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1

 

가만히대신에 가만가만이라고 쓰면서 차근차근 가만가만해지는 내가 나는 좋아서, 주로 밤에 글을 씁니다. 갈팡질팡하는 말끝의 긴 꼬리를 잡고 단번에 갈 수 있는 의미까지 휘휘 에둘러 도착하는 일이 나는 기껍고 때로 설레기도 합니다. 나는 나를 알 수 없어서 미칠 것만 같던 밤들을 건너는 방법으로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가는 말의 쪽배를 집어타 보기로 한 겁니다. 단어는 종종 식은 촛농처럼 내 밖의 어둠이나 내 안의 어둠이 다녀간 흔적이 됩니다. 그 긴긴 몸피에 촛농을 떨어뜨리면 따갑다는 듯 간지럽다는 듯 괴롭다는 듯 황홀하다는 듯 몸부림치는 문장을 의뭉스러운 눈을 하고 지켜보는 일이 나는 좋습니다. 이렇게 문장과 나는 서로를 괴롭힘으로써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딱지를 떼어내면서 서로를 애무합니다. 말해지는 것들이 있어야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보이겠으므로 말하고,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야 말해지는 것들이 선명하겠으므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우리 둘의 생각이 같습니다. 잘 없는 일입니다. 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밤입니다. 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건 늘 밤입니다.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쓰는 대신에 사랑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어떤 잘 없는 일이 일어나는 밤이 당신의 방 창문을 톡톡 두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지나가는 비라고 여겨도 좋겠습니다. 자꾸만 지나가겠습니다. 가만히, 아니, 가만가만 그 소리를 들어주세요. 내가 던진 말의 긴 꼬리가 서울을 크게 에둘러 당신의 몸피에 도착하는 밤이 기껍고 설렐 수 있도록, 따가움과 간지러움과 괴로움과 황홀함을 조금 준비하였으니 부디 집어타고 좋은 꿈 가득한 좋은 연휴 보내시길.

 

 



누구나 흉중에 언덕과 골짜기와 연못의 심상이 있을 겁니다만 그동안 고심이 깊어 나한테 그 어떤 선물 한번 하지 않고 살았어요 당신의 숨소리를 받아 내 호흡으로 삼을 수 있다면 세상의 풍문에 귀를 닫고 실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게 찰랑거릴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연못의 감정이라고 부를까 해요

_ 안도현, 연못을 들이다부분

 

  모든 연인들이 그렇듯이, 두 사람은 자신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그런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내가 옛날에 당신을 얼마나 갈망했는지 알아요?" 캐서린이 말했다. "수업시간에 앞에 서 있는 당신 모습은 아주 크고 사랑스럽고 서툴러 보였어요. 나는 당신에게서 뭔가 격렬한 것을 보고 싶다고 갈망했는데, 당신은 전혀 몰랐죠?"

  "몰랐소." 윌리엄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아주 정숙한 숙녀라고 생각했거든."

  그녀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정숙하고 말고요!" 그녀는 조금 차분해져서 과거를 돌아보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숙함을 던져버릴 이유가 없을 때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정숙해 보이는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해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가끔 내가 세계 최고의 헤픈 여자가 된 것 같아요. 헤프지만 열정적이고 신실한 여자. 그 정도면 정숙해 보이나요?"

  "아니." 윌리엄은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이리 와요.“

_ 존 윌리엄스, 스토너

 

 

 

2

 


텍스트에서 말하는 것만큼이나 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텍스트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저 그 주제에 관심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주제가 말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후자가 훨씬 위험하다. 학자의 구력과 학문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더욱 위험하다. 모든 논리는 그 가장 기저에 전혀 의심받지 않는 명제를 정초하고 그 위로 다른 명제들을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방식으로 축조되기 때문이다. 건물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건물주는 자신의 기반이 되는 명제가 공격받는 일에 점차적으로 더 큰 부정적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100층을 쌓아올린 탑을 다시 처음부터, 혹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지어 올리라는 요청은 누군가에게는 생의 부정과 필적한 크기의 공격일 수 있다. 말하지 말아야 할 절실한 이유도 없이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기 위해 박아놓은 말뚝을 뽑겠다고 밝히면서, 책은 시작한다.

