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 초록도깨비 낮은산 작은숲 15
김중미 지음, 유동훈 그림 / 도깨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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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괭이부리말아이들, 로 유명한 김중미의 네번째 동화이다. 초등 4학년 정도에서 보면 괜찮을 것 같다. 이 동화는 특별히 일기형식을 하고 있다. 4남매가 쓴 일기를 세째 상미가 모아서 정리한 것처럼 해놓았다. 1990년 첫째 상윤이의 일기를 시작으로 2001년 막내 상희의 일기로 맺는다. 그 일기모음의 처음과 끝은 주인공 상미의 글로 시작하고 맺는다.

상미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버리는 것을 싫어하고 뭐든 추억 되는 것을 갖고 있기를 좋아하고 대학의 국문학과를 가고 싶어하는 아이다. 상미네의 가난은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굴레이다. 상미네가 멀리 진도에서 인천의 이 달동네로 이사오게 된 후로 이들에게 가난은 벗어버릴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세상은 이들에게 그리 만만치 않고 이들의 꿈과 희망은 실날같아서 위태하다. 가난 때문에 이들의 꿈은 좌절되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한다.

상미네가 정 붙이고 살게 된 이곳은 비가 오면 우산을 활짝 펴고 다니기에도 비좁은 골목들이 수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있고, 재래식 공동 화장실에서 아침마다 볼일을 보려고 줄을 잇고, 갯벌이 있는 바다는 쓰레기와 기름이 둥둥 떠 다니고 물도 더러운 '똥바다'이다. 상미네가 이사 오기 전,  물 맑았던 진도 앞바다에 비하면 이곳의 환경은 구역질 나는 곳이다. 그래도 이들 남매는 아파트가 없는 '우리동네'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적어도 가난 때문에 기 죽지 않고 떳떳하게 정을 나누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철거명령에 따라 생계를 잇고 있는 일자리를 막무가내로 내어놓아야 하고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하는 슬픔이 있는 곳이지만 이들에게도 한 가닥 희망이 있다.

맞벌이를 하니 우리도 금방 부자가 될 것이라고 위안하는 엄마의 목소리, 볕이 들지 않는 다락방에 아빠가 생일선물로 내어준 작은 창문 때문에 그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기분. 스티로폼 상자에 상추랑 고추모종을 심고 채송화 꽃씨를 심는 마음. 이런 것들로 희망이라는 가는 실의 꼬리를 잡고 이들은 오늘도 서로 부대끼며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옛날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4학년 아이들에게 이런 현실은 지금도 버젓이 있고 이런 환경에서 너희들 같은 아이들이 살고 있다고 말해주니까, 놀라는 기색이었다. 처음엔 장난으로만 받아들이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던 아이들도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작은 방법들을 이야기해보자고 유도하는 데서는 조금 진지한 대답들을 내어놓았다. WE  START 운동과 결부하여 이들처럼 가난의 굴레를 지고 사는 이웃에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의 삽화를 담당한 분이 지금도 일하고 있는 기찻길옆 작은학교, 라는 작은 공부방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실제글이 두편 나오는데, 읽어보면 너무 솔직해서 배꼽을 조금 잡아야한다. 고스톱 관찰일기, 라는 일기는 진솔해서 재미나다. 그외의 일기는 작가가 쓴 것일테지만 여기 사는 아이들의 실제 일기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왔을 것이다. 작가는 지금도 괭이부리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짧지 않은 세월 모아둔 4남매의 일기를 죽 읽다보면 가슴이 조금은 답답해져올 것이다. 11년을 넘기면서도 상미네의 가난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이 책을 함께 읽은 4학년 아이들은 이들의 가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일자리가 없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되지않겠냐고 반문했다. 이들에게는 다른 곳으로 가서 방을 구해 살 만한 돈이 없다고 하니까, 버스를 타고 왔다갔다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용돈을 아껴 모아서 이 사람들에게 갖다주자는 아이가 있어, 일자리를 만들어준다거나, 기술교육을 무료로 해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유도하느라  입에 침이 말랐다.  

