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호언장담은 하는 게 아니다. 지난주에 한 고마운 이웃님의 격려 넘치는 댓글을 보고 주중에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자신했지만, 웬걸. 결국 ‘12회 연재는 성사되지 못했고, 그 다음 주도 다 넘어가는 지금에 와서야 부랴부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지난 번 글의 제목에 기록이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데, 사실 이것은 반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의 영향이다. 왜 반쯤이냐면, 당시 글을 쓸 때는 저 책을 사 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은 상황이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 훑어본 책의 앞머리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는, 저자의 성실히 기록하는 태도에 감명을 받아서. 독서기록을 업데이트하며 책의 제목을 다시 확인해 보니 제목으로 쓰인 문장 마지막에 마침표(.)가 있다. 마침표까지가 표제인 것이다. 어쩌면, 자주 계획대로 되지 않고 처음의 뜻이 흐지부지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짧은 기록이나마 성실하게 맺음을 하겠다는 태도를 권하는 저자의 결연함이 제목의 문장에 반영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짐작해 본다.

    

 

 일기 쓰기야말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게 시작할 수 있는 날입니다. 어제를 되돌려 살 수는 없으니, 그저 오늘부터 기록해나가면 돼요. (p. 31)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옛말이 으레 그렇듯 일정 부분 사실을 반영한다(‘100% 사실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것을 유의하자). 나는 실존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목수가 아닌 관계로 연장 탓부터 하고 보는 사람이다. 무슨 말이냐면, 책에서 언급한 5년 일기의 필요성을 절절히 공감하면서도(‘맞아, 그런 기록이 있다면 미래의 나에게 정말 소중할 것 같아!’), 작가가 추천한 구체적인 아이템이 갖추어지기 전까지는 쓸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차단했다는 뜻이다(‘그래도 형식도 없이 5년 일기를 시작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그런 고로 지금 쓰고 있는 5년 일기는 20213월 하순 경부터 시작한다.

 

여하튼 내 기록이 이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아지다 보니, 남에게 보여도 괜찮은 기록과 그렇지 않은 기록을 구분하게 된다. 후자의 기록에 담긴 내용이 음습하고 반사회적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에게도 나만의 심리적인 방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일상적인 기록의 가치는 시쳇말로 요즘 SNS에서 난리 난(=알라딘 서재의 이웃들 사이에서 근자에 자주 언급되는)’ 작가인 이주윤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나이를 먹을 만치 먹었을 테니 다른 사람들은 내 고민에 큰 관심이 없다는 실상을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니 친구를 붙잡고서 인생의 고단함을 털어놓는 쓸데없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하고 일기에다 한풀이를 해보시기를 권한다.

한 줄도 좋고, 열 줄도 좋고, 오조 오억 줄도 좋다. ‘부담 없이 일기를 쓴다면 쓸거리가 넘쳐난다에 내 손목과 내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건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다시피 살다 보면 거의 매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힘든 일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p. 124-125)

 

 

 

책은 짧은 에세이니까 금세 읽을 수 있었고, 읽고 난 소감은 뭐랄까, 일 때문에 처음 만난 사람이랑 회식 자리에서 어쩌다 2차까지 같이 남아 별 말 다 듣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을 간만에 느꼈달까(지금은 회사에서도 5인 이상 집합금지 덕분에 회식 안 한다). 요즘 출판 트렌드에서는 이 정도로 자기를 까발려도(?) 허용이 되는구나 싶다가도, 편집자랑 출판사가 사전에 손을 봤으니까 독자들이 이 정도까지 읽을 수 있는 거겠지, 라는 생각도 들고. 부정적이지는 않은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이 책을 읽고 작가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겨 서점에서 저자의 나머지 책을 모두 샀다, 는 것이 글값에 상응하는 바람직한 결말이겠으나,

    

 

 

사실은 이전에 전자책으로 사 둔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먼저 읽었다. 맞춤법 책을 이렇게나 차지게 쓸 수 있다니, 감탄하며 읽었지만 사실을 하나 뜬금없이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의 주요 독자가 아니었다.

 

나는 사실 그런 직업이 있다면- ‘문법 경찰을 하고도 남았을 사람이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던가, 한글 맞춤법을 오래 공부하다 보니 맞춤법을 안() 지키는 사례들이 아주 거슬렸다. 문법 경찰을 사임(?)한 이유는 두 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수 없어 해서(나는 타인의 평가를 많이 의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법 단속에 걸리면 사실 나도 다 피해나갈 수 없어서(이럴 때 동종/유사업계 사람들이 자주 쓰는 레퍼토리: “국립국어원 원장님도 띄어쓰기 다 모른대요!”). 

