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과 상금

 

 

스피트 스케이트 5000미터에 출전한 이승훈 선수가 12위로 경기를 끝내자 그가 한 말은 " 죄송합니다 ! " 라는 짧은 답변이었다. 그러자 모 정치인이 60억 인구 중 12위'이니 그 성적 또한 대단한 성적이라고 그를 위로했다. 여기저기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라는 응원이 이어졌다. 옛날처럼 메달 색깔에 환장하는 천박한 태도'는 아니어서 보기 좋은 풍경이기는 하지만 그닥 바뀐 문화는 아닌 것 같다. 예의상 던지는, 영혼 없는 멘트 같았다. 마치 생각없이 던지는 " 식사하셨어요 ? " 라는 인삿말처럼 들린다.  금메달이라도 따면 물 먹은 습자지처럼 흐느끼거나 뭍 밖의 문어발처럼 흐느적거리며 앵앵거린다. " 장하다, 대한의 아들 딸들아 ! "  누누이 말하지만 승부욕과 애국심'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승부 < 慾 : 욕심 욕 >은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애국 < 心 : 마음 심 > 은 이타성에 뿌리를 둔다. 황영조 추문에서 알 수 있듯이,

 

황영조 ( http://blog.naver.com/bangton/20029275664 ) 는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도덕성'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 효율적 측면에서 보자면 " 1/60억 선수 " 에 대한 호들갑은 비효율적'이다. 우리가 금메달을 딴 영웅에게 열광할 때 그 뒤에는 노메달에 그친 선수들이 겪어야 할 슬픔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 1명의 영웅을 위해서 나머지를 희생해야 하는 구조가 바로 금메달 신화'이다. 이상화 선수가 1등을 했을 때, 그녀는 감격에 겨워 울먹거렸는데 나는 이 풍경이 생경스러웠다. 그녀에게는 적수가 없었다. 그녀가 우아한 날개를 단 날치'라면 나머지는 오징어'였다. 모든 대회를 휩쓸었고 최근 대회에서는 세계 신기록을 3회 연속 이룩했다. 그것은 브라질 국가대표 팀과 베트남 국가대표 팀 간에 벌어지는, A매치 경기만큼이나 뻔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울었을까 ? 그동안 참고 인내해야 했던 훈련 과정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지옥의 훈련 레이스'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헬 오브 지옥'이 아니었던가. 올림픽 경기를 볼 때마다 늘 보게 되는 것은 한국 선수들의 눈물이다.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감격해서 울고 은메달을 따면 억울해서 운다. 오히려 동메달을 따면 환하게 웃는다. 여기에는 " 조금만 더 잘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 라는 석패의 한이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나라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기뻐서 웃고, 은메달을 따도 기뻐서 웃고(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동메달을 따면 메달을 땄다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웃는다. 한국 선수들이 우는 이유에는 " 몰빵 " 이라는 경쟁 시스템 때문이다. 1등을 하면 다 가지지만 순위권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들은 은갈치보다 은은하고 금 같이 빛나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 또다시 4년이라는 지옥 훈련을 경험해야 한다. 두 주먹 불끈 쥐며 다시 한번 다짐을 하지만 여기에는 캄캄한 절망과 그 절망을 애써 위로하는 희망이 반반 섞인 감정이리라.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게 되면 의례 뉴스 데스크에서는 뻔한 말들을 쏟아낸다. 여러 단체에서 포상금이 지급된다는 기사이다. 이 단체 저 단체, 이 기업 저 기업, 혹은 개인 기부까지 이어진다. 매우 이상한 풍경이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가 포상금이라는 당근으로 선수들을 독려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이 어긋나는 태도이다. 우승하면 돈을 준다 ?! 바로 여기에 서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 웃고 은메달을 따도 웃고 동메달을 획득해도 웃는 이유가 있다. " 동계 스포츠의 강국으로 꼽히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라도 단 한 푼의 포상금을 받을 수 없다(한국일보 발췌) " 고 한다.

 

여기에 " 미국도 금메달을 받는 선수에게 단 2만5,000달러의 보너스만을 지급할 뿐이다. 또 오스트리아는 별도의 포상금 대신 17조각으로 된 은화를 주는 것 " 으로 나타났다. 속물처럼 말하자면 우승해도 얻는 게 없다는 말이 된다. 그들은 오로지 우승이라는 영광을 얻고자 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차지해도 그닥 손해를 볼 것은 없다. 금메달을 딴다 해도 고작 꾀죄죄한 수고비가 전부이니 말이다. 국가, 단체, 기업, 개인 기부자가 금메달 선수에게 몰빵하는 풍경을 본 한국인에게는 이 풍경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폴린 스웨덴 올림픽위원회 대변인은 블룸버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1년에 1,100만달러(약 118억원) 이상을 훈련비, 선수들 장학금 등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은 모든 포상과 혜택을 경기 후 우승을 한 선수에게 몰빵을 하는 반면 스웨덴 같은 국가들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메달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몰빵의 설움이 없다 보니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스웨덴이 될 놈(들)에게 골고루 투자한다면 한국은 된 놈'만 밀어주는 시스템이다. 이 얼마나 얌체 같은 시스템인가. 그러니깐 한국형 올림픽 정신은 딱 한 놈에게만 몰빵하는 경쟁 시스템인 것이다. 국가나 기관 혹은 기업들이 된 놈에게만 밀어주는 이유는 전시 효과 때문이다. 상금이 많은 복권은 한 놈에게 몰아줄수록 금액이 올라간다. 사람들은 10명에게 2억을 주는 복권(A)보다는 1명에게 10억을 몰아서 주는 로또(B)에게 몰리는 법이다. 지출한 총 금액을 보면 A가 B보다 많고 그만큼 상금을 탈 기회도 더 많지만, 사람들은 10억 상금에 몰리게 된다. 돈을 지불해야 하는 주최측 입장에서는 로또 시스템(B)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상금도 적을 뿐더라 복권이 팔리는 양 또한 A 판매량을 압도한다.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포상금이 몰리는 현상은 한국이 문화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 될 놈 > 은 거들떠도 안 보면서 < 된 놈 > 만 러브'하는 방식은 참 얍삽한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인사 관리 시스템'이다. 기업들이된 놈'을 영입하려고 하는 전략'을 두고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국가가 나서서 < 된 놈 > 에게만 러브하면 재앙이 된다. 길게 설명 안 하겠다.  다음은 이번 대회 국가 포상금 순위'이다. 대부분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탈리아와 한국이다.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두 나라'다.

 

카자흐스탄(25만달러ㆍ2억7,000만원ㆍ1위),  라트비아(19만2,800달러ㆍ약 2억800만원ㆍ2위),  이탈리아가 18만9,800달러(약 2억500만원ㆍ3위),  벨라루스(15만달러ㆍ약 1억6,000만원ㆍ4위),  에스토니아(13만8,500달러ㆍ약 1억5,000만원ㆍ5위),  러시아(11만3,200달러ㆍ6위)...  한국 (6만2,000 달러ㆍ6,700만원ㆍ10위)  공교롭게도 이들 나라들은 민주주의적 절차가 부실한 국가라는 공통점도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하면 부정부패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 한국과 이탈리아는 문화적으로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가족주의 문화인 나라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하고 비민주적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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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2014-02-1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맞아요 체육몰빵시스템은 전부터 유명하고 돌려먹기도 있었고. 게다가 체육자체가 전국민 생활스포츠에서 좀 잘 한 다는 사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사법고시 마냥 올인에 올인을 거듭하는 거라. 제 생각에 여긴 몇 년,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아무리 교육 시스템을 바꾼다고 난리쳐도 학벌위주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상관 없는 것 마냥.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18   좋아요 0 | URL
외국은 보면 생활 체육을 통해서 실력이 있다 싶으면 뽑혀서 실력을 뽐내는 시스템이 많잖습니까. 스키 좋아하던 사람 중 실력이 출중하면 대표로 발탁되어 뛰는 시스템이지만 한국이나 중국 이런 나라는 아예 공장처럼 돌려서 훈련시키잔습니까... 한국 선수들이 우는 건 허무해서 일 겁니다. 금메달을 땄다. 어라, 그럼 다음에는 뭐하지 ?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요..

마립간 2014-02-1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스톱이 우리 나라 국민 성향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는 것 같은데, 대개 우리 나라 사회 문화가 몰빵, 올인 문화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체육계도 우리 나라의 한 부분인 것 뿐이죠.

