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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 Memories
양희은 노래 / 예전미디어 / 2004년 5월
평점 :
중, 고등학교때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면서 나 혼자 흥얼거리던 노래가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저 산은 내게... 수선화 일곱송이... 그리고 나이가 들어 스무살이 넘어서는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이 노래를 부르면서는 울기도 했고,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에 가슴이 쓰렸다. 얼마 전 아침 이슬은 건전 가요였다는 말을 듣고 허탈하게 웃었던 적도 있었다.
목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내가 제일 처음 아름다운 목소리라 생각한 가수가 양희은이다.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조수미에게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목소리가 아름다웠고 긴 생머리가 어여뻤던 사람... 언젠가 아프다는 소식에 내 가슴이 메어지게 했던 사람... 이제는 그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주책맞은 아줌마, 아니 뚱뚱한 아줌마가 되어 다시 나타난 양희은... 나는 왜 그 모습에 더 가슴이 아픈 것인지...
가수는 노래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노래가 그의 삶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 결정을 받아들인 아름다운 사람... 그 뒤 목소리만을 따라갔던 나는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웃고 울면서 오늘도 산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내 추억의 한 귀퉁이는 양희은이 주었다. 그의 노래가 주었다. 아마 우리 세대 모두가 그럴 것이다. 이제야 시디 한 장을 사서 들으며 호들갑을 떤다. 지은 빚은 많고 갚을 길은 막막한 채무자의 심정으로 나는 그의 노래를 듣는다. 새삼 그런 느낌이 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었던 것인가... 빚을 갚기 위해 노래를 듣는 이 못난 팬을 그는 이해하리라.
그리고 양희은이 부른 김정호의 이름모를 소녀 노래가 좋다. 그 노래를 양희은이 불러줘서 고마웠다. 세노야를 부를 때의 그 목소리와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을 부를 때의 목소리가 어찌 그리 다르면서 각기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는 천상 가수다. 진짜배기 가수다.
우리 부모 병들어 누우신지 삼년에
뒷산에 약초뿌리 모두 캐어드렸지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아침이 찾아와 울고 가던 까치야
나 떠나도 찾아와서 우리 부모 위로해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앞에 가는 누렁아 왜 따라 나서는 거냐
돌아가 우리 부모 보살펴 드리렴
다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좋은 약 구하여서 내 다시 올 때까지
집 앞의 느티나무 그 빛을 변치마라
나 떠나면 누가 할까 늙으신 부모 모실까
서울로 가는 길이 왜 이리도 멀으냐
이 노래를 들으며 서울이 아닌 우리가 갈 길은 아직 멀고 병 든 부모를 낫게 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은 우리가 갈 곳, 병 든 부모는 우리의 현실이니까. 그래서 어쩌면 추억보다는 기억이 낫지 않나 싶다. 잊지 말자고, 기억하자고 자꾸 잊으려 하는 나를 다시 잡아 세운다. 아마 그도 결코 잊지 않았으리라...