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 친구, 제8의 힘 나의 첫소설 1
카티 리베이로 지음, 스테판 지렐 그림, 정미애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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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주는 느낌은 우울, 차분, 냉정, 원칙, 이성, 폐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내 느낌이다. 이 책은 하드커버에서의 느낌과 책표지에 그려진 어떤 남자아이의 모습이 파란색과 잘 어울린다. 삽화도 파란색 한 가지로 모두 그려져있다. 변기앞 바닥에 앉아 뭔가 끄적거리고 있는, 어른도 어린아이도 아닌 남자아이, 이 아이가 '나만의 비밀 친구'라고 하는 친구는 누구일까?

'카티 리베이로'라는 프랑스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 <운수 나쁜 날>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책을 만나 썩 기쁘다.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고 힘 있다. '삶은 비극이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동화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만나는 첫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마냥 아이라고만 하기도 뭣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보면 불쑥 커보이는 아이가 또 어느 날 보면 마냥 어린애 같기도 한 모순을 거의 날마다 겪으며 아이들을 만난다. 뭔가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보면 역시 순진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는 아이다.

작가는 주인공 남자아이를 화자로 하여 1인칭 시점을 쓰고 있다. 이 아이는 곧 6학년이 될 아이지만 또래보다 생각이 많다. 평범한 아이들은 겪지않을지도 모를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다. 부모의 이혼을 혼자 감당해야하고 아빠의 새 여자친구와 그 가족을 안아들여야하며, 뇌성마비 여동생까지 동생으로 맞아들여야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온갖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감수해야하며 그들의 말장난을 참아내야하며, 종내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한다.

남자아이는 냉소적이다. 비관적이기도 하며 다소 고립적이다. 가령 이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위로 차원의 말, '행운'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쓴웃음을 날린다. 삶은 비극이다, 라는 말은 조리스 루이가 '허풍을 떨려고 지어 낸 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내 스스로 얻어 낸 결론일 뿐이'다. 사람들이 두 가정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된 거라고 위로할 때, 아이는 속으로 '내 가족은 둘로 불어난 게 아니라 둘로 쪼개진 거'라고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라고 또박또박 (속으로) 따진다.

아이가 마음의 변화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겪게 되는 과정이 참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아빠와 새여자친구 클레르 아주머니와 그의 식구들과의 3주간의 바캉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그래서 원제는 'vacances force 8'이다. 7월 1일부터 21일간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 아이의 내면은 두려움에 일렁이기도 하고 노을빛을 보고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섬세한 심리 그리기가 돋보인다. 그 소중한 일기장을 읽는 독자는 어쩌면 그리 특별나지도 않는 소재의 이야기에 이상하게도 점점 매료된다.

아름다움을 가장한다거나 군더더기 같은 설명이나 묘사도 없고 간결체의 문장이 산뜻하다. 아이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인물들이 가식없이 내뱉는 말과 생각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최대한 상대를 생각하여 자제하는 말 속에 따뜻한 유머가 살짝 감추어져있다. 특히 새 가족이 될 할머니, 할아버지의 길지 않은 대사 속에 연륜이 묻어나는 따스함이 보여 대가족의 장점이 이런 데서 오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하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성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입양이란 말이 책 속에 나오는데, 이것의 풀이가 남다르다. '안토닌 할아버지는 나를 입양했다고 말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가 나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이 가족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다시 말해 '아빠도 제임스의 가족에 입양된 셈'이다. 혈연중심의 가족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올리비아를 혐오하던 처음의 생각은 가족들이 그 아이와 함께 하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조금씩 바뀌어간다. 나중엔 이야기듣기를 좋아하는 올리비아를 위해 이야기도 들려주고 휠체어로 산책도 도와준다. 절대 동생으로 인정하려하지 않던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운 게 장점이다. 제임스와도 만화책으로 허물이 없어져 하마터면 조리스는 비밀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뻔 했다. 수퍼마켓에서 만난 고약한 '할망구'에게 반드시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제임스와 조리스의 결의는 웃음이 훅훅 난다.

책제목인 '나만의 비밀친구'는 일기장이다. 그것에 주인공이 붙인 이름이 '제 8의 힘'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제 8의 힘'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예의 그 복수전이다. 못된 할망구를 위한 복수전의 행동방침을 세우고 이름을 그것으로 정했다. 그때 제임스가 그 이유를 묻는데, 조리스는 그저 '우리 식구가 모두 여덟 명이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3주간 떨어져 있는 엄마, 아빠와 헤어진 엄마를 내내 그리워하던 주인공은 이제 클레르 아주머니를 비롯한 식구들 모두를 정말 식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지 뭔가.

