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다는 농담
1
깊이만큼이나 폭이 문제다. 과학과 공학, 정치와 경제를 모르고도 문학이나 철학만 가지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얼추 알 수 있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20세기의 종료와 동시에 죽고 죽고 일백 번쯤 고쳐 죽어 이미 백골이 진토가 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syo가 읽는 책은 늘 철학-문학-철학-문학. 철문철문 아우 한심하다. 그렇지만 소년은 늙었고 학문은 이루기 엿 같으니 깔끔하게 포기할까?
하지만 세상 겁나 무섭고 죵니 빠르다. 포기하면 남은 인생 그냥 배추로 살아야 될 판이다.
2
미리 본 역자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우엘벡에 대해 “문체가 평범하다는 평가가 종종 있”다고 한다. 와, 프랑스놈들 정말 못 말리겠다. 프랑스 소설이 자꾸만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3
엉덩이가 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건지, 방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곧 아프다. 열 페이지를 넘기기 어렵다. 그러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게 이거 아닌가. 이게 의자인지 의자의 형상을 한 시멘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인체에 비협조적이던 도서관 의자에 앉아 공부하던 시절에도, 같이 공부하러 다니는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내 엉덩이만 늘 불이 났다. 방석은 생활 필수품. 만져보면 말랑말랑한데……. 얘는 대체 왜 어째서 주인의 일상사에 제동을 거는 걸까?
4
진짜 연휴가 시작될 모양이다. 나는 책을 읽는다. 배추가 되어도, 자꾸만 어지러워도, 엉덩이가 비명을 질러도.
--- 읽은 ---
158.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
방송만 보고는 느끼지 못했었는데, 돌아온 허지웅은 이전의 허지웅과 많이 다른 사람이었나보다. 두 세계에 걸쳐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하는 매체로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활자를 택했다는 것은, 그의 본질이 쓰는 사람이라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 나는 쓰는 사람이 좋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활자를 이용하고 그 활자를 축적하기 위해 책을 먹어 치우는 사람은 일단 좋다. 나는 한 번도 나의 죽음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좋다.
159.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김성민 지음 / 다반 / 2020
나는 1권의 책에 100명의 독자가 있으면 최소한 100개의 독서가 태어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100개의 독서는 실상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미세한 잣대를, 때에 따라서는 의미가 없다 싶을 정도로 사소한 차이까지 식별하는 잣대를 갖다 대지 않으면 100개의 독서를 진짜 100개로 구분해 떼어놓기는 힘들다. 한 권의 책을 두고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하는 말과 같은 말을 한 번 더 보태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면 나는 굳이 그 책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늘 어렵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책 읽은 책에 관대해지는 것 같다.
아름다움도 쓸모도 모두 책의 것 같지만 실은 독자의 속성에 가깝다. 정확히는 독서의 속성. 아무도 읽지 않아도 절로 아름답거나 쓸모 있는 책은 없다. 읽지 않으면 독서는 없다. 우리가 아름답고 쓸모없는 ’책’이 아니라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다. 아름답고 쓸모있는 독서란 거의 없다. 아름다움을 통해 나중에 쓸모 있게 되거나 쓸모를 통해 언젠가 아름다워질 수는 있지만. 결국 아름답지 않고 쓸모있는 독서와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사이에서 우리는 편향적인 선택을 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선택하고 나가야 한다. 내가 읽는 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내가 이 책을 노 저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느끼고 읽어야 끈질기게 읽는다.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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