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부호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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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번 책이 일으킨 자그마한 요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지난 페이퍼에 읽은 책 마지막 꼬다리로 집어넣은 이 책. 이 책의 정식 제호는 <섹스를 위한 내 몸 사용법>이다. 댓글을 달아주신 총 아홉 분의 이웃님 가운데 여덟 분이 이 책에 관해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따지자면 저 책의 댓글 점유율이 88.888888…%인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 그 누구도 저 책의 제호를 언급하신 분이 없었다. 다들 33번 책이라고…… 홍길동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싱어게인도 아닌데, 왜, 왜 말을 못해요. 세, 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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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지, 세, 세,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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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에 관련된 책을 앞으로 열심히 찾아서 읽고 짧은 평을 남기는 것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좋아할 기회가 없어서 좋아하지 못하시는 것 같으니, syo가 총대를 메겠습니다. 으하하하.
근데 이러다 북플 마니아에 ‘섹스’ 마니아 1번 될까봐 겁나네. 좋아하긴 하지만서도 마니아는 좀…….
사실 알라딘 주제 분류법에는 “성생활”이라는 세부 카테고리가 있긴 합니다만, 북플 마니아 카테고리는 그런 세세한 곳까지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저 책의 분류를 보면 “국내도서 > 가정/요리/뷰티 > 결혼/가족 > 성생활”인데, 이 분류는 문제적이네요. 성생활이 결혼/가족의 하위 카테고리라니, 여기가 혼전순결공화국입니까……. 심지어 제 친구 중에는 “가족끼리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녀석도 슬슬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요. 이런저런 현장의 실태(?)가 반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이 결국은 갖가지 시간 때우기의 퇴적이라면, 틈틈이 몰두할 수 있는, 혹은 몰두한 척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
_ 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그래서 줄곧 나의 일은 맛 칼럼니스트나 음식비평가와는 하는 일도,품은 마음도 아예 다르다고 우물우물 설명해왔다. 새로 문을 연 음식점에 대해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그 집 막내딸이 이걸 보면 기분이 어떨는지,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다시 문장의 맨 앞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걸 철학이나 소신이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여튼 그런 차원은 전혀 아니다. 나는 지인들도 학을 떼는 식어버린 달고나 같은 정신력의 소유자다. 살면서 둥근 칭찬만 받고 싶은 작은 사람. 그래서 그냥 내가 잘할 줄 아는 것만 한다.
_ 손기은,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
이 세계를 분명하게 볼수록,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기묘하게도 그의 입을 다물고 있게 된다. 모든 것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우리는 결코 이야기를 시작할 수 없다.
_ 제임스 설터, 『스포츠와 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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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한심해 보였지만 근래 유독 더 그래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이 대체로 그렇듯 본인은 본인이 하고 다니는 짓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그를 떠올리며 <사람 구실을 위한 두 가지 방법>이라는 간단한 도식을 우리 집 화이트보드에 그려 보았는데, 그에게 전해주려고 그린 것은 아니지만 뜻밖에 자기반성이 되는 시간이어서 썩 괜찮았다. 방금 그 도식을 줄글로 풀어서 좀 길게 써 봤는데, 그냥 지웠다. 낭비다.
자기애와 자기맹신이 같이 가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유년시절을 보낸 걸까. 좋아하는 사람이 꼭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신뢰하고 싶은 것이지. 같은 의미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나를 정말 좋아해서, 나는 내게 좀 더 믿을 만한 인간이고 싶다.
내가 매일 나를 흔들어야 한다. 열심히 흔들고 정성껏 흔들리자. 최선을 다하자.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어." 파커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난 어떤 의미에서는 용감했다고 보는데." 진심이었다. "주위에서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지키는 일에 헌신하는 것 말이야."
"난 슬프다는 생각이 들 뿐이야." 파커가 말했다. 우리는 누구도 반드시 그런 식으로 용감해질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면서 함께 입을 다물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광대한 하늘 아래에서 그가 힘없이 별을 헤아리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 것, 즉 중요한 문제는 누가 날 해치거나 해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기 때문에 용감해졌다.
중요한 문제는, 누구도 해칠 수 없는 나의 일부가 있음을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_ 토머스 페이지 맥비, 『맨 얼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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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1월이 끝났다. 뭐지, 이 스피드?
그러나 이 와중에 평균 1일 1권은 어떻게든 지켜지고 있다. 목표를 위한 책 선정 과정에서 개수작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리고 이 시간 창 너머로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빗소리 들으며 자겠구나.
--- 읽은 ---
34.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
그간 syo가 아는 챈들러라고는 시트콤의 클래식 《프렌즈》의 주연 중 하나인 챈들러 빙(매튜 페리 분)가 전부였다. 그 시트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농담에 능한 편이었지만 그 중 챈들러의 말재간이야말로 대단했다. 10개 시즌을 일주일 만에 몰아보던 대학 1학년의 새싹syo는 나중에 자라서 챈들러가 되고 싶었지만 조금도 자라지 않아서 망했다. 운 좋으면 스물다섯까지도 자란다고 해서 기다려보았지만 익히 알고 있던 나의 불운함만 재확인했을 뿐. 더 자라지 않는다는 걸 알고부터는 ‘나중에 자라서~’라는 비현실적인 가정법 대신 ‘다음 생에는~’이라는 한결 나은 표현으로 선회했는데, 그때는 이미 《프렌즈》에 대한 애착이 식어 있어서 챈들러는 되지 않아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다음 생에 되고 싶은 새로운 챈들러가 나타났으니…….
물론 이 모든 건 말재간에 한정된 이야기고, 꼭 한 번만 더 태어날 수 있다면 물론 벼락부자나 떼부자나 코인재벌이나 주식재벌 뭐 그런 게 되고 싶지…….
