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1번의 입맞춤

 

 

 

1

 


말년에 다다른 거장의 마지막 작품을 읽는 일은 종종 씁쓸한 뒷맛으로 끝나곤 한다. 독자가 그 거장의 가장 빛나던 시절 작품들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욱 그렇다. 세월이 인간을 첨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산은 높이 올라갈수록 좁아지다 결국 정상에서는 한 뼘에 수렴하고, 해구는 깊어질수록 좁아지다 결국은 바늘구멍으로 마무리된다. 우리가 잘 쓰면 잘 쓸수록, 잘 읽으면 잘 읽을수록, 그러니까 잘 살면 잘 살수록, 우리는 선명하고 뾰족해진다.

 

 

 

2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놓은 노래들 가운데 한 곡의 어느 구절에 대해 말하고 싶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아름다운 가사를 뿌리는 노래임에도 어쩐지 몽롱하게 들리다가, 딱 이 구절만큼은 이유 없이 선명하게 꽂혔다.

 

내가 원하는 건 천 번의 입맞춤이 아니라 나로서 나인 것뿐이외다.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3

 

올 댓 이즈에 쏟아진 찬사에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찬사를 던진 이들의 마음이 진심임을 의심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거장이 첨예한 탐침으로 찾아낸 세계가 쨍한 동시에 선명했을 것이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그들 역시 높은 꼭대기를 향해 좁아져 가는 행로 위에서 세월을 축적했을 것이니까. 저기 저 끝에 아른아른 보이는 정상. , 아직은 못 미쳤으나 어쩌면 내가 도달할 수 있을 저 아름다움. 내 시야에 닿는 아름다움은 몇 배나 아름답다. 왜냐하면 그 아름다움은 내가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는 좁고 위대한 범위 안에 들어와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장의 작품을 찬양하는 일은 대체로 수지맞는 장사가 된다.

 

 

 

4

 

나는 나로서 나인 것뿐인 삶이 지겹다. 그것보다 천 번의 입맞춤을 원한다.

 


 

5

 

그러나 설터의 이 책은, 그때가 아닌 지금, 거기가 아닌 이곳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의 첨예하지만 뾰족한 탐침이 찌른 그 좁은 한 지점에, 지금 여기 사는 이들의 절대다수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선명한 서사는 시공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품이 갖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다. 그래서 이 작품은 어쩌면 불꽃에 비유해야겠다.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게 순간을 살다가 잔상으로 흩어지는 불꽃.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못내 미워하지만, 역시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차마 미워할 수가 없는 애매한 책을 덮고 나면, 쓴다는 게, 읽는다는 게, 그리고 살아낸다는 게, 그러니까 시간에 입김에 조금씩 흩어지는 모든 일들이, 때론 달거나 짜거나 맵거나 시거나 하지만 평균적으로는 쓴맛으로 요약되고야 마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6

 

syo는 이 나라 이 땅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말로 누구의 무엇이 아니라 나로서 나인 것뿐인 삶을 살아온 편이다. 내림차순으로 정렬하면 적어도 상위 1퍼센트 위치에는 이름이 적히겠지. 나는 엄마 아빠의 아들이 아닌 나로 살다가 결국 엄마와 아빠를 모두 아들이 있지만 아들이 없는 사람으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동생의 오빠가 아닌 나로만 살았기 때문에 내 동생은 지금 고아나 다를 바가 없다. 내가 사랑하던 사람의 든든한 반려가 아닌 나로만 살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참고 참으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더는 기다리지 못해서 미안하다(왜 네가?)는 사과를 남기고 울며 떠나갔고, 어르신복지과의 나이는 많지만 꽤 똘똘한 주임이 아닌 나로 살겠다며 구청을 박차고 나왔으므로 내 마흔 인생 취업기간이란 걸 죄 합쳐 봐야 채 1년이 안 된다. 그렇게 나는 syo를 만들고 syo로만 살았다.

 

누구의 무엇으로만 살아왔던 사람에게 나로서 나일 뿐인 삶이란 타는 목마름으로 추구하는 그 무엇이겠거니- 하고 짐작은 하지만 그뿐, 나로서 나일 뿐인 삶만 살아왔더니 결국 이따위 내가 되어버린 나는 이제 누구의 무엇으로 살아가는 삶이 달고 촉촉하다.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 나를 올려다보는 네 눈동자에 내가 네게 어떤 사람인지 이미 다 쓰여 있어서 읽어내려면 0.1초 만에 다 읽을 수 있는데도 굳이 그 말을 네 입술로 확인하고 싶어서 유치하게 묻는다. 내가 너에게 쓰임이 있어? 내가 너에게 행복을 줘? 내가 없으면 네 세상이 깜깜해져?

 

 

 

7

 

작년 성적표를 받고 쓴 글이 마지막이었고 1년 만인데, 올해도 역시 애매하다. 작년 11242에서 11231이 되었으니 성적이 오른 건 맞지만, 국어 수학이 쉬워진 바람에 전체 표준점수는 비슷하지 않을까. 올해는 메디컬을 노리고 진입한 극상위권들이 많아서 이거 가지고는 입시에서 작년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 어떻게든 되겠고, 어떻게 되어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어려워도 어지럽지는 않다. 이 글 이후로 수능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으려고 한다. 수능 뭐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대해주세요. 물어보셔도 안 보이는 척할 겁니다ㅋㅋㅋㅋㅋㅋ

 

 

 

8

 

손이 더디고 문장이 무디다. 어김없이 재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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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4-11-17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 스요님이다!!!!! 잘 돌아오셨어요!!!
심규선의 ‘난설헌’이로군요ㅠㅠ 저도 이 노래 너무 좋아해요. 심규선 노래는 다 좋아요 다!!

