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과 상금
스피트 스케이트 5000미터에 출전한 이승훈 선수가 12위로 경기를 끝내자 그가 한 말은 " 죄송합니다 ! " 라는 짧은 답변이었다. 그러자 모 정치인이 60억 인구 중 12위'이니 그 성적 또한 대단한 성적이라고 그를 위로했다. 여기저기서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라는 응원이 이어졌다. 옛날처럼 메달 색깔에 환장하는 천박한 태도'는 아니어서 보기 좋은 풍경이기는 하지만 그닥 바뀐 문화는 아닌 것 같다. 예의상 던지는, 영혼 없는 멘트 같았다. 마치 생각없이 던지는 " 식사하셨어요 ? " 라는 인삿말처럼 들린다. 금메달이라도 따면 물 먹은 습자지처럼 흐느끼거나 뭍 밖의 문어발처럼 흐느적거리며 앵앵거린다. " 장하다, 대한의 아들 딸들아 ! " 누누이 말하지만 승부욕과 애국심'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승부 < 慾 : 욕심 욕 >은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애국 < 心 : 마음 심 > 은 이타성에 뿌리를 둔다. 황영조 추문에서 알 수 있듯이,
황영조 ( http://blog.naver.com/bangton/20029275664 ) 는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도덕성'이 투철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 효율적 측면에서 보자면 " 1/60억 선수 " 에 대한 호들갑은 비효율적'이다. 우리가 금메달을 딴 영웅에게 열광할 때 그 뒤에는 노메달에 그친 선수들이 겪어야 할 슬픔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 1명의 영웅을 위해서 나머지를 희생해야 하는 구조가 바로 금메달 신화'이다. 이상화 선수가 1등을 했을 때, 그녀는 감격에 겨워 울먹거렸는데 나는 이 풍경이 생경스러웠다. 그녀에게는 적수가 없었다. 그녀가 우아한 날개를 단 날치'라면 나머지는 오징어'였다. 모든 대회를 휩쓸었고 최근 대회에서는 세계 신기록을 3회 연속 이룩했다. 그것은 브라질 국가대표 팀과 베트남 국가대표 팀 간에 벌어지는, A매치 경기만큼이나 뻔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울었을까 ? 그동안 참고 인내해야 했던 훈련 과정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지옥의 훈련 레이스'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헬 오브 지옥'이 아니었던가. 올림픽 경기를 볼 때마다 늘 보게 되는 것은 한국 선수들의 눈물이다.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감격해서 울고 은메달을 따면 억울해서 운다. 오히려 동메달을 따면 환하게 웃는다. 여기에는 " 조금만 더 잘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는데... " 라는 석패의 한이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나라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면 기뻐서 웃고, 은메달을 따도 기뻐서 웃고(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동메달을 따면 메달을 땄다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웃는다. 한국 선수들이 우는 이유에는 " 몰빵 " 이라는 경쟁 시스템 때문이다. 1등을 하면 다 가지지만 순위권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들은 은갈치보다 은은하고 금 같이 빛나는 금메달을 따기 위해 또다시 4년이라는 지옥 훈련을 경험해야 한다. 두 주먹 불끈 쥐며 다시 한번 다짐을 하지만 여기에는 캄캄한 절망과 그 절망을 애써 위로하는 희망이 반반 섞인 감정이리라.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게 되면 의례 뉴스 데스크에서는 뻔한 말들을 쏟아낸다. 여러 단체에서 포상금이 지급된다는 기사이다. 이 단체 저 단체, 이 기업 저 기업, 혹은 개인 기부까지 이어진다. 매우 이상한 풍경이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가 포상금이라는 당근으로 선수들을 독려하는 것은 올림픽 정신이 어긋나는 태도이다. 우승하면 돈을 준다 ?! 바로 여기에 서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면 웃고 은메달을 따도 웃고 동메달을 획득해도 웃는 이유가 있다. " 동계 스포츠의 강국으로 꼽히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에서는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라도 단 한 푼의 포상금을 받을 수 없다(한국일보 발췌) " 고 한다.
여기에 " 미국도 금메달을 받는 선수에게 단 2만5,000달러의 보너스만을 지급할 뿐이다. 또 오스트리아는 별도의 포상금 대신 17조각으로 된
은화를 주는 것 " 으로 나타났다. 속물처럼 말하자면 우승해도 얻는 게 없다는 말이 된다. 그들은 오로지 우승이라는 영광을 얻고자 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차지해도 그닥 손해를 볼 것은 없다. 금메달을 딴다 해도 고작 꾀죄죄한 수고비가 전부이니 말이다. 국가, 단체, 기업, 개인 기부자가 금메달 선수에게 몰빵하는 풍경을 본 한국인에게는 이 풍경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폴린 스웨덴 올림픽위원회 대변인은 블룸버그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1년에 1,100만달러(약 118억원) 이상을 훈련비, 선수들 장학금
등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한국은 모든 포상과 혜택을 경기 후 우승을 한 선수에게 몰빵을 하는 반면 스웨덴 같은 국가들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메달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몰빵의 설움이 없다 보니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스웨덴이 될 놈(들)에게 골고루 투자한다면 한국은 된 놈'만 밀어주는 시스템이다. 이 얼마나 얌체 같은 시스템인가. 그러니깐 한국형 올림픽 정신은 딱 한 놈에게만 몰빵하는 경쟁 시스템인 것이다. 국가나 기관 혹은 기업들이 된 놈에게만 밀어주는 이유는 전시 효과 때문이다. 상금이 많은 복권은 한 놈에게 몰아줄수록 금액이 올라간다. 사람들은 10명에게 2억을 주는 복권(A)보다는 1명에게 10억을 몰아서 주는 로또(B)에게 몰리는 법이다. 지출한 총 금액을 보면 A가 B보다 많고 그만큼 상금을 탈 기회도 더 많지만, 사람들은 10억 상금에 몰리게 된다. 돈을 지불해야 하는 주최측 입장에서는 로또 시스템(B)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다. 상금도 적을 뿐더라 복권이 팔리는 양 또한 A 판매량을 압도한다.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포상금이 몰리는 현상은 한국이 문화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 될 놈 > 은 거들떠도 안 보면서 < 된 놈 > 만 러브'하는 방식은 참 얍삽한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인사 관리 시스템'이다. 기업들이된 놈'을 영입하려고 하는 전략'을 두고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국가가 나서서 < 된 놈 > 에게만 러브하면 재앙이 된다. 길게 설명 안 하겠다. 다음은 이번 대회 국가 포상금 순위'이다. 대부분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이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탈리아와 한국이다.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은 두 나라'다.
카자흐스탄(25만달러ㆍ2억7,000만원ㆍ1위), 라트비아(19만2,800달러ㆍ약 2억800만원ㆍ2위), 이탈리아가 18만9,800달러(약 2억500만원ㆍ3위), 벨라루스(15만달러ㆍ약 1억6,000만원ㆍ4위), 에스토니아(13만8,500달러ㆍ약
1억5,000만원ㆍ5위), 러시아(11만3,200달러ㆍ6위)... 한국 (6만2,000 달러ㆍ6,700만원ㆍ10위) 공교롭게도 이들 나라들은 민주주의적 절차가 부실한 국가라는 공통점도 있다. 그리고 이탈리아 하면 부정부패가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 한국과 이탈리아는 문화적으로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가족주의 문화인 나라일수록 부정부패가 심하고 비민주적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