재미있는 것은 (이것도 옛날? 이야기에 들은 이야기라서 법제가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사회 체육의 하나, 회사에서 법률로 강제 하는 (사원들의 건강을 위한) 체육 활동 규정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단지 법대로 지키지 않고 서류로만 처리하거나 요식 행사만 해서 문제이지요. 결국 사람의 가치관이 문제인 듯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28   좋아요 0 | URL
국가가 개인의 욕망에 간섭하는 게 한두 개가 아니지요. 간통죄만 해도 개인의 성생활을 간섭하는 대표적 예이고, 소고기 등급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국가가 뭔가 국민의 혓바닥을 고려해서 이게 좋은 거니 먹어라 말아라 합니까. 그 선택은 개인에게 맡겨야지요. 제가 보기엔 한국은 스물 브라더 사회인 것 같습니다.

푸르푸르 2014-02-12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될 놈인 페루애에게 몰빵하겠습니다
제 최대 가용치인 월 2회 술 사드리겠습니다
대신 나중에 잘 되시면 제게 월 4회 술을 사주시면 됩니다
어떻습니까 제 파격적인 제시가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29   좋아요 0 | URL
올 !!!! 좋습니다. 어서 날짜를 잡으십시요.
글고, 그냥 더치 페이로 합시다. 오쉬프 괜히 허세 부리지 마세요.
없는 형편 잘 압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푸르푸르 2014-02-12 17:43   좋아요 0 | URL
내가 다른 사람 술사주진 못해도 우리 곰발 몸보신 시켜주고 할 여력은 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 어떠십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52   좋아요 0 | URL
콜 !!! ( 전 그냥 분빠이하겠음.... 난 술 얻어먹는 체질은 아님 ! )

푸르푸르 2014-02-1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페루애를 위한 시 한편을 지었습니다

부디 제 선물을 거부하지 마시길

~~~~~~~~

페루애가 자신의 머리 속엔 똥만 가득 차 있다고
술을 마시며 운다

똥을 쌀 때마다
텅 텅
머리 속이 비어지는 것 같아
무섭다

무서움에 술을 마시고 또 마신다
똥대신 피가 나온다
내 머리 속에 똥대신 피가 흐르는 것 같아
좋다

같이 술을 마시는 페루애의 바지에도 피가 묻어있는 게 보인다
그도 웃고 있다

~~~~~~`

어떻습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57   좋아요 0 | URL
음... 시가 무척 좋네요 !
치질 환자의 처절한 절망이 있어 좋군요.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죠.
대장항문과 의사가 예쁜 여자 의사'여서
정말 당황했던 기억을...

이 시는 < 피 > 라는 격정적 시어로 그 당황스러움을 잘 표한하신 것 같습니다.
시인이 쓴 시이므로 이게 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참고로 대장항문과 의사들이 최고의 항문으로 치는 아름다운 항문은 국화무늬 항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전 얼갈이배추 무늬'였습니다.


2014-02-12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2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2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14-02-1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될 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된 놈만 러브하는 방식...... 참 이런 문화는 어떻게 수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오늘 하루 종일 이상화 얘기만 나오더군요. 이상화 선수에게는 얼마든지 경의를 표해야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한 인물을 우상화/신비화/상업화하고, 더불어 신파가 곁들여진 인간 극장 만들려는 모습에는 정말로 구역질이 나더라구요. 대체 이게 뭐하는 건가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3 02:07   좋아요 0 | URL
하루 종일 이상화'에 대해 방송할 줄은 알았지만 여전히 이 관습은 바뀌지 않는군요.
금메달이 곧 애국심이 되는 이 이상한 틀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게 도통 바뀔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한동안 인간극장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습니다.

밤하늘의별소리 2014-02-12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육 시스템도 문제지만요, 저는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는지라 우리나라의 [스포츠선수를 평가하는 것]과 [육체 노동자들을 평가하는 것]의 괴리를 생각해보았어요.

올림픽 몇 일 전에 [다큐 3일]보는데, 연탄 배달하는 아저씨가 '힘들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에 '내가 귀가 안좋아서(청각장애) 공부를 못했지. 그래서 젊었을 때는 노가다도 하고 지금은 연탄배달을 해요..' 이렇게 답변을 하시더라구요.

저 답변에는 (정신성과 가까운) 공부를 못해서 (육체성과 가까운) 막노동, 연탄배달을 한다는 '정신성'이 '육체성'보다 더 가치있고 멋있는 직업이라는 가치평가가 개입되어있잖아요. 근데 그건 아저씨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렇게 평가하잖아요. 육체적으로 일하는 노동은 저평가하고 정신적으로 일하는 노동은 찬양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전 한국이 육체적 노동자를 괄시하는 경향이 좀 더 심하다고 보거든요. 또한, 다른 시대에도 육체성보다 정신성을 우위에 두었겠지만, (제 짧은 역사지식에 비추어 보면) 그 때는 지금처럼 육체성이 최대화된 스포츠에서 일 등 하는 사람을 지금처럼 숭배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 최고 스포츠 스타들이 받는 대우를 보면 어마어마하지요. 육체성이 최대화된 스포츠를 하는 사람은 떠받들여주고, 육체성과 관련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과소평가하는 게 저는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너무 과도한 해석일까요....? ㅠㅠㅎ

곰곰손 2014-02-12 22:5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실례지만 잠깐 끼어들게요.
노동을 정신성과 육체성으로 구분지어 생각하시군요.
그런데 저는 스포츠가 (밤하늘별소리님이 말씀하시는)육체성 노동의 분류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좀 잘못되었단 생각이에요.
소위, 한국에서 공부못하는 애들이 '예체능' 한다는 관념과 같은?
저는 스포츠가 그 어떤 지능적인 두뇌를 사용하는 직업보다
정신성,이 요하는 전문분야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한 스포츠 스타 - 영웅을 사람들이 숭배한다면..
그건 그의 정신에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밤하늘의별소리 2014-02-13 01:01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이 댓글을 적다가 제 글이 스포츠라는 운동에서 정신성을 배제한 것 처럼 읽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완전한 정신성만 갖춘 노동이 있을 수 없고, 완전한 육체성만 갖춘 노동이 있을 수도 없구요. 이건 과도한 이분법적인 생각인 것 같아요...

저는 곰곰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스포츠,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가치를 부여해야한다고 보아요. 스포츠에 육체성 뿐만 아니라 정신성이 필요한 것처럼, 겉으로는 정신적 노동으로 보이는 것도 육체성을 필요로 하기도 하구요.

위의 댓글에서는 '예체능'에 대한 제 의견보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던가, 연탄 나르시는 분들, 청소하시는 분들 등등의 노동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지점에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좀 더 컸다고 할까요.

아버지께서 전문대학교에서 일을 하시는데요,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전문대에 대한 고민을 많이하셔서 저도 '예체능'보다는, '기술'을 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이것도 뭔가 모호하네요..ㅠㅠ)

[+ 덧, -> 상위권 학생들만 인정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대부분 중,고등학교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어떻게하면 '영어,수학,국어 등등'에 관심을 가지게 할까-라는 방안을 모색하려고해요. 저는 물론 공부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지만, '성적 안나오는 학생'에게 '성적이 잘 나오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어쩌면 '성적이 안나오지만 다른 것(ex. 공장에서 노동하거나, 청소하는 등등)'을 하면서 살기를 결심한 케이스를 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만들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

횡설수설하지만, 저는 스포츠에 정신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만, 스포츠는 -다른 직업보다- '육체성'이 최대화되어있잖아요, 그런 '육체성'에 대한 뛰어남을 인정해주는 한국에서 '육체성'을 활용한 일반 노동은 상대적으로 괄시한다는 그런 생각에서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음.. 곰곰손님께서는 스포츠가 (제가 위에서 분류한) 육체적 노동보다는 정신적 노동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육체적 노동일지라도 결코 정신적 노동보다 가치를 폄하할 수 없다는 입장이예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의 의견은 '스포츠'보다는 '일반적인 육체적 노동'들에 더 방점을 찍고 있어요. (주제에서 너무 어긋난건가요?..ㅠ)

(앗, 그리고 육체노동으로 여겨지는 일반 노동들에서도 정신성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너무 거칠고 무식하게 분류한 것 같기도하네요..)

