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사고 한길그레이트북스 7
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 한길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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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는 없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래된 원시 사회 신화 속 도덕률은 지옥은 우리 자신이다 라고 가르친다.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 그게 그거 > 같지만 곰곰 생각하면 < 그게 그거 > 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옥에는 < > 는 속하지 않은 반면, 레비-스트로스가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수집한 원시 사회 신화의 서사에는 지옥에 < > 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르트르는 내 탓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것이고, 오래된 신화는 네 탓보다는 내 탓에 방점을 찍는다.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에 사르트르는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서구중심적) 사고를 가진 좌파 꼰대(내가 보기에는 사르트르는 좌파 꼰대라기보다는 마초 꼰대처럼 보인다. 그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레비-스트로스는 << 야생의 사고, 9장 >> 역사와 변증법 은 온통 사르트르를 씹는 데 할애한다. 그것도 아주 신랄한 어조로 말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의식적으로 난폭한 표현을 ( 야생의사고, 355) ” 쓴다. 역시, 비난할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제대로 씹어야 제 맛이다. 사르트르는 역사가 있는 인류를 문명인으로 설정한 후에 역사가 없는 인류는 야만인으로 분류했는데, 지구 저기, 저어어기, 저 어어어어...... 어두컴컴한 변방의 부족 사회를 주로 관찰한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에는 역사가 없는 사회라고 해서 야만인이라는 단정은 얼토당토목금토. 그렇기에 역사 있는 인류가 역사 없는 인류에게 의미를 가져다주며 축복을 준다는 말은 기만이다. 이럴 때 흔히 하는 말, 너나 잘하세요.

레비-스트로스는 기억 를 믿지 않았다. 기억이란 본질적으로 왜곡 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한다. 불리한 것은 못 본 체하거나 지운다. 반면 입장에 유리한 사실은 취사선택 하여 과장한다. 기억이란 솎아 내거나, 지우거나, 확대한다. 그 결과, 자신이 잡은 생선은 피라미 인데 기억에 의해 재생된 물고기는 월척 : 한 자가 넘는 물고기 이다. 얼척없는 과장인 셈이다. 이 기억을 개인에서 국가로 확장하면 역사가 된다. 역사란 개인적 기억을 국가의 기억으로 확장한 것이다. 피라미를 잡았으나 월척을 잡았다고 기억하는 낚시꾼의 오류나, 역사 있는 인류가 역사 없는 인류에게 축복를 내렸다는 역사의 오류나 매한가지. < 보수 > 는 기본적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옛것은 낡고 가난한 것이지만 가치 있고, 새것은 번드르르하고 삐까번쩍하지만 싸가지가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매사에 새것(젊은 것)은 못마땅한 존재다. 하지만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기억이란 왜곡을 동반한다. 그들은 < 21세기 새것 > 에 비해 < 20세기 옛것 > 은 투박하며 품질은 떨어지지만 낭만과 운치가 있었다는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다. 왜냐하면 옛것은 그 당시에는 번드르르하고 삐까번쩍한 신상이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도 아니고 말이다. 보수가 옛것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문화가 아니라 자신의 젊음이다. 젊었기에 좋았던 것이지 그 시절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의 젊음이다. “ 왕년에 ~ ” 라는 흔한 말투는 그 사실을 증명한다.

자신은 젊음 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면서 정작 요즘 젊은것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하지만 젊다고 해서 좋을 것 하나 없다. 그 시절에는 그 시절에 맞는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낭만은 없다. 낭만이란 과거를 회상할 때 발생하게 되는 감성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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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6-1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사르트르는 얼마큼은 양심적 지식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의 높은 문학적/철학적 명성과 권위 덕에 그만한 권력이 생겼고, 그 권력을 충분히 이용해 사회운동(베트남전 반대, 프랑스 식민지들의 독립 운동 지지 등)도 활발하게 했죠. 물론, 저 역시 그에게서 (진은영 같은 이들에게 볼 법한) 캐비어 좌파의 냄새가 나긴 합니다만 그래도 사회적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았다는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한 리딩은 아닌데, 고진의 책에서 본 적이 있었던 듯한데 실제로 레비 스트로스와 사르트르의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고 들은 기억이 나네요. 그냥 사상적 차이에서 생긴 불화를 넘어서 인간적으로도 서로를 싫어했다고 한 듯하네요 ㅎㅎ 아마 그 때문에 레비 스트로스가 사르트르를 더욱더 혹독하게 비판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5 09:30   좋아요 0 | URL
엇, 수다맨 님. 안 그래도 한번 만나서 술이나 마시자, 메시지를 넣읅ㄱㄺ 넣으려고 했습니다. 시간 되시면 봅시다. 둘 다 서로 앙숙이었다네요. 야생의 사고를 보면 한 장을 통째로 사르트르 까는 데 할애하고 있씁니다.
그걸 읽은 사르트르가 좋아할 리 없고, 사실 사르트르 사상과 스트로스 사상은 대척점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레비스트로스는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로스는 보수주의자 같습니다.

수다맨 2015-06-16 13:48   좋아요 0 | URL
네. 이번 달에 한 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날짜 잡으시죠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6 16:08   좋아요 0 | URL
날 잡아보도록 하죠. 오붓하게 봅시다요..ㅎㅎ

마립간 2015-06-1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지, 아니면 레비 스트로스 주장처럼 역사의 진보가 없었는지, 이 주제는 저에게 판단 유보인 주제입니다.

