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30 축의 전환 -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 거대한 물결
마우로 기옌 지음, 우진하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즘 들어서, 마치 한 치 앞도 안보이는 듯한 시대에 살고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워낙 빨리 바뀌다 보니 때론 저를 제대로 추스릴 시간도 없이 이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고 올라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한 번씩 들기도 합니다.

막연한 미래를 대비해 살아간다는 것은 우선 미래에 대한 예측을 분명히 해서 가장 주류로 움직이는 트렌드가 무엇인지를 잘 읽고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 전반적인 거시적인 시야나 통찰력이 부족한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사전에 눈치채고 동조해서 움직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읽게 된 ‘2030 축의 전환’은 많은 새로운 트렌드들을 생각해보게 하고, 이러한 변화들이 궁극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어떻게 가공되고 사용되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2030년이라면 피부로 느끼기에 가까운 미래도 아니고 그리 먼 미래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근 10년이 그랬듯이 우리는 다가오는 10년이라는 기간 동안에 수세기 동안의 변화를 뛰어넘는 커다란 패러다임의 전환을 느끼며 살아갈 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확신에 가득 찬 시간이 될 이 10년이라는 세월을 전혀 준비 안된 채로 맞을 수는 없기에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며 읽었습니다.

다행히도 저자가 다양한 사례을 통해 쉽게 이 책을 풀어놓았기 때문에 저자가 생각하는 향후 10년간의 8가지 거대한 물결을 차례대로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2030년 미래 전망은,

1) 낮은 출생률,

2) 새로운 세대,

3) 새로운 중산층,

4) 증가하는 여성의 부,

5) 도시의 성장,

6) 파괴적인 기술 혁신,

7) 새로운 소비,

8) 새로운 화폐.. 의 8개 섹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항목은 각자 독자적인 이슈를 대표하고 있지만, 모든 항목이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각각의 장을 읽다 보면 앞에서 읽었던 주요 이슈가 다시 언급되기도 해서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덮을 즈음에는 막연하나마 전체 내용이 몇 가지의 주요 내용으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됩니다.

최근의 신문기사에서, 일론 머스크가 앞으로는 비트코인도 테슬라 결재 대금으로 받겠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전처럼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가득했던 저라면 이 사실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드문 드문 알고 있던 일론 머스크의 사생활과 관종스런 인터뷰 기사, 그리고 살짝 느끼한(?) 얼굴까지..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이 벼락부자를 바라보던 선입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8번째 주제, 새로운 화폐와 비트코인에 대한 내용을 읽은 저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이 내용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최근에 급관심을 가져서 일론 머스크에 대한 기사와 유튜브 자료를 검색해보니 이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미래를 준비해온 사람이더군요. 마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으로 세상에 큰 변혁을 이루어냈듯이 그동안 실감하지 못하던 사이에 이미 자율주행으로 움직이는 전기차, 우주왕복 우주선 등이 차근차근 실현되며 현실화되고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제약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다가 이렇게 거시적인 새로운 미래를 조망하는 책을 읽다 보니 뭔가 현실과의 큰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행복하고 실현 가능한 미래란 이를 미리 차분히 준비한 사람들의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궁금한 것도 너무 많으니까 더욱 더 독서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말미, ‘나가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인용구가 있습니다.

새로운 흐름과 싸우고 있는가?

그렇다면 미래와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라.

그 흐름이 순풍이 되어 당신을 앞으로 이끌어줄 테니까..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립자 겸 CEO

사실, 새로운 흐름을 잘 모를 때에는 무작정 이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의 맨 마지막에 쓴 다음과 같은 문장은 매우 소중하고도 의미가 깊습니다.

2030년을 준비하기에는 아직 늦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는 세상이 10년 이내, 적어도 우리의 인생 어느 지점에서 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중략...) 지나치게 직선적이거나 수직적이어서 도움이 되지않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2030년의 도전들을 이겨낼 수 없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중략..)

그리고 기억하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결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것도 영원히..

신년을 맞이하여 미래를 준비하며 읽기 좋은 책, 딱딱한 주제인 것 같지만 정말 쉽게 읽히는 책,

‘2030 축의 전환’의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툭하면 기분 나빠지는 나에게
팀 로마스 지음, 김아영 옮김 / 책세상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 팀 로마스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불교에 심취해 중국에서 공부한 독특한 이력이 있고, 정신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가지고 있는 긍정심리 전문가이다.


