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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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중에 질로 못 믿을 인간이 말로 묵고사는 종자와 글로 묵고사는 종자들이다.... 문화건달이 어떤 종자들인고 하면, 명함을 대문짝만학 박아가꼬 댕기기는 하제마는 도대체 뭘 하는지 알쏭달쏭 정체불명인데다가 이리 보면 그냥저냥 하루하루를 닝기는 날건달도 겉고 저리 보면 반 사기꾼처럼도 보이는 인간들을 통칭 문화건달이라 안 카나.-89쪽

인간은 약간 오염이 되어 있어야 편하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그는 지극히 순정한데다가 대단히 이기적이기도 하다. 애인의 조건으로서는 최악인 셈이다.-91쪽

사랑은 말이다. 가루비누랑 똑같은 기다. 거품만 요란했지 오래 쓰도 못 허고, 생각 없이 그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마 살 속의 기름기만 쪽 빼묵고 도망가는 것도 글코, 그 물이 담긴 대야를 홱 비아뿌만 뽀그르르 몇 방울의 거품이 올라오다가 금세 꺼져뿌는 기 똑 닮었다.-119쪽

나이나 적나. 옛날로 치마 환갑노인이다. 느들, 아무 데나 침을 질질 흘리고 댕기미 오도방정이란 방정은 다 떠는 저런 환갑노인 본 적 있나? 맨 농약 친 쌀만 묵고 살아서들 그런가, 요시로는 아고 어른이고 철딱서니가 없어놔서 큰일이라카이. 말세가 따로 있나, 어른 없는 시상이 말세지.-122쪽

오십대는 삼, 사십대와는 다르게 늙는다. 급속도로 늙는다. 게다가 지나간 세월에 대한 회의나 갈망을 체념한, 무방비한 상태로 생이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개운치는 않지만 넉넉하다고밖에 표현할 길 없는 의지가 얼굴 전면에 펴져있다. 그래서 더욱 미련없어 보인다.-138쪽

이 사람아, 땅 위의 사랑이란 그런 것이지.
영화나 소설 속에서처럼 리얼리티가 심각하게 결여될 때에만 사랑은 그 이름값으로 간신히 아름답네. 자네도 아다시피 사랑은 시작이 퍽이나 중요하다네.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는가에 따라 사랑의 형태가 결정지어진다네. 그러하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 셈이네. 놓쳐버린 꼴이지.-156쪽

식물들에게 물을 줄 때에야 난 겨우 나의 본색을 되찾네. 물을 줄 때마다 나는 느끼네. 식물들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할 위엄이 있다고. 거목은 한 알의 씨앗이 숲에 떨어진 그 순간부터 살아왔으니 얼마나 오랜 세월을 말없이 견뎌왔겠나. 그에 비하면 내 사랑은 하찮다는 생각이 드네. 발부리에 걸리는 돌이나 잡풀처럼. 그러나 진정 불쌍한 것은 그 하찮은 것들 아니겠나.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끓는 마음이 아니겠나. 그 마음을 들킬까봐 안절부절못하는 또다른 마음이 아니겠나.-163쪽

줄기와 잎이 빽빽이 들어찬 대숲은 밤새들이 몸을 숨기고 잠들기에 좋단다. 대숲에는 댓잎이 흔들리는 소리, 때까치 우는 소리가 끊이질 않으니 소리 공부를 하기에 더없이 좋지. 바람 속의 대를 본 적이 있더냐. 가만한 바람에도 잎새는 흔들려. 는실난실 앞새를 따라 줄기도 기껍게 나부끼지. 거센 바람이라도 몰아칠 양이면 우는 듯 갈구하는 듯 나무 밑동까지 전신으로 흔들리지 않더냐. 어떤 춤사위에 비할까. 이렇듯 대숲은 공부도 되지만 지나가는 밤새조차 마다 않고 품는 넉넉함을 본받아 기방에 온 손도 그처럼 품으라고 옛부터 기방 뒤뜰에는 대를 즐겨 심었나니.-183쪽