곰곰발 님의 개인적 판단이 궁금하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5 11:55   좋아요 1 | URL
저는 개인적으로 레비스트스를 지지합니다. 사르트르는 역사적 진보가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역사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란 운명론적이 아니라 우연적 산물이라는 것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는 보다 문명화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히틀러 홀로코스트는 이후 역사에 많은 교훈을 주었지만, 그래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졌지만 보스니아 내전은 홀로코스트만큼 끔찍한 인종 청소의 장이었습니다.
 

 

 

 




봉달 씨는 숀 코넬리'다

                                 새집으로 이사를 왔으나 헌 집이었다. 아파트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20년 넘게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서 살았던지라 빌라 주거 환경에 익숙하려면 시간이 걸려야 했다. 한국인은 아파트 주거 환경에 익숙하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군집 형태의 주거 환경이 불편했다. 두고 온, 한때 새집이었으나 이제는 옛집이 되어버린 그 집도 낡고 오래된 라일락 나무가 있는 마당이 있고 작은 터앝이 있는 주택이었다. 그 마당에서 개를 키웠다. 목줄을 다는 것은 왠지 학대인 것 같아서 항상 풀어놓았다. 봄에 터앝에 배추와 도라지를 심었으니 하루가 다르게 자랐으리라. 터앝에 채소를 기르면서 깨달은 것은 볕에 따라 자르는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봄볕에 이파리는 자라고 여름 볕에서는 색이 짙어지고 단단해진다. ...... 자라고 있으려나 ?

전세 대란 " 을 넘어서 전세 전쟁 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항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다가 막상 전셋집을 구하다 보니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헌 집이지만 새집이 된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전에 살던 전세보다 2배 많은 금액을 지불했지만 공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마당도 없고, 터앝도 없고, 라일락도 없다. 대신 복도라는 이상한 길이 생겼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을 놓쳤다. 오늘은 키우던 개와 함께 인왕산에 오르기로 약속한 날. 새벽부터 등산 가방을 챙겼다. 삼겹살은 살짝 익혀서 도시락에 담고, 빵과 우유, 그리고 냉동실에 둔 얼린 물통도 챙겼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왔다. 걸어서 인왕산 입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얼추 한 시간이 걸렸다. 개는 지쳤는지 벌써부터 혀를 내밀고 헉헉거렸으나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는 날이라 흥분한 표정이 역력했다. “ 봉달이 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었다. 우유를 주자 목이 마른지 냅다 먹었다. 개를 이끌고 산에 올랐다. 정상에 도착해야 한다는 목표는 없었다. 좀더, 조금 더 오래 개와 함께 산책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가다가 지치면 길이 아닌 풀숲으로 빠져서 쉬고는 했다. 목줄을 풀어주니 개는 사냥개 흉내를 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틈틈이 고개를 돌려 내 위치를 확인하고는 했다. 어느덧...... 개는 시야에서 벗어났다. 잠이 오기 시작했다. 배낭을 베고 잠시 잠을 잤다. 바람과 볕이 좋았다. 우울증에는 볕이 가장 좋은 약입니다. 볕을 많이 쬐도록 하십시오. 의사는 처방전을 작성하면서 늘 그 이야기를 했다. 맞는 말이었다. 바람과 볕은 우울과 불면에 가장 좋은 약이었다.

눈을 뜨니 개는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 틈틈이 개에게 먹이를 주었다. 고기가 상할까봐 살짝 익힌 삼겹살부터 줬다. 김칫국에 밥 말아 먹던 놈이라 삼겹살로 배를 채우니 마냥 좋은 모양이다.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맛있는 거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하루 종일 산책을 하니 오늘이 네 생일이다. 목이 마를 때 마시려고 준비한 물도 몽땅 개에게 주었다. 내가 물을 마시려고 하자 개가 낑낑거리며 물을 달라고 보챘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오르고 산 밑으로 내려왔어도 나는 개를 끌고 이리저리 세상 구경을 시켰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공원에 앉아 구멍가게에서 사온 비비빅 를 개에게 주니 잘도 먹는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봉달아, 미안하다. 오늘이 너와 함께 하는 마지막 산책이구나.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었으나 슬퍼서 울컥했다. 이 집에서는 너를 키울 수 없단다. 전날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곰곰 생각했다. 개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무엇을 해야 할까 ?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개와 함께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산책이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다가 달거리하는 여자처럼 터졌다. 강원도 농장 주인이라고 하니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위를 내내 하면서...... 집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도 몹쓸 짓이었다. 형편이 되는 대로 키우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서 입양은 없던 일로 했다. 그날, 꿈을 꾸었다. 꿈에 영화배우 숀 코넬리를 닮은 금발 신사를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아따, 성님 ! 나 모르것소. 봉달이오. 봉달이 !

- 봉달이 ??!

- 그려, 나 성님 동생 봉달이여. 꿈에서는 항상 사람으로 둔갑을 한당께. 이때 한번 사람 흉내 내지 언제 사람 행세 하것소.

- 사람으로 둔갑을 하니 꽤 잘생긴 놈이었구나.