그럼 엄마는? 친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못내 아쉽고 슬픈 일이지만, 아이는 새로운 가족을 '밀물과 썰물'처럼 받아들이려한다. 삶은 비극이라기 보다, 엄청나게 많은 밀물과 썰물이 지나가고 또 닥쳐오는 것임을 아이는 이제 조금 이해한다. 작가는 어쩜 밀물과 썰물로 삷의 슬픔과 기쁨을 이야기할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끌린다.

그래도 '가끔은 어른들의 삷을 다 알 수 없을 때가 있는' 주인공은 아직 아이다. 3주간의 휴가가 끝나고 떠나기 하루 전 날, 조리스는 제임스에게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만다. 제임스도 일기를 쓰게 되어 나중에 서로 일기장을 바꿔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를 위해 처음 써 놓았던 일기들을 뜯어낼 수 있는 스프링 노트를 일기장으로 고른 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말이다. 지난 날 써놓은 일기를 지금 보면 유치한 말과 생각들에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이 누구나 있을 법하다. 조리스도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꽤 괜찮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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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지에 새로 온 아이 아이북클럽 30
레나테 아렌스 크라머 지음, 최진호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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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알게 하고 싶다는 뇌스틀링거의 생각처럼 이 동화의 작가는 힘든 주제를 들고 나왔다. 동화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꿈처럼 이상적인 세계에 빠졌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말을 끄내기 두려운 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가정학대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지만,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신고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난 경우는 전체의 0.5%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얼마전 어떤 아버지는 6세 남자아이를 학대, 폭력하였고 어떤 젊은 엄마는 어린 아이들을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집에 가두어두고 방치한 것이 이웃의 신고로 드러났다. 직접 폭력 못지않게 방임이나 착취도 아동학대이고 그렇게 학대를 받아온 아이들은 부정적인 자기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된다.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부모 아래 형제자매와 그런대로 단란하게 사는 클리오나 같은 아이와는 너무나 판이한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다. 술로 날을 보내며 가족을 학대하는 아버지, 방임하는 어머니, 어린 두 동생들에게 벗어나 무작정 도망을 한 패트라는 11살 여자아이는 자상한 보육원 원장의 눈에 띄어 말끔하게 단장한 아름다운 보육원에서 살게된다. 특별히 친한 여자친구는 없고 정이 많고 생각이 많은 클리오나는 새로 온 이 아이를 편견없이 대하지만, 돌아오는 건 섬뜩한 느낌뿐이다. 

어느 날 초콜릿 사건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도사리고 있던 패트가 클리오나에게 희미한 웃음을 처음으로 보인다. 이 일을 시작으로 둘은 조심스레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고요한 파도를 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주위 친구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말, 너무 다른 환경에 대한 서로의 이해부족,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작고 큰 갈등을 낳는다.

패트의 이 말은 참 가슴 아프다. "우리같은 아이들을 보살펴야하는 보육원 원장님에게 보살펴할 가족이 왜 있는거지."  패트가 유독 믿고 따르며 좋아하는 어른은 돌리 원장님인데, 세살짜리 아들과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패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질투심에 몸을 떤다. 패트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던 게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보살핌이란 말이 생각났다. 

클리오나는 패트의 마음의 돌을 꺼내려하는 꿈을 밤새도록 꾼다. 패트는 이 돌로 인해 눈물샘마저 메말라버린 아이이다. 하지만 나중에 패트의 영어작문시간 글에서 드러나듯, 자기고백적인 글로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돌을 들어내고 패트는 잊고있었던 눈물을 흘릴 줄 안다. 좋아졌다는 걸 뜻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패트는 길고긴 어둠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 빠져나오려한다. 패트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클리오나의 인내심 있는 노력이 전편에 잔잔하게 펼쳐진다.