 

각설하고, 작가의 차진 맞춤법 설명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하나의 키워드(=딴생각)가 있었으니, 바로 주 독자의 역설(또는 목적의 역설)’이다. 읽으면서 글이나 말은 읽거나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으면 발화가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떤 책은 주 독자를 확실히 고려했는데도 주 독자로 상정한 이들이 읽지 않는다. 나는 감히 이야기하건대 그건 작가의 문제가 아닌, ‘아무 생각 없이도 잘들 살아가는예상 독자의 문제다. 세상에는 책 안 읽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마치 페미니즘 도서는 한 글자도 보지 않으면서 양성의 평등, 성별 간 화해 어쩌고 나불대는 남자들처럼. 어떤 식으로 알려줘도 알아먹을 생각을 안() 하는 오빠들에게 최소한의 맞춤법을 주입시키겠다는 것이 책의 목적인데, 과연 그 오빠들중 이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교육은 인간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전제로 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고, 어떤 독서는 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도 한 명의 오빠가 이 책으로 구원받는 게, 공리주의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 사회의 엔트로피 감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겠지?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적어도 이 책의 작가는 잘못한 것이 없다.

    

 

 

 

이전에 알라딘 북펀딩으로 받아본 수화 배우는 만화를 작년에 읽다 중도에 놓았던 적이 있어서, 다시 읽기를 시도했고 마무리를 지었다. 배움을 통해 무엇을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수어를 배우기 시작한 작가의 경험을 그린 일상만화인데, 가볍게 보는 중간에도 성찰하게 되는 지점이 많았다. 하긴, 나의 일이 아니라고 가볍게볼 수 있는 남의 일은 없다. 작가가 흔치 않은 됨됨이를 지닌 신실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시선을 돌린 현실에서는 장애인들이 투쟁하고 있었다. 나는 그 투쟁에 시혜와 연민의 무게 없이 온전히 연대할 수 있을까.

    

 

 

 

 

새로 쓴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초판이 2008년에 나왔고 2012년에 개정한 저자의 출세작을 전면 개정한 자본론입문서다. 나는 이제 자기 객관화를 대학생 때보다는 잘 한다. 이 책을 쉽게 읽고 주요 논지를 이해한 건 사실이지만, 자본론원전의 문으로 곧장 돌격할 정도의 지적 수준을 담보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책에서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균 수준의 상식과 이해도를 가진 학생들과 강사가 강의에서 만나는 형식을 빌려 내용을 서술하는데, 그 서술 방식이 내 생각을 엉뚱한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

 

강의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지 실제 강의록을 바탕에 둔 것이 아니기에 강사의 말이든 학생의 말이든 저자의 목적의식을 부각하기 위해서는 결국 저자가 계획한 대로서술의 흐름이 흘러가야 한다. 강의 중간에 학생들이 내놓는 반론도, 허를 찌르는 듯한 돌발성 질문도 사실은 예측 범위 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자본론을 처음 접하는 학생인 것처럼 캐릭터를 표현했지만 왜 내 눈에는 운동권 학생처럼 보였을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건 아마도 내가 과거에 꿘이었기 때문이겠지?

    

 미국이 일으키는 숱한 전쟁도 따지고 보면 결국에는 돈벌이를 위한 것이잖아요. 군수 자본의 욕망 탓에 전쟁까지 나고.

 

이게 여러 학생중 한 명의 말이고, 말만 놓고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나는 왜 이렇게 이 말이 꿘들이 애용하는 레퍼토리의 하나처럼 보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나빴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회사에서든 뉴스에서든 가는 데마다 부동산 얘기하고 주식 얘기 하는 데에 넌더리가 나서 그랬는지, 이런 꿘들의 대화가 과거의 흥취를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맛이 있었다. ‘이거 완전 NL 아니냐고 ㅋㅋㅋ혼자서 막 이러면서 읽고.

 

 

그래도 오늘은 일기까지 써도 2주 전보다 30분 정도는 일찍 자겠다. 이번 주말에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마저 읽고 새로 찜해 둔 책들 빌려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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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3-2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과도기 님, 페이퍼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특히나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에 대한 글은 적극 동의하며 읽었네요. 앞부분 읽으면서 그렇지, 페미니즘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페미니즘 책을 안읽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부분도 언급해주셨네요. 하하.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마저 읽으시고 새로 찜해둔 책들도 빌려와서 또 읽으시고, 글 또 써주세요, 인간의 과도기님! 즐거이 반가이 읽겠습니다!

인간의과도기 2021-03-29 19:39   좋아요 0 | URL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사실 글을 쓰면서도 페미니즘을 알고 실천하는 문제에 스스로 떳떳할지 자문도 들었습니다만^^; 계속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기록해 나가려고 합니다.
오늘은 아직 월요일이라 주말에 책을 읽겠다는 의지가 충천하네요. 덕분에 계속 쓸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3-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오빠를 위한 맞춤법 글에서 그 오빠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지적에 빵 터졌네요. ㅎㅎ 문법 경찰을 사임한 이유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네 다른 사람들이 재수없어하면 사임해야죠. 뭐 저도 그래서 사임한 것들이 좀 되는거 같습니다. ^^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에 대한 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는 저 책 제목이 너무 맘에 안들어서 안읽었거든요. 그럼 저 책 이해 못하면 난 원숭이보다 못한 지능 보유자가 되는거 아냐라는 걱정에 말입니다. ^^

인간의과도기 2021-03-29 19:4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님.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10년도 더 전에 나온 책이니만큼, 직관적인 제목에 대해 지금 기준에서는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 책의 진짜 복병은 진보적 사상에 대한 독자의 편견이나 선입견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그 부분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입문서로서 수준급 책입니다!