- 말이라도 고맙소잉. 근데 아까..... 공원에서 왜 울었소 ? 사내새끼가 눈물이나 찔끔거리 고...... 말 안 해도 다 알지라. 사실, 알면서도 내색은 안했소. 내가 시무룩하면 성님 더 마음 아플 것 아니오. 기분도 꿀꿀하니 어디 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읍시다.

 

나는 숀 코넬리를 데리고 허름한 삼겹살집으로 들어갔다.

 

- 성님, 고맙소잉. 이 은혜 잊지 않겠소. 같이 함 살아봅시다. 내 똥 오줌 잘 가릴 것이니 너무 걱정 마소. 잘 짖지도 않을 테니껜 걱정 붙들어 매쇼 !

 

그 사이, 삽겹살이 노릇노릇 구워졌다. 나는 숀 코넬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구나. 내가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자 숀 코넬리가 으르렁거리며 소이쳤다.

 

- 젓가락 놔라잉! 건들면 배때기를 확 째셔 줄넘기 해부려. 내 밥그릇에 손 대는 놈은 배, 배배배배신 배반형 투, 투투투부정사야.

 

숀 코넬리는 먹이를 보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식욕 앞에서는 사람 흉내고 나발이고 없었다. 하지만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꿈이니까, 고기 한 점 먹었다 한들 헛배 부를 리 없으니까. 많이 먹어라.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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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06-1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앝. 예쁜 말이네요.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군요. ˝비비빅˝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10:05   좋아요 0 | URL
텃밭과 터앝은 다르더군요. 텃밭은 집 밖에 있는 작은 밭이고 터앝은 집 울타리 안에 있는 땅이랍니다.

비비빅... ㅋㅋㅋㅋㅋ 오늘 새벽에도 비비빅 하나 줬습니다. 여름에는 비비빅이 최고에욧//

samadhi(眞我) 2015-06-13 10:07   좋아요 0 | URL
네 찾아보았죠. 국어사전 찾아보기가 취미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10:42   좋아요 0 | URL
좋은 취미로군요. 저도 사전 찾아보는 재미를 알고 있습니다. 사전이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ㅋㅋ

samadhi(眞我) 2015-06-13 10:44   좋아요 0 | URL
˝새록새록˝ 알아가는 맛이 있죠.

cyrus 2015-06-1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 준비 때문에 며칠동안 글 포스팅이 뜸했군요. 더운 날에 이삿짐 옮기고 새집 정리하느라 고생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4 09:33   좋아요 0 | URL
이사야 포장 이사`에서 다 하는 것이니 이사 때문에 글이 뜸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책을 안 읽다 보니 딱히 글 소재가 없어씁니다.
 
[블루레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조지 밀러 감독, 샤를리즈 테론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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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와 매드 맥스

 

                                  프로이트는 여성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 nothing ! " 이었다. 그는 여성 오르가슴은 질 섹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으나, 현대 의학에 의하면 여성 오르가슴은 대부분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는 게 없으니 엉뚱한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뿐이 아니다. 현대 뇌 과학은 상당 부분 프로이트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을 깎아내릴 수는 없다. < 무의식 > 을 발견했으니까. 그것은 뉴턴의 사과와 비슷한 것이었다. 뉴턴이 낙과落果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중력을 발견했듯이, 프로이트는 의식 너머에 있는 무의식을 발견했다. 무의식이란 의식이 없다(非 : 아니 비)는 개념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식(秘 : 숨길 비)을 뜻한다.

 

사실, 프로이트 이론은 정신분석학보다는 상징 해석학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쩌면 그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기꾼인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프로이트 이후, 많은 문학 작품은 프로이트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사실, 해석이라는 게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피어싱이 아니었던가 ! 기다란 것은 다 페니스라고 퉁치면 그만. 페니스는 아버지의 억압이라고 말하며 가부장 사회 구조의 모순을 지적하면, ...... 프로이트 이론은 만능 믹서기인 도깨비방망이'인 셈이다. 이러다가는 현대 여성의 불안은 남성의 불알 때문이라고 우겨도 할 말은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프로이트를 버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프로이트 이론으로 작품을 해석하면 고리타분한 작품도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처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보이는) 증거가 아니다. 격투 끝에 땅에 떨어져 망가진 피해자의 시계는 가해자에 의하여 조작된 증거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살인자의 트릭. 지나치게 선명한 증거는 가짜. 추리소설은 그 사실을 말해준다. 명탐정은 오히려 사건 현장에서 눈에 보이는 증거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지나치게 사소해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증거를 찾는다. 사소한 증거가 가장 결정적 단서가 된다. 프로이트 이론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그는 환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사소한 말에서 결정적 단서를 포착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농담이나 말실수, 동음이음어 따위. 그래서 나는 프로이트 논문을 학술서가 아닌 추리소설로 읽는다. 그가 추리소설광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 위험한 독서 인 셈이다. 영화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 를  프로이트의 범성론적 시각으로 해석해 볼까 ? 우우, 하지 마시라. 심심풀이 땅콩으로 푼 위험한 해석이라고 해두자. 퓨리오사가 운전하는 8기통 두 개짜리 전투 차량은 도상학적 시각으로 보면 < 페니스 > ,  페니스냐고 묻지 마시시시라. 프로이트 해석학에서 기다란 것은 다 페니스로 통한다. 당신 꿈에 당신이 싸리나무 회초리를 들고 있다면, 프로이트는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이다. “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당신이 손에 쥔 회초리는..... 페니스입니다 ! ” 사실, 영화 << 매드 맥스 >> 는 서사가 탄탄한 영화는 아니다. 이야기를 최소화하는 대신 이미지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린 영화이니 탄탄하지 못한 서사를 굳이 비판할 일은 아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는 집토끼마저 놓치는 경우는 허다하니깐 말이다.