우리가 말하는 운명은 기대와 노력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우연하게 형성되는 거라고. 이해할 수 있겠니? 우리 같은 인간을 옴쭉달싹 못 하게 옭아매는 운명이라는 것이 실은 튼튼한 고리와 고리로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우연에 의해 이리저리 왔다갔다할 수 있게끔 느슨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190쪽

말이 통하지 않는,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인들이 일본 유곽에서 어떤 일을 했겠니? 그들은 유곽에서도 가장 밑바닥 생활을 했어. 수출산업의 역군? 기생의 역사에 있어서 그처럼 가혹한 시기는 없었다. 돌아보면 야만의 시대였지. 나는 그 모든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여전히 두 눈을 부릅떠야만 했어.-193쪽

꽃이 진다. 오마담이 우뚝 걸음을 멈춘다. 꽃이 지고 있다. 오마담은 돌아보지 않는다. 눈을 감고 다만 등으로 듣는다. 보지 않아야 꽃 지는 소리가 들린다. '파'음으로 떨어지는 꽃은 낮은 가지에 핀 꽃이다. 봄꽃이나 가을꽃보다 여름꽃 지는 소리가 잘 들리고 아침이나 낮보다 해질녘에 잘 들린다. 바람이 눅고 습도가 높은 날 운이 좋으면 뒤란에서 계면조 음계로 지는 꽃들을 만나기도 한다.-199쪽

모든 예술은 하나로 통한다. 소리가 그러하고 춤이 그러하다. 나뭇가지에서만 놀면 재가 승하게 되고, 재가 승하면 생명력이 길지가 않아. 나무의 가지만 보지 말고 몸통도 보아야 하느니. 그렇다고 뿌리까지 볼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라. 많고 적음은 곧 하나거든. 뿌리까지 봐버린 예인들은 단순하게 변하고 말아. 단순하다는 건 초월의 의미도 있지만 물기 없이 쪼그라들었다는 뜻이기도 해.-203쪽

타박네는 영준이로 말미암아 자신의 몸이 숭고하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영준이를 보듬고 젖을 물릴 때 모유뿐만 아니라 타박네의 배와 가슴, 몸을 이루는 뼈와 영혼까지도 즙이 되어 영준이의 입 속으로 흘러드는 것만 같았다. 젖이 홀쭉해질수록 가슴속이 시원했다. 내어주는 기쁨이 그토록 큰 것일 줄이야. 퉁퉁 불었던 젖이 비워지고 다시 채워지는 과정들이 말할 수 없이 신비하게 느껴지고 몸의 한 기관에 불과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가슴과 자궁을 찬찬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230쪽

허무니 절대고독이니 운운하는 이들은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머리나 신념에 기대지 않고 몸으로 사람과 자연에 가까워지면, 오직 몸으로 말을, 사랑을, 삶을 익히면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몸을 타고 내면으로 스며들어 영혼 속에 새겨집니다. 그래서 나는 정신보다는 몸을 신뢰합니다. 몸으로 사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그 몸이 되어 보질 않고서야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어찌 알겠습니까.-235-236쪽

그런 삶도 있으려니, 그런 사랑도 있으려니 하면 그뿐. 도덕이나 규범도 규정짓기 나름이고 사랑도 규정하기 나름 아니겠소....... 왜 하필이면 이 세상에 기생으로 나왔나, 내가 내게 묻지 않듯이 난 한시도 기생이 아닌 적이 없었소. -236-237쪽

손을 공중에서 무상하게 떨구어 가을 낙엽 지듯 꺾는 춤사위를 '낙엽사위'라고 한다. 낙엽사위는 가슴속의 시름을 쓰다듬어 울게 하는 손짓이어야 한다. 무겁게, 애통하게. 독하게 맺힌 기운을 풀어주는 춤. 사랑이 그리워서 쫓아가 잡고, 잡을 듯 말 듯 잡지 못하고 아프게 돌아설 때 춤에 무게가 실린다. 한의 무게, 생의 무게를 몸에 실어서 추는 춤이 살풀이다. 살풀이는 교태나 모양만으로 출 수 있는 춤이 아니다.-103쪽