저 수능 물어봤는데 안 보이죠? ㅎㅎ

syo 2024-11-17 00:07   좋아요 1 | URL
두 줄 가사로 바로 알아채시는군요.
심규선님 안 듣는 사람은 있어도 듣는 사람은 무조건 좋아하죠!

그나저나 댓글 마지막에 공백 두 줄은 왜 남기셨어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11-17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반가워요.
올해도 수능을~~이라고 쓰다가 안 보이는 척 한다기에, 그냥 모른 척하고
그저 반갑다고만 말할께요
웰컴 입니다^^

syo 2024-11-17 13:12   좋아요 0 | URL
페넬로페님 오랜만이에요 ㅎㅎㅎㅎ

두 번째 줄 띄고 세 번째 줄에 반갑다고 쓰셨네요.
저도 그렇게 쓰겠습니다^-^

공쟝쟝 2024-11-17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컴백!!!! 재활 훈련 열심히 하십쇼!!!!!

syo 2024-11-17 13:12   좋아요 0 | URL
설렁설렁 할거예요. 으하하하.

공쟝쟝 2024-11-17 13:20   좋아요 0 | URL
환]내년엔 부디 함께 놀자 [영
플랜카드 붙임!! ㅋㅋㅋ

독서괭 2024-11-1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syo다! 잘 지냈어요 syo님?

syo 2024-11-17 13:13   좋아요 1 | URL
그러믄입쇼. 잘 지내다마다요 ㅎㅎㅎㅎ
독서괭님도 별일 없으셨죠?

반유행열반인 2024-11-17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syo님의 글재간은 먼지는 덮일지언정 녹은 나지 않았습니다 ㅋㅋㅋ 저 사두고 유일하게 안 읽은 설터가 저 두툼한 올댓이즈인데요...계속 가지고만 있어야 겠네... 죽기 직전까지도 테스토스테론 뿜뿜한 글 쓴 건 우리 로스 할배 밖에 없구나잉... syo님도 계속 개미꼬이는 들쩍지근한 거 많이 써주세요 ㅋㅋㅋ

syo 2024-11-17 13:14   좋아요 2 | URL
비행기 운행 실력 여전하시군요!
이제 몸풀기 들어가니까 조만간 아주 기름 발린 손가락으로 한몫 하겠습니다.
저는 올댓이즈 팔아치우려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11-17 13:45   좋아요 1 | URL
그거 알라딘 매입가 기준 균일가 1200원인데 너무 맴찢이네요...그 정도까진 아니잖아 후려치다니...

막시무스 2024-11-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운 글이네요!ㅎ 천천히 손목 푸시고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ㅎ

syo 2024-11-17 13:15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오랜만입니다 ㅎㅎㅎㅎ 이번에는 진심 자주 뵐 수 있도록 할게요!

stella.K 2024-11-17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작년에 시험 치셨던 거 아닌가요? 근데 이번에 시험치셨다고요?
아는 채 하지 말라고 쓰셨는데, 꼭 연말이 되면 그때 그 일이 작년에 있었던 일인지
올초에 있었던 일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서 말이죠.ㅠ
글치 않아도 어찌 지내시나 궁금하던차에 이리 써 놓으시니 괜히 궁금해지네요. 제가 짓궃죠?
그래도 알려주시면...ㅋㅋ
근데 입맞춤을 천번하면 입술이 부르트다 못해 터집니다. ㅋㅋㅋ
암튼 반갑네요!

syo 2024-11-17 13:1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왜 댓글을 빈칸 다섯 줄로 시작하셨어요?
아, 그만큼 우리가 오랜만이라는 뜻일까요? ㅋㅋㅋㅋㅋㅋ

근데, 입맞춤 천 번은요, 붙었다가 떨어지는 걸 한 번으로 치면 천 번 가지고는 입술 안 부르틉니다. 이건 이미 검증이 끝난 건이어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네요. 오히려 반들반들 더 윤기나는 입술이 된답니다!

암튼 반갑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24-11-17 13:39   좋아요 0 | URL
헉, 댓글을 빈칸 다섯 줄로 시작했다굽쇼? 당췌 뭔 말인지...? ㅎㅎ
그러고보면 재활은 스요님 글만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요?
주고 받는 댓글도 재활이 필요한듯.
이게 다 스요님이 그동안 안 나타났기 때문이라구욧! ㅋㅋ

근데 그런가요? 저는 아직 입맞춤 천번을 채우지 못해 그런 결론에 이르렀나 봅니다.
다음에 꼭 천번 채우고 스요님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추풍오장원 2024-11-17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의 무엇이 되는 삶도 쉽진 않지만 나쁘진 않습니다 ㅎㅎ 딸이 생기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syo 2024-11-17 19:48   좋아요 0 | URL
못뵌 사이 득녀하셨군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아비는 무쌍이라고 하던데요. 화이팅.

blanca 2024-11-17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수능도 보셨군요. 무언가에 도전하는 일도 지나고 나면 그랬던 자기 자신이 다른 의미에서 귀엽게 보이는 시간이 옵니다. 이렇든, 저렇든 올 한해 정말 수고하셨어요. 스요님 부모님 얘기에 지난 날 올리셨던 글들이 지나가면서 마음이 울컥해지네요. 컴백을 환영합니다.

syo 2024-11-17 19:50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감사합니다!
컴백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네요. 한때는 그래도 알라딘의 뭐였지만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뭣도 아닌 그저 syo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4-11-1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껏 쇼님이랑 생각했는데 스요님이 맞는 건가요??