여기서 긍정심리학이란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한번 찾아보았다.

 

-긍정심리학은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감정보다 개인의 강점과 미덕 등 긍정적 심리에 초점을 맞추자는 심리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이다. 기존의 심리학이 정신질환 치료와 같이 삶을 불행하게 하는 심리 상태를 완화하는 데에만 치중하였다면, 긍정심리학은 즐거움, 몰입 등 삶의 긍정적 가치를 더욱 중요시한다. - 네이버 용어사전 중에서 -

 

이 책의 원제는 The Positive Power of Negative Emotions이다. 그러니까 부정적인 감정들을 통해 긍정적인 힘을 찾는다는 내용이므로, 이 책은 긍정심리학을 기초로 쓰여져 있다는 것을 잘 알수 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더라도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릴 때가 많다. 이 부정적인 감정은 사실 매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 마음 속에 존재한다는 자체 만으로도 못 견뎌하는 경향이 있다.

 

작가는 이 부정적인 감정을 슬픔, 불안, 분노, 죄책감, 질투, 지루함, 고독, 고통의 8가지로 구분하여 그 구체적인 내용과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행복에 이르기 위해 이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 조절하고 승화시켜나갈 것인가..하는 것이 이 책에서 다루는 주요 주제이다.

 

8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은 각각 하나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저자의 경험과 관련서적에 나온 내용 등을 인용하여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쓰여져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1장은 슬픔인데, ‘슬픔에 대한 긍정적인 힘을 강조하기 위해 C. S.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이란 책에서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인용하였다.

 

사랑의 중심에 있는 것은 슬픔이다. 사랑의 연약함에 대한 우울한 걱정, 혹은 사랑을 잃을지 모른다는 조용한 두려움이다. 이것이 사랑을 풍부하고 섬세하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슬픔이 사랑에서 벗어난 상태라기보다 사랑을 위한 조건, 즉 사랑에 빠지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는 것이다.”




슬픔이나 고독 없이 사랑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유토피아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슬픔을 사랑을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로 간주하게 되었다거나, ‘슬픔도 긍정적인 정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면 저자가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내용의 의도와 핵심을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번역서의 제목은 툭하면 기분 나빠지는 나에게인데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 제목은 적절한 네이밍이 아닌 것 같다. 아마 좀 생뚱맞기도 한 이 번역서의 제목은 이 책의 셀링 포인트에 너무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옮긴이는 김아영 번역가인데,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여 좋았고 주요 용어에 대해 바로 옆에 원어를 기록해둔 것도 이해를 돕는 점이 많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읽은 적이 있는 헨리 뢰디거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의 옮긴이도 김아영 번역가인데, 이분은 심리학 전공자로서 심리학 관련 저서의 번역에 탁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스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7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전염병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이에 관련된 책을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우선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설 중에서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였다. 책을 사놓고서 바로 읽지는 못했는데, 그 사이에 《페스트》는 TV ‘책을 읽어드립니다’ 프로에 한번 방송되더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계속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된다고 하니 가히 카뮈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사실 카뮈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약간의 로망이 있었다. 바바리코트 깃을 올리고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에서 제임스 딘의 반항아적인 모습을 떠올렸고, 그가 말했던 ‘부조리’도 결국은 기존사회의 모순을 온 몸으로 거부하는 저항의 지식인이었기에 가능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방인》은 부조리의 본질을 부각하다 보니 다소 어둡고 난해한 편이다. 반면에 《페스트》는 실천적 행동주의자인 리유를 내세워 ‘페스트’라는 부조리한 현실과 정면으로 승부하게 하여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제공한다.

이 소설에는 ‘서술자’라는 명칭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서술자’는 이 책의 주인공인 의사 리유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1인칭 ‘나’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서술자’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의사 리유의 시점에 한정하지 않고 주요인물의 시선으로 확장하여 보다 객관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 이야기는 지도로 보면 아프리카 대륙 맨 위의 알제리 (당시는 프랑스 영토)의 조용한 해안도시 오랑에서 발생한 최악의 전염병 페스트에 대한 저항의 연대기이다.

1940년대의 어느 날, 오랑시에서 쥐가 한 두 마리씩 죽기 시작했다. 그러던 것이 주민들의 원인 모를 사망으로 이어지고, 급기야 거리에는 죽은 쥐들이 넘쳐나게 된다. 의사 리유는 시 당국에다 전염병의 위험성을 알리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않는다.