'서랍이 많은 사람'은 부용각의 기생들에겐 하나의 기호, 또는 꿈으로 인식되는 말이다. 서랍이 많은 사람이 되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짜고 누군가는 발가락이 구부러지도록 춤을 추는 것이다.-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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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0 1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2-10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 점심 저녁을 맛난 걸로 먹었어요. 수술하고 나면 당분간 잘 못 먹을테니.. 통증이 전혀 안 느껴지니 실감을 못하긴 하나봐요.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고 그랬어요. 속으론 많이 떨릴 거에요. 워낙 낙천적인 사람이라 주위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그래도 안쓰럽지만 잘 될 거에요. 님의 기도대로 되리라 믿습니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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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대상을 미학적으로 판단하는 데서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기준 이외에 숭고함 the sublime 이라는 범주를 끌어들임으로써 미학의 역사에 획기적인 새 장을 열었다. 이것이 저 유명한 그의 세번째 저서 <판단력 비판>을 이끌어가는 핵심 내용 중 하나다.-31쪽

숭고는 반드시 절망감, 불쾌감, 고통,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들을 통과해서 도달하게 되는 안도감, 쾌적함, 쾌감, 기쁨의 정서를 뜻한다.-32쪽

독일의 유태인 여성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권위의 가장 강력한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웃음'이라고 말했다.-33쪽

진정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주체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타인에 대한 '판단중지' 상태를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져야 한다.-60쪽

타자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은 상대의 힘, 가령 유령성 같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타자성 자체에서 오는 것이라 해야 한다. 요컨대 동일자들의 폭력도 우선은 타자성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셈이다. ... 타자성 앞에서 최초로 작동하는 코드는 '권력'이다 ... 개방, 포용, 연대, 제휴 등은 이 폭력이 조율되고 조직되고 배치되는 세련된 형식들에 지나지 않는다.-88-89쪽

공자도 <논어>에서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는 길은 망집을 끊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공자가 지적하는 네 가지 망집은 意 (어리석은 뜻), 必 (꽉 붙잡혀 떨어지지 못하는 자세), 固 (꽉 막힌 태도), 我 (자기 자신에만 몰입해 있는 자세)등이다.-127쪽

'신은 죽었다' 여기서 신은 기독교나 이슬람의 신이 아니다. 물론 부처나 다른 종교의 초월자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뿌리 혹은 상기의 원천이 되는 저 이데아계의 모든 것을 말한다.-148쪽

우리의 삶은 때로 진저리치며 잊고 싶은 기억들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니체는 우리에게 그런 것들까지 껴안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현재의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을 넘어서는 초인" 사상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149쪽

졸린 머리로는 자는 것과 깨어 있는 것이 혼돈스럽듯이 잠이 모자란 탓에 우리가 원칙과 변칙, 준법과 탈법을 이토록 난마처럼 마구 뒤섞어놓고 있는 것은 아닌가.-188쪽

개인이든 국가든 불가피하게 법의 바깥에 나서 있으면서 통쾌하면서도 정의로운 보복을 바랄 경우 그 당사자는 먼저 양심이 던지는 이런 질문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한다. '받은 만큼만 되갚고 있는가?'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려면 당사자의 기억은 온전해야 하고 역사는 바로 서 있어야 한다.-202쪽

'있는 것'은 '있음'과 다르며, 달라도 본질적으로 다르고 엄청나게 다르다. ...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그래서 마치 없는 것같이 보이면서도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간섭하고 이끌어가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가 반드시 오고야 말 테니까.... 간절한 마음, 겸허한 사랑이 '있음'에 다다르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지 않겠는가.-244쪽