컴백 반갑습니다. 예전에 syo님과 논쟁? 했던 글들 읽어봤는데 syo님이 맞았습니다. 제가 어거지를 쓴 느낌이 강하더라고요ㅎ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글 적습니다ㅎ

syo 2024-11-19 09:34   좋아요 1 | URL
저는 저를 syo라고 표기하는데, 다른 분들은 다양하게 부르십니다.
어쩐지 컨센서스가 생기지 않더라구요.

제가 인지하기로는 세력의 크기로 비교하자면 쇼, 시오, 스요가 각각 위, 촉, 오 정도의 느낌입니다.

논쟁 건은 기억조차 나지 않네요 으하하. 말씀 듣자니 고라님과 저도 세월이 꽤 되는군요.

고양이라디오 2024-11-19 12:42   좋아요 1 | URL
쇼님으로 계속 불러도 되겠군요ㅎㅎ

네, 북플이란 어플에서 예전 글들이 알림으로 뜨는데 쇼님과의 논쟁 글이 뜨더라고요ㅎ 아마 이지성작가 관련 글이랑 또 머 하나랑 그랬을 겁니다ㅎ

세월이 꽤 됐네요 벌써ㅎ

감은빛 2024-11-2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글이 올해 첫 글이었군요. 내려보니 작년 이맘때 쓰신 글들도 있던데, 그 글들을 저는 아마 모르고 지나쳤던 모양이군요.

저는 학교라는 걸 졸업한 이후로 뭔가 공부하는 일이 그렇게 싫더라구요. 사실 삶이라는 것이 계속 뭔가를 배워야 하는, 배움의 반복이긴 한데, 배움과 공부는 또 달라서 배움은 언제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게 공부여야 한다면 무조건 거부반응이 오네요.

그 언급하지 말라던 그 시험을 작년에 큰 아이가 보고 올해 대학에 입학했는데, 한 학기만에 공부하기 싫다고 휴학을 해버린 걸 보면 제 딸이 틀림없이 맞다고 느낍니다. ㅎㅎㅎㅎ

근데 숫자 11242와 11231은 설마 점수인가요? 아님 뭔가 다른 뜻이 있는 숫자인가요? 그 언급하면 안되는 시험을 본지 너무 오래된 사람이라 저 숫자가 도무지 뭔지 이해가 안 되네요.


syo 2024-11-28 09:27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감은빛님이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은빛님의 사전에서는 그게 배움이었고 공부랑 다른 것이었군요. 댓글에 쓰신 말씀을 보니 어떤 생각이신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네요.

숫자는 앞에서부터 국어 수학 영어 탐구 두 과목의 ˝등급˝입니다. 한우 등급 같은 거죠.

감은빛 2024-11-28 14:15   좋아요 0 | URL
아, 숫자가 등급이라는 건 또 이해가 안 되네요. 과목별 전국 석차 같은 걸 매겨서 등급을 나누나요? 제가 대학을 갈 때에는 딱 그냥 점수만 중요했는데, 이제는 과목별 등급이 중요한 시대인가봐요.

저는 등급은 내신 등급 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그거야 말로 그렇게 거부감이 들었어요. 한우 등급이라고 표현하신 것처럼
 

 

11242

 

 

 

1

 

점심에는 국수를 삶았다. 육수 우리는 과정을 MSG로 홀라당 대체해 보려고 간을 거의 스무 번쯤 봐 가며 아등바등했지만 결과물은 여지없이 근본 없는 맛. 썰어 넣은 김치가 착실하게 익어준 덕분에 그래도 겨우 먹을 만했다. 달걀은 세 개 익힐걸. 양파는 반 개만 넣을걸. 은 허겁지겁 국수를 마시고서 확정일자를 받고 전세대출을 연장하러 나섰다. 이 집에서 두 해 더 지낼 듯하다. 며칠 전에 계약서를 갱신했다. 느지막이 일어났고, 일어나 보니 성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가채점한 것보다 영어는 하나 더 틀린 모양이고, 물리는 메가스터디에서 예측한 것보다 등급이 낮게 나오긴 했지만 마킹을 잘못하거나 그러진 않은 것 같다. 최종 11242. 써놓으니 11132보다 압도적으로 후져 보이는 것은 4때문이겠지. 4가 뭐냐 싶다가도 국어와 수학에서 틀린 개수의 합만큼 물리에서 틀렸으니 4 뜨면 근본이지 싶고 그렇다. 3이었으면 질척거렸을 수도. 그러나 4라니 물리여 사요나라. 나는 내년쯤 생명과 함께 대학을 갈 테니 우리는 이제 필수과목 따위의 고지식한 얼굴을 하고서 캠퍼스에서나 다시 만나자.