제가 아직 생각이 정리가 안되었고 글솜씨가 부족해서 오해가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절대 예체능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3 02:59   좋아요 0 | URL
노동자를 폄하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더 심각한 것은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를 불온한 것이란 인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노동자이면서 스스로 노동자 계급을 혐오하는 부류가 많습니다. 저는 선거가 기본적으로 계급 연대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강남 3구가 강남 3구를 대표하는 오세훈을 찍었을 때, 그 행위에 대해 비난했던 다른 사람들을 저는 비난했죠. 강남 3구는 강남 3구를 대표하는 사람을 찍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문제는 스스로가 가난한 노동자이면서도 오세훈을 찍은 사람들이죠. 그것은 연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

개인적으로 올림픽은 기본적으로 힘을 겨루는 경기잖아요. 이 힘이 현대 올림픽에 와서는 마인드 컨드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서 결국에는 힘'이 반이고 정신이 반인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결국 반반인 셈이네요. 그러므로 운동선수를 정신력만을 강조할 수도 없고 힘만을 강조할 수도 없는 그런 영역에 도달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뿌리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힘과 기술이 바탕이 되는 위에 정신 훈련이 더해지는 것이니 말이죠. 흠흠

+

한국만큼 육체 노동자를 무시하는 g20 회원국은 없을 겁니다. 노동 경시가 만들어낸 풍경인데 정말 부끄러운 자화상이죠. 종종 생홀의 달인에 나오는 찐빵 기술자 보면 손으로 밀가루 반죽을 떼어낼 때 보면 정확히 600그램을 만드시잖아요. 고런 거 보면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노동에 대한 대우가 필수인데 대우는커녕 우습게 보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samadhi(眞我) 2014-02-13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갈이배추문 항문소유자 발님의 아픈 사연이 절절히 와닿네요. 잘 아실테지만 질긴 채소와 좌욕, 반신욕이 최고입니다.
세계대회 때마다 환기되는 문제이죠. 군사적 전시적 정책(?)에 익숙해져, 죽어라 애쓴 그들에게 유독 가혹한 군중심리가 얼마나 잔인한지. 군중심리의 잔혹성을 전 영화 말레나에서 보았습니다. 모니카 벨루치가 너무 이뻤던 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3 08:24   좋아요 0 | URL
얼갈이배추였으면서도 항상 국화무늬'라고 뻥을 치고는 했죠.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전부 제 항문이 국하무늬인 줄 알고 있습니다.
반성 많이 했어요.
말레나 보셨군요 ? 이 영하에서 벨루치 정말 예쁘더군요 !
 

 

 

 

 

 

 

허벅지와 허리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확실히 일란성 쌍둥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명박은 창을 하고 박근혜는 북채를 든 고수 같다. 아, 하면 어, 하고 와, 하면 우, 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정권을 향해 우우, 하면 정권은 시민을 향해 에에, 한다.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의 쌍팔년도 만담 같다. 와우 ! 어찌 이리 장단이 잘 맞누 ? 하는 짓마다 부덕의 소치요, 오만의 소치'다. " 소치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스포츠 서사를 휴머니즘으로 이상화'하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이왕 " 이상화 " 라는 말이 나왔으니 이번 소치 올림픽에 참가한 이상화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인 이상화의 허벅지 둘레가 60cm라고 한다. 처음에는 허벅지 둘레를 허리 둘레'로 착각하고는 생각보다 잘록한 허리 사이즈'에 놀랐는데 알고 보니 허벅지 둘레'라고 해서 더욱 놀랐다. 이 정도면 날씬한 여성의 허리 사이즈가 아닌가 ?

 

2012년에 측정한 측정값에 의하면 " 허벅지 둘레는 60cm로 2009년 측정 때의 57㎝에 비해 3㎝가 늘어난 반면 체중은 대신 2010년에는 65.6㎏, 2012년에는 63.2㎏, 그리고 지금은 62㎏로 계속 줄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체지방을 줄여 몸은 가벼워졌지만 허벅지 근력은 더욱 강해졌기에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낸다는 의미 " 라고 한다. 하체는 굵어지고 상체는 날씬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좀더 빠른 스피드를 위해서 체형이 진화한 것이다. 문득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가 생각났다. 치타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몸무게를 줄여야 했다. 몸무게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뱃살을 줄이는 것이다. 그 결과가 뒷다리 근육은 커지고 허리는 뱃가죽이 허리에 닿을 정도로 잘록해지기 시작했다. 다리 근육이 비대해지고 허리가 잘록해서 몸무게가 감량되다 보니 치타'는 먹잇감인 가젤보다 빠른 속도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해서 항상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냥에는 여러 돌발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사냥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사냥에 성공했다고 해도 먹잇감을 하이에나 무리나 자신보다 큰 맹수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뱃살을 최대한 빼서 체내 지방 축적을 최소화하다보니 에너지 비축이 안 된다는 점이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마른 체형은 다른 짐승에 비해 굶으면 쉽게 지친다.  뱃살이 넉넉한 하이에나는 사냥감을 놓쳐도 지구력 하나로 버틸 수 있지만 치타는 사냥에 실패하면 다음 사냥에서는 첫 번째보다 속도가 떨어져 그만큼 사냥 성공 확률은 더욱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축적된 지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냥에 몇 번 실패해서 굶게 되면 치타는 먹잇감을 구하는 데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치타의 진화가 보여준 딜레마'다. 이처럼 진화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담론은 마치 치타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화한 것과 유사하다. 박정희 때에도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해서 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더니, 지금도 여전히 성장의 속도인 성장률이 정체된다 싶으면 국민에게 허리띠부터 조이자고 요구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기적 같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이유는 국민의 고통과 희생을 담보로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국가의 눈부신 성장이었다. 하지만 이 성장은 비효율적'이다. 99%의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한 대가는 가난이었고, 그 혜택은 1%가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속도의 신화를 믿는다.

 

가젤을 잡기 위해서는 속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발빠른 가젤을 잡기 위해서는 더 발빠른 속력을 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쟁력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짐승은 잘빠진 치타의 허벅지가 아니라 하이에나의 똥배'다. 100미터를 6초대에 돌파하는 치타에 비하면 하이에나는 한없이 느리지만 지구력이 뛰어나서 먹잇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갈 수 있다. 21세기가 간절히 원했기에 존재했던 조용필은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고 말하지만 이 현실성 없는 낭만은 그닥 좋아보이질 않는다. 성장률이라는 속도가 가파르게 올라야 행복도 가파른 상승을 할 것란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그래프 상의 화살표가 아찔한 수직으로 치솟는다 해도 그 수직성은 오롯이 1%를 위한 지표일 뿐이다.

 

이처럼 성장과 속도를 이상화하는 담론은 쓰레기통에 쳐박혀야 한다. 이상화'라는 말이 나와서 뜬금없이 하는 소리지만 이번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스피트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가 빙판을 씽씽 달렸으면 한다. 도망치는 가젤을 쫓는 치타처럼 말이다. 치타의 속도를 비판적으로 다루다가 뜬금없이 이상화 선수를 응원하며 치타처럼 달려라, 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이게 다 내 부덕의 소치라 생각하시길 ! 여튼... 이상화 선수 파이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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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12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과 상관 없지만 제 글에도 치타가 제목으로 들어가는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치타와 사슴'

http://blog.aladin.co.kr/maripkahn/792048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19   좋아요 0 | URL
치타와 사슴...ㅋㅋㅋㅋ 아, 이거 뭔가 시작이면서도 동시에 좀 웃긴 조합 같기도 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4-02-12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선수 인기연예인 만들기 대작전 돌입이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19   좋아요 0 | URL
이젠 몇 달 간 아주 운동선수들 연예 프로에 잔뜩 나올 겁니다.

엄동 2014-02-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예지력"이라고 해야 하나
제목만 보면 이상화 선수의 활약을 예상하신 줄 ㅋ
여튼 찌릿찌릿한 간밤이었습니다

앞뒤가 안맞는 듯 해도
착착 달라붙게 풀어내는 님 능력 하나는
올림픽 메달권이지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7:20   좋아요 0 | URL
이상화 정말 잘 달리더라고요. 치타 같았습니다.
참 또하나의 약속 보셨나요 ?
앞뒤가 안 맞을 때는 무조건 억질 맞춰야 함니다.. 후후.

감상평 좀 올려주세요 ~

엄동 2014-02-1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예상하신 바와 같아요.
팩트를 다루고 있는, 그래서 중간중간 수없이 욱"하게 하는 영화였어요.
주변인에게 보기를 강권하고 있는 중이여요

영화보는 내내 숨이 탁탁 막히는 기분이 들었는데.
엔딩크레딧 올라갈때 결국 눈물 나더라구요.

