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사고 한길그레이트북스 7
레비 스트로스 지음, 안정남 옮김 / 한길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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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는 없다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 라고 말했다. 그런데 오래된 원시 사회 신화 속 도덕률은 지옥은 우리 자신이다 라고 가르친다.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 그게 그거 > 같지만 곰곰 생각하면 < 그게 그거 > 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지옥에는 < > 는 속하지 않은 반면, 레비-스트로스가 세계 오지를 찾아다니며 수집한 원시 사회 신화의 서사에는 지옥에 < > 가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르트르는 내 탓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것이고, 오래된 신화는 네 탓보다는 내 탓에 방점을 찍는다.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에 사르트르는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서구중심적) 사고를 가진 좌파 꼰대(내가 보기에는 사르트르는 좌파 꼰대라기보다는 마초 꼰대처럼 보인다. 그는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부르주아).

레비-스트로스는 << 야생의 사고, 9장 >> 역사와 변증법 은 온통 사르트르를 씹는 데 할애한다. 그것도 아주 신랄한 어조로 말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표현하자면 의식적으로 난폭한 표현을 ( 야생의사고, 355) ” 쓴다. 역시, 비난할 때는 체면 차리지 말고 제대로 씹어야 제 맛이다. 사르트르는 역사가 있는 인류를 문명인으로 설정한 후에 역사가 없는 인류는 야만인으로 분류했는데, 지구 저기, 저어어기, 저 어어어어...... 어두컴컴한 변방의 부족 사회를 주로 관찰한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에는 역사가 없는 사회라고 해서 야만인이라는 단정은 얼토당토목금토. 그렇기에 역사 있는 인류가 역사 없는 인류에게 의미를 가져다주며 축복을 준다는 말은 기만이다. 이럴 때 흔히 하는 말, 너나 잘하세요.

레비-스트로스는 기억 를 믿지 않았다. 기억이란 본질적으로 왜곡 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한다. 불리한 것은 못 본 체하거나 지운다. 반면 입장에 유리한 사실은 취사선택 하여 과장한다. 기억이란 솎아 내거나, 지우거나, 확대한다. 그 결과, 자신이 잡은 생선은 피라미 인데 기억에 의해 재생된 물고기는 월척 : 한 자가 넘는 물고기 이다. 얼척없는 과장인 셈이다. 이 기억을 개인에서 국가로 확장하면 역사가 된다. 역사란 개인적 기억을 국가의 기억으로 확장한 것이다. 피라미를 잡았으나 월척을 잡았다고 기억하는 낚시꾼의 오류나, 역사 있는 인류가 역사 없는 인류에게 축복를 내렸다는 역사의 오류나 매한가지. < 보수 > 는 기본적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옛것은 낡고 가난한 것이지만 가치 있고, 새것은 번드르르하고 삐까번쩍하지만 싸가지가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매사에 새것(젊은 것)은 못마땅한 존재다. 하지만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기억이란 왜곡을 동반한다. 그들은 < 21세기 새것 > 에 비해 < 20세기 옛것 > 은 투박하며 품질은 떨어지지만 낭만과 운치가 있었다는 생각은 완벽한 착각이다. 왜냐하면 옛것은 그 당시에는 번드르르하고 삐까번쩍한 신상이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있는 것이다. 까마귀도 아니고 말이다. 보수가 옛것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문화가 아니라 자신의 젊음이다. 젊었기에 좋았던 것이지 그 시절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의 젊음이다. “ 왕년에 ~ ” 라는 흔한 말투는 그 사실을 증명한다.

자신은 젊음 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면서 정작 요즘 젊은것들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하지만 젊다고 해서 좋을 것 하나 없다. 그 시절에는 그 시절에 맞는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낭만은 없다. 낭만이란 과거를 회상할 때 발생하게 되는 감성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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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6-1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사르트르는 얼마큼은 양심적 지식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의 높은 문학적/철학적 명성과 권위 덕에 그만한 권력이 생겼고, 그 권력을 충분히 이용해 사회운동(베트남전 반대, 프랑스 식민지들의 독립 운동 지지 등)도 활발하게 했죠. 물론, 저 역시 그에게서 (진은영 같은 이들에게 볼 법한) 캐비어 좌파의 냄새가 나긴 합니다만 그래도 사회적 지식인으로서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고 살았다는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한 리딩은 아닌데, 고진의 책에서 본 적이 있었던 듯한데 실제로 레비 스트로스와 사르트르의 사이가 굉장히 나빴다고 들은 기억이 나네요. 그냥 사상적 차이에서 생긴 불화를 넘어서 인간적으로도 서로를 싫어했다고 한 듯하네요 ㅎㅎ 아마 그 때문에 레비 스트로스가 사르트르를 더욱더 혹독하게 비판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5 09:30   좋아요 0 | URL
엇, 수다맨 님. 안 그래도 한번 만나서 술이나 마시자, 메시지를 넣읅ㄱㄺ 넣으려고 했습니다. 시간 되시면 봅시다. 둘 다 서로 앙숙이었다네요. 야생의 사고를 보면 한 장을 통째로 사르트르 까는 데 할애하고 있씁니다.
그걸 읽은 사르트르가 좋아할 리 없고, 사실 사르트르 사상과 스트로스 사상은 대척점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레비스트로스는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로스는 보수주의자 같습니다.

수다맨 2015-06-16 13:48   좋아요 0 | URL
네. 이번 달에 한 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날짜 잡으시죠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6 16:08   좋아요 0 | URL
날 잡아보도록 하죠. 오붓하게 봅시다요..ㅎㅎ

마립간 2015-06-1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지, 아니면 레비 스트로스 주장처럼 역사의 진보가 없었는지, 이 주제는 저에게 판단 유보인 주제입니다.

곰곰발 님의 개인적 판단이 궁금하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5 11:55   좋아요 1 | URL
저는 개인적으로 레비스트스를 지지합니다. 사르트르는 역사적 진보가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역사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란 운명론적이 아니라 우연적 산물이라는 것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는 보다 문명화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히틀러 홀로코스트는 이후 역사에 많은 교훈을 주었지만, 그래서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졌지만 보스니아 내전은 홀로코스트만큼 끔찍한 인종 청소의 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