라로 2021-03-2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다리던 글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기다릴만해요, 늘!!👍
그런데 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들었는데요, 인도님이 <문법경찰>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주시면 넘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가능한 날이 오기를. 제가 그 글을 읽을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

인간의과도기 2021-04-01 12:33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라로 님! 예전보다는 상대적으로 꾸준히 쓰는 만큼 밑천이 예상보다 일찍 바닥나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요즘인데, 그 걱정이 덕분에 잠시 가셨어요. 문법 경찰을 하기에는 현업(?)에서 손 뗀 지가 되어서 이제 경찰학교 학생도 못 될 듯 합니다ㅠ

2021-03-29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1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2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록은 정직하다. 지난번의 글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곽재식 작가의 책을 리스트에 포함했다. 며칠 후 북플에서 알림을 받았다. 띵동(실제로 이런 어플 알람이 울리지는 않는다), 당신은 곽재식 작가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글을 많이 쓰면 다방면의 마니아가 되는 것이 북플의 구조라는 것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알라딘 서재의 어딘가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재야고수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글을 적게 쓰지만, 어쨌든 그 적은 글 중에서 반복적으로(또는 변주하여) 언급한 작가나 작품, 분야가 있을 테니. ‘저자/아티스트로 구분해 보았을 때 나는 장강명, 정세랑, 곽재식의 마니아라고 한다. 하하. 어쩜 이렇게 소름 돋게 잘 맞을까. 대놓고 이 작가를 좋아한다라느니 요새 이 작가를 많이 읽는다라느니 하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내 성정상 앞으로도 그런 말은 다른 사람 앞에서 못 한다), 사실 말이나 글에서 개인적 취향이나 호불호를 꽤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닐는지.

 

기록은 정직하다. 엑셀로 쓰는 나의 독서기록에는 요즈음의 내 독서 패턴이 보인다. 주말에 서너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한다. 주중에는 잠잠하다. 지난 주말에 읽기 시작했던 (일부) 책들을 이번 주말에 완독하고, 완독하자마자 다시 새로운 책들로 넘어간다. ‘책은 영혼의 양식이다라는 말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간헐적 폭식이 최근의 패턴인 셈이다. 심지어 첫 다섯 문장은 2주 전에 썼는데, 지금과 차이가 없다. 패턴은 꾸준히 이어진다.

 

기록은 정직하다. 안 쓰면 안 쓴 티가 난다. 글은 부재(不在)함으로써 주체의 여러 사정 중 하나(나의 경우는 게으름)를 증명한다. 내 알라딘 서재의 마지막 글은 3주 전에 쓰였다. 호기롭게 다짐하지나 말걸. 한 주마다 글을 쓰겠다고 하자마자 2주를 손 놓았다. 이렇게 허언 이력에 한 줄 추가. 2주 치 글을 안 썼으니 오늘은 A4 너덧 장 분량의 글을 쓸까? 그러나 내가 취업준비생 시절에 접하고는 지금까지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 있으니, ‘오늘의 할 일이 밀렸으면 밀린 일에 미련 갖지 말고 내일의 할 일을 해라. (워딩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이 말을 기준 삼아, 지난 2주간 내 안에서 들끓었으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옛 잡념들은 잠시 뒤로 하고 그간 읽은 책에 대해 지금정리한 감상을 괴발개발로 쓰든 뭐로 쓰든 일단 쓰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곽재식이 쓴 인공지능 교양서다. 이렇게 간단하게 소개하면 사실 곽재식 작가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 인공지능을 다룬 책들 중 근거 없는 상찬이나 비관 모두로 기울지 않는, 드문 균형감각을 지닌 몇 안 되는 저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 고백하자면, 책을 산 지는 오래되었으나(무려 1년이 넘었다) 바로 읽어볼 생각을 안 했던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전자책 치고는 분량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인공지능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가가 어렸을 적에 처음 접한 컴퓨터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 보였다는 것.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사실 다잡았다기보다는 , 곽재식 작가의 저작 중에 아직 내가 안 읽어본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이 책을 잡았을 때에는 앞서 말한 이유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담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전체적인 핵심과 이어지도록 글을 엮는 솜씨는 곽재식의 특기이고, 이렇게 짜임새가 있으면서도 빡빡하지 않은 글은 분량이 어느 정도이든 읽는 데 무리가 없다.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곽재식이 한국 사회에서 생활의 기반을 가지고 사는 것에 감사를 표해야 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인공지능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두루 엮은, ‘한국적인 제언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내 말이 오버라고 생각된다면 이 책 1부를 어디 도서관에서라도 잠시 집어서 살펴보기 바란다. 그의 우려 중 몇 년 지나지 않아 비극적으로 현실이 된 것이 하나 있으니. 과학 소설 작가나 과학자는 예언자가 아니고 그들의 말이 미래에 모두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찰은 최소한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일곱 개의 회의는 한 중견 회사에서 일어나는 암투를 그린 회사원 소설이다. 책의 두께가 무색할 정도로 휘릭휘릭 페이지를 넘기며 재미있게 읽었다. 만약 내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덜 재미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로서 실감하는 영역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좁았겠지. 일본에서 나쁜 것만 나중에 들여오는 게 한국이라더니, 읽는 내내 우리 회사 이야기인 줄 알았다... 라고 하면 우리 회사 사람들이 싫어하겠지? 사실 우리 회사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입에 침을 바를 만큼 좋지도 않다. 각설하고.

