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책이 다 독자들만큼 따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에는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우리가 이 말들을 정말로 듣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활력을 줄 것이며, 우리에게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우리의 기적들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기적들을 계시해줄 책이 어쩌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할 가능성은 크다. 지금 내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책에 표현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며 우리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들이 일찍이 모든 현명한 사람들에게도 제기되었다. 한 문제도 빠짐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들 현인들은 저마다 이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또 자기 고유의 언어와 생활 방식으로.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 * *

 

나는 밑줄긋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늘상 펜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게 어느새 버릇이 되었다. 때때로 펜을 손에 쥘 수 없는 환경에서 책을 읽을라치면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편할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책을 읽는 시간의 대부분을 펜과 함께 보낼 수 있는 형편에 놓여 있다. 펜조차 붙잡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책을 읽는 경우는 좀체로 드물기 때문이다.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습관이 붙은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 되돌아 보면 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무척이나 '아끼며' 읽었던 세월이 있었다. 책에다 밑줄을 긋는 일이 마치 책을 더럽히거나 학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줄을 긋더라도 연필로 조심스레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연필이 아닌 볼펜으로 밑줄을 긋더라도 극히 조심스럽게 책을 대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래 사진이다.

 

(1978년에 초판으로 사서 읽었던『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이다. 고1때 산 책이 아직도 용케 내 수중에 있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으면서 뭔가 좀 더 능동적인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책을 그토록 아끼며 읽는다고 해서 내게 무슨 특별한 보답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읽은 책을 남에게 팔 생각도 없는데, 굳이 내가 스스로 나서서 책을 읽은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애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변화는 그 무엇보다도 인터넷 서재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자연스레 찾아왔다. 글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재료나 장식물로 쓰기 위해서라도 '밑줄'을 책 속에 뚜렷하게 새겨넣을 필요가 있었다.

 

책 속에 밑줄을 적극적으로 긋기 시작하자 차츰 거기에 더해 내 생각을 조금씩 덧붙여 써넣는 일도 자연스레 뒤따랐다. 어떨 땐 아예 책의 말미에 '책을 읽고 난 직후의 생생한 느낌'을 직접 써놓을 때도 있었다. 어떤 책을 읽든지 그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이 가장 생생하기 마련인데, 그 느낌들을 따로 리뷰나 페이퍼로 쓸 때도 있었지만, 그런 작업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생생한 느낌'이 차츰 퇴색되고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몰론 오래 전에는 이런 감상들을 기록하는 일들이 대부분 '독서 노트'를 통해서 이뤄졌었다. 책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구절들도 마음껏 옮겨 적을 수 있고, 책을 읽는 동안에 수시로 떠오르는 온갖 느낌과 생각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간 가운데 '독서 노트'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2003년쯤부터 작정하고 쓴 독서노트들. 대학노트를 한꺼번에 마련한 덕분에 외관이 가지런한 편이다.)

 

 

(『몽테뉴 수상록』을 읽는 동안에 써내려간 독서노트. 단순히 옮겨 쓰는 일조차도 나는 즐겁다.)

 

 

(내 스스로 만들어 본 일종의 '색인 자료'다.『몽테뉴 수상록』에 담긴 내용을 인용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작년에 카프카의 『성』을 읽으며 끄적거렸던 내용이다. 언젠가는 꼭 '독후감'을 남기고 싶은 소설이다.)

 

 

 - 나는 '독서 노트'뿐만 아니라 다종다양한 '수첩'들도 평소에 애용하는 편이다. '기록'은 늘 중요하니까...

    저 수첩들도 나를 따라 많이도 돌아다녔다. '산행수첩'은 '백두산'은 물론 '히말라야'에 오르기도 했고,

   '여행수첩'은 이집트의 사막과 실크로드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 '여행수첩' 속 내용이다. 이집트 여행때 기록했던 내용들이다. 이걸 펼치면 그때의 기억들이 확 되살아난다.)

 

 

(2009년 5월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동부와 캐나다 지방을 여행하는 동안에 기록했던 내용들이다.)

