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의 모양 1
그렇지만 그건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A가 말했다. K는 고개를 저었다. 전기포트에서 이제야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 찬 물을 넣었어.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K가 생각했다. A는 이 방에 하나뿐인 낡은 소파에 눕다시피 파묻혀 앉아 있었다. 목을 꺾어 뒤통수를 등받이 윗부분에 올려놓으면 신기하게 졸음이 쏟아지는 소파였다. A가 좋아하는 자세였고 K도 그런 A를 보는 게 좋았다. 침을 넘길 때마다 A의 목젖이 도드라졌다.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거기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가 보지. A가 훽 하니 K를 쳐다보았다. K는 덤덤했다. 커피 뭐 마실래. 이나영? 김연아? 김연아. K가 햐얀색 커피 스틱을 꺼내 탁탁 털었다. 아니, 요즘 김연아 왜 이렇게 예쁘냐? 걔 원래 그랬나? K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 끓는 소리가 한 톤 더 높아졌다. 그래도 그렇지, 개새끼라니. 나더러 개새끼라 그랬다니까? A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닌 게 아니라, K도 가끔씩 A는 사실 개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귀여운 동그란 눈. 무해한 눈빛. 다부져 보이는 팔은 만져보면 의외로 말랑거렸다. K는 그의 동그란 배를 슥슥 만지는 것을 좋아했고 그럴 때면 A도 뒤집어 놓은 강아지처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누가, 인담? 어, 인담. 아, 역시 인담. 물이 다 끓어 전기포트의 스위치가 달칵 내려앉았다. 그래도 A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K는 A의 이야기가 끊어질 때까지 커피 가루가 든 종이컵에 물을 붓지 않았다. 뜨거운 물은 천천히 식을 것이었다. 방이 그만큼 따뜻해지는 동안에.
창밖으로 키 큰 나무의 몸통이 보였다. 이른 가을바람이 잎들을 슬쩍 훔쳐보지만 그리 멀리까지 가져가진 못한다. 며칠 전, 사무실 뒤쪽 뜰에 뿌려진 은행알을 줍고 있던 K는 바람에 실려 온 A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틀림없는 A의 목소리였다. 사무실 창문 열어놨나 보네. 은행 냄새 난다고 싫어하더니. K는 가만히 눈을 감고 A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소리는 마치 파도처럼 다가왔다 멀어졌다를 반복했다. A가 가까이 있는 것 같다가도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뒤 창문이 닫힌 건지 아니면 A가 입을 다문 건지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K는 눈을 떴다. 주변이 조금 더 어두워져 있었다.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두워졌을 뿐이라고 K는 생각했다. 아직 일과는 끝나지 않았고, 저녁은 오지 않았다고. K는 사무실로 돌아가 전기포트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켰다.