 

 

 

 

남성 혈맹으로 맺어진 호전적 사회에서 여성이 독재자인 임모탄의 오른팔 전투 사령관이라는 설정은 의아하다. 임모탄은 여성을 철저하게 착취 수단으로 이용하는 남성 우두머리'인데 가장 중요한 전투 사령관 자리에 여성인 퓨리오사를 배치한다는 것은 모순된 태도처럼 보인다. 내가 보기에 퓨리오사는 남성화된 여성이거나 거세되어 여성화된 캐릭터. "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그녀의 잘린 팔...... 페니스‘입니. "  그녀는 남근이 거세되어 여성화된 것이다. 애애, 하지 마시라. 이 모든 비난은 프로이트 할아버지에게 주시라 ! 퓨리오사를 거세된 남성으로 설정하면 8기통 두 개짜리 전투 트럭이 선명하게 보인다. 불알 하나에 남근이 달린 형상을 한 전투 차량은 오직 남성만이 운전할 수 있다( 실제로 제작진은 8기통 엔진 차량에 부설된 둥근 탱크를 두 개'로 설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노골적인 은유여서 철회했다고 !).

 

 

 

많은 사람들은 이 전투 차량에서 우유가 나온다는 점을 들어 여성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 우유는,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정액입니다 ! 정액을 하고 다시 말하자면, 아니 정색을 하고 다시 말하자면 : 프로이트 이론에서 페니스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펠루스는, 결핍(결여)를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자. 전투 차량을 운전하는 퓨리오사, 맥스, 룩스는 모두 결핍의 존재이다. 퓨리오사는 팔을 잃은 전사이고 ( 전사가 팔을 잃었다는 것은 얼마나 남근적 상징인가 ! 프로이트의 << 늑대 인간 >> 에서 늑대 인간은 거세 공포증으로 인해 잘린 손가락 환상에 시달린다. 라캉은 늑대 인간의 잘린 손가락 환상을 실재의 귀환'이라고 말했다), 맥스는 아내와 딸을 잃은 무능한 아버지이고,

워보이 룩스는 피-주머니에 의지해야만 가까스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 그들에게 있어서 전투 차량은 거대한, 딱딱한, 펄펄 끓는, 싱싱한 정자가 가득 찬 오브제. 그들은 모두 남근 선망에 시달린다. 임모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씨받이를 되찾기 위해 퓨리오사 뒤를 쫓는 게 아니라 싱싱한 정액이 가득 찬 팔루스-기계'를 되찾기 분노의 도로를 질주한다.  그것은 << 반지의 제왕 >> 에 나오는 반지와 같다. 그것을 가진 자'만이 영토를 지배할 수 있다. 그는 남근-기계를 되찾는 데 실패하자 죽는다. 그 죽음은 거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얼마든지 여성적 시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임모탄이 거주하는 시티텔은 거대한 자궁에 대한 은유다. 팔루스 세계와 반대되는 개념이 코라인데, 코라는 오이디푸스라는 아버지 세계'와 반대 개념인 원초적 자궁을 뜻한다.


 

 

​그리고 모래 폭풍 지역은 관 모양의 여성 생식기'에 해당된다. 그것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음도 陰道 요, 음문 陰門 이다. 퓨리오사'가 음도와 음문을 지나(모래 폭풍을 지나) 세상 밖으로 나가는 장면은 << 출산 이미지 >> 를 떠올린다. 하지만 세상 밖 유토피아'는 없다. " 유토피아 " 라는 말 자체가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니 말이다. 퓨리오사가 맥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다시 시타텔로 돌아가는 상황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 자궁-환상 >> 에 속한다. 그것은 어머니의 생식기 안에 있는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인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자궁 환상은 아버지에 대한 애착에서 오는 것이 보통이란다. 믿거나 말거나. 결국 퓨리오사가 상징적 아버지인 임모탄에게 보이는 적의는 애착이 변한 증오'라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퓨리오사의 성장 영화로 서부 영화 << 쉐인 >> 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퓨리오사는 소년/소녀'이고 맥스는 떠돌이 총잡이 쉐인'이다. 그들은 22세기 총잡이답게 말 대신 차 위에서 싸운다. 이처럼 해석이란 어느 쪽에 어깨를 기대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것은 < 틀린 것 > 아니라 < 다른 것 > 이고, 좋게 말하자면 열린 텍스트요, 다양성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영화'는 지나치게 획일적이어서 뚜렷한 서사'보다 창의적이다. 영화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 는 팔루스와 코라를 모두 품을 수 있는 텍스트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뛰어난 영화다 ■

 

 

 


