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틸유아마인 언틸유아마인 시리즈
사만다 헤이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일화 1> 방학 때마다 우리집 세 모녀는 같이 주부를 위한 아침 프로를 즐겨봤다. (요즘은 '실제상황'에 흠뻑빠졌다.) 주부들이 좋아하는 주제는 요즘과 변함이 없다. 살림의 달인이 될만한 유용한 살림살이 방법, 시집 스트레스 토로, 바람피는 남편, 말 안 듣는 애들... 최대한 자극적인 문구로 시청자를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잡아 놓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별 것(?) 아닌 그런 이야기가 아침 한 시간 정도 방송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제목은 '세번째 부인의 눈물'. 하긴 주 5일 매일 한 시간씩 시청률을 온전히 유지시키는 것도 힘든일이다. 이 좁은 나라에서 매번 쇼킹한 일이 일어날리도 없으니까.


완전한 타인의 인생이라고 '에이 이번 건 별로네~', '완전 낚였구만!' 같이 신나게 입방아를 함부러 찧으면서 마른 빨래를 열심히 접으면 아침 일과가 대충 끝나곤 했다. 


이것도 꽤 몇년 전의 일이다. 고등학교 때 였으니 거의 십년 전일에 가깝다고 봐야겠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한선교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핫 했던 정은하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한동안 프로젝트로 난임부부 클리닉을 지원해주는 코너를 꾸렸다. 요즘이야 인공 수정이니 뭐니 가격도 많이 내려가고 비교적 흔한 수술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쉬쉬하는, 생소한 일이었던 것 같다. 광고인지 뭐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술비를 지원받은 몇 커플이 사생활을 어느 정도 공개하고 힘겹게 아이를 갖는 모습이 몇 주에 걸쳐 방송을 탔다. 나는 별 생각없이 담배 피는 남편 하나에 뜨악했고, 엄마는 혀를 찼다. 여자가 고생을 얼마나 하는데 지는.. 이라며 인상을 팍 찌푸리던 엄마 뒤에서 난데없이 성이 난 언니 왈,


"세상에 사랑을 못 받고 자라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몸 고생 마음 고생하면서 자기 애를 낳아야 돼? 그냥 입양하면 서로 좋은 일이잖아."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로취, 그로취를 연발하고 있었는데 엄마도 갑자기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성을 팍 냈다. 그 후에 따발따발 반박이 이어졌는데 기분이 상한 엄마의 얼굴이 너무도 험악해서 그날 분위기가 아주 엉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논리로는 완벽한 언니의 승리. 엄마는 "임신을 하고 싶을 때 못하면 여자로서 자괴감이 드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에 왜 여자로서의 가치를 거기서 찾지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사실 지금도.  


일화 2>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유모'대신 우리를 봐줄 파출부 아주머니를 고용했다. (어느 표현이 정확한 줄은 모르겠지만 왠지 유모는 낯간지럽다. 실제로 젖은 엄마가 다 먹였으니.) 아이보는 일은 중노동이라 아주머니는 자주 바뀌었다. 가끔 아무 말없이 안 나오거나 끼니도 안 챙겨주는 책임감 없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손녀를 잘 돌보는지 감시하러 자주 오는 울 할머니 때문에 울분을 토하며 그만두시는 분도 있었다. 그만큼 고용인-피고용인의 관계란 상대적이고 어느 시대나 일이나 가정이나 워킹맘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물론 그 분들도 힘들게 일하셨겠지. 애 봐주는 일이 보통 까다로운 일도 아닌데. 


그 많은 아주머니 중에서도 잘 해줬던 아주머니는 생각나는 법이다. 이름은 모르지만 그 아주머니만 내 기억 속에 남아 나를 돌봐줬던 사람하면 지금도 그 분만 딱 떠오른다. 왜냐면 그 분은 언니랑 나랑 사이에서 나를 유독 좋아했었기 때문이다. 워낙 소심한 성격 탓에 유치원을 늦게 간 나는 아주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맞벌이 자녀가 그런 경향이 있듯이, 나는 항상 조금씩 주늑이 들어있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애정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고맙고 힘이 나는 일이다. 나도 그 아주머니를 참 좋아했다. 


최근에 엄마한테서 들은 얘긴데 그 분이 나를 너무 좋아해서 어느 날, 나를 하루 데리고 가서 자도 되냐는 청을 받았다고 했다. 엄마도 순진했는지 그냥 날 예뻐해줘서 고마워서 그래도 된다고 흔쾌히 승낙했는데 그 얘길 들은 할머니가 노발대발해서 다시 물렀다고 했다. 엄마도 순간적으로 무서웠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한테는 아기가 없었다고 했는데 남편 쪽이 문제가 있다가 아예 판정을 받은 상태였단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나는 시큰둥하게 모든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하여튼 할머니가 유난스럽긴 했구만, 하고 혼자말만 하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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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냐하면 이 작품이 스릴러인 까닭에 자칫 스포일러를 흘릴까봐서다. 간이 원체 작아서 공포같은 걸 잘 보지도 못한다. 추리소설 매니아한테는 본 작품의 트릭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조차도 잘 모르겠지만 임신에 대한 미저리같은 열망을 알아야 몰입해서 공포를 배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족 간의 끈적한 관계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로서는 내용보다는 설정이 무섭고 몰입이 힘든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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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계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이 살아 돌아왔다!
독자를 속이는 맥거핀 기법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

클라우디아는 간절히 바라던 아기를 임신하고 사랑하는 남편과 멋진 집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수상한 가정부 조가 그녀의 삶에 끼어든다. 조는 장차 태어날 아기를 돌보며 클라우디아를 도와주러 왔다. 하지만 클라우디아는 조가 미덥지 않다. 조가 자신의 침실에 있는 모습을 보고 클라우디아의 불안감은 점차 두려움으로 바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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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출판사에서 뒷 표지에 쓴 줄거리. 저자 소개에 맥거핀 기법을 설명하면서 던진 '떡밥' 이야기 때문에 머리를 많이 쓰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냥 후루룩 읽어 버렸다. 원래 추리 소설을 읽는 맛이란 게 내 뒤통수를 얼마나 퍽퍽 때려줄 지 기대하는 맛도 있으니깐. 머리 굴리지 않고 열심히 읽은 덕에 마지막에 몰아치는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추리소설 매니아라면, 어쩌면 처음부터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겁이 많아 추리소설을 못 읽는 탓에 마지막 페이지는 숨가쁘게 넘어갔다. 거의 50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이지만 킬링타임용으로 하루이틀이면 읽을 수 있다. 문체도 무겁지 않아 술술 읽히는 편이다. 비교적 남자보다는 여자가 조금이라도 몰입하기 쉬울 것 같다.