 

 

이렇게 옛날 일들을 돌이켜 보니 문득 내가 밑줄긋기에서 필사로 한걸음 더 내디딘 때가 생각난다. 그건 바로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뤄두었던 『월든』을 그때 마침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그 책이 온통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나는 그 책을 읽는 동안 어느 한 페이지도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온통 밑줄긋기와 '내 생각 써 넣기'로 가득 채우고야 말았다. 그토록 나를 매혹시킨 책이 언제 또 있었나 싶었다. 이 책은 결코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고, 그저 밑줄긋기로만 그칠 책도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 책을 다 읽은 직후에 곧장 그 책을 다시금 펼쳤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에 드는 대목을 중심으로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증거가 바로 다음의 글이다.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무슨 일에든 첫 발을 내딛기가 힘든 법이다. 한 번 책을 베끼는 데 재미를 들이기 시작하자 도무지 겁날 게 없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종류의 책이든 내 마음에 쏙 드는 책만 만나면 '밑줄긋기' 뿐만 아니라 '필사'까지도 기어이 끝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책들을 읽을 땐 이미 '독서노트'에도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을 옮겨 적는 일도 허다했는데 말이다. 필사를 하지 않으면 늘 뭔가가 허전했다. 그 책 속에 담긴 인상적인 대목들이 생각날 때마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찾아 읽기 위해서, 그리고 가끔씩 필요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대목들을 재빨리 '인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된 필사'가 최고였다. 그렇게 밑줄긋기와 함께 '필사까지 마친' 책들은 다음과 같다.

 

(『몽테뉴 수상록』은 1,33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필사'를 통해 큰 보람을 느낀 책이기도 하다.)

 

 

(『증권분석』은 초판본(832쪽)과 제3판(943쪽) 두 권 모두 필사했다. 저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고 싶었다. )

 

이들 말고도 내가 끊임없이 '필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책들도 있다. 그 책들을 필사하고 싶은 욕망과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할 때도 적지 않았다. 이런 책들이 앞서 이미 필사를 마친 책들과 비교해서 어디 하나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 책들이 나에게 감명을 덜 줬다고 말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베껴쓰는 일을 중도에 포기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는 얘기다. 단지 그런 책들은 내 감정의 변화에 따라 늘상 오르내리기 마련인 필사의 열망에 때맞춰 부응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내 스스로 합리화할 때도 있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어느 이름 모를 필사자는 8세기 어느 때인가 필사를 끝내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손가락 3개는 열심히 옮겨 적고, 두 눈은 끊임없이 보고, 혓바닥은 말을 하고, 온몸은 산고(産苦)를 치른다"고 적고 있다. 필사자들은 일을 할 때 자신이 옮겨 적는 단어를 하나하나 발음함으로써 혓바닥으로 말을 했던 것이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그런 책들 가운데 특히『돈키호테』는 내가 소설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필사의 열망을 잠시나마 품었던 작품이다. 그만큼 감명 깊게 읽었고 기억해 둘 만한 놀라운 대목들도 정말 많이 만났었다. 하지만 필사하기엔 그 소설이 너무나 두꺼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아직도 소설 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들을 더 많이 필사하고 싶은 희망도 있었다. 내가 장차 소설을 쓸 일도 없는데, 소설 작품을 읽으면서 아무리 밑줄을 많이 그었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한 페이지씩 넘겨 가며서 고된 필사를 할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

 

 

 

어쨌든 이제까지 필사를 마쳤거나 어느 정도로까지 필사를 진척시켰던 책들을 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불러내 봤더니 그 책들의 분량이 결코 적지 않았다. 많은 시간들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필사를 하는 현장은 내 방 컴퓨터 책상 앞이다. 바로 그 위에 내가 필사한 책들을 쌓아 올리고 보니, 모니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책의 두께가 불어났다.

 

(왼쪽 두 줄이 필사를 마친 책들이고 오른쪽 한 줄은 필사를 끝내지 못한 책들이다.)

 

저 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필사를 하는 동안에 느꼈던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도 없지 않지만, 도대체 저 책들이 언제 나한테 붙들려 와서 저런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은 측은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저 책들이 내가 필요로 할 때면 아무 때나 끌려 나와, 나의 손가락의 움직임과 키보드의 동작과 모니터의 감시를 거쳐 통신선을 타고 저 멀리 어느 깊숙한 저장고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자고 있다가, 내가 어디서라도 부르기만 하면 순식간에 달려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알베르토 망겔이 말했던 '전자 미로' 생각이 떠오른다. 망겔이 쓴 글이 언젠가 내 손가락의 힘에 의해 전자 미로에 붙잡혔다가 이렇게 여기서 다시 느닷없이 불려나와 민낯을 다 드러내 놓고 있는지를 저자는 아마도 새까맣게 모르고 있으리라.

