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 친구, 제8의 힘 나의 첫소설 1
카티 리베이로 지음, 스테판 지렐 그림, 정미애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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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주는 느낌은 우울, 차분, 냉정, 원칙, 이성, 폐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상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내 느낌이다. 이 책은 하드커버에서의 느낌과 책표지에 그려진 어떤 남자아이의 모습이 파란색과 잘 어울린다. 삽화도 파란색 한 가지로 모두 그려져있다. 변기앞 바닥에 앉아 뭔가 끄적거리고 있는, 어른도 어린아이도 아닌 남자아이, 이 아이가 '나만의 비밀 친구'라고 하는 친구는 누구일까?

'카티 리베이로'라는 프랑스 작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녀의 다른 작품 <운수 나쁜 날>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책을 만나 썩 기쁘다.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고 힘 있다. '삶은 비극이다'라는 글귀로 시작하는, 동화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만나는 첫소설이기도 한 이 작품은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마냥 아이라고만 하기도 뭣한 인물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보면 불쑥 커보이는 아이가 또 어느 날 보면 마냥 어린애 같기도 한 모순을 거의 날마다 겪으며 아이들을 만난다. 뭔가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 보면 역시 순진한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는 아이다.

작가는 주인공 남자아이를 화자로 하여 1인칭 시점을 쓰고 있다. 이 아이는 곧 6학년이 될 아이지만 또래보다 생각이 많다. 평범한 아이들은 겪지않을지도 모를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다. 부모의 이혼을 혼자 감당해야하고 아빠의 새 여자친구와 그 가족을 안아들여야하며, 뇌성마비 여동생까지 동생으로 맞아들여야한다. 그리고 어른들의 온갖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감수해야하며 그들의 말장난을 참아내야하며, 종내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한다.

남자아이는 냉소적이다. 비관적이기도 하며 다소 고립적이다. 가령 이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위로 차원의 말, '행운'이란 단어에 대해서도 쓴웃음을 날린다. 삶은 비극이다, 라는 말은 조리스 루이가 '허풍을 떨려고 지어 낸 말'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내 스스로 얻어 낸 결론일 뿐이'다. 사람들이 두 가정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된 거라고 위로할 때, 아이는 속으로 '내 가족은 둘로 불어난 게 아니라 둘로 쪼개진 거'라고 '이건 아주 중요한 사실'이라고 또박또박 (속으로) 따진다.

아이가 마음의 변화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겪게 되는 과정이 참 자연스럽고 솔직하다. 아빠와 새여자친구 클레르 아주머니와 그의 식구들과의 3주간의 바캉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그래서 원제는 'vacances force 8'이다. 7월 1일부터 21일간의 이야기가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 일기장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그 아이의 내면은 두려움에 일렁이기도 하고 노을빛을 보고 슬픔에 잠기기도 한다. 섬세한 심리 그리기가 돋보인다. 그 소중한 일기장을 읽는 독자는 어쩌면 그리 특별나지도 않는 소재의 이야기에 이상하게도 점점 매료된다.

아름다움을 가장한다거나 군더더기 같은 설명이나 묘사도 없고 간결체의 문장이 산뜻하다. 아이의 성격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인물들이 가식없이 내뱉는 말과 생각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최대한 상대를 생각하여 자제하는 말 속에 따뜻한 유머가 살짝 감추어져있다. 특히 새 가족이 될 할머니, 할아버지의 길지 않은 대사 속에 연륜이 묻어나는 따스함이 보여 대가족의 장점이 이런 데서 오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가족에 대하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성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아이들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입양이란 말이 책 속에 나오는데, 이것의 풀이가 남다르다. '안토닌 할아버지는 나를 입양했다고 말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할아버지가 나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제 내가 이 가족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다시 말해 '아빠도 제임스의 가족에 입양된 셈'이다. 혈연중심의 가족개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올리비아를 혐오하던 처음의 생각은 가족들이 그 아이와 함께 하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들을 보며 조금씩 바뀌어간다. 나중엔 이야기듣기를 좋아하는 올리비아를 위해 이야기도 들려주고 휠체어로 산책도 도와준다. 절대 동생으로 인정하려하지 않던 처음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다. 모든 게 아주 자연스러운 게 장점이다. 제임스와도 만화책으로 허물이 없어져 하마터면 조리스는 비밀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뻔 했다. 수퍼마켓에서 만난 고약한 '할망구'에게 반드시 복수할 것을 다짐하는 제임스와 조리스의 결의는 웃음이 훅훅 난다.

책제목인 '나만의 비밀친구'는 일기장이다. 그것에 주인공이 붙인 이름이 '제 8의 힘'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제 8의 힘'이란 이름을 붙인 곳은 예의 그 복수전이다. 못된 할망구를 위한 복수전의 행동방침을 세우고 이름을 그것으로 정했다. 그때 제임스가 그 이유를 묻는데, 조리스는 그저 '우리 식구가 모두 여덟 명이지 않느냐'고 대답한다. 3주간 떨어져 있는 엄마, 아빠와 헤어진 엄마를 내내 그리워하던 주인공은 이제 클레르 아주머니를 비롯한 식구들 모두를 정말 식구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지 뭔가.

그럼 엄마는? 친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못내 아쉽고 슬픈 일이지만, 아이는 새로운 가족을 '밀물과 썰물'처럼 받아들이려한다. 삶은 비극이라기 보다, 엄청나게 많은 밀물과 썰물이 지나가고 또 닥쳐오는 것임을 아이는 이제 조금 이해한다. 작가는 어쩜 밀물과 썰물로 삷의 슬픔과 기쁨을 이야기할 생각을 했는지..., 그녀에게 끌린다.

그래도 '가끔은 어른들의 삷을 다 알 수 없을 때가 있는' 주인공은 아직 아이다. 3주간의 휴가가 끝나고 떠나기 하루 전 날, 조리스는 제임스에게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만다. 제임스도 일기를 쓰게 되어 나중에 서로 일기장을 바꿔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를 위해 처음 써 놓았던 일기들을 뜯어낼 수 있는 스프링 노트를 일기장으로 고른 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말이다. 지난 날 써놓은 일기를 지금 보면 유치한 말과 생각들에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이 누구나 있을 법하다. 조리스도 그렇게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꽤 괜찮은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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