 

국어 수학은 초음파 사진에서 보던 예쁜 모습 그대로 건강하게 출생해줬다.

 

 

 

3

 

정부는 오늘부터 킬러 문제이토 히로부미입니다 하며 척살령을 내렸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애초에 알고 있던 인강 강사들은 그냥 킬러 문제볼드모트쯤으로 취급하는 식의 대응 전략을 취했다. 이름은 부를 수 없지만 있기는 분명히 있는. 결과적으로 누가 옳았는가


어쨌든 나는 수능을 다 보고 성적표까지 받아먹은 이 시점에도 아직 정부가 말하는 킬러가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킬러를 지목하고 사냥한 이유가 그냥 기분 나쁘고 싫어서인 게 아니라면, 그들의 목적이 대입 판에서 사교육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공교육의 효용을 높이는 것이었다면, 킬러의 정의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와 무관하게 그들은 100% 실패했기 때문이다. syo는 결국 내년에 또 수능을 볼 텐데, 앞으로 구할 수 있는 모든 사교육 자료를 전부 구해서 한없이 무한에 가깝게 풀고 시험장에 들어갈 생각이다. 아마 모든 수험생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사교육 시장은 당연히 캐치하고 있고, 목동과 대치동의 학원가는 유례없이 이른 시기에 개강을 했다고 한다. 성적표는 오늘 나왔지만, 2025학년도 수능 레이스는 지난주나 지지난 주쯤 시작된 모양이다.

 

 

 

4

 

성적이 발표되기 얼마 전 어떤 입시전문가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이런저런 표본을 통해 그가 내린 입결의 앞꼭지는 순서대로 <1.2.3.4.5.6.서울대>였다. 너무 새삼스러워서 아무런 놀라움도 주지 않는 결과였다. 세상은 그렇게 생겼다.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만 저명한 어느 지방 대학교의 약대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서울대를 가는 것보다 더 높은 점수가 필요하다. 메디컬 혹은 의치한약수라고 불리는 저 부동의 탑티어 학과의 TO는 현재 3,000여 석의 의대 정원을 포함 약 6,000자리 정도에 불과한데 올 수능에 505천 명이 접수하여 445천 명의 수험생이 수능에 응시했으니, 상위 1.3%만이 저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셈. 심지어 6,000자리 중 과반은 수시 모집으로 채워지니, syo처럼 오직 수능만으로 대학을 가려는 이에게 펼쳐진 길이란, , 이걸 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실이라고 부르는 게 맞잖냐 싶을 정도로 가늘고 미세할 따름이다.

 

 

 

5

 

국어 수학은 역대급으로 어려웠다는 평이다. 특히 킬러 논란이 있는 수학 22번 문제는 정답률이 1.4%라고 하는데, 응시자 대비 메디컬 TO가 거진 그 정도라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결국, 시험이 어려워도 푸는 놈들은 푼다. 100점이 다 100점이 아니다. 100점 만점짜리 시험이라 어쩔 수 없이 100점이지, 어떤 애들이 100점짜리 100점인 와중에도 또 어떤 애들은 120점짜리 100점이다. 이 시험이 그런 것 같다. 시험장에 100을 가지고 들어가기 위해 120을 만드는데, 만들어야 할 점수가 100을 넘기는 시점부터 시간과 자본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그런 시험. 시험장에서 92를 받았다는 것은 그래도 100을 넘게 만들어서 들어갔다는 뜻이다. syo는 이미, 이 찐득찐득한 진창에 깊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6

 

국어 수학이 어렵고 과학이 쉬운 시험에서 국어 수학을 잘 보고 과학을 못 보는 사람이라서 내가 좋다고 말해주는 여자친구가 좋다. 30대 중반까지 백수로 지내다가 덜컥 공무원이 되더니, 그것도 채 1년을 못 채우고 뛰쳐나와서는, 탱자탱자 놀기나 할 것이지 나이 마흔 다 돼서 수능 보고 대학생 되겠다고 설치는 이 별종을, 별종이라좋은 게 아니라 별종이라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어서 사랑할 만하고도 남음이 있다. syo는 앞으로도 계속 별종일 셈이어서 그렇다


나는 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만큼이나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그러니까 지 멋대로 지 ㅈ대로 사는 개차반이기 때문에-, 내가 평범함과 무난함에 맞추는 게 아니라 평범함과 무난함이 우연히 내게 맞췄을 때에나 순간적으로 평범하고 무난해질 수 있었고, 대체로 그 만남은 스쳐감으로 끝났으므로 정신을 차려보면 언제나 나는 별종의 위치에 돌아와 있곤 했다. 자발적으로 궤도를 이탈한 어느 시점부터 나는 딱히 별나게 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별난 사람이었고, 어느 정도 별나게 굴어도 쟨 원래 저렇잖아- 하며 오히려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별난 사람의 별나지 않은 친구들이 주변에 잔뜩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드디어 별나도 사랑해주는 사람들 가운데 별나서 사랑해주는 별난 사람이 나타나고 만 것이다.

 

별난 사람이 별난 사람의 손을 잡고 걸으면 별 거 아닌 골목길이 특별난 길이 되어 끝없이 이어진다. 끝없이 끝없이 걸어도 걸어낼 것만 같다. 끝없다는 게, 당연하고 별 거 아닌 일 같다.

