조폭미화 영화는 언급회피고 태극기 휘날리면 같은 영화는 글쎄요 감독의 역량이기 앞서 돈의 역량이라고 보고 싶네요..청연같은 경우 저는 안봤습니다만 실존인물의 미화가 내심 걸렸습니다. 특히 평가가 분분한 인물에 대해서요..^^

웽스북스 2007-11-26 01:3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좋아한답니다. 그러고보니 장준환감독은 차기작을 안찍은지 꽤 됐네요- 태극기 휘날리며,는 보다가 좀 화났죠-

마늘빵 2007-11-26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쟈님과 같이 <투사부일체>와 <가문의 위기>를 안봤는데 이건 계속 볼 일 없을거 같고, <귀여워> <빈집> <지구를 지켜라>를 못봤고, <청연>은 보다 말았군요. :) 비슷비슷.

근데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하지 못했다는게 좀 의외.

Mephistopheles 2007-11-26 09:59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박찬욱감독의 복수 삼부작은 결코 대중적인 영화라고 보긴 힘들어요. 아마도 박찬욱감독의 칸영화제 수상 이후 올드보이부터 언론매체에 집중 보도를 받으면서 관객들이 벌떼처럼 모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duelist 2007-11-26 16:03   좋아요 0 | URL
음.. 정확히는 Mephistopheles님 댓글에 댓글을 달고 싶은데...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은 대중적인 영화들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엔 동의합니다. 일단 소재 때문에라도 B급 영화로 분류되죠.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하지 못한 것은 한국 관객 정서상 그리 이상할 건 없죠.. 그리고 <친절한 금자씨>도 만약 <올드보이>직후가 아니었다면 그정도로 관객몰이를 하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올드보이>는 18세 관람가라는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300만 (확실하진 않을지도..)정도의 관객몰이를 했고, 그건 칸 그랑프리 수상 전이었죠. <올드보이>는 상업영화와 소위 작품영화(예술영화..라기엔 좀 그렇고)의 경계선에 있는 영화로, 어느 정도의 흥행 코드를 갖추고 있다라고 보여집니다. 여느 작품영화처럼 불가해한 게 아니라, 깊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며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대중들도 '아, 이건 잘 만들어진 영화구나'라고 납득하게끔 만드는 요소들이 있죠. 음악과 스타일리쉬함 등등. 으.. 말이 길어졌네요. 하여튼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올드보이>는 칸 수상 전에 이미 흥행에 어느정도 성공했으며, <복수는 나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복수 시리즈는 나름 흥행 코드들을 갖추고 있지 않았나 싶다는 겁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명백히 칸 수상 효과를 봤지만 그렇다 해도 영화가 정말 대중적이지 않았다면 300만이 넘게까지는 안 들어왔을 거란 말이죠, 더구나 18세였고. 가까운 사례로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상영 중 칸 여우주연상 수상에도 불구,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죠. 어쨌든 박찬욱 감독은 확실히 대중적 코드를 파악하고 있지만 이젠 위치가 있으니만큼 약간은 무시하고 부러 마이페이스를 고집하는 경향도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같은 경우). 하지만 차기작 쯤에선 어느 정도 대중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도 가네요. 여튼 뭐, 쓸데없는 헛소리였습니다.

웽스북스 2007-11-26 19:13   좋아요 0 | URL
아프님 // 귀여워,는 저도 모르겠고- 빈집과 지구를 지켜라는 한 번 볼만한 영화지요 ^^ 저는 빈집 이후로 김기덕 감독을 좋아했더랍니다
메피님 // 그죠, 그래도 박찬욱은 JSA때부터 집중받았던 걸 생각해보면, 그 반사효과를 못봤다는 면에서는 좀 의외일 수 있겠죠- 영화도 괜찮았는데
듀얼님 // 크크 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도 좋아했답니다 ㅋㅋ 조목조목, 헛소리는 아닌 것 같습니다 ^^

Mephistopheles 2007-11-28 12:18   좋아요 0 | URL
어엇 듀얼리스트님 댓글은 결코 쓸데없는 헛소리가 아닌걸요..^^ 덕분에 즐거운 사실 하나 알고 갑니다.^^

시비돌이 2007-11-26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쪽 다 아홉편씩 봤네요. 이건 메이저도 아니고, 마이너도 아녀...