※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crescendo_14/22036173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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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6-12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의 지은이), 우에노 치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지은이),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지은이)가 이 영화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의 배경으로 `여성 주의` 입장에서 줄거리를 전개한다면 어떤 줄거리가 가능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2 10:04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영화 보면서 느낀 점은 감독이 흥행뿐만 아니라 비평적 면에서도 쓸거리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었씁니다. 아마도 다양한 여성 글쓰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긴 이 영화에서 여성은 기존 영화와는 달리 적극적입니다.체제순응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쁜 여자`입니다. 그 쾌락이 여성 관객을 속 시원하게 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마립간 2015-06-12 10:21   좋아요 0 | URL
저는 체제 순응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나쁜 사람이지, 나쁜 여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영화 줄거리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이 적용된 스토리가 나온다면, 저의 인식 한계는 확장될 것이고, 통찰의 높이는 좀 더 높아지겠죠. 제 상상력의 한계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2 11:2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조지 밀러 감독이 여러 측면을 고려한 게 있습니다. 일단 여성 전사`라는 측면에서 캐릭터가 새롭잖습니까. 지아이제인 같은 어설픈 마초 여성은 아니라는 점이죠. 하튼. 마립간 님, 요 영화 함 보십시오. 꽤 재미있습닏.

samadhi(眞我) 2015-06-13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이 영화를 보고 논문을 쓰셨네요. 프로이트가 까딱 놀라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05:49   좋아요 0 | URL
프로이트 할아버지 함 만나고 싶네요....

samadhi(眞我) 2015-06-13 05:50   좋아요 0 | URL
맞짱 뜨시려구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05:57   좋아요 0 | URL
아니요.. ㅋㅋㅋ 제가 프로이트를 얼마나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상담 함 받아보려고요.
프로이트가 어떤 논문을 쓸지 기대가 됩니다.

반딧불,, 2015-06-20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립간님 서재 링크 탔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제 생각과 상당히 유사해서 댓글답니다.
그.러.나. 어설픈 페미니스트입니다만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전혀 아닙니다. 젠더적인 남성성을 가진 퓨리오사에 대한 제 느낌은 기가 막히다는 것. 그리고, 영화에 대한 느낌은 불유쾌하다는 것입니다. 전혀 해방감도 없었고, 상징하는 것들에서 혐오를 느꼈습니다. 특히 교묘한. 교묘한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의도적인 섹슈얼리티에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 기타맨에게서도 해방감보다는 암울함이 더 강했습니다.
초면에 실례가 아니었으면 합니다.꾸벅.

곰곰생각하는발 2015-06-20 15:17   좋아요 0 | URL
어설픈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어설픈 페미니즘이라는 말씀이시죠 ?
반딧불 님이 어설픈 페미니스트이다, 라고 걸로 이해해서 다시 보니 이 영화에 대한 정의 같더군요...
 

 

 

 

 

 

 

 

나쁜 생각를 지지하며 

    

                                                < > 이라고 해서 모두 진상을 부리는 사람은 아닐 터 !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도 있는 것이 세상살이. 마찬가지로 도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면서 행세를 하는 진상도 빨랫줄 위에 널린 빨래처럼 널렸다. 다시 말해서, 에둘러 가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 이라고 해서 법 없이도 살 만한, 힘없는 사람으로 이루어진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중은 위대한가 ? 유권자는 항상 현명했던가 ? 진보는 어리석은 대중을 곤혹스러워 하고, 보수는 어리석은 대중을 간절히 원하는 경향이 있다( 새누리가 원하는 대중은 어리석은 대중이다 ).

 

흔히 < 사회적 약자 > 하면 착하면서 힘없는 사람 을 떠올리기 쉽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모두 착한 사람은 아닌 데 말이다. 내 세계관을 투영하자면 세상의 팔 할'은 나쁜 사람'이고 이 할은 좋은 사람이다. " 어 퓨 굿맨 " 은 항상 소수'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 라고 부를 때는 못 된 약자를 배제한 착한 약자로 범위를 좁혀서 생각하려는 버릇이 있다. 그렇다면 < 착한 약자 > < 못된 약자 >를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과연 누가 과육 품종 분류 기계 : 어느 사과가 上品 이고 어느 사과가 下品 으로 전락할 것인가 를 조정하는 조정자일까 ? < 과육 품종 분류 기계 - 스틱 > 기득권 이 차지한다. 상품과 하품은 이들 손에 달려 있다.

 

쉽게 말해서 체제에 순응하는 은 상품으로, 반항하는 은 하품으로 직행해서 떨이로 팔린다. << 선별적 복지 >> 란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부류에게 선심을 쓰겠다는 말.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 선심을 쓰겠다면 할 말은 없으나 국민 세금으로 생색을 내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정치가가 복지에 대해 말할 때마다 공짜 를 들먹이는 데, 사실 공짜 혜택을 천조국 급으로 누리는 집단은 가난뱅이가 아니라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판공비라는 명복으로 1억 법인 카드를 제공받고, 자동차 연료비에서부터 시시콜콜한, 온갖 잡비를 지원받는다.

 

이들이 뽐내며 뿌리는 카드 결제는 모두 당신이 낸 세금으로 낸 돈이다. 누가 더 공짜를 좋아할까 ? 이처럼 공짜에 환장하는 정치가가 공짜 좋아하는 을 지적하니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다. 이럴 때마다 등장하는, 그 유명한 말. " 시바, 너나 잘하세요 ! " 주인(기득권)의 입장에서 보면 영화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에서 퓨리오사와 맥스는 배은망덕한 자이며 나쁜 생각을 하는 못된 약자 . 내가 이 지점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나쁜 생각 에 대한 나쁜 태도. 욕망(desire) 은 대부분 < 나쁜 생각 > 에 속한다.

