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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과 돈, 죄에 대한 경구(?) 중에 나이가 들면서 동의하게 되는 것과 아닌 게 있다. 아니면 점점 의문을 품게 되는 것도 있고. 신성한 돈'님'에 쉽게 죄를 연관짓는 이유는 돈이 어떤 유혹이든 쉽게 빠지게 만든다는데 있다. 특히 죄의 유혹에는 더더욱.
1. 귀신이 무섭냐 사람이 무섭지! ▶ (동의)
2. 사람이 나쁘냐 돈이 나쁘지! ▶ (.... 그랴도 그러면 쓰나!)
3.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그의 죄를 미워하라. ▶ (오 지져스...이건 경험상 불가능에 가까움.)
특히 1번인 <귀신이 무섭냐 사람이 무섭지!>를 동의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어린왕자]를 재밌게 읽게 된 일개 '어른이'일 뿐이다. 지금보면 매우 유치한 [전설의 고향]의 레전드 편 '내 다리 내놔'를 보며 부들부들떨던 초딩은 이제 [그것이 알고 싶다]와 [실제상황]을 복습 또 복습하며 인간 불신을 공고히 다지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그의 죄를 미워하라.>는 3번문은 미션 스쿨 다닐 시절부터 이해가 잘 안 되었던 걸로 현재로서는 정말 그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당연히 종교 지도자는 저렇게 말을 해야하겠지만 그저 범인인 나에게는 무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죄를 짓고나서 저런 태도를 취하는 범죄자를 보면 분노가 미친듯 상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사람이 나쁘냐 돈이 나쁘지!>라는 문장은 미묘하다. 돈 때문에 비굴해지는 게 사람이고 우쭐해지는 것도 사람이며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게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돈이 아쉬운 사람이 모두 범죄에 길로 빠지거나 추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돈은 모든 이에게 소중하고 아깝다. 죄를 저지르고 나서 "돈이 없어서 그랬어요..."라고 하면 동정심이 팍 이는 것도 다 이런 맥락이다. 어디까지나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훔치거나 불법인 누드 사진을 찍는 등의 경범죄일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가치라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가 다 이놈한테서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의니 사랑이니 자연이니 이런 아름다운 말도 돈의 유혹 앞에선 힘을 잃고 만다. 내가 맹하기는해도 백치아다다처럼 돈을 경멸하는 사람은 아니니 내숭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마시라. 그저 돈의 힘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뭐 돈 앞에서 무력함을 느꼈던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테니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미야베 미유키의 대표작 [화차]를 나는 지금 봤다. 원체 추리소설을 무서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재밌게 찾아 보고 있다. 흔히 '사회파'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추리 소설은 대부분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게 제일 무섭기도 하고... 특히 돈을 벌어보니 돈 문제가 가장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돈이 없는 것도 무섭지만 마이너스에, 돈 때문에 쫓겨서 원치 않는 일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몹시 끔찍하다.
연예인의 개인 회생, 파산 뉴스를 듣고 곧 갚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빚 갚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보통 월급쟁이나 자영업자의 이야기는 아주 다르다. 뭐 연예인들도 웃음으로 승화시켜도 그게 아주 밝은 웃음이겠냐마는.
주변에 개인 회생 받은 사람 얘기를 누누히 들었다. 심지어 내 제일 친한 친구가 악명높은 제3금융권에서 근무해서 가끔 일 얘기를 듣기만해도 소름이 돋을 때도 있다. '신용'을 잃는다는 건 너무너무 무서운 일이다. 잘 되는 부자들의 이야기보다 반면교사가 더 효과적일 때도 많으니 소비가 주체가 안 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정말 이 소설을 먼저 읽게 해도 될 것 같다.
소설 [화차]의 제목인 '화차'의 뜻은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태양의 신 아폴론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몰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불에 타서 추락하고 마는데 한자로 풀어쓰니까 그 때보다 더 무서운 느낌이 든다. 망자, 지옥, 불수레....