클라우디아, 조, 로레인 경장 3인 여성의 서술 시점을 열심히 따라가보면 추리극 중간 중간 여성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텁텁함 심정 묘사도 아주 잘 된 편이다. 작가 사만다 헤이즈는 아카데미형 작가라기 보단 체험형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체험형 작가만이 줄 수 있는 생동감 있는 글을 오랜만에 읽어서 기뻤다.  


워낙 드라이한 인간이라서 그런지 인생경험 부족인지 아이한테 미친듯이 집착하는 것 자체가 몹시 의아스러웠다. 그래서 읽는내내 위에 일화가 생각이 났다. 아직도 내 식견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두 번째 일은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이래서 남의 애는 봐줘봤자..라는 거겠지?) 아주머니께 내가 너무 죄송하다. 


* 오해하실까봐 미리 말해두고 싶다. 그 아주머니는 그 일로 우리집 일을 그만두시진 않았다. 그만두고도 우리집 한 번 놀러 오신 적도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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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28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뽈쥐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커포티 선집 4
트루먼 커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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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미션 스쿨이었다. 수요일 아침예배는 부족한 잠시간으로, 어중간하게 있던 주 5일제 시행으로 놀토가 아닌 토요일에 있는 학급 예배 시간에서는 눈 알이나 굴리며 집에 갈 궁리를 했던 시간으로 썼던 나에게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제법 기독교인어를 이해하게 되었다.


종교 시간까지 있어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애들도 잠을 자게 했지만 나는 의외로 깨서 대답을 곧 잘하곤 했다. 특히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를 듣는 것 만큼 환상적이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 모르는 중동을 배경으로 한 얘기라 재미는 더 있었다. 기독교는 역시 예수가 짱(!)인지라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더 강조하지만 글쎄.. 나처럼 이야기를 좋아하는 애들은 '오병이어더라...'같은 예수님의 행적보다는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바치려고 했고.. 누가 누구랑 싸우고.. 등등 잔인하고 불합리한 인간사를 좋아하는 터라 구약 이야기에만 쫑긋 귀를 기울였다.


꼭 구약이 아니더라도 살로메같은 매혹적인 이야기도 많은 작품에서 자주 회자되곤 하지만, 역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도 워낙 자주 있는 일이기에, 살인자도 질투에 눈이 멀어 형제까지 죽인 인물이라 그런 극심한 감정 탓에, 쉽게 이야기의 소재가 되곤 한다. 요즘은 공감능력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악당이 더 인기가 있는 모양이긴 하더라만.


황순원도 그렇고 아리시마 다케오도 그렇고, 기독교나 서양문화를 접했던 지식인들이 같이 '카인의 후예'와 같은 제목을 쓴 글을 쓴 것도, 성경의 그 짧은 에피소드에서 워낙 큰 인상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나도 '카인의 후예'나 '차가운 피', '나쁜 피' 같은 제목을 좋아하는 걸 보면 악한들을 미워하면서도 관심있게 보는 걸 보면 무의식 속에서 뭔가 통하는 면이 있긴 한가보다.


카포티의 작품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다음으로 이 소설이 두 번째다. 영화를 보고 읽은 터라 소설의 할리 골라이틀리가 비주얼적으로는 오드리 햅번이 딱인데 이야기가 뭉텅뭉텅 심하게 잘려나간 영화 자체는 참 아쉬웠다. 무조건 원작을 읽어야 한다!! 영화사의 길이 남을 작품이라고도 일컫어지는데.. 솔직히 말하면.. 볼 건 정말 햅번밖에 없다! 그녀가 부르는 문리버까지만.


청년의 하루키가 칭찬했던 카포티의 문체는 세련되면서도 희안하게 절절하다고 해야할지, 작품 전반에 풍기는 쓸쓸한 느낌은 그 소설이 카포티를 뜨는 작가로 만들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런 신뢰로 읽은 [인콜드 블러드]. 차가운 피, 라고도 번역할 수 있으려나. 시공사가 낸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번역도 잘 되었고 두꺼운 책치고 가볍기도 하다. 하드커버같은 듯 같지 않은 같은 듯한 너어어~


연혁에 보면 이 작품으로 인해 카포티는 스타작가가 되고, 이 작품의 성공을 축하하는 파티에 삐까뻔쩍한 호텔에서 가면 무도회를 열어 60대의 '문화적 사건'으로 까지 묘사된다. 그 이유를 읽어보면 역시 납득할 만하다. 그러나 나는 역시 [티파니에서-]가 더 좋다. 물론 작가가 6년 동안 취재한 노력을 무시하는 것도 이 작품을 비하하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티파니에서-]를 쓸 실력이었으면 이 정도는 거뜬히 썼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어느 부유하고 봉사 정신을 가진 존경받는 일가족 4명이 어떤 괴한 2명에게 이유없이 살해당한 사건"과 그 뒷이야기.


살인자와 피해자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치정이나 원한으로 더럽혀져 있지 않기 때문에 보통 인간의 악한 본성이나 법 제도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음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치정으로 얼룩진 이야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건너 뛰시길. 


살아 생전에도 인기가 많고 기행을 일삼기도 했던 작가 카포티는 [인콜드 블러드]를 놓고 "그 안에 쓰여진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할 것이었다."고 했지만 성숙한 독자라면 이 말은 믿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천재성을 드러내고 싶어서일 가능성이 크겠지만 취재 과정에서 녹음기나 노트도 없이 임해서 나중에 사건을 구성해서 쓴 것 자체에 모순도 있는데다, 논픽션, 다큐멘터리도 '편집'이 이뤄지는 과정이니 어느 정도의 왜곡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아마 그렇게 인기가 많았던 만큼 적이 많았던 카포티는 이런 점에 꼬투리가 많이 잡히기도 한 모양이다. 어찌되었건.. [인콜드 블러드]는 뛰어난 역작이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서술하는 장장 500쪽이 넘는 이 두꺼운 책을 그래도 3-4일만에 책장에 빨려 들어가듯이 후루룩 읽었다. 그것도 들쭉날쭉한 퇴근시간 후에.