이 세상에는 전쟁만큼이나 많은 페스트가 있어 왔다. 그러면서도 페스트나 전쟁이나 마찬가지로 그것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오래가지는 않겠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전쟁이라는 것은 필경 너무나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오래 가지 않는다는 법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이다. - p54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평범한 일상을 포기하지 못하는 쪽은 대개 휴머니스트들이다. 대비책을 세우지 못하면서 사업을 계속하고 있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p55

페스트가 막 창궐하기 시작할 즈음, 치명적인 전염병이 도시에 번지기 시작하는 데도 시민들은 일상의 삶의 형식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의 생활패턴에 매달린다. 이 전염병이 자신을 비극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는 전혀 믿지 않았다. 그러나 페스트는 점차 심각해지고 정부는 오랑을 폐쇄하기에 이른다.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오랑의 시민들까지 산 채로 도시에 갇히게 된 것이다.

폐쇄된 도시에서 사람들이 처음 겪은 것은 가족 또는 연인과의 생이별, 그 다음은 귀양살이를 하는 듯한 옛 생활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하지만 점차 페스트로 인해 사람이 죽어나도 슬퍼하는 마음은 무뎌지고, 다음 차례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서서히 적응하게 된다.

페스트로 인해 시민들의 희생이 따른 한참 후에야 시 당국은 도시폐쇄의 결정을 내리고 이 몹쓸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한 인간 군상들의 응전과 저항이 시작된다.

이 책에는 의사 리유 주변에서 페스트와 대항하여 필사의 항전을 펼치는 여러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외지인이지만 보건대를 만들어 리유를 돕는 타루, 오랑시의 말단서기 그랑, 프랑스에서 취재차 왔다가 발이 묶인 신문기자 랑베르, 페스트가 사악한 인간에게 내린 신의 형벌이라 믿던 파늘루 신부 등이다.

그때까지는 자기들의 고통을 한사코 집단의 불행과 떼어서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두 문제를 섞어서 생각해도 좋다고 여기게 되었다. 기억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현재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 p239

어떤 노력으로도 이 불행한 상황을 벗어 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매달릴 수 있는 것은 신앙인지, 아니면 사랑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리유와 그의 친구 타루는 일단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을 멈추지 않기로 한다.

동료 의사 카스텔은 여러 가지 혈청을 통해 면역제 실험을 계속하지만 뚜렷한 진전이 없다. 그러던 어느날 판사 오통의 어린 아들이 페스트에 걸려 입원을 하자 병원은 바로 격리가 되고 비극은 극에 달한다. 아이는 결국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병균에 침식된 채 죽게 되고 이를 옆에서 기도와 함께 지켜보던 파늘루 신부도 큰 혼란에 빠진다.

아이의 죽음을 지켜보던 리유와 주위 인물들에게 파늘루 신부는 ‘아마도 우리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라는 말을 한다.

“아닙니다. 신부님.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285p

카뮈 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를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자라고 평하는데 이에 대한 사상이 잘 나타나있는 문장인 것 같다.

그러다 결국, 페스트가 ‘말없이 자신이 나왔던 알 수 없는 어떤 야수의 굴로 들어가며’ (358p)조금씩 줄어들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사망 통계를 작성하는 오랑시의 기록이 차츰 줄어들더니 마침내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고 극으로 치닫던 페스트가 기적처럼 사라지게 된다. 10개월여의 봉쇄령이 드디어 풀린 것이다.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사람들을 보면서 리유는 페스트가 끝났더라도 그것이 인간에게 가르쳐 준 교훈과 흔적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음과 같은 마지막 문장을 남긴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귀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크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고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지하실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02p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를 통해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인간이 경험하게 되는 극한의 고통과 절망을 그려내었다. 그래서 《페스트》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자 재난 소설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이 책을 덮고서 우리의 코로나 정국과 대비해보니 너무나 비슷한 면이 많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정점을 찍은 느낌이기는 하지만 언제 어떻게 종식될지는 그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인간의 터무니 없는 몰락을 끊임없는 연대와 성실성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카뮈의 제안은 거의 8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시대에도 너무나 유효하고 빛이 나는 것이다.

카뮈가 말하는 ‘성실성’이 무엇인지는 리유의 친구 타루의 말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하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코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꼭 필요하단 말입니다.. (329p)

그런데 전염병에 대해 이렇게 핵심을 꿰뚫는 발언을 한 타루는 전염병이 끝나기 직전에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에 마지막 혈청 주사를 빼먹은 탓으로 그만 감염이 되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 한다.