불붙은 화차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한순간에 그 주변을 다 화끈하게 만드는 뜨거운 온기와 눈부신 밝음이 떠올라서 소름 끼친다. 정말 악행을 많이 한 사람이 불수레를 타고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 위로 비스무리한 게 되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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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떤 예쁜 여자가 있다. 한눈에 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참한 미인. 여자를 남들보다 멋진 외모로 낳아준 부모는 선량한 사람이었으나 그저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융자를 받는다. 큰 경제 지식이 없었던 그들에게는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변제 능력을 잃은 사람이 하는 일은 다 비슷하다. 빚은 빚을 낳고 그들은 언제는 뿔뿔히 흩어졌다, 뭉쳤다하며 채권자에게서 도망을 다닌다. 돈을 받고 싶은 사람은 집요하다. (허긴 왜 안 그렇겠는가.) 어디로 숨어도 찾아내고 또 찾아낸다. 학창 시절부터 이런 일을 겪은 여자는 그들을 피해다니다 나쁜 일을 당하기도 하고 가족들이 불행한 결말을 맞는다. 또한 이미 여자는 한 때 결혼까지 하여 한순간의 행복을 맞보기도 했었다. 한번 행복한 생활을 경험했던 여자는 크게 좌절하고 깨닫는다. 자신이 너무 불행하다는 사실을. 나는 계속 이렇게 살 수 없어. 이대로는 안 돼.
하지만 여자는 이미 경험했다. 채권자는 아무리 구석으로 도망가도 구석구석 다 찾아냈다. 여자는 그래서 아예 자신이 아닌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다른 이의 신분을 손에 넣는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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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뿐인 인생을 신나고 즐겁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도 아름다운 외모로 태어나 남들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상대적 약자인 여자가 빚이라는 '흠'을 가지면 아름다운 외모는 더 큰 독으로 작용될 뿐이다. 교코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나머지 다른 이의 삶을 간과했다. 아마 그들의 신분을 넣고 나서 처리한 것을 볼 때, 몸의 안전성을 찾았다고 해도 이미 마음은 불수레에 실려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긴 하지만 자신이 진 빚도 아닌데 평생 원치 않은 고생을 한 여자의 억울함도 쉽게 비난할 수가 없다.
한 십년전에 '카드대란'이라고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문제의 원인에는 쉬운 신용 카드 발급이니 카드 사용자의 무분별한 낭비, 그로 인해 부실해진 카드사들의 폭탄돌리기 등등이 있으나 철저히 내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것은 그 때까지 생소했던 플라스틴 자그마한 카드 한 장의 위력을 너무 쉽게 봤던 사람들이 남의 돈의 무서움을 모른 것은 아니었을까 한다. 물론 카드사들이 책임감없이 카드 발급을 남발한 것도 더더 나쁘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는 나도 신용카드 회사에서 통장에 뺄 돈이 없다고 한 번 욕먹은 적 있다. 다행히 '안심..'뭐가 걸려 있어서 바로 입금하고 사태는 일단락 되었다. 겨우 50만원만 한도를 걸어 놓은 내 첫 신용카드는 역시, 대학생 때 나보다 우리 엄마의 변제 능력을 믿고 은행 창구에서 직접 발급 받은 거였다. 정말 현금이 아니다보니 아무리 안전한 체크카드라도 손쉽게 쓰게 되는 위력이 있다. 한도가 50만원이니 망정이지. 나도 정말 큰 일날 뻔 했다. 특히 대학생이다 보니 '설마 그렇게 큰 돈도 아닌데 잡아가기야 하겠어...?'같이 돈의 힘을 아주 가볍게 생각했었다. (아주 세상을 쉽게 봤던 듯.. 인정도 안 믿는데 그 때는 왜 회사의 정을 믿었던 걸까.)
같은 나라라도 집집마다 문화 차이는 있다. 친구들과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집과 달리 사업을 주로 하는 집인 경우에 '빚도 재산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 언제나 화려하고 호인인 내 친구 Y의 집은 주로 개인 사업을 해서 빚이 많다고는 하는데 누리고 사는 수준은 아주 높다. 명품백에 구두에 최신 전자기기에 항상 최고 좋은 것만을 해야한다는 Y의 생활을 보고 있자면 월급쟁이인 우리집이 근근히 살고 있는게 웬지 궁상맞게 느껴질 지경이다. '빚은 철저히 넘의 돈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우리집이 당연한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빚도 재산이'라는 생각을 가진 집이 많다고 해서 크게 놀랐다. 부자들은 빚도 잘 굴린다는데 옆에서 본 바로 특별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자기 돈으로 마음 편히 사는 게 낫다고 본다.