서로의 차이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는 결혼이란 결코 부부가 완전히 일심동체로 되는 과정이 아니다. 반대로 그 차이를 조화롭게 지켜나가는 기나긴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247쪽

역지사지에는 이해력과 상상력과 판단력이 동시에 필요한 것이다. 여기에는 순서가 있다. 우선은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헝클어진다면 아무리 상대를 그 처지에서 이해하려 노력해도 상대의 처지에서 세계를 바라보며 그의 입장을 공감하는 차원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252쪽

당연히 내가 모두와 모든 것과 완전하게 같아져버린 동이同而 의 상태에서 조화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조화를 위해서는 차이, 어긋남, 비켜섬, 불일치, 요컨대 다름이 필요한 것이다. 조화만일까. 사랑도 결국은 이 차이에서 시작되는 감정이다.-255쪽

우리가 아름다운 것들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이 우리에 의존해 있다. .... 고대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왜 모장과 여희를 보면 새는 달아나고 물고기는 물 밑으로 숨는가?" 새나 물고기가 갖고 있는 주관의 경험 형식으로는 당대 중국으 최고 미인인 이들을 아름답게 만들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264쪽

철학자 파이어아벤트는 <시간 죽이기>라는 자서전에서 "예술은 모두 왼손에서 탄생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상징적인 말이다. 훌륭한 예술가들이 모두 왼손잡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왼손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정통, 원리, 규칙, 주류, 본질, 근거 등에 저항하는 아웃사이더를 의미한다. 예술은 이미 만들어지고 틀 지워진 것에 양떼처럼 순종하는 정신이 아니라 그것을 거부하는 저항 정신에서 태어난다고.-264쪽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영화에서 마리오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본능적이고 단순하고 직접적인 의식이 섬세해지고 복잡한 성숙된 의식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 깃들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과정이 어디서인가 허무하게 멈춰설 수 있다. 우리는 그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276쪽

과정 인간은 삶이 A와 B 사이에 놓이는 과정 가운데 있다고 믿는다. 그는 과정 바깥에 있는 어떤 것들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도중에 멈춰 서서 머뭇거리고 서성거리고 심지어 방황하는 것조차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법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삶이기 때문이다.-284쪽

표현만이 메시지인 게 아니라 '매체도 메시지다'(마셜 맥루한)

소통이란 쌍방 간에 말과 뜻, 마음과 의지가 오고가는 것이다. 거부의 뜻이 오고가는 것도 일종의 소통이며, 이것은 단순한 '거부'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296쪽

'글은 손으로 써야한다' 손은 단순히 글쓰기를 수행하는 신체의 일부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머리를 굴리느라 휘어져 버리기 전에 솟구쳐오르는 언어들을 다침 없이 드러내주는 글쓰기의 진정한 주체다. 손이 머리에 복종하고 만다면 글에는 반드시 어떤 억지가 끼어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머리가 손에 복종하면 가슴에서 솟구치는 언어를 지킬 수 있다.-298쪽

'아들'을 지킨 뒤에 '아버지'들은 떠난다. 떠나는 '아버지'가 향하는 목적지는 '근원'이다. 그 '근원'은 단순한 조국도 고향도 아니다. '아들'을 위해 마지막 무기를 사용해 버린 '아버지'의 자리, 그것은 곧 죽음이다. '아버지'는 결국 '아들'을 위해 죽는다.-302쪽

언어는 실재의 논리적 그림이어서 뜻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언어 게임 안에서 특정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갖게 된다. 요컨대 언어 게임에서의 쓰임새가 곧 그 언어의 의미다. 그러므로 의미는 그 게임이 이뤄지는 방식에 따라 다채롭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어너게임이 제멋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고 있으며 그 규칙은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고유한 '삶의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307쪽

