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에릭 라인하르트 지음, 이혜정 옮김 / 아고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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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이 두껍다. 두껍지만 술술 잘 읽혀요~ 라고 얘기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독성이 그리 좋은 책은 아니다. 매우 좋지 않다. 딱히 번역의 문제일 것 같지도 않다.'예술서 편집자 이기도 한 그는......' 작가는 예술서 편집자였던 것이다.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지만 그는 인문학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일 것이고 글은 그만큼 지루할 것이다.(실제로 지루하다.) 

분량이 많은 만큼 책에 밑줄도 많이 그었는데 주로 감각적인 표현이라 소개하기도 쩜... 그렇다. 반복되는 부분에 마구 밑줄을 그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책이었다.(왠지 사진을 전공하는 친구가 한 얘기가 생각났다. "나는 사진을 백만개 찍고 본다. 그래야 하나라도 좋은 게 나오니까.") 작가는 많은 분량의 글을 썼다. 그래서 밑줄 칠 부분이 많았다. 주로 가을에 대한 이야기와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구두를 신을 수 있는 옴폭 들어간 아름다운 하얀 발, 헤지펀드 같은 자본주의의 산물인 금융상품 얘기가 많이 등장한다. 

이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작가가 자신을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등장시켰고, 이 두꺼운 책에서 반 이상이 그가 화자로 설정되었다. 여기에는 네 명의 남자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문학적이나 나약한 기질을 가진 로랑 달, 아버지가 포크로 가족 앞에서 자살을 하고 나서 평생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테러리스트가 되길 꿈꾸는 파트리크 네프텔, 아내의 누드를 인터넷에 뿌리고 거기서 형성된 관계로 스와핑을 꿈꾸는 티에리 트로켈, 그리고 계속해서 얘기를 해대는 작가 에릭 라인하르트.(책이 워낙 두꺼워서 계속 읽으니 주인공 이름을 외워 버렸다!)  

문제는 이들의 얘기가 균등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 작가인 에릭 라인하르트 빼고는 모두 작가가 창조한 것들로, 창조가 매우 힘들었던 거겠지. 게다가 계속 읽다보면 작가가 하던 얘기를 그들이 이어 나가기도 한다. (아,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전작들과 그것을 비웃었던 평론가들을 마구 씹어대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소설은 이거 한 권뿐이라 프랑스어를 모르면 읽을 기회도 없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왠만하면 그의 작품을 안 읽을 것 같다는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그니까 평론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직접 하든지 어쩌든지 하시고, 제발 한 작품에는 그것에만 치중합시다요. 하고 싶은 말 다 '배설'하지 마시고! (내가 이렇게 거칠어진 이유는 616쪽에 달하는 이 소설을 끝내고 작가에게 감정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봄을 아주 좋아해서, 작가의 가을과 그에 비해 못된(?) 봄에 대한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계절에 대한 표현들은 좋았다. 계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 특히 페르세포네의 얘기를 들어 설명한 점은 정말 좋았다. 뭔가 새로운 시각이랄까.

봄은 자만심이 강하고 변덕스러운 자아도취의 계절이다. 이 계절은 자신이 예쁘다고 믿는 아가씨들, 또는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아는 아가씨들이 군립하도록 힘을 발휘한다. p.349  

봄과 여름보다 더 흥미진진한 가을과 겨울은 향수 어린 그림움에 상응하고, 안으로 억눌린 기다림과 어머니에 대한 멀고 미래적인 부드러움과 이어지며, 특히 대지의 창자 속에 달리 그녀 자신의 표현에 따르자면 페르세포네가 여왕이고 여주인인 은밀한 세계의 동굴 속에 그녀를 감춘 것에 상응한다. p. 455 

소설의 주제는 뒤에 친절하게 써 있듯이 "꿈꾸지 마라, 아무것도" 인 것 같다. (이제 출판사도 친절해졌다.) 신데렐라는 없으니까. 특히, 아버지로 인해 이미 사회생활의 무서움을 경험한 아들들은 더더욱. 네 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아버지로(주로 무능으로)부터 꿈을 거세당했다. 신데렐라의 구두는 애초부터 없었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항상 그들은 무언가를 욕망한다. 

나는 아무런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게 되어 무능하고, 모욕당하며, 지배당하고 예속되는 것이 두려웠다. 내 부모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은 내 상상의 세계에 끊임없이 투영되었고, 그를 통해 외부 세계는 너무나 일찍 나에게 잔인한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쉽게 고통에 처하게 되었다. p.390

고독은 언제나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늘 타인이 필요하다. 늘 삶의 중앙에서 이타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필요성을 느낀다. p.354 

그래서 그는 이런 여자를 꿈꾼다. 에라이. 