패트의 언니 로레인은 보지도 못한 패트에 대해 보육원에 사는 아이라는 말만으로 심한 편견을 드러낸다. 그런데 로레인이 패트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계기가 전혀 없고 심정적으로라도 납득되는 부분이 없는 게 흠이다. 학급의 아이들경우도 그까진 아니라도 다소 비약이 되어있다. 패트가 쓴 작문이 긴장감이 있어 재미있다는 이유로 단번에 패트의 글이 학교신문에 실리고 아이들은 패트에 대한 호감을 보인다. 결말 부분, 패트의 생일파티에 반아이들 모두 초대되고 여지껏 있었던 갈등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되는 것처럼 그려진다. 역시 아이들이라 맑은 심성으로 그린 것인지, 아니면 이런 해결이 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바람인지, 좀 개연성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특별한 악의로 따돌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맞다면 이런 행복한 결말도 그려봄직하다. 그래도 아이들을 믿고싶은 게 내 맘이기도 하다.

패트의 아빠처럼 학대를 일삼는 사람을 격리수용하는 체벌만이 해결의 방법일까?, 하는 나의 질문에 6학년 아이들 몇이 한 답변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격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그보다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해야한다고, 이웃에서도 무관심보다는 적절한 신고를 해야한다고.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동떨어진 소재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는 동화이지만,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에 촛점을 두어 이야기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갖가지 왜곡된 모습에 눈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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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2004-05-22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는 행운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사람들은 고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지요. (당시 고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않좋았다고 하죠. 헐~) 그러나 지금 어린이 학대와 고아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하나, 부정적인 관념들이 깨끗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나저나 토탈 7777입니다. 배혜경님은 이벤 안하세요?(이벤을 노리는 이파리~)


프레이야 2004-05-2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이파리님. 저라도 편견을 싹 지우고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보단 그래도 생각하며 고민하는 거리를 던져주는 일이 필요하겠죠, 아이들에게요. ^^ 근데 토탈 7777 전 몰랐네요. 행운의 숫자가 넷이나!! 이벤트라, 어떤 게 좋을까요? 귀띔해주세요. ^^

밀키웨이 2004-05-2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저는 참 많이 웁니다.
그 아이들이 불쌍해서요.
그 부모들이 미워서요.
그런데요, 놀이터에 나갔을 때 입성이 꼬질꼬질하고 뭔가 좀 경계심을 갖게 하는 아이가 주위에 있으면 차력형제가 그 아이를 피해서 놀았으면...그렇게 바라게 됩니다.
또 유치원 친구들 중에서도 엄마아빠가 맞벌이를 하시는 집보다는 엄마가 집에 계시는 친구와 놀았으면~~하고 바랄 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마음입니까....

프레이야 2004-05-2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웨이님, 우리는 참 이율배반적이죠. 저도 그래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죠. 언어폭력도 아동학대에 포함된다니, 더욱 신경써야겠어요. ^^
 
어휴, 나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하라구? 아나스타샤 5, 미국동화
로이스 로우리 지음, 최덕식 옮김, 신혜원 그림 / 산하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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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헤아리며>라는 감동적인 동화를 쓴 로이스 로우리가 일곱편의 시리즈물로 아나스타샤를 주인공으로 재미있는 동화를 썼는데, 이 책은 그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아나스타샤는 사춘기의 예민하고 영리한 여자아이이다. 생각도 많고 성장의 이런저런 과정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다. 미국동화이지만 우리에게도 그리 거리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머가 깃든 통통 튀는 대사가 재미있고 일상의 이야기이지만 흐름도 빠르다.  

이 책의 삽화는 <하느님의 눈물>에서도 그림을 그린 신혜원님이 그렸다. 담고 있는 생각거리는 얕지 않지만 계몽성을 강조하지 않는 위트있고 가벼운 터치의 이야기처럼 삽화도 마치 만화처럼 그려놓았다. 쓱쓱 진한 연필로 그려 놓은 것 같이 어릴 때 본 명랑순정만화의 분위기이다. 아나스타샤는 올빼미안경을 쓴 13살(중1 정도)의 여자아이이고 세살 난 남동생(우리나이론 다섯 살쯤)이 있다. 시인이자 영미문학교수인 아빠와 화가인 엄마 사이에서 별 어려움없이 평범한 보통의 가정에서 산다.