웽스북스 2007-11-26 19:13   좋아요 0 | URL
메이저도 아니고 마이너도 아니고, 마니아입니다 ㅋ

마노아 2007-11-2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른쪽은 다 보았는데, 왼쪽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복수는 나의 것, 청연을 보았네요.
청연은 시사회 당첨되어서 극장에서 보았는데 숨막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름답고, 안타깝고,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기분이었죠.
저 시대에 내가 살았더라면 얼마만큼 꿈 꾸고 또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 있을 지...결코 장담할 수가 없겠더라구요.
전 고양이를 부탁해와 플란더스의 개가 보고 싶어요. ^^

웽스북스 2007-11-27 00:0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청연은 극장에서 봤었어요 ^^
저도 마노아님과 비슷한 느낌을 받고, 또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봤었고,
다시 보면서 또 그 부분 때문에, 청연이 참 오묘한 지점을 건드리면서 이해받고 싶었던 그 누군가의 마음들을 의도적으로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했고, 그래서 참 뭐라고 딱, 말하기가 어려운 영화에요

고양이를 부탁해,와 플란더스의 개,는 둘다 좋아요
플란더스의 개는 어둠의 경로로 다운받아서 봤어요 ㅋㅋ
(아직도 하드에 있는데~ ㅋㅋㅋ)

이매지 2007-11-2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쪽 4편, 오른쪽 5편이군요 ㅎ
청연은 아직 못 봤는데 궁금하군요 :)
지구를 지켜라는 정말 쵝오!

웽스북스 2007-11-27 23:58   좋아요 0 | URL
흐흐흐 지구를 지켜라 인기짱!!!

잉크냄새 2007-11-27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편의 영화중 개인적으로 최고였던 것은 <지구를 지켜라>군요. <살인의 추억>이 한국영화중 최고라 생각하는데 관중몰이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나보군요. 박찬욱 감독의 복수 삼부작중 전 <복수는 나의 것>이 제일 재미있었고요.

웽스북스 2007-11-27 23:59   좋아요 0 | URL
살인의 추억은 저주를 받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매우 심히 흥행을 하지도 않았나봐요-저도 좋아하는 작품이고 ^^ 봉준호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도 좋아요

2007-12-01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7-12-01 23:30   좋아요 0 | URL
뭐 싫을 건 없지만, 저는 볼 수 없도록 돼 있는 포스트인가보네요
출처 밝히고 내용만 가져가신 거라면 오케이입니다
 


이건 엄밀히 책을 읽다가 는 아니고
밑줄을 긋다가,정도 되겠다 ㅋ

2주 전쯤 읽었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이제서야 다시 보면서
접어놓은 곳에 밑줄을 긋고 있는데
아, 정말 다시 읽으니 더 좋구나-

사람들은 이 책에서 튀어나오는 감상적인 부분이 싫다고 하지만
나는 김연수가 이런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서 좋다

누가 뭐래도 흐흐

 

   
  이 우주에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면 생각만 해도 추워. 무주에서 보내던 그 해 겨울이 기억나 얼마나 추웠는지 몰라. 그 때 달달달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건 누군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이었어. 그게 누구든, 나는 연결되고 싶었어. 우주가 무한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건 뭐래도 상관 없어. 다만 내게 말을 걸고, 또 내가 누구인지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이 우주에 한 명 정도는 더 있었으면 좋겠어

나의 결론은 그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모든 게 달라졌으리라는 것이었다. 사랑은 입술이고 라디오고 거대한 책이므로. 사랑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건네므로.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 입술을 빌려 하는 말은, 바로 지금 여기가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라는 것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과 아름답게, 이토록 아름답게 연결되므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사랑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오직 존재하는 것은 서로 닿는 입술의, 그 손길의, 살갗의, 그 몸의 움직임뿐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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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5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7-11-25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추워.
그래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웽스북스 2007-11-26 00:23   좋아요 0 | URL
생각하지 않으면 더 추워져요 엘신님