 

금기가 있기에 욕망은 발생하는 법이니, 욕망은 < do not > < do it > 하고 싶어 하는 심리'다. 만약에 < do it > 을 < do not >  하게 되면 게으른 태도'가 된다.  이 세상에 과연 금기가 없는 욕망 " 이 가능할까. 그렇기에 욕망은 월경(越境) 이다. 만약에 어떤 욕망 < 좋은 생각 > 에 해당된다고 하면 그것은 욕망이 아니라 정의, 박애, 인류애 따위. 욕망은 결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밀한 것, 졸라 사적인 욕심이 욕망이니까. 나쁜 생각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남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남자의 나쁜 생각과 여자의 나쁜 생각에 대한 비난 수위'가 다르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는 여성들의 나쁜 생각에 대해서는 가차 없지만, 남성들의 나쁜 생각에 대해서는 꽤 관대한 편이다. 같은 생각이라고 해도 회초리의 종류가 다르다. 남성에게는 싸리나무 회초리를, 여성에게는 박달나무를, ...... 딱딱한 박달나무. , 몰라 ! 특히, 성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차이가 분명하다. 한국 사회는 성에 개방적인 남성은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이지만, 반대로 여성은 퍼블릭 우먼 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들이 보기에 성 담론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여자하고 싶어 안달이 난 女子 로 찍힌다. 착각도 유분수지만 생각 또한 가분수.

 

남성은 자신들의 나쁜 생각은 별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정작 여성의 나쁜 생각에 대해서는 야단법석을 떤다. 젖가슴은 커야 좋다는 고백과 180이하는 루저라는 고백은 모두 나쁜 생각 에 해당되지만, 나쁜 생각에 대한 사회적 태도는 정반대. 좋은(착한, 순종적인, 체제 순응적인) 생각에 대한 옹호와 나쁜(반항적인, 불복종) 태도에 대한 배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kbs 리퀘스트 방송에서도 드러난다. 방송사가 시청자의 온정에 호소하면서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 착한 가족(사람) > 이다.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이웃과 장애인은 반드시 착해야 한다.

 

그렇다면 동일 환경 속에서 평판이 좋지 못한 가족은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 착한 가족이든, 나쁜 가족이든 환경에 따른 굶주림과 절망은 동일한 것이 아닐까 ? < 선별적 복지 > 는 착한 가족에게는 10를 주고 나쁜 가족에게는 0를 주는 방식이다. 쉽게 말해서 사회에 불만을 가지지 말고 체제에 순응하는 가족에게만 돕겠다는 발상이다. 도움을 받으려면 일단 순둥이 가 되어야 한다는 소리. 내가 김애란의 << 두근두근내인생 >>을 형편없는 소설로 규정하는 이유는 김애란이 주인의 기만적 전술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데 있다.

 

이 소설은 불온하기는커녕 체제 앞에서 굽실거린다. 그녀 또한 착해야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소설을 두고 극찬이 쏟아지는 한국 문단을 볼 때마다 웃으면서 코 팔 수밖에 없다. 권력을 누리는 기득권이 보기에 대중은 착해야 자신에게 유리하다. 착하게 굴면 떡을 주는 방식. 이 얼마나 동화적 구조인가 !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착한 어린이가 될 필요 없다.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쳐야 착한 어린이가 되는 나라라면 차라리 나쁜 어린이로 사는 게 낫다. 역사적 진보는 복종 사회가 아니라 불복종 사회에서 비롯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생각 을 지지하련다.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지지하며, 장애인이 보행권을 문제 삼아 시민 사회를 향해 지랄을 떠는 태도를 지지하며, 도움이 필요한 주폭도 지지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착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개나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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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5-06-12 0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은 어쩌면 저의 ‘약자란’이란 글에서 곰곰발님 에게 했던 질문의 답처럼 보입니다.
http://blog.aladin.co.kr/maripkahn/7577012

그러나 제가 불민不敏한 탓인지, 첫 번째, 두 번째 문단과 세 번째 이하의 연결은 이해가 안 되는 군요. 위 글을 읽고 ‘자살하는 할아버지’가 약자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서네요. (더불어 어느 알라디너의 글에 등장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할머니가 약자인지도 판단이 안 되고요.)

시각을 달리해서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내가 현 정부나 여당을 비판했습니다.
K가 이런 말을 제게 합니다. “<착한 정부, 정책>과 <못된 정부, 정책>를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일까, 과연 누가 (정부에 대해) ‘과육 품종 분류 기계 : 어느 사과가 上品 이고 어느 사과가 下品 으로 전락할 것인가”를 조정하는 조정자’일까? ; 라고 반박한다면
제가 할 수 있는 반론은 가능한가요? 가능하다면 어떤 것이 가능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2 10:00   좋아요 0 | URL
오, 아닙니다. 마립간 님에게 딴지를 걸려는 수작은 0%입니다. 제가 누굴 표적 글 쓴다면 직설적으로 쓰지 에둘러 쓰는 스타일은 아니잖습니까. 여기서 말한 착한 ~ 은 글에서도 지적해씃이 기득권이 보기에 말 잘듣는, 순종적인 의미로 포괄적으로 썼습니다. 나쁜 ~ 이라는 것도 나쁘다는 것을 지시한다기보다는 체제에 반항적인 의미로 고른 단어입니다.