 

끼르륵 끼르륵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전자 미로

 

내 경우를 말하면, 책을 읽다가 남기게 되는 해설이나 메모는 타인의 기억력을 대신해 주는 워드 프로세서에 보관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만의 기억의 궁전을 떠돌며 인용구나 이름을 끌어낼 수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처럼, 나도 화면 뒤편에서 끼르륵 끼르륵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전자 미로로 들어간다. 워드 프로세서의 기억력의 도움으로 나는 저 유명한 나의 선조들보다 더 정확하게(정확성이 중요하다면) 그리고 더 많은 양을(양이 가치있는 것이라면) 기억할 수 있지만, 수많은 해설 가운데서 중요도를 판단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일은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중에서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불려나온 책들은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거짓말이다, 그들은 벌써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떤 책들은 예전에 TV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거긴 그저 아무런 벽도 없는 들판 같은 곳이어서 저 책들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거의 노숙인 신세나 마찬가지다. 최근에 사들인 책일수록 그 책들은 내게 푸대접을 받는 셈이다. 저 책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미안하다.

 

 

 

오래 전부터 내게 사랑받았던 책들은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채 물러날 줄 모른다. 나 또한 저런 책들을 달리 낯선 곳으로 옮길 생각이 별로 없다. 저들은 내 방에서도 터줏대감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저 책들 가운데 내가 이 방에 들어앉은 15년 전 바로 그때 나와 함께 '동시 입주'를 했던 책들은 사실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동안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나와 함께 동행하면서 몇 차례씩이나 나와 '동시 입주'의 영광을 누렸던 '오래된 책들'은 이미 대부분 자리를 떠나고 없다. 그런 책들 가운데는 심지어 '대학교재'들도 있었다! 다시 들춰보지도 않을 책들을 내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질질 끌고 다녔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몸소 펜으로 꾹꾹 눌러 쓴 '노트'들은 아직까지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차지하는 면적이라도 좁으니 아직은 넉넉히 봐줄 만하다. 그 옆자리가 바로 앞서 불려 나왔던 독서노트들이 늘상 머무는 곳이다.

 

 

방금 보았듯이, 나는 이런저런 책들을 읽는 동안 나름대로는 밑줄긋기를 꽤나 열심히 해왔다. 그와 동시에 독서노트도 열심히 쓰고, 마음에 쏙 드는 책들은 필사까지 해봤다. 그와 더불어 나는 이런저런 잡다한 글을 쓰면서 '여러 작가의 글'을 내 글 속에 직접 여러번 옮겨 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 내용들을 한꺼번에 올려 놓느라 '밑줄긋기'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적도 많다. 이런 일들은 어쩌면 내가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하나의 방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서 나는 500쪽이나 혹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마저도 통째로 필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토록 두터운 분량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베낀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판단하기로도 너무나 좋은 글들이고, 남들한테도 언젠가 한번쯤은 꼭 보여주고 싶은 욕심마저 드는, 그런 문장들만 고르고 골라서 베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애써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는 글들은 언제나 저런 위대한 작품들 속에 담긴 글을 조금도 닮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류가 낳은 비범한 천재들이고 나는 기껏해야 수많은 둔재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나는 항상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필사의 욕망'을 좀체로 버리지 못할 듯하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쓰는 동안에, 비록 먼 발치에서나마, 저 위대한 천재들이 쓴 글의 향기나마 희미하게 맡으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로선 너무나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또 그들의 글을 많이 베껴쓰는 일이 '글쓰기'에 얼마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함부로 부인하기는 어렵지 싶다. 그런데 좋은 글을 열심히 읽고 또 열심히 베껴 쓴다고 해서 내 몸에 벤 고약한 버릇까지 쉽게 고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나는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퇴고도 없이 그냥 단번에 쭉 써내려간 글을 두 번째로 읽을 때에는 '무수히 얼굴을 붉히며' 다시 고쳐 쓴다. 수없이 반복된 동어반복은 그나마 고치기라도 쉽다. 만연체로 길게 늘어쓴 글들은 '주어'와 '술어'조차 서로 뒤영켜 있어서, 그들을 서로 온전히 분리해 내기가 몹시 힘들 때도 많다.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어휘들도 수두룩하다. 니체의 말대로 '언어 오류, 혼란스러운 비유, 불명료한 생략, 상스러운 언행, 부자연스러운 문체' 등이 가득하다. 물론 이런 표현들 조차도 내 글의 결함 가운데 아주 조금만을 말했을 뿐이다.