2007-11-25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duelist 2007-11-2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김연수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 소설은 제목이 너무 끌리네요. 읽고 싶어요. 좋은가요? :)

웽스북스 2007-11-26 19:14   좋아요 0 | URL
평소 김연수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ㅋ
 


씻으러 잠깐 나가는데, 동생이 자고있는 게 보인다. 순간, 이녀석 그러고보니 용돈 떨어졌겠구나-

제대한지 얼마 안돼, 과외라도 잡으려고 했는데, 뭐 쉽지 않은가보다. 그렇다고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는 좀 민망해 하면서도, 몇만원씩 타 쓰는 형국인 걸 알아서, 동생 제대 후에는 내가 한달에 어느 정도는 용돈으로 주고 있다. 참 착한 누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좀 영악하다. 절대, 정기적으로 주지 않는다. 대신 얘의 돈이 들고나는 형국을 파악하고 있다가, 떨어질 때쯤 준다. 생일을 핑계로 주든, 명절을 핑계로 주든, 뭘 시키면서 주든, 그냥 주든, 하여튼, 정기적으로는 안준다.

나는 내가 동생에게 용돈을 주는 일이 서로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 고마움이 사라져버리는 게 싫다. 나도 쉽게 슥슥 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작 내 옷을 사는 돈은 7,8만원만 되도 손이 덜덜 떨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동생이 내가 주는 용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싫다. 매달 몇 일이 되면, '누나 용돈 안줘?'라고 말하게 되는 게 싫다. 나도 매번 쉽지 않은 마음으로 주니까, 그 돈을 받는 동생의 마음도 늘 고마웠으면 좋겠다.

누가 누구에게 뭔가를 해준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위험하다. 엄마가 내게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고,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고, 고마운 일이다. 아내가 남편의 셔츠를 다려주는 것도, 남편이 저녁 먹은 설겆이를 하는 일도, 당연한 일이 아니고, 고마운 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을 위한 어떤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쉬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때로는 알라딘에서 놀고 싶을 때, 그 욕망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그게 고마운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 되어버릴 때, 그 희생은 일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리기에,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좀 얄밉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때로는 이렇게 영악한 방법으로라도, 내가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 상대도 고맙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많이 고마워하고, 또 내가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많이 말할 작정이다. 별 것도 아닌 것 갖다가 더럽게 생색낸다고 뭐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이 사회가 고마움에 대한 불감증으로 가득해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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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7-11-2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에 동의합니다~~!!^^

웽스북스 2007-11-25 12:57   좋아요 0 | URL
우와우와 로렌초의 시종 님의 덧글이다!!!! ㅎㅎㅎ

Mephistopheles 2007-11-25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밴드조차재수없어" 태그 추가요~~~

웽스북스 2007-11-25 12:57   좋아요 0 | URL
흐흐흐흐 콜!

비로그인 2007-11-25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에, 좋은 글이군요. 안전에 대한 불감증만큼 고마움에 대한 불감증이 많은 것은
저 역시 싫습니다. ^^

웽스북스 2007-11-25 12:5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사실은 저도 가족에 대해서는 그럴 때가 많구요- 조금씩 민감해져야겠지요 ^^

마늘빵 2007-11-2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그와 메피님 댓글에 한표.

웽스북스 2007-11-25 12:58   좋아요 0 | URL
원글에도 한표를 좀 주시지요 ㅋㅋ

마노아 2007-11-2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혜로운 웬디양님, 브라보~!

웽스북스 2007-11-26 00:33   좋아요 0 | URL
'사람 좀 보시는' 마노아님, 브라보~!

순오기 2007-11-2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을수록 세상은 더 각박해지지요!

