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다 보니 내가 총무가 되어 부산 모임을 갖게 되었다.
아내의 소개로 좋은 장소를 찾아내서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조용하신 분들일거라 생각해 조용한 장소를 찾으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서면에서 조용한 술집을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찾기 비슷했다.
처음 만나는 분들이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사시는지, 깊이 알기는 어렵지만, 짧은 만남에서도 참 깊은 느낌을 나눌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우연히 연배가 84학번에서 90학번까지 87학번 정도가 평균이 되는 모임이 되다 보니 대화의 관심도 비슷했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핀볼 튀어다니듯이 통통 튀어다녔다.
모임을 마치고 일찍(새벽 1시가 넘었으니 오늘 일찍 온 셈이다.) 들어와서 자고 해롱해롱하면서 보충수업하고 왔더니 이미 바람돌이님께서 새벽 세 시에 모임 후기를 올려 주셨다. (대단한 酒功이시다.)
사진을 음식만 찍어 두었지만, 다음 모임에선 '손'만이라도 찍어서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ㅋㅋ
여러 분들이 신비주의 컨셉트로 가시길 바랐지만, 일부 의심병에 걸리신 분들은 바람돌이님의 반복되는 부정에 더 의심이 깊어지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임 현장을 생생하게 중계해 주셨기 때문에 내가 더 쓸 말은 없지만, 그래도 모임을 마치고 여운이 오래 남아 몇 자 남기려고 한다.
처음엔 몇 분 모여서 조촐하게 술이나 한잔 할까 하는 차원이었다. 서너 분 모이면 간단하게 한잔하기 좋겠다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시겠다는 분들이 많았고, (결국 몇 분은 일이 생겨서 못 오셨지만 최대 10분 이상도 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곱 분이 참석하셨다.
이야기는 육아(아토피에서 환경 문제, 책에 포름알데히드가 묻어서 하루쯤 햇볕소독한 다음에 보여준다는 등... 그리고 대안 교육까지 상당히 수준높은...)에서부터, 중고생의 학업 문제나 아이들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들, 요즘 책들이 지나치게 비싸고 질이 좋다는 이야기, 이런 자리에 꼭 있게 마련인 알고보면 세상 좁다는 이야기까지... 종횡무진 이어져나갔다.
중간 중간 이야기가 뚝, 끊어지기가 무섭게 맥줏잔을 부딪치는 일도 재미있었다.(참 썰렁한 것도 재미있었던 것을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즐거운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드팀전님이 갑자기 '아, 오늘 늦어도 10시까지는 들어온다고 했는데...' 하면서 벌떡 일어나 가실 때에야 시간이 그렇게 흘렀단 것을 알았으니, 처음 보면서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인 것도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구나... 하고 신기했다.
드팀전님 가시고도 한 시간을 더 떠들다 헤어질 때, 남들이 봤더라면 처음 만난 사람들인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두 아이에게서 해방되어 바람이 되신 바람돌이님과, 세상을 느릿느릿 관조하시는 달팽이님을 모시고 또다른 알라디너가 가르쳐주신 '安'이란 바에가서 맥주를 한 잔 하는 것은 그냥 그렇게 자연스러워보였다.
여느 때, 밤 늦은 시각까지 회식을 하고 집에 돌아갈 무렵이면 술에 취한 내 발걸음을 비웃기도 하고, 술잔으론 채워지지 않는 허탈함을 느끼는 일이 많았다는 생각을 문득, 해 본다.
서로 채팅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각자 제 골방에서 책이 좋아서 책을 열심히 읽던 사람들이 남의 리뷰나 갉작거린 페이퍼들을 나눠 읽었을 뿐인데, 스스럼없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된 걸 보면, 허공중에서 수염을 배배꼬고 있을 알라딘의 '지니'에게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겠다.
중복 리뷰라는 별로 문제도 되지도 않는 사건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논쟁을 겪은 이후라, 싸가지없이 들이대는 쌈닭에 대해서 정중하고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어찌 보면 좀 과도한 예의를 지킨 사건들을 돌아 보며 온라인 공간이지만 알라딘 서재는 자존감을 가진 분들이 꾸려나가는 콘텐츠로 무장한 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책읽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오르게 도와주는 역할까지하는 알라딘에 존재하는 알라디너들은 '권력'을 지향하진 않지만 분명히 어떤 '힘'을 가진 분들임을 확인한 자리였다고 생각한다.
과연 어떤 모임이 될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존재가 힘'임을 보여주신 바람돌이님, 향기로운님, 배혜경님, 석란1님, 드팀전님, 달팽이님께 감사드리게 된다. 자주 보고 싶어질는지도 모르겠다. (님들, 다시 번개 치면 또 오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