 

한자와 나오키를 읽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케이도 준이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 여성은 대개 주연(남자) 또는 조연(남자)의 바가지를 긁거나,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곱 개의 회의에는 그나마 여성 직원들이 사건을 전개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챕터가 하나 있지만, 뭐랄까, 왠지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에 여성의 가면을 씌워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현실에도 당연히 나쁘거나 마음이 좁은 여성이 있겠지. 그런데 그런 말을 변명으로 삼기에는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이 온갖 역동적인 방식으로 음모를 꾸미고 사회 생활을 하고 감정을 다 드러내고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문득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었다. (과거의 전철: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의 작가(일본인)가 극우 인사임이 밝혀졌을 때 느낀 난감함)

  

  

아무튼, 떡볶이는 항상 전자도서관에서 예약 신청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마침내 나에게도 차례가 와서 읽게 되었다. 뮤지션이자 책방 주인, 팟캐스트 진행자(아직도 하시나요?)이자 작가라는, 하나만 가져도 대단해 보이는 직업을 여럿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정작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를 처음 접했음을 고백한다. (오늘은 유난히 뜬금포 고백이 많네.)

 

떡볶이의 레시피 정리라든지, 떡볶이가 좋은 이유 1부터 10까지라든지, 뭐 이런 이야기는 아니고, 떡볶이를 느슨한 매개로 한 관계와 장소 등에 관한 이야기인데, 세상에, 나는 왜 요조의 책을 진작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거지. 시쳇말로 느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조롭거나 지루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오버하지도 않는, 이런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글이라니... 꼭 떡볶이 같다, 라고 하면 아주 진부한 감상이겠지? 나는 피자를 좋아하니까,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지는 매력이 있는 피자가 생각나는 글이었다, 라고 하면 책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감상이겠지? 여튼, 나는 저자의 바람대로 책을 다 읽은 후에 국물떡볶이를 만들어 배우자와 같이 먹었다. (무늬만) 반골 독자 치고는 저자의 말을 잘 들은 흔치 않은 사례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이하 근방’)는 슈퍼히어로를 주제로 한 단편을 모은 앤솔로지다. 혹시나 나 같은 독자가 있을까봐 경고. 알라딘 책 소개 페이지의 두 번째 문장을 인용하자면, 이 책은 “2015년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이웃집 슈퍼히어로(이하 이웃집’)에 이은 두 번째 슈퍼히어로 단편집이다.” 감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중 절반에는 맨 끝에 이 작품은 이웃집에 수록된 A 작품의 (프리퀄/후속작)이다.’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는 사실도 같이 알려 드린다. 물론 단편집의 작품 하나하나는 고유한 재미와 완성도가 있었다는 것을 (감히) 보장하며, 어떤 작품들에서는 일종의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나같이 순서에 굳이 집착하는 독자라면, 꼭 유념을 해야 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자, 이웃집도 읽어야 한다. 나는 분명히 예전에 이웃집도 종이책으로 산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없으니 도서관에나 가야 할 운명이다. 이웃집을 다 읽고 나면, 처음 근방을 읽을 때 내 머릿속에 드리웠던 맥락의 안개가 걷힌 다음일 테니 틀림없이 근방을 한 번 더 읽고 싶어질 테지. 아이고, 꼼짝없이 3회차 뛰어야 할 운명이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곽재식의 소설이 읽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다. 왜 이 책이 먼저였냐면, 연애담이 책의 주를 이뤄서라기보다는(이것도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동네 도서관에 있는 곽재식의 소설(앤솔로지 제외) 중 내가 안 읽은 유일한 책이어서.

간만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한편으로 지금의 삶을 문득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되는 이율배반적(?) 경험을 선사해 준 작품들이었다. 성찰은 아래와 같은 대목에서 했다.

 

 

 

어쩌면 결혼이란 계속해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기만 하는 그런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한번 저질러보려고 한다. 아직 어린 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설레는 마음만으로 혼자서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그대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었던, 그런 그녀와 결혼을한다는 것은, 뭐 하여간 대단한 행운이니까. 그리고 그 정도 행운이 주어져 있다면, 너와 함께 겪는 고난은 언제나 해볼 만한 도전이고, 너의 손을 잡고 같이 가는 역경은 항상 새로운 모험이지 않겠냐고

(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p.363)   

 

 

 

 

그리고 문제적 제목을 가진,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나에게 요새 무슨 책 읽냐고 묻는 사람은 지나가다가 님 정말 잘 생겼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의 수만큼 드물지만(그냥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만에 하나 진짜로 묻는다면 제목을 언급하기 참 조심스러워지는 책. 보통 궁금하지 않은데 무슨 책 읽냐고 나에게 물어볼 정도면 높은 확률로 연장자일 텐데, 그래도 나에게는 졸지에 물은 사람을 저렇게 추하게만들고 싶지는 않은 최소한의 사회생활 감각이 있다.