 

다시 읽을 때에는

 

내 작품은 내게 기쁨을 주기에는 너무나 모자라서 다시 음미해 볼수록 더욱 화만 치민다.

 

나는 다시 읽을 때에는 얼굴을 붉힌다.
왜냐하면 많은 문장이 작가인 내가 판단하기에도
마땅히 삭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비디우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중에서
 

 

내가 이렇게 '밑줄긋기'와 '필사'에 대해 기나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책을 너무 아끼지만 말고' 과감하게 책 속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도 좀 적어보는 시도를 해보라는 권고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책에다 밑줄을 긋고 내 생각들을 직접 책 속에 적어 넣는 일을 나이 사십이 넘도록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게 무슨 큰 허물이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이왕이면 책을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읽자는 얘기다. 물론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만의 훌륭한 방식으로 책을 읽는 분들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끝으로, 내가 이 글 속에 많은 사진들을 포함시킨 건 물론 그 속에 담긴 책들에 대해 내가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내 책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베껴쓴 책들 이야기'를 하느라고 이 글을 이토록 길게 늘려간 일조차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면, 그에 대해 딱히 달리 변명할 말은 없다. 다만, 이 글 속에서 혹시라도 나를 지나치게 평가하거나 경멸하는 모습들이 은연중에 숨어들었다면, 제발 그 부분만이라도 제대로 숨어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는 내 책 이야기를 하느라고 내 책을 늘겨 간 것인가! 어리석고말고,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자들을 두고 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이 자기 작품에 그렇게도 자주 곁눈질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작품을 위한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이고, 자기 작품을 경멸하며 박대하는 것까지도 모정다운 뽐내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기를 평가하거나 경멸하는 일은 흔히 똑같은 오만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접힌 부분 펼치기 ▼

 

* 밑줄긋기와 필사를 함께 했던 책들. 

  예전에 찍어둔 사진도 있고 이 글을 쓰느라 새로 찍은 사진들도 있다.

  사진을 찍은 후에 내다버린 사진들은 조금이다. 많은 사진들을 이 글에 그대로 실었다.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560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676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712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900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124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60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65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722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776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나오는 대목이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81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838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918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956쪽)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696쪽)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768쪽)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862쪽)

 

 

(스티븐 핑커, 『빈 서판』, 466쪽)

 

 

(스티븐 핑커, 『빈 서판』, 732쪽)

 

 

(찰스 다윈,  『종의 기원』, 462쪽)

 

 

(아담 스미스,  『국부론』, 322쪽)

 

 

(아담 스미스,  『국부론』1186쪽)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238쪽)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370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390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392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546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590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614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724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제3판, 586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제3판, 804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나오는 호라티우스의 <시론>)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238쪽)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272쪽)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400쪽)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258쪽, 다른 책들에서 무수히 언급되었던 유명한 대목이다.)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460쪽)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528쪽)

 

 

(니체, 『비극의 탄생 · 반시대적 고찰』, 214쪽)

 

펼친 부분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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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2-0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빼곡한 독서노트!!!
적재적소에 맞는 고전 인용글은 이런 노트를 써 오신 힘이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필사까지!

좋아요 100개 드리고 싶어요~~ㅎ
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oren 2016-02-01 16:52   좋아요 0 | URL
늘 성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과분한 `좋아요`도 잘 받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진짜 야뮤 님 말씀처럼 좋아요 101개 드리고 싶은 글이군요..
서재 풍경에 감동하고, 필사 공책에 두 번 감동하고 갑니다..