비유컨대 세상은 휘어진 유리 대롱 같다. 대나무 젓가락처럼 곧은 것들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다. 호박 엿가락처럼 적당히 휘어지고 구부러지고 유들유들해야 들어설 틈이 보이는 것이다. 근원적인 폭력은 세상 안에 살아가는 특정한 인간들의 사악함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세상 자체의 구조에서 생겨난다. 말하자면 곧게 뻗은 것들에게는 휘어진 유리 대롱 그 형태 자체가 곧 폭력이라는 것이다.-320쪽

사랑은 휴대전화를 눌러대거나 기도하거나 마술을 부리는 게 아니다. 상대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이다.-329쪽

인식은 나를 알고 상대를 알고 나와 상대가 함께 얽힌 종횡의 맥락들을 아는 것이다. 반성은 특히 그것을 흘러간 시간의 지평 위에 되돌려 놓고 보는 것이다. 인식과 반성이 결여될 때 우리의 사랑은 도구적 사랑, 쾌락적 사랑으로 굴러떨어질 위기에 시나브로 내몰린다.-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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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02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3쪽을 보니 장미의 이름이 생각납니다. 웃음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안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겠죠.

프레이야 2006-12-02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그래요. 장미의 이름 2권에서 유사한 내용이 나오죠. 웃음이 비틀어서 선사해주는 통렬한 쾌감이요.. 권위를 허무는 웃음이 두려웠음이구요^^

야클 2006-12-0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거 어려운 책 아닌가요? 칸트,한나 아렌트,공자... -_-+

마태우스 2006-12-02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저도 무지 재밌게 읽은 책이어요.

비로그인 2006-12-02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제가 댓글달고 다른 곳에 다녀온 사이 분량이 늘어났군요. 혹시 요술쟁이세요?

프레이야 2006-12-0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님/ 그게요, 네 칸 쓰고 나면 칸 추가를 해서 쓰다보니 그래요 ^-^

프레이야 2006-12-11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감사합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이브 엔슬러 지음, 류숙렬 옮김 / 북하우스 / 2001년 4월
절판


그래서 난 깨닫게 되었어요. 신음소리는 원하는 것을 당장에 얻지 못하고 참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놀랐을 때 터져나오는 신음소리가 가장 진실하다는 것도. 신음소리는 그렇게 당신 속에 숨겨져 있는 신비스러운 곳으로부터 터져나오며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로 말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신음소리가 사실상 그 언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124쪽

처음에는 나를 거기 계속 잡아두게 만드는 약간의 떨림이 있었지. 그리고 그 떨림은 지진으로, 수천 수만 개로 갈라지는 겹겹의 폭발로 이어졌어. 그 지진은 빛과 침무으로 이루어진 시원의 공간으로 나를 안내했어. 음악과 무지개 빛깔과 순수와 열망으로 가득찬 새로운 세상을 나에게 열어주었지.-81쪽

거기 털이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것은 마치 꽃잎 주변에 이파리들이 있는 거나 집 주변에 잔디밭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만일 보지를 사랑하려면 거기에 있는 털도 같이 사랑해야 돼.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서 사랑할 수가 없는 거지.-39쪽

보지에 대한 나의 이해가, 내 손녀딸 콜레트가 태어나기 전에는 경이로운 무엇이었다면,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를 본 이후에는 숭배로 바뀌었습니다.-138쪽

나 거기 서 있었네.
그녀를 바라보며,
태고의 동굴 그녀의 보지는 갑자기 커다랗고 둥근,
맥박치는 붉은 심장이 되었네.

심장은 희생할 수도 있다네.
여자의 보지도 그렇다네.
심장은 용서할 수도 재생할 수도 있다네.
심장은 모양을 바꾸어
우리를 안에 집어넣을 수도 있다네.
자신을 확장시켜 우리를 밖으로 내놓을 수도 있다네.