 

간만에 책을 읽으며 헛웃음을 터뜨리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작가의 올곧음과 유머 감각과 풍자 정신... 하여간 그 모든 것들이 기분 나쁘지 않은 직설로 툭툭 튀어나와, 전혀 생각도 않고 있던 부분에서 터지고 말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2년이 지났고, 나는 놀랍게도 정규직이 되었다. 그전에는 삶이 불안정하게 팍팍했다면, 이젠 안정적으로 팍팍했다.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中)

 

저번에 여기서 마셨던 걸로 가져와봐.”

젠장! 어마어마하게 진부한 말인데 진짜가 하니까 다르구나!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中)

 

 

세상에서 제일 안 웃긴 일이 혼자 웃다가 자기가 웃은 이유를 남에게 처음부터 설명하는 일이다. 그런 안 웃긴 일 대신 할 수 있는 일은, 이 책 한 번 잡숴보라고 권하는 것뿐이다.

    

 

지금 이 글을 마치고 자리에 누우면 다섯 시간도 자지 못할 거다. 괜찮다! 나는 새벽까지 넷플릭스 보다가 두 시간 잔 적도 있으니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오늘은 다섯 시간 후면 이미 태양이 떠 있을 거다! 젠장!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까지 쓰는 걸 보니, 조선 태종이 사냥하다 말에서 떨어져 놓고는 이거 적지 마라라고 한 말까지 곧이곧대로 기록해 놓은 사관 같기도 하다. 먼 훗날 이 글을 보면 한때 새벽까지 누구에게 보일지도 모를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고 잠깐 회고를 하겠구나. 기록은 이렇게 다시 한 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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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15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님 정말 글 잘 쓰시네요!!! (누가 저에게 안 물어봤지만, 😅) 암튼 약속(?) 못 지킨 것은 용서해드릴테니 이번 주 하나 더 써줘요. (빚쟁이 된 듯한? 나는 빚쟁이였나??🤔)👍👍👍

인간의과도기 2021-03-17 23:10   좋아요 0 | URL
좋은 빚쟁이(?) 라로 님 덕분에 이번 주에는 가볍게 한 꼭지 더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남깁니다! 항상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날에도 일한 덕분에 이번 주말은 이틀 연휴가 아닌 사흘 연휴로 보낼 수 있었다. ‘하루라고 쓰면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주말이 1.5배가 되었다고 쓰니 정말 큰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을 실감하게 된다. 실제로도 여유가 생겨, 간만에 배우자와 주중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교외 산책도 했다.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진 덕분에 그간 사두었으나 읽지 않았던, 한편으로는 새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익숙한, 묵은지 같은 책들을 완독하고 또 뒤적이는 시간을 보냈다.

 

 

  

가난의 문법2주에 걸쳐 읽었다. 사실 나는 누가 무슨 책 주로 읽어요?’라고 묻는다면(아직 유명인사가 아닌 탓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지 못한다) ‘가장 좋아하는 책 분야는 시사나 사회과학입니다라고 답할 만큼 사회과학 책을 많이 읽지만, 이 책은 주목을 하는 주체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전통적인 예비 사회운동가부터 친자본주의적 인플루언서까지) ‘대세는 일단 피하고 본다반골 힙스터기질 때문에 독서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평소에도 시민은 어떤 식으로 사회에 책임을 지는가를 자주 생각하면서 정작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사회의 주요 논의를 회피한다면 그것만큼 모순이 어디 있겠는가?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원래 좋은 사회과학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할뿐더러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을 공론장으로 인도하는 법. ‘폐지 수집 노인이 마주한 구체적이고 삭막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니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시야에 들어온다.

 

사회과학 책을 읽을 때 보통의 독자가 취하게 되는 태도, 저건 내 일은 아니야에서 비롯되는 모든 태도(연민, 동정, 외면 등)를 저자는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 다음의 대목과 같이 그 최소한의 태도조차 경계하는 저자의 선명한 말이 나는 충분히 미더웠다.

    

 

가난한 노년을 다가올 불행으로 여기며, 그보다 나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일은 처참하다. 노인들의 모습은 젊은이들의 불행쿠키가 아니며, ‘반면교사(反面敎師)’도 아니다. 지금 닥친 노인들의 생활 속에서 노인들의 어려움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종이상자의 생산량·배출량의 늘어나는 현상은 노인을 착취하는 일을 심화시키고 있다. 배달과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며 종이상자의 사용량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집과 가게마다 다 쓴 종이박스의 배추량도 늘어났다. 그렇지만 젊고 부유한 소비자들은 폐품의 배출과 처리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들은 종류에 따라 분리수거를 하면 자신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여긴다.

 

책의 결론은 에필로그에 아주 명확히 드러나 있다. 이 글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스포로 여겨진다고 생각해서 적지 않았는데, 궁금하다면 직접 찾아볼 것을 추천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최근 가장 많이 읽는 작가는 곽재식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자책 구입목록을 보면 나온다. (나 혼자서 웃기다고 생각하는) 웃기는 사실은, 종이책으로 산 책이 하나도 없다는 것. 앞으로도 그의 책을 꾸준히 사려면, 책 종수가 많다보니 종이책은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신간/구간 가리지 않고 전자책으로도 출간된 책이라면 종이책을 제끼고 전자책을 선택한다. (혹 작가님이 이 글을 본다면, 종이책을 둘 공간이 마땅치 않은 독자의 충정을 헤아려주시길.)