실제 황상기님과 고 황유미양의 모습에 이어
끝없이 올라가는 개인투자자분들의 이름들에 그만.

보셔야 할 영홥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18:25   좋아요 0 | URL
여기 제 이름도 올라가 있을 겁니다. 제 이웃 몇몇과 함께 여기 동참했거든요.
개인투자자 올라갈 때 마치 변호인 마지막에 호명에 일어나는 부산지역 변호인 같죠 ? 후후.
저도 내일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samadhi(眞我) 2014-02-13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상화언니야의 탐스런 허벅지를 가져보고 싶어요. 110kg 아령을 들어야 가능하다면 바로 꼬리내리겠지만.
김구가, 여운형이 그리고 독립을 위해 중공군에서 스러져간 조선의 청년들 민주화를 위해 죽어간 이땅의 청년들이 통탄할 일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3 08:27   좋아요 0 | URL
110킬로 아령이 어디 있습니까 ? ㅋㅋㅋㅋㅋ. 바벨이라면 모를까요. 아령은 말 그대로 작은 거 고거 말하는 거예요. 그나저나 이상화라는 선수는 정말 매력이 철철 넘치더군요.

samadhi(眞我) 2014-02-13 11:58   좋아요 0 | URL
바벨이 갑자기 생각이 안나서 아령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
그쵸 난 사람은 다르긴 다르단 말이죠. 어린 나이인데 대단해요.
 

 

 

 

 

디지털 베토벤 사무라고치 사기 사건,

                                         그리고 코난 도일.

 

 

 

 

 

 

지금 일본 열도는 뜨겁게 술렁이고 있는 모양이다.  천재 음악가'라며 칭송받던 작곡가 사무라고치'가 알고 보니 " 카게무샤 ( 대역 ) " 였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그는 얼굴 마담이었고 실제 작곡가는 니가키 다카시'라는 대학 시간 강사'였다. 니가키 다카시는 무려 18년 동안 사무라고치'에게 곡을 제공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단체로 아, 했다. 한때 사기꾼 황우석 때문에 아아, 하고 신정아 때문에 아아아, 했던 경험이 풍부한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대국민 사기극이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이다. 내가 관심을 가진 인물은 사무라고치 마모루가 아니라 니가키 다카시'였다. 그는 왜 자신이 제공한 곡으로 성공해서 부와 명예를 모두 얻은 사기꾼 사무라고치'에 대해서 18년 동안이나 곡을 제공하면서 침묵했을까 ? 푼돈이나 받으면서 말이다. 어쩌면 이 사건의 주인공은 사무라고치가 아니라 니가키 다카시'인지도 모른다.

 

똑똑한 탐정은 범죄 현장을 찾기 전에 책상 위에서 진범을 밝혀내고는 한다. 나는 이 사건의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몇몇 인터넷 찌라시 정보만 가지고 수수께끼'를 풀어내기로 했다. 니가키 다카시'는 왜 18년 동안 침묵했을까 ?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사무라고치의 간략한 영웅 서사'가 전부다. 중앙일보 기사를 보니 " 자전적 수기에 따르면 그는 네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독학으로 작곡법을 익혔다. 열일곱 살 때 원인 모를 편두통 등을 겪으며 청각 장애를 안게 됐다. 청력 상실 뒤에는 절대 음감과 손으로 느끼는 진동에 의존해 작곡을 계속했다고 했다 " 고 적혀 있다. 이 성장 스토리는 역경을 딛고 성공한 전형적인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를 닮았다.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작곡을 배우고, 발병 이유를 알 수 없는 편두통으로 청각을 잃은 뒤에 찾아온 절대 음감'은 잘빠진 시나리오 대본 같다.

 

사무라고치가 살아온 길은 베토벤의 삶과 유사한 것이 아니라 베토벤이 되고 싶었던 사내가 만들어낸 판타지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대국민을 속일 만큼 매끄럽게 봉합된, 이음새 없는 봉합이 가능한가에 있다. 천부적인 사기꾼 기질이 있어 보이는 사무라고치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잘생긴 얼굴에, 연기력도 뛰어났으며,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열정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에게 없는 것은 작곡을 할 수 있는 음악적 재능이었다. 그에게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있으나 음악적 재능은 없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무라고치는 얼굴은 되는데 노래 실력은 형편없는 가수 지망생'이었던 것이다. 반면 18년 동안 대리 작곡을 했던 니가키 다카시'는 사무라고치 마모루'와는 달리 노래 실력은 뛰어난데 외모에는 자신이 없는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무라고치가 은밀한 제안을 했을 때 그는 한 번쯤은 잘생긴 사무라고치 마모루를 내세워서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사무라고치 마모루'가 대중들로부터, 그리고 평단으로부터 이토록 열광적 지지를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별 볼 일 없는 것이라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추측건대, 그는 매우 심한 외모 컴플렉스'에 시달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대중들 앞에 나서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사무라고치 마모루가 대리 작곡을 부탁했을 때 그는 흔쾌히 그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무라고치에게는 니가키의 재능이 필요했고, 니가키에게는 사무라고치의 연출력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사무라고치'는 음악가보다는 연극 연출가에 능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걸음걸이와 검은 선그라스를 쓴 코스튬 플레이'는 얼핏 일본 대중에게 인기가 좋은 자토이치(맹인 검객) 서사 속 주인공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코스튬 플레이'는 고독한 영웅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주었다. 그것은 그가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2세라는 점과 겹치면서 묘하게 어울리는 연출이었다. 일본 대중들이 열광한 것은 니가키 다카시의 작곡이 아니라 사무라고치 마모루가 만들어낸 원폭 폐허 속에서 우뚝 솟은 고독한 영웅 이미지'였을 것이다. 사무라고치는 일본 대중이 원하는 욕망을 정확히 읽었다. 어쩌면 둘은 동성애적 관계인지도 모른다. 이 이상한 짝패 놀음은 정확하게 코난 도일과 셜록 홈즈의 애증관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개업의였던 코난 도일은 병원을 찾는 환자가 없자 용돈이나 벌어볼까 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 작품이 셜록 홈즈'였다.

 

하지만 < 창조주( 도일 ) 대 피조물( 홈즈 ) > 의 관계는 역전된다. 홈즈 시리즈가 대중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얻게 되자 코난 도일은 질투에 사로잡혀서 홈즈를 죽인다. 이 에피소드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라 다들 아실 것이다. 니가키와 사무라고치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처음에 니가키는 별다른 생각없이 작곡가 사무라고치가 제안한 캐릭터를 창조하지만 이 카게무샤가 대중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얻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가 부와 영광을 누리며 영웅 칭호를 받자 니가키'는 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자신이 창조한 카케무샤에게 사망 선고를 내린다. 애증의 결과'이다.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질 진실이 무엇이건 간에 분명한 것은 둘은 서로를 욕망했다는 점이다.

 

라캉의 공식을 적용하자면 서로에게 필요한 욕망을 채우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 짝패는 모두 서로 소문자 a다. 내가 이 사건에 대해 흥미를 갖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이야기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조지 로메로가 93년도에 영화로 만든 < 다크 하프 > 와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인공 테드'는 대중들로부터는 외면받지만 평단으로부터는 그 실력을 인정받는 가난한 소설가인데 그는 생활고를 벗어나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위해 조지 스타크'라는 이름으로 대중 소설'을 쓰는데 이 작품이 이 대중으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얻는다. 하지만 대중의 열광적 지지와 독자를 속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테드는 허구 속 작가이자 분신인 조지 스타크를 사고로 위장해서 없앨 궁리를 출판사와 계획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허구 속 인물이자 작가의 카케무샤인 조지 스타크가 실제로 등장하여 테드를 위협한다는 내용이다.

 

스티븐 킹은 테드와 조지 스타크의 관계를 뱃속에서는 쌍둥이였으나 기가 강한 쪽이 기가 약한 쪽을 빨아들여서 혼자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것으로 둘의 관계를 암시한다. 그러니깐 유령 작가인 조지 스타크는 뱃속에서 사라져버린 테드의 반쪽이라는 것이다. 사무라고치와 니가키'도 이와 유사한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둘이 하나가 되어야 완벽한 재능을 발휘하는데 서로 나뉘어져서 서로의 결핍으로 작용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소설 속 테드 또한 사무라고치처럼 편두통을 앓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기가키는 사무라고치의 베니싱 트윈( vanishing twin ) 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사무라고치는 니가키의 잃어버린 반쪽인지도......

