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방대수 옮김 / 책만드는집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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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이 지나고 또 봄이 가고,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고 그렇게 세월이 더해간다. 그 기나긴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한 여자가 있었다. 어떤 약속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야속한 연인을 순수한 사랑과 무한한 믿음으로 무장한 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 솔베이지.

 

여기 솔베이지와 닮은 듯한 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여 기다림 대신 다가섬을 선택한 남자, 개츠비.

 

개츠비에게, 저 쪽 너머에 일렁이는 초록색 불빛은 이루고 싶은 꿈이다. 그 초록색 불빛들 속에는 데이지가 있고, 돈이 있고, 상류 사회가 있다. 사랑하는 데이지가 있는 그 상류 사회로 들어가기 위해 개츠비는 꿈을 꾸고, 환상을 쫓는다. 그리고 그 환상은 현실이 된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오기 직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전쟁 특수, 끝없이 이루어질 것 같은 산업의 발전은 사람들을 방탕하게 만들었다. 금주법은 유명무실했다. 개츠비의 저택은 주말마다 술과 사람들로 가득 찼다. 데이지의 남편 톰은 어딜가나 술과 함께다.

 

자신은 명문가 출신으로 옥스퍼드대를 나왔다고 주장하는 개츠비. 어떻게든 상류사회에 끼어 데이지가 자신을 인정해 주기를,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개츠비는 연기를 한다. 자신의 출생을 지우고, 자신의 부를 상속받은 재산으로 바꾸고, 롱아일랜드에 거대한 저택을 사고, 온 집안을 명사들로 채우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신은 상류 사회로 진입했다고, 이제는 그들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츠비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랑하는 연인 데이지에게조차도 말이다.

 

소위 상류층이라는 사람들은 개츠비의 저택에서 그의 호의는 다 받아들이고, 뒤에서는 그가 밀수업자라는 둥, 살인자라는 둥 그의 성공을 질시하고, 그의 부를 조롱한다. 그들만의 리그에 개츠비가 들어설 곳은 없다.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야." 그녀가 흐느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굴을 파묻은 양팔에 잠겼다. "너무 슬퍼. 한번도 이렇게,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은 본 적이 없거든."

 

상류층 사람들이란 그따위 사람들이었다. 데이지, 오직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겹게 힘겹게 다가 선 그의 사랑보다 비싼 영국제 셔츠에 더 감동하는. 혹은 톰처럼 부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여자를 탐하는. 그러면서 자신의 부인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혐오하는. 사람을 치여 죽여놓고서도 그 죄를 떠넘기고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떠나버리는.

 

개츠비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살인죄를 뒤집어 쓰면서까지 절박하게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소중한 건 사랑과 같은 감정보다는 타인의 시선, 상류층 인사로서의 지위, 멋진 영국제 셔츠 따위였다.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개츠비는 그 사랑을 멈출 수 없다. 오히려 그 무가치함을 감내할 뿐이다. 목숨을 내던지면서까지.

 

빙그르 핏빛 원을 그리며 도는 튜브 안에서 개츠비는 행복했을까. 사랑하는 이를 대신할 수 있어서.

 

"내일이 되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 어느 해맑은 날 아침에……. 그렇게 우리는 과거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가면서도, 흐름을 거스르며 배를 띄우고, 파도를 가르는 것이다."

 

 

방탕한 삶으로 막대한 재산을 날리고 고향으로 돌아 온 페르귄트는 백발이 되어서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솔베이지의 사랑에 감격한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릴 때까지 함께 하여도 모자랄 그 시간을 허비한 그는 그래도 행복했다. 사랑하는 이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그녀의 손을 잡고 눈 감을 수 있어서. 삶을 함께 하지 못했더라도 죽음은 함께였다. 솔베이지의 기다림은 그와 함께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면서 사랑으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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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사랑의 여인을 만나기 위해 오로지 그 딱 한 명을 만나기 위해 집에서 자주 파티를 열었던 그 마음. 그 남자 주인공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는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어디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사람은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어."라는 문장을 넣었더라고요.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게 되었어요. 이 책은 지독한 짝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 독자라야만 공감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을 듯해요.

저는 개츠비의 마지막 장면, 쓸쓸한 장례식장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베풀었건만 죽을 땐 와 보지 않는 사람들의 몰인정... 현실 반영 같았어요. ㅋ 잘 읽고 가요.

꼬마요정 2012-04-17 23:57   좋아요 0 | URL
정말 그의 장례식장은 허무함 그 자체였습니다. 닉이 없었다면 개츠비라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죠. 마치 신기루처럼 말이죠. 여전히 가난한 마을에서 개츠의 아들로 혹은 요트에서 데이지를 바라만 보는 남자로 남아있는 건 아닌지...

데이지와 톰... 이 두 사람은 정말 짜증났어요. 그들은 우리 현실 속 저 높은 곳에 있죠.. 아.. 읽고 나니 우울해졌더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