 

 

 

--- 읽은 ---


42. 분자 사용 설명서

김지환 지음 / 재단법인 카오스 기획 / 반니 / 2018

 

과학책은 참 잘 모르겠다. 과학에 대한 지식을 쌓으려고 읽는 건데 쌓여 있는 지식이 없으니 읽기 어려운 건 물론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과학에서 더 그렇다. 나는 아직도 과학책을 읽을 때 주입식 교육과 성적을 받기 위한 암기 위주의 학습이 이루어지던 시절 억지로 만들어 놓은 지식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시간이 지나도 그것들은 남고 새로 읽은 과학책들은 어지간히 좋은 책들이어도 결국 다 사라진다. 뭔가 독하게 덤벼들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쉬운지 어려운지 말하기는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말하기는 쉽다.

 

  계가 복잡할수록 그 계를 설명하는 일반적인 해가 존재하지 않고 대부분 구체적인 경우를 각각 생각해야 합니다. 화학과 생물이 다루는 세계는 물리가 다루는 세계에 비해 복잡하고 따라서 단순화한 몇 가지 법칙과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하고 명료한 아름다움이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없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닙니다.

_ 김지환, 분자 사용 설명서

 

 

 


43. 루소와의 1시간

이명곤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

 

루소는 너무 예전에 읽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거대한 명망에 비해서 책 자체는 무릎을 탁 칠만큼 좋은 데가 없었던 것 같다. syo의 소양의 문제이거나 번역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추후 다른 책을 통해 그의 인생사 역정 스토리를 주욱 읽으면서 루소는 더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되었다. 그냥 힙한 찌질이 같았다. 그 와중에 글은 잘 쓰는.

 

루소가 동일한 사실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에 분노를 느낀 것은 바로 절대적 상대주의아래 그 근거가 되고 있는 윤리적 이기주의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성찰이 없이 교육에 대해서, 도덕에 대해서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 다양한 이론들이 난립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이론이 아무리 탁월하다고 해도 그 밑바탕이 되는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하다면, 이 이론들은 한갓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_ 이명곤, 루소와의 1시간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무지한 철학자가 짜장면이라면, 루소는 삼선간짜장곱빼기라고 해도 좋겠다. 심지어 저도 무지한 주제에 그 무지를 모를뿐더러(곱빼기), 타인의 무지까지 비웃고 있다(삼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치지만, 그 자연상태에 대해서는 그냥 자기 머릿속으로 이럴 것이다 하고 추측해본 것에 불과하다. 그래놓고 또 데카르트를 깐다.

 

논리, 없다.

 

자연인다른 동물들과의 비교에서 루소가 내린 결론은 자연인은 다른 동물과 평등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 비해 나약하다고 하는 것도, 반대로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 우월하다고 하는 것도 사실상 이 둘 모두를 동시에 고려해 보면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으며,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다. 자연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사실은 공평한 것처럼사자가 사슴보다 더 나은 조건을 가지고 있더거나, 참새가 올빼미보다 더 나쁜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모두 인간의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하다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연 안에서의 모든 생명체와 평등한 것이다. 이는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기 이전의 원시 상태에서의 일종의 이상적인 생태공동체를 가정하게 한다.

_ 같은 책

 

1. 인간이 이런 부분은 강하지만 저런 부분이 약하니까 퉁-

: 이건 사실 논리도 뭣도 아니다. 그냥 자기 생각.

 

2.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으니 모두가 평등

: 누가 평등을 저렇게 정의하나. 평등은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이 똑같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선명히 존재하는 곳에 필요하다. 평등의 옳고 그름, 얼마만큼 조절해야 진정한 평등인지에 대한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라, 평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전제 조건 자체에 대한 인식이 틀렸다.