 

 아무튼. 최근 한 달 이내에 산 곽재식의 책은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구매일과 책 제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건대, ‘삶에 지친정도가 압도적으로 심해 글이고 뭐가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무시로 들다보니 곽재식은 정말로 삶에 지칠 때 어떻게 버텼는지가 궁금했던 것 아닐까. 나는 물론 작가도 아니지만, 어쨌든 생계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글을 비정기적으로 쓰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한때는 작가를 꿈꿨던 사람이니까.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내린 결론은 곽재식이니까 버텼지라는, 매우 이상한 것이었다.

    

 

 

 

 

지금은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그의 또 다른 책을 읽는 중인데, 첫 부분에 무려 그의 어린이시절, 컴퓨터로 ‘BASIC’ 언어로 프로그래밍한 일화를 그럴 수도 있지정도의 느낌으로 이야기한다.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은, 성인이 된 지도 한참 지난 아저씨니까 어린이시절은 저마다 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어린이 때 이룬 업적 중 하나가 기껏해야 읽고 싶은 책이 있어 생일 선물로 이 책을 사 주세요라고 양친에게 요구했다는 일 정도다. 고전도 아니고 대학 개론서도 아닌, 그냥 어린이용얇은 교양 서적 한 권.

 

 

 

 

이런 간극의 차이에서 누가 누굴 본받나. 실제로도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에 실린 여러 글들이 총체적으로 의도하는 바, 그러니까 책의 기획 의도가 과연 제목에 부합하는지가 읽으면서도 여러 번 의심이 되었다. 결론은 이렇다. 곽재식의 팬이어서 별점 기본 4(5점 만점).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실용적인 지침은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를 참고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니 참고할 것.

그러나 이 책이어서 건진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곽재식 속도의 실체. 그는 그 실체를 친히 알리는 것을 넘어, (예비) 작가들에게 권면하기까지 한다.

  

 SF를 쓰는 사람들이 하는 농담 중에 곽재식 속도라는 게 있다. (...) 6개월 동안 단편 소설 네 편을 쓰는 속도를 말한다. (...) 그렇지만 여러 상황을 막론하고 1곽재식 속도 정도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도전해 볼 만한 속도라고 생각한다. 반년 동안 원고지 4백 장을 목표로 글 쓸 건수를 만들며 그때그때 결말을 짓고 완성해 나가는 것은 작가가 되려고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해 볼 만하다.

 

 

정말 해 볼 만한가요? 어린이가 BASIC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만큼이나? ‘곽재식 속도는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원고지 400/6개월 = A4 40/24주 = A4 1.67/1

(여기서 A4는 한글 프로그램에서 용지/글꼴 설정을 바꾸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설정을 안 바꾸고 한 장을 꽉꽉 들이 채우면 원고지 10매 언저리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한 번 쓸 때는 이 정도를 쓴다. 반은 인용, 나머지 반의반은 정보값 없는 헛소리라서 그렇지. 문제는 삶에서 지치는 정도가 너무 잦아 매주 글쓰기를 꿈만 꾸고 실천은 못 한다는 것. 하긴 모든 진리(예수님 부처님 공자 말씀 포함)는 옛날부터 지극히 당연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던가?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이 항상 문제였을 뿐.

어찌 됐든, 쓸 게 있을 때는 쓰는 게 좋다. 쓸 게 없는데 억지로 쓰지 않는다면야.

(사족: 기록에 관한 신간-그 책을 차마 사지는 못했지만- 출간 소식에 영감을 받아 요새는 며칠에 한 번 꼴로 일기를 쓴다. 지극히 평범한 말로 이루어져 있는, 늘어지는 일기.)

    

 

아무튼, 은 이전의 나였다면 크게 관심 가지지 않았을 책이다. 나의 산행은 한 번도 자의에 의한 적이 없었다. 수학여행, 야간행군 등... 그 누가 미운 정을 이야기했나? 미운 것은 곁에 오래 두면 더 미워질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회사에서 부서도 바뀌었고, 사무실에만 앉아 있다 보면 360도로 돌아버리는 시점이 언젠가는 올 것 같아서 점심을 먹고 나면 꼭 산책을 한다. 산책의 은 당연히 그 이 아니지만, 산책과 산 타기는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젊은 사람이’, 산이 힘들어서 좋았다라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대체 무슨 내막이 있나? 궁금증이 들어 선택한 책이다. (끼워맞추기)

 

삶의 안정적이고 고요한 동태에서 안주하기보다는 산을 정말로 좋아해서,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삶을 선택했다는 이야기.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점점 흐려지기도 하고, 주위 핑계를 대지만 삶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태도의 변화도 있어서인지, 저자의 이야기가 온전히 내 것 같아 가깝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산을 몇 번 자발적으로 타고 나면 이 책도 달리 읽힐까? 그러나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혼자 산을 타러 갈 시간은 충분치 않을 듯하다. (새벽에 타러 가도 되지만, 나는 좋아하는 일이 있어도 새벽에 일어나서 하느니 잠을 선택하는 편이다)

  

 

  

업무 특성상 내일은 90% 이상의 확률로 야근하는 날이다. 어차피 일은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 지금부터 내일을 굳이 생각하지는 말아야겠다. 다음 주에는 공휴일이 일요일 다음에 있어 이번 주말과 같은 사흘 연휴이니, 내일부터 한 주 동안은 사흘 연휴나 틈날 때마다 생각하고 기대해야겠다. 닷새 중 하루나 이틀, 혹은 그 이상을 번아웃 상태로 날리느니 주4일제가 시행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있는 주5일제도 여기저기서 각종 편법으로 어기고 한편으로는 제도적으로, 합법적으로 안 지켜도 문제 없도록 해 주니, 그저 한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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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의과도기님! 기다렸어요!!^^;;
그럼 다음 주에도 글이 올라오는 거지요?? 응???

