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전집 양장 세트 - 전9권 (2판) - 일러스트 500여 컷 수록 셜록 홈즈 시리즈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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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500조각짜리 직소 퍼즐'을 바닥에 쏟자. 개별적으로 평가했을 때에는 이 조각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당신은 색깔 별로 조각들을 모을 것이다. 그런 다음 조각 면이 서로 맞물리는 조각들을 찾아 연결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맞추다보면 형체를 알 수 없는 부스러기'는 점점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리고는 낮게 외칠 것이다. 아, 모나리자 !  바닥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었으나 순열에 따라 조각을 배치하다 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모나리자 > 그림을 복사한 직소 퍼즐이 완성이 된다. 이 지점에서 눈치가 빠른 사람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았을 것이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직소 퍼즐 조각들은 엔트로피 상태이고, 순열에 따라 배치되어 완성된 그림은 네트로피 상태'다.

 

사실 간략하게 서술했지만 엔트로피 개념은 매우 난해하다고 한다. 그냥 여기서는 엔트로피는 무질서를 네트로피는 질서'를 의미한다고만 알아두자. 내가 직소 퍼즐을 빗대서 엔트로피와 네트로피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추리 소설의 구조가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추리 소설은 기본적으로 500조각짜리 퍼즐 조각을 바닥에 흩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설가는 각각의 조각들을 나열한다. 독자는 소설가가 나열한 조각이 살인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으나 이 조각이 어떤 형체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 어떤 조각은 중심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작가는 동등한 자격으로 병렬 서술을 한다. 결국 독자는 소설가가 흩뿌린 조각을 순열대로 재배치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추리'이다. 500조각이 순열대로 배치가 되는 순간, 의미 없어 보였던 부스러기'는 범인의 얼굴을 완성한다. 범인은 바로 모나리자'다 !

 

결국 추리'란 엔트로피를 네트로피 상태'로 만드는 과정이다. 당신이 모래 한 줌을 쥐어 우주 공간에 흩뿌렸다고 치자. 우주라는 공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공간이기에 이 광활한 우주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진 모래를 인식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한 줌의 모래가 당신 손에 모여 있다면 우리는 모래를 인식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명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열역학 제 2법칙'이다. " 에너지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한다. " 이 난해한 물리학 개념'을 저잣거리 입말로 바꾸면 <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가 된다. 셜록 홈즈가 처음 등장하는 < 주홍색 연구 > 에서 홈즈는 " 나이는 대략 마흔셋이나 마흔넨쯤 " 되는 남자의 죽음을 수사하는 것으로 위대한 홈즈 신화의 서막을 알린다. 사실, 살인 사건'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엔트로피 상태'이다.

 

살인이라는 행위는 질서를 무질서 상태로 만드는 에너지'이니깐 말이다. 여기서 살해당한 시체는 직소 퍼즐 조각처럼, 우주에 뿌려진 한 줌의 모래처럼, 흩어진 존재'다.  < 주홍색 연구 > 에서 첫 번째 시체는 바닥에 떨어져 있다. 모자 또한 뒤집어진 채 옆에 떨어져 있고 팔은 양쪽으로 넓게 벌린 채 있는 반면 다리는 꼬여 있다. 이처럼 통제가 되지 못하고 제각각 흩어지면, 죽는다. 살인 현장'은 엔트로피 상태에 있다. 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질서(법)를 무질서하게 파괴한 결과'가 바로 범죄 현장'이기도 하지만 네트로피的 시선으로 보아도 범죄 현장'은 전형적인 엔트로피 상태'이다. 체내에서 순환되어야 할 피는 밖으로 흩뿌려져 있고, 신체 일부분은 토막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리고 피해자의 것으로 보이는 소지품 또한 농수로 밑이나 사건 현장에서 10km나 떨어진 장소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결국 범죄 현장은 흩뿌려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즈는 무법자를 잡아 사회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무질서한 상태를 다시 질서 상태로 돌려놓는다. 홈즈의 매력은 중심 사건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을 것 같은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엮는 데 있다. 그가 탐정이라는 직업을 갖지 않았다면 아마도 솜씨 좋은 퀄트 장인이 되었을 것이다. 코난 도일이 쓴 홈즈 시리즈'는 시작부터 독자들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은 것은 아니다. 장편 소설인 < 주홍색 연구 / 셜록 홈즈 전집 1> 와 < 네 사람의 서명  / 전집 2 > 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코난 도일은 단편 형식으로 바꿔서 잡지에 연재했는데 바로 이 작품들이 대중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얻게 된다. 독자들이 어린 시절 기억하는 사건들은 대부분 < 셜록 홈즈의 모험 / 전집 5 > 와 < 셜록 홈즈의 회상록 / 전집 6 > 에 수록되어 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한 에피소드여서 소개하는 것 자체가 민망하지만 코난 도일은 부와 명예를 안긴 셜록 홈즈 시리즈를 경멸했다고 한다. 홈즈 시리즈'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 셜록 홈즈의 회상록 > 에 수록된 " 마지막 사건 " 에서 홈즈는 숙적 모리어티 대령과 함께 계곡에 떨어져 죽는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 홈즈는 내게 언제까지나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남아 있으리라 (382쪽) " 추측건대, 그는 이 마지막 문장을 작성하고 나서 앓던 이가 빠진 듯한 통쾌함을 느꼈을 것이다. 코난 도일은 홈즈를 애도하며 " 세상에서 가장 선하고 지혜로운 " 사람이라고 슬퍼했지만 속으로는 기쁨의 찬가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그는 홈즈를 죽인 죄로 독자들로부터 평생 들어도 모자랄 욕을 먹는다.