K는 다시 전기포트의 스위치를 눌렀다. 물은 금방 끓었다. A가 커피를 받아들었다. 인담 진짜 짱나지 않냐? 걔는 걔대로 자기 일을 하는 거지. 여긴 그런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잖아. K가 커피를 홀짝였다. A는 부아가 치밀었다. 왜 내 편을 안 들어줘? 사랑하면 언제나 내 편 돼 줘야 하는 거 아냐? 사랑한다며, 아, 사랑한다며! K는 종이컵을 입에 물고 A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지금 화를 내려는 거야, 아니면 울려는 거야? K가 물었다. 인담한테는 화를 내고 너한테는 울려는 거야. A의 표정은 말 그대로였다. 아닌데, 나한테는 화를 내고 인담한테 가서 울려는 것 같은데? K는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놀리고는 조용히 A의 이마를 만져주었다. 내가 네 편인 거, 회사 사람들 다 안다. 내가 그렇게 티를 내고 다녔다. 그래, 안 그래. 그래. 너가 나한테 사랑한단 말 한마디 띡 해주고 말 동안,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좀 있으면 사장님도 아실 판이다. 그럼 난 모가지 날라가는 건데. 그래, 안 그래.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징징거리고 너 사무실로 복귀하도록. 알아들었나? 예, 알겠습니다. A는 웃으며 씩씩하게 일어섰다. K가 A의 옷매무새를 다듬었고, A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K를 끌어안았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얼른 나가, 사장님 곧 오셔. 형, 사장님 오시면 말 좀 해줘. 인사담당관 그 새끼 진짜 막말 심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애들 다 겁나 힘들어한다니까?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복귀해. 너 진짜 이러다 인담한테 개 털린다. 알았어, 형, 나 갈게, 부탁해! A는 늘 문을 닫지 않는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제 사무실로 걸어가는 A의 뒷모습이 한 마리의 대형견 같았다. 걸어가는 것만 봐도 기분을 짐작할 수 있는 지나치게 솔직한 걸음걸이. 과연 인사담당관은 인사담당관이군.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저게 멍멍이지, 어떻게 사람이야. K는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와 탁자 위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종이컵을 바라보았다. 컵 속에 남은 커피 양은 서로 달랐지만, 합쳐 놓으면 어떻게든 한 컵이 나올 것도 같았다. 탁자와 맞붙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지휘관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K는 커피를 치우고, 휴지를 뽑아 알콜성 소독젤을 바른 후 화이트보드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그리고는 작전과로 전화를 걸어서 다음 주 연대장 일정표를 요청했다.
9월이 지나갔다. 진짜로 가을이 올 것이다. 마지막 가을이. 가을이 오면 K는 병장이 된다.
길을 잃는 것, 그것은 관능적인 투항이고, 자신의 품에서 자신을 잃는 것이고, 세상사를 잊는 것이고, 지금 곁에 있는 것에만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더 멀리 있는 것들은 희미해지는 것이다. 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길을 잃는 것은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고,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는 것은 불확실성과 미스터리에 머무를 줄 아는 것이다.
_ 리베카 솔닛, 『길 잃기 안내서』
나는 항구라 하였는데 너는 이별이라 하였다
나는 물메기와 낙지와 전어를 좋아한다 하였는데
너는 폭설과 소주와 수평선을 좋아한다 하였다
나는 부캉, 이라 말했는데, 너는 부강, 이라 발음했다
부캉이든 부강이든 그냥 좋아서 북항,
한자로 적어본다, 北港, 처음에 나는 왠지 北이라는
글자에 끌렸다 인생한테 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로든지 쾌히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_ 안도현, 〈북항〉부분
나는 '다른 노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도 언젠가는 지긋지긋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하나밖에 없는 어떤 개별 단위가 끝나는 것이다. 삶은 반복되고, 진퇴하며, 연속하는 흐르는 시간이 아니다. 역사가 시간의 서사라는 (역사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가는 세월은 잡을 수 없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인생은 바로 이곳에서, 단 한번 일어나는 일이다.
_ 정희진,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읽은 ---
148. 페미니즘 : 교차하는 관점들
로즈마리 퍼트넘 통, 티나 페르난디스 보츠 지음 / 김동진 옮김 / 학이시습 / 2019
이 책을 쪼개 읽은 긴긴 날 동안 syo는 알라딘에 10개 가량의 글을 썼는데, 한 번도 이 책에 관해 페이퍼에서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도 참 나다.
핑계를 대자면, 이 책은 다른 책들의 핵심정리 쪽집게 요약서라고 봐도 무방한데, syo가 제아무리 요약을 배제한 페이퍼를 표방한들 책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요약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결국 요약을 요약하는 꼴이 될 텐데, 아, 그건 정말 하기 힘들다. 결국 이 책은 읽는 것 이외에 마땅한 소비 방법이 없다. 페미니즘을 보듬고 싶건 아니면 뽀개고 싶건, 이거 한 권 정도 책장에 꽂아 놓고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부분을 꺼내 읽는 게 제일 똑똑한 방법 같다.
