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정직하다. 지난번의 글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곽재식 작가의 책을 리스트에 포함했다. 며칠 후 북플에서 알림을 받았다. 띵동(실제로 이런 어플 알람이 울리지는 않는다), 당신은 곽재식 작가의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글을 많이 쓰면 다방면의 마니아가 되는 것이 북플의 구조라는 것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알라딘 서재의 어딘가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재야고수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글을 적게 쓰지만, 어쨌든 그 적은 글 중에서 반복적으로(또는 변주하여) 언급한 작가나 작품, 분야가 있을 테니. ‘저자/아티스트’로 구분해 보았을 때 나는 장강명, 정세랑, 곽재식의 마니아라고 한다. 하하. 어쩜 이렇게 소름 돋게 잘 맞을까. 대놓고 ‘이 작가를 좋아한다’라느니 ‘요새 이 작가를 많이 읽는다’라느니 하는 말을 한 적은 없지만(내 성정상 앞으로도 그런 말은 다른 사람 앞에서 못 한다), 사실 말이나 글에서 개인적 취향이나 호불호를 꽤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닐는지.
기록은 정직하다. 엑셀로 쓰는 나의 독서기록에는 요즈음의 내 독서 패턴이 보인다. 주말에 서너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한다. 주중에는 잠잠하다. 지난 주말에 읽기 시작했던 (일부) 책들을 이번 주말에 완독하고, 완독하자마자 다시 새로운 책들로 넘어간다. ‘책은 영혼의 양식이다’라는 말의 연장선상에서 보자면, ‘간헐적 폭식’이 최근의 패턴인 셈이다. 심지어 첫 다섯 문장은 2주 전에 썼는데, 지금과 차이가 없다. 패턴은 꾸준히 이어진다.
기록은 정직하다. 안 쓰면 안 쓴 티가 난다. 글은 부재(不在)함으로써 주체의 여러 사정 중 하나(나의 경우는 게으름)를 증명한다. 내 알라딘 서재의 마지막 글은 3주 전에 쓰였다. 호기롭게 다짐하지나 말걸. 한 주마다 글을 쓰겠다고 하자마자 2주를 손 놓았다. 이렇게 허언 이력에 한 줄 추가. 2주 치 글을 안 썼으니 오늘은 A4 너덧 장 분량의 글을 쓸까? 그러나 내가 취업준비생 시절에 접하고는 지금까지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 있으니, ‘오늘의 할 일이 밀렸으면 밀린 일에 미련 갖지 말고 내일의 할 일을 해라’다. (워딩은 정확하지 않다.) 나는 이 말을 기준 삼아, 지난 2주간 내 안에서 들끓었으나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옛 잡념들은 잠시 뒤로 하고 그간 읽은 책에 대해 ‘지금’ 정리한 감상을 괴발개발로 쓰든 뭐로 쓰든 일단 쓰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은 곽재식이 쓴 인공지능 교양서다. 이렇게 간단하게 소개하면 사실 곽재식 작가의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것이, 인공지능을 다룬 책들 중 근거 없는 상찬이나 비관 모두로 기울지 않는, 드문 균형감각을 지닌 몇 안 되는 저작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 고백하자면, 책을 산 지는 오래되었으나(무려 1년이 넘었다) 바로 읽어볼 생각을 안 했던 이유가 두 가지 있었다. 전자책 치고는 분량이 많다는 것, 그리고 인공지능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가가 어렸을 적에 처음 접한 컴퓨터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 보였다는 것.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 사실 다잡았다기보다는 ‘아, 곽재식 작가의 저작 중에 아직 내가 안 읽어본 게 없나?’ 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이 책을 잡았을 때에는 앞서 말한 이유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담처럼 보이는 이야기가 전체적인 핵심과 이어지도록 글을 엮는 솜씨는 곽재식의 특기이고, 이렇게 짜임새가 있으면서도 빡빡하지 않은 글은 분량이 어느 정도이든 읽는 데 무리가 없다.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곽재식이 한국 사회에서 생활의 기반을 가지고 사는 것에 감사를 표해야 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아니었으면 인공지능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두루 엮은, ‘한국적’인 제언을 접할 수 있었겠는가? 내 말이 ‘오버’라고 생각된다면 이 책 1부를 어디 도서관에서라도 잠시 집어서 살펴보기 바란다. 그의 우려 중 몇 년 지나지 않아 비극적으로 현실이 된 것이 하나 있으니. 과학 소설 작가나 과학자는 예언자가 아니고 그들의 말이 미래에 모두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통찰은 최소한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일곱 개의 회의』는 한 중견 회사에서 일어나는 암투를 그린 ‘회사원 소설’이다. 책의 두께가 무색할 정도로 휘릭휘릭 페이지를 넘기며 재미있게 읽었다. 만약 내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덜 재미있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로서 실감하는 영역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좁았겠지. 일본에서 나쁜 것만 나중에 들여오는 게 한국이라더니, 읽는 내내 우리 회사 이야기인 줄 알았다... 라고 하면 우리 회사 사람들이 싫어하겠지? 사실 우리 회사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입에 침을 바를 만큼 좋지도 않다. 각설하고.