가난은 우리 사회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구체적인 도움과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숙제가 아닐까싶다. 물론 가난한 자 그들 스스로 해야할 문제들도 있지만 더 가진 자들이 좀더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다면 이 동화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봐야하겠다.  이런 류의(가난을 소재로 한)  동화를 요즘 아이들은 그리 달가와하지 않지만, 힘든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서로 기대어 살며 희망과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는 미덕을 가슴으로 느끼면 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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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나온 할머니 보림문학선 2
이바 프로하스코바 지음, 마리온 괴델트 그림, 선우미정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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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집 작은공주는 일곱살이다. 생일이 빨라 또래보다 성숙하고 덩지도 크다. 내 안의 어린아이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것 같은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니, 문득 아이가 보살피는 또 다른 머요할머니들이 생각난다. 아이는 인형들을 종류대로 데리고 학교놀이도 하고 목욕도 시키고 재우고 먹인다. 바쁜 척 하며 저랑 잘 놀아주지 않는, 아니 노는 방법을 잘 모르는지도 모르는 이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나름대로 찾은 방식이다. 아이는 동생을 하나 낳아달라고까지 하며 보살피고 애정을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을 바란다.

<알에서 나온 할머니>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점을 건드린다. 아이건 어른이건 외로움을 느낀는 건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지못해서라기보다 사랑을 줄 대상이 옆에 없을 때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아낌없이 손자에게 사랑을 퍼부어주는 대상이다. 우리 아이는 할머니손은 요술손이라고 하며 뭐든 요구하면 다 들어주시는 할머니랑은 무조건적 사랑을 나눈다.

머요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와는 다르다. 말도 아이처럼 서툴고, 체격도 아주 작고, 목욕하는 법도 모른다. 게다가 장난을 좋아하고, 노래도 잘 하고, 인사도 잘 하고, 뛰어오르기도 잘한다. 수영은 본능적으로 잘 한다. 질문이 많아서 엘리아스가 이름을 머요할머니라고 지었다. 분명 아이들과 너무나 닮아있다. 아이이긴 초등1학년 엘리아스도 마찬가지이지만 엘리아스에게 머요할머니는 마냥 보살피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가르쳐주어야할 것도 많은, 동생 또는 아기같은 존재이다. 엘리아스가 하는 욕까지도 어눌한 발음으로 따라하며 재미있어하는 머요할머니는 천진난만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각자의 일로 아이랑은 전혀 놀아줄 시간을 못 내는, 아니 안 내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엘리아스는 고립되어있다. 외로워하는 엘리아스는 다른 친구들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4명이나 있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단 한 명만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 애 앞에 어느 날 등장한 것은 노오란 알이다. 그 것을 깨고 나온 것은 새가 아니라 할머니. 하지만 이 할머니는 새처럼 작지만 분명히 날 수 있는 날개를 등에 달고 있다. 이 날개가 엘리아스의 기분을 날 수 있게 하고 엄마 아빠의 생활까지도 다른 방향으로 날 수 있게 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머요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날기 연습을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할머니의 비행은 날로 익숙해진다. 어느 주말 연날리기 대회가 열리고 학생들 모두 직접 만들고 그린 연으로 대회에 참가해야한다. 못 생긴 연이라도 좋다. 엘리아스는 바람을 타고 높이 나는 연을 꿈꾸지만, 연은 좀처럼 날아오르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그런데 연이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뭇살을 잡고 끌어올리고 있는 머요할머니의 파란앞치마를 본 사람은 엘리아스뿐이다.

자신이 그렇게 노심초사 돌보았던 머요할머니는 자신의 못 생긴 연을 날아올려주는 바람같은 존재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흩날리는 머릿결로도 느껴지는 바람. 잡을 순 없지만 코로 스미는 그 향기로 느껴지는 바람. 발걸음이 무거울 때 뒤에서 소리없이 등을 밀어주는 바람. 내가 아무리 날아오르려고 발버둥쳐도 바람이 그 손을 내밀어 도와주지 않는다면 이뤄내기 힘든 것처럼, 바람은 엘리아스의 외로움과 자괴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의 생활을 좀 다른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엄마 아빠는 이제 자신의 일에서 눈을 돌려 아이를 볼 줄도 알고 아이랑 느긋한 토요일 오후시간을 보낼 줄도 안다. 엘리아스는 어떤가. 머요할머니에게 퍼주었던 애정을 이제 소중한 우정으로 간직하며 대상을 기다릴 줄 알만큼 성큼 자라있다. 머요할머니는 연과 함께 저멀리 날아가버린 것이다. 엘리아스를 희열의 꼭대기에 올려놓고 그 순간 날아가버렸다. 하지만 커가면서 언젠가 엘리아스가 또다시 외롭고 지치고 쓸쓸할 때면, 할머니는 엘리아스에게 남기고 간 2.5cm구두를 신으러 돌아올 것이다. "안녕~,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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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일리아드 - 고슴도치가족 5
호메로스 원작, 닉 맥커티 지음, 빅터 앰브러스 그림, 박향주 옮김 / 두산동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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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를 아이들이 읽기 쉬운 만화로 먼저 만난 아이들이 많아 일리아드의 스토리는 익히 알고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을까, 내심 초조해하며 책을 내주었다. 5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뒷이야기를 지어보았다.