인간의과도기 2021-02-22 23:15   좋아요 0 | URL
매번 반가이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라로님! 어제까지만 해도 다음 주말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출근 하루 만에 다시 의지를 잃어서 ^^;; 그래도 너무 오래 기다리시지 않게 해보겠습니다!
 

새해 계획 같은 건 원래 믿지 않았었지만 그래도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 무언가를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여성주의 책 읽기를 시도해 보고자 1월 선정 도서인 육식의 성정치도 샀고, 1월은 아무쪼록 일이 바쁘겠지만 365일이 이런 식이지는 않을 테니까 주말에라도 짬을 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정확히 일주일 만에 깨졌다. 부서 이동과 함께.


많은 것을 느꼈다. 배신감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에 느낀 배신감은 아니다. 원래 회사는 이런 곳이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일 뿐인데 나를 탓할 수 있나?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까지 쓰다가, 생각이 더 길어지면 혹 이 모든 것은 나의 피해망상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평소에 지독히도 싫어하는 가는 데마다 헬 파티면 네가 구멍이다식의 책임론이 어쩌면 내 경우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동종업계에 있는 사람이 쓴 신간이 전자책으로 나왔기에 사서 읽어보았다. 사실 굳이 살 정도일까 반신반의했었지만 도서관이 언제 다시 열지 몰랐고 희망도서는 신청해도 언제 들어올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책을 읽고 나니(사실은 한 번 훑어본 것뿐이지만) 누군가가 기분 나쁘게 귓가에 대고 내 미래를 속삭이는 것 같아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는 대단한 글을 쓰지 못할 거야, 네가 잘 쓴다고 생각하는 글도 편집을 거치고 책으로 나오면 다 이런 식일 거야, 너는 특별하지 않아, 남은 생도 그럴 거야.

 

새로운 부서에서는 사람들의 깨진글을 보거나 말을 듣는다. 표현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그 글/말의 아래에는 엄청난 분노가 있다. 그러나 나는 분노할 수 없다. 어떻게든 회사 차원에서 예의 있게 대답이 나가도록 해야 한다. 그가 얼마나 악의를 가졌는지와 관계없이. 그냥 회사가 인정한 폭탄처리반이다. 빈말로라도 좋은 자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여태껏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 회사는 개개인의 사정을 모두 헤아릴 수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러면 내 인생은? 내가 입사하겠다고 선택한 회사니 어떻게든 견디는 것도 내 책임인가?

 

마침 세 달 대여로 구입한 전자책의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훑어 봤더니, ‘감정의 전염에 관한 부분이 눈에 띈다.

 


남의 기분에 영향 받지 않기 위해서는 기분의 출처를 정확히 해야 한다타인에게 전염된 기분이라고 판단되면과감하게 쳐내는 연습을 해 보자남의 감정까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없다지금 나의 기분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만 깨달아도 그 무게가 훨씬 가벼워져서내 안에서 흘려보내는 일이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네 감정은 내 것이 아니다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그러니까 위의 모든 내용을 머리로는 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원래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냥 하나하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고, 머리로는 이해한다. 그러나 속된 말로 시달리고나면, 겉으로는 하하, 오늘도 조금 힘든 하루였네요하고 태연한 척 할 수 있겠지만, 마음에는 얼룩이 남는다.

 

모두가 꿈을 꾸지만 대다수는 그 꿈을 이룰 능력이 없다. 아이들은 결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고는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남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불만만 가득하다. 왜 자신이 실패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그 절정이다. 한 번도 거절당해본 적이 없는 아이 중의 아이는 네가 잘못된 건 다 세상 탓이고, 소수자 탓이고,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등쳐먹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론 세상은 잘못되어 있고, 당신의 불행한 삶이 당신 잘못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당신 탓이고, 투정 부린다고 해결될 것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꿈만 꾸는 아이의 세계, 꿈을 팔거나 불만을 팔거나, 믿습니까? 믿습니다!


전후 맥락을 보면 필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명백하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어서 자신의 모든 꿈이 마땅히실현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반사회적으로 구는 이들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정도는 당신 탓이라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처럼 읽혀 자꾸 신경 쓰인다.


어쩌면 나는 내가 남자라는 이유로,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가족과 사회로부터 과보호를 받은 것은 아닐까? 상황이 어떻든 이제는 내 구체적인 잘못과 관계없이 내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면 나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패배감, 좌절감, 분노, 우울-셀프로통제해야 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나의선택이니까?