캔자스 주의 어느 가족이, 어느 날 밤에 갑자기 피살이 된다. 모두 손발이 묶이고 머리엔 총알을 맞은 체. 어느 누구도 이 가족이 이런 식의 비극을 맞으리란 걸 상상한 적이 없고 당사자들도 그랬다. 농장으로 어느 정도 부를 쌓고 지역 사회에 봉사하던 꽤 사랑받던 가족이었던 것이다. 막내 딸의 어린 남자친구와 살해된 가족과 사이가 조금 틀어졌던 사람들은 모두 용의선상에 올랐고 그들은 곧 아니라고 밝혀졌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큰 불신이 생겼다. 이제 빗장을 잠궈놓기 시작했고 마을 카페에서는 그 말만 입에 올리고, 조속히 범인을 잡지 못해 피골이 상접하기까지한 마을 보안관을 책망해댄다. 사건을 맡은 보안관들도 죽을 지경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었고 이제 불신에 사는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잡고 싶은 간절함은 누구보다 큰 데 발자국만 남긴 이런 완전 범죄라니.


그 시각, 범인 두 명은 기분만 나빴던, 고작 50달러만 얻었을 뿐인 그 살인 사건에서 벗어나서 멕시코로 향하고 있었다. 반쯤은 인디언의 피를 받은 페리의 염원이었던 멕시코로. 나머지 한 사람인 딕은 말빨이 좋아 위조 부도 수표를 신나게 써재낀다. 위조 부도 수표로 돈을 많이 마련하고 멕시코로 갔지만 충동조절 능력이 없는 그들은 돈을 쉽게 탕진하고 다시 저급의 호텔에 묶으면서 일자리를 구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백인 남성'인 딕은 그렇게 적은 돈을 받고 일을 못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다시 그들의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가버린 그들은 많이 부딪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서로 떨어지는 것이 훨씬 위험한 일인 걸 알고 있어 으르렁거리면서도 함께 주 경계를 넘어다닌다. 그들은 또 히치하이킹을 해서 범행을 계획하기도 하지만 번번히 실패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훔쳐탄 차로 히치하이킹을 해줘던 가난한 소년과 우습게도 배가 고파 팔 수 있는 콜라병을 열심히 줍기도 한다.


범인을 쫓던 보안관들은 여러 주의 경관들과 공조 수사도 했지만 전혀 실마리를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이 뉴스를 듣고 있던 어느 죄수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는 범인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보니 범행을 하게 해준 것이었다! 죄수는 딕의 감방 동료였고 그의 계획을 열 번도 넘게 들었다. 하지만 모든 범인들이 허세를 떠는 것이 감방이다 보니 정말 범행을 저지를지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현상금도 탐이나긴 했지만 그는 죽은 가족의 가장인 클러터씨가 자신이 일꾼으로 일할 때 얼마나 잘 해줬는지는 떠올렸고 용기를 냈다. 결국 죽은 가족들은 그들의 생전의 선의 때문에 어느 정도 구해지게 된 것이었다. 


수사에 급물살을 탄 보안관들은 그제야 딕과 페리의 가족을 들러 그들에 대한 꼼꼼한 조사를 시작했다.그 사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채. 딕의 부모는 가난했어도 사랑으로 키운 생각보다 선량한 부부였고 페리의 남은 가족 2명 중 한 명인 누나는 질색했다.자기는 페리가 무섭다며.. 술독에 빠져 죽은 엄마, 사랑하는 여자의 정조를 의심하다 같이 죽어버린 오빠, 술에 취해 고층 호텔에서 뛰어내린 언니... 등등 이제 거의 자신만이 생존자인 자기의 가족에게서 벗어나고픈 점잖은 부인은 "걔는 뭐든 할 수 있을거라" 말한다.


여러 주를 오가며 대담해진 그들은 생각보다 어이없게 잡힌다. 자신들이 멕시코에서 부친 소포를 찾으로 우체국을 들렀을 때 경찰이 조용히 따라 붙은 것이다. 유일한 증거물인 부츠가 들었던 100달러 보험까지 들어놓은 소포를 찾기 위해. 딕은 이제 페리를 조용히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페리도 소포 때문에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페리의 아버지가 계획성없이 세운 거의 망해가는 모텔에 도착하고 그 앞에서 잡히게 된다.


여기까지가 3분의 2의 내용. 나머지 3분의 1은 그들이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고 감방에 갖히고 사형을 받고, 계속 항의를 하면서 죽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그들은 잡히자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왜 그 자식을 죽이지 않았지? 처음에 태연했던 페리도 "너 검둥이를 죽인 적이 있다면서?"라고 전에 딕의 마음에 들려고 지어냈던 말까지 실토한 걸 알자,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딕의 소아성애 성향도 불어버린다. 페리는 자기가 죽인 가족이 신사적이고 멋진 사람이라는 걸 느꼈었지만 그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사람들(클러터 가족)은 절대 내게 해를 입히지 않았지. 다른 사람들하고는 달라. 내 인생을 가져간 다른 사람들과는. 아마도 클러터 씨는 그 대가를 치른 것뿐일꺼야."


나중에 카포티가 페리를 보며 자신과 매우 닮아서 끌림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보니 유달리 페리에게 연민이 생기는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필립 시모어 호프만 주연의 [커포티]에서 한 장면이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 라고 했다는데 페리는 주변에 있어도 매력적인 캐릭터라기 보다는 감수성이 풍부하면서도 살짝 돌은, 약간 섬뜩한 느낌을 주는 사람일 것 같이 그려진다. 


페리는 교육을 덜 받은 것에 비해 똑똑했고 그걸 죄수들과 있을 때 잘난 척을 하며 어느 정도 보상을 받지만 사형수가 되어서 옆에 책도 많이 읽고 교육을 실컷 받은 몸집이 거대한 생물학도 앤드루스가 들어왔을 때 자존심이 폭발한다. 공감 능력이 없는 앤드루스는 악의 없이 그의 말을 바로 잡아 주었지만 페리는 단식까지 감행하며 성질을 죽이지 못한다. 앤드루스야 말로 요즘 범죄 미드에 나오는 싸이코패스인데, 페라리를 몰고 실크 셔츠를 입고 여자를 픽업하는 쿨한 남자가 되고 싶었던 책 벌레 청년은 가족들에게 총을 쏘고 알리바이를 만들어 재산을 좀 만져보고 싶어 했지만 결국 신부님에게 실토하고만 희안한 케이스였다. 이 청년은 갇혀서도 책을 열심히 읽고 죽기 전에도 마구마구 먹었던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에도 큰 의식이 없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이 청년은 고모의 도움으로 자신이 죽인 가족의 곁에 묻히게 되기도 한다.