내 관심사는 여왕, 살인녀, 중상모략을 일삼는 메디아의 인물들, 능력있는 여자들, 지구의 지적인 여인들이라고요. 난 페미니스트거든요! 근육질의 엉덩이를 가진 매춘부들은 지긋지긋해요! P.235

  

그러니까 아무것도 꿈꾸지 마시란다. 참 잔인하다 꿈도 못 꾸게 하다니..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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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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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란 소설은 처음이다. 크게 세계 정세에는 관심이 없지만 중동에 대한 편견에도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원래 잘 모르고 관심없는 사람이 편견을 갖는 거지만서도..) 누구의 잘못인지... 중동 사람들을 보면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며 짖궂게 편견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공격을 받은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테러리스트 이즈 아메리카!" 라고. 미국이 중동에 대해 별로 호의적이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양쪽 다 확실히 잘 알지 못하므로, 판단은 보류. (이래서 편견이 무섭다는 걸까. 근데 난 딱히 중동이란 지역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우선 배경이 이란이라 매우 이국적이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세계화 시대라고 하면서도 모르는 문화들이 넘 많다.) 그렇지만 너무 낯선 풍경이라 지붕이 도대체 어떻게 생긴건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찾아봐도 이게 맞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누가 설명 좀! (사실 리뷰 쓸 때부터 이미지를 첨부하고 싶었는데 당최 어떤 지붕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리고 암울한 뉴스도 많이 나와서 슬퍼졌다.)

처음 읽는 이란 소설에, 표지에 "미국독립서점연합 '2009년 놀라운 데뷔작 6편'에 선정" 이라는 문구를 보고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실망이 크다. 작가의 처녀작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용 파악은 잘 되었지만 가독성과 흡입력은 그리 좋지 않았다. 페이소스도 감정도 풍부하다 못해서 철철 넘칠 지경이었으니까.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테헤란의 한 골목에서 익살맞은 아메드와 우정을 쌓으며 살던 영리한 소년 파샤는, 자신의 집 지붕에 올라가면 볼 수 있는 집에 살고 있는 자리라는 소녀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 소녀는 파샤가 존경해 마지 않으며, 그와 우정을 쌓고 있는, 닥터라 불리는 지식인이자 정의로운 동네 형(?)의 약혼자이다. 합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전통적인 의식이 강한 이란에서는 다른 남자의 여자를 탐하는 건 완전한 죄악이고(이건 어느나라에서도 그렇긴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이란 의미는 자유연애보다는 집안끼리 혼약하는 걸 말하는 것이다.), 경외하는 닥터의 여자를 넘본다는 것은 스스로의 생각에서도 당연히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친구 아메드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그러나 이미 집안에서 정해준 약혼자가 있었던-파히메와 우여곡절 끝에(그녀의 오빠들한테 두들겨맞는) 그들의 의지로 연애를 하게 된다. 정의로운 청년 닥터는 마침, 농민을 계몽시키고 생활의 개선을 도와주는, 나라에서 금지하는 일을 하러 없어지고, 넷은 자리의 집에서 자주 모여 우정을 쌓는다.  

암울한 사회에서 정의로운 행동은 항상 목숨을 걸고 해야하는 것. 닥터는 결국 비밀경찰 시바크의 손에 죽게 되고, 자리는 큰 슬픔에 빠진다. 게다가 장례식도, 애도도 드러내고 할 수 없게 만들었다.(총알 값을 내야 시체를 돌려준다는 정부기관의 악랄함은 어느 곳에서도 치가 떨린다.) 그치만 '그것'을 가진 파샤는 아메드에게도 돈을 빌려 '빨간 장미나무'를 심는다. 자유를 뜻한 빨간 장미나무를.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사랑하는 감정을 막을 길 없이 커져, 파샤와 자리는 아주 가까워지지만, 결국 망자와의 추억과, 모순된 현실, 전통 앞에서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었다. 

자리는 국왕의 생일 날, 큰 결심을 한다. 바로....(여기서부턴 직접 읽어보시길.) 

