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지에 새로 온 아이 아이북클럽 30
레나테 아렌스 크라머 지음, 최진호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동화를 통해 어린이들이 현실을 제대로 알게 하고 싶다는 뇌스틀링거의 생각처럼 이 동화의 작가는 힘든 주제를 들고 나왔다. 동화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꿈처럼 이상적인 세계에 빠졌다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말을 끄내기 두려운 현실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가정학대는 여러가지 양상이 있지만,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신고에 의해 표면으로 드러난 경우는 전체의 0.5%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있다고 한다. 얼마전 어떤 아버지는 6세 남자아이를 학대, 폭력하였고 어떤 젊은 엄마는 어린 아이들을 쓰레기장을 방불케하는 집에 가두어두고 방치한 것이 이웃의 신고로 드러났다. 직접 폭력 못지않게 방임이나 착취도 아동학대이고 그렇게 학대를 받아온 아이들은 부정적인 자기상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된다.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부모 아래 형제자매와 그런대로 단란하게 사는 클리오나 같은 아이와는 너무나 판이한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다. 술로 날을 보내며 가족을 학대하는 아버지, 방임하는 어머니, 어린 두 동생들에게 벗어나 무작정 도망을 한 패트라는 11살 여자아이는 자상한 보육원 원장의 눈에 띄어 말끔하게 단장한 아름다운 보육원에서 살게된다. 특별히 친한 여자친구는 없고 정이 많고 생각이 많은 클리오나는 새로 온 이 아이를 편견없이 대하지만, 돌아오는 건 섬뜩한 느낌뿐이다. 

어느 날 초콜릿 사건으로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도사리고 있던 패트가 클리오나에게 희미한 웃음을 처음으로 보인다. 이 일을 시작으로 둘은 조심스레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고요한 파도를 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주위 친구들의 편견어린 시선과 말, 너무 다른 환경에 대한 서로의 이해부족,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작고 큰 갈등을 낳는다.

패트의 이 말은 참 가슴 아프다. "우리같은 아이들을 보살펴야하는 보육원 원장님에게 보살펴할 가족이 왜 있는거지."  패트가 유독 믿고 따르며 좋아하는 어른은 돌리 원장님인데, 세살짜리 아들과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패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질투심에 몸을 떤다. 패트는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였던 게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서 원하는 것은 가르침이 아니라 보살핌이란 말이 생각났다. 

클리오나는 패트의 마음의 돌을 꺼내려하는 꿈을 밤새도록 꾼다. 패트는 이 돌로 인해 눈물샘마저 메말라버린 아이이다. 하지만 나중에 패트의 영어작문시간 글에서 드러나듯, 자기고백적인 글로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던 돌을 들어내고 패트는 잊고있었던 눈물을 흘릴 줄 안다. 좋아졌다는 걸 뜻한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패트는 길고긴 어둠의 터널을 이제 막 벗어나 빠져나오려한다. 패트가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게 클리오나의 인내심 있는 노력이 전편에 잔잔하게 펼쳐진다.

패트의 언니 로레인은 보지도 못한 패트에 대해 보육원에 사는 아이라는 말만으로 심한 편견을 드러낸다. 그런데 로레인이 패트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계기가 전혀 없고 심정적으로라도 납득되는 부분이 없는 게 흠이다. 학급의 아이들경우도 그까진 아니라도 다소 비약이 되어있다. 패트가 쓴 작문이 긴장감이 있어 재미있다는 이유로 단번에 패트의 글이 학교신문에 실리고 아이들은 패트에 대한 호감을 보인다. 결말 부분, 패트의 생일파티에 반아이들 모두 초대되고 여지껏 있었던 갈등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되는 것처럼 그려진다. 역시 아이들이라 맑은 심성으로 그린 것인지, 아니면 이런 해결이 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작가의 바람인지, 좀 개연성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특별한 악의로 따돌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맞다면 이런 행복한 결말도 그려봄직하다. 그래도 아이들을 믿고싶은 게 내 맘이기도 하다.

패트의 아빠처럼 학대를 일삼는 사람을 격리수용하는 체벌만이 해결의 방법일까?, 하는 나의 질문에 6학년 아이들 몇이 한 답변은 그래도 희망적이다. 격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그보다는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화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도록 해야한다고, 이웃에서도 무관심보다는 적절한 신고를 해야한다고.  <3번지에 새로 온 아이>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동떨어진 소재라서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는 동화이지만,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에 촛점을 두어 이야기 나눌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갖가지 왜곡된 모습에 눈을 두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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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2004-05-22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리 앤과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는 행운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사람들은 고아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지요. (당시 고아에 대한 인식은 매우 않좋았다고 하죠. 헐~) 그러나 지금 어린이 학대와 고아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고는 하나, 부정적인 관념들이 깨끗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그나저나 토탈 7777입니다. 배혜경님은 이벤 안하세요?(이벤을 노리는 이파리~)


프레이야 2004-05-2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이파리님. 저라도 편견을 싹 지우고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보단 그래도 생각하며 고민하는 거리를 던져주는 일이 필요하겠죠, 아이들에게요. ^^ 근데 토탈 7777 전 몰랐네요. 행운의 숫자가 넷이나!! 이벤트라, 어떤 게 좋을까요? 귀띔해주세요. ^^

밀키웨이 2004-05-2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저는 참 많이 웁니다.
그 아이들이 불쌍해서요.
그 부모들이 미워서요.
그런데요, 놀이터에 나갔을 때 입성이 꼬질꼬질하고 뭔가 좀 경계심을 갖게 하는 아이가 주위에 있으면 차력형제가 그 아이를 피해서 놀았으면...그렇게 바라게 됩니다.
또 유치원 친구들 중에서도 엄마아빠가 맞벌이를 하시는 집보다는 엄마가 집에 계시는 친구와 놀았으면~~하고 바랄 때도 있습니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마음입니까....

프레이야 2004-05-2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웨이님, 우리는 참 이율배반적이죠. 저도 그래요.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죠. 언어폭력도 아동학대에 포함된다니, 더욱 신경써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