결론적으로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언급은 하지만, 무턱대고 장밋빛 결론을 내거나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모든 부조리에 대한 해결은 우리 각자의 개별적인 노력에 달린 것이다.

최근의 우리 사회에서 다중이 모이는 모임을 아무리 금지해도 개별적인 집회는 반복되고 있다. 또 대구에서는 소규모 집단감염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타루가 말한 긴장의 끈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의지와 정직성의 가치는 지금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그의 부조리한 죽음을 통해 온 몸으로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를 쓰다 슈테판 츠바이크 평전시리즈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창시절에 배운 니체에 대한 상식은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라는 저서가 있고, ‘초인철학을 주장했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대변되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아마 예전의 나라면 이 정도 이야기하고 나서는 그다음부턴 말문이 턱 막혔을 것이다. 굳이 그 이유를 따져보자면, 우선 철학이란 학문이 무척 난해하기도 하거니와, 살기도 바쁜데 니체 같은 철학자를 더 잘 안다고 무슨 큰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사고방식이 마음속 저변에 깊히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그리 단순하기만 하고, 생각은 늘 한 군데에 머물러 있기만 할 것인가? 어찌어찌 살다 보니 인생의 풍파도 많이 겪게 되었고, 진실은 한 가지 모범답안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몇 년 전, 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심리학 과정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심리학(psychology)이 철학(philosophy)에서 파생한 실용학문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제학의 기본 흐름을 모르고서는 국제통상학을 공부하기 힘든 것처럼, 니체, 프로이트 등의 인간 본성을 꿰뚫는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깊이있는 심리학을 공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니체를 쓰다라는 평전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20세기 초반의 유명한 전기작가이자 시인이다. 세계 3대 전기작가로 꼽히는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인간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인간관계에서 작용하는 심리적 측면을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미리부터 이야기해 두는게 좋겠다. 츠바이크를 처음으로 접한 이 책에서 나는 그의 감수성 넘치는 유려한 문장과 현란한 비유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것을.

 

이 책의 맨 처음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그와 마주치지 않는다어떤 여인도 그와 함께 머물며 긴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다독이지 않는다모든 운동은 오로지 그로부터 시작되어 그에게로 되돌아온다.. (후략』 (p9 ~ p10)


 

이 책을 조금 넘기다 보면 츠바이크는 요즘 말로 니체 덕후이자 광팬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금방 든다.

마치 시대를 앞서간 니체의 천재성에 감탄하며,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나는 유쾌하오!..”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드니 말이다.

 

츠바이크의 니체를 쓰다는 소설적 전기 형식을 띄고 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마치 니체의 분신인 것처럼 가 주어인 1인칭 작가시점에서 글을 쓰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 그의 니체에 대한 평전은 사실적 관계만 기록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주관에 투영된 인물의 재창조를 시도하고 있다. 마치 니체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과 같은 생생한 표현들은 니체의 사상을 가장 정확히 이해하는 듯한 묘한 동질감 마저 준다.

 

츠바이크는 니체의 고독한 구도자로서의 삶을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요약하고 있다.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p10)


 천재적인 감별사 니체는 항상 심리학자로서 자신의 고통을 통해 신기한 쾌감을 얻고자 했고, “스스로 실험자 및 실험 대상자가 되고자 했다.』 (p37)



24세의 젊은 나이에 대학 교수가 된 니체는 바그너의 후광으로 쉽게 유명세를 떨쳤으나 10여년만에 교직생활을 끝내고 그는 곧 철저한 혼자가 된다.

잠깐 동안의 종군생활에서 얻은 질병, 이론적인 추종자였던 바그너와의 결별 등으로 인해 그는 얼마 안되는 대학연금에 의존한 혼자만의 유랑생활을 시작한다.