 

이란이라는 생소한 배경에 매력을 느낄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나도 처음에 기대를 많이 했다. 그리고 암울한 시대와 환경에서 더 불타오르는 사랑이라는 소재는 좋았는데... 더 잘 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에서 맴돌았다. 작가가 글을 쓰고 싶은 의지보다 말하고 싶은 의지가 더 커보였다고 말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 문화를 몰라서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 표지 앞뒤에 써 있는 '2009년 최고의 소설 25편에 선정', '2009년 놀라운 데뷔작 6편에 선정' 이라는 문구가 정말로 선정적이게(물론 정욕을 자극하지는 않았지만) 느껴질 정도로 의아스러웠다. 

마지막에 파샤가 미국으로 떠나서 골목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것 처럼 저자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저자의 약력이 그런 암시를 하는 것 같았다. 말하고, 알리고 싶은 게 목적이었다면 그는 목적을 이룬거겠지?  

그래도 저자의 용기있는 글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덕분에 이란의 문화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 것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처녀작은 처녀작이니... 다음 작품에서는 좀 더 이야기다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길 기대해본다.

   

부끄러운 얘기1.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인데, 영화 [천국의 아이들]의 배경이 이란이었구나. 지금까지 인도인 줄 알았는데...(부끄부끄) 그럼 영화를 다시 보면 되겠다. 어떤 지붕인지 알려면.

부끄러운 얘기2. 뒷 표지에 진한 '페이소스'라 해서 페이소스란 뜻이 정확히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소설 읽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간단한 단어도 몰랐다니! 부끄부끄..)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수고를 덜어주는 차원에서 네입어 용어사전에서 찾은 결과를 적겠습니다. 여러분을 과소평가하는 뜻은 아니니 아무쪼록 기분 나빠하지 마시길. 

페이소스 [ pathos ] : 고통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용어로서, 극중의 연기자에게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극적인 표현방식. 이때의 주인공은 선천적인 성격상의 결함이 아니라 운명이나 일반적인 주위상황의 불운한 희생자이다. 

아아 그렇구나. 좋은 단어를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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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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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권지예. 꽤나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알게된 경위가 불명예스럽게도, 표절 시비였다. 사실이든 그렇지 않았든 역시 불명예스러운 소문은 작가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이 생기게 하진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작가의 소설을 거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4월의 물고기. 꽤 감성적인 제목이다. 그러나 제목이 내용과 꼭 맞지는 않는다. 추리 소설같은 면도 있으니 너무 직접적인 제목은 피하려는 의도였겠지?

유명한 작가치고 문체가 너무 소녀스럽다. 친절하다고 해야 하나? 뭐 나의 괜한 편견일 수도 있겠다. 문체는 표절 할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괜히 허세스럽지 않아서 괜찮았다.  

줄거리를 당췌 어디까지 써야할 지 모르겠다. 끝까지 쓰자면 스포일러가 되겠고, 난 그런 거 얘기하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니까. 근데 모든 내용을 알아버리고 나면 그 부분을 얘기 안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아, 메멘토. 메멘토랑 비슷한 얘기라고 해도 괜찮겠다. 기억은 해석이고, 그 해석은 자의에 의해 왜곡된다.... 그리고 그 왜곡된 기억의 진실을 알 게 되면 너무나도 무서운 결과가 있다. 진실이 더 무서운 법이니까. 

소설 중반부까지는 운명적인 사랑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가이자 요가 강사인 서인은 어느 잡지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사진 기자이자 교수인 석우를 만난다. 이상하게 서로에게 끌림을 느낀 둘은 운명의 힘에 의해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30대가 되어 진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석우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서인은 '악의 꽃'이라는 이름으로 메일을 받게 된다. 사랑에 빠지면 위험해 진다고. 

석우는 키가 크고 잘생긴 사진 작가이자 교수이다. 당연히 그에게는 추종자가 있다. 그의 자취방으로 연락없이 찾아오는 어린 제자 유정. 서인은 나중에 유정을 존재를 알고, 찾아낸 유정의 미니홈피에는 보를레르의 '악의 꽃'이란 시가 적혀있다. 

그들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아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다. (어떤 필연인 줄 알게된다면 끔찍한 일이다.) 이런 진부한 문장처럼 나중 결말도 청승맞다.

줄거리는 여기까지 끝. 더 이상 얘기한다면 이 책을 읽을 재미가 반 이상은 없어지겠지? 