    

페리와 딕은 항소와 상소로 몇 년 동안의 유보기간이 있기야 했지만 그들은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클러터 가족을 사랑했고 그들을 누구보다 잡기 원했던 듀이 경관은, 그러나, 그들의 목이 졸리는 순간에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느낀다. 



미국하면 '총기사고'를 생각할 정도로 생각보다 빈번한 일같은 이 사건에 카포티도 관심이 생겼다. 사건의 일상성 때문에. 카포티는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 6년 동안 취재를 했다. 소설은 생동감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페리에서 보이는 카포티의 민낯에 더 관심이 생기는 걸 보니 괜히 사교계를 주도하던 스타 작가는 아닌 모양이다. 정말 세상이 좋아져 유투브에서 생전 카포티의 인터뷰를 듣고 있는데, 흡사 60대의 잭 니콜슨처럼 보이는 이 노년의 작가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위화감이 느껴진다. 글에서 읽은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 작위적이라고 해야할까..


또한, 확실히 문화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은 사형수의 가족에게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는 점. 자식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만큼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범죄자의 부모라면 무조건 비난을 받거나 숨어지내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해야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뭔가 희안하게 느껴지긴 했다. 


언제나 선량한 사람들의 피해 소식을 들으면 그들이 이제 갖지 못한 시간을 생각하게 되서 마음이 참 아프다. [인콜드 블러드]는 범죄자 둘, 혹은 4,5명의 이야기도 허투루 하지 않지만 클러터씨 가족 중 특히 아이 두 명의 삶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특히 이건 논픽션 작품이라 더 슬프기도 하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은 페리에게도 동정은 가지만 살인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기에 차가운 피를 가진 그들이 자꾸 항소를 하려고, 탈옥을 하려고, 관심을 받으려고 할 때는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막상 카포티도 (이야기가 완성 될 것 같지 않은 조금 이기적인 이유로) 페리가 사형이 안 될 것 같으니 불안해하기도 했다고 하던데, 나도 사형제도는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이들이 원하는 대로 될까봐 두려워 하며 읽었다. 결말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로드 무비를 보듯이 대사와 묘사는 생생하고 톡톡튄다. 그리고 여전히 쿨-하다. 카포티는 카포티다.




 

부인은 페리를 두려워 한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부인이 두려워하는 것이 단지 페리인 것인지 아니면 페리와 얽혀 있는 팔자, 플로렌스 벅스킨과 텍스 존 스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아이들에게 정해진 운명의 거대한 행로인지 의문이었다. (중략)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자기만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무인을 괴롭힌 건, 언젠가 자기에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미치거나 불치병에 걸리거나 화재가 나서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인 집, 남편, 아이들을 다 잃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p 280)

직업이 뭐든 간에 그는 돈과 권력의 영광을 아는 남자 같았다. 메릴린 먼로를 닮은 금발 여자가 그에게 선탠오일을 발라주고 있었고, 그는 반지를 낀 손으로 나른하게 얼음이 든 오렌지주스 잔을 집었다. 이 남자가 가진 그 모든 것을 딕은 결코 갖지 못할 것이었다. 왜 저 개새끼는 모든 걸 가졌는데, 딕은 빈털털이여야 하나? 왜 저 "잘난 척하는 개자식"만 운이 좋은가?(p.307)

하지만 세상의 누구보다도 그 순간 페리가 함께 있고 깊은 사람은 딕이었다. 적어도 두 사람은 같은 종족이고, 카인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였으며, 딕과 떨어져서는 페리는 "세상에 자기 혼자뿐인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마치 온몸에 부스럼이 난 사람처럼. 세상에서 제일가는 미치광이나 가까이 할 만한 사람인 것처럼."(p.396)

"이 전구를 꺼내서 깬 다음 손목을 긋기만 하면 되는 거야. 그래야 돼. 네가 아직 여기 있는 동안에. 나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옆에 있는 동안."(p,442)

듀이는 언제나 히콕을 경멸했다. 단지 "텅 비어 있고 가치 없는 내면을 드러낸, 풋내기 사기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살인작 스미스라고 해도, 듀이는 그에게는 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스미스는 추방당한 동물, 상처 입고 돌아다니는 짐승의 오라를 가지고 있어 형사는 그를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p.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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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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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 SBS스페셜에서 [슬픈 천륜-감옥밖의 아이들] 편을 보고 있자니 얼마전 읽은 노자와 히사시의 [심홍]이 생각났다. 아니다. [심홍]을 읽었기 때문에 이 편을 골랐다. 사실 범죄자의 얼굴을 꽁꽁 감춰주고 범인을 잡은 형사들의 수염 덥수룩한 얼굴은 잡아주는 이상한 보도형태에 큰 불만은 있지만, 사실상 연좌제 비스무리한 것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 범인의 가족들도 고통받는 일은 안봐도 뻔한 일이다. 


피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은 당연히 동정받아야 하고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에게는 욕을 하거나 대체로 얽히지 않으려는 게 사실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는 것도 싫고 괜히 기분이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흔히 피가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가해자의 유가족도 피해자인 것은 맞다.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는 수없이 많다. 억울하고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가족들의 인터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거지를 자주 옮겨 거처를 모르거나 싸늘하게 인터뷰를 거부하는 일은 많다. 


[슬픈 천륜]다큐멘터리에서는 세계 사형수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가 서두로 나왔다. 아직 가난한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 사형수의 아이들은 더 가난의 늪으로 빠지고 거리에서 죽어가거나 나쁜 길로 빠진다. 허름한 집 마당에서 돼지들까지 같이 자라는 이들 가정의 영상을 보니 세상에 불행한 사람이 많은 것에 그저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전직 교도관이었던 분이 이런 아이들에게 빛을 보고 살라고 '태양촌' 이라는 보호시설을 열었고, 아이들의 사례는 하나같이 비극적이었다. 특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여 사형을 당하게 된 경우 자녀들은 한꺼번에 양부모를 잃게 된다. 사형 당하기 전에 너희는 법을 지키고 살라며 유언을 남기며 우는 영상은 남인 나도 여러가지 감정이 북받치는데 하물며 남은 당사자들은 어떨지.남은 아이들은 그 장면을 곱씹고 곱씹게 될 것이다.