이 다섯번째의 이야기에서는 엄마가 대부분 담당하는 집안일을 아나스타샤가 몸소 겪고 그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는 내용이 주된 흐름이다. 중간에 끼어있는 또다른 이야기는 이성에 대한 것이다. 남자친구에게서 첫번째 데이트 신청을 받고 낭만적인 꿈을 꾸고 열정적인 저녁준비를 했다가 어설프게 꿈이 깨어지는 비애(?)도 겪는다. 그와 동시에 아빠도 첫사랑의 아름다운 환상이 깨어지는 배신감을 겪고 마음의 열병이 몸에 나타난건지 수두를 앓는다. 아빠의 첫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고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5학년 아이들도 이 부분을 그리 이질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 아나스타샤의 이런저런 생각들이 꽤 그럼직하고 실감난다. 이름으로 특이한 별명을 지어 부르고 브래지어끈을 잡아당기는 남자친구들에 화가 나기도 하는 아나스타샤를 엄마는 옛날 자신의 솔직한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하며 다독인다. 솔직히 좋은 감정도 들었다고, 하지만 이젠 아무런 느낌이 없어진 나이가 돼버린 걸 엄마는 오히려 씁쓸해한다. 친구같은 엄마와 딸 사이 같다. 나도 이런 사이로 딸과 지내고 싶다.  

아나스타샤는 일을 가지고 있는 엄마가 다른 엄마들처럼 맛있는 간식도 못해주고 그외의 가사일도 얼렁뚱땅 하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겠다고 아빠와 작당한다. 엄마는 조직적이지 못해 그러니까 시간표만 짜면 모든게 해결될 거라고 득의양양하게 키득거린다. 하지만 그런 아나스타샤에게 미소만 짓고 있는 엄마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시간표대로 일이 다 되는 것도 아닐뿐만 아니라, 예기치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를 말이다.

딸 아나스타샤는 엄마의 생활과 엄마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아나스타샤에게 가정주부로서 역할을 해야하는 열흘이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엄마의 출장 때문이다. 시간표를 빡빡하게 시간대별로 짜놓고 출발하여 시작은 순조로운 것 같았지만 날이 갈수록 시간표는 예기치 못한 일로 자꾸 수정되고 생활은 거의 뒤죽박죽이다.  첫 이름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크루푸닉 가족의 시간표>로 시작하지만  대폭 수정된 '낭만적인 밤을 위한 시간표'를 거쳐, 마지막의 그냥 '집안일 시간표'에서는 '후유증이 엄청나다'고 하며 '엉엉 울었다' 라고 쓴다.

아나스타샤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로스앤젤레스에 가 있는 엄마에게 앞당겨 오라고 전화를 하고 돌아온 엄마는 엉망이 되어 있는 집안을 세 시간만에 정돈한다. 엄마의 가사일에 도움을 주는 해결책도 마련되었다. 냉동식품을 해동하기 위한 전자레인지와 지겨운 가사일에 활력을 주기 위한 '탭댄스 강습권'이 그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엄마는 해결 못하는 게 없는 놀라운 사람'이란 걸 이제 인정하고 항복한다.

탭댄스 신발을 신고 춤을 추며 2층을 오르락거리는 엄마가 아나스타샤가 보기엔 좀 '주책스러워 보였지만 아주 재미있기도' 하다.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얘기 나누며 우리 딸에게 엄마가 주책스러워보이지만 재미있을 때가 언제냐고 물어보니, 공연보러 가서 좀 오버할 때라며 환하게 웃었다. 엄마를 친구처럼 생각하는 딸이 좋다. 아나스타샤는 엄마를 이해하는 폭이 성큼 커졌다. 엄마도 똑 같은 일상에 활력소가 필요한 사람이고 가사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복병처럼 나타나는 것이 하루의 일상이고 우리의 인생 자체이다.

삶이란 그리 녹녹하게 조직적으로 엮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상치 못하는 것들의 경이로운 변종으로 나타나는 것이란 걸 더 살면 느낄 것이다. 정말 되돌아보면 계획대로 된 것이 없다. 따져보면 무엇이든 계획하고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안개속 희미한 윤곽을 부여잡고 뿌연 길을 걷다가 아주 우연한 것이 필연인 것처럼 나에게 붙박혀온 것 같다. 우리의 하루가 그러한데, 하물며 긴긴 삶이 그렇게 불확실하고 돌발적인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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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5-18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정말 제대로 준비하고 시작한 건 없는 것 같아요.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로 가고 싶어요. 계속...

starrysky 2004-05-18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시리즈입니다. 아나스타샤. ^^ 시인이자 교수인 아빠와 화가인 엄마, 사춘기에 접어든 엉뚱한 딸 아나스타샤와 천진난만 꼬마 천재 샘의 이야기가 사람을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빨아들이지요. 예전에 모아둔 시리즈가 거의 없어져 속상했는데 이렇게 다시 나왔군요. 기회 되면 사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04-05-18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arry sky님, 반갑습니다. 저도 이 시리즈 무척 좋아합니다. 산하출판사에서 나와있더군요.
님의 서재에서도 뵙기로 해요.^^

ROSE 2004-05-20 0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의 대부분의 (저를 포함해서...) 딸들이 엄마를 아니, 엄마의 생활과 답답함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그때문에 엄마와 싸우기도 하지만 결국엔 엄마를 이해하고 그래서 닮아가는 게
아닐까 하네요.....
많이 컸다고 생각하지만 엄마에겐 항상 어린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왠지 엄마한테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어지네요..........
 
