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혼비 책에 이어 이 책을 읽고 거의 패닉, 멘붕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책 역시 신간이 아니다.
다카시의 독서일기는 2001년부터 2006년에 걸쳐 있는데 거의 10년 전의 책들이다. 요즘같은 정보화 사회에서 10년 전의 지식이란 거의 구닥다리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정말 이렇게까지 무지로 똘똘 뭉쳐 살아올 수 있었다니!!!
이미 알려진 대로 다카시는 픽션은 읽지 않는다. 무가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데, 지식을 끌어모으는 다카시 입장에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물론 다카시 역시 문학도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운명때 문이었는지 그의 적성 때문이었는지 결국은 논픽션 작가가 되었지만 만일 다카시가 쓴 소설이 나온다면 푸코의 책에 버금갈만한 대단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1부는 그의 고양이 건물에서의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으로 채워져 있고 2부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그의 독서 일기로 구성되어있다.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철학과에 입학한 그답게 그가 추천하는 책들은 철학책인데, 일반적인 관점과는 사뭇 다르다. 포퍼야 많이 알려져 있는 철학자지만 비코는 다소 생소하다. 나 역시 비코의 책은 한 권도 읽지 못했다. 비코를 언급하며 다카시는 픽션 세계와 논픽션 세계의 역전이 이루어진 계기에 대해 언급한다.
“리얼한 세계를 취재하여 글 쓰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취재가 점점 심화되어 감에 따라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세계가 눈앞에 점점 다가옵니다. 리얼한 세계의 극한 부분은 모든 의미에 있어서 통상적인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 넘는 곳에 존재합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통해 만난 철학가 베르자예프를 소개한다. 베르자예프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소설가라기보다는 위대한 사상가로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서 모든 관념은 인간의 운명, 세계의 운명, 신의 운명과 결부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자신만의 “인간의 운명, 세계의 운명, 신의 운명”론을 전개해 갔다고 한다. 다카시는 그를 만남으로써 이전과는 스케일 상에 있어서 완전히 차원이 다른 사고를 하게 되었다고. 일본 사회라는 틀에 갖혀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으로 세계 전체, 우주 전체까지 사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천년 단위의 과거와 미래, 심지어는 “신의 운명”까지 생각하게 되었다나.
그가 영향을 받은 철학가 중에 비트겐슈타인을 꼽은 것도 다소 의외였다.
사람들마다 영향을 받은 철학가의 궤적이 다를 수 밖에 없겠지.
나의 궤적은 쇼편하우어에서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 베륵손에서 라캉이었지만 그 외에 철학과 철학자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이제는 내가 읽었던 철학자들의 구체적인 사상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철학 공부 역시 다시 해야 된다는 결론. 휴.
철학을 이야기할 때에는 그나마 생소하지 않았는데, 철학에서 건너뛰자마자 정신없이 후려친다.
그가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르네 뒤보스. 교보문고에 그의 이름을 쳐봤으나 검색결과 없음. 정말 없는 걸까?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 뉴욕 전체를 돔으로 덮으려 계획했다는 버크민스터 풀러.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을 가진 과학자임이 분명한데 역시나 우리나라 번역은 없는 듯하다.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는 프리먼 다이슨. 다행히 다이슨의 책은 몇 권 번역되어 있다.
이런 식으로 그는 고양이 건물에 소장한 여러 책들을 소개한다. 철학, 과학, 역사, 종교, 심지어 만화, 춘화까지. 그렇지만 1장은 그야말로 맛 뵈기에 불과하다. 2장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운동이라고 할까?
누군가 신라가 로마 문화를 이어받았다고 말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책은 요시미즈 쓰네오의 [로마문화왕국, 신라]라는 책이고 동명의 제목으로 한국에도 출판되었지만 지금은 절판. 다카시는 이 거짓말 같은 주장이 압도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멋지게 입증되어 간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떻게 로마 문물이 다른 나라도 아니고 유독 신라에만 전해진 걸까? 아 궁금해. 2001년도에 출간된 책이라는데 또 다시 좌절. 나의 무식은 정말 끝도 없다.
