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으러 나오는데 건물 앞에 정동영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활용할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어떤 게 더 좋은지에 대해 스티커 투표를 하는 보드가 놓여 있다. 그런데 비교 대상이 행복한 가정과 1000만원짜리 핸드백이다. 이명박을 정면으로 공격하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저런 멍청한 비교가 세상에 또 어딨을까 싶다. 당연히 행복한 가정 쪽으로 스티커가 많이 붙을 걸 예상한 조사겠다 싶지만, 저런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이고, 마이너스로 보일 수 있다는 건 모르나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정치 얘기로 흘러갔다. 그러다 지난 번 나를 습격했던 S군의 말에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저는 이명박 뽑을 건데요?"
얼마전 알라디너들과 모인 자리에서, 서울대생의 절반 가량이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S군, 서울대생. 20대. 참고로 나는 이명박을 지지하는 20대를 처음봤다. 도대체 저 지지율이 어디서 나온걸까 싶을 정도로. 그런데 S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이명박을 지지한단다. 나는 그 논리가 궁금했다. 그래도 뭔가 그럴 듯한 논리가 있겠지.
S군의 논리는 이랬다. 지금까지 개혁한다고 해서 된 것 하나도 없고, 노무현 정권은 우리 모두를 하향평준화시켰다. 양극화는 이미 진행됐다면, 개발과 성장 정책 위주의 정책을 펴는 이명박이 되는 게 낫다
우리 실장님 하시는 말씀은
솔직히 이명박이 되면 난 이민가고 싶다. 여기서 살려면 편법을 쓰는 수 밖에 없다. 그것 밖에는 통하는 게 없으니까.
거기에 S군,
그런 여지가 있다는 거에요,
솔직히 지금 정권에서는 어떻게 잘 살아볼 수 있는 틈이 보이질 않잖아요.
발끈. 이렇게 어이없던 적이 최근 몇년간 있었던가. 사실 있었다 해도 기억을 못하는구나.
S씨, 혼자만 잘 살면 좋아요? 양극화는 진행되고, 서민들은 더 살기 어려워져요.
그래도, 어쨌든 성장을 지향하잖아요. 우리나라도 세계에서의 경쟁력도 키워야죠.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되면 우리나라 세계 경쟁력이 더 떨어질 거잖아요- 자유무역 시대인데, 그런 걸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야죠.
더더더더욱 발끈
S씨,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에도 처음엔 다 보호무역으로 성장했어요. 지금 우리가 하려고 하는 자유무역은 우리나라를 위한 정책이 아니에요.
아니, 저는 이명박이 꼭 다 옳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제일 낫다는 거죠
우리 셋이 입을 모아,
"최 악 이에요, 제일 나쁘다구요-"
그리고 곧바로 나
"S씨, 그럼 박정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해요?"
"솔직히 그 사람이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S씨, 학교에서 선생님이 5.18도 제대로 안가르쳤었다고 했었죠? (역사의식 알만하다,는 뜻이었음)
"아니요 아니요, 전두환은 나쁘죠 -_-"
난리났다. 나는 투표하러 가지 말고, 차라리 회사를 나와 일을 하자고 했다. 아니다, 전날 밤새 술을 마시는 게 나으려나? 실장님은 "S야, 내가 생간이랑 소고기 배터지게 사줄테니까 이명박 뽑지 마라" --> S씨는 먹는 것에 유독 집착한다.
분위기를 파악한 S는, 투표를 안하겠노라고 (말로만일지라도) 약속을 하고 우리는 식사 장소를 빠져나왔다. 파릇파릇한 후배의 소중한 권리에 권력을 행사해 투표를 못하게 하는 게 좀 미안하긴 했지만. 정말 깜짝 놀랄 만큼 어이가 없어서 그랬다.
우리가 나온 식당 앞에는 일정 금액 이상을 내면 참치를 배불리 먹여주는 식당이 있었다. 정치적 논란이 끝난 이후에, 화제를 전환하는 의미로 실장님께서 말씀하시길
"저런 얼마 이상 내고 참치 배불리 먹는 식당을 가면 안되는 게, 저기서 쓰는 게 참치가 아니라 참치보다 훨씬 가격이 싸고 몸에 안좋은 기름치거든?"
그러자 S씨 하는 말
"맞아요- 저 예전에 저런데서 배터지게 참치먹고 기름똥 싸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식사중이신 분이 계셨다면 죄송)
둘은 여기서 기름똥에 대한 경험을 나누기 시작했다. 기름이 둥둥 떠다닌다는 둥 -_-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이 제일 나쁘다는 둥- 기름치는 원래 공업용이라는 둥...기름똥을 싸는 일은 정말 괴로운 일이라는 둥 -_-
그러자 우리 과장님 하시는 말씀.
"S야, 이명박이 그 기름치를 파는 사람 같은 사람이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장의 결과가 기름똥으로 결국은 나타난다고, 알겠니?"
"아아아! 과장님 갑자기 확 와닿아요. 알겠어요. 나쁜 사람이네요, 안뽑을게요"
아...! 이렇게 적절한 비유가 어딨을까. 식당 안에서 나의 흥분과 발끈의 연속도 먹히는 둥 마는 둥이었는데, 기름똥의 울분을 경험한 S씨에게 확~ 와닿는 비유를 해주신 멋진 과장님!
돌아와서 나는, 얼마전 어머소희님이 작성하셨던 이명박의 쾌거를 쪽지로 돌렸다. 실장님은 그 쾌거를 외우시겠다며 프린트를 해서 붙여놓으셨고, 나는 순주씨에게 저지른 정치적 소신에 대한 탄압을 사과했다. 그래도 설마 뽑는 건 아니겠지? 기름똥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