 

3. 모든 생명체가 사실은 공평하고 사자/사슴, 참새/올빼미의 조건 비교는 인간의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하다.

: 모든 생명체가 사실은 공평하다면, 조건 비교는 당연히 인간의 주관적인 편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생명체가 사실 공평하다는 것이 루소라는 인간의 주관적 편견일 때, 이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4. 인간이 문명을 건설하기 이전의 원시 상태에서의 일종의 이상적인 생태공동체

: 평등에 관한 헛소리에 가까운 정의 덕분에 이런 희한한 결론이 나온다. 늑대가 인간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을 권리와 인간이 늑대의 아가리에 횃불을 쑤셔 넣을 권리가 공평하게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상적인 생태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놀라울 정도다. 아니면, 루소의 책을 읽은 늑대가, 아 그렇구나, 우리는 이상적인 생태공동체니까 내가 인간 너희들에 목덜미를 물지 않을게, 너희도 내 입에 횃불을 집어넣지 않을 거지? 하며 가만히 옆에 서 있는단 말인가.

 

재미있는 건, 루소는 시종일관 여성을 남성과 다른 존재, 달라서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남자가 하는 공적인 일에는 손을 대서는 안 되며, 남자와 다르게 끓어 넘치는 그 성적 욕망을 억제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인간과 사자와 사슴과 참새와 올빼미는 퉁치고 평등하고 공평하다고 주장하는 자의 행태치고는 놀랍다.

 

물론, 원전을 읽으면 이렇게까지 허술한 이야기를 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책 속의 루소가 택도 없는 개소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읽던 당시에도 들지 않았으니까. 이제부터 다시 한 번 루소의 책들을 읽어보긴 할 텐데, 뭐랄까, 큰 기대는 없다. 솔직히 말해서, 루소는 죽은 것 같다. 1789년을 위해서 필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뭐랄까, MS-DOS 같은 느낌이다. 없었으면 안 될 한 획이라는 건 알겠는데, 그 획의 끝자락이 이젠 여기서 너무 멀게 느껴진다.

 

 

 


44. 죽음의 선고

모리스 블랑쇼 지음 / 고재정 옮김 / 그린비 / 2011

 

잘 나가는 사람들이/만 인정해서 더 힙하게 느껴지는 작가나 책 같은 것들은 늘 있다. 범인들은 그 존재조차 잘 모르고, 그게 또 잘 나가는 사람들한테는 더 열심히 사랑할 이유가 되는. 나만 아는 맛집이 있는데 지금 네게 이 맛집에 대해 말하고는 있지만 실은 나는 네가 이 맛을 알기를 원하지 않고 그저 내가 이 맛을 안다는 사실만을 네가 알기를 원하는 그런 맛집이랄까. 워낙 맛집이라 한번 읽어보기 전에는 힙한 척 나대면 안 된다는 소문이 쫘악 퍼지기 전의 벤야민이 그랬듯, 모리스 블랑쇼가 그렇다. 그래서 막 선집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알만한 사람들만 환장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syo는 블랑쇼를 까맣게 몰랐지만 다행히 블랑쇼 블랑쇼 거기 맛집인데- 외치는 철학자 몇 사람에 대한 개론서를 읽는 중이어서, 죽은 지 10년도 안되서 따끈따끈한(?) 이 프랑스 작가가 내 있어빌리티 구축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사 놓았는데 그게 벌써 10년이다. 지금의 syo는 그때의 어리석은 syo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역시 어리석음이란 상대적인 것이라, 10년 전의 syo가 보기에 똑똑하다 못해 후광이 비칠 정도인 오늘의 syo는 블랑쇼가 보기에는 해파리냉채하고 구분이 잘 안 되는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읽었는데, , 읽었는데. 그밖의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네.

