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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을 가다 - 실천적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문학적 자서전
장 지글러 지음, 모명숙 옮김 / 갈라파고스 / 2016년 4월
평점 :
정혜윤 피디의 지인이 그랬다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고선 ‘이 소설을 읽었으니 올해엔 더 이상 소설을 안 읽어도 된다’고. 나는 장 지글러의 <인간의 길을 가다>를 읽었으니, 올해 아예 책을 안 읽어도 된다. 그야말로 전율이었다. 장 지글러 최고. 갈라파고스 최고. 이 책을 심장에 쑤셔 넣고 싶다.
한 권의 책은 한 곡의 음악 같다. 단어는 음표다. 하루키 소설이 재즈를 듣는 기분이라면, 지글러의 <인간의 길을 가다>는 베토벤의 교항악을 듣는 기분이었다. 절정 부분에선 관악기, 현악기, 금관악기, 타악기, 건반 악기 등 모든 악기가 어우러져 온갖 선율들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립 박수를 칠 수밖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고선 지글러를 단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 정도로 알았다니! 지글러가 사회학자라는 걸 전혀 몰랐다. 지글러의 철학, 사회학, 인류학, 역사에 대한 지식에 그저 입만 떡 벌리고 있었으니! 책을 거의 다 읽을 무렵까지 저절로 육두문자를 내뱉고, 속을 태워가며 읽었다. 마지막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의 비극에선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는데,..... 어마어마한 반전. 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아프리카의 역사에 이렇게 무지할 수가. 대한민국 역사와 이리 똑같을까. 미국이 대한민국을 찢어 놓고, 친일파를 등용해 민족의 영웅들을 암살했듯 유럽 역시 아프리카에 그러했다. 지글러는 유럽 사회보다 아프리카 전통 사회가 훨씬 더 상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도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사회를 화합과 평화에 이르도록 하는 ‘칸돔블레’가 필요하다.
“다른 한 명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 행위는 내 안에 있는 인간성을 파괴한다.”
- 칸트
타인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결국 내 안의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2013년 4월 24일 아침 다카 동쪽 교외 10층짜리 건물 라나플라자가 붕괴되었다. 1,138명이 죽었다. 라나플라자 사장은 이미 벽에 금이 간 건물을 두 층 더 높였다. 벽의 틈새가 벌어져 여성들이 올라가길 거부하자 사장은 그녀들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할수 없이 여성들은 건물로 올라갔고, 죽어갔다.
전 세계 시민운동가들이 연대했다. 국제 시민운동가들은 다국적 기업에 대항해, 2014년 5월 다카의 형사 법정에 라나플라자 공장 소유주를 법정에 세웠다.
“그렇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든 환부는 이제 곪을 대로 곪았으므로
더 이상 나빠지려고 해야 나빠질 것도 없다.
모든 것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것만이
환부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장 지글러
작금의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가스, 전기, 의료까지 민영화 하려는 정부를 언제까지 참고 두고 볼 것인가.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라고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렇게 하기로 정하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스티유 감옥은 점령되었다.'
전 국민이 읽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인이 읽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비인간적 행위를 두고 볼 수가 없다.
더 이상 내 인간성이 파괴되도록 내버려둘 수가 없다.
‘잘못된 삶에 정당한 삶은 없다.’
가장 단순한 것을 배워라!
자기의 시대가 도래한 사람들에게는
결코 너무 늦은 것이란 없다!
알파벳을 배워라,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우선 그것을 배워라! 꺼릴 것 없다!
시작해라! 당신은 모든 것을 알야야만 한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배워라, 난민수용소에 있는 남자여!
배워라, 감옥에 갇힌 사나이여!
배워라, 부엌에서 일하는 부인이여!
배워라, 나이 예순이 넘은 사람들이여!
학교를 찾아가라, 집 없는 자여!
지식을 얻어라, 추위에 떠는 자여!
굶주린 자여, 책을 손에 들어라. 책은 하나의 무기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묻기를 서슴지 말라, 친구여
아무것도 믿지 말고
스스로 조사해보아라!
당신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모르는 것이다.
계산서를 확인해 보아라
당신이 그 돈을 내야만 한다.
모든 항목을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물어보아라, 그것이 어떻게 여기에 끼어들게 되었나?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 배르톨트 브레히트, <배움을 찬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