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으러 잠깐 나가는데, 동생이 자고있는 게 보인다. 순간, 이녀석 그러고보니 용돈 떨어졌겠구나-
제대한지 얼마 안돼, 과외라도 잡으려고 했는데, 뭐 쉽지 않은가보다. 그렇다고 저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는 좀 민망해 하면서도, 몇만원씩 타 쓰는 형국인 걸 알아서, 동생 제대 후에는 내가 한달에 어느 정도는 용돈으로 주고 있다. 참 착한 누나,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좀 영악하다. 절대, 정기적으로 주지 않는다. 대신 얘의 돈이 들고나는 형국을 파악하고 있다가, 떨어질 때쯤 준다. 생일을 핑계로 주든, 명절을 핑계로 주든, 뭘 시키면서 주든, 그냥 주든, 하여튼, 정기적으로는 안준다.
나는 내가 동생에게 용돈을 주는 일이 서로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 고마움이 사라져버리는 게 싫다. 나도 쉽게 슥슥 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작 내 옷을 사는 돈은 7,8만원만 되도 손이 덜덜 떨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동생이 내가 주는 용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싫다. 매달 몇 일이 되면, '누나 용돈 안줘?'라고 말하게 되는 게 싫다. 나도 매번 쉽지 않은 마음으로 주니까, 그 돈을 받는 동생의 마음도 늘 고마웠으면 좋겠다.
누가 누구에게 뭔가를 해준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건 위험하다. 엄마가 내게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고, 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고, 고마운 일이다. 아내가 남편의 셔츠를 다려주는 것도, 남편이 저녁 먹은 설겆이를 하는 일도, 당연한 일이 아니고, 고마운 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을 위한 어떤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쉬고 싶고, 책을 읽고 싶고, 때로는 알라딘에서 놀고 싶을 때, 그 욕망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그게 고마운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 되어버릴 때, 그 희생은 일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리기에,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좀 얄밉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앞으로도, 때로는 이렇게 영악한 방법으로라도, 내가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 상대도 고맙게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많이 고마워하고, 또 내가 많이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많이 말할 작정이다. 별 것도 아닌 것 갖다가 더럽게 생색낸다고 뭐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난, 이 사회가 고마움에 대한 불감증으로 가득해지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