우리를 대신해 고통을 느낄 수도,
우리를 대신해 확장할 수도,
우리를 대신해 죽을 수도 있다네.-143쪽

나는 어린 소녀들이 공책에 하트를 그리고, 심지어 그들의 하트에 '나'(I)라고 써 놓는 것을 보고 '아이들마저 이 원시적인 모양이 자신들의 몸을 닮았기 때문에 자석처럼 끌리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19쪽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됩니다.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기 쉽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고 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입 밖에 내어 말하기로 했습니다.-22쪽

그러나 당신이 그 말을 수백 번 혹은 수천 번 말한 다음에는 오히려 그것은 당신의 말이고 당신의 몸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당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당신은 갑자기 깨달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전에 느꼈던 당황이나 수치심 같은 것은 당신의 욕망을 잠재우고 당신의 야망을 지우기 위한 억압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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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1-30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괜찮은 책입니다. 저도 읽어 봤는데 은은한 향기를 뿜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잘 읽으시고 좋은 리뷰 부탁드립니다. 밑줄 긋기에 있는 글을 또 읽으니 새롭네요.

행복희망꿈 2006-12-0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읽어 보고 싶네요.

프레이야 2006-12-0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리뷰를 쓰자면 뭔가 고백을 하게 될 것 같은 책입니다. 아직은 용기가 없는 전 두려워지는 책이지만 그 두려움을 당당히 털고일어서야한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리고 향기로운 책이구요.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감동입니다.

행복희망꿈님/ 권하고 싶어요 ^^

푸하 2006-12-1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읽고 싶어지는 책이네요. 그리고 저도 쓰고 싶은 내용을 못 쓰는 경우가 많아요.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잠시 옆길로 돌아가는 방법으로 '무명'(말하자면 네이버 익명댓글의 형식으로)으로 손 가는대로 쓰고 싶기도 해요.
 
무서록 범우 한국 문예 신서 13
이태준 지음 / 범우사 / 1999년 12월
품절


사람의 울음소리... 새들의 그것보다 얼마나 불유쾌한 소리인가!

죽음을 저다지 치사스럽게 울며불며 덤비는 것도 아마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죽음의 주위는 좀더 경건하였으면 싶었다.-18쪽

산, 그는 산에만 있지 않았다. 평지에도 도시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나를 가끔 외롭게 하고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은 일종의 산이었다.-22쪽

자연은 신이다. 이름 없는 한 포기 작은 잡초에 이르기까지 신의 창조가 아닌 것이 없다. 신의 작품으로서 우리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그러한 졸작, 그러한 미완품이 있을까?-25쪽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은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28쪽

차라리 눈보다 입보다 더 몇 배 고마운 것이 발이다. 어떤 때는 돌뿌리를 차고, 어떤 때는 가시나 그루에 찔리고, 찬물에, 풀숲에, 늘 먼저 들어서며 뱀에게도 먼저 물리는 것이 저 발이 아닌가!-32쪽

생각하면 돌은 동양인의 놀라운 발견이다. 돌을 그리고 돌을 바라보고 이름까지 즐겨 돌로 부른 동양 예술가들의 심경은, 찰나적인 육체에 붙들린 서양인의 그것에 비겨 얼마나 차이 있는 존경함인가!-35쪽

그러나 그도 잠시 꺼지는 석양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고요히 바라보면 지나가는 건 그저 바람이요 구름뿐이다. 있긴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는 것, 그런 것은 생각하면 이런 옛 성만도 아닐 것이다.-42쪽

가을꽃들은 아지랑이와 새소리를 모른다. 찬 달빛과 늙은 벌레 소리에 피고 지는 것이 그들의 슬픔이요 또한 명예이다.-45쪽

인생의 외로움은 아내가 없는 데, 아기가 없는 데 그치는 것일까. 아내와 아기가 옆에 있되 멀리 친구를 생각하는 것도 인생의 외로움이요, 오래 그리던 친구를 만났으되 그 친구가 도리어 귀찮음도 인생의 외로움일 것이다.-49쪽

