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장의 꿈

 

 

1

 

어제 이 차를 샀다. 3만킬로쯤 탄 경차다. 언제나 모 안 난 인생을 살고 남들 다 하는 선택을 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三은, 역시 남들 다 그러듯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전면허를 준비했고, 남자들이 보통 그러듯 1종 보통을 응시했으며. 역시 평균적으로 그러하듯 기능 시험에서 한 번 떨어져 준 다음 무난하게 면허를 취득했다. 그게 15년쯤 되었으니 면허 없던 인생과 면허 있는 인생의 길이가 거의 비슷해진 오늘의 . 그러나 그는 면허시험장을 나선 이후 단 한 차례도 핸들을 잡아본 적이 없었고, 최근 유튜브를 통해 악셀이 아니라 브레이크 페달이 왼쪽이라는 사실을 재습득할 수 있었다. 지금은 syo 앞에 마주 앉아서, 클러치가 그러고 보니까 뭐 하는 거였지? 이러면서 뭔가를 검색하는 모양이다. 쌤 불러서 한 여섯 시간쯤 도로 연수 받으께, 연휴 끝나기 전에 차 끌고 강릉 함 갔다 오까? 회나 시원하이 한 사라 해야지, 라고도 말했다. 회 한 접시에 목숨 한 번 걸어 보자는 말을 저렇게 쉽게 하다니 진정한 사나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영동고속도로 위에서 찬란하고 덧없이 산화하려고 꾸역꾸역 여기까지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지구에서의 삶에 미련이 꽤 남았다.

 

 

 

2

 

syo는 머리가 나쁜 편이다. 특히 기억력 쪽은 누가 너 기억력 정말 참담하구나? 라고 해도 화내지 않는 게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어차피 이럴 거 읽으면 뭐하냐는 생각을 종종 한다. 자정 너머 미셸 우엘벡의 세로토닌을 읽다가 궁금해져서 알라딘에 검색해봤더니 고수님들의 굉장한 리뷰들이 발견되었다. syo가 부러운 건 그분들의 밝은 눈도 단단한 글솜씨도 아닌, 기억력이었다. syo는 리뷰를 잘 못쓰는 가운데서도, “이 작가의 전작 얼씨구절씨구는 주제가 이러쿵저러쿵이었던 바, 작가의 관점 변화가 있다/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와 같은 식의 구절은 아예 사용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억이 안 나서! 소립자의 주제가 뭐였더라? 거기서도 야한 거 많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좀 나오네? 헤헤, 야한 할배 우엘벡. 이게 syo의 한계다…….

 


 

 

3

 


연휴에 죽여버리겠다고 패기만만하게 빌려 온 벽돌 두 개.


둘 다 1,000페이지가 넘는다. syo는 프로이센을, 은 피케티를 읽고 있다. 누구도 이길 것 같지 않다.

 

 

 

 

 

--- 읽은 ---


 

154. 괴물이라 불린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7

 

긴 감탄사의 운명은 결국 용두사미다. 우와아아아아ㅏㅏ……(음소거). 전작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사이 어디쯤이었고, 이 책은 사이 어디쯤. 다음 책을 한 권 더 읽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우와아아아우와오와!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별개로, 전작과 다른 역자가 번역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취향이다. 검색해보니 다음 작품은 또 새로운 역자가 번역한 듯. 이게 다 뭔 일일.

 

 

 


155. 사브리나

닉 드르나소 지음 / 박산호 옮김 / arte / 2019

 

세상에 이치라는 것이 있고, 세상이 만들어진 데 뜻 같은 게 있다면, 일단 박살 난 일상을 중복적으로 무너뜨리진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사건이 사람을 조각내면, 바람이 불 때마다 제 안에 든 조각에 찔려 다시 상처 입고, 다시 아물고, 다시 피 흘리고, 다시 딱지가 앉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금 간 인생들의 시절이.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람을 조각내는 사건이 하나의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거리가 세상에 되어 퍼지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조각 난 사람을 어떻게든 찾아와 아예 가루로 만드는 시대에 도착했다. 가루가 된 사람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 가루가 되면 아물거나 덧날 상처의 자리조차 남지 않겠다.

 

모든 컷에 움직임이 없다. 나는 그게 너무 좋았다.

