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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의 고양이 - 대한제국 모닝 캄 프로젝트
로버트 W. 리치 지음, 류지영 옮김 / 지식상자 / 2025년 8월
평점 :
1872년 태어난 베델은 진정으로 대한제국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아직 완전히 국권을 빼앗기기 전부터 일제의 야욕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썼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그는 영국인인 자신의 국적을 이용하여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를 발간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베델을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사사건건 그를 방해하고 괴롭혔다.
그런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 두 편이 이 책에 담겼다. 첫 번째 이야기는 <상하이 특급>(원제: The Cat and The King)은 을사늑약 직전 고종황제를 망명시키려는 작전을 다뤘다. 대한제국 해관에서 일하는 빌리와 대한매일신보를 발간하는 베델을 찾아 온 미모의 미국 여성. 그녀는 '소녀' 였다. 상하이에서 온 그녀는 러시아의 정보기관 첩보원이었고, 러시아의 누구는 조선땅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낮추기 위해 고종 황제의 망명을 원했다. '소녀'는 그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온 것이고, 조력자로 빌리와 베델을 선택했다.
이미 지나 온 역사는 바꿀 수 없다. 이 이야기 역시 우리는 읽자마자부터 알 수 있다. 고종 황제는 망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소녀와 빌리와 베델의 작전은 좋았으나 일본의 관리들 역시 끈질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대한제국과 황제의 모습이 이 망명이 실패하는 결정적 원인이었다고나 할까. 신비하고 아름다운 이 나라의 미래는 황후를 일제의 칼에 잃고 눈과 귀가 막힌 황제에게 달려 있었고, 황제는 굳세기도 했지만 나약하기도 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헤이그의 보석>(원제 : The Great Cardinal Seal>이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고자 했던 일을 다루고 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를 앞두고 '용치선'이란 지식인이 빌리와 베델을 찾아온다. 을사늑약이 일제가 강제로 체결한 것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니 황제를 설득해 신임장에 '옥새'를 찍자고 한 것이다. 고종 황제는 비밀리에 만든 옥새를 금강산의 유점사에 몰래 숨겨두었는데, 빌리는 용 대감, 영국의 신지학자 툴링과 함께 유점사로 향한다.
작가인 리치는 이 두 사건을 다루면서 당시 조선이 가진 미신적인 면과 종교를 아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서양인들의 시각에서 조선인들이 사물을 대하는 방식을 미신적이고 불합리하다고 본 것이다. 현대인인 우리의 눈으로 보더라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테다. 하지만 당시 황제의 불안한 심리와 훈련받은 고양이를 생각해보면 그 배로 간들 과연 망명이 성공했을까 의문이 든다. 하지만 용 대감의 경우는 조선식 유교에 물들어 과한 죄책감과 불안에 빠진 듯 보인다. 공자가 괴이한 것은 보지도 말라 했는데, 왜 그런 괴이에 마음이 흔들렸을까. 아마 바람 앞에 등불처럼 혼란하고 무섭고 두려운 조선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1990년 대의 홍콩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가 잊고 있던 항일운동가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이제라도 베델의 생애를 재조명하는 점이 바람직하다 여겼다. 조선에서 태어나지도 어떤 혜택을 받은 것도 아닌데 그는 조선을 위해 맹렬하게 싸웠다.
1907년 일본 궁내대신 다나카 미쓰아키가 순종의 결혼식 때문에 조선에 왔다가 경천사 석탑을 조각내어 일본으로 가져갔다. <대한매일신보>는 즉각 일본을 비난했고, 고종의 외교 자문이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 역시 이 만행에 대해 기고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가 주목하자 일본은 경천사 석탑을 돌려줬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을 때 이 석탑이 너무 멋져 사진을 찍었는데, 이 책에서 보고 너무 반가웠다.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