물론 다큐멘터리도 정확한 사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확실한 '필터'라는 것이 있어서 "범죄자의 아이들에게까지 낙인을 찍지 말자"는 명확한 메세지에 격하게 동의하는 바이지만 범죄자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보는 것도 화나고 괴로웠다. 당신이 죽였던 사람은 이제 그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데! 


아무리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지만 이런 감정 때문에 가해자의 가족들도 2차 피해를 겪게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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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히사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 [연애시대]의 원작자다. 말캉말캉한 연애소설을 잘 써서 좋아하는 작가인데 아쉽게도 44세의 나이로 죽었다. 우울증으로 약한 정신에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평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게 정설이긴 한데 한 사람이 죽은 이유가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닐 것 같다. 특히 감성이 예민한 작가라면.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작가로서 그의 죽음이 언제나 안타깝게 생각이 된다.


달달한 이야기만 잘 쓰는 줄 알았던 노자와 히사시를 다시 보게 되었다. 훌륭하다. 아직 로맨틱한 이야기를 더 사랑하긴 하지만.


뉴스에서 날마다 살인 뉴스가 나오고 보니 이제 왠만한 사연에는 무감각하다. 가끔 이러다가 살아남는 사람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정도로. 하지만 가끔 사연이 있는 뉴스는 사건 전 사정이나 뒷 이야기가 무척 궁금해지기도 한다. 남의 이야기라서 그저 작은 관심이 있는 것이겠지만 막상 당사자는 이런 세간의 관심이 아주 힘들 것이다. 피해자 측도 가해자 측도.


대체로 가해자 측에는 분노가 일지만 가끔, 가아끔.. 납득이 가는 살인도 있다. 폭력이나 살인이 어떤 경우에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가해자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든 피해자에게 분노가 일어나는 사건도 있다. 대체로 이런 경우는 원한에 의한 살인. 이런 경우는 가해자에게 동정이 일기까지 한다. 죽은 피해자는 죽인 가해자에게 살인까지 저지르게 만들고 인생을 완전 무너뜨렸으니까.


원한에 의한 살인이란 것이 밝혀지면 갑자기 여론이 바뀐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악인에게 당한 경험이 다 조금씩은 있어 오히려 피해자를 욕하는 경우도 많다. 약했던 사람이 당하다 당하다 어느 순간 악인이 되어버리는 슬픈 상황이라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다.


완전한 악인이 살인을 저지르는 악마 캐릭터도 나름의 매력은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그런 경우가 아니다. 딱히 스펙이 좋지 않고 선량하고 약간 순진한 사람이 뼛속까지 멋있고 약간 나쁜 사람에게 크게 이용을 당하고 분노심에 당사자와 그 가족까지도 모두 죽이는.. 피해 당사자와 관련있는 사람들 모두를 불행에 빠뜨리는 생각보다 흔하고 있을 법한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건의 원인은 원한에 의한 살인. 정황은 갑인 거래처 관계의 사람에게 부인의 사망보험금을 투자했다가 알고보니 부실한 기업에 돈을 투자하고 비리를 어쩔 수 없이 돕게 된 선량하고 살짝 아둔한 한 가정의 가장이 사기를 당한 것에 원한을 품고 당사자를 죽이러 들어갔다가 충동적으로 부부를 포함한 어린 아이들까지 살해하게 된 것. 하지만 여기엔 생존자가 있었는데 마침 수학여행을 가서 참사를 피하게 된 피해자 가정을 딸이었다. 그 딸은 가해자의 딸과 같은 나이. 


사랑하는 부인까지 잃고 충동적으로 일가족을 살해하게 된 불행한 남자는 여러 사람의 피가 뒤섞인 사건 현장에서 자신의 딸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열한다. "내가 너의 인생을 망쳤구나. 너는 살인자의 딸로 살아야 하는구나..." 


나쁜 사람들에게 크고 작게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이런 류의 비극적인 사건에는 세간의 관심과 공감, 분노가 쉽게 일어난다. 비릿한 피와 배신이 섞인 이 사건에 기자들이 꼬이고 세상에 남은 피해자의 딸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가해자에 대한 판결과 남은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지만 (다행이도) 가해자의 남은 가족에게는 큰 관심이 쏠리지는 않는다.


살인자이긴 하지만 지독하게 운이 나쁜 이 남자의 탄원서는 너무나 생생해서 가슴이 아프다. 시골에서 태어나 세상에 약삭빠르지 못한 부모들은 악덕 부동산 업자 때문에 집과 땅을 잃었고 그로 인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고생하게 된 한 남자는 영업 사원으로 일하다가 한 초등학교의 교사에게 마음을 뺐기게 된다. 적극적으로 대시한 그는 결국 그 교사랑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몸이 약한 아내는 그와 결혼을 하면서 딸 하나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그를 더 성실한 가장으로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게 된 사랑하는 아내는 딸의 생일날 딸의 생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서두르다 쓰러져 죽고, 사랑하는 딸의 생일은 또 어머니의 기일과 같이 되어 딸이 불쌍한 아버지이자 부인과 사별한 남자는 부인의 사망보험금이 찍힌 통장을 망연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평소 동경하던 거래처 사장에게 아내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을 털어놓게 되는데 그게 불행의 씨앗이 될 줄이야. 원체 그와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에게 자신의 불행까지 이용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그에게 뭔가 투자의 명목으로 차용증을 쓰게 하고 결국 그것은 자신의 장인의 부실 경영과 비리로 넘어가게 된 사업의 투자자로,그걸 방임한 범죄자로 만들어 버린다. 평소 규범을 지켜서 살아온 그. 그는 악의를 품고 거래서 사장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해 버리기로 결심한다. 바람을 피고 있는 호스티스가 있다고 부인에게 찌를까? 아니 그것은 자신이 한 짓이란 게 틀켜버릴 것도 뻔하다. 그럼 그의 스윗홈을 부수자.


집만 부수고자 한 그의 계획은 그의 부인이 집에 있으면서 다른 국면을 맞이하고, 또 그게 부인의 아버지, 즉 사장의 장인 때문에 생긴 일이란 걸 알게 된 그는 분노로 눈이 돌아간다. 차례차례 아이들이 들어오고, 마침내 거래처 사장까지 들어온다. 그는 그 일가족을 살해하고 시체에게도 몹쓸 짓을 하고 집을 톱으로 마구 부수다가 신참내기 경찰에게 잡힌다.