이 책은 트로이아전쟁의 뒷부분이 생략되어있기 때문이다. 목마를 이용해 굳건한 트로이아성 안으로 잠입한 그리스병사들이 일순간 트로이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은 여기엔 없다. 작가가 의도한 바인지 번역하여 책으로 엮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 부분을 아이들과 다르게 지어보는 것으로 호메로스다운 상상력을 자극해보는 것도 좋은 활동이 될 것 같다.

어떤 아이는 불을 질러 트로이아군들이 다 나올 때 일제히 공격하겠다고 했고, 또 다른 아이는 장사꾼으로 변장하여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목마가 아닌 다른 수단을 생각해보던지, 이 전쟁에서 주로 개입하는 신들 이외에 또 다른 신을 의외의 개입을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어린이 일리아드>는 아킬레우스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아킬레우스의 성격을 급하고 불같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후반으로 가면 프리아모스왕이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왔을 때 아킬레우스는 예상보다 넉넉한 모습을 보인다. 신의 지시에 따라서일까. 아니면 프리아모스왕이 가져온 진귀한 전리품 때문일까. 아니면 그리스연합군 최고 장수다운 면모가 보이는 것일까. 반면에 오디세우스는 좀 간교한 성격으로 묘사해놓았다. 헥토르의 용기는 프리아모스왕의 진정한 용기에서 벋어나온 것으로 되어있다.

실제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트로이아 전쟁은 상권을 찬탈하기 위한 무역전쟁이었다고 하는데, '일리아드'에서는 신들이 인간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고 있다. 전세도 신들이 어떻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이쪽 저쪽으로 기운다. 아킬레우스가 프리아모스왕에게 하는 말처럼 그런 '인간은 정말 불쌍하다'.

이 책은 번역상의 헛점인지 잘 모르겠지만, 스토리를 읽어나가기에 박진감이 그리 느껴지는 편은 아니다. 아이들이 읽기에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흐름이 좀 부드럽지 않아서가 아닌가싶다. 아니면 원작의 장엄한 문체를 최대한 살려보려는 노력에서 그런 것이 아닐까싶다.  

이 책에서는 신들이 인간들의 모든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드러내며, 인간들의 싸움을 조롱하고 내려다보면서 조종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이며 우리의 운명이 그러한 것이라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라는 생각을 한번쯤 던져줄 수 있겠다. 수동적이기보다 오히려 능동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간구하고 대응해나가는 것이 순리에 따른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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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2004-10-23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잖아도 영화와 함께 읽을만한 책을 찾고 있는데(5학년), 일단은 서점에 가서 대충 봐야겠네요.

프레이야 2004-10-23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더 고학년이거나 청소년이라면 이윤기가 옮긴 국민서관의 <트로이아 전쟁과 목마, 일리아드 이야기>를 권하고 싶네요. 원작은 로즈마리 셧클리프입니다.

책읽는나무 2004-10-2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이 로즈마리 셧클리프라구요?....^^
며칠전에 셧클리프의 다른 동화책을 한권 읽었던터라 눈이 번쩍 하네요..ㅎㅎ

전 머리가 나빠서인지...읽고 나면 매번 사람들 이름과 지역명을 잊어버리곤 하여...그리스 로마신화나 전쟁이야기의 책은 아무리 읽어도 기억나는게 없네요..ㅡ.ㅡ;;
저도 나중에 한번 다시 찾아서 읽어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04-10-2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셧클리프의 어떤 동화였는지 궁금해지네요, 책읽는나무님, 안녕하셨어요?
우울과몽상님도 잘 지내고 계셨지요?^^

책읽는나무 2004-10-2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안녕하셨어요?
<태양의 전사>를 읽었더랬습니다..^^
 
강아지가 된 앤트 보림어린이문고
베치 바이어스 지음, 마르크 시몽 그림, 지혜연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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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쥐기에도 딱 좋은 이 얇은 동화책은 7-8세 정도의 아이들이 혼자 읽기에 무리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4-5세 정도로 뵈는 동생과 8-9세 정도로 뵈는 형이 나누는 알콩달콩한 대화가 엿듣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 어른들의 마음으로 보면 언제나 아이들의 마음세계는 미개척지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연구대상(?)이지요. 한없이 이기적인 것 같다가도 아량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것 같다가도 뭔가 꽉 찬 열매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심리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듬고 예리하게 짚어내는 이런 류의 동화는 계속 등장하나 봅니다.