운명적 사랑, 애써 억눌렀던 아픈 기억이 갑자기 분출하 듯 떠오를 때 마음의 동요, 무의식의 탐험 등 소설은 너무 많은 얘기를 한다. 그 고리가 맞물리기는 하는데 애써 연결해 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흡입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미지가 팍팍 떠오르는 것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호수의 고요한 이미지, 주인공들이 무의식을 캐가면서 나는 색채의 이미지. 그래서 요즘 보기 드문 먹고 대학생인 나는 악몽을 자주 꾼다. 끔찍한 꿈을 길게, 오래도 꾼다. 원래 그런 꿈은 잘 안 꿨는데.. 얼마 전부터 난도질 당하는 꿈을 자주 꾼다. 흑흑. 

통속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에 목 말랐던 독자라면 한 번 쯤 읽어보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데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악몽을 꾸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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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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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평단이 되고 처음으로 책을 받았다. 처음 받은 책에 뭔가 양파스럽게(?) 생긴 표지의 그림도, 분명 공들여썼을 제목의 서체도, 한 손으로 들어도 무겁지 않은 책의 무게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기뻐하며 엄마한테 막 자랑을 했다. 엄마는 제목을 물어왔고, 나는 한낮의 시선이야,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엄마는 대뜸, 한낮의 시선이라... 뜨겁겠구나, 라는 말을 했다. 

책을 읽기 전이라 대충흘리며 넘어갔는데 읽다보니 정말 그 시선은 뜨겁고, 그래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그래서 거기에 순응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비록 나를 파멸에 이끌지라도(그것도 알지라도) 결국 그것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이건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생활력 강한 홀어머니와 아무 문제 없이 살고있는 대학원생인 나는 결핵에 걸려 요양차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게 된다. 거기서 은퇴한 심리학과 교수를 만나고 갑자기(갑자기..라고 해야할지) 아버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사실 그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애틋하거나 그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된 순간, 어쩔 수 없이 그를 찾게 된다.   

연가시는 메뚜기 배 속에서 기생하는 생물이다. 연가시를 품고 있는 메뚜기는 양지바른 곳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 물가를 찾아간다. 그건 연가시가 숙주인 메뚜기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다. 기생충한테 끌려가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런 사람이 또 있었나부다. 페루 출신 영화감독은 '소명'이란 이름의 촌충이 그를 서점과 영화관에 가게 하고 책을 읽게 하고 토론하게 했던 것이다. 

"...... 촌충만을 위해 먹는 것이 아니다. 그는 먹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먹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촌충의 욕망은 그의 욕망과 구별되지 않는다. 바르가스 요사는 말한다. 촌충과 그는 이미 한몸이 되어 버린 거라고. 애초에 촌충이 몸 안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p.89 

인구가 몇 안 되는 군기지 옆의 작은 읍같은 곳에서 그는 아버지를 대면한다. 가장 먼저는 포스터 전단지에서. 그는 기호 2번이었다. 선거가 사흘밖에 안 남은 날(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무작정 유세장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그는 한순간 움찔하였지만 비정한 남자답게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미소를 보낸다. 그날 밤, 수상한 남자 세 명이 와서 그 전말을 물어보고 간다. 다음 날, 바로 전단지가 뿌려진다. 그의 아버지는 야망을 위해 조강지처와 그 자식을 버린 비정한 남자로 쓰여진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타이밍이 좋지 않다...."고 말할 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그의 아버지는 이미 강하게 그 내용을 부정했고, 전단지에 있는 내용을 직접 부정해달라고 한다. 환영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부정당하고 만다.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비정한 남자였을 뿐이다. 그럼 혼자 한낮의 시선을 느낀 것 뿐일까. 결국 그는 아버지를....... (대충 예상되시겠지만 알아서 읽으세요...ㅎㅎ) 

아버지로 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이 소설에도 나오지만- 요르한 파묵의 소설에서처럼 아버지와 함께 있는 지붕 아래서 이성과 잠을 자거나, 그를 죽이는 것 뿐이다. 남자는 사춘기가 지나면 아버지도 경쟁상대로 인식한다고 하니(정말일까??) 후자의 방법이 더 후련하긴 하겠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우뚝 선 경우는 자기가 다시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은 염두해 두어야겠다.(현대 문화가 그렇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었더라..? 그래서 노인들, 자신의 육체가 늙는 것을 못 견뎌서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아 <소립자>구나.)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것을 택했는지, 그래서 해방이 되었는지, 그게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독자의 몫이겠다.