"두 따님이 같이 잘 다닙니까?"
"아닐 거요. 둘이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따로따로 파멸의 길을 걷는 듯싶소. 비비언은 버릇없고 모질고 똑똑하고 인정머리라곤 없는 편이지. 카멘은 파리 날개를 뜯어내기 좋아하는 어린애고. 둘 다 도덕관념 따위는 고양이만큼도 없소. 나도 마찬가지지만. 스턴우드 집안은 다 그렇지. 계속하시오."
_ 레이먼드 챈들러, 『빅 슬립』
35. 단단한 지식
나가타 가즈히로 지음 / 구수영 옮김 / 유유 / 2020
생각해 보면 갑자기 세상에 홍수처럼 꼰대가 범람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이제 그런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도래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범람이란 참 무서운 것이다. 꼰대의 범람도 무섭지만 꼰대라는 말의 범람도 역시 무섭다. 꼰대라는 말이 쉬워지면서 꼰대 딱지를 붙이는 일 역시 점점 쉬워지고 있다. 몇 년 전 같았으면 그냥 고개 몇 번 끄덕이고 넘어갔을 정론에도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아 이거 꼬온…… 하게 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언어가 이렇게나 위험한 것입니다…….
정론이고, 좋은 이야기 많다. 고풍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고풍스러운 맛이 있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좋은 이야기를 잘 듣고 좀 낡았다 싶은 것들은 내 안에서 혁신하는 일에 꼰대 딱지 부착 공정을 거칠 필요가 없잖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syo야, 이 험한 세상에.
언어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받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언어가 품고 있는 사전적 정보 자체를 보내는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보내는 사람의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아날로그의 디지털화는 대부분 충분치 않을 때가 많다. 특히 복잡한 사고나 애매한 감정 등은 디지털화가 불완전하게 이루어진 채 전달된다.
따라서 전달받는 쪽은 언어를 단순히 디지털 정보로서 그 사전적 의미만 읽어 낼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정보의 틈새로 새어 나간 상대방의 마음이나 감정을 자신의 내부에서 재현하는 노력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만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한다.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방이 언어화하지 못한 '틈'을 읽어 내려 노력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디지털 표현의 아날로그화이자 달리 말해 '헤아림'이라 할 수 있다.
_ 나가타 가즈히로, 『단단한 지식』
36.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김봄 지음 / 걷는사람 / 2020
유시민 선생님의 추천사를 보노라면,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정치적 입장차가 첨예하게 형성되어 있는 가운데 그래도 어떤 노력과 슬기를 통해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들어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작가님의 표현 방향이 그런가, 막상 읽고 있노라면 그냥 평범한 느낌. 뭐랄까, 그냥, 그래 봐야 어쩔 수 없잖아, 싸워 봐야 별 수 없잖아, 어차피 가족이라는 게 그렇잖아, 적당히 삐걱거리고, 적당히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럼에도 어떤 눅눅한 아름다움이 있는 그런 거잖아- 이런 느낌을 받았달까. 책 안에 들어있지 않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통과해온 작가님과 그 가족만의 역사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 책 속 가족들은 이미 기본적으로 너무 따뜻한 사람들이라 정치적 견해 차이 따위는 한낱 에피소드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요는, 그냥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에세이로 제 몫을 다한 책인데도, 유시민 선생님의 추천사에 낚여 뭔가 다른 게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읽었다가 그런 게 없어서 괜스레 억울해졌다는…….
몇 번을 떠올려도 너무 슬픈 기억이다.
싸움의 기억이라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남자를 알고, 사랑을 나누게 되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나눈다는 게 얼마나 많은 책임과 가책을 함께 하는 것인지, 도저히 말로는 옮겨지지 못한 많은 감정들이 쏟아지고 쏟아져, 깨지고 상하고, 문드러지고 휘발되어버리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런 사랑을 나누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사랑을 믿어서인지도 모르겠다.
_ 김봄,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37. 육식의 성정치
캐럴 J. 아담스 지음 / 류현 옮김 / 이매진 / 2018
쉬운 책이어서 이틀 만에 완독했지만 쉽지 않은 책이어서 한 달이 다 가도록 완독을 못했다. 이런 모순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된 내 모순에 대한 적실한 표현이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이 하는 말이 어거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젠더 감수성 관점에서 논해볼 문제라기보다 언어(언어는 가끔씩 문화의 상위 카테고리가 되기도 한다. 육식이 언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의 침투성 대한 인식 부족일 수 있다.
부재 지시 대상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나는 ‘부재 지시 대상’이라는 용어를 빌려와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말의 거의 대부분을 수월하게 이해했고, 이해한 것의 대부분을 수월하게 동의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저 용어 자체가 저자의 주장을 모호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부재 지시 대상’이라는 기표가 원래 있던 영역에서 가리키던 기의(1)가, 저자가 ‘부재 지시 대상’이라는 기표를 통해 드러내고 싶어하는 기의(2)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고, 따라서 저자는 기표를 빌려오기보다 새로운 기표를 선언하는 게 좋았을 거라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내 의심은 그야말로 지엽적인 것이고, 이 책은 자체 훌륭한 책이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별 다섯 전혀 아깝지 않다.
당신이 인간의 신화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쉽게 논의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화에 관한 어떤 고양되고 의식화된 자각이 있다면, 그런 논의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말하는 신화는 낯선 무엇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는 순간까지 살아오면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배운 통념이다. 그러나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는 순간, 사실은 모순이 된다.
_ 캐럴 J. 아담스, 『육식의 성정치』
--- 읽는 ---
추리소설 읽는 법 / 양자오
생각하는 마르크스 / 백승욱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 스티븐 내들러
물리 오디세이 / 이진오
책 Chaeg 2021. 1.2 / (주)책(월간지)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