 

 

 

 

다크 하프 줄거리 요약 ▼

 
주인공인 새들러(새드)보몬트는 평론가에게 찬사를 대중에게는 무관심을 선물받은 작가이다. 그의 두번째 소설까지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그는 기나긴 슬럼프를 겪기 시작했고 이때 아내의 제안으로 필명을 사용해서 대중소설을 발표하게 된다. 필명은 "조지 스타크"로 어두운 과거를 가진인물로 묘사되며 "썩 좋지 못한 인간"으로 대중에게 인식된다. 하여튼 그가 그의 필명인 "조지 스타크"로 발표한 [머신 시리즈]는 대 성공을 거두고 영화화까지 되었다. 그러나 새드는 오히려 "조지 스타크"의 성공을 버거워 하며, 아내와 함께 조용히 살아가고자 한다. 마침내 아내는 쌍둥이를 출산하고, 대시 새드 보몬트 본인의 이름으로 새소설을 쓸 계획을 세우는 도중, 한 가난한 법학도의 추적으로 새드보몬트와 조지스타크가 동일인임이 들어날 위험에 처하자, 오히려 이를 이용하여 "피플"지에 대대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고 공식적으로 조지 스타크는 죽었음을 선포한다.

이 이후부터 갑자기 새드 주변인물-특히 조지스타크의 죽음을 공표한 인물..-들이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고, 첫 희생자가 나타났던 마을-새드의 별장이 있는-[캐슬록]의 "앨런 팽본"보안관이 사건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앨런팽본 보안관은 탈도 많고 말썽도 많은 "캐슬록"의 보안관으로 어느정도 초자연적인 일("캐슬록의 비밀","쿠조"..등)을 많이 겪은 인물이다. 아무튼 범죄현장에 덕지덕지 남겨져있는 새드의 지문및 혈액을 찾고 난 후, 새드를 체포하기위해 캐슬록에서 새드가 사는 [러드로우]로 온다, 그러나 범죄가 있었던 바로 그 시간 새드와 그 부인인 리즈는 집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 너무 완벽한 알리바이에 결국 승복하고, 그 사이에 발생한 다른 한건의 범죄에도 새드는 알리바이가 있었으므로 결국 포기한다.

처음 새드는 너무나 황당한 범죄에 당황하지만, 그의 주위사람들이 마구 죽어가면서, 이 범죄가 본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조지 스타크"를 없애버린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이다. 새드의 편집장과 그 부인(그들은 새드 본명의 소설을 권했었다), 스타크와 새드의 비밀을 파해친 협박범, 그 협박법에게 협력했던 출판사의 여직원, "피플"지 에서 그 "스타크"의 장례식을 가상으로 꾸민 여 사진작가와 기사를 썼었던 기자. 경찰은 "조지 스타크"의 소설을 좋아하는 광적인 팬으로 생각, 위의 사람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경호업무에 동원된 경찰마져도 범인에게 죽어버린다. 편집장의 부인을 죽이면서 살인범은 "새드"에게 전화를 하게 되는데, 이때 새드는 무언가 초자연적인 텔레파시가 범인과 본인사이에 통하고 있으며, 범인이 광적인 팬이아닌 "조지 스타크" 본인임을, 즉 그가 가상으로 만들었었던 조지스타크가 살아났음을 느낀다.

조지스타크는 새드에게 다시 조지스타크 이름으로 새 소설 [강철의 머신]을 쓸 것을 명령하고 새드의 아내와 아이를 납치하여 새드를 애초 스타크가 태어났었던 캐슬록의 별장으로 오도록 명령한다. 한편 앨런 보안관은 새드가 추리한 조지스타크 즉, 상상의 인물이 실제의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처음에는 믿지 못하나, 성문의 일치와 새드와 아내 리즈의 설득으로 조금씩 설득되어간다. 더구나 새드는 11살에 뇌수술을 받은적이 있으며, 그 수술했던 의사가 새드는 태어날때 쌍동이를 흡수해서 태어났고, 그 조직의 일부가 뇌에서 살아났으며, 11살 그 조직이 너무 커져서 수술을 받았음을 알게된다. 즉, 조지스타크는 새드의 상상물+새드의 죽은 동생의 유령인 셈이다.

한편 조지스타크는 점점 생명력이 약해지며 살이 문드러지고 썩어가게 된다. 혼자서는 소설을 쓸수 없는 그는 새드의 능력을 갈취하여 본인이 현실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마침내 앨런과 새드와 새드의 가족이 캐슬록의 별장에서 만나게 되고 파국이 시작된다.

-  줄거리 발췌,  illiya.egloos.com/182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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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라고치'가 귀가 어둡다면 니가키 다카시는 눈이 어두울 것이다. 이 말은 니가키 다카시가 눈이 어둡다고 해서 시각장애인이 아니듯이 사무라고치 또한 귀가 어둡다고 해서 청각장애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대범하게 대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절름거리는 걸음걸이는 < 유주얼 서스펙트 > 에 나오는 반전 주인공처럼 곧게 펴질 것이다. 사무라고치가 마초적 외양을 갖춘 반면 니가키 다카시는 그와 반대로 소심해 보인다. 추측건대, 니가키 다카시 또한 꽤 오랫동안 편두통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다. ( 아님 말고 ! )

 

 

사무라고치 마모루

 

 

 

 

 

 니가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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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 2014-02-1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곰발님.
이 글 재미있네요~
창조주와 피조물의 애증의 관계가 어찌 흘러갈지 궁금해지고요

뜬금없지만
다카시"는 만화 심야식당에 나온 캐릭과 비슷한 생김이네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0 14:44   좋아요 0 | URL
다카시..... ㅋㅋㅋㅋ, 정말 만화 캐릭터 같습ㄴ다.
이 사건 무척 흥미롭습니다. 영화 소설 같은 일이에요.
만약에 니가키가 자신의 이름으로 곡을 발표했다면
사무라고치가 얻었던 영웅 칭호를 얻으며 사랑받았을 수 있었을까요 ?
아마 평가의 절반은 사무라고치가 청각 장애인이며 히르시마 원폭 2세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사무라고치가 이요한 것이거요...

만화애니비평 2014-02-1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력이 있어도 조건이 없으면 힘들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0 14:45   좋아요 0 | URL
바로 그거예요. 히든싱어 모창자들 보았을 때도 그렇지만
노래 실력만 가지고 보면 좋은 가수는 엄청 많죠.
결과는 조건입니다.

달사르 2014-02-1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가키 입니까, 기가키 입니까. 둘 중 하나로 통일해주시와요. ^^

피조물의 역전과 창조주의 복수라. 마치 진짜 신과 인간의 관계 같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부정적) 관계의 정형 같기도 하고.

18년이면 정말 오랜 세월인데 말이죠. 늦었지만 지금에라도 진실을 털어놓으려 하는 다카시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0 14:47   좋아요 0 | URL
제가 급히 쓴 관계료.. 어느 순간 기가키가 되었네요. 니가키입니다.
아니 왜 기가키'라고 했지 ??!!!!

하여튼 매우 흥미로운 주제예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거죠.
사기꾼 사무라고치.... 음악적 천재성을 가지고 있으나 늘 열등감에 시달렸던 니가키....
이 둘이 만난거죠.

수다맨 2014-02-10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말씀해 주신 스티븐 킹의 소설이 참 쫄깃하게(!) 입맛에 와 닿네요. 읽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런 글 참 좋습니다. 단순히 선악의 관점에서 비난을 하시는 게 아니라, 두 명이 일종의 짝패이자,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보면서 논평을 하시는 모습이 역시 곰곰발님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0 21:2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옛날에 출간된 적은 있었다고 하던데 구하기는 힘들 겁니다.
전 영화로만 보아서 책 내용은 궁금합니다. 글구보니 이 소설 누가 좀 출간을 해줬으면...
킹 선집이 아닌 킹 전집이 나올 만도 한데 안 나오내요..

samadhi(眞我) 2014-02-11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무라고치라는 사람 참 배포가 크네요. 간떨려서 잠을 못잘 것 같은데 그토록 오랜세월 사기를 치는 대범함. 하지만 자신의 재능 없음에 얼마나 한스러웠을지. 니카기보다 더 불행한 영혼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03:07   좋아요 0 | URL
사기꾼 기질이 강한 사람은 점점 일을 키우잖습니까. 황우석이나 신정아를 보세요.
이들도 사무라고치 못지 않습니다. 희대의 사기꾼이에요.
 