『한자와 나오키』를 읽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케이도 준이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에서 여성은 대개 주연(남자) 또는 조연(남자)의 바가지를 긁거나, 현실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상황 파악을 못 하는 역할을 맡는다. 『일곱 개의 회의』에는 그나마 여성 직원들이 사건을 전개하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챕터가 하나 있지만, 뭐랄까, 왠지 전형적인 남자 캐릭터에 여성의 가면을 씌워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현실에도 당연히 나쁘거나 마음이 좁은 여성이 있겠지. 그런데 그런 말을 변명으로 삼기에는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들이 온갖 역동적인 방식으로 음모를 꾸미고 사회 생활을 하고 감정을 다 드러내고 인정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 문득 과거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었다. (과거의 전철: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의 작가(일본인)가 극우 인사임이 밝혀졌을 때 느낀 난감함)
『아무튼, 떡볶이』는 항상 전자도서관에서 예약 신청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마침내 나에게도 차례가 와서 읽게 되었다. 뮤지션이자 책방 주인, 팟캐스트 진행자(아직도 하시나요?)이자 작가라는, 하나만 가져도 대단해 보이는 직업을 여럿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정작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를 처음 접했음을 고백한다. (오늘은 유난히 뜬금포 고백이 많네.)
떡볶이의 레시피 정리라든지, 떡볶이가 좋은 이유 1부터 10까지라든지, 뭐 이런 이야기는 아니고, 떡볶이를 느슨한 매개로 한 관계와 장소 등에 관한 이야기인데, 세상에, 나는 왜 요조의 책을 진작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거지. 시쳇말로 ‘느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단조롭거나 지루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오버’하지도 않는, 이런 형언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글이라니... 꼭 떡볶이 같다, 라고 하면 아주 진부한 감상이겠지? 나는 피자를 좋아하니까,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지는 매력이 있는 피자가 생각나는 글이었다, 라고 하면 책의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감상이겠지? 여튼, 나는 저자의 바람대로 책을 다 읽은 후에 국물떡볶이를 만들어 배우자와 같이 먹었다. (무늬만) 반골 독자 치고는 저자의 말을 잘 들은 흔치 않은 사례다.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이하 ‘근방’)』는 슈퍼히어로를 주제로 한 단편을 모은 앤솔로지다. 혹시나 나 같은 독자가 있을까봐 경고. 알라딘 책 소개 페이지의 두 번째 문장을 인용하자면, 이 책은 “2015년 출간되어 화제를 모은 『이웃집 슈퍼히어로(이하 ‘이웃집’)』에 이은 두 번째 슈퍼히어로 단편집이다.” 감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이 작품집에 수록된 단편 중 절반에는 맨 끝에 ‘이 작품은 『이웃집』에 수록된 A 작품의 (프리퀄/후속작)이다.’라는 안내 문구가 있다는 사실도 같이 알려 드린다. 물론 단편집의 작품 하나하나는 고유한 재미와 완성도가 있었다는 것을 (감히) 보장하며, 어떤 작품들에서는 일종의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나같이 ‘순서’에 굳이 집착하는 독자라면, 꼭 유념을 해야 한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자, 『이웃집』도 읽어야 한다. 나는 분명히 예전에 『이웃집』도 종이책으로 산 기억이 있는데, 지금은 없으니 도서관에나 가야 할 운명이다. 『이웃집』을 다 읽고 나면, 처음 『근방』을 읽을 때 내 머릿속에 드리웠던 맥락의 안개가 걷힌 다음일 테니 틀림없이 『근방』을 한 번 더 읽고 싶어질 테지. 아이고, 꼼짝없이 3회차 뛰어야 할 운명이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는 곽재식의 소설이 읽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다. 왜 이 책이 먼저였냐면, 연애담이 책의 주를 이뤄서라기보다는(이것도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동네 도서관에 있는 곽재식의 소설(앤솔로지 제외) 중 내가 안 읽은 유일한 책이어서.