사건은 이렇게 끝이다. 사건만 보고 가해자에게 흥분했던 사람들은 이제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에게 분노를 표현한다. 어린 아이 두명에 대해서는 빼고. 사실 악마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피해자는 피해자이지만 악마이기도 했다. 가해자는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시민단체는 법에 항의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결국 남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 이렇게 엄청난 사건도 몇 년 후면 잊혀진다. 피해자의 남의 딸 아이 하나도 많은 관심과 걱정을 받다 금방 잊혀졌다. 문제는 그들은 가족을 잃었어도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 자기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자기 파괴의 충동을 억누르고 살아가던 피해자의 딸 아키바 가나코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든 삶, 속에 검은 심지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표면적으로 자신은 피해자의 딸이지만 자신의 아버지도 가해자의 가족에게 한 짓이 못지 않기에, 그 때문에 자신의 엄마와 어린 동생들까지도 죽게 만들었다는 증오감과 그리움을 품고 삶을 이어나가고 있던 것이다. 그녀를 뒤흔들었던 건 열의 있는 저널리스트 시이나. 여론과 같이 무작정 자신의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가족에 대한 객관적인 이야기와 자기 파괴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기자와 인터뷰에 응하면서 가해자의 딸 쓰즈키 미호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자신이 스무살이 넘어서의 일이다.


너무나 깊은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신을 몹시 사랑해주는 연인에게도 몸과 마음을 열지 못하던 그녀는 무슨 생각인지 미호를 찾아나서기로 결심한다. 지워지는 가짜문신을 하고 몸이 깡마른 미호는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고 방어적인 관계를 맺긴 하지만 그녀가 바텐더로 일하는 바로 계속 출입을 하면서 친근감을 쌓고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다. 그녀는 나와 닮았다!


미호는 겉으로도 공격적이고 친구가 되기 전에 자신의 아빠가 살인자임을 스스럼없이 고백하는 등의 방어적인 관계를 맺고 산다. 겉으로 문제 없는 가나코 또한 방어적이고 자기 파괴의 충동으로 늘 괴로워 하는 것과 똑닮아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집이 살만하고 받아들여줄 친척이 있는 가나코는 대학생활까지 하며 주류 사회에 끼어 있지만 미호는 가해자, 살인자의 딸인 죄로 임대 아파트, 물장사, 그리고 이상한 비디오 스카우트 맨인..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남자와 동거하면서 살고 있다.


아무리 당찬 미호라도 그런 위험한 남자와의 동거는 평탄할 리 없다. 의지할 곳 없는 그녀는 행복을 찾기 위해 그와 결혼까지 하지만 폭력적이고 바람끼까지 있는 그는 심지어 임신한 그녀를 폭력으로 유산까지 시키고 만다. 늘 분노가 내제된 미호와 미호에게 애증의 감정까지 품게 된 가나코(물론 가짜 신분으로 속이고)는 그를 살해하자는 계획까지 세우고, 은근 미호를 살인자로 만드려고 종요하고 만다. 그려면서 더더욱 자기 혐오에 시달리는 가나코.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유가족이 만나서 또 다시 그들 부모와 비슷한 상황으로 몰고 가는 플롯은 긴장감과 분노, 알 수 없는 슬픔을 품게한다.


살해 계획은 다행히 성공적이지 않았고 다행히 법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헤어진다. 미호는 가나코의 존재를 끝내 모른 체로. 키스를 하면서 아름답게도.  

    

가나코와 미호의 시간은 죽은 가족과는 달리, 아니면 곧 죽을 가족과는 달리 흘러가지만 가족의 죽음을 알게 되고 시체를 마주하게 되는 동안의 시간과 자신의 아버지가 남의 일가족을 살해한 것을 알게 되고 기자들의 눈을 피해 몰래 집을 빠져나가는 그 시간에 대한 기억으로 잡힌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때의 기억에 잡혀 사실은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사고로 가족을 잃어도 유가족에게는 너무도 힘든 일인데 하물며 사건으로 얽힌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가 쉬운 일일까. 


결국 둘은 살해계획까지 짜서 실패를 하고 키스까지 하면서 헤어지게 되지만 이걸 '화해'라는 것으로 얼버무릴 수 있을까. 살아 남은 사람들이 감정에 대해서 뱉는 극단적이고 강한 대사를 보면 당사자가 아닌 나도 가슴이 푹푹 파이는 느낌이라 어떤 감상을 내리지는 못하겠다. 그저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란 말이 맴돌 뿐.



 




도시에서 자라고 일류대학을 나와 늘 해가 비치는 양지를 걸어 온 사람은 이렇듯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구나 하는 마음에, 하프라운드를 마치고 레스토랑에서 호쾌하게 맥주를 들이키는 아키바 씨의 얼굴을 저도 모르게 빤히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p. 60

오랫동안 같이 있다 보니 시체도 그저 단순한 물체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치요코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치요코 그대로 느껴졌으니 놀란 만한 차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는 아키바 씨 일가에게 그 어떤 가학 행위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P.97

"(중략) 저와 마찬가지로 열두 살 나이에 사건을 겪은 쓰즈키 미호라는 딸은, 자기 아버지의 사형이 결정된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살고 싶지 않아면 자기 자신을 어떻게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는지, 저는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중략) "시이나 씨도 말했을 겁니다. 당신과 그녀의 아픔은 달라요. 결코 그녀의 아픔에 당신의 아픔을 겹쳐 볼 수는 없는 겁니다. 만약 당신들이 정체를 드러내버린다면, 결국은 서로의 상처를 다시 한 번 헤집는 일밖에 되지 않아요."p.200-201

순간 가나코는 자석 같은 감각을 느꼈다. 미호가 N극, 가나코도 N극.다가가도 마주 당기지 못하고, 서로 저항하는 자기장 때문에 안타깝게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그런 감각. p 232

"왜, 사람이 죽으면 유산이라는 게 남잖아. 그것처럼 죄도 벌도 남아 자식이 짊어지게 되는 거 아닐까." p.280

"그래도 난 악당이 될 거야. 내 자식에게도 미움 받을 정도의 악당이 되어야 비로소 내게 걸맞은 벌을 받게 되는 거 아닐까."p.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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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 개정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4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예출판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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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변하고

환상은 깨어지고

비밀은 폭로된다.


