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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강풀의 아파트를 읽어보라고 권해주신 분이 계셨다. 그때 ‘난 공포물은 싫어요.’라고 하면서 읽기를 거부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포물을 못 봤다. 미스터리 스릴러, 잔인함이 난무하는 살인을 그렇게 많이 보고 잔혹한 범인이 등장하는 작품만 골라보면서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그것과 공포는 엄연히 다르다. 난 귀신을 무서워한다. 예를 들면 만화 <백귀야행>을 밤에 못 본다. 무서워서 잠을 못자기 때문이다. 어려서 공포 드라마나 전설의 고향을 많이 본 탓이 크다.
그런데 달라졌다. 공포물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미스터리를 찾으려고 하다 보니 공포를 못 느끼게 되었다. 공포물도 미스터리로 접근하니 볼만해졌고 안 무서워졌다. 이제 용기를 내고 강풀의 <아파트>를 읽었다. 왜 이제 봤을까 하는 후회를 했다.
두 아파트가 마주보는 구조로 되어 있는 아파트, 백수인 남자가 마주 보이는 아파트를 보다가 기이한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누군가 사망한 것을 목격한 뒤 남자는 혼자 있는 여자가 걱정이 되고 그 아파트에 사는 또 다른 여자는 그 남자를 변태로 생각하고 남자를 조사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연쇄 살인범을 쫓는 형사까지 사건을 파헤치기로 나선다. 도대체 그 아파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아파트라는 곳이 그렇다. 삭막하다면 한없이 삭막한 곳이지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따뜻한 사람들의 보금자리임에는 틀림없다. 그곳을 어떻게 만드느냐는 사는 사람들의 몫이다. 산다는 것 자체가 사는 사람의 몫이듯이. 하지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 살아가는 것, 그게 사람 사는 맛이다. 작가는 아파트를 통해서 삭막함보다는 따뜻한 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무섭다기보다는 슬프면서 따뜻한 작품이었다. 여러 사람을 등장시켜 아파트라는 곳, 그 안의 단순한 이야기를 잘 이끌어내고 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이 마치 아파트처럼 나열된다. 강풀이 보여주고 싶었던 아파트는 이런 고립과 단절에서 소통하고 이어지며 이해하게 되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아파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다. 아파트에 있다. 밖의 아파트에도 모두 불이 켜져 있을 것이다. 그 불이 아름답다. 따뜻하다. 내가 손을 내밀면 누군가는 반드시 손을 잡아 주리라 믿는다. 나 또한 누군가 손을 내밀면 잡아 줄 테니까. 하지만 내밀지 않는다면 누가 무엇을 잡아주겠는가. 세상엔 아직도 따뜻한 손들이 많다고 믿는다. 믿고 살고 싶다. 아파트도 살만한 곳이라고 믿고 싶다. 무서운 곳이 아니라.
진짜 무서운 건 혼자 남겨진다는 외로움이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건 바로 나다. 내 손이 내 밀어지고 내 발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 외로움을 이겨내는 몫은 내 것이다. 우리가 바이러스처럼 옮겨야 하는 것은 고독과 원망이 아니라 사랑과 정이다. 근데 마지막은 좀 무섭다. 인간의 집념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강풀의 미스테리심리썰렁물다운 결말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