 




  그 나무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구석으로 비틀린 부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 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

김명인, <그 나무전문 

 

 

--- 읽는 ---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이수영

에이스 / 앤절라 첸

가면들의 병기창 / 문광훈

 

 

 

--- 읽은 ---


2. 다정소감

김혼비 지음 / 안온북스 / 2021

 

나는 조금 더 들여다보기로 했다. 다정함이란 들여다보는 눈에서 싹터 마주보는 눈으로 번져가는 꽃불 같은 것이라, 모든 다정은 시간을 들여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일로부터 시작하게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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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12-08 2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나 며칠 전에 저 시 기출문제 풀었다... 생명체라면 역시 생명과학이죠!!!! 25학번 syo님과 나새끼를 응원합니다. ㅋㅋㅋㅋㅋㅋ이오 그거 목성의 위성 아닌가? 아득하지만 활활 불타고 있다니까! ㅋㅋㅋ

syo 2023-12-10 13:28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 25라니! 우와 학번이 스무개나 튀었어요! ㅋㅋㅋㅋㅋ 서글프고 신명난다....

반유행열반인 2023-12-10 14:54   좋아요 1 | URL
저는 스물 두 개…25학번 안 되면 26학년도 수능 감독관 위촉 예정…서럽고 이명난다…

새파랑 2023-12-08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242면 엄청 잘본거 아닌가요? 내년에는 11111 이시길 응원합니다~!!

그런데 저 순서는 국영수사과 인가요? ㅡㅡ

syo 2023-12-10 13: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ㅎ 11111쩌네요 되면 성적표 인증해서 겁나 잘난척해야지

반유행열반인 2023-12-09 0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파랑님 국수영과과(물리지학) 순서예요 ㅋㅋㅋㅋ

2023-12-09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0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12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23-12-2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토비님!!! 이제 알라딘 떠났나 해서 서운했는데 아니군요!!!! 저도 넘 뜸하게 와서리~~~.^^;;;
어쨌든 토비님의 학업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다정한 분이 옆에 계시다니 넘 좋네요!!!!^^

고양이라디오 2024-10-04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올해 수능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컨디션 관리 잘하시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시길 기원합니다. 수능날 좋은 컨디션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2024-11-15 0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17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귀하의 자녀가 공부에 의욕이 없으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알라딘을

 

 

 

1

 

수능이 끝나면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쓸 줄 알았다. 아니지, 그러고 싶을 줄 알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연간 700권을 읽고 쓰던 시절을 회고하자면 그 시절 syo라는 녀석은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하는 정도를 넘어 아주 환장하는 수준이었으므로, 연세 지긋하신 지금에 와서야 환장까지는 아니어도 즐거운 마음 정도는 가질 것이라 예측했었는데, , 정말이지 읽고 쓰기가 너무너무너무 싫다. 살다살다 내가? 이런다고?

 

얼마나 싫은가 하면,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그러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는 이유만으로 너무도 그렇게 하기 싫어져서, 그 일을 하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듯한 기분으로 하루 10시간 공부를 무난하게 소화하는 지경이다. 심지어 수능 직전에도 하루 7~8시간이 고작이었는데! 세상에, 이렇게 공부 시간 늘리는 게 쉽고 기쁜 일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진작 알라딘 시작했을 텐데……. , 그렇구나. 내가 또 이딴 식으로 깨달음 당했구나…….

 

 

 

2

 

수능을 잘 본다는 게 무엇인가. 그건 굉장히 애매한 질문이다. 국어 수학 백분위를 99로 찍었으면 잘 본 사람일까. 그러나 그 사람이 물리 하나 조지는 바람에 원하던 학교 원하던 과에 지원하지 못할 수준이면 못 본 사람일까? 그렇다면 또 다른 사람이 있어서 모든 과목에서 아까 그 사람보다 조금씩 못 봤다면 이 사람은 더 못 본 사람일까? 그런데 이 사람은 아까 그 사람보다 목표치가 낮아서 원하던 곳에 수월하게 합격한다면 잘 본 사람이 되는 걸까? 그러면 잘 본 사람보다 못 본 사람이 못 본 사람보다 잘 본 사람이 되는 걸까? 이쯤 되면 잘 보고 못 보고를 떠나 대체 뭘 보고 있는지조차 헷갈리게 된다.

 

 

 

3

 

헷갈리게 되어서 아무래도 한 번 더 볼 모양인데, 너무 담담한 마음이다보니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당황하고 있다. 나이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문턱이 낮은 지방대를 골라서 한해라도 빨리 그냥 들어가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같은 결론이지만 그 척박하고 힘든 수험기간을 1년이나 더 통과하며 고생하지 말라는 이유를 드는 사람도 있다. 한 해 더 해볼 가능성도 있겠다는 말을 슬쩍 건네면, 다들 아직 성적표가 나온 것도 아니니까 일단 좀 더 기다려보자면서, 다 잘 될 테니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기다리라며 주제를 전환한다.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런 끔찍한 생각을 미리 할 필요가 없다는 것처럼 급하게.

 

걱정하는 마음이 선명해서 늘 고맙다. 나는 어딜 가나 이상하게 더 애틋하고 신경 쓰이는 못난이 자식 같은 아우라를 풍기는 모양이라, 사람들이랑 대화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까지 나한테 다정하다고?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왜 모두가 나의 지난 1년이 외롭고 괴로웠을 것이며 한해 더 이어질 1년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4

 

나는 지난 1년이 너무도 즐거웠다.

