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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조직개편과 함께 새로운 분들이 신규 합류하신다. 우리 회사의 재밌는 문화 중 하나는 퇴사하셨던 분들이 재입사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건데, 1년 전 모 매체로 가셨던 우리 부장님도, 이번에 다시 오신다. 우리 부장님은 이번이 세번째다. 신규 입사했다가, 대행사 갔다가, 다시 왔다가, 매체사 갔다가 또 오신다.
암튼, 그 분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12층 식구들은 옹기종기 다시 자리를 좀 좁혀 앉아야 했고, 책상 및 회선 공사 때문에 오후에는 업무 진행이 불가능했다. 나는 업무 진행이 불가능하면 절대 안되는 상황이어서, 노트북을 둘러메고 회사에 출근하는 생난리를 떨었지만, 역시나 혼자 꿋꿋하게 일이 될 리가 없다. 땡땡이치시는 과장님을 따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배스킨라빈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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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스킨라빈스는 장사가 잘 될 것 같은 유흥가(?)에 카페31을 심어놨는데, 여기는 아이스크림 가격이 좀 더 비싸다. 엄밀히 말하면, 몇번 더 굴려주고 와플과자에 얹어준 다음에 비싸게 받는 거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저 쪽 구석에 파인트/쿼터/하프갤런 등 기존의 컵도 판다. 우리는 새로 나온 요거트 아이스크림과 파인트를 시켜서 먹기로 했는데, 종업원 하는 말이 어이 없다
"손님, 환경보호 차원에서 내부에서 드시는 분들께는 1회용기에 들어 있는 파인트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여기 있는 스쿱 단위로 구매하셔야 합니다."
파인트와 스쿱 단위의 아이스크림을 담은 접시, 모두 3가지맛, 하지만 스쿱 단위의 아이스크림이 좀 더 크긴 하다. 하지만 가격이, 파인트 4700원, 스쿱 3가지맛은 7000원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것이라면 환경을 보호해주는, 1회용기를 이용하지 않는 아이스크림이 좀 더 싸거나, 혹은 적어도 동등한 가격 정도에는 판매가 되야 하는 것 아닌가. 거기에 앉아서 먹게 되는 것에 대한 '자리세' 차원에서 저렴한 상품은 안에서 먹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명백한 것을, 그렇게 '환경 보호'라는 이름을 이문을 명목으로 아무데나 갖다 붙인다는 것이 화가 났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지.
"손님, 여기는 땅값이 비싼 강남이고, 네분이서 함께 파인트를 드신다면, 저희 자리세도 안나옵니다. 안에서는 비싼 스쿱 단위의 아이스크림을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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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길에 스티커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만, 문명의 이기에 감탄해버리고 말았다. 와와, 우리 땐 2000원이었는데, 5000원으로 올라서 더럽게 비싸긴 하지만, 정말 스티커사진 기계가 좋아졌구나. 뒤에 배경도 숑숑 바뀌고, 얼굴에 낙서도 하고, 헤헤헤 재밌구나 재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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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하려다 귀찮아서 디카로 찍었더니
화질이 좀 메롱하지만
이런 맛이 또 스티커사진의 묘미,
라며 애써 위안
내 옆에 눈 똥그란 미인은
어제 기름치 사건으로 선방하신 우리 과장님
나는 사진을 찍는 표정이
어째 점점 더 뻔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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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고 나와 다시 일을 하고 정리를 하는데, 카드키가 보이지 않는다. 어, 어, 내 카드키, 하면서 막 찾다가 결국 카드키 없이 잠깐 자리를 비운 새, 전화가 왔다. 대리님, 아까 사진 찍으신 곳에 카드키 두고 왔다고 전화가 왔어요- 사진 찍느라 또 정신 팔렸던 게야
퇴근하는 길에 찾아와야지, 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전화줬던 혜진씨 하는 말이
"이 스티커 가게에서 회사 대표 번호로 전화를 해서 웬디조를 찾았대요- 그래서 광고실에서 웬디조가 누구냐고 막 찾았었나봐요 -_-"
아, 부끄럽다, 웬디조 ㅠㅠ 카드키 뒷편에 명함을 끼워놨는데, 영문 부분이 빨간색이고, 회사 로고가 선명해서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그 부분을 앞으로 끼워놓는다. 자랑스럽게 적혀져 있는 Wendy,Cho- 옆에서 난리들 났다. "오우, 체가, 웬디초우~인데요, 제 칼~드키가 여기 있다고 해서 왔어요우, 키핑해주셔서 땡큐합니다" 하고 오라고 ㅠㅠ 챙피해 챙피해 챙피해- 나는 내가 가끔 부끄러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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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파란만장 발랄했지만, 실은 오늘 여러번 눈물 흘렸다. 마우스를 붙잡고 일하다가, 거리를 걷다가, 물을 뜨다가,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가다가, 그냥 툭 떨어지는 눈물을 겉잡을 수가 없다. 가오 안나게, 빨개지는 코 때문에 챙피하다. 우리팀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마지막날, 당분간 나의 업무는 크게 변화가 없겠지만, 신규사업 팀으로 가시는 과장님을 축복해야겠지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아련하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일로 나는 여러 번 긴장했고 여러 번 고마웠다. 안그래도 겨울이라 트고 갈라진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듯 긴장하고, 주책없이 고맙습니다,를 여러번 외칠 만큼 고마웠다. 난 너무 고마우면 전화통화를 할 때도 꼭 고개를 숙여가면서 인사한다. 머리가 나쁘다는 증거다. 상대에게 보일 리 없잖아. 그런데도 꼭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라도 고개를 숙여 가면서 고마운마음을 전하다 보면, 그 마음이 더 진실하게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다. 몸으로, 다섯번쯤 고마워했고, 입으로 열번쯤 고마워했고, 맘으로 백번쯤 고마웠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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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동선
신촌 - 서현 - 광화문 - 종각
만나기 좋은 날들이 따로 있는지, 1주전 잡힌 약속, 3주전 잡힌 약속, 한달전 잡힌 약속, 두달전 잡힌 결혼식,이 모두 같은 날짜다. 중간에 분당 때문에 좀 애매하지만, 우리 오미가 시집가는 날이기 때문에 절대 절대 안갈 수가 없다. 우리 이쁜 방순이, 울산동여중 전교1등(이라고 내가 매일 놀렸고, 우리 오미는 괜히 얘기했다며 후회하곤 했었다- 미안해 오미야, 언니가 전교1등은 한번도 못해봐서 괜히 부럽고 자랑스러워서 그런거야 ^^) 오미,는 결혼식장에 들어서면서 잊어주기로 했다. 얼마나 한이됐으면 그 부탁을 청첩장에다가 썼다, 그래도 난 그 편지가 참 좋았다. 짧은 글에서 괜히 느껴지는 마음. 오미야, 언니가 결혼식은 비가와도 눈이와도 바람이 불어도 꼭 갈게, 대신 언니가 니 결혼식은 좀 편하게 입고 가야 쓰것다잉?
아무리 이리저리 검색을 해봐도, 신촌에서 서현으로 가는 길은 좀 험난할 듯 하다. 게다가 난 이 길 저 길에서 참 잘도 바보로 변신하지만, 신촌에서는 정말 울트라바보가 되버린다. 가도가도 걸어도걸어도 모르겠으니, 아무래도 째게되면 신촌 모임을 째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일단은 신촌 모임도 가겠다는 각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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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을 거의 다 썼을 무렵, 익스플로러가 다운됐다. 순간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고마운 사건이 하나 더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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