 핏자국이 밴 넝마를 걸치고 운명과 싸우는 광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헤라클라스처럼 반인반마의 괴물 네수스의 불타는 옷을 찢어버림으로써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p14)


니체는 온갖 고통을 기교나 육체적 위기의 부정을 통해서가 아니라올바른 인식을 통해서 극복했다.』 (p45


건강한 자들에게는 심리학이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지식은 고통으로부터 나왔다고통은 늘 원인에 대해 묻는다반면에 쾌락은 제자리에 머물러 뒤도 돌아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인간은 고통 속에서 점점 더 섬세해진다.』 (p44)


니체가 사랑한 것은 불확실성’, ‘확고하지 않은 것이었다. 가치전도의 달인인 니체는 어떠한 인식행위도 실제적인 최종지식일 수 없으며 종국적인 의미에서 진리는 소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붕과 여자아이하인도 없는 영원한 무산자이고자 했다그 대신에 사냥의 쾌감과 즐거움을 누리고자 했다그는 지속적인 감정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돈 후안처럼 위대하고 황홀한 순간을 사랑했다그를 유혹한 것은 오로지 정신의 모험저 위험한 불확실성이었다.』 (p54)

 

니체에 의하면 우리는 뭔가 쟁취하기를 좋아한다그렇다고 그것이 철저히 우리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라고 우리의 내부에 있는 폭군이 말한다. (우리는 이런 자를 우리의 더 높은 자아라고 부르고 싶다). 바로 이 더 높은 자아가 나의 제물이 된다.”』 (p58)

  

많은 학자는 19세기 이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철학 이론으로 마르크스의 유물사관,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을 꼽곤 한다.

(EBS 인문학 특강 니체, 신이 죽은 시대를 말하다중에서)

 

이 중에서 니체는 그의 삶이 바로 하나의 사상이자 철학이었던 사람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철학자, 전복/혁명/파괴의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백신이 없을 정도로 감염력이 뛰어난 지적인 병균이라는 표현은 대중들이 끝내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의 가장 핵심을 찌르는 그의 실존 사상을 잘 대변해주고 있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이란 저서에서 말한다.

내 말을 믿어라. 실존의 가장 커다란 결실과 향락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험하게 사는 것이다.”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등 학문적 본성의 인간들은 몸과 마음, 운명까지 다 바쳐 인식을 얻기 위한 영웅적인 투쟁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반면에 니체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모험에 뛰어들었다. (p59~p60)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니체의 사상과 글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이제, 이 책에 나온 구절 중 가장 감명깊은 문장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간이 어떻게 하면 위대해질 수 있는가에 대한 공식은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는 것이다우리가 운명을 사랑하게 되면우리는 다른 어떤 것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앞으로뒤로영원으로도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필연적인 것을 견디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라그것을 사랑하고자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토지 1 - 1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봄에 거제, 통영 지역을 여행하다가 박경리 기념관을 다녀온 적이 있다. 청명하고 푸른 하늘이 수평선과 맞닿아 있는 곳, 한려수도의 해안을 굽이굽이 돌다보면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한 박경리 기념관이 나온다. 차를 세우고 건물로 들어서면 바로 북카페가 보이고, 조금 더 지나면 《토지》의 여러 판본이 진열, 판매되고 있는 공간이 있다.

커다란 건물에 비해 관람객이 드문 드문 보이는 고즈넉함을 즐기며 2층으로 향했다. 여기에는 박경리 작가의 생전 유품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전시실이 있는데, 가장 많은 공간이 소설 《토지》에 대한 자료로 보존되어 있다.

승리 없는 작업이었다. 끊임없이 희망을 도려내어 버리고 버리곤 하던 아픔의 연속이 내 삶이었는지 모른다.

배수(背水)의 진을 치듯이 절망을 짊어짐으로써만이 나는 차근히 발을 내밀 수가 있었다.

(10쪽, 자서(自序) 중에서)

잔잔한 감동을 안고 기념관을 나서며 아직도 《토지》를 읽어보지 못했음을 잠시 자책했고, 가까운 시일 내에는 꼭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바쁜 일상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이러한 다짐은 빛바랜 사진처럼 차츰차츰 퇴색되어가고 있었다.

작년 말, 우리 힐링카페에서 제시한 토지 전권읽기 프로젝트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제는 돌아서면 잊어버릴 나이이기도 하지만, 독서욕이 충만한 이번 시기를 놓치면 영영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로마인 이야기》는 9편에서 읽기를 멈추었지만, 이번에는 바로 출판이 안되서 마무리를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지 않은가.

오래동안 묵혀두었던 숙원사업이라도 된 양, 서둘러 책을 사서 1권부터 읽기 시작했다.

1권의 첫 몇 쪽을 넘기다 보니 서문(序文) 격의 내용이 차례로 세 개가 나온다. 이중 가장 먼저 나오는 자서(自序)라는 서문에는 열정 가득한 명문장으로 가득한데, 개인적으로 느끼는 백미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 구절에 있다.

