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단편집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작품 <기생수>를 읽고 한동안 이런 작품이 있다니 하며 놀랐었다. 그 안에서 그려지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생각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의 초기작을 본다는 것은 작가의 내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주겠거나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작가는 처음부터 인간을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쓰레기의 바다>는 상까지 탄 작품이라고 해서 유심히 봤다.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결국 자기만을 아는 이기심 때문이다. 자신만이 아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마저 누군가에게, 자연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인간 그 자체가 쓰레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인 우리가 조금이나마 냄새나지 않게, 그나마 거름이라도 될 수 있게 사는 길은 쓰레기가 되려는 자를 막는 데 있다. 함부로 뛰어 내리지 마라. 뛰어 내리는 당신도 물론 사연이 있고 괴롭겠지만 당신 몸뚱이를 받아 들여야 하는 강과 바다는 무슨 죄가 있는지 생각해보길. 죽어도 피해 입히지 말고 좋게 죽던가, 끝까지 살아 곱게 죽던가. 쓰레기인 우리는 그래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말기를...
<미완>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를 거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도 날 이해 못한다고 생각하는 건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걸 알려준다. 내가 나를 단순히 고깃덩어리로 생각하는데 다른 누가 나를 그 이상으로 생각해줄까. 완벽은 없다. 다만 미완에서 조금씩 완성을 향해 갈 뿐이다.
<살인의 꿈>은 내 스타일의 작품이다. 일단 살인이 등장하니까. 이런 작품을 좀 더 다듬어서 <사이코메트리 에지>스타일의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지의 날>은 평범한 작품이지만 그 평범함 가운데 가족에게 이해받고 싶은 소녀가 있다. 왜 가장 잘 이해해야 하는 가족들끼리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이제 더 이상 팔은 안으로 굽지 않는 걸까.
<와다야마>는 독특한 작품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낙서만 하던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그 아이는 왜 낙서만 하는 것일까? 뒤 늦게 생각해본다. 어쩜 나이가 들어 비로소 그때 알았어야 하고 궁금했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후회란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겠지 싶다.
<뼈의 소리>는 사랑을 갈구하는 소리다. 침묵보다 더한 맹렬한 삶에 대한 외침이다. 들어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무엇인가. 맹세와 약속이란 무엇인가. 내 귓가에 들리는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린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들릴 것이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다른 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잔인함이다.
작가는 단편 하나하나에서 인간의 잔인성을 폭로하고 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면을 폭력적이지 않게, 상처로 드러내고 있다. 모든 포장을 벗긴 뒤 과연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작가의 단편을 보며 또 생각한다. 내 안의 잔인한 폭력성의 근원에 대해...
역시 <쓰레기의 바다>와 <뼈의 소리>가 가장 좋았다. 그다지 잘 그린 그림이 아닌데 스토리가 그림을 매력적으로 커버하고 있다. 역시 어떤 매체든 주요한 건 스토리다. 예쁘게 포장된 포장지 같은 그림이 아니라. 만화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