 

 

 

5


천천하긴 하여도 쏟아부은 시간만큼 풀 수 있는 문제가 늘어났다. 풀 수 있는 문제가 늘어나는 즉시 성적에 반영되진 않았지만 역시 천천히라도 성적은 올랐다. 수능이란 내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성장하는 재미가 정량적으로 측정이 되었다. 나에게도 자존감이라는 게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었고,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정성적인 평가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오롯한 순간들이었다.

 

알라딘이 비슷했다. 비루한 인간 개체였던 내가 알라딘의 syo가 되기 위해, syo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 시간들은-물론 그 자체로 즐거움이 있었으나-본질적으로 인정투쟁이었다. 인간이 자아의 뼈대를 지탱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인정. 그것을 얻기 위해 syo는 읽고 썼으며 그 과정에서 차츰 자가 발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 그 어떤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운동선수라도 심각한 부상 후에는 굴욕에 가까운 수준의 재활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필드에 올라설 수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한번 잊어버린 사람은 다시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타인의 사랑에 의존하여 섭식하고 보행하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 알라딘 서재란 그런 공간이었다. 죽밖에 먹을 수 없는 이를 위한 죽. 씹어 넘길 수 없는 이를 위한 달고 따뜻한 꿀물.

 

그 덕에 이가 나고 이제는 고기를 낚아 생선도 굽고 죽창을 들고 뛰어나가 돼지도 잡아다가 구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나면, 여기는 이제 가끔 맛이 생각나 찾아 먹는, 혹은 소화력 떨어질 때 또 와서 기대는 죽집 같은 곳이 되는 듯. 딱 그런 느낌으로 이제 읽고 쓰는 일이 절박하지도 않고 환장할 만큼 즐겁지도 않은 것이다. 이것이 시각시각 식어가는 겨울바람을 몸으로 감고 옥상을 빙글빙글 돌며 곰곰 생각하다 내린 진단이다.

 

 

 

6

 

이제야 성년이 되는 모양이고, 이미 한참 전에 그 길을 지났을 분들이 오늘 여기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나도 또 언젠가 지금은 모를 다른 필요에 쫓기고 온기를 좇아 다시 이곳에 스며들겠지만, 하여간 오늘의 나는 읽고 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나를 빚어나가는 일보다 하루 10시간 공부하고 300시간을 모아 약간의 점수로 바꾸는 일이 더 즐거운 모양이다.

 



아무리 좁은 면이라도 희망의 여백은 두렵다타협이라는 속삭임이꿈을 먹는 것 같은 무중력이내가 나를 기만하는 교활한 술수가기적을 바라는 가엾은 소망이……희망은 이같이 흉하게 약화되어 가는 나를비천하게 겁을 먹는 나를 문득문득 깨닫게 한다.

박경리토지』 自序 


 


--- 읽는 ---

화해의 몸짓 / 장성욱

헤겔에 이르는 길 / 미타 세키스케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토지 1 /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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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25 1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난 1년이 힘드셨을거 같은데 너무나 즐거웠다니 대단하십니다~!! 성장하는 재미라니~!!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syo 2023-11-28 10:59   좋아요 2 | URL
아니 사람이 원래 일을 해도 통장에 잔고가 쌓이면 즐겁고 알라딘에서 독서 백수짓을 해도 서재에 좋아요가 쌓이면 재밌는 법인데 대단할 게 뭐가 있겠어요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11-25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나랑 바꿔요…나도 으으 책 싫고 쓰기 싫어 공부가 제일 재밌어요! 하고 싶다…안 되겠지…

syo 2023-11-28 11:03   좋아요 2 | URL
된다 된다! 올해는 반님도 공부가 제일 재밌어요 그 기분 느낄 때가 되었습니다! 😆

페넬로페 2023-11-25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의대 지원하시는건가요?
내년엔 국어, 수학, 과탐까지 잘 볼 것 같아요.
자아의 뼈대를 지탱하기 위한 것인데
알라딘은 오히려 자아가 흐트러지기 쉬운 곳이기도 하더라고요^^

syo 2023-11-28 10:11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이 나이에 의대가면 50에 사람되잖아요. 그럴 의지도 욕심도 없습니다.

흐트러지는 부분까지 다 자아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에는 자아라는 게 자기 안에 있는 것만으로 측량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은오 2023-11-25 16: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관심가는 책 알라딘 페이지마다 이미 쇼님의 그 붉은 얼굴이 있더라니.... 이 사람은 안 읽은 책이 없네... 뭐 하는 사람이야?! 했거든요. ㅋㅋㅋㅋ 진짜 엄청나게 많이 읽고 쓰는 시간을 보내셨군요.
멋집니다... 이번 1년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

syo 2023-11-28 10:12   좋아요 2 | URL
저는 사실 늘상 즐거운 사람입니다. 뭘 하면 해서 즐겁고 안 하면 안 해서 즐겁고..... 내년도 힘내서 즐겁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독서괭 2023-11-25 17: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런 이유로 알라딘에 자주 안 오시는 거라면 좋은 일이긴 한데.. 자주 오셨으면 하는 저의 마음.. ㅎㅎ
수험생활이 즐거우셨다니 정말 대단하신걸요! 이번에 수능 엄청나게 어려웠다던데.. 결과가 어찌 나오든 syo님은 잘 되실 분!!👍

syo 2023-11-28 10:14   좋아요 2 | URL
수험생활 자체가 즐겁다기보다 수험생활이 성적향상으로 귀결되는 바람에 즐거웠죠 ㅎㅎㅎㅎ 망했어 봐요, 공부 세상 재미없다면서 알라딘에 짱박혀서 1일 2독 1페이퍼.....