웽스북스 2007-11-26 19:15   좋아요 0 | URL
흐흐 순 '오기'!님도 가족들에게 생색 많이 내세요- 고마워하라고 ^^
 

 

1

회사 조직개편과 함께 새로운 분들이 신규 합류하신다. 우리 회사의 재밌는 문화 중 하나는 퇴사하셨던 분들이 재입사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건데, 1년 전 모 매체로 가셨던 우리 부장님도, 이번에 다시 오신다. 우리 부장님은 이번이 세번째다. 신규 입사했다가, 대행사 갔다가, 다시 왔다가, 매체사 갔다가 또 오신다.

암튼, 그 분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12층 식구들은 옹기종기 다시 자리를 좀 좁혀 앉아야 했고, 책상 및 회선 공사 때문에 오후에는 업무 진행이 불가능했다. 나는 업무 진행이 불가능하면 절대 안되는 상황이어서, 노트북을 둘러메고 회사에 출근하는 생난리를 떨었지만, 역시나 혼자 꿋꿋하게 일이 될 리가 없다. 땡땡이치시는 과장님을 따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배스킨라빈스로~


2

배스킨라빈스는 장사가 잘 될 것 같은 유흥가(?)에 카페31을 심어놨는데, 여기는 아이스크림 가격이 좀 더 비싸다. 엄밀히 말하면, 몇번 더 굴려주고 와플과자에 얹어준 다음에 비싸게 받는 거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저 쪽 구석에 파인트/쿼터/하프갤런 등 기존의 컵도 판다. 우리는 새로 나온 요거트 아이스크림과 파인트를 시켜서 먹기로 했는데, 종업원 하는 말이 어이 없다

"손님, 환경보호 차원에서 내부에서 드시는 분들께는 1회용기에 들어 있는 파인트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스쿱 단위로 구매하셔야 합니다."

파인트와 스쿱 단위의 아이스크림을 담은 접시, 모두 3가지맛, 하지만 스쿱 단위의 아이스크림이 좀 더 크긴 하다. 하지만 가격이, 파인트 4700원, 스쿱 3가지맛은 7000원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환경을 보호해주는, 1회용기를 이용하지 않는 아이스크림이 좀 더 싸거나, 혹은 적어도 동등한 가격 정도에는 판매가 되야 하는 것 아닌가. 거기에 앉아서 먹게 되는 것에 대한 '자리세' 차원에서 저렴한 상품은 안에서 먹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명백한 것을, 그렇게 '환경 보호'라는 이름을 이문을 명목으로 아무데나 갖다 붙인다는 것이 화가 났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지.

"손님, 여기는 땅값이 비싼 강남이고, 네분이서 함께 파인트를 드신다면, 저희 자리세도 안나옵니다. 안에서는 비싼 스쿱 단위의 아이스크림을 드시지요"

3

나오는 길에 스티커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만, 문명의 이기에 감탄해버리고 말았다. 와와, 우리 땐 2000원이었는데, 5000원으로 올라서 더럽게 비싸긴 하지만, 정말 스티커사진 기계가 좋아졌구나. 뒤에 배경도 숑숑 바뀌고, 얼굴에 낙서도 하고, 헤헤헤 재밌구나 재밌어 

 

>> 접힌 부분 펼치기 >>

 


 



스캔하려다 귀찮아서 디카로 찍었더니
화질이 좀 메롱하지만
이런 맛이 또 스티커사진의 묘미,
라며 애써 위안





내 옆에 눈 똥그란 미인은
어제 기름치 사건으로 선방하신 우리 과장님



나는 사진을 찍는 표정이
어째 점점 더 뻔뻔해진다  




 


3

사진을 찍고 나와 다시 일을 하고 정리를 하는데, 카드키가 보이지 않는다. 어, 어, 내 카드키, 하면서 막 찾다가 결국 카드키 없이 잠깐 자리를 비운 새, 전화가 왔다. 대리님, 아까 사진 찍으신 곳에 카드키 두고 왔다고 전화가 왔어요- 사진 찍느라 또 정신 팔렸던 게야

퇴근하는 길에 찾아와야지, 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전화줬던 혜진씨 하는 말이

