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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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三이 차를 샀다. 3만킬로쯤 탄 경차다. 언제나 모 안 난 인생을 살고 남들 다 하는 선택을 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三은, 역시 남들 다 그러듯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전면허를 준비했고, 남자들이 보통 그러듯 1종 보통을 응시했으며. 역시 평균적으로 그러하듯 기능 시험에서 한 번 떨어져 준 다음 무난하게 면허를 취득했다. 그게 15년쯤 되었으니 면허 없던 인생과 면허 있는 인생의 길이가 거의 비슷해진 오늘의 三. 그러나 그는 면허시험장을 나선 이후 단 한 차례도 핸들을 잡아본 적이 없었고, 최근 유튜브를 통해 악셀이 아니라 브레이크 페달이 왼쪽이라는 사실을 재습득할 수 있었다. 지금은 syo 앞에 마주 앉아서, 클러치가 그러고 보니까 뭐 하는 거였지? 이러면서 뭔가를 검색하는 모양이다. 쌤 불러서 한 여섯 시간쯤 도로 연수 받으께, 연휴 끝나기 전에 차 끌고 강릉 함 갔다 오까? 회나 시원하이 한 사라 해야지, 라고도 말했다. 회 한 접시에 목숨 한 번 걸어 보자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다니 진정한 사나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영동고속도로 위에서 찬란하고 덧없이 산화하려고 꾸역꾸역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지구에서의 삶에 미련이 꽤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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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는 머리가 나쁜 편이다. 특히 기억력 쪽은 누가 너 기억력 정말 참담하구나? 라고 해도 화내지 않는 게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이럴 거 읽으면 뭐하냐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자정 너머 미셸 우엘벡의 『세로토닌』을 읽다가 궁금해져서 알라딘에 검색해봤더니 고수님들의 굉장한 리뷰들이 발견되었다. syo가 부러운 건 그분들의 밝은 눈도 단단한 글솜씨도 아닌, 기억력이었다. syo는 리뷰를 잘 못쓰는 가운데서도, “이 작가의 전작 얼씨구절씨구는 주제가 이러쿵저러쿵이었던 바, 작가의 관점 변화가 있다/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와 같은 식의 구절은 아예 사용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억이 안 나서! 『소립자』의 주제가 뭐였더라? 거기서도 야한 거 많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좀 나오네? 헤헤, 야한 할배 우엘벡. 이게 syo의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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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죽여버리겠다고 패기만만하게 빌려 온 벽돌 두 개.
둘 다 1,000페이지가 넘는다. syo는 프로이센을, 三은 피케티를 읽고 있다. 누구도 이길 것 같지 않다.
--- 읽은 ---
154. 괴물이라 불린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
긴 감탄사의 운명은 결국 용두사미다. 우와아아아아ㅏㅏ……(음소거).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가 ‘와’랑 ‘아’사이 어디쯤이었고, 이 책은 ‘아’와 ‘아’ 사이 어디쯤. 다음 책을 한 권 더 읽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우와아아아우와오와!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별개로, 전작과 다른 역자가 번역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취향이다. 검색해보니 다음 작품은 또 새로운 역자가 번역한 듯. 이게 다 뭔 일일까.
155. 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 박산호 옮김 / arte / 2019
세상에 이치라는 것이 있고, 세상이 만들어진 데 뜻 같은 게 있다면, 일단 박살 난 일상을 중복적으로 무너뜨리진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사건이 사람을 조각내면, 바람이 불 때마다 제 안에 든 조각에 찔려 다시 상처 입고, 다시 아물고, 다시 피 흘리고, 다시 딱지가 앉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금 간 인생들의 시절이.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람을 조각내는 사건이 하나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가 세상에 되어 퍼지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조각 난 사람을 어떻게든 찾아와 아예 가루로 만드는 시대에 도착했다. 가루가 된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 가루가 되면 아물거나 덧날 상처의 자리조차 남지 않겠다.
모든 컷에 움직임이 없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156. 왜 칸트인가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잘은 모르겠지만 칸트의 주저는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판단력 비판』을 읽기 위해서는 『실천이성비판』이 제시하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그 개념들은 또 『순수이성비판』을 모르고서는 확립되지 않는, 그런 식이랄까. 보통 이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칸트는 유독 체계적인 듯. 그래서 결국 『순수이성비판』과의 만남으로 칸트를 시작해야 하는데, 만나 보니 걔는 성격이 진짜 극악무도했다. 그래서 칸트와는 시작만 계속 있었지 끝 같은 건 없었고, 맨날 직관의 순수 형식인 시간과 공간 어쩌고 하는 부분에서 좌절의 마일리지만 적립하고 돌아서기 일쑤다. 순수이성에서 안녕하면 실천이성이나 판단력은 냄새도 맡기 어려운 것이 현실. 그래서 머리 꼬리 다 떼고 몸통만 한 권으로 꿰어주는 책이 칸트철학에는 필요하다. 우린 철학자가 아니니까요.
칸트 개론서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요놈의 용어 때문이다. 마치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었던 신성로마제국처럼, ‘순수’‘이성’‘비판’ 얘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전적 의미와 다르다. 그게 또 180도로 달라 버리면 원전을 읽다가 모순된 지점을 발견하거나 할 텐데, 그게 아니라 한 15도에서 45도쯤 달라 버리니까,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다고 오해하며 끄덕끄덕 읽어가다가 나중에는 읽히는데도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는 상황이 자꾸 발생하는 것이다. 아, 우린 철학자가 아니니까요.
2회독 하며 느끼는 건데, 요 책은 칸트 입문서 중에서는 정말 제일 좋은 것 같다.
157. 책chaeg 2020. 9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0
잡지를 한 달에 딱 한 권 읽고 있는데, 그게 <책>인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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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블라인드 / 앤드루 슈툴먼
세로토닌 / 미셸 우엘벡
언어의 역사 / 데이비드 크리스털
‘장판’에서 푸코 읽기 / 박정수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 김성민
다이어트의 정석 / 수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