마법의 설탕 두 조각 소년한길 동화 2
미하엘 엔데 지음, 유혜자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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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나도 아이에게서 물러설 줄을 안다. 큰아이가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내겐 아주 충격적인 일이 있고난 이후로 그렇다. 무슨 일로 그랬던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난 아이를 심하게 야단하였고 아이는 자물쇠가 달린 비밀일기장에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갈겨놓은 걸 그 다음날 우연히 발견했다. 빨간 필기구로 박박 신경질적으로 모나게 써놓은 글귀를 보는 순간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그날 난 나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난 어른들에게 그리 고분고분한 아이가 아니었다. 보기엔 말수가 적으니 온순한 형으로 보이지만 내부에선 불만과 비판과 내 나름의 잣대가 항상 촉수를 세우고 있었다. 나의 심기를 유독 긁은 분은 지금은 벌써 돌아가시고 안 계신 외할아버지였다. 다섯살 아래의 남동생을 편애하고 나에겐 별로 따뜻하게 대해주시지도 않았다. 내딴엔 그게 참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난 더 어릴 때부터도 엄마가 버스타고 가자고 하면 택시 타고 가겠다고 길바닥에서 딱 버티고 있기 일쑤였단다. 그래서 엄마는 살살 꼬셔서 나를 집까지 데려가서 심하게 때리곤 했단다. 한번은 우물에 빠뜨리겠다고 거꾸로 날 들고 내 고집을 꺾으려하기도 했다. 내려놓으니 난 죽는다고 펄쩍펄쩍 뛰면서 난리를 부리더란다. 고1 땐 담임선생님이 무슨 시집을 학급의 아이들 의사와는 관계없이 모두 다 사라고 하셔서 이의를 제기했다가 쓴소리를 들어야했다. 아무래도 만만한 아이는 아니었지싶다.

그래도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위험부담을 안고서도 자기가 먹겠다고 결정하는 렝켄은 나보다 열배는 착한 아이인 것 같다. 모두가 지나온 그 시절에 거대한 벽과도 같은 부모님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 한 번 안 가져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문제가 렝켄은 부모님의 큰 키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키가 좀 작았더라면 대화가 될텐데, 키가 너무 커서 말이 안 돼.'  이렇게 단순한 아이다운 발상에서 출발하여 렝켄은 환상을 경험한다. 렝켄은 마법을 쓸 줄 아는 요정을 자기 마음의 나라에 불러들인다. 빗물거리에서 사는 그 요정은 손가락이 여섯 개이다. 길다란 손가락을 깍지 끼고 앉아 렝켄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렝켄의 소원을 들어준다.

렝켄이 요정을 두번째로 찾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다. 자신의 소원대로 부모님이 성냥갑 속에 들어갈 정도로 작아졌지만 정작 기쁘기만 한 게 아니라 두려움과 슬픔이 덮쳐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고아가 된 것처럼 세상에 저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은 물론 외롭기까지 하다. 렝켄이 두번째로 요정을 찾아가는 길은 더욱 매력적이다.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 요정의 편지 한 장으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려서 그것을 따라 하염없이 뛰어가는 것이다. 바람거리로 옮긴 요정의 집은 꽁꽁 언 겨울풍경이다. 이곳의 시간은 자연의 시간과는 다르다. 12라는 숫자만 있는 벽시계안에는 수리부엉이가 있고 밤 12시 아니면 낮 12시에만 마법은 발효한다.