"이 스티커 가게에서 회사 대표 번호로 전화를 해서 웬디조를 찾았대요- 그래서 광고실에서 웬디조가 누구냐고 막 찾았었나봐요 -_-"

아, 부끄럽다, 웬디조 ㅠㅠ 카드키 뒷편에 명함을 끼워놨는데, 영문 부분이 빨간색이고, 회사 로고가 선명해서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그 부분을 앞으로 끼워놓는다. 자랑스럽게 적혀져 있는 Wendy,Cho- 옆에서 난리들 났다. "오우, 체가, 웬디초우~인데요, 제 칼~드키가 여기 있다고 해서 왔어요우, 키핑해주셔서 땡큐합니다" 하고 오라고 ㅠㅠ 챙피해 챙피해 챙피해- 나는 내가 가끔 부끄러워, ㅠㅠ 

4

이렇게 파란만장 발랄했지만, 실은 오늘 여러번 눈물 흘렸다. 마우스를 붙잡고 일하다가, 거리를 걷다가, 물을 뜨다가,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가다가, 그냥 툭 떨어지는 눈물을 겉잡을 수가 없다. 가오 안나게, 빨개지는 코 때문에 챙피하다. 우리팀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마지막날, 당분간 나의 업무는 크게 변화가 없겠지만, 신규사업 팀으로 가시는 과장님을 축복해야겠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아련하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일로 나는 여러 번 긴장했고 여러 번 고마웠다. 안그래도 겨울이라 트고 갈라진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듯 긴장하고, 주책없이 고맙습니다,를 여러번 외칠 만큼 고마웠다. 난 너무 고마우면 전화통화를 할 때도 꼭 고개를 숙여가면서 인사한다. 머리가 나쁘다는 증거다. 상대에게 보일 리 없잖아. 그런데도 꼭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라도 고개를 숙여 가면서 고마운마음을 전하다 보면, 그 마음이 더 진실하게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몸으로, 다섯번쯤 고마워했고, 입으로 열번쯤 고마워했고, 맘으로 백번쯤 고마웠던 하루다.

5

내일의 동선

신촌 - 서현 - 광화문 - 종각

만나기 좋은 날들이 따로 있는지, 1주전 잡힌 약속, 3주전 잡힌 약속, 한달전 잡힌 약속, 두달전 잡힌 결혼식,이 모두 같은 날짜다. 중간에 분당 때문에 좀 애매하지만, 우리 오미가 시집가는 날이기 때문에 절대 절대 안갈 수가 없다. 우리 이쁜 방순이, 울산동여중 전교1등(이라고 내가 매일 놀렸고, 우리 오미는 괜히 얘기했다며 후회하곤 했었다- 미안해 오미야, 언니가 전교1등은 한번도 못해봐서 괜히 부럽고 자랑스러워서 그런거야 ^^) 오미,는 결혼식장에 들어서면서 잊어주기로 했다. 얼마나 한이됐으면 그 부탁을 청첩장에다가 썼다, 그래도 난 그 편지가 참 좋았다. 짧은 글에서 괜히 느껴지는 마음. 오미야, 언니가 결혼식은 비가와도 눈이와도 바람이 불어도 꼭 갈게, 대신 언니가 니 결혼식은 좀 편하게 입고 가야 쓰것다잉?

아무리 이리저리 검색을 해봐도, 신촌에서 서현으로 가는 길은 좀 험난할 듯 하다. 게다가 난 이 길 저 길에서 참 잘도 바보로 변신하지만, 신촌에서는 정말 울트라바보가 되버린다. 가도가도 걸어도걸어도 모르겠으니, 아무래도 째게되면 신촌 모임을 째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일단은 신촌 모임도 가겠다는 각오로!

