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님, 와 내 눈 에 는 섹 물 의 밤으로 읽히 은교 ? :
다정도 병이다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말꼬리표(해시태그)에 박범신 소설가와 박진상 시인이 걸려들었다(오타다, 박진성이다). 가시 돋힌 뾰족한 말풍선이 자신을 향할까봐 부들부들 떨고 있을 문단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난다. 먹고살 만하니 이제는 시를 쓰겠다며 방송을 종횡무진하는 모 아무개도 떨고 있으리라. 풍문으로 들으니 담당 편집자에게 자신의 섹스 파트너가 되어주세요 _ 라고 졸랐던 그가 아니던가.
작금의 사태를 두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면 당신은 문학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범죄를 문학적 기행 정도로 치부하며 재미있는 일화 따위로 인식하던 문단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 흔한 풍경이다. 박범신은 SNS 논란에 대해 누군가 나로 인해 상처 받았다면 사과하고 싶다는 하나마나한 상투어를 남겼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민망하고 난처한 심정”이라며 “(술자리에서의 행동이) 내 다정함의 표현이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불쾌함이 되었다면 그것은 내 불찰이며 자책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현란한 손 기술과 혀 놀림을 다정함의 표현 따위로 눙치는 것을 보면 다정도 병이다.
박진성 시인의 경우는 썬데이-서울'에서나 나올 법한 추태'다. 유아적 퇴행이 아주 오지고 찰지며 제대로 후지다. 그가 내 이웃에게도 접근한 모양이다. 그가 먼저 다가와 글 솜씨가 뛰어나다며 일인 맞춤형 개인 교습을 받지 않겠냐는 댓글을 달았단다. 이런 수법으로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접근했을까 ? 시력이 나빠진 나는 박진성의 << 식물의 밤 >> 이 자꾸 글자와 글자가 겹쳐서 << 섹물의 밤 >> 으로 보인다. < 식물의 밤 > 이 < 섹물의 밤 > 으로 보이니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에 내심 서러운 거라. 괜히 동네 형님에게 하소연을 하기에 이른다. " 행님, 와 내 눈에는 섹물의 밤으로 보이 은교 ? " 강한 성욕을 탓할 생각은 없지만 도를 넘으면 래미파솔라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도.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말꼬리표를 문단_내_갑질'로 바꾸면 타임라인에서는 3일 밤낮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글이 올라올 것이 분명하다. 어르신으로 존경받는 모 작가는 모 출판사와 사전 계약을 맺으면서 출판사에서 산에 가서 머리나 식히라며 준 법인카드로 딸 혼수용품으로 1억을 긁었다고 한다. 이, 뻔뻔함에 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우, 하게 된다. 머리를 식히는 일과 딸래미 혼수를 장만하는 일을 구별하지 못한 양반을 두고 교양과 지성을 갖춘 어르신이라고 말하면 민망한 경우가 아닐까. 몇 백 긁다가 오겠지 라고 생각했던 출판사의 뒤통수를 제대로 깐 경우'다.
문단(혹은 문학)이 고상할 것이란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 다툼이 치열하다. 말이 좋아 학파 계파 대파 쪽파 실파 일파 만파 운운하지 뜻이 맞는 놈끼리 떼 지어 다니면서 싸움질하는 당파 싸움과 다를 것 없다. 출력 좋은 스피커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주도권을 잡으니 끼리끼리 모인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은 문단에서는 중요한 아포리즘이다. 그 옛날, 이 꼴 저 꼴 볼꼴이 별꼴이어서 문단에서 도망친 작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손창섭'이다. 그는 당대에 권위 있는 문학상을 2회나 수상한 걸출한 작가였지만 문단의 떼거지들과는 거리를 두었고 그와 내통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는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
새삼,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며 부들부들 떨던 문단 사람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랑가객이 부르는 가사가 문학 위에 서 있다는 사실에 울화통이 치민 것일까 ?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왜 가사가 문학 위에 서 있으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말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순수 문학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 문학은 죽은 듯하다. 바닥에 자빠져 있길래 손가락으로 찔러보니 미동도 하지 않는다. 니미, 오호통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