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 씨는 숀 코넬리'다

                                 새집으로 이사를 왔으나 헌 집이었다. 아파트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는 20년 넘게 마당 있는 단독 주택에서 살았던지라 빌라 주거 환경에 익숙하려면 시간이 걸려야 했다. 한국인은 아파트 주거 환경에 익숙하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군집 형태의 주거 환경이 불편했다. 두고 온, 한때 새집이었으나 이제는 옛집이 되어버린 그 집도 낡고 오래된 라일락 나무가 있는 마당이 있고 작은 터앝이 있는 주택이었다. 그 마당에서 개를 키웠다. 목줄을 다는 것은 왠지 학대인 것 같아서 항상 풀어놓았다. 봄에 터앝에 배추와 도라지를 심었으니 하루가 다르게 자랐으리라. 터앝에 채소를 기르면서 깨달은 것은 볕에 따라 자르는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봄볕에 이파리는 자라고 여름 볕에서는 색이 짙어지고 단단해진다. ...... 자라고 있으려나 ?

전세 대란 " 을 넘어서 전세 전쟁 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으나 항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다가 막상 전셋집을 구하다 보니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헌 집이지만 새집이 된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전에 살던 전세보다 2배 많은 금액을 지불했지만 공간은 절반으로 줄었다. 마당도 없고, 터앝도 없고, 라일락도 없다. 대신 복도라는 이상한 길이 생겼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잠을 놓쳤다. 오늘은 키우던 개와 함께 인왕산에 오르기로 약속한 날. 새벽부터 등산 가방을 챙겼다. 삼겹살은 살짝 익혀서 도시락에 담고, 빵과 우유, 그리고 냉동실에 둔 얼린 물통도 챙겼다. 아침 여섯 시 반에 집을 나왔다. 걸어서 인왕산 입구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얼추 한 시간이 걸렸다. 개는 지쳤는지 벌써부터 혀를 내밀고 헉헉거렸으나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는 날이라 흥분한 표정이 역력했다. “ 봉달이 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산책이었다. 우유를 주자 목이 마른지 냅다 먹었다. 개를 이끌고 산에 올랐다. 정상에 도착해야 한다는 목표는 없었다. 좀더, 조금 더 오래 개와 함께 산책하는 것이 목표였으니까. 가다가 지치면 길이 아닌 풀숲으로 빠져서 쉬고는 했다. 목줄을 풀어주니 개는 사냥개 흉내를 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틈틈이 고개를 돌려 내 위치를 확인하고는 했다. 어느덧...... 개는 시야에서 벗어났다. 잠이 오기 시작했다. 배낭을 베고 잠시 잠을 잤다. 바람과 볕이 좋았다. 우울증에는 볕이 가장 좋은 약입니다. 볕을 많이 쬐도록 하십시오. 의사는 처방전을 작성하면서 늘 그 이야기를 했다. 맞는 말이었다. 바람과 볕은 우울과 불면에 가장 좋은 약이었다.

눈을 뜨니 개는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 틈틈이 개에게 먹이를 주었다. 고기가 상할까봐 살짝 익힌 삼겹살부터 줬다. 김칫국에 밥 말아 먹던 놈이라 삼겹살로 배를 채우니 마냥 좋은 모양이다. 그래,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맛있는 거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하루 종일 산책을 하니 오늘이 네 생일이다. 목이 마를 때 마시려고 준비한 물도 몽땅 개에게 주었다. 내가 물을 마시려고 하자 개가 낑낑거리며 물을 달라고 보챘기 때문이다. 산 정상에 오르고 산 밑으로 내려왔어도 나는 개를 끌고 이리저리 세상 구경을 시켰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공원에 앉아 구멍가게에서 사온 비비빅 를 개에게 주니 잘도 먹는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봉달아, 미안하다. 오늘이 너와 함께 하는 마지막 산책이구나.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었으나 슬퍼서 울컥했다. 이 집에서는 너를 키울 수 없단다. 전날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곰곰 생각했다. 개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무엇을 해야 할까 ?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개와 함께 세상 구경을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산책이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다가 달거리하는 여자처럼 터졌다. 강원도 농장 주인이라고 하니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위를 내내 하면서...... 집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도 몹쓸 짓이었다. 형편이 되는 대로 키우기로 했다. 전화를 걸어서 입양은 없던 일로 했다. 그날, 꿈을 꾸었다. 꿈에 영화배우 숀 코넬리를 닮은 금발 신사를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아따, 성님 ! 나 모르것소. 봉달이오. 봉달이 !

- 봉달이 ??!

- 그려, 나 성님 동생 봉달이여. 꿈에서는 항상 사람으로 둔갑을 한당께. 이때 한번 사람 흉내 내지 언제 사람 행세 하것소.

- 사람으로 둔갑을 하니 꽤 잘생긴 놈이었구나.

- 말이라도 고맙소잉. 근데 아까..... 공원에서 왜 울었소 ? 사내새끼가 눈물이나 찔끔거리 고...... 말 안 해도 다 알지라. 사실, 알면서도 내색은 안했소. 내가 시무룩하면 성님 더 마음 아플 것 아니오. 기분도 꿀꿀하니 어디 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읍시다.

 

나는 숀 코넬리를 데리고 허름한 삼겹살집으로 들어갔다.

 

- 성님, 고맙소잉. 이 은혜 잊지 않겠소. 같이 함 살아봅시다. 내 똥 오줌 잘 가릴 것이니 너무 걱정 마소. 잘 짖지도 않을 테니껜 걱정 붙들어 매쇼 !

 

그 사이, 삽겹살이 노릇노릇 구워졌다. 나는 숀 코넬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구나. 내가 젓가락으로 삼겹살을 집자 숀 코넬리가 으르렁거리며 소이쳤다.

 

- 젓가락 놔라잉! 건들면 배때기를 확 째셔 줄넘기 해부려. 내 밥그릇에 손 대는 놈은 배, 배배배배신 배반형 투, 투투투부정사야.

 

숀 코넬리는 먹이를 보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식욕 앞에서는 사람 흉내고 나발이고 없었다. 하지만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차피 꿈이니까, 고기 한 점 먹었다 한들 헛배 부를 리 없으니까. 많이 먹어라.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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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5-06-1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터앝. 예쁜 말이네요.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군요. ˝비비빅˝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10:05   좋아요 0 | URL
텃밭과 터앝은 다르더군요. 텃밭은 집 밖에 있는 작은 밭이고 터앝은 집 울타리 안에 있는 땅이랍니다.

비비빅... ㅋㅋㅋㅋㅋ 오늘 새벽에도 비비빅 하나 줬습니다. 여름에는 비비빅이 최고에욧//

samadhi(眞我) 2015-06-13 10:07   좋아요 0 | URL
네 찾아보았죠. 국어사전 찾아보기가 취미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3 10:42   좋아요 0 | URL
좋은 취미로군요. 저도 사전 찾아보는 재미를 알고 있습니다. 사전이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ㅋㅋ

samadhi(眞我) 2015-06-13 10:44   좋아요 0 | URL
˝새록새록˝ 알아가는 맛이 있죠.

cyrus 2015-06-1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 준비 때문에 며칠동안 글 포스팅이 뜸했군요. 더운 날에 이삿짐 옮기고 새집 정리하느라 고생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4 09:33   좋아요 0 | URL
이사야 포장 이사`에서 다 하는 것이니 이사 때문에 글이 뜸했던 것은 아니고 그냥 책을 안 읽다 보니 딱히 글 소재가 없어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