6

5번을 거의 다 썼을 무렵, 익스플로러가 다운됐다. 순간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고마운 사건이 하나 더 생겼네
고마워요, 자동저장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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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1-2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근데 접기기능이 안된다 ㅠㅠ

웽스북스 2007-11-24 00:02   좋아요 0 | URL
접기기능 할줄 아는 분~~!! ㅠㅠ

마늘빵 2007-11-24 08:15   좋아요 0 | URL
접기엔 제가 일가견이 있는데... :)

글을 쓰고, 혹은 그림을 넣고서, 접고픈 부분을 위에서 아래로 드래그 해줘요. 그리고 저장하면 돼요. :)

웽스북스 2007-11-24 12:05   좋아요 0 | URL
드래그,가 관건인 거에요? ㅎㅎ 해봐야지 ㅋㅋ

웽스북스 2007-11-24 12:08   좋아요 0 | URL
아아아 안돼요 안돼요 안돼요 ㅠㅠ

Mephistopheles 2007-11-24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접으실려고 하는 거라며 안가르쳐드립니다.=3=3=3=3=3
(그런데 왜 과장님이 가시나요 S군이 갔으면 좋겠는데...?)

웽스북스 2007-11-24 02:04   좋아요 0 | URL
아, 사내에서 신규로 시작하는 사업이 있어서요, 저희 과장님이 그 쪽 담당이 되셨어요 ^^ S군 데리고 가요 ㅋㅋ

순오기 2007-11-24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군 데리고 가면 '기름똥' 확실하게 책임지겠군요~ㅎㅎㅎ
~오홋, 임시저장 기능은 저도 여러번 덕 봤고요, 접기 기능은 실제 써먹어봐야 알것 같아요. 아직 안 써 봐서리.....

웽스북스 2007-11-24 12:05   좋아요 0 | URL
흐흐흐 그죠 임시저장 기능 좋아요- 글쓰다가 졸릴 때도 최고에요! ^^

쥬베이 2007-11-24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글^^ 두근두근함이 느껴집니다

웽스북스 2007-11-24 12:06   좋아요 0 | URL
흐흐흐 정말요? 고마워요 쥬베이님~!

웽스북스 2007-11-24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신촌은 날리고, 분당으로 가려는 중입니다 ㅎㅎ
집앞에 분당 서현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중! ^^
(너무 내글에 혼자 댓글달고 잘노는거지 ㅋㅋ)

마늘빵 2007-11-2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못 접었어요? ㅋㅋ

웽스북스 2007-11-25 00:38   좋아요 0 | URL
아흙 넵 포기포기포기

이매지 2007-11-25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 종일 여기저기 뛰어다니시느라 바쁘셨겠군요 ㅎ
웬디초우~님 ㅎㅎㅎ

웽스북스 2007-11-25 21:37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거짓말 아니고 어제 막 뛰어다녔어요 ㅋㅋㅋ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데 건물 앞에 정동영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활용할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어떤 게 더 좋은지에 대해 스티커 투표를 하는 보드가 놓여 있다. 그런데 비교 대상이 행복한 가정과 1000만원짜리 핸드백이다. 이명박을 정면으로 공격하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저런 멍청한 비교가 세상에 또 어딨을까 싶다. 당연히 행복한 가정 쪽으로 스티커가 많이 붙을 걸 예상한 조사겠다 싶지만, 저런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고, 마이너스로 보일 수 있다는 건 모르나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로 흘러갔다. 그러다 지난 번 나를 습격했던 S군의 말에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저는 이명박 뽑을 건데요?"

얼마전 알라디너들과 모인 자리에서, 서울대생의 절반 가량이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S군, 서울대생. 20대. 참고로 나는 이명박을 지지하는 20대를 처음봤다. 도대체 저 지지율이 어디서 나온걸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S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이명박을 지지한단다. 나는 그 논리가 궁금했다. 그래도 뭔가 그럴 듯한 논리가 있겠지.

S군의 논리는 이랬다. 지금까지 개혁한다고 해서 된 것 하나도 없고, 노무현 정권은 우리 모두를 하향평준화시켰다. 양극화는 이미 진행됐다면, 개발과 성장 정책 위주의 정책을 펴는 이명박이 되는 게 낫다

우리 실장님 하시는 말씀은
솔직히 이명박이 되면 난 이민가고 싶다. 여기서 살려면 편법을 쓰는 수 밖에 없다. 그것 밖에는 통하는 게 없으니까. 