책은 세수를 할 줄 모르는 미인이다.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 덮어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로 돌아가는 인종忍從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62쪽

먼저 자신을 알면 모든 일에 있어 현명한 일이다. 작품은 개인의 뿌리에서 피는 꽃이다. 평론가는 여론에 무서움을 탈 경우가 많으리라. 그러나 작가에겐 여론이 어쩌지 못할 것이다. 자기를 한번 정확하게 진단한 이상은 자기의 것을 자기의 투로 써서 천하에 떳떳이 내어놓은 것이다.-65쪽

내가 불안을 갖는 평자는 작품을 가능성이 무한한 감성으로 느끼려 하지 않고 다만 고정된 개념만으로 정리하는 평자다.

작가의 욕심으로는, 평론가는,
첫째 창작에 다소 경험자일 것,
둘째 인생관에 남의 것도 존중하는 신사일 것,
셋째 개념보다는 감성에 천재이기를 바라는 것이다.-70쪽

감식은 모든 비평의 기초일 것이다. 문학도 감식에 어두워선 작자와 작품의 정체를 포착치 못할 것이다. 비평가가 읽기만 하고 얻기 쉬운 것은 애매한 인상일 것이다. 한번 그 작품을 모사, 베껴본다면 그 작품은 그 평가評家에게 털끝만한 무엇도 가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모방에 이처럼 미덕의 일면이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94쪽

잃어버리면 울지 않고는, 몸부림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작품을 써야 옳을 것이다.-105쪽

'내 문장'을 쓰기보다는 될 수만 있다면 '그 작품의 문장'을 써보고 싶다. 우선은 '그 장면의 문장' 부터 써보려한다.

아마 조선문단 전체로도 이대로 3년이면 3년을 나가는 것보다는 지금의 작품만 가지고라도 3년 동안 퇴고를 해놓는다면 그냥 나간 3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단이 될 것이라 믿는다.-109-110쪽

그러다가도 그 소낙비 같은 변조와 정열! 더구나 그 열이 또한 급행열차와 같이 지나가버린 뒤의 밤중의 적막, 연정처럼 비등沸騰하고 연정처럼 냉각하고 연정처럼 고독한 것이 '미스 말라리아'다! 그의 스피드, 그 스피드로 냉각지대와 염열지대의 비행. 그리고 나중의 빈 그라운드와도 같은 적막, 이것은 병을 앓았으되 한 연정과 한 스포츠를 게임하고 난 것과도 흡사하다.-119쪽

매화란 고운 꽃이기보다 맑은 꽃이요 달기보다 매운 꽃이라 그러므로 색 있는 것이 그의 자랑이 못 되는 것이요 복엽이 그에게는 무거운 옷이라 단엽백매를 찾으러 꽃이 피기 전부터 다닌 것이 도리어 탈이었던지,......

절개란 무릇 견디기 어려움에서 나고 차고 가난한 데가 그의 산지라 인정이니 생활이니 복이니 함도 진짜일진댄 또한 고절의 방역을 벗어나 찾기는 어려울 줄 알러라.-138쪽

자동차를 몰아 '호텔'로 가듯 그것이 아니라 죽장망해竹杖芒鞋로 산사를 찾아가는 심경이 아니고는 고전은 언제든지 써늘한 형해일 뿐, 그의 따스한 심장이 뛰어주지 않을 것이다. 완전히 느끼기 전에 해석부터 가지려 함은 고전에의 틈입자임을 면하지 못하리니 고전의 고전다운 맛은 알 바이 아니요 먼저 느낄 바로라 생각한다.-142쪽

시대가 오래다 해서만 귀하고 기교와 정력이 들었다해서만 완상할 것은 못 된다. 옛물건의 옛물건다운 것은 그 옛사람들과 함께 생활한 자취를 지녔음에 그 덕윤이 있는 것이다.