 

그 이야기들을 하는 데 나는 극도의 어려움을 느낀다. 이미 여러 차례 그 사건들에 글의 형태를 부여하려고 시도를 해보았다. 내가 몇 권의 책을 쓴 것은 그 책들을 통해서 이 모두에 종지부를 찍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소설들을 썼지만 그 소설들은 말이 진실 앞에서 뒷걸음치기 시작하던 순간에 태어났다. 진실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비밀을 누설할까 봐 두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은 내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취약했고, 훨씬 교활했다. 이 교활함이 일종의 경고임을 나는 안다. 진실을 조용히 내버려두는 편이 더 품위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진실은 드러나지 않는 편이 극도로 유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곧 끝을 내기를 원한다. 끝을 보는 것, 그 또한 품위 있고 중요한 일이다.

_ 모리스 블랑쇼, 죽음의 선고

 

 

--- 읽는 ---

여자들의 무질서 / 캐럴 페이트먼

물리 오디세이 / 이진오

글이 만든 세계 / 마틴 푸크너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 이주윤

서른과 마흔 사이 / 오구라 히로시

n분의 1의 함정 / 하임 샤피라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 고병권

차이나는 클라스 : 국제정치 편 /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제작진

돈의 속성 / 김승호

에티카를 읽는다 / 스티븐 내들러

홉스 /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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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10 2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yo님! 즐겁고 행복 가득한 설명절되십시요!ㅎ 맛나고 영양높은것도 마니 드시고, 두부 억지로 드시지 마시구요!ㅎ

syo 2021-02-11 16:51   좋아요 2 | URL
막시무스님도 평화로운 고단백 명절 보내소서....

반유행열반인 2021-02-10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꿈 가득한 좋은 연휴 보내시길.

syo 2021-02-11 16:51   좋아요 2 | URL
꿈보다 좋은 현실 가득한 좋은 연휴 보내시길.

행복한책읽기 2021-02-11 0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부로 명절 준비 다 끝내고 섣달 그믐날에도 바지런히 읽고 쓰는 syo님. 루소는 죽은 것 같다!! 에 완전 동의👐👐 죽은 자 자꾸 부활시키지 말고, 산 자랑 알콩달콩한 명절 보내시와유~~~~ 그믐날의 syo는 사랑이네요. 사랑꾼 syo님이 갖은 양념 버무린 사랑시를 한껏 뿌려 놓았네요. 이 몸은 그대 글의 황홀함에 올라타 꿈꾸러 갑니다~~~^^

syo 2021-02-11 16:5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두부는 아직 첩첩산중입니다.....
루소는 제 서재에서 정기적으로 야금야금 때려볼까 생각 중입니닿ㅎㅎㅎ
읽기님도 안온하고 뜨끈뜨끈한 명절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1-02-11 0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yo님의 오늘 서문은 약간 황정은풍의 느낌 물씬입니다. 저는 황정은작가를 아주 좋아하므로, 그러므로 syo님의 오늘 서문도 굉장히 좋습니다. ^^ 스토너는 저도 읽었는데 왜 저는 저런 대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거죠? 이러다간 어디가서 읽었다 소리도 못하겠어요. 내일부터 설연휴 시작이네요. 부디 좋은 시간 되시고 새해에는 복도 듬뿍 받아 하고 있는 공부가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syo 2021-02-11 16:54   좋아요 1 | URL
풍이라도 황정은풍이라니 영광입니다. syo는 그 누나를 사랑하여 자주 몸부림칩니다....
저는 스토너가 되게 귀엽게 야한 책이어서 좋았습니다. 좋은 거 늦게 알아가지고 열심히 하는 귀요미 스토너.....
늘 감사합니다. 모래요정님도 축복 가득한 명절 보내세요^^

유부만두 2021-02-12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소 싫어요. 이렇게 루소 책이나 이름만 나오면 득달같이 달려와서 싫어욧! 하는 제가 루소 보다 더 찌질할지도 모르지만 아 루소 싫어요. 그런데 syo님은 안 싫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급 미소)

syo 2021-02-15 09:48   좋아요 0 | URL
이렇게 명절이 끝나고 나서야 댓글을 다네요.....
루소의 찌질함에 대해서는 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ㅎㅎ 유부만두님도 새해 복 잔뜩잔뜩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