< 7번 방의 선물 > 이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동네 바보 용구'가 천만 관객을 울린 것이다. 흥행의 열쇠는 무엇이었을까 ? 중년의 남성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가 봇물을 이루었으니 " 부성애의 재발견 " 인 것은 확실하다. 이 영화를 본 그날의 가족 풍경이 눈에 선하다. 다 큰 자식들은 아빠'를 쇼파에 앉히고는 이런 율동을 선보였을 것이다. "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 아빠, 힘 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 참새처럼 글썽거리면서, 물개처럼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부르는, 다 큰 딸은 커다란 가슴을 출렁거리고, 군대를 막 제대한 아들은 곰 같은 몸으로 촐랑거리면서, 아.... 이런 슬픈 가족의 풍경 ! 그런데 < 가족의 재발견 > 은 용구 아빠'에 의해 촉발된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내내 우리는 " 엄마가 필요해 ! " 를 외쳤다. 그 촉매제'는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였다. 이 책의 서평 란에는 온통 눈물 바다'다. 종종 " 배송이 빨라서 좋아요 ! " 라는 이상한 감상평이 올라오기는 하나 주류는 엄마에게 잘하자, 이다. 그러니깐 이명박 정부는 엄마의 재발견으로 시작해서 아빠의 재발견'으로 끝나는, 매우 독특하며, 꽤나 신파적인, 일일 드라마 가족극에 충실한, 복고 취향의 정권'으로 기록될 것이다. 각하는 (기업)프렌들리'가 아니라 (가업)페밀리'적이다. 각하는 말한다.  " 이 아빠는 욕 먹어도 좋다. 너희들은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 " 눈물이, 아..... 앞을 가린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4910  7번 방의 비밀 中

 

 

 


 

 

 

 

 

포데기 신파극의 한계.

 

 

 

 

 

 

 

 

복작복작한 것은 딱 질색'이다. 명절에 가족과 친척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와서 머리를 식힐 겸 혼자 설 연휴에 극장을 찾았다. 설 대목 영화관 풍경이 대부분 그렇듯이 원하는 시간대에 원하는 영화를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 취향 " 이 아닌 " 편의 " 를 고려해서 고른 영화가 < 수상한 그녀 > 였다. 스크린 5개를 보유한 동네 소극장'인데도 < 수상한 그녀 > 는 3개 관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스크린 수는 늘어났지만 다양한 영화를 접하기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 신나게 웃기다가 마지막에 가서 울리는, 그 독특한 한국 코미디 영화겠지 ? "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영화 < 빅 > 이 꼬마 사내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겪는 성장통이라면 < 수상한 그녀 > 는 칠순 노모가 스무 살 꽃다운 처녀가 되어서 겪는 성장통을 다룬 영화였다.

 

몸이 바뀌었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는 전형적인 " 두근두근 체인지-서사 " 를 답습하는데 한국 코미디 영화답게 시종일관 웃기고 울린다. 여기에는 심은경이란 당돌한 배우가 능글맞게 연기하는 몫이 컸다.  심은경은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달뜬 허세가 보이지 않아서 좋은 배우'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미덕은 딱 여기까지'다. 성동일은 좋은 배우이지만 오말순의 금지옥엽 외아들을 연기하기에는 끼가 너무 많은 배우'다. 성동일은 충무로 영화판에서 내노라하는 걸출한 신 스틸러'인데 그가 연기한 외아들 반현철은 끼를 발산하기에는 너무 평범했다. 그리고 김슬기는 쓸데없이 진지했고, 반지하 역을 맡은 진영'은 지나치게 풋내기였다. 사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헛점은 배우들이기보다는 시나리오 자체에 있다.

 

영화 시작부터 여성 나레이터는 남성 욕망에 충실한 조크만 쏟아낸다. 10대는 < 농구공 > 이란다. 탱탱하고 탄력있어서 허공에 뜬 공을 수컷들이 잡으려고 안달하는 시기라고 말하고, 20대는 < 럭비공 > 에 비유한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나이 가지고 까부는 수작으로 보면 이제 30대 이후부터는 안 좋은 소리가 쏟아질 거란 예상을 쉽게 하게 되는데 이 예상은 늘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서 씁쓸하다. 30대는 < 탁구공 > 이다. 대시하는 수컷들은 줄어들고 그나마 한 놈이 달라붙는다고 붙인 조크다.  40대는 < 골프공 > 이다. 일단 보면 멀리 걷어찬다. 그 이후는 안 봐도 뻔하다. 만약에 이 글을 50대 여성이 읽는다면 나는 영화 속 오두리의 입말을 빌려서 발설한 50대에 대한 정의를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 당신은 피구공이에요. 피해 다니고 싶거든요 ! "

 

만약에 50대인 당신이 이 소리를 듣고도 희희낙락한다면 당신은 참.... 줏대 없는 여자'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성별이 궁금해진다. 나이 든 여성'에 대한 조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세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하긴 젊은 여성을 " 영계 " 라고 비유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문화이다 보니 40대 여성이 " 40대 여성은 골프공 " 이라는 멘트에 빵 터져서 웃고 박수 치는 것을 보면 공포스럽다. 적어도 당신이 여성이라면 그 웃음에 대해서 거부해야 한다. " 그냥 웃기는 조크를 심각하게 받아치는 당신이 이상하다 ! " 글쎄다, 오히려 나이 든 여성에 대한 조롱거리'를 코미디'라는 이유로 여유 있게 받아넘기는 풍토가 더 이상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저 멘트를 정치인이 술자리에서 말했다면 다음날 조간 신문에 일파만파, 점입가경'이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고 나왔을 것이다.  

 

나경원 씨가 모 강연에서 " 1등 신붓감은 예쁜 선생님, 2등 신붓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붓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붓감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 " 이라고 말해서 불같이 화를 냈던 당신은 왜 영화 속 여성 비하 발언에는 화를 안 내는지 모르겠다. 나경원이 순위를 매긴 숫자에 0 를 더하면 고스란히 영화 속 농담이 된다. 10대 신붓감은 1등, 20대 신붓감은 2등,  30대 신붓감은 3등, 40대 신붓감은 4등 ! 만약에 이명박이 기자들과의 뒷풀이에서 저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말 했다면 어떻게 될까 ?  이 영화는 생각없이 웃기다가 어느 순간 느닷없이 " 어머니 " 라는 코드로 관객을 울린다. 자식을 위해서 별짓을 다하던 오말자/오두리'는 이제 손자를 위해서도 별짓을 한다. 엄마'라는 모성 신화는 여전히 희생을 전제로 하지만 여성 스스로도 이 자폐적 희생 제의'를 비판없이 수용한다는 측면에서 문제적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염치'를 버려도 좋다는 억척 어멈 스토리'는 순혈주의가 낳은 기형적 신파'다. 이 가족 멜로 " 포데기 신파 " 는 조폭 멜로 " 번데기 신파 " 로 변해서 < 우리가 남이가 정신 > 으로 이어진다. < 남 > 인데도 불구하고 남이 아니라고 계속 우긴다면 그것은 심각한 관계망상'이다. 가족주의 중심 사회가 개인주의 중심 사회보다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통계는 가족주의가 가족 내 혈연에만 집착한 나머지 타자성을 부정하는 배타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억척 > 은 극성스럽고 악착스럽다는 뜻인데 포데기 신파극'은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악착'을 정당화한다. 내 새끼를 위해 한 짓은 용서가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내 새끼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자에게는 송곳처럼 까다로운 비뚤어진 모성을 만든다. < 수상한 그녀 > 는 바로 이러한 포데기 신파에 뿌리를 둔다. 