궁합을 결정짓는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면? 진실일까 거짓일까? 답은 진실. 초파리의 동성애 유전자를 발견해 국제적으로 알려진 행동유전학자인 야마모토 다이스케의 [연애 유전자 – 운명의 붉은 실에 대한 과학이야기]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궁합을 결정짓는 유전자는 바로 MHC(주요조직 적합성 유전자 복합체)라고 한다. MHC타입이 비슷하지 않은 쪽끼리 더 잘 끌리고, 게다가 끌리는 정도는 임신 가능성이 얼마나 높으냐에 비례하여 강해진다고 하는데 재밌는 건 피임약을 먹으면 기호가 역전되어 MHC가 가까운 타입에 끌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맞다면 함부로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피임약을 먹이면 안 될 것이다. ‘내가 왜 이러지 모르겠네’하며 바람날 공산이 크기 때문.
피임약 때문이다.
A.V. 토르쿠노프의 [한국 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도 읽어봐야 겠다. 다카시는 “이 책을 능가하는 정치학 교과서는 없다”라는 선전문구가 허언이 아니라고 단언하는데 정작 한국인인 나는 이 책의 존재 조차 몰랐으니.
누군가가 역사의 흐름이 기후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역시나 웃어넘기겠지만 브라이언 페이건의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읽는다면 고개를 끄덕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예상한 일이긴 한데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중국은 미국을 추월해가고 있는 듯하다.니콜라스 크리소토프외 [중국이 미국 된다]도 읽어보고 싶다. (읽었다)
호퍼는 그냥 화가가 아니었던가? 그건 에드워드 호퍼였다. 에릭 호퍼에 대해서 난 전혀 몰랐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인을 어떻게 전혀 모를 수 있을까? (에릭 호퍼의 책은 다 읽었다.)
정말 무서울 것 같은 책은 모리 아키오의 [게임뇌의 공포]
게임을 자주하다보면 전두엽 기능이 퇴화된다. 전두엽 기능이 퇴화된다는 건 한 마디로 미친 놈이 된다는 건데 우리 아이들에게 이대로 게임을 하게 놔둬도 괜찮은걸까?
70인 역 성서도 읽어보고 싶다. ‘이브’라는 이름의 원래의 뜻은?
70인 역에서는 “아담은 자신의 처를 조에라 불렀다. 그녀가 모든 생물들의 어미였기 때문(이다)” 즉 이브의 이름은 ‘목숨’이라는 말 자체인 것이다.
아보리진? 호주 원주민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로봇 롤러의 [아보리진의 세계 – 드림 타임과 첫날의 목소리]를 읽는다면 우리가 가진 세계관을 더 이상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알튀세르가 살인범이었다고!!!
헤어지자는 부인의 말에 미쳐버려 자신의 부인을 목 졸라 죽였다니!
21세기의 사회가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사고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의 공저 [제국]을 읽어봐야 한다고 다카시는 말한다.
제임스 뱀포의 [모든 것이 방수되고 있다 –미국국가안전보장국의 정체]를 보면 NSA는 이미 거의 모든 통신을 도청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빅 브라더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었다.(이 책을 도저히 구할 수가 없다. 도서관엔 있을까?)
시나리오를 쓰는 입장에서 가즈하라 가즈오의 [영화는 야쿠자다]는 꼭 읽고 싶은 책 중의 하나다.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의 [깡패국가] 역시 읽어봐야 겠다. (읽었다.) 우리의 분단 현실. 5.18 광주 항쟁등, 한국사의 비극의 이면엔 언제나 미국이 있었다. 한국인들 대다수는 미국을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나라라고 생각할텐데,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원수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미국의 본질을 적확히 꿰뚫어 보는 나라는 북한밖에 없는 듯하다. 미국의 전쟁의 위협에도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버틴 나라는 리영희 교수의 말마따라 북한이 유일무이하다. 있지도 않은 폭탄을 찾겠다고 이라크를 침공한 침략자의 편에 서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점은 노무현의 한계가 아닐까?
