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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닭 살 대 마 왕 :
일 별 백 개
누가 책을 읽고 있으면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이 궁금해진다. 특히, 전철 안에서 맞은편 자리에 앉은 승객이 읽고 있는 책은 더더욱 그렇다. 내 시선은 자꾸 그쪽으로 향하고,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알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자세를 낮춰 책등에 박힌 제목을 보려 한다.
오해 아닌 오해도 받게 된다. 왜, 남의 떡과 책은 커보이는 것일까 ? A가 책을 들고 있길래 궁금한 표정을 짓자, A는 요즘 잘나가는 베스트셀러'라고 소개한다. 언어의 온도. 때마침 A가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며 짬짬이 읽어보라고 한다. 뭐, 결론부터 말하자면 10분 정도 읽다가 내동댕이쳤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구나 ! 이명박과 박근혜가 호모사피엔스의 가장 나쁜 예와 속한다면 이 책은 에세이의 가장 나쁜 예'에 속하리라. 이 책을 쓴 저자는 에세이를 가장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뭐, 어디까지나 개인적 생각이다).
내 손에는 지금 이 책이 없기에 내가 지적하고 싶은 발췌문을 열거할 수는 없지만, 알라딘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에 올려진 글에 한정해서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다.
몇 해 전 일이다. 일산에 있는 병원에서 어머니가 수술을 받았다. 진료 과정은 다른 병원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의료진이 환자를 부루는 호칭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한 번은 나이 지긋한 의사가 회진차 병실에 들어왔는데 그는 팔순을 훌쩍 넘긴 환자를 대할 때도 " 환자 " 혹은 " 어르신 " 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 박 원사님 " " 김 여사님 " 하고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가 퇴원하는 날 담당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 ? " 라고 묻자 그는 " 그게 궁금하세요 ? " 하고 되물었다. 의사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말도 의술이 될 수 있을까 중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 환자에게 환이 아플 환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호칭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은퇴 전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이 될 수도 있어요. " 나 또한 저자가 옮긴 의사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달나라에 토끼가 산다더니 한나라에 살면서 서로 딴 세상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한민국 평균 진료 시간이 3분 미만이라고 한다. 병원 대기실에서 3시간 기다렸는데 진료 시간은 고작 3분도 안 돼서 허망했던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의사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병원의 구조적 문제이니깐 말이다. 컵라면 면발이 익는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시간에 오고가는 말 속에 화기애애한 정담이 이뤄지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의사는 정말 저렇게 말했을까 ? 글이라는 것이 원래 조미료 뿌리는 맛으로 읽는다지만, 저 정도의 화기애애한 정담은 닭살이 돋는다. 글 쓰는 사람은 글을 써야지 영화를 찍으면 안된다.
네,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 " 순간, 난 할머니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대답의 유형을 몇 가지 예상해 보았다. "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 라거나 " 할머니는 다 알지 " 같은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 어설픈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할머니는 손자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
더 아픈 사람 중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더 아픈 사람이란다. 비오는 날, 심야 라디오 오프닝 멘트이거나 클로징 멘트 같은 감성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달나라에 사는 저자를 생각했다. 저자가 만나는 사람은 죄다 파스텔톤의 동화 속 캐릭터들이구나. 저잣거리에서 온갖 험한 말을 듣고 자란 나는 롤랑바르트도 울고 갈 감성 에세이'에 닭살이 돋았다.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것, 더 아픈 사람이란다. 맙소사 ! 이 책은 요리에 실력 없는 사람이 있어보이려고 내놓은 파스타 요리 같다. 예쁜 그릇에 담았지만 맛은 없는, 먹고 나면 차라리 분식점 쫄면에 생각나는. 제 별점은요, 하나 !
남들이 별 다섯 개 기준에 별 하나를 준다면, 나는 별 백 개 만점에 별 하나를 주겠다. 이런 책은 일별백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