거기에 S군,
그런 여지가 있다는 거에요, 
솔직히 지금 정권에서는 어떻게 잘 살아볼 수 있는 틈이 보이질 않잖아요.

발끈. 이렇게 어이없던 적이 최근 몇년간 있었던가. 사실 있었다 해도 기억을 못하는구나.

S씨, 혼자만 잘 살면 좋아요? 양극화는 진행되고, 서민들은 더 살기 어려워져요.
그래도, 어쨌든 성장을 지향하잖아요. 우리나라도 세계에서의 경쟁력도 키워야죠.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되면 우리나라 세계 경쟁력이 더 떨어질 거잖아요- 자유무역 시대인데, 그런 걸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야죠.

더더더더욱 발끈

S씨,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에도 처음엔 다 보호무역으로 성장했어요.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자유무역은 우리나라를 위한 정책이 아니에요.

아니, 저는 이명박이 꼭 다 옳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제일 낫다는 거죠

우리 셋이 입을 모아,
"최 악 이에요, 제일 나쁘다구요-"

그리고 곧바로 나
"S씨, 그럼 박정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해요?"
"솔직히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S씨, 학교에서 선생님이 5.18도 제대로 안가르쳤었다고 했었죠? (역사의식 알만하다,는 뜻이었음)
"아니요 아니요, 전두환은 나쁘죠 -_-"

난리났다. 나는 투표하러 가지 말고, 차라리 회사를 나와 일을 하자고 했다. 아니다, 전날 밤새 술을 마시는 게 나으려나? 실장님은 "S야, 내가 생간이랑 소고기 배터지게 사줄테니까 이명박 뽑지 마라" --> S씨는 먹는 것에 유독 집착한다.

분위기를 파악한 S는, 투표를 안하겠노라고 (말로만일지라도) 약속을 하고 우리는 식사 장소를 빠져나왔다. 파릇파릇한 후배의 소중한 권리에 권력을 행사해 투표를 못하게 하는 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어이가 없어서 그랬다.

우리가 나온 식당 앞에는 일정 금액 이상을 내면 참치를 배불리 먹여주는 식당이 있었다. 정치적 논란이 끝난 이후에, 화제를 전환하는 의미로 실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저런 얼마 이상 내고 참치 배불리 먹는 식당을 가면 안되는 게, 저기서 쓰는 게 참치가 아니라 참치보다 훨씬 가격이 싸고 몸에 안좋은 기름치거든?"

그러자 S씨 하는 말

"맞아요- 저 예전에 저런데서 배터지게 참치먹고 기름똥 싸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식사중이신 분이 계셨다면 죄송)

둘은 여기서 기름똥에 대한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기름이 둥둥 떠다닌다는 둥 -_-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이 제일 나쁘다는 둥- 기름치는 원래 공업용이라는 둥...기름똥을 싸는 일은 정말 괴로운 일이라는 둥 -_-

그러자 우리 과장님 하시는 말씀.

"S야, 이명박이 그 기름치를 파는 사람 같은 사람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의 결과가 기름똥으로 결국은 나타난다고, 알겠니?"

"아아아! 과장님 갑자기 확 와닿아요. 알겠어요. 나쁜 사람이네요, 안뽑을게요"

아...! 이렇게 적절한 비유가 어딨을까. 식당 안에서 나의 흥분과 발끈의 연속도 먹히는 둥 마는 둥이었는데, 기름똥의 울분을 경험한 S씨에게 확~ 와닿는 비유를 해주신 멋진 과장님!