양자 과학에 대한 책은 언제 읽어도 재밌다. 아미르 악젤의 [얽힘]은 다카시 말로는 양자 얽힘을 이해하는 최적의 책이라는데 얼른 읽고 싶어진다. (이것도 읽었네) 다카시는 물리의 최첨단은 철학이 된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양자 과학은 거의 신비학이나 영성에 가깝다.
여교황이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도나 크로스의 [여교황 조안 1,2]에서 교황 요하네스가 여자 였음을 밝히는데 다카시도 사실인 듯 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교황청에서 교황 요하네스의 이름을 조직적으로 지웠기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인데, 정말 그의 말마따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논픽션의 세계다.
펨토초? 우리의 상식은 나노초(10억분의 1초)에 머물렀다. 근데 인제 펨토초라니!!
10조분의 1초부터 100조분의 1초의 시간이란다. 히라오 가즈유키 외 [펨토초 테크놀로지]를 보면 펨토초 레이저가 현실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데 가히 공상과학 소설에 비견될 만한다. 인류가 실험실에서 블랙홀을 임의로 만들어 내는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제임스 테이버의 [예수 왕조]역시 기존의 선입견을 확 깨부술지도 모르겠다. 역사적으로 예수의 핏줄이 잇따라 신도집단의 지도자가 되어갔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는 판이하게 다른 내용인데 왜냐하면 지금 기독교의 정통 교의로 간주되는 내용은 예수와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도 바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제발 기독교인들은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공부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개독’의 나락으로 떨어질 뿐.
하이데거는 나치에 협조했다는 핑계로 읽지 않았는데 다카시가 소개한 [철학에의 기여]의 하이데거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하이데거에게 있어서 현대는 신들이 도망가 버린 시대다. 현대의 테크놀로지 사회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대상을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처리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합리적이고 계산적으로 처리 가능한 처소에 신은 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은 부재한다기보다는 그 존재가 은폐되어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상황 하에서 신은 ‘눈짓’을 보내온다. ‘눈짓’에 의해 존재한다는 사인을 인간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신이 인간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일이 있는가? 신이 인간 곁을 통과하는 일은 있다. 그 ‘지나가버림’이야말로 신의 ‘도래’(다가섬)다. 그러한 형태로 밖에는 존재치 않는 신이 ’최후이자 궁극적인‘ 신이다.
역시나 하이데거. 뭔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철학자라기 보단 신비사상가에 가까운 하이데거만의 독보적인 언어. 나치에 협조하지 않았다면 좋아했을 지도 모르겠다.
운전할 때마다 문득 문득 드는 생각. 왜 공간 이동은 안 되는 걸까? 과학적으론 가능한데 경제적인 이유로 혹시 항공사나 자동차 회사들이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공간 이동이 된다면 인류의 경제적 가치는 무한할텐데. 데이비드 달링의 [불가능한 도약, 공간이동]을 본다면 희망을 가질 수도 있을지도.
텔레포테이션이 양자차원에서 실현 됐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전혀 몰랐다. 10년 안엔 분자차원에서도 실현될 거라고 과학자들은 예견한다. 양자 컴퓨터가 만들어진다면 물질덩어리도 텔레포테이션이 가능해 질 거라는데. 텔레포테이션이 가능한 세계까지 살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아시아나, 대한항공, 현대, 삼성차는 다 도산할거고, 세계는 그야말로 장벽이 허물어져 단일 통화를 사용할 수밖에 없을지도. 텔레포테이션이 가능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 픽션을 써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선 최소한 10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대충 100여권의 책을 썼으니 최소한 만권 정도는 읽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카시의 꽁무니를 쫓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서량은 만권이다.
다카시가 소개한 책들의 대부분이 절판이나 품절 상태다. 게으름은 결국 불편함을 초래한다.
고 한창기 선생님의 말마따라 남자가 뜻한바가 있다면 돈을 낙엽 태우듯 써야할지도.
낙엽 태우듯 책을 사자.
(2014년 4월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