확실히 물질적 풍요가 주는 행복감은 있다. 잡지나 티비에서 봐서 모든 좋은 것을 다 누리고 싶은 심리도 있다. 아마도 스스로 다들 잘 알거라 생각하지만 '나를 뭘 믿고 돈을 마구 빌려준담...' 이런 생각은 꼭 해야한다. 월급을 받으며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빼는' 게 무지 어렵다는 걸 느껴본 나로서 대출, 사채는 정말 무서운 존재다.
제3금융권에서 대출을 담당하는 친구에게 들은 얘기로는, 그 어마어마한 대출 이자도 한 번 써보면 생각보다 가볍게 느끼는 게 사람이더라. 심지어 직업 멀쩡한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그 곳을 이용하기도 한단다. 역설적으로 내 친구는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이 회사를 다니면서 집안 빚을 거의 갚고 생활비까지 척척 대는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H야, 항상 힘내라.
이래도 끝내면 좀 찜찜하니, 한 말씀 올린다. 그래도,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은 지켜야 아름다운 겁니다!
돈도, 나쁘긴 한데... 그걸로 죄 지으면 사람이 나빠지는거여!
* 작년에 도쿄돔 가까이에 있는 호텔에 묶으면서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화려한 도쿄돔과 호텔의 낭만보다는 경마장 주변에서 눈이 풀려서 경마 신문을 보는 머리 희끗희끗한 할아버지들과 서민들이 갈 법한 근처 라멘집에서 손님 상 앞에 꽂혀 있는 '개인회생, 개인파산' 찌라시가 더 기억에 남는다. 스스로 죽거나 남을 죽이기 전에 그래도 법의 도움을 먼저 청하시라. 어찌되었든 살아 있는 게 더 중요할지니.
* 작년 9월에 발행되었던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칼럼 '일본계 대부업체들'이라는 기사를 보기 바란다. 정말 오들오들 떨린다. 이제 이자가 27.9%까지 내려갔지만 이들이 우리나라까지 넘어오기까지한 과정은 실로 무섭다. 예전에는 지들 본토에선 돈 빌리면 '생명보험'에 들게 했다. 한 마디로 빚은 '목숨으로 갚으라'는 거였다. 나름 합법이라는 이들... 27.9%... 진정 최선입니까?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242
마지막 책임을 묻는 곳이 자기 회사만 아니면 됩니다. 사실 은행이나 사채시장이나 신용판매회사도 큰 곳은 별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말씀 드린 구조에서 피라미드 우쪽에 있는 업자는 당하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 책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거죠. 그런 굴레 속에서 채무자는 점점 아래로 굴러 떨어져 다중채무자라는 이름으로 결박되어 두 번 다시 떠오를 수 없도록 가라앉는 겁니다. (p.137)
돈도 없고, 학력도 없고, 별다른 능력도 없고, 얼굴도 그걸로 먹고살 만큼 예쁜 것도 아니고 머리도 별로였고 삼류 이하의 회사에서 잡무만 보고 있었죠. 그런 사람이 마음속에서는 텔레비전이나 잡지나 소설에서 보고 들은 화려한 생활을 꿈꾸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냥 꿈만 꾸는 걸로 만족하든지, 그게 싫으면 어떻게 해서든 꿈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해 보든지 했겠지요. 그래서 실제로 출세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아니면 나쁜 길로 빠져든 사람도 있을 거예요. 옛날에는 아주 간단했어요. 방법이야 어쨌든 간에 자력으로 꿈을 이루든가 현 상태에서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였잖아요? (중략) 그렇지만 요샌 달라요. 꿈을 이루기가 힘들죠.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자니 너무 아쉽고, 그래서 꿈이 이뤄졌다는 기분에 그냥 빠져들어 가는 거예요. 그러기 위한 방법이 지금은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쇼코의 경우는 그게 우연히 쇼핑이나 여행같이 돈을 쓰는 쪽으로 간 것뿐이에요. 그런 걸 가볍게 도와주었던 게 바로 신용카드와 사채였죠. (p. 307-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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