고완 취미를 돈 많은 사람이나 은자의 도일거리로만 보는 것은 속단이다. 금력으로 수집욕을 채우는 것은 오락에 불과한 것이요, 또 제 눈이 불급하는 것을 너무 탐내는 것도 허영이다. 직업적이어선 취미도 아니려니와 본대 상심낙사(완상하는 마음과 즐거운 일)란 무위와 허욕과 더불어서는 경지를 같이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157쪽

고전이라거나, 전통이란 것이 오직 보관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죽음'이요 '무덤'일 것이다. 우리가 돈과 시간을 들여 자기의 서재를 묘지화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청년층 지식인들이 도자를 수집하는 것은, 고서적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나타내야 할 것이다. 완상이나 소장욕에 그치지 않고, 미술품으로, 공예품으로 정당한 현대적 해석을 발견해서 고물古物 그것이 주검의 먼지를 털고 새로운 미와 새로운 생명의 불사조가 되게 해주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정말 고완의 생활화가 있는 줄 안다. -163쪽

가장 즐거운 것은 천진하게 마음 속에서부터 이쪽을 신뢰하며 쏠리도록 내어미는 어린이의 손이다. 이것은 마치 동물의 앞발과 같아 전적으로 친애의 표시기 때문이다.-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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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6-2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anks to!^^
 
여행하는 나무
호시노 미치오 지음, 김욱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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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모든 생명에게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또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연약함도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 가진 그 연약함 때문에 알래스카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오늘 나의 심장이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기적 중에서도 가장 큰 기적입니다. 아내가 유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역시 모든 생명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연약함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연약함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어떤 한계 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46쪽

알래스카의 태양은 수평으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적도의 노을은 수직으로 떨어집니다. 그 숭고한 낙하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62쪽

"지도가 역사보다 더 재미있어. 지도는 땅과 바다를 그린 것이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관심이 주제야. 그 땅에 누가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거든. 그래서 지도를 볼 때마다 우리가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게 됐는지 알 수 있지."-112쪽

낡은 소파와 여기저기 산더미처럼 쌓인 책,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늙은 개...... 이 책방의 가장 큰 매력은 현실과 동떨어진 낯설음이었다. 어쩌면 이런 낯설음이야말로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정신의 위로가 아닐까.-117쪽

루스 빙하는 바위, 얼음, 눈, 별로 만들어진 무기질의 고산지대이다. ... 이곳엔 문명이 없다. 대신 우주의 진정한 모습이 숨어 있다. 빙하 위에서 보내는 고요한 밤, 차가운 바람, 반짝이는 별빛...... 정보가 적다는 사실은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힘을 만들게끔 유도한다. 그래서 그만큼 인간은 더 많은 무언가를 상상하게 된다.-153쪽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친구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거대한 고래의 갑작스런 움직임 때문이 아니라 이 거대한 고래를 포용하는 대자연의 크기에 감동하고 놀란 것이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 외에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고래가 살아가는 시간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또 하나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160쪽

분명 내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고 또 아무런 영향도 받지 못한다는 점을 깨달을 때 인생에 감춰진 고독의 베일이 벗겨진다는 것을 나는 조지와의 만남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177쪽

사람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이 든다.-185쪽

"사람의 인생은 강물과 같아. 그런데 사람들은 물가를 더 좋아하지. 조금만 더 참으면 바다로 나아갈 텐데 말야."-234쪽

에스키모들은 사냥을 신성한 의식으로 생각했다. 문명인에게 사냥이 일종의 스포츠라면 에스키모들에겐 생존의 수단이다. 따라서 가장 고귀한 행위이며 자연의 은혜인 것이다.-243쪽

사냥에 성공한 에스키모들은 짐승의 영혼을 달래고, 그 희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 알래스카의 율법이다. .....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한 생명을 희생시켰듯이 자연은 나를 희생시켜 다른 생명을 살릴 권리가 있다.-245쪽

결과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라는 단어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과에 상관없이 지나온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진정 의미를 갖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다.-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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