글구, 약자`는 반드시 좋은 표현으로 쓴 것은 아닙니다. 저는 대중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대중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전부 도토리 키재기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하니 진보의 선택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도 없죠. 노 정부의 진보 정책은 처참할 정도로 삼성에 기댄 신자유주의 정책이었으니 말이죠...

분류 기계 비유는 기득권이 자의대로 선정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상품으로 불리하면 하품으로 말이죠....

마립간 2015-06-12 11:52   좋아요 0 | URL
저는 저에게 딴지 거는 것을 좋아합니다. (딴지가 저를 발전시킨다고 생각하거든요.)

순종 http://blog.aladin.co.kr/maripkahn/7044939

저는 순종을 리더의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팔로워 관점에서 쓸 때는, 순종 대신 복종이나 맹종을 사용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2 11:3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순종을 악덕의 한 종류라고 봅니다. 체제 순응을 그닥 좋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라서요.

samadhi(眞我) 2015-06-13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행동하지 않는^^; 반골이라서요. 기득권 자체를 거부합니다. 그래서 늘 조직에서 겉도나봐요. 그리고 무지한 군중폭력에 끔찍해하죠. 집단광증(?)으로 무고한 사람이 생매장당하는 상황 같은 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05:53   좋아요 0 | URL
저도 늘 조직에서 겉돕니다. 단 한번도 조직에 충성한 적이 없네요... ㅎㅎㅎㅎ. 그래서 출세를 못하나 봅니다. 하지만 조직 내에 있으면 온갖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잖아요. 보면 그냥 좆같죠. 그런데 그걸 충성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사내 익명 게시판이 있어서 맘대로 욕해도 된다 했는데, 욕하는 놈은 나 하나고 모든 사람들은 익명인데도 불구하고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글만 쓰더군요. 의아했어요. 익명인데 왜 그럴까 ?

비로그인 2015-06-1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응하지 않는 삶˝의 ˝고고한 성공˝을 보고싶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곰발님 글처럼 늘 반골이 저주받고 학대당하고 폐기되는꼴만 보여줍니다.그래서 유능한 젊은이는더욱 체제에 편입하려하고 무능한 젊은이도 일베를 하며 체제를 옹호합니다.
성공하는 반골들이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저또한 그렇게 되고싶습니다. 글쓰다보니 울컥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6 16:08   좋아요 1 | URL
한국에서는 순응하지 않는 삶에서 고고한 성공을 할 가능성은 1%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유능한 젊은이는 체제에 순응하고 무능한 젊은이는 일베에 편입되어 체제를 옹호한다는 말,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매드맥스는 페미니즘 영화인가 ?

 

 

                                                                              그 옛날, 자동차 추격 장면'을 가장 탁월하게 구사하는 감독은 월리엄 프리드킨과 조지 밀러'였다. 얀 드봉 감독'도 ?! 조까라 그래라 !  << 프렌치 커넥션 >> 과 << 매드 맥스 >> 시리즈'는 잘 빠진 강철 하드 바디의 무한 질주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하지만 당시 촬영 기술은 머릿속 상상을 100% 재현하기에는 아날로그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조지 밀러의 만든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 이하 분노의 도로 ) >> 는 당시에는 기술적 제약에 의해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 개인적으로 가장 황홀한 자동차 추격 장면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 현기증 >> 이었다. 자동차 질주 장면은  속도가 " 갑 " 이지만, 

느려터진 속도로 도로를 훑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장면'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동자 미행'이었다( 질주와 미행을 한통속으로 묶는 것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 비유를 들자면 << 프렌치 커넥션 >> 과 << 매드 맥스 >> 가 우드스탁 야외 락 페스티발'이라면, << 현기증 >> 은 세종문화 회관에서 연주되는 실내악 4중주 같다고나 할까 ?  영화 << 현기증 >> 에서 자동차 미행 장면은 로케이션 촬영이 아닌 스튜디오 안에서 스크린 프로세스 장면으로 촬영되었지만, 이 " 어설픈 스크린 프로세스 장면 " 은 묘하게 작품에 품격을 높인다.    개인적으로 스크린 프로세스 장면을 탁월하게 구사하는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이다. 특히, << 열차 속의 이방인 >> 은 압권'이다. 이 영화는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면 걸작으로 칭송받을 작품이다   

속도가 자동자 질주 장면의 모든 것은 아니다. 속도만 가지고 보면 얀 드봉의 << 스피드 >> 를 능가할 영화가 있겠느냐마는, << 스피드 >> 에서 보여주는 " 스피드 " 는 멋도 없고 맛도 없다. 오해는 마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시라. << 프렌치 커넥션 >> 과 << 매드 맥스 >> 를 폄하하려는 밑밥은 아니니까 말이다.  나 또한 남자 사람이어서 누구보다도 이 두 영화에 열광한 사람'이었다. 조지 밀러 감독이 일취월장한  특수효과를 가지고 돌아온 << 분노의 도로 >> 는 오락 영화에 충실한 영화였고, 오락 영화다운 영화'여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그리고 꽤 훌륭한 영화'다. 하지만 불똥이 이상한 곳에서 발생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가 과연 페미니즘 영화인가 아닌가,  라는 논란'이다. 