간만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한편으로 지금의 삶을 문득 되돌아보고 성찰하게 되는 이율배반적(?) 경험을 선사해 준 작품들이었다. 성찰은 아래와 같은 대목에서 했다.
어쩌면 결혼이란 계속해서 고난과 역경이 찾아오기만 하는 그런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한번 저질러보려고 한다. 아직 어린 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설레는 마음만으로 혼자서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그대로 밤을 지새울 수도 있었던, 그런 그녀와 결혼을한다는 것은, 뭐 하여간 대단한 행운이니까. 그리고 그 정도 행운이 주어져 있다면, 너와 함께 겪는 고난은 언제나 해볼 만한 도전이고, 너의 손을 잡고 같이 가는 역경은 항상 새로운 모험이지 않겠냐고.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p.363)
그리고 문제적 제목을 가진,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나에게 요새 무슨 책 읽냐고 묻는 사람은 지나가다가 ‘님 정말 잘 생겼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의 수만큼 드물지만(그냥 없다는 얘기다), 그래도 만에 하나 진짜로 묻는다면 제목을 언급하기 참 조심스러워지는 책. 보통 궁금하지 않은데 무슨 책 읽냐고 나에게 물어볼 정도면 높은 확률로 연장자일 텐데, 그래도 나에게는 졸지에 물은 사람을 ‘저렇게 추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은 최소한의 사회생활 감각이 있다.
간만에 책을 읽으며 헛웃음을 터뜨리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작가의 올곧음과 유머 감각과 풍자 정신... 하여간 그 모든 것들이 기분 나쁘지 않은 직설로 툭툭 튀어나와, 전혀 생각도 않고 있던 부분에서 터지고 말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2년이 지났고, 나는 놀랍게도 정규직이 되었다. 그전에는 삶이 불안정하게 팍팍했다면, 이젠 안정적으로 팍팍했다.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中)
“저번에 여기서 마셨던 걸로 가져와봐.”
젠장! 어마어마하게 진부한 말인데 진짜가 하니까 다르구나!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中)
세상에서 제일 안 웃긴 일이 혼자 웃다가 자기가 웃은 이유를 남에게 처음부터 설명하는 일이다. 그런 안 웃긴 일 대신 할 수 있는 일은, 이 책 한 번 잡숴보라고 권하는 것뿐이다.
지금 이 글을 마치고 자리에 누우면 다섯 시간도 자지 못할 거다. 괜찮다! 나는 새벽까지 넷플릭스 보다가 두 시간 잔 적도 있으니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고 오늘은 다섯 시간 후면 이미 태양이 떠 있을 거다! 젠장!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까지 쓰는 걸 보니, 조선 태종이 사냥하다 말에서 떨어져 놓고는 ‘이거 적지 마라’라고 한 말까지 곧이곧대로 기록해 놓은 사관 같기도 하다. 먼 훗날 이 글을 보면 한때 새벽까지 누구에게 보일지도 모를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고 잠깐 회고를 하겠구나. 기록은 이렇게 다시 한 번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