저도 밑줄긋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이제는 노란 색연필이 없으면 아예 읽기를 포기하는 상태에 이르기도 하고..
언젠가는 날이 좋아서 종로 밴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려다 색연필이 없어서 모닝글로리 가서 산 후,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oren 2016-02-01 22:26   좋아요 0 | URL
곰발 님께서도 노란 색연필이 없으면 책 읽기가 불편하실 정도군요. 저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저도 가끔씩 전철이나 기차를 타면서 책을 읽을 때가 있는데, 어쩌다 하는 수 없이 서서 책을 읽어야 할 때조차 펜을 꺼내 밑줄을 그은 경험도 있었으니까요... 습관이 참 무섭긴 무서운 듯합니다.^^

cyrus 2016-02-0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준한 노력과 인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중한 결과물은 마음껏 자랑해도 됩니다. ^^

oren 2016-02-01 22:34   좋아요 0 | URL
읽었던 책을 나중에 다시금 살필 때에는 `밑줄`조차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조금 더 반갑더군요. 물론 그보다는 책의 여백에 가끔씩 끄적거려 놓은 `그때 내가 떠올렸던 생각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반갑고, 심지어 고마울 때조차도 있고요. cyrus 님께서 책들을 읽고 나서 꼬박꼬박 글로 남기시는 작업도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먼 훗날엔 틀림없이 커다란 자산이 될 꺼라 믿습니다.^^

크사나 2016-02-02 0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다란 감동과 울림을 받고 갑니다. 정말 대단한 꾸준함이시네요!!

oren 2016-02-02 09:37   좋아요 1 | URL
크사나 님 안녕하세요? 크게 공감해 주시고 격려 말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붉은돼지 2016-02-02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아요 200개입니다.!!!!

어제는 정민의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었는데요...여기도 필사와 메모 이야기가 많이나오더군요...사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구절, 의문나는 구절, 신기한 이야기 등등을 메모 좀 해두고 또 어떻게 분류를 잘해서 다음에 어디 써먹었으면 하는데 그 메모가 잘 안되더라구요....책 읽다가 중간에 노트 펼쳐서 적고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서는 메모를 어떻게 분류를 잘해서 필요한 것을 금방금방 찾을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그게 또 어렵기도하고......뭐 모두 제가 게으른 탓이죠 ㅜㅜ

oren 2016-02-02 16:27   좋아요 0 | URL
책 속에서 발견하는 문장들을 어디에 따로 메모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나중에 메모한 내용들이 너무 쌓이다 보면 정작 필요한 내용을 재빨리 되찾기도 어려워지더라구요. 그래서 `밑줄긋기`를 하고 난 뒤에 틈틈이 페이퍼나 리뷰 형식으로 `밑줄긋기` 내용을 글로 따로 저장해 놓으면 좋더라구요. 서재에서 `검색 기능`이나 `태그 기능`을 활용하면 아주 빠르게 원하는 내용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붉은돼지 님께서도 나중에 언젠가는 `내가 진작에 그 문장을 좀 갈무리해 둘 걸~` 하고 느끼실 때가 틀림없이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2016-02-02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2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2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2-02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아요 300개입니다.^^

저는 예쁜 노트에만 마음이 가서 열심히 메모를 해놓고도 나중에 메모해둔 내용을 찾지 못할 때가 많은데, oren님의 노트를 보다보니 제가 메모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필사노트랑 서재풍경 열심히 구경하고 갑니다.

<몽테뉴 수상록>과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완전 두꺼운 책이라는 얘기를 왜 안 해주셨나요?
oren님에게는 보통 두께일지 모르나, 저에게는 1년 프로젝트급이예요. T.T


oren 2016-02-02 17:36   좋아요 0 | URL
아이고.. 페이퍼 하나 쓰고 이렇게나 많은 `좋아요`를 한꺼번에 받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싶네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스티븐 핑커의 마음 3부작(<빈서판>이 2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3부) 가운데 가장 쉬운 책이어서 `두께` 때문에 너무 겁을 내실 필요는 없는 책이랍니다. 저 책 한 권을 다 읽으시는 동안 정말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두루 읽는 듯한 독특한 성취감도 맛보실 수도 있고, 나중엔 오히려 `두께` 때문에 더 뿌듯하실 수도 있답니다.

