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를 이길 수 있는 소프트는 아이스크림이 유일하다 :
트럼프와 조선일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_ 라는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은 코끼리만 생각하게 된다. " 코끼리 ? 왜 느닷없이 코끼리를 얘기하지 ?! " 머릿속은 온통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누군가가 " 코끼리가 아니라 개미핥기입니다, 행님 ! " 이라고 말해도 코끼리라는 단어에 점령당한 뇌는 이 정보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된다. 개미핥기 ?!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코끼리, 꽤꼬리, 웽?!......
이를 두고 " 프레임 전략 " 이라고 한다. 우리가 통상 사용하고 있는 주류 언어도 프레임 전략이 적용된 예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서 대한민국 주류 언론은 하나같이 " 저학력 백인 남성의 반란 " 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는데, 사실 이 문장은 잘못된 표현이다. 고등학교(high school)교육 제도는 말 그대로 고등(高等)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등급이나 수준 따위가 높은 교육이다. 적어도 저학력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는 평균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다. 즉, 교육도 제대로 못 받은 멍청한 백인이 똥을 산 결과는 아니다. 그렇다면 왜 < 고등학교 교육 > 은 저학력이라는 프레임으로 유포되고 있을까 ?
이 프레임이 교육 마피아의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저학력이라는 프레임으로 설정하면 평균 혹은 평균 이상을 바라는 학부모와 수험생은 평균치(혹은 평균치 이상)를 얻기 위해 대학을 진학해야 한다. 졸업장 장사와 교육 이권 사업을 하는 교육 마피아에게는 매우 유리한 프레임 설정인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수를 저학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우리는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 따위에게 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는 보통의 교육 수준과 보통의 상식을 갖춘 사람이 선택했다즌 점이다.
대한민국 국민 99%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통탄하지만 과연 지구가 망할 것처럼 통탄할 만한 결과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트럼프가 개새끼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트럼프는 개새끼다). 트럼프 당선은 " 저학력 백인 남성의 반란 " 이라기보다는 " 정치 엘리트 주류 세력에 대한 정치 딴따리 비주류에 대한 호감( 정치 주류 엘리트인 이너써클에 반감을 가진 대중이 아웃사이더에게 보내는 지지......) " 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트럼프는 민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에서도 극렬하게 반대했던 인물이며, 주류 언론은 고사하고 비주류 언론에서도 트럼프를 지지한 언론사는 없었다. 주류 언론이 막말이라는 프레임으로 아무리 두들겨도 트럼프는 승리를 거뒀다.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이번 미국 대선은 주류 언론 vs 비주류 백인 노동자의 대결이었다. 백인 노동자는 주류 언론에 포섭되지 않았다. 이제 워싱턴 정가는 노동자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트럼프의 당선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에게 워싱턴에 갇혀 있지 말고 노동 현장으로 가라는 주문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트럼프는 개새끼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미국 대선에 의미를 두는 이유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서 시작한 촛불 100만 시위를 보면서 얻은 교훈은 < 국민의 힘 > 이 아니라 < 조선일보의 힘 > 이었다. 한때 사람들은 조선일보가 박근혜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겁쟁이라고 놀렸다), 역린을 건드린 쪽은 청와대였다.
조선일보는 잠시 몸을 사렸을 뿐이다. 조선일보와 tv조선 방송이 박근혜와 최순실을 무차별적으로 물어뜯지 않았다면 과연 5%라는 지지율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 박근혜 콘크리트 지지율을 무너뜨린 공신은 조선일보'다. 어제 촛불 100만 집회 현장에서 내가 느낀 것은 불만이다. 모든 언론이 축제 같은 시위 문화을 높게 평가하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축제가 동반된 평화 시위 문화라는 프레임 설정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하드(hard)을 이길 수 있는 소프트(soft)는 아이스크림이 유일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칼은 물보다 강하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고 ?! 글쎄다. 물방울이 백년에 걸쳐 작은 구멍 하나를 만든다면 돌맹이는 단 한번의 돌팔매로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만든다.
지금 우리는 정부가 깔아놓은 멍석에서 즐겁게 놀다 간 꼴이다. 하야를 외치는 함성소리에 이승만과 박근혜가 느끼는 위협은 동일한 것일까 ?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승만이 느끼는 위협은 생명에 대한 위협이지만 박근혜가 느끼는 위협은 위세에 대한 불안이지 생명에 대한 위협감은 아니다. 박근혜는 지금 " 안전한 위협 " 에 직면한 대통령이다. 축제는 축제이고 시위는 시위일 뿐이다. 오감바 쉼빠빠, 축제 같은 시위라니 유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