돌아와서 나는, 얼마전 어머소희님이 작성하셨던 이명박의 쾌거를 쪽지로 돌렸다. 실장님은 그 쾌거를 외우시겠다며 프린트를 해서 붙여놓으셨고, 나는 순주씨에게 저지른 정치적 소신에 대한 탄압을 사과했다. 그래도 설마 뽑는 건 아니겠지? 기름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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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7-11-22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쟁력과 삶의 질과는 관련이 없는데...
사회나 타인의 삶 같은 것에 진지한 고민도 안보이고...
시험문제 잘 풀어서 들어간 대학만큼의 의식 수준이네요 ㅡ..ㅡ; 너무 폄하했나.
이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미래가 된다면 숙명처럼 받아들여야죠 뭐. 자업자득.
좀 억울하지만.. 흐흐..

웽스북스 2007-11-23 01:01   좋아요 0 | URL
그죠, 저도 그래서 놀랐던 거에요-
옛날에 엄마한테 집팔아서 펀드하자고 했다는 얘기 들었을 때,
혹은 5.18이 폭동인 줄 알았다고 얘기했을 때,
그 때 알아봤었어야 했는데 말이죠 ㅠ

Mephistopheles 2007-11-2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씨는 아마도 자신이 성장의 주축이 될꺼라 생각하나 보군요..^^
상위 5%에 든다면 뽑던 말던 상관 안해도 될 것 같은걸요..
아울러 출신성분이 강남태생이며 부모님의 현금자산이 100억쯤
된다면 그냥 뽑으라고 하세요..^^
그게 아니라면...후훗..^^

웽스북스 2007-11-23 01:03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기네는 기회도 펴보지 못하고 분배해야 되는 것에 대해
도무지 이해를 못하고, 하향 평준화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피가 거꾸로 솟더라고요 ㅋㅋ

실은 저것보다 더 정색하고 심한 말들을 더 했던 것 같은데
머리가 나빠서 기억이 잘 안나요 ㅋ

마늘빵 2007-11-2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익

웽스북스 2007-11-23 01:04   좋아요 0 | URL
웃는게 웃는게 아니죠? ㅋㅋ

순오기 2007-11-23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 확실하게 먹힌 기름똥에 한표! ^^

웽스북스 2007-11-23 01:05   좋아요 0 | URL
ㅎㅎ 과장님이 막 멋져보였다니까요~ ^^

얼음장수 2007-11-23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게시판에 가보니 이건 뭐 이명박이 대세더군요. 노무현 정권이 너무너무 싫어서 이번엔 무조건 한나랑이다라고 말하는 글들은 차라리 봐줄만 했습니다. 나머지는 뭐 "대한민국에서 노조에 대해서 거침없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은 이명박밖에 없다"라는 글도 봤구요. 아, 이런 글도 기억나네요. "BBK나 위장 취업 때문에 이명박에게 실망을 했다. 그런데 딱히 대안이 없는 것 같아서 믿음직스러운 이회창을 찍어야 겠다." 씁쓸했습니다.
덧붙이면 이명박도 이회창도 지지하지 않는 많은 대학생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투표해야 될 지 갑갑해 하더군요. 투표하지 않겠다는 친구들도 여럿 봤습니다.
비가 온다네요. 우산 챙겨서 출근하시길...

웽스북스 2007-11-23 20:10   좋아요 0 | URL
얼음장수님! 아침에 얼음장수님 댓글 보고 우산들고 나왔어요! 그런데그런데, 점심시간부터 쏟아지는 바람에, 결국은 비 맞았다는 거, 그래도 추적추적한 퇴근길이 덕분에 든든하네요! ^^
이명박 지지논리는, 뭐든 들어도 화나요- 노무현 정권이 너무너무 싫어서 골로가겠다는 것도 이해안돼요!

가시장미 2007-11-2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걱정이예요. ㅠ_ㅠ 누굴 뽑아야하나요. 투표는 해야할 것 같은데... 원..

웽스북스 2007-11-23 20:11   좋아요 0 | URL
크크크~ 참 어렵죠, 그래도 전 이씨들은 절대 찍지 않겠어요

마노아 2007-11-23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적절한 비유! 멋진 과장님!!

웽스북스 2007-11-23 20:10   좋아요 0 | URL
우리과장님이 쫌! 멋지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