그것이 인생의 세 가지 절망이다.     



우리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얄구지다 얄구져. 전형적인 강한 여성상인 울 할머니는 저 한 마디로 거의 모든 것을 털어내는 것 같다. 아님 털어내는 것 처럼 보이거나.


주말에 모카포트에 끓인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우아한 독서타임을 갖으며 선택한 이 얇은 책 [이선 프롬]. 읽고나면 답답하고 슬퍼서 온 몸에 수분이 빨리는 느낌이다. 이게 꼭 커피의 문제는 아니겠지.


예전에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를 읽고 뭘 어째야 될지 몰라서 리뷰쓰기를 망설였는데 슬픔을 강도가 훨씬 더 강한 [이선 프롬]을 읽고 생각난 것은 울 할머니의 한 마디였다. 얄구지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읽고 먹먹함이 섞인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숭고함 비슷한 것을 느꼈다면 [이선 프롬]을 읽고는 감히 숭고... 어쩌고 하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야말로 자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런 보상도 없이 궂을 일만 해야하는(어쩌면 도망칠 수도 있지만) 한 남자의 거친 인생을 희생이나 숭고로 포장하기는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력 강한 사람들에 의지해서 사는, 아니면 충분히 자신에게도 능력이 있음에도 책임감 강하고 다정한 그들에게 소위 빨대를 꽂는 사람을 주변에서도 은근, 많이 찾아볼 수 있어서 그런지... 요 근래 읽은 가장 슬픈 이야기였다.


이선 프롬은 [이선 프롬]의 첫인상이 강렬한 주인공이다. 별로 안 좋은 쪽으로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인상을 한 그는 타고난 건장한 체력과 성실함 덕에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가족을 먹여 살려야하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한 때, 적당히 교양을 쌓으며 적당히 붐비는 도시에서 주변 사람들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꿈을 꾸었었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살면서 사는 그런 '평범한' 생활을.


평범하게 사는 게 어렵다는 말, 요즘 조금씩 공감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소연 하는 글에 '지 팔자는 지가..','좀 의지를 가지고...'라는 식의 글로 타인을 상처 내는 말을 듣는 것도 힘이 들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자기와 (좋은) 환경에서 모든 사람이 나고 자라는 것은 아닌데!! 그것도 가뜩이나 힘든 남의 인생에 십원 한 장도 안 보태주면서 말이다.


삶에 절망스러움을 안기는 조건이란 까다롭지 않다. 사랑은 변하고 환상은 깨지기만 하면 된다.


소박하고 평범한 꿈을 꾸었던 젊은 남자 이선은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오랜 병환으로 대학에 돌아갈 수 없게되자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던 친척이었던 지나와 결혼하게 된다. 별다른 열정과 애정이 없이, 너무 외로웠던 그였기에. 무난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선의 예상은 빗나가 지나도 병을 앓으면서 골골하게 되고 집안 일을 도와줄 먼 친척 매티를 불러들인다.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그녀였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방탕한 생활로 망하고 죽자, 쿠키를 굽고 리본을 꾸미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그녀의 능력은 돈 벌이에는 도움이 안 되었고 회계같은 것을 배우기엔 건강이 받쳐주지 않았다. 친척들이 그녀를 위해 말뿐인 조언을 했지만 결국 그녀를 거둔 것은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을 겨우 먹이는 이선이었다. 활기찬 매티를 보자 난생 처음으로 심장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 이선. 자기가 생각했던 것이 그녀의 입으로 나오는, 소위 통함을 느낀 이선은 더이상 추운 스타크필드가 회색빛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어릴 때 한번 쯤 추운 겨울에 길을 잃어 떠돌아 다니다가 엄마를 보고 와앙 우는 것처럼 온기라는 것이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투박한 남자 이선의 감정은 요동치고 급기야 아내가 요양가는 틈에 매티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에 배웅을 직접하지 않으려고 의욕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만다. 나뭇값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바싹 시들었지만 오랜 병으로 예민한 지나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지나없이 둘이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다는 생각으로 기뻤던 맷은 리본을 머리에 묶고, 이선은 떨린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맷은 지나가 아끼는 유리 그릇에 피클을 담아내었다. 빨리 가는 시간이 아깝지만 서로 머뭇거리며 두근두근한 시간은 보내고 있던 둘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고양이는 피클 그릇을 깨버리고... 이것을 복선으로.. 그들은 자기들의 관계를 점치고 만다.


겨우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안 좋게 끝내버린 그들의 관계는, 안 좋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듯,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만다. 지나는 돌아와서 작정한 듯이 집의 변화를 이잡듯이 찾아내고 맷을 쫓아낼 구실을 찾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깨진 피클 그릇을 발견하고 당당하게 매티를 쫓아내기로 한다. 갑자기 희망이 사라진 이선은 매티를 자기 손으로 떠나보내는 날, 서로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자 하고...


그날의 사고는 소설의 첫 흐름부터 그렇듯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차라리 그들의 계획이 성공적이었다면.. 조금 더 나은 결말이었을까. 세 사람의 동거와 그 전과 달라진 관계, 끝까지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의 생존을 위해 일만 해야 하는 이선의 삶이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겨우 몇 달의 기쁨을 맛보고 그로 인해 더 큰 고난을 안고 살아가게 된 이선의 삶은 어쩌면, 감추거나 조명되지 않아 모르는 많은 불행한 삶과 비슷해서 더 슬펐다.


스타크필드의 거친 날씨는 변함 없었지만 이선의 환상은 깨지고 사랑은 변하고, 심지어 사고를 당했다. 사랑의 도피도, 생의 도피도 실패한 이선에게 계속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건 무엇일까. 삶에는 의미가 있어서? 쉽게 쉽게 목숨을 포기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행복한 삶만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들어 든다.