 

그래서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홈즈를 위해 글을 써야 했다. 바로 그 작품이 유명한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전집 3 > 이다. 홈즈가 죽는 < 마지막 사건 > 이 1894년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홈즈를 살려내라는 대중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랫동안 버티다가 1902년에 가서야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를 내놓는다. 물론 홈즈가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왓슨이 홈즈를 추억하며 지난날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꾸며진 작품이니 말이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악몽은 불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창조한 괴물이 자신의 손을 벗어나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공포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독자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혹은 무의식적 반영인지는 모르겠으나 홈즈를 조롱하게 된다. "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

 

삐에르 바야르는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라는 제목은 The Hound of  Baker   ville' 로 읽힌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깐 < 베이커家의 개 > 라는 제목이 가진 숨은 속뜻은 < 베이커街의 개 > 라는 것이다. 가가 가다. 그러니깐, 家가 街라는 말이다.  베이커 거리(街) 는 홈즈의 주거지'이니, 홈즈는 베이커 하숙집에 사는 개'가 되는 것이다. 홈즈는 한순간에 명탐정에서 사냥개로 추락한다. 삐에르 바야르의 지적처럼 코난 도일은 중의적 은폐를 통해 홈즈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면 상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853860. ) 황금가지에서 펴낸 셜록 홈즈 전집 시리즈'에서 아쉬운 점은 출간 순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시리즈를 읽는 맛이란 출간 순서대로 읽을 때 맛이 나는데 황금가지는 이 순서를 성의없이 섞어 놓았다.

 

그래서 출판서에서 정한 순서대로 셜록 홈즈를 읽으면 코난 도일이 셜록 홈즈에게 품은 애증의 관계가 읽히지 않는다. 살리에르(코난 도일)가 모짜르트(셜록 홈즈)에게 품은 질투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다음의 순서대로 읽는 게 좋다.

 

셜록 홈즈 전집 1, 주홍색 연구

셜록 홈즈 전집 2, 네 사람의 서명

셜록 홈즈 전집 5, 셜록 홈즈의 모험

셜록 홈즈 전집 6, 셜록 홈즈의 회상록

셜록 홈즈 전집 3, 바스커빌 가문의 개

셜록 홈즈 전집 7, 셜록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 전집 4, 공포의 계곡

셜록 홈즈 전집 8, 홈즈의 마지막 인사

셜록 홈즈 전집 9, 셜록 홈즈의 사건집

 

< 셜록 홈즈의 귀환, 전집 7 > 에 수록된 단편 " 빈집의 모험, 1905年 " 에서 홈즈는 드디어 생환해서 독자 앞에 나타난다. < 마지막 사건, 1894年 > 이후 9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도일의 분신인 왓슨은 홈즈를 보자마자 기절하는데 홈즈가 이런 소리를 한다. " 왓슨, 정말 미안하이. 자네가 이 정도로 놀랄 줄은 꿈에도 몰랐네 ( 17쪽) " 작가와 캐릭터의 미묘한 신경전 때문이었는지, 홈즈가 건내는 말투는 이상하게 내 귀에는 왓슨을 향한 비아냥거림처럼 들린다. 이 말투는 마치 " 어랍쇼 ? 퍽이나 슬프지. 쇼 하지 말고 발딱 일어나게, 코난 도일 ! 인정머리하고는 좁쌀만큼도 없는 고약한 늙은이야 !!! " 라는 말로 들린다. 하여튼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다시 살려냈고, 홈즈는 씩씩하게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하는 열역학 제 2법칙을 거스르며 맹활약을 펼친다. 그는 흩어진 단서들을 모아서 조각을 짜 맞춘다. 하지만 모든 조각(증거)이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각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범인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조각도 있으니 말이다. " 명확한 사실보다 더 기만적인 건 없( 보스콤 계곡 사건, 전집5. 123쪽) " 다. 싸우는 과정에서 파손된 듯한, 11시에서 멈춰버린 피해자의 시계는 역설적으로 11시에 알라바이가 확실한 사람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살인자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서 시곗바늘을 6시에서 11시로 설정한 후 망가트렸을 테니 말이다. 코난 도일은 홈즈 시리즈 마지막인 < 셜록 홈즈의 사건집 > 을 엮어 내놓으면서 서문에 " 좀더 진지한 나의 문학 작품이 홈즈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 이라고 투덜댄다. 그는 홈즈 시리즈를 끝내는 그 순간까지도 셜록 홈즈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기보다는 가자미 눈으로 흘겨보았다.

 

이처럼 도일이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모순적 감정으로 대했듯이 독자 또한 코난 도일을 같은 방식으로 대한다. 대중은 홈즈에게 열광했지만 반대로 작가인 홈즈는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 하지만 어쩌랴 !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홈즈에게 열광하는 나 같은 독자가 있으니 말이다.  홈즈가 없었다면 이 지루한 시대를 어떻게 버텼을까 ?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홈즈여, 가는 길에 영광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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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2-08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과 상관 없지만 ; 제가 무척 갖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직소 퍼즐의 하나입니다. 이 직소 퍼즐은 그림이 없습니다. 하얀 백지죠. (맞추기 전에도 하얀 조각, 맞춘 후에는 하약 백지) 이 조각은 오로지 요철로써만 맞출 수 있습니다. 검색을 몇번 해봤지만, 아직 국내에는 없은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2-08 14:24   좋아요 0 | URL
아 !!!!!!!!!!!!!!!!!!!!!!!!!!!!!!!!!!!!!!!!!!!!!!!!!!!!!!!!
그냥 프링팅 안 된 직소 말씀하시는 거죠. 오로지 조각 틀의 형태로만 짜 맞춰야 하는
그런 것 말씀하시는 거죠. 오, 저도 그거 함 도전해 보고 싶네요.
그런데 그걸 과연 맞출 수가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