이제 매일 오진 않아도 발 딱 끊고 지내지는 않으려구요! 자주 뵈어용

2023-11-26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1-28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3-11-28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돌아오셨다!!! 웰컴웰컴

수행과 같은 공부를 해내시고는 즐거우셨다고 하시는!
와아! 어나더 레벨

암튼 너무나 반갑습니다 syo님!!!

syo 2023-11-28 10:20   좋아요 2 | URL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 성적 안 올랐으면 세상 누구보다 먼저 줄행랑 때렸을 필부필부 장삼이사 syo입니다. 운이 좋이서 저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죠 ㅎㅎ

반갑습니다 얄님, 자주보다 조금 드문 종종 뵈어요 ㅎㅎ

구단씨 2023-11-28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든. 목표가 있어서 하는 공부가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거 아니겠어요? ^^
어떤 1년이 되든, 응원합니다~!!!!


syo 2023-12-08 16:39   좋아요 1 | URL
너무 늦게 확인했네요. 구단씨님 감사합니다!

2023-12-09 0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매일매일 우리는

 

 

 

매일에 매일을 덧붙여 매일매일을 만드는 마음이 가벼운 장난이나 의미 없는 기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와의 온전한 하루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취한 마음 부여잡고 내리막을 사박사박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꼭 잡은 손위로 노을이 아른아른 내릴 때, 연인은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하루여서, 이것이야말로 하루여서, 혼자 돌아오는 오르막길 위에 저녁 그림자처럼 녹아 아련하게 아련하게 사라질 이 마음이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하루를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하루로 만들어주는 마술이어서, 매일을, 오롯한 열망으로 매일을 생각할 것이다. 이 하루가 매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소스라치게 기뻐서, 매일에 매일을 덧붙여 매일매일이라는 말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감히 감당키 어려운 욕심을 부린 건 아닌가 철렁한 마음에 괜스레 도둑눈을 하고 저녁의 이곳저곳을 찔러볼 테다. 바닷물처럼 많은 날들 위로 오늘이 한 방울의 빗물로 부딪혀 그 모든 물들을 오늘 이전의 날과 오늘 이후의 날로 가르는 기적이 일어나면, 오늘부터 그의 세상에서 매일과 매일매일 사이의 간격은 가벼운 장난이나 의미 없는 기교가 아니게 된다. 세상의 모든 말들이 그렇게 된다. 순간의 모든 페이지에 주석이 달린다.

 

 

 

 

--- 읽은 ---


1.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

 

예술이란 모순을 대하는 방식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모순을 만나면 어떤 예술은 그것을 부수려고 하고, 어떤 예술은 그것을 에두르며, 어떤 예술은 그것을 섞어 한 덩어리로 만들려고 한다. 어떤 예술은 그것을 체념하고 어떤 예술은 그것을 승인하며, 또 어떤 예술은 그것을 혐오하거나 사랑하거나 혐오하면서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예술의 앞에 모순과의 마주침이 존재한다. 결코 피할 수 없는 만남이 있다. 이것은 비단 예술의 이야기만은 아니어서, 이 앞 문장들 속의 예술이라는 단어를 전부 인간이라고 바꾸어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활자는 차원이 없으나 인간은 입체이기에 반드시 맞닥뜨려야 할 모순이 있다. 시가 모순과 어떤 춤을 출 때, 독자는 가만히 그것을 관조하며 자기 자신의 전략을 재점검한다. 나는 내게 육박하는 모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그리하여 나는 어떤 형태의 인간이며 또 어떤 양식의 예술인가. 이 물음 또한 하나의 모순임에 틀림없어서,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면 독자는 시집을 덮어도 시를 읽고 있다.

 

 

  

--- 읽는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안드레 애치먼

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세금의 모든 것 / 김낙회

친절한 강의 대학 / 우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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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11-21 08: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올해 읽은 첫 책이 시집인 문학(쪼끔 밖에 안 틀린) 쇼년(욕 아님) syo님 ㅎㅎㅎ 원조 시 독자 없어서 제가 시 많이 읽는 어린이 취급 받는 요지경이 그간 펼쳐졌더랍니다…

syo 2023-11-25 11:59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반님 정도면 시 많이 읽는 거 맞죠!
한국 독서판에서 시라는 것은 읽는 순간 바로 많이 읽는 게 되는 미친 장르입니다!
 

 

어째서 어쩌자고

 

 

1

 

어제의 syo는 글을 썼고, 오늘의 syo가 그 글을 몇 년 전의 syo가 쓴 글 옆에다 놓고 비교한 결과, 재활, 재활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퇴보에 감염되는 일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흔한 일이지만, 퇴보가 퇴락이 되기 전에 그 흐름을 끊어놓는 것은 드물고도 위대한 일이라서, 그 과정을 거듭 거친 사람 가운데 인걸이 난다고 들었다. 인걸은커니와, 걸인이나 되지 말아야 하는 게 오늘 syo의 발등에 떨어진 불인 모양이다.