앞으로 나는 내 자신에게 무엇을 언약할 것인가,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 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12쪽)

이제 막 시작하는 소설 《토지》에 대한 선생의 짙은 애정과 자신감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암치료와 함께 시작한 그녀의 토지 집필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데에는 장장 26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 이 기간동안 내면의 갈등과 시대적인 아픔으로 여러 차례 절필을 거듭하던 선생은 마지막 서문의 가장 앞 단락을 다음 이야기로 시작한다.

서문 쓰는 것이 두렵다.

할 말을 줄이고, 또 줄여야 하는 인내심에는 억압적 속성이 있으며,

부정적 성향에다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늘 현실도피를 꿈꾸고 있기 때문인데

내게는 어떤 것도 합리화할 용기가 없다.

(15쪽)

이어지는 문장, “솔직히 말해 그동안 늘 《토지》에서 도망치고 있었다”는 그녀의 표현에서는 우리 근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통찰력 있는 대하소설을 완성하고도, 원죄에 가까운 자기성찰로 가득한 작가정신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두 번째 서문에서는 이제 집필을 막 끝내가는 노작가의 고뇌와 소진된 에너지, 그리고 남은 인생에 대한 담담한 소회가 느껴진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다.

그리고 애잔하다.

...................

나는 비로서 털고 일어섰다.

찰라 같은 내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이다..

(13쪽)


소설 토지의 최종본이라고 할 수 있는 마로니에북스 발행 《토지》는 전체가 20권이고, 총 5부작으로 이루어져있다. 이중 1부는 총 4권으로 구성되는데, 주무대는 경남 하동의 평사리이다.

넓은 들판과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변 마을에서 최참판댁과 농민들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다음은 그 첫 문장이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 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24쪽)

서문에서 보여준 선생의 놀라운 필력처럼, 이 첫 문장도 엄청난 산고를 겪으며 나온 문장 답게 유려하고, 마치 영상으로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책을 읽다보니,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어울어진 자연에 대한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서글픈 느낌을 준다. 이에 대한 작가의 소회는 토지 집필이 끝난지 6년 되는 해에 쓴 새로운 판본의 서문 (2001년)에 잘 나타나있다.

전신이 떨렸다. 30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이었다.

(17쪽)

당시의 시대상을 관통하는 단어, ‘서러움’을 독자들에게 스미듯 적시게하는 작가의 의도는 여러 문장들에서 보여진다. 즉, 너무나 사실적인 자연 묘사에 감탄하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다 보면 앞의 시어같은 문장이 다음 내용을 위한 복선이요, 하나의 메타포(metaphor)였음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달이 없는 그믐밤이지만 수없이 나돋는 별빛에 사방은 희뿌윰했다. 초여름이라고는 하나 밤의 냉기를 훔씬 머금은 강바람이 오삭오삭 살에 스며든다... 들물이 팽팽히 들어찬 장면은 별빛을 받아서라기보다는 제물에 희번득이고 있는 것 같았다.

(227쪽)

마을 사람의 눈길을 피해 월선이가 정인 용이집을 찾아가는 장면의 초반에 묘사된 문장이다. 월선이가 이미 결혼한 용이의 집 앞을 그리움에 못이겨 배회하는 장면은 ‘제물에 희번득이며 팽팽히 들어찬 들물’..이라는 표현에서 충분히 의인화되며 다음 내용을 기대하게 한다.

제 소설 《토지》의 1부를 읽었을 뿐이데, 조선말의 수많은 민초들의 일상과 고뇌가 하나씩 하나씩 멍울되어 그 느낌을 쌓아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단지 묵직한 여운만 남겨주는 소설이라면 후세의 우리가 어찌 명작이라고, 고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토지》에는 땀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 사는 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어 더 없이 소중하고 슬픈 사랑 이야기도 군데 군데 배치되어 독자들이 지루할 틈을 전혀 주지 않는다.

새해와 함께 읽기 시작한 소설 《토지》는 클럽일정과 같이 한 달에 1권 읽는 것으로 넉넉하게 잡았으나, 실행은 그렇게 이루어질 것 같지가 않다. 우선, 다음 내용이 무지 궁금해지기도 하거니와, 중간에 너무 뜸을 들이다보면 대하소설의 특성상 앞뒤 연결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금년에는 아마 《토지》 완독이 가능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