구조가 개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으로 통용되는 요즘의 세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회사에서 겪은 일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등을 떠밀고는 책임지지 않는 구조와, 그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나 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화가 점층적으로, 그라데이션으로 올라온다.



그래서 요새 이런 책들을 읽는다. 두 책(하나는 무크지)의 공통점은 1. 구조 속의 개체를 환기시키며, 2. 글의 길이와 밀도가 적당하여 요즘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읽을 수 있다.

 

생각이 길어지면 다다르는 결론은 언제나 같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지 말자. 지금이 그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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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에서 쉰다. 같은 방에 있는 두 사람은 아직 잔다. 배우자는 커피를 늦게 마셔서, 어린이는 어린이집을 안 가니 평소대로 늦게(자정을 넘겨) 잠들어서. 곧 깰지도 모르니 글은 짧게 쓰고, 다가오는 새해를 비대면으로 맞이하자. (그전에도 딱히 해돋이 보러 가지는 않았었지만)

    

 

오늘은 집에서 쉰다. 출근을 안 했다는 이야기다. 취준생일 때는 나름 자리를 잡은직장인들이 틈만 나면 출근하기 싫다느니 퇴사하겠다느니 (요새 버전으로는 퇴사하고 유튜브를 하겠다느니’) 하는 말들이 우는 소리로 들렸었다.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직장인인 지금의 나가 하는 반성의 도가 지나쳐 지나가는 취준생을(혹은 과거의 나를) 붙잡고 느그들 다 틀렸어. 늬들이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알아? ‘사회생활을 알아?”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축하합니다, 당신은 꼰대행 특급열차에 올라타셨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기중심적 습성의 한계를 인식할 줄 아는 동물이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자 노력할 수도 있다. 코로나19는 내 짧은 식견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의 수많은 사각지대를 비추었다. 단적으로, ‘범죄자에게도 왜 인권이 필요하냐평범한사람들의 질문은 적어도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확진이라는 사태를 맞이한 이후에는 줄어들지도 모른다. (앞의 질문이 인권의 개념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은 질문이라는 것은 차치해 두자) 그러나 비관적인 전망으로는, 그 사각지대는 단지 비추어지기만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도처에 가려져 있던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일도 분명 코로나19를 맞아 힘들어진 측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힘듦에만 매몰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위 문단의 마지막 문장도, 오늘 집에서 쉬고 있기 때문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일지도.

    

 

오늘은 집에서 쉰다. 글을 쓸 수 있는, 흔치 않은 틈새 시간이다. 부업으로라도 글을 써서 소득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기에, 형식상으로는 나에게 마감을 독촉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서, 알라딘 서재를 (가끔이나마) 기웃거리고, 투고를 받는 독립문예지의 투고 마감 일정을 체크해 둔다.

 

그러나 생활인으로서의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일을 일단 미룬다는 것이다. 미루다 보면, 회사에서의 일은 (사장님이 보고 계시니) 어떻게든 끝내 놓지만, 안 한다고 해서 심각한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일은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제쳐 두다가, 결국 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선배들이 구전해준 노래도 막 생각이 나고 그런다. ‘오늘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할 일은 하지 않는다 /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라고 했지... 느껴지는가? 호시절을 보내는 대학생의 패기가?)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오늘 마감인 투고 일정을 머릿속으로는 몇 주 전부터 계속 생각해 왔으나 결국 한 자도 못 썼기 때문이다.

    

 

 

언젠가 시은 이은규 씨를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그가 그러더군요.

내가 시를 써도 되는가, 쓸 수 있는가 고민했다. 그러다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내가 시를 쓰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답은 살 수 없다였다. 그래서 쓴다.”

 

숨바에서 온 편지, 마감 일기

 

 

 

   

이 부분을 읽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지금 당장 쓰지 않아도 살 수는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에 있어서는 쓰지 않는 사람아닌가? 대가 없이, 시로써만 나타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쓰는 사람의 동료인 체하기에는, 염치가 없지 않나?

    

 

2020년에는 58권을 읽었다. 에세이와 만화가 올 한 해 읽은 책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자책으로 읽은 것은 절반 이상이다. 시집은 읽은 것이 없다. 적어도 를 쓰기 위해서라면, 2021년에는 올해보다 더 부지런히 동시대 시를 찾아 읽고 감응해야겠다.

    

 

여기까지 쓰는 중에 거짓말같이 같은 방에 있던 두 사람이 일어났다. 미룬다고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이 글은 오늘써야 의미가 있는 것이니,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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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1-0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까지라도 넘 좋습니다!! 내년엔 인도 님께 많은 틈새 시간이 생기길 혼자 희망해봅니다!!저는 사실 내년에 틈새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긴해요. ^^;; 그래도 인도 님의 글을 읽는 틈새 시간은 꼭 마련해 두겠어요!! 해피 뉴 이어~~~~!!^^

인간의과도기 2021-01-03 16:31   좋아요 0 | URL
라로 님, 제 답이 늦었네요 ㅠㅠ
부족한 제 표현력 때문에 말씀은 따로 드리지 못했지만, 라로 님 글을 읽으면서 제 내면의 여러 부분이 고양되었었고, 그래서 참 감사했어요.

2021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라며, 소망하시는 바를 이루시는 하루하루 보내시기를 기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