3초 생각하고 30초 웃었다. 이게 무슨 페미니즘 영화인가 ?! 그런데 예상 외로 페미니즘 영화'로 규정하는 사람이 꽤 많은 모양이다. 이 영화는 여성 영화도 아니고 남성 영화도 아니고, 그냥 영화'다. 김기덕과 아이들 흉내를 내자면 " 영화는 영화'다. "  일단, 퓨리오사'는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성화된 여성'이다. 그것은, 음, 그러니까, 뭐냐면, 음, 쫌... 그게 조심스러운데 박근혜는 < sex > 는 여성이지만 < gender > 로는 남성이듯이,  마찬가지로 퓨리오사는 < sex > 는 여성이지만, < gender > 는 남성'인 캐릭터'다. 그녀는 " 모세 " 가 되어서 여성을 이끌고 꿀과 젖이 있는 가나안으로 가려 한다.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맥스를 만나고 둘은 힘을 합쳐 목적을 이룬다는 내용. 

퓨리오사와 맥스는 가만히 뜯어보면 동성 짝패'다. 퓨리오사'에게 있어서 여성으로서의 체력적 한계'는 거의 없어 보인다. 맥스와 맞짱 대결'에서 둘은 서로 대등한 실력을 선보인다. 오히려 퓨리오사'가 한쪽 팔이 없다는 측면에서 무쇠팔을 장착했다면 퓨리오사'가 우세했을 사생결단'이었다. 그녀는, 무늬'만 여성인 존재'다. 하지만 그 사실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페미니즘 영화를 표방한 영화는 아니니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여성적인 모티브를 자주 차용한다. < 8기통 전투 차량 > 이 싣고 있는 물과 우유는 불과 피에 대응하는 " 여성 액체 " 다. 남성이 피를 나누는 존재라면(혈맹), 여성은 우유를 나눈다.

이 영화에서 8기통 전투 차량이 우유를 싣고 달린다는 점에서 강철 하드바디의 외양을 한, 속은 한없이 부드러운 거대 유방 기계'인 셈이다. 간단하게 파트라슈가 몰고 다니는 우유 수레'라고나 할까 ? 아, 갑자기 파트라슈 보고 싶네....   특히 임모탄이 머무는 장소'가 " 동굴 " 이라는 점에서, 이 동굴은 전형적인 " 촉촉하고 검은 동굴 " 이다. 그곳에서는 우유와 물이 쏟아지고,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기름진 땅이 자라나는 곳이다. 바로 그 점이 << 코라 >> 를 연상시킨다. 코라'란 원초적 자궁을 의미한다. 임모탄이 기르는(?) 신인류 " 눅스 " 는 가만히 뜯어보면 태아'를 닮았다. 그러니깐 이곳은 거대한 자궁이요, 눅수는 탯줄에서 영양분을 얻는 미숙아'다.

조지 밀러 감독이 그 사실'을 인지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 여성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하면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반대로 영화의 행간을 읽어서 임모탄과 신인류 눅스가 머무는 장소를 << 코라 >> 로 해석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한다면 그 타당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생각은 있다.  하지만 원초적 모성 공간을 다룬다고 해서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 엑소시스트 >> 나 << 에이리언 >> 도 페미니즘 영화'라고 주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영화를 해석하기에 좋은 영화'다.

하여튼, 이 영화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인물은 " 기타맨 " 이었다. 그의 지랄발광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런 비주얼, 씨발......  이런 지랄발광, 이런 싸운드, 이런 질주.... 좋다. 실내악 4중주'만 들을 수는 없는 노릇. 가끔은 < 롹 > 빨 터지는 영화도 봐야 한다. 조지 밀러 감독도 도전했으니 월리엄 프리드킨 감독도 새로운 자동차 질주 영화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네. 월리엄 프리드킨 감독님, 아직도 지상에 강림하시고 계시다면 하나 만들어주쇼.  마뇰 드 올리베이라(Manoel de Oliveira) 감독님도 10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드셨습니다. 저는 당신 영화를 사, 사사사,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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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7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8 0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5-06-07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내내 하.드.코.어.라고 생각했어요. 메탈 음악 중에서도 데쓰메탈 같은 느낌. 시나리오가 심하게 엉성해서 실망했지만 그 외 효과들은 훌륭했어요. 시도가 좋았다는 생각이요. 모든 연령층에게 호응을 일으키긴 힘들 것 같구요. 그네의 젠더를 아주 명확히 정의하셨네요 저는 주로 꼭두각시로 정의합니다. 요즘 로봇들도 꽤 진화해서 똑똑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08 05:53   좋아요 0 | URL
저도 탄탄한 스토리는 아니어서 놀랐습니다. 하긴, 질주 본능을 위한 이야기 설정이니 어설프긴 하더군요.
근데 기타맨 매력 쩔지 않습니까 ? 기타맨 보는 재미로 보았습니다..ㅋㅋㅋㅋㅋ


samadhi(眞我) 2015-06-08 05:56   좋아요 0 | URL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영화가 무슨 맛이 있었겠어요 ㅎㅎ 그 미친 메탈보컬(?)을 연기한 배우가 누구인지 찾아보게 만들었죠. 실제로 음악가라고 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08 14:01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ㅎㅎㅎㅎㅎㅎㅎ. 음악가인 줄은 몰랐습니다.
어쩐지 뭔가 와꾸가 제대로 나오더군요...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