부모님을 되돌려놓기를 위해서 요정은 렝켄에게 힘든 결정을 스스로 내리게 한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시간을 놓쳐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렝켄은 드디서 '시간을 돌려주세요!' 라며 소리친다. 판타지의 세계에서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고 돌아갈 수 있는 현실이 있다는 건 행복하고 다행한 일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불합리한 현실이 있기 때문에 환상의 세계가 더 진실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일 게다.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은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 아이들이 한 입에 톡 집어넣기 좋아하는 각설탕 두 개가 있다. 입에 들어가면 까끌한 느낌과 달콤함이 모순되게 느껴지지만 사르르 녹으면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가.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판타지의 공간에서는 시간을 돌린다는 식의 시간장치가 가능하다.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소망은 누구든 가져봄직한 환상의 출발지점이다. 역시 미하일 엔데는 '시간'이라는 끝없는 주제를 놓지못하는 것 같다.

- 물론 그 결정은 지금 네가 이 자리에서 내려야 해.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되어 계속 그렇게 지내야 되거든.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종종 있잖아. 이해할 수 있겠지? 정말로 계속 이렇게 지내길 원하니?-

지금도 나의 어른들과 마음의 갈등을 하며 사는 나는 이 글귀가 마음에 꽂혔다. 3학년 아이들은 렝켄의 당찬 행동이 좀 심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그동안 부모님께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섭섭한 것을 표현하는 대목에선 봇물 터지듯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고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기도 했다. 역시 아이들은 착하다. 어른들의 눈이 비뚤어져있을 뿐이다.

렝켄은 환상을 경험한 후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렝켄은 부모님의 말씀을, 부모님은 렝켄의 말을 무턱대고 반대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그렇게 했'다. 나도 우리 아이들도 서로 물러나야하는 아름다운 지점을 안다. 참 많이도 전쟁을 겪고 얻은 지혜이다.

이 책은 환상적인 이야기에 걸맞게 삽화가 멋지다. 삽화가 주는 기묘한 분위기가 이야기를 더욱 극적이게 한다. 빗물거리와 바람거리의 요정의 집으로 들어가는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풍경을 담기에 지면이 부족한 것 같다. 오히려 눈을 감고 머릿 속으로 그려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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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2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죠^^, 차분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다연엉가 2004-05-12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2학년인 소현이도 서서히 반항의 몸짓이 일고 있다는 것을 느낄때가 있습니다.
아이의 말을 반대할때마다 부모의 키가 절반으로 줄여든다면 기꺼이 각설탕을 먹을 아이들이 많을 것 같네요. 리뷰를 읽고 많은 반성을 하게 합니다.^^^

BRINY 2004-05-13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이들은 착하다-그 아이들이란 몇살부터 몇살인가요.
오늘 신체검사날, 중학생 130명 상대로 시력검사 하고 났더니 힘들어 죽겠습니다. 뒤에선 죽어라 떠들면서, 나와서 시력판 읽으라고 하면 웅얼웅얼.
게다가 스승의 날 전날이라고 법석을 떠는데, 그냥 학생들이 교실 어질러놓고 낙서하고 주전부리하고 소리지르는 이벤트일 뿐이지 뭐냐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선생님, 우리가 이런 거 해줘서 고맙죠?]하고 대답을 강요하더라구요.

호밀밭 2004-05-13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하엘 엔데의 작품 늘 좋아요. 사실 이 책은 읽지 못했지만요. 전 설탕이라는 단어의 어감을 좋아해요. 단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 느낌에 딱 맞는 이름을 가졌는지 신기해요. 이 동화 언젠가는 읽어 봐야겠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달아이 2004-05-1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어느 방송에서 엄마의 잔소리란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 어떤 엄마가 그러더군요.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구요. 전 그 소리가 참 마음에 와 닿았는데, 큰애는 아닌가보더군요. 덕분에 또 짤막한 다툼극 하나를 펼쳤답니다. 이러다 우리 아이도 마법의 설탕 두 조각을 원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

BRINY 2004-05-1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 때문에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게 된다 -> 저도 맘에 와 닿는 소리여요. 지금은 애들 보내놓고, 우리반과 옆반에 한명씩 데리고 애보기하는 중입니다. 어른인 제가 참고 이해해야죠. 음음.