   

내가 나이도 좀 안 되고 성별도 달라서 그런지 사실 이해가 딱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아니면 내용보다는 주인공의 의식이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어서 읽기가 조금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살아봐야 이해가 갈 듯.... 아무튼 부모로부터 해방되는 건 무진장 어려운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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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열린책들 세계문학 34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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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다. 2000년대 후반인 지금의 현실과도 아주 비슷한 게 놀라울 따름이다. 몸이, 특히 젊은 몸이 이상화되는 것은 거의 똑같다. 허벅지가 건강해보인다는(진짜 이유는 뭐였더라... 아무튼 기분 나쁜 이유였는데...?) 이유로 꿀이라는 접두사가 붙고, 소녀들이 나와서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지금은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책 표지 뒷면에 쏟아진 찬사를 보면 "다른 소설들이 토끼를 사냥하고 있을 때 이 소설은 거대한 사냥감을 노리고 있다. - 줄리언 빈스" 라는 것이 있는데, 나도 이 말이 가장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쉽게 쉽게 읽히는 흔한 소설과는 달리, 읽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과학, 철학, 종교, 성.... 이 모든 것을 다루었지만, 사실... 다 이해가 가는 건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 성의 해방이 원래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자들에게만 더 유리해졌다거나, 젊고 아름답지 않은 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지금 상황이랑 딱 맞는 것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소설은 논문이 아니므로 이런 얘기를 주제별로 줄줄 한 것은 당연히 아니나니! 큰 줄기를 이끌어나갈 주인공은 어떤 형제다. 그것도 아버지가 다르고 아름답고 자유분방한 어머니를 둔 형제. 이 조건만 봐도 두 사람의 자아형성이 쉽지 않았으리라는 촉이 오지 않는가.  

나중에 이름을 제인을로 바꾼 자닌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고 전쟁 후에 크게 바뀐 변화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그 전에 털복숭이 원숭이처럼 생긴 의사 사이에서 형 브뤼노를 낳았고, 신여성(?)이 된 후에는 유능하고 잘생긴 다큐멘터리 감독 사이에서 미셸을 낳았다. 다만 그녀는 제 자식들을 방치해버린 것이 문제였다. 책임감은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죄의식은 있었던 아비들은 각자의 어머니에게 맡겨버리고, 형제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태어나서 부터 어미의 손을 타지 못한 형제는 성에 대한 대응방식이 무척이나 다르다. 형 브뤼노는 성에 과도한 집착을 하는데, 아버지를 빼닮은 외모로 시장(?)에서 경쟁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여 항상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전전긍긍하는 인물이다. 반면 미셸은, 사후에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태생적으로 순수히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역시 아버지를 닮아 잘생긴 외모에도 불구하고 성에는 도무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모름지기 5살까지가 인간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심리학에서는 침을 튀겨가며 강조하여, 아기 때에 엄마의 행동이 그렇게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이 형제의 반응은 이렇게 다른 것을 보면 결국은 천성인가?? 

작가가 하려는 말은, 당연하겠지만, 이런 건 아니다. 서구의 몰락(작가는 확실히 지금의 세태에 대해서 이렇게 보는 것 같다.)에 동참하거나, 혹은 동참하지 않는 개인도 어쨌든 사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제목 '소립자'가 뜻하는 것은 아닐까.  

소립자는 과학용어인데 물질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한다. 원자 같은 건가... 소설 안에 나오는 과학에 관한 얘기는 부끄럽게도 거의 이해하지 못 했는데, 그냥 이것이 뜻하는 바는 개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특히, 두 형제 중에 비교적 멍청하게(?) 느껴지는 브뤼노의 경우, 그 욕망이 사회의 욕망과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헷갈리는 것은 소립자의 성질이 물질의 성질을 결정하는 것인지, 물질의 성질이 소립자의 성질과 그저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학을 모르니. 정말 너무 치우치게 공부하며 살아왔구나..쩝! 

최근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사탄스러운 엽기적인 범죄들은 정말 세상이 몰락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 사탄숭배자라는 집단은 정말 사탄이라는 어떤 영적인 존재를 신봉한다기 보다는 물질숭배(페티시즘)와 섹슈얼리티의 숭배의 결합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오 하나님 맙소사. 

나도 내 욕망이 그저 사회의 욕망에 따라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반추해보며 리뷰를 마친다. 

 

그냥 덧붙이는 말)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미스터노 세계문학은 정말 쵝오! 일단 다양성의 측면에서 소설의 선정은 두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책의 무게와 크기가 감동스럽다. 가벼우니 얼마나 좋냐구요. 요즘 말하는 '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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