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현대 누리꾼의 질병'에 따르면 나에게는 일명 '홍대병(비주류병)'이 있다. 정의는 본인이 홍대앞 비주류인 척 하는 병, 자유로운 영혼인 줄 아는 병이라고 한다. 자매품으로는 '쿨톤병', '동안병', '남친일심동체병', '도화살병' 등이 있다. 음악엔 문외한이라 역시 쉽고 청승맞은 가사가 좋지만 아무래도 취향이 남들보다 고귀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다. 요즘 '태양의 후예'에서 완전 뜬 배우 진구도 그런 맥락에서 아까운 남의 남자다. 소위 무명시절이라고 할 때 내가 완전 팬이었는데! 그의 진가를 알았는데!! 영화표 몇 장 사고 그런 우월감을 부렸는데 지금껏 애도 있는 유부남이라는 것도 몰랐다. 이제 만인의 연인으로 그를 놓아줘야겠다.ㅎㅎ


왜 진구까지 팔면서 내 정신 질환을 고백하느냐 하면... 그간 베스트 셀러를 무시(?)한 벌을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출간 후 말 그대로 빅 히트한 이 책, 지금까지 안 읽었다. 벌써 육년이나 전에 발간되었다. 스릴러 장르에 본능적인 거부감도 있었지만 그저 재밌다는 사람들의 평이 독서에 의욕을 불어주지 못했다. 알라디너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헐리우드 영화같은 재미라면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되지 않는가! 와 같은 무지렁이 마인드로 빅재미를 놓칠 뻔 하다니, 알라디너로서 실격이다.


나는 왜 베스트셀러는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비주류이고 싶어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주인공이 약간 동경하는 선배는 백년전에 나온, 검증받은 책만 읽는다고 하는데 나도 독서에 관해서는 조금도 손해보고 싶지 않은 느낌이라 그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다. 재미도 있고 작품성도 훌륭한 책을 읽으려면 무수한 사람이 인정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인데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어도 죽을 때까지 읽을 수가 없다는 불편한 진실에 이르렀고, 아무리 인정받은 작품이라도 나한테는 생각보다 재미나 감동이 없는 경우도 꽤 있었다.


수많은 알라디너의 의견을 무시하다가 도서관에서 옆에 있던 언니가 "글케 찝찝하면 비닐장갑이라도 끼고 읽던가!"했던 책이 바로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쳐]다. (나는 또 왜 이런 '흥미 위주'의 책을 사는 것에 쪼잔하게 구는지!) 인기작치고 귀는 조금 접혀 있었지만 줄도 많이 안 쳐져 있고 손 때의 흔적은 별로 없었다. 다만 박진감이 넘치는 내용이어서 그런지 군데 군데 귤과의 과일을 까먹으면서 본 듯한 노란 얼룩을 피하지는 못했다. 한 겨울 뜨뜻한 온돌방에서 귤을 까먹으며 [빅 픽쳐]를 음미했던 구로도서관 주변에 사는 시민들이 부디 나와같은 즐거운 경험을 했기를!


이틀만에 신나게 읽은 책에 줄거리를 작성하려니 몹시 귀찮다. 그래서 오늘은 생략.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벤이 게리로 살기 시작하면서, 제발 조용히 살고 싶었던 게리(=벤)은 정작 너무나 이루고 싶었던 결정적인 사진을 찍어 유명해지고, 그게 덫이 되어 계속 계속 도망다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자 정작 지겨웠던 신탁 변호사로 살고 싶어하는 삶의 아이러니가 이해가 되어 가슴이 턱 막혔다. 재밌으면서도 훌륭한 작품이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사진가는 자신의 이름과 신분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이루게 된다는 것도 아주 슬펐다. 당당한 내 신분으로, 내 이름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보통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보다는 타인의 욕망으로 인한 삶을 사는 경우가 너무너무 많기에. 


영상화된 영화는 은근 악평에 시달리는 것 같은데 시간이 나면 한 번 보고 싶기도 하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특히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미국판 베르나르 베르베르일까. 40개국에 팔렸다고 해서 우와 저작권료가 얼마야, 하고 생각하는 나도 순수한 나로 사는 방법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 


단순히 재미도 있지만 의외로 교훈도 시원하게 한 방 날려주는 뒷맛이 씁쓸한 소설. 빅 재미는 보장된다. 겨울이라면 귤을 까먹으면서 읽고 싶은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벌레 2016-03-29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베스트셀러는 상업적인 재미를 추구한 책일거라는 편견이 있어서 많이 읽지 않는 편이지만, 더러는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을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구나.. 싶은 책들도 많더라구요^^
빅픽처도 그 중에 하나인데
뽈쥐님의 서평을 보니 새삼 읽고 싶어지네요 ㅎㅎㅎ

뽈쥐의 독서일기 2016-03-29 13:08   좋아요 1 | URL
의외로 베스트 셀러 중에 물건(?)인 것들도 많지요.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을 더 볼까 했는데 다작하는 작가인만큼 작품에 편차가 있긴한가보더라구요.
문체가 세련됐거나 엄청난 개성은 없지만 꽤 두꺼운 책이 하루이틀에 술술 넘어갔어요. 이것 또한 엄청난 재능이겠죠. 책벌레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킬링 타임용으로 한 번 가볍게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킬링 타임용 치곤 여운이 꽤 남는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