프레이야 2004-05-1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 아이들 때문에 맘이 좀 상하셨군요. 제 생각에도 스승의 날 없애면 좋을 것 같아요. 서로 부담도 되고, 늘 감사한 마음이야 이 날 형식적으로 하는 것보다 어느 때고 마음에서 우러날 때 할 수 있잖아요^^ 님, 이 책은 초등저학년 권장도서로 되어 있구요. 전 3학년 아이들이랑 함께 읽었어요. 한 4학년까지는 아이들, 그래도 착해요. 간혹 아닌 것 같은 아이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착하지요. 그애들 보면 내가 참 착하지 못하다는 생각 많이 하거든요. ^^

치유 2004-05-1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차분하고 좋은 글을 읽고 꼭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읽는나무 2004-05-2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밀렸던 리뷰를 몇편 읽다가....이리뷰가 마음에 와닿아 몇자 적습니다...
저와 같은 감정들을 느끼셨는지.....코멘트가 많네요..^^
많은 뜻을 내포한 책같단 생각을 하며....님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키가 크고 수수한 새라 아줌마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이영아 그림, 아기장수의 날개 옮김 / 고슴도치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이독자를 긴장과 흥분으로 몰고가는 동화에 비해 이런 식의 동화를 아이들은 지루해한다. 나른한 일상과도 같은 스토리 전개에는 특별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대사도 없이 전체가 잔잔한 바다의 물결이듯 하나의 고요한 리듬을 타고 넘는다. 그 바다에 몸을 맡기고 누우면 햇살이, 바람이 부드럽게 이마를 간진다. 그리고 어느새 마음은 근원 모를 충족감에 젖는다. 작은 것의 귀중함, 사소한 것들의 행복감, 서로를 기쁘게 해주려는 소소한 노력들이 사람의 마음을 참 푸근하게 만든다. 높은 파도를 타고 스릴을 느끼고 싶은 아이들은 이런 류의 동화에 매력을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문학적인 느낌을 가질 줄 알고 문장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아이라면 충분히 재미있었다고 말할 것이다.

<키가 크고 수수한 새라 아줌마>는 원제를 꾸밈없이 번역해 놓은 제목이다. 좀더 글의 분량이 길고 묘사가 많이 나오는 <초원의 집>과 비슷한 시대와 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미국개척시대의 생활이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작가가 자신의 가족사를 글감으로 하여 쓴 동화라는 점도 닮았다. 삽화는 번역하여 나오면서 그려넣었는데, 글의 내용을 좀 더 삽화로 많이 표현해도 좋았을 것 같다. 마치 외국사람이 그린 것 같다는 평을 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보아 글의 분위기와는 맞아떨어졌다고 본다.

화자는 애나라는 소녀다. 남동생과 아빠와 살며 엄마를 대신하여 집안일도 하는 야무지고 착한 아이다. 둘째를 낳은 바로 다음날 저 세상으로 아내를 보내고 집안에 늘 퍼지던 노래소리는 끊겼다. 그런 아빠가 어느날 아내를 구하는 광고를 신문에 내고 얼마 후 기차를 타고 동부해안의 메인 주에서 중부 캔사스까지 한달 예정으로 온 새라아줌마. 그녀는 노란 보닛모자를 쓰고 커다란 천 가방을 들고 왔다. 한눈에 보아도 키가 크고 수수하며 손도 크고 거칠다. 머리도 잘 땋고 목수일도 잘 한다. 특히 그녀는 노래 부르는 걸 무척 좋아한다.

광활한 들판에서 농사를 주로 하는 애나의 가족과 새라가 살아온 해안 마을의 생활 환경은 많은 차이가 있다. 가치관에도 차이가 있어 캔사스의 가족들의 메인 주의 비교적 개방적인 사고와 말을 금세 따라한다. 새라는 하루도 바다를 그리워하지 않는 날이 없다. 그런 기미를 눈치 채는 예민한 애나는 그래서 불안하다. 새라의 딸이 되기를 바라는 애나는 가엾게도 새라가 좋아하는 바다가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새라와 애나의 가족이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이 참 섬세하고 소박하게 그려진다. 제이콥씨는 별로 말이 없다. 하지만 누구보다 자상하고 상대를 기쁘게 할 줄 안다. 예전처럼 집안에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계속 울려퍼지기를 바라는 애나가 새라에게 집중하고 고심하는 심리는, 애나가 비스킷 반죽을 젓다가 손동작이 느려지기도 하고 반죽을 섞고 또 섞는 행동으로도 잘 보여준다. 인물들의 소중한 감정을 은근하고 단아하게 보여준다. 부연설명이나 장식이 없이 심리묘사의 방식이 조촐하다. 문장도 길지않고 불필요한 묘사는 거의 자제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웃의 매기 아줌마도 광고를 보고 아내가 되려고 와서 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다. 테네시가 고향인 매기는 새라에게 '어디에 살든지, 늘 그리운 것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라며 정원을 꾸밀 수 있는 납작한 나무상자와 닭 3마리를 선물로 준다. 그리움을 달래는 수단이 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새라의 마음 속 그리움의 뿌리는 언제나 바다이다. 파랑, 회색, 초록색의 3가지 색을 띠는 바다를 내내 걸어두기 위해 새라는 읍내에서 3가지 색의 색연필을 사오고 새 가족이 되는 이들의 집에는 옛노래와 함께 새 노래가 울려퍼질 것이다. 애나와 케이럽 그리고 제이콥씨도 죽은 엄마와 아내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늘 그리워하며 살아갈까.

