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와 허리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확실히 일란성 쌍둥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명박은 창을 하고 박근혜는 북채를 든 고수 같다. 아, 하면 어, 하고 와, 하면 우, 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정권을 향해 우우, 하면 정권은 시민을 향해 에에, 한다.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의 쌍팔년도 만담 같다. 와우 ! 어찌 이리 장단이 잘 맞누 ? 하는 짓마다 부덕의 소치요, 오만의 소치'다. " 소치 " 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스포츠 서사를 휴머니즘으로 이상화'하는 것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이왕 " 이상화 " 라는 말이 나왔으니 이번 소치 올림픽에 참가한 이상화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스피드 스케이트 선수인 이상화의 허벅지 둘레가 60cm라고 한다. 처음에는 허벅지 둘레를 허리 둘레'로 착각하고는 생각보다 잘록한 허리 사이즈'에 놀랐는데 알고 보니 허벅지 둘레'라고 해서 더욱 놀랐다. 이 정도면 날씬한 여성의 허리 사이즈가 아닌가 ?
2012년에 측정한 측정값에 의하면 " 허벅지 둘레는 60cm로 2009년 측정 때의 57㎝에 비해 3㎝가 늘어난 반면 체중은 대신
2010년에는 65.6㎏, 2012년에는 63.2㎏, 그리고 지금은 62㎏로 계속 줄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체지방을 줄여 몸은 가벼워졌지만 허벅지 근력은 더욱 강해졌기에 상대적으로 더 큰
힘을 낸다는 의미 " 라고 한다. 하체는 굵어지고 상체는 날씬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좀더 빠른 스피드를 위해서 체형이 진화한 것이다. 문득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가 생각났다. 치타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몸무게를 줄여야 했다. 몸무게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뱃살을 줄이는 것이다. 그 결과가 뒷다리 근육은 커지고 허리는 뱃가죽이 허리에 닿을 정도로 잘록해지기 시작했다. 다리 근육이 비대해지고 허리가 잘록해서 몸무게가 감량되다 보니 치타'는 먹잇감인 가젤보다 빠른 속도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해서 항상 사냥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냥에는 여러 돌발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사냥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사냥에 성공했다고 해도 먹잇감을 하이에나 무리나 자신보다 큰 맹수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뱃살을 최대한 빼서 체내 지방 축적을 최소화하다보니 에너지 비축이 안 된다는 점이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마른 체형은 다른 짐승에 비해 굶으면 쉽게 지친다. 뱃살이 넉넉한 하이에나는 사냥감을 놓쳐도 지구력 하나로 버틸 수 있지만 치타는 사냥에 실패하면 다음 사냥에서는 첫 번째보다 속도가 떨어져 그만큼 사냥 성공 확률은 더욱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축적된 지방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냥에 몇 번 실패해서 굶게 되면 치타는 먹잇감을 구하는 데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치타의 진화가 보여준 딜레마'다. 이처럼 진화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담론은 마치 치타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화한 것과 유사하다. 박정희 때에도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해서 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하더니, 지금도 여전히 성장의 속도인 성장률이 정체된다 싶으면 국민에게 허리띠부터 조이자고 요구한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기적 같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이유는 국민의 고통과 희생을 담보로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국가의 눈부신 성장이었다. 하지만 이 성장은 비효율적'이다. 99%의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열심히 일한 대가는 가난이었고, 그 혜택은 1%가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속도의 신화를 믿는다.
가젤을 잡기 위해서는 속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발빠른 가젤을 잡기 위해서는 더 발빠른 속력을 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쟁력이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짐승은 잘빠진 치타의 허벅지가 아니라 하이에나의 똥배'다. 100미터를 6초대에 돌파하는 치타에 비하면 하이에나는 한없이 느리지만 지구력이 뛰어나서 먹잇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갈 수 있다. 21세기가 간절히 원했기에 존재했던 조용필은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고 말하지만 이 현실성 없는 낭만은 그닥 좋아보이질 않는다. 성장률이라는 속도가 가파르게 올라야 행복도 가파른 상승을 할 것란 생각은 착각에 가깝다. 그래프 상의 화살표가 아찔한 수직으로 치솟는다 해도 그 수직성은 오롯이 1%를 위한 지표일 뿐이다.
이처럼 성장과 속도를 이상화하는 담론은 쓰레기통에 쳐박혀야 한다. 이상화'라는 말이 나와서 뜬금없이 하는 소리지만 이번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스피트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가 빙판을 씽씽 달렸으면 한다. 도망치는 가젤을 쫓는 치타처럼 말이다. 치타의 속도를 비판적으로 다루다가 뜬금없이 이상화 선수를 응원하며 치타처럼 달려라, 라고 하니 앞뒤가 안 맞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이게 다 내 부덕의 소치라 생각하시길 ! 여튼... 이상화 선수 파이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