 

영화 속 오말자는 자식을 위해서 우아하게 사는 방식을 포기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존재'다. 그렇다면 억척스럽게 살지 않기 위해 자식에게 쏟는 희생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나쁜 모성이 될까 ? 영화는 그렇다고 말한다. 오두리가 오두리의 삶을 포기하고 오말자로 돌아가는 설정은 엄마는 당연히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린 장치'이다. 이 영화에서 오두리가 떠난 자리를 손녀인 반하나(김슬기)가 차지한다는 설정은 배타주의에서 비롯된 달콤한 봉합'이다. 해피엔딩'이 코미디라는 장르가 갖추어야 할 장치이기는 하지만 끼리끼리 해먹는 욕망'은 배타주의가 깔린 순혈주의처럼 읽혀서 유쾌하지가 않다. 좋은 엄마'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서사는 궁상맞다. 오두리는 수혈을 거부하고 당당하게 오두리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

 

먹고 살기 위한 억척과 궁상'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성을 위해서 억척과 궁상이 미화되는 것은 꼴불견이다. < 수상한 그녀 > 는 포데기 신파극의 한계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측면에서 하품이 나오는 영화다. 눈물이, 아.... 앞을 가린다. 하품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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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손 2014-02-09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맙소사.. 흥행 중이라길래 어떤 영화인가 했더니 정말 끔찍한 내용이네.
한국에서 여느 여자가 '어머니' 되려면
이건머~ 예수나 성모 마리아 정도 정신 레벨은 되야할듯.ㅎㅎ
"어머니 신화" - 그지발싸개같은 판타지란 생각.
여자도 남자들과 다를바 없는 한낱 인간일 뿐인데
애낳았다고 인간이 돌연 대단한 초인,으로라도 다시 태어나는줄 아나..

사회적으로 봤을 때 이거 다 동의어 아닌가 싶어.
<위대한 모성애> = <어머니의 아름다운 희생> = <머더 퍽커> = <니에미창년>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9 03:44   좋아요 0 | URL
음... 너무 확대한 거 아니냐 ? ㅎㅎㅎㅎ.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재미가 없었고, 유치했다.
여성을 나이에 따라 농구공, 럭비공, 탁구공, 피구공으로 나누는 농담을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치인이 여성 기자들과의 뒷풀이에서
똑같은 농담을 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

아마 사퇴 소동이 벌어졌을 거다.

곰곰손 2014-02-09 08:1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글쎄, 조금도 확대가 아니지ㅡ저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결국엔 또 엄마가 자기 삶 포기하고 (자식의)자식을 위해 수혈을 한다,라..
"좋은 엄마'를 만들기 위해서 희생을 강요하는 서사"가 남자들 보기엔
그저 궁상맞아보이는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자들 쪽에서는 사람 잡는 소리로 들림.
나는 한국이 여전히 입양수출?국 1위인 것도 학습능력 떨어지는 무식한 성의식이나 복지문제에도 있지만..
사회가 제멋대로 만들어내는 모성신화/전설땜에 애시당초 여성들이 자신없으니 시작도 해보기 전에
아예 육아를 포기하는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고는 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9 14:57   좋아요 0 | URL
핏줄 서사는 이미 드라마의 핵심이잖아.
내가 드라마를 안 보는 이유 중 하나가 그 핏줄 타령에 아주 질려버렸기 때문.
하여튼 궁상이 모성과 관련이 되면 숭고가 되는
이 싸구려 포데기 신파는 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됨...

유다 2014-02-09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근데 미국도 젊은 여자보고 영계(chick)라고 하는데. 왜 다들 닭인지 궁금...;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9 14:56   좋아요 0 | URL
병아리 귀엽잖습니까 ! 미국이 말하는 새 새끼'는 여성을 지칭한다기보다는 대체로 어린 애송이를 전체적으로 아우르잖습니까. 하지만 한국에서 쓰이는 영계'라는 말은 성적 비하'가 좀 강하죠. 영계'라는 말에는 성욕을 식욕으로 상상하는 음란함이 있습니다.

꼴찌를 위해 2014-02-09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좀 뜬금없지만 일본인 작곡가 사무라고치 사건에 대해서 곰곰발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0 02:31   좋아요 0 | URL
사무라 고치 사건, 그 일본베토벤 사건 말씀하시는군요.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 제가 무슨 만물박사도 아니고 ㅎㅎㅎㅎㅎ. 하지만 이 사건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전 이 사건이 코난 도일과 홈즈 사건처럼 느껴지네요... 오홋, 재미있겠군요. 요 생각을 좀 확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엄동 2014-02-10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네이버영화평은 좋던데.
명절연휴때 가족끼리 보기 더없이 좋다면서.

뭐 눈물과 웃음코드의 맥만 잘 짚어내면
허술하고 조악한 스토리여도 찬사받으니.

이런 영화에 염증이 나네요

나이들수록 얌치"가 없어지는데
그럼 난 얌체공잉가 욱함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0 14:55   좋아요 0 | URL
그냥 명절 코미디 영화'죠.
분위기 보니 1000만 찍을 거 같습니다만
코미디가 여전히 잘 먹히는 걸 보면
좀 진지하게 반성하고 비판하는, 그런 작품들은 보기가
싫은 모양이에요.

뭐 취향의 문제이니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그냥 제 개인적 취향에는 한심한 영화였습니다.

지긋지긋한 포데기 신파라니..
그뿐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도 한참 떨어지죠.
소울 깊게 베인 노래에 감동한다는 것인데 심은경이 부르는 노래 솜씨는
노래방 가서 부르면 80점 정도 나올 솜씨죠.

< 조지아 > 라는 영화 추천합니다. 이 영환 정말 끝내주는 영화죠.

수다맨 2014-02-10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를 부탁해"의 변주된 서사에 불과한 것들이 아직도 성황리에 유통되는 모습을 보면, 한국에는 아직 제대로 된 개인주의 문화도 뿌리 내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우리는 엄마가 필요해', '엄마의 궁상과 억척을 보면서 불효자는 웁니다' 정서가 여전히 강하게 잔존하고 있네요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4-02-12 02:54   좋아요 0 | URL
흔히 집 나간 아들 찾는 광고에 이런 문구 자주 쓰이죠 ?
잘못을 묻지 않으마, 돌아와라 !

뭐 가정 불화는 집 나간 아들만 돌아오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사실 돌아와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죠. 본질적인 것을 안 건드리니깐...
하여튼 대한민국은 엄마가 만병통치약인 줄 알아요. 사실 그것은 사회적 케어가 부실해서 생기는 사회적 문제인 경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2014-02-12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2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셜록 홈즈 전집 양장 세트 - 전9권 (2판) - 일러스트 500여 컷 수록 셜록 홈즈 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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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500조각짜리 직소 퍼즐'을 바닥에 쏟자. 개별적으로 평가했을 때에는 이 조각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당신은 색깔 별로 조각들을 모을 것이다. 그런 다음 조각 면이 서로 맞물리는 조각들을 찾아 연결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맞추다보면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스러기'는 점점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는 낮게 외칠 것이다. 아, 모나리자 !  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었으나 순열에 따라 조각을 배치하다 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모나리자 > 그림을 복사한 직소 퍼즐이 완성이 된다. 이 지점에서 눈치가 빠른 사람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직소 퍼즐 조각들은 엔트로피 상태이고, 순열에 따라 배치되어 완성된 그림은 네트로피 상태'다.

 

사실 간략하게 서술했지만 엔트로피 개념은 매우 난해하다고 한다. 그냥 여기서는 엔트로피는 무질서를 네트로피는 질서'를 의미한다고만 알아두자. 내가 직소 퍼즐을 빗대서 엔트로피와 네트로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추리 소설의 구조가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은 기본적으로 500조각짜리 퍼즐 조각을 바닥에 흩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설가는 각각의 조각들을 나열한다. 독자는 소설가가 나열한 조각이 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으나 이 조각이 어떤 형체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 어떤 조각은 중심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작가는 동등한 자격으로 병렬 서술을 한다. 결국 독자는 소설가가 흩뿌린 조각을 순열대로 재배치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추리'이다. 500조각이 순열대로 배치가 되는 순간, 의미 없어 보였던 부스러기'는 범인의 얼굴을 완성한다. 범인은 바로 모나리자'다 !

 

결국 추리'란 엔트로피를 네트로피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다. 당신이 모래 한 줌을 쥐어 우주 공간에 흩뿌렸다고 치자. 우주라는 공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공간이기에 이 광활한 우주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진 모래를 인식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한 줌의 모래가 당신 손에 모여 있다면 우리는 모래를 인식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명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다. " 에너지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한다. " 이 난해한 물리학 개념'을 저잣거리 입말로 바꾸면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가 된다. 셜록 홈즈가 처음 등장하는 < 주홍색 연구 > 에서 홈즈는 " 나이는 대략 마흔셋이나 마흔넨쯤 " 되는 남자의 죽음을 수사하는 것으로 위대한 홈즈 신화의 서막을 알린다. 사실, 살인 사건'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엔트로피 상태'이다.