그녀는 처음에 프롬이 본 명랑함과 상냥함 외에도, 그보다 더 큰 매력, 즉 극히 예민한 심성을 지녔다. 그녀는 프롬이 한 번 보여주거나 말한 것을 오랫동안 기억했다가 그가 원할때마다 생생하고 아름답게 되살려줌으로써 그를 황홀하게 했다. p. 28

"우리도 못 벗어났는데, 네가 감히?" 라는 말이 비석 하나하나에 새겨져 있는 것 같아서, 그는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나도 저 꼴이 될 때까지 여기서 살겠지`라는 생각에 몸서리를 치곤 했다. 그런데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 들끓던, 변화를 향한 모든 욕망이 사라지고, 묘지도 지속과 안정이라는 따스한 느낌으로 다가왔다.p.44

그녀는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고, 이선은 그녀의 눈물이 한 방울 한 방울 뜨거운 납덩이가 되어 자기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었다.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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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아프리카 열린책들 세계문학 87
카렌 블릭센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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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아프리카로 부터 나온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지. 풍요때문에 오히려 힘든 일을 당하고 있는 땅이긴 하지만.. 그게 어떻게 아프리카의 책임이겠는가. 자원이 인간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살다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을 부러워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프리카 땅을 놓고 서구 열강이 서로 물어뜯고 싸우다 전쟁까지 한 것을 보면 몹시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납득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 자원이 펄펄 넘치는데 가만히 있을 놈은 없지. 


납득이 된다고는 하나 여전히 얄밉다.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무리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원주민들을 대한다고 하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서구 중심적인 시선으로 그들은 판단하거나 하인들을 다그치는 모습은 잘 읽고 있다가도 째릿-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몇 번이나 읽는 이유는 뛰어난 묘사와 인물에 대한 세밀한 시선,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에 대한 향수(?) 같은 걸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릴 때 류시화 산문집을 읽고 인도를 꼭 가겠다 마음 먹었었는데 지금은 별 생각이 없는 걸 보면 이 마음도 언제 변할지는 모른다. 지금은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가지도 못하지만.

아프리카하면 떠오르는 동식물은 바오밥 나무와 사자, 물소 같은 것이지만 작가가 묘사해 놓은 사슴 때문인지 꼭 사슴이 보고 싶었다. 서울 숲에서 우리에 있는 새끼 사슴 두 마리를 본 뒤로 더 심해졌는데 저번주에 일본 '나라'에 가서 봤다.(이런 걸 대리만족이라고 하나?) 교토,오사카, 고베, 와카야마도 갔지만 나라가 제일 좋았다. 하루 더 있었으면 좋았을 껄.. 이랬다.

나라 공원을 중심으로 우리 없이 아무 곳이나 활보하는 세상에 주인 같은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힐링이 따로 없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제일 예뻤던 아기 사슴. 센베를 줘봐도 경계하며 다가오지 않으면서도 도망가지도 않았던 요오~물.


엄청 예쁜 포즈를 취해주었던 녀석. 분명 암컷일꺼야..



이렇게 예쁜 것들은 정말 얼굴만 예뻤다. 작가가 묘사한대로 믿을 수가 없는 녀석들이었다. 센베를 사서 사슴한테 줄 수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센베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당당하게 요구하는 놈들이 참 많았고 한 입 주면 졸졸 쫓아와서 사람을 참 곤란하게 만들었다. 말이 통한다면 나한테 센베 맡겨놨냐?고 한 번 퉁박을 주고 싶기도 했다.

성격도 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좋지는 않았던게 먹이를 주면 얼굴 정도는 한 번 만지게 해주는 녀석들도 있었고 먹이만 먹고 좀 쓰다듬으려고 하면 바로 뒷걸음을 깡총 뛰는 녀석, 새끼들에게 주려고 하면 중간에서 방해하는 넘들과 오히려 이쪽에서 먼저 주려고 해도 주춤주춤 오지 못하는 녀석. 그리고 사진에 찍힌 저 아기 사슴은 정말 먹이도 먹지 않고 그럼에도 나를 떠나지도 않고 예쁜 눈을 마주쳐주었다. 사진을 찍어 보란 듯이.

얼굴만 예뻐서... 정말 사람을 애타게 하는 구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는 '신의 사자'라고도 한다는데 얘네들의 신비한 외형을 보면 별명이 이해가 된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행복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거기 살면 매일매일 갈텐데... 라는 아쉬움만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특별한 경험만 한 작가가 너무 부러워 그녀가 겪은 불행까지도 부러운 지경이다. 나도 드라마같은 삶을 살고 싶다. 아프리카 주민들의 지혜를 듣고 내 마당에서 동물이 뛰놀고 하늘이 다채로운 빛을 내며 눈동자를 아름답게 어지럽히는 생활을 누군들 안 부러워할까. 맛있는 커피는 덤이다.

크누센 영감, 현명한 하인이었던 카만테, 소말리아족 여인들, 불운한 사고, 원주민들의 풍속과 지혜 등 작가의 재능이 아니었다면 쓰이지 않았을 풍경이 그저 아름답다. (지금은 아프리카도 많이 변했겠지?)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이지만 언제나 나에게 베스트 챕터는 바로 룰루. 

룰루가 있는 챕터에 밑줄긋는 것은 힘들다. 거의 모든 게 밑줄긋기니까.
 



그때 룰루는 몸집이 고양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크고 고요한 자줏빛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다리는 어찌나 연약한지 앉거나 서면서 다리를 접고 펼 때마다 부러질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귀는 비단처럼 매끄럽고 대단히 표현력이 풍부했다. 그리고 코는 송로버섯처럼 까맸다. 작은 발은 전족을 한 옛날 중국 여인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토록 완벽한 존재를 소유한다는 건 드문 체험이었다. (p. 68)

하지만 룰루는 사실 온순하지 않았고 속에 악마가 들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천생 여자로, 공격에 온 힘을 쏟고 있을 때도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는 데만 골몰한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공격적이어서 아무한테나 덤볐다. 심사가 뒤틀리면 말에게도 덤벼들었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하겐베크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동물 전문가인 하겐베크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은 사슴이며 하다못해 표범도 믿을 수 있지만 어린 사슴을 믿으면 조만간 녀석이 등 뒤에서 공격해 올 것이라고 했다.
룰루가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요부처럼 굴 때조차 우리는 룰루를 자랑거리로 여겼지만, 우리는 룰루는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다. 룰루는 이따금 몇 시간씩, 어떤 때는 오후 내내 집을 비웠다. 가끔씩 주위 환경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하면 룰루는 집 앞 잔디밭에서 사탄을 향한 짤막한 갈지자의 기도처럼 보이는 출전의 춤을 한바탕 추어 기분 풀이를 했다. (p. 71)

룰루가 없는 집은 다른 집들보다 나을 게 전혀 없는 듯했다.(p72)

룰루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깊고 그윽한 자줏빛 눈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나는 신이나 여신은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마치 암소 눈을 가진 헤라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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