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가슴 한 켠에 아련한 꽃가지 하나 품고 산다. 외사랑이든, 헤어져버린 첫사랑이든 말이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아련한 꽃이었다. 평생을 품을 수 없는 손 닿지 않는 그 곳에 고고하게 피어있는.

 

브람스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사랑했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스승의 딸과 결혼한 슈만은 클라라와 행복했다. 그러나 슈만의 정신질환은 그들의 행복을 조금씩 조금씩 태워가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 앞에서 제자 브람스는 클라라를 사랑했다. 일생을 아무와도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클라라만을 사랑한 그는 그 아프고도 고독한 사랑에 중독되어 있었다.

 

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로제와의 관계에 매달린다. 권태로운 연인인 로제는 폴을 혼자 내버려둔 채 젊은 여자를 만난다. 폴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며 자신의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것도 외면한다. 그런 때 젊고 아름다운 청년 시몽이 나타난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하데스의 아내인 페르세포네가 동시에 사랑한 소년 아도니스. 시몽을 보면 왠지 모르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소년 아도니스가 연상된다. 여기서는 신화와 달리 아도니스인 시몽이 여신인 폴을 열렬히 사랑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도니스는 크나큰 상처를 입고 죽어버리니, 시몽 역시 그런 파괴적인 결말을 피할 수는 없었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라는 말이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고, 사랑하는 사람을 배려하고, 서운하더라도 서운함을 속으로 감춰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릴까봐, 사랑이 빛바랜 추억이 되어버릴까봐 두려워서 말이다.

 

폴과 시몽 모두 그러했다. 폴은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에 지레 겁을 먹고 더 이상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곁에 있는 로제가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라고 그저 그렇게 자신을 안심시켰다. 시몽에게 끌리면서도 그 마음을 완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로제에게 돌아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시몽에겐 저주였다.

 

언젠가는 끝나버릴 관계라는 그 시한부의 사랑이 과연 행복할까. 오늘일까, 내일일까... 그녀는 언제 나를 떠날까.. 시몽은 고통스럽게 그녀 곁에서 순간순간을 살아간다. 시몽이 폴에게 물었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사실 자신에게 했어야 할 질문인지도 모른다. 삶의 주도권을 깡그리 상실한 채 오로지 폴의 억양과 표정과 기분에 좌우되는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시몽은 그저 폴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로 행복해한다. 시몽은... 폴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시몽의 열정 뿐...

 

사랑이라는 감정의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어쩌지 못하고 끌려다니지만 설레이는 그 감정. 진실을 들여다보기 두려워 덮어둔 채 사랑한다고 자신을 세뇌시키는 어리석음과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아파하며 느끼는 희열까지.

 

폴은... 정말 최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2-03-23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고판으로 갖고 있는 책인데 민음사판이 있군요.
사랑은 그렇게 자기 최면 같은 고독에의 중독일까요 정말.

꼬마요정 2012-03-26 10:15   좋아요 0 | URL
아아.. 사람의 감정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사랑하면 그저 사랑하는대로 그렇게 사랑하면 좋을텐데 그게 어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