 

 

 

 

156. 왜 칸트인가

김상환 지음 / 21세기북스 / 2019

 

잘은 모르겠지만 칸트의 주저는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판단력 비판을 읽기 위해서는 실천이성비판이 제시하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그 개념들은 또 순수이성비판을 모르고서는 확립되지 않는, 그런 식이랄까. 보통 이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칸트는 유독 체계적인 듯. 그래서 결국 순수이성비판과의 만남으로 칸트를 시작해야 하는데, 만나 보니 걔는 성격이 진짜 극악무도했다. 그래서 칸트와는 시작만 계속 있었지 끝 같은 건 없었고, 맨날 직관의 순수 형식인 시간과 공간 어쩌고 하는 부분에서 좌절의 마일리지만 적립하고 돌아서기 일쑤다. 순수이성에서 안녕하면 실천이성이나 판단력은 냄새도 맡기 어려운 것이 현실. 그래서 머리 꼬리 다 떼고 몸통만 한 권으로 꿰어주는 책이 칸트철학에는 필요하다. 우린 철학자가 아니니까요.

 

칸트 개론서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요놈의 용어 때문이다. 마치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었던 신성로마제국처럼, ‘순수’‘이성’‘비판얘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전적 의미와 다르다. 그게 또 180도로 달라 버리면 원전을 읽다가 모순된 지점을 발견하거나 할 텐데, 그게 아니라 한 15도에서 45도쯤 달라 버리니까, 뭔가 이해가 되는 것 같다고 오해하며 끄덕끄덕 읽어가다가 나중에는 읽히는데도 도대체 뭔 말인지 모르겠는 상황이 자꾸 발생하는 것이다. , 우린 철학자가 아니니까요.

 

2회독 하며 느끼는 건데, 요 책은 칸트 입문서 중에서는 정말 제일 좋은 것 같다.

 

 

 


157. chaeg 2020. 9

()(월간지) 편집부 지음 / ()() / 2020

 

잡지를 한 달에 딱 한 권 읽고 있는데, 그게 <>인 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

 

 

 

 

--- 읽는 ---

사이언스 블라인드 / 앤드루 슈툴먼

세로토닌 / 미셸 우엘벡

언어의 역사 / 데이비드 크리스털

장판에서 푸코 읽기 / 박정수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아름답고 쓸모없는 독서 / 김성민

다이어트의 정석 / 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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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9-2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세로토닌 읽어야지 ㅎㅎㅎ 같은 역자가 번역한 뒤라스 소설이 좀 별로라 걱정이 되긴 합니다...

syo 2020-09-27 16:56   좋아요 1 | URL
졸면서 읽습니다.... 적재적소에서 야한데 난 왜 졸리지....?

blanca 2020-09-2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칸트를 시작해얄 것 같은 그리고 그 건 <왜 칸트인가>로.

syo 2020-09-27 16:57   좋아요 0 | URL
시작할 때 좋습니다! 왜 칸트인가. 두둥.

추풍오장원 2020-09-27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띨띨해서 읽고 까먹고 까먹고 그러는데 ㅎㅎ

syo 2020-09-27 16:57   좋아요 0 | URL
저와 띨띨배틀을 벌여보실까요? ㅎㅎㅎㅎ

stella.K 2020-09-2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미니언>을 모처에서 이벤트 도서로 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두꺼운 책이 보기는 좋은데 언제 읽을지 모르겠어요.ㅠ
이벤트 도서는 서평을 의무적으로 써야해서 이제 웬만해서 안 하는데
이 책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안 읽을 것 같아 한 건데
대략난감입니다. 그래도 스요님은 워낙 두꺼운 책도 거뜬히 읽어내니
엄살이란 거 알고 있습니다.ㅋ

저도 칸트를 시작하게 되면 저 책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근데 전 이상하게 칸트와 니체를 항상 헷갈립니다.ㅠ

syo 2020-09-29 10: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철학도 좀 사랑해주세요. 너무 두꺼운 애들 말고, 얇고 귀여운 애들로다가.
스텔라님, 추석 잘 쇠시기를^-^

scott 2020-09-27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웰벡은 플랫폼 소립자 까지 좋았던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세로토닌은 아침 방송 건강관련 프로그램이 떠올라요 ㅎㅎ

syo 2020-09-29 10:53   좋아요 0 | URL
읽을 때는 재밌게 읽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아마 이번에도 그러겠죠..... ㅠㅠ

DYDADDY 2020-09-2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두께 비주얼이 엄청나 책 앞에서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베고 자면 오히려 목에 무리가 올 것 같아요. ㅋㅋ

syo 2020-09-29 10:53   좋아요 1 | URL
저기 더 두꺼운 애들 두권 쌓아놓으니까, 뭐랄까 굉장히 복잡한 심정이 되더라구요 ㅋㅋㅋ

2020-09-27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9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