네 가지의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이 동화책은 앤트와 그의 형이 나누는 대화가 전부입니다. 형의 친구와 엄마가 아주 잠깐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곤 두 사람의 일상적이며 짧은 호흡의 대화 속에 갖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주로, 앤트가 말하고 '내'가 대답하는, 탁구공 튀는 것 같은 대화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짓게 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는 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형이 보는 동생 앤트에 대한 것이자, 형제에 대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요구가 많고 질문이 많은 남동생 앤트가 있습니다. 겁도 많은 앤트는 자기가 곰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겁이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존심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형이 그러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외부의 악당('나'의 친구)  앞에선 의기투합할 줄도 알고,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도 둘이 닮아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어른들이 간섭하고 중재하는 일이 없네요. 이 점이 마음에 듭니다. 아이들 스스로 부딪히고 느끼고 마음이 자라는 것이겠지요.

이층방의 유리창을 밤에 똑똑하고 두드리는 사람에 대한 앤트의 상상력과 농구선수가 그려진 삽화 앞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창가에 서 있는 나무만큼 키가 큰 사람!  사실 앤트는 형의 간절한 말을 받아들이고 나무에게 잘 자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잠을 들이지만, 그 농구선수처럼 다리가 긴 사람에게 말 걸고 싶은 눈치입니다. 꿈에서라도 악수를 나눌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머러스한 삽화는 또 이어집니다. 앤트는 소방관이 불을 끌 때 도끼로 무찌른다고 생각하는 아이랍니다. 도끼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앤트!  앤트와 '나'는 장래의 꿈이 같습니다. 그것은 커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지요.  '어른'이 된 다음에 어쩌면 소방관이 될지도 모르고, 농부나 의사, 선생님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여기서 '나'는 참 넉넉한 형입니다. 결코 잘난 체 하지도 않고 면박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동생의 꿈을 한껏 희망적으로 치켜세워줍니다. 어릴 때는 어른이란 존재 자체가 다다라야할 꿈이었지 않나요. 엄마를, 아빠를, 선생님을 막연히 우러러보며 닮고 싶어하기도 하구요. 그렇게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다 될 것 같았던 생각, 아주 오래 전 우리들의 생각이기도 하면서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품음직한 생각입니다.

<나무는 좋다>의 마르크 시몽의 삽화는 묘사 없이 간결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한결 풍부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삽화가 없다면 이 책은 그저 밋밋한 반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짙은 윤곽에 부드러운 채색, 간결한 선만으로도 개성있는 표정을 살려놓은 인물이 여백의 하얀색과 함께 산뜻합니다.

마지막 삽화는 형이 앤트의 낮은 어깨에 한팔을 두르고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이 때 앤트는 고개를 한껏 올려 형을 쳐다보고 있네요. 아마도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주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 봅니다. 발에 끌리는 그림자가 하나로 이어지며, 질문이 많은 동생과 넉넉한 품을 지닌 형의 이야기는 내일로 이어집니다. 이들에게는 하루도 신기하지 않은 날이 없을 것 같네요. 내일은 또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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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넉넉한 형이 되고도 싶고, 넉넉한 형을 키우고도 싶습니다.

프레이야 2004-09-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저도 맏딸이자 맏딸이랑 사는 사람이라... 넉넉한 형도 되고 싶고 희원이를 넉넉한 형으로 키우고도 싶어요.^^ 게다가 맏며느리까지... 어쩔 수 없이(^^)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겠네요.

2004-09-21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4-09-2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맞사옵니다. 근데 님 실명은? 궁금해지네요.
 