비로그인 2016-02-1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하고 비슷한 독서 습관이네요. 책 속에 메모하기, 독서 노트에 필사하기, 밑줄 긋기 등, 저보다 더 철저하게 책을 읽고 있군요. 칸트나 헤겔 등의 천재들도 고전들을 암송하기 위해 필사를 했다고 합니다. 독서 노트에 필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좋은 문장이나 경전의 내용등을 암송을 했다고 하네요. oren 님도 천재들과 같은 노력을 하신다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도 있겠죠. 그러니 힘내세요. 홧팅! *^^

oren 2016-02-15 00:11   좋아요 0 | URL
배익화 시인님 반갑습니다. 시인님께서도 저랑 비슷한 독서 습관을 갖고 계시다니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저는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따로 품어본 적이 없는데, 책을 읽으면서 만나게 되는 좋은 구절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든 제 걸로 만들고 싶은 욕심만은 억누르기 어렵더군요. 좋은 문장들을 작가처럼 똑같이 따라서 써 보는 일만 해도 즐겁고, 또 나중에 그 문장들이 우연히 다시 떠오를 때 언제라도 그 문장들을 내 앞으로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즐겁고요. 격려의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을벚꽃 2016-03-11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서재의 메인 글을 보고 들어왔네요. 읽다보니... 독서와 함께 살아 온 삶이 느껴지네요. 저는 필사는 하지 않지만, 책 속표지나 여백에 그 책을 읽으며 매순간 느꼈던 감상들을 적다보니, 그 책만이 가지는 새로운 가치를 느끼더라구요. 점점 디지털화 되어가는 문화 속에서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간직하고 계시네요. 자녀들에게 가보로 물려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oren 2016-03-11 15:50   좋아요 0 | URL
가을남자 님 반갑습니다.^^ 님께서 `책의 여백에다 적어 둔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내용을 <몽테뉴 수상록>에서도 발견한 적이 있답니다. 글쎄, 인간이란 얼마나 자주, 쉽게, 빨리, `망각`과 손을 맞잡던지요... 윗 글에서도 이미 밝혀놓았지만, 제가 16년째 눌러 살고 있는 `제 방`으로 이사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책`은 저랑 그리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었답니다. 무엇보다도 `알라딘`에 둥지를 트면서 `독서에 대한 자극`을 많이 받았던 듯해요. 어쨌든 `남에게 통해주지 않으면` 재미가 덜한 법이니까요. 그게 독서든, 여행이든, 혹은 다른 그 무엇이든 말이지요..

* * *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어떠한 쾌락도 남에게 통해 주지 않으면 내게는 멋이 없다. 마음속에 아무리 좋은 생각이 난다고 해도, 그것을 나 혼자 지어냈고 아무에게도 말해 줄 사람이 없다면 화가 난다. ˝예지를 누구에게도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가진다는 조건으로 하기라면, 나는 그것을 거절하겠다.˝(세네카) 또 한 사람은 그것을 더 심한 어조로 말하였다. ˝만일 한 현자가 모든 필요한 사건들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그가 알아 둘 가치 있는 사항을 자유로이 관찰하며 한가롭고 여유있게 연구하는 생활을 가졌다면, 그리고도 외롭고 쓸쓸함이 어느 인간도 결코 만나 볼 수 없을 정도라면 그는 인생에서 물러날 일이다.˝(키케로) 아르키타스의 말에, 그가 하늘나라에 가서 저 광대하고 거룩한 천체들 속을 산택한다고 해도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불쾌할 것이라고 한 말은 내 성미에 맞는다. 그러나 어색하고 서투른 동행과 여행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혼자서 하는 편이 낫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중에서

시이소오 2016-03-12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렌님은 알라딘에서 꽤 오랜 터줏대감님이시군요.
새내기라 몰라 뵈서 죄송합니다. 꾸벅.
부디 좋은 가르침 달게 받겠습니다. ^^

oren 2016-03-12 00:59   좋아요 1 | URL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2003년에 `회원가입`하고 나서 어쩌다 리뷰를 듬성듬성 올리긴 했지만, 꽤 여러 해에 걸쳐서, 해마다 `장기 외출`이 잦았더랬습니다. 1년에 6개월씩 혹은 10개월씩이나 단 한 번도 알라딘에는 `접속`조차 않고 지낼 때도 많았으니까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빈번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접속하게 된 건 요 근래 몇 년 동안입니다... ㅎㅎ