 

 

 

2

 

그렇지만 어째서 써야만 하는 것일까. 모든 활동은 욕망을 겨냥하고, 욕망의 화살은 과녁을 등지고 쏘아도 허공을 크게 에둘러 결국은 과녁으로 달려가는 법이어서, 쓰기로써 아무것도 겨냥하지 않고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밤은 타로 카드 뒷장처럼 겹겹이 펼쳐지는지. 물위에 달리아 꽃잎들 맴도는지. 어쩌자고 벽이 열려 있는데 문에 자꾸 부딪히는지. 유리공장에서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전구들이 부서지는지. 어쩌자고 젖은 빨래는 마르지 않는지. 파란 새 우는지, 널 사랑하는지, 검은 버찌나무 위의 가을로 날아가는지, 도대체 어쩌자고 내가 시를 쓰는지, 어쩌자고 종이를 태운 재들은 부드러운지

_ 진은영, <어쩌자고> 전문

 

어째서 쓰는가를 넘어선 자리에야 어쩌자고 쓰는가는 존재한다. 어째서와 어쩌자고 사이의 간격, 누군가에겐 한 뼘도 되지 않을 그 좁은 간격에 곡진하고 눅진한 이야기를 채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쓰는 것으로 일단 정하고.

 

 

 

3

 

매일매일 읽고 써야 한다.

 

 

 

 

--- 읽는 ---


우리는 매일매일 / 진은영

모더니즘 / 피터 게이

토지 1 / 박경리

내 삶에 예술을 들일 때, 니체 / 박찬국

다정소감 / 김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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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1-18 1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 오랜만입니다. 그런데 전혀 퇴보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syo 2023-11-18 13: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잘 계셨지요? ㅎㅎㅎㅎ 😆

수이 2023-11-18 13: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퇴보했다 느낀다 ㅋㅋㅋㅋ 쇼 매일 보니 좋네 좋아

syo 2023-11-18 13:34   좋아요 3 | URL
나 퇴보했지? ㅋㅋ

수이님은 그동안 좀 진보하셨네요! 이제 나만큼 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일 나타나서 열심히 재활해야죠 뭐 ㅎㅎ

수이 2023-11-18 13:4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칭찬 맞지? 12월에 봐!

syo 2023-11-18 13:47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그러자구요!

은오 2023-11-18 1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앙 소문으로만 듣던 syo님이랑 동접?! 저도 댓글달아주세요!! ㅋㅋㅋㅋ 넘반갑습니다!!

syo 2023-11-18 13:47   좋아요 2 | URL
아, 저도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푸바오시라구요?

반유행열반인 2023-11-18 14: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원조 요정 돌아왔으니, 바톤 터치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대타, 는 발끝도 못 미치던 요마, 요귀 물러가야겠습니다…(나도 syo님이랑 댓글놀이나 하고 허송세월하고 싶은데 이게 수능 끝난 고3 언니 오빠들 보는 고2 기분이구나…하아 나이는 좀 역전되었지만 하아아…공부하기 싫어 방황하는 한숨)

syo 2023-11-18 14:17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ㅎ 저도 요정 활동은 노환으로 인해 은퇴합니다. 이제 뒷방 늙은이 포지션으로 홀홀홀 하면서 곰방대나 털면서 지내려구요. 공부하기 싫은 반님도 화이팅!

반유행열반인 2023-11-18 14:19   좋아요 1 | URL
아니 뭐여…진짜 늙은이(나 포함) 지팡이 들고 다 때리러 온다? 여기는 너무 고이고 고여 syo님이 그런 위치를 점하는 건 다들 돌아가시는 수십년 후가 아니면 어렵지 싶습니다. 뒷방 꼬맹이 화이팅!

yamoo 2023-11-18 15: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알라딘마을에 쇼라는 서재스타가 있었죠.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알라디너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사라졌다가 다시 컴백했네요. 다시 보니 반갑고 그간의 생활이 어땠는지 궁금해집니다..ㅎㅎ 쇼님이 알라딘 서재에서 사라진 시기에 제가 미술을 시작했으요~~ㅎㅎ

syo 2023-11-20 20:15   좋아요 1 | URL
제가 기억하는 그 언젠가의 야무님은 철학에 대한 깊은 소양은 물론, 각종 교양 지식이 풍부한 댄디가이였었는데, 이제 심지어 미술까지!

저도 반갑습니다 야무님 ㅎㅎㅎ

초란공 2023-11-18 1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컴백하심니까? 환영합니다~!! ㅋㅋ

syo 2023-11-20 20:16   좋아요 1 | URL
초란공님 오랜만입니다!
컴백은 뭔가 과하고, 그냥 다시 끼적거리려고 나타났습니다 ㅎㅎㅎ

추풍오장원 2023-11-19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일 읽고는 있는데, 쓰는건 아주아주 힘들어서 안하고 있습니다...ㅋㅋ

syo 2023-11-20 20:17   좋아요 1 | URL
그런 면에서 이 동네 분들은 다 대단한 분들이시죠, 읽거나 쓰거나 읽고 쓰거나 다 매일매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ㅎ

햇살과함께 2023-11-19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syo 2023-11-20 20:17   좋아요 2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