 

살인이라는 행위는 질서를 무질서 상태로 만드는 에너지'이니깐 말이다. 여기서 살해당한 시체는 직소 퍼즐 조각처럼, 우주에 뿌려진 한 줌의 모래처럼, 흩어진 존재'다.  < 주홍색 연구 > 에서 첫 번째 시체는 바닥에 떨어져 있다. 모자 또한 뒤집어진 채 옆에 떨어져 있고 팔은 양쪽으로 넓게 벌린 채 있는 반면 다리는 꼬여 있다. 이처럼 통제가 되지 못하고 제각각 흩어지면, 죽는다. 살인 현장'은 엔트로피 상태에 있다. 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질서(법)를 무질서하게 파괴한 결과'가 바로 범죄 현장'이기도 하지만 네트로피的 시선으로 보아도 범죄 현장'은 전형적인 엔트로피 상태'이다. 체내에서 순환되어야 할 피는 밖으로 흩뿌려져 있고, 신체 일부분은 토막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소지품 또한 농수로 밑이나 사건 현장에서 10km나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결국 범죄 현장은 흩뿌려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즈는 무법자를 잡아 사회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무질서한 상태를 다시 질서 상태로 돌려놓는다. 홈즈의 매력은 중심 사건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을 것 같은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엮는 데 있다. 그가 탐정이라는 직업을 갖지 않았다면 아마도 솜씨 좋은 퀄트 장인이 되었을 것이다. 코난 도일이 쓴 홈즈 시리즈'는 시작부터 독자들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다. 장편 소설인 < 주홍색 연구 / 셜록 홈즈 전집 1> 와 < 네 사람의 서명  / 전집 2 > 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코난 도일은 단편 형식으로 바꿔서 잡지에 연재했는데 바로 이 작품들이 대중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얻게 된다. 독자들이 어린 시절 기억하는 사건들은 대부분 < 셜록 홈즈의 모험 / 전집 5 > 와 < 셜록 홈즈의 회상록 / 전집 6 > 에 수록되어 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에피소드여서 소개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지만 코난 도일은 부와 명예를 안긴 셜록 홈즈 시리즈를 경멸했다고 한다. 홈즈 시리즈'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 셜록 홈즈의 회상록 > 에 수록된 " 마지막 사건 " 에서 홈즈는 숙적 모리어티 대령과 함께 계곡에 떨어져 죽는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 홈즈는 내게 언제까지나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으리라 (382쪽) " 추측건대, 그는 이 마지막 문장을 작성하고 나서 앓던 이가 빠진 듯한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코난 도일은 홈즈를 애도하며 "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 사람이라고 슬퍼했지만 속으로는 기쁨의 찬가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그는 홈즈를 죽인 죄로 독자들로부터 평생 들어도 모자랄 욕을 먹는다.

 

그래서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홈즈를 위해 글을 써야 했다. 바로 그 작품이 유명한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전집 3 > 이다. 홈즈가 죽는 < 마지막 사건 > 이 1894년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홈즈를 살려내라는 대중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랫동안 버티다가 1902년에 가서야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를 내놓는다. 물론 홈즈가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왓슨이 홈즈를 추억하며 지난날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작품이니 말이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악몽은 불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창조한 괴물이 자신의 손을 벗어나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공포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자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혹은 무의식적 반영인지는 모르겠으나 홈즈를 조롱하게 된다. "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

 

삐에르 바야르는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라는 제목은 The Hound of  Baker   ville' 로 읽힌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깐 < 베이커家의 개 > 라는 제목이 가진 숨은 속뜻은 < 베이커街의 개 > 라는 것이다. 가가 가다. 그러니깐, 家가 街라는 말이다.  베이커 거리(街) 는 홈즈의 주거지'이니, 홈즈는 베이커 하숙집에 사는 개'가 되는 것이다. 홈즈는 한순간에 명탐정에서 사냥개로 추락한다. 삐에르 바야르의 지적처럼 코난 도일은 중의적 은폐를 통해 홈즈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면 상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853860. ) 황금가지에서 펴낸 셜록 홈즈 전집 시리즈'에서 아쉬운 점은 출간 순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시리즈를 읽는 맛이란 출간 순서대로 읽을 때 맛이 나는데 황금가지는 이 순서를 성의없이 섞어 놓았다.

 

그래서 출판서에서 정한 순서대로 셜록 홈즈를 읽으면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에게 품은 애증의 관계가 읽히지 않는다. 살리에르(코난 도일)가 모짜르트(셜록 홈즈)에게 품은 질투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다음의 순서대로 읽는 게 좋다.

 

셜록 홈즈 전집 1, 주홍색 연구

셜록 홈즈 전집 2, 네 사람의 서명

셜록 홈즈 전집 5, 셜록 홈즈의 모험

셜록 홈즈 전집 6, 셜록 홈즈의 회상록

셜록 홈즈 전집 3, 바스커빌 가문의 개

셜록 홈즈 전집 7, 셜록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 전집 4, 공포의 계곡

셜록 홈즈 전집 8, 홈즈의 마지막 인사

셜록 홈즈 전집 9, 셜록 홈즈의 사건집

 

< 셜록 홈즈의 귀환, 전집 7 > 에 수록된 단편 " 빈집의 모험, 1905年 " 에서 홈즈는 드디어 생환해서 독자 앞에 나타난다. < 마지막 사건, 1894年 >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도일의 분신인 왓슨은 홈즈를 보자마자 기절하는데 홈즈가 이런 소리를 한다. " 왓슨, 정말 미안하이. 자네가 이 정도로 놀랄 줄은 꿈에도 몰랐네 ( 17쪽) " 작가와 캐릭터의 미묘한 신경전 때문이었는지, 홈즈가 건내는 말투는 이상하게 내 귀에는 왓슨을 향한 비아냥거림처럼 들린다. 이 말투는 마치 " 어랍쇼 ? 퍽이나 슬프지. 쇼 하지 말고 발딱 일어나게, 코난 도일 ! 인정머리하고는 좁쌀만큼도 없는 고약한 늙은이야 !!! " 라는 말로 들린다. 하여튼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다시 살려냈고, 홈즈는 씩씩하게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하는 열역학 제 2법칙을 거스르며 맹활약을 펼친다. 그는 흩어진 단서들을 모아서 조각을 짜 맞춘다. 하지만 모든 조각(증거)이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각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범인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조각도 있으니 말이다. " 명확한 사실보다 더 기만적인 건 없( 보스콤 계곡 사건, 전집5. 123쪽) " 다. 싸우는 과정에서 파손된 듯한, 11시에서 멈춰버린 피해자의 시계는 역설적으로 11시에 알라바이가 확실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살인자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서 시곗바늘을 6시에서 11시로 설정한 후 망가트렸을 테니 말이다. 코난 도일은 홈즈 시리즈 마지막인 < 셜록 홈즈의 사건집 > 을 엮어 내놓으면서 서문에 " 좀더 진지한 나의 문학 작품이 홈즈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 이라고 투덜댄다. 그는 홈즈 시리즈를 끝내는 그 순간까지도 셜록 홈즈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기보다는 가자미 눈으로 흘겨보았다.

 

이처럼 도일이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모순적 감정으로 대했듯이 독자 또한 코난 도일을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대중은 홈즈에게 열광했지만 반대로 작가인 홈즈는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 하지만 어쩌랴 !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홈즈에게 열광하는 나 같은 독자가 있으니 말이다.  홈즈가 없었다면 이 지루한 시대를 어떻게 버텼을까 ?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홈즈여, 가는 길에 영광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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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0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과 상관 없지만 ; 제가 무척 갖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직소 퍼즐의 하나입니다. 이 직소 퍼즐은 그림이 없습니다. 하얀 백지죠. (맞추기 전에도 하얀 조각, 맞춘 후에는 하약 백지) 이 조각은 오로지 요철로써만 맞출 수 있습니다. 검색을 몇번 해봤지만, 아직 국내에는 없은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8 14:24   좋아요 0 | URL
아 !!!!!!!!!!!!!!!!!!!!!!!!!!!!!!!!!!!!!!!!!!!!!!!!!!!!!!!!
그냥 프링팅 안 된 직소 말씀하시는 거죠. 오로지 조각 틀의 형태로만 짜 맞춰야 하는
그런 것 말씀하시는 거죠. 오, 저도 그거 함 도전해 보고 싶네요.
그런데 그걸 과연 맞출 수가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