카스피 2016-04-0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서가속의 책들을 보면서 oren님의 내공을 다시한번 느끼에 되네요@.@

oren 2016-04-04 16:57   좋아요 0 | URL
책들을 빼곡히(?) 꽂아둔 서가는 늘상 `외관`이 `실제`보다 훨씬 더 그럴 듯하게 느껴지는 `묘한 착각`을 불러오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ㅎㅎ

페크pek0501 2018-11-24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이 독서광인 건 진작부터 알았고 필사왕인 것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필사왕일 줄이야... 깜놀~ 깜놀~ 감탄~ 감탄~.
저도 오래된 필사 노트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오렌 님과는 비교가 안 될 꽤 적은 양입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 썼지요.
그것도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한 번 앉으면 소변 보러 화장실에 갈 때까지 안 일어났어요. ... 꽤 열정적인 시간이었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노력을 거의 안 하고 살고 있어요. 게으름을 사랑하게 되었거든요.ㅋ
이 페이퍼를 보니깐 다시 필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팍팍 듭니다. 그런데 팔이 아파 볼펜보다는 노트북이 좋겠어요.
노트북으로 에이포 용지 한 장씩 매일 필사 한다면 1년 후면 그것도 꽤 많은 양이 될 것 같아 희망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필사할 글은 많습니다. 밑줄을 그은 책이 많아서요. 나중에 잘 완성되면 저도 페이퍼를 올려 보겠습니다.

오렌 님의 페이퍼를 보고 구입한 책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책으로 <도덕감정론>이 있지요. 이 책 속 문장을 인용해 페이퍼를 쓴 것도 기억 납니다.

좋은 메시지를 주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저에게 앞으로 노트북으로 필사하는 새로운 습관이 생긴다면 님 덕분입니다.

oren 2018-11-24 19:03   좋아요 1 | URL
페크 님께서 밑줄을 그은 내용들을 하루 한 번씩 노트북에다 옮겨 적는다면, 1년, 3년, 5년 후에는 실로 어마어마한 분량이 축적되지 싶어요.^^ 저도 예전에는 주로 노트에다 옮겨 적었는데, 컴퓨터에 키보드를 두드려서 저장하기 시작하니까 그게 훨씬 좋더라구요. 가장 좋은 점은 무엇보다도 ‘언제, 어디서나,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그 내용들을 다시 꺼내 읽을 수 있고, 콕 집어서 검색할 수도 있고, 또 무엇보다도 글을 쓸 때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다는 점이더라고요. 분실할 염려도 거의 없고요. 디지털화되니까요.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디지털 방식의 필사 작업‘에 재미를 붙여서, 멀지 않은 장래에 그 결실을 볼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겠습니다.^^

핑크뮬리 2019-12-0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을 읽다가 밑줄긋기하며 또는 필사하며 읽고 있는 독서 초보입니다.
요즘 어떤책을 읽으며, 눈물로 감동으로 이어지면서 무언가 작가에게 미안한 생각이 문득 스쳐서 책을 깨끗하게
보아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어떻게 나온 책일건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들 읽고 있나? 검색해서 들어오게 됐는데 와~~^^독서 고수님ㅎㅎ
그리고 저 필사노트들 한꺼번에 같은걸로 하니 저리 깔끔하네여
저두 이제 같은 노트로다가,,,
소중한자료들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9-12-06 15:10   좋아요 0 | URL
먼 데서 여기까지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도 독서노트를 쓰고는 있지만, 그걸 다시 펼치는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부터 가급적 필사를 하는 편이랍니다.^^ 필사를 해서 디지털 저장장치에 옮겨 놓으면 분실 염려도 없을 뿐더러, 언제 어디서나 꺼내 쓸 수 있어서 여러모로 아주 유익하더군요. 아무쪼록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멸치야 2020-09-24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보고갑니다.
아 너무 좋은 글이에요. 제가 정말 아끼며 보관하고있는 책들도 보여서 좋네요.

oren 2020-09-25 22:48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소울버그 2022-12-10 0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거의 책 독자평을 보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는데, 좋은 책들이 참 많네요.
제가 최근에 관심있게 읽고 있는 진화, 철학 관련 서적이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