149. 한 권으로 읽는 칸트
이정일 지음 / 이학사 / 2020
함량을 떠나서, 책이라는 물건으로 독서유니버스에 출현하기 위해 갖추어야 하고 통과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으면 편집자가 해야 하는 일. 예를 들면 중언부언을 죽이는 일 같은 것. 여기서 syo가 말하는 중언부언은 첫 번째 챕터에 나온 말이 일곱 번째 챕터에 거의 그대로 다시 등장하는 그런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물론 그런 것도 이 책엔 잔뜩 있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① 칸트에 따르면 범주는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② 범주의 근원은 경험에 있지 않다. ③ 칸트는 이를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을 통해 정당화한다. ④ 쉽게 말해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문제가 바로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이다. ⑤ 하지만 사실 범주의 근원이 정확히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 칸트의 연역에도 불구하고 ― 칸트 전문가들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⑥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범주가 경험을 통해 획득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⑦ 어쨌든 칸트는 범주가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면서 그 근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힌다. ⑧ 그리고 그는 이 지점에서 범주를 ― 당대에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던 ― 데카르트의 생득 관념과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⑨ 어쨌든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은 여전히 그 타당성을 놓고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⑩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형이상학적 연역은 그 판독에 있어서 여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2-33)
- ②는 ①과 같다.
- ⑥은 ①과 같긴 하지만, 맥락상 한번 더 강조할 수도 있겠다.
- ⑦은 ①과 완전히 같다. ① = ② = ⑥ = ⑦이다.
- ⑧은 이 맥락에서는 뜬금포다.
- ⑨ = ⑩ = ⑤다.
이런 중언부언을 잡지 않아서 위의 두 문단은 알 수 없는 관계를 맺고 말았다. 첫 번째 문단은 범주의 근원이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칸트 전문가들조차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어도 어쨌든 범주의 근원이 경험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반면 두 번째 문단은 범주가 경험에서 획득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논의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느낌이다. 왜 저렇게 써야만 했을까?
칸트에 따르면 범주의 근원은 경험에 있지 않다. 이를 정당화하고 범주의 근원을 밝히는 과정을 칸트는 범주의 “형이상학적 연역”이라 한다. 그러나 범주의 근원을 정확히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논의 중이며, 칸트 전문가들 역시 범주가 경험을 통해 획득된 것은 아니라는 점 외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대충 이러면 땡 아닌가?
초심자에게 중언부언은 때로 나침반이 되기도 한다. 아, 계속 튀어나오는 거 보니 요놈 요게 핵심이구나 싶으면 밑줄을 박박 그으며 씹어먹겠다고 덤벼들 수 있다. 그런데 중언부언에도 도가 있고, 그게 고장 난 나침반처럼 동시에 여러 군데를 가리키게 되면, 아, 울어야지 별 수 없다.
결론. 저런 대목이 저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서 이 책은 내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책은 아니게 되었다.
150. 여름의 빌라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0
바스라뜨리는 것은 늘 쉽다. 말 한마디로 다 무너져내렸던 그 모든 견고한 것들. 견고해 보였던 것들. 모든 순간이 우리를 움킨다. 헐겁게 한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최선을 다했음에도, 혹은 최선을 다했으므로 결국 한마디 아픈 말이면 충분히 산산조각 날 수 있도록 매일 매시간 허물어진다. 마치 망가지려고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당신이 움켜쥔 것이 무엇인지, 움켜쥔 마음이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하여 우리는 오해하고 오해한다. 손에 쥔 게 뭔지 좀 보자며 세상이 억지로 내 주먹을 열어내려 들 때,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모쪼록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읽는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 하완
어젯밤 / 제임스 설터
--- 갖춘 ---
임마누엘 칸트 – 생애와 철학 체계 / F. 카울바흐
라캉의 주체 / 브루스 핑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