피난 열차
헤미 발거시 지음, 크리스 K. 순피트 그림, 신상호 옮김 / 동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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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이 '피난 열차'라고 하면 그게 무슨 기차인지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흔 셋의 연세로 지금도 건강하신 내 아버지는 피난열차에 몸을 싣고 남으로남으로 내려왔던 이야기를 내 어릴 적에 종종 들려주셨다. 이 책에서처럼 정말 열차의 지붕에까지 빽빽히 올라앉아 가는데 바로 뒤에서는 폭파음과 함께 한강다리가 끊어지더란다. 걷고 또 걸어서 발가락은 동상이 걸리고 발바닥 허물도 몇번이나 벋겨지더란다. 그렇게 부산까지 왔다고 하셨다. 나도 그런 이야기들을 무슨 옛이야기처럼 듣고 자랐는데 하물며 요즘 아이들에겐 무슨 무용담쯤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피상적으로 알고만 있는 6.25전쟁과 휴전상태, 그리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 정신적 상실감 같은 것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않다. 이 책은 아이들이 겪지 못했던 과거 우리의 아픈 역사를 좀더 생생하고 실감나게, 좀더 피부에 와닿게 묘사하여 보여주려는 노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잊히기 쉬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아이들에게 잘 접근시켜주는 것이 어린이책이 지향해야 길 중 가장 의미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글쓴이와 일러스트레이터 모두 한국과 관련이 깊은 사람들이다. 상상으로 꾸민 이야기도 들어있지만 대부분 작가의 가족들이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썼다. 작가는 이 책의 주인공인 수미의 딸이다. 수미는 외할머니로부터 피난열차의 아픈 기억을 듣는다. 수미가 '나'를 내세워 독백을 하듯이 서술하고 있는 편안한 문체에 아이의 외로움이 묻어난다.

엄마는 앞날을 설계하기 위해 군대를 가고, 외할머니와 꽃마을에 사는 수미는 4시면 지나가는 기차를 놓치지 않고 꼭 본다. 멀리 떠나있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수미의 어깨를 다독이며 외할머니는 이산가족의 아픔으로 문드러졌을 속내를 살며시 꺼내 들려준다. 긴긴 이야기 속에 우리역사의 혼란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다. 정든 고향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것을 종용하는 전쟁. 4식구는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 숲길을 숨죽여 걷고 암흑의 강을 위태로운 배을 타고 건너고 또 하염없이 걷는다.

드디어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하는 가족의 운명 앞에서 할아버지와 가족들은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하고, 외할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때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수미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이야기는 잦아든다.

절정의 장면은 물론 피난열차가 그려진 장면들이지만, 장면마다 수채화로 그린 삽화가 무척 강한 인상을 준다. 풍부하고 사실적인 인물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삽화를 그린 사람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었다한다. 그리고 작가와는 부부관계인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와 한국의 선조께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가 인상적이다. 아프고 부끄러운 우리의 과거를 이렇게 똑바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만든 이 책은 정말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인물들은 모두 우리랑 닮은 얼굴이고, 외할머니의 주방은 서양식으로 꾸며져있지만 가스레인지 위에는 뚝배기가 놓여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단란했던 시절의 그 당시 우리네 집안 세간살이와 옷매무새도 세심하게 잘 그려놓았다. 비단 보료에 자개문갑, 신선로, 청자백자, 아름다운 병풍 그리고 고운 색감의 한복을 볼 수 있다. 북한군이 서울로 밀려오고 가족이 지하실에 숨어있는 장면에서도 한 켠에 작은 항아리가 놓여있고 가족은 돗자리위에 서로 기대어 앉아있다.

첫번째 삽화와 가장 마지막의 삽화를 보고 있으면 멀리서 기적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맑고 시원스런 수채화 풍경 안에 길다란 기차가 오랜 세월의 긴긴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기적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 쳐 들리지 않으면 이제 기차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수미는 그렇게 그려본다. 외할머니는 모진 세월의 바람을 따라 그리움일랑 모두 떠나 보내고, 엄마를 보고 싶다고 뾰루퉁해있는 손녀를 위해 숄을 덮어 감싸준다.

이 책의 원제는 Peacebound Train 이다. 평화를 손에 쥐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닐게다. 표어처럼 남발하는 단어이지만 정작 그게 얼마나 소중한 단어인지,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 가슴으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이 한편의 생생한 이야기는 집안사정으로 엄마와 당분간 헤어져 지내야하는 수미의 아픈 마음과 할머니의 이야기를 '기차'라는 매개물로 하나로 엮어낸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쉽게 풀어서 나눠볼 수 있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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