4학년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얘기 나누며 지금 그리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거의 모두 돌아가신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난 지금 내가 그리워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다시 오지 않을 지나간 날들이라고 말하기엔 아이들에겐 이해되지 않을 먼 나라의 그리움이라 난 입을 다물고 종알거리는 아이들의 착한 눈을 응시했다.

가족은 서로 닮아가나보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최대한 배려하고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참가족일 거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도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는지. 가정의 달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의 사건들이 신문의 사회면에 끊이지 않는 요즘, 무슨무슨 날들을 형식적으로 챙기는 것보다 어느날 문득 조용히 내 가족을 위한 작은 기쁨을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바닷가 모래언덕을 그리워하는 새라를 위해 아빠가 만들어준 헛간 반 높이의 건초더미 모래언덕 같은 것처럼 말이다. 그 언덕은 이름하여 '우리의 모래언덕'이다. 네명은 점점 자신들도 미처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라는 이름으로 가족이 조심스레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은 한번 두번 문장을 되새기며 인물의 심리를 내것처럼 느끼면서 읽는 게 좋겠다. 담백해서 아름다운 문장과 잔잔한 감동을 만나는 즐거움도 신나는 사건이 펼쳐지는 이야기의 즐거움 못지않게 좋더란 걸 아이들이 느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케이럽의 이야기는 <종달새>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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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무늬 2004-05-17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바다에 몸을 맡기고 누우면 햇살이, 바람이 부드럽게 이마를 간진다. 그리고 어느새 마음은 근원 모를 충족감에 젖는다. 작은 것의 귀중함, 사소한 것들의 행복감, 서로를 기쁘게 해주려는 소소한 노력들이 사람의 마음을 참 푸근하게 만든다."
책이었다며 예쁜 색깔로 밑줄을 그어놓았을 구절입니다. 언젠가 어느 소설책을 읽어나가면서 누군가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은 것들을 보면서 참 놀란 적이 있었어요. 어쩌면 내가 그 순간 느낀 그 느낌들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해놓았을까하고요. 더욱 놀랐던 것은 책을 다 읽는 순간 그 끝에 적혀있는 코멘트 밑에 제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죠^^::
님께서 표현하신 이 구절도 혹시 예전에 제가 읽고 적어놓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제 일상의 어느 순간엔가 느낀 느낌을 너무나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놓으신 것 같아요. 저 스스로는 표현하지 못했었는데 누군가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해주는 순간에, " 맞아 바로 그거!"라고 대답하는 그런 느낌이네요.
제가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문해보지만 저 역시 쉽게 대답이 떠오르질 않네요. 분명 제 몸은 무엇인가를 목마르게 그리워하고 있는데, 제 의식이 삶의 속도에 취해 그 목마름을 망각하게 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늘 그렇듯이 잃어버려야, 그 부재를 통해서 목마름을 깨닫게 되는게 아닌지....삶의 행복이란 고통스러운 목마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얼마전에 어느 TV프로에서 독신 여자, 자녀 없이 살려는 부부, 이혼한 어머니 둘과 그 자녀들이 함께 이룬 가족에 대한 내용이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관습에 의해 형성된 가족의 틀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더군요. 님의 글에서도 그 장면들이 떠올라습니다.
한 편의 동화를 읽고 적어놓으신 짧은 글이 제게 참 많은 상념들로 울려옵니다.^^

프레이야 2004-05-17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무늬님, 님의 글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이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삶의 행복이란 고통스러운 목마름에 있는 것' 이란 님의 글이 와닿으네요. ^^

예성림 2004-05-30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달새>까지 얼마전에 읽었습니다.
작가가 그리는대로 그대로 우리는 볼 수 있고 느낄수 있는 책이죠.
격렬함도